• 짧은 이야기 긴 여운_조명숙
  • ▶ <짧은 이야기 긴 여운>메롱공화국 _조명숙


  • 메롱공화국





    조 명 숙

     

    1.
    규봉이는 당연 펄펄 뛰었다. 예상했던 바지만, 하도 반응이 격렬해서 나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네 시간이야. 딱 네 시간이면 거금 이만 원이 생긴다는 거 아냐.”
    “진짜 이만 원이지? 나한테 이만 원 다 주는 거지?”
    진희와 사귀고부터 규봉이의 목표는 오로지 돈이었다. 진희가 전문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아이스크림 한 번 사주면 일주일치 용돈이 날아간다면서, 몇 달째 전전긍긍이었다.
    규봉이가 동의함에 따라 교문 앞에서 우리는 메롱공화국으로 향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치른 첫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맘 같아선 집에 가서 푹 쉬면서 성적 같은 거 싹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엄마가 곗돈을 왕창 날린 일로 아빠는 집을 날렸고, 우리 식구는 모두 할아버지 신세를 지고 있는 중이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메롱공화국은 할아버지의 고물상을 말한다. 폐지나 빈병, 헌옷 등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해서 팔러 오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대통령 같은 존재라서가 아니다. 생각에 잠길 때나 화가 날 때, 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혀를 낼름거리는 일종의 틱 같은 것이 할아버지에게는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메롱! 메롱! 약올리는 것처럼 보인다며 규봉이가 지은 것이다.
    “근데 믿어도 될까? 내가 십칠 년을 살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봤지만 메롱할아버지 만한 구두쇠는 본 적 없거든.” 
    “닥치고 빨리 좀 걸어. 늦었다고."
    “빨리 좀 걸어, 늦었다고? 니가 어른이냐? 벌써 십분 째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은 식으로 걸었는데, 이제 막 중간 마친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이번엔 니가 꼴찌해 줄래?”
    규봉이가 가방을 바닥에 팽개쳤다. 가방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규봉이가 가방을 열었다. 그러더니 스니커즈를 벗고 하이탑 운동화로 바꿔신었다.
    “뭐 하려고 그래?”
    어이없어하는 사이, 규봉이는 카디건과 교복셔츠 그리고 바지를 훌훌 벗어던졌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한 눈길로 보건 말건 규봉이는 신축성이 좋은 티셔츠와 힙합바지로 갈아입었다.
    “윤상규! 넌 달려!”
    가방을 내게 휙 던지며 규봉이가 외쳤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규봉이는 물구나무 서 있었다. 물구나무 서 있나 했더니 어느새 덤블링, 규봉이 몸이 저만치 가 있었다. 파쿠르라던가 프리러닝이라던가를 하는 사촌형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다는 재주였다. 나는 가방 두 개를 들고 뛰었다. 

    2.
    메롱공화국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수레 가득 폐지를 싣고 온 곱추 할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면서 메롱까지 하느라고 할아버지 입은 엄청 바빴다.
    “종이에 물 먹이지 말랬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받아준댔잖아!”
    곱추 할머니가 맞고함을 질렀다.
    “물 먹인 거 아니야. 이슬 맞아서 그런 거래도!”
    규봉이가 혀를 쯧쯧 찼다.
    “저 봐라, 봐라. 역시 구두쇠 메롱이셔. 이백 원 아니면 오백 원 깎으려고 진짜 너무 하신다.”
    사이,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삿대질로 다가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한 시간이나 늦다니, 그동안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았으면 오천원은 벌었겠다.”
    엄청 화를 낸 할아버지는 부랴부랴 점퍼를 입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천원짜리 지폐와 오백원, 백원, 십원짜리 동전이 뒤섞여 있었다.
    “옛다, 이만 원. 종류별로, 저울 잘 달아서, 저기 적힌 가격대로 매입하고, 남은 돈은 돌려줘야 한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휭하니 가버렸다.
    “이런 걸 대략난감이라고 한다.”
    규봉이 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 다리가 삐꺽 소리를 냈다. 내 머릿속에서도 삐꺽 소리가 났다.
    “네가 말한 이만 원이 그 이만 원이냐?”
    체념한 표정으로 규봉이가 팔짱을 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고, 규봉이는 가버릴 기세였다. 혼자서 온갖 종류의 헌 물건이 겹겹이 쌓인 고물상을 지켜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아득했다. 눈치를 살피면서 내 용돈을 털어서 햄버거와 콜라라도 사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규봉이가 말했다.
    “너, 나한테 이만 원 빚진 거다. 접수했냐?”
    고개를 끄떡였다. 이만원을 모으자면 두 달은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때 곱추 할머니가 재촉했다.
    “빨랑 달아서 돈 안 주고 뭐해?”
    나는 폐지 수레를 저울 앞으로 끌고 갔다. 수레에는 종이상자와 신문지, 그리고 파지와 헌책이 뒤죽박죽이었다. 그것들을 종류별로 분류해서 저울에 달고, 각각 가격을 매기자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규봉이는 본 체 만 체 폰과 놀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분류와 무게달기를 마치고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았다. 폐지, 고철, 빈병, 구리, 알미늄 등의 고물에 대한 가격표가 빼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폐지도 종류에 따라 종이상자, 신문지, 파지 등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돈 중에서 곱추 할머니에게 지불할 돈 사천삼백오십원을 꺼냈다. 곱추 할머니는 돈과 나를 번갈아 말끄러미 쳐다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어린 것이 아주 지독하구나.”
    “네?”
    곱추 할머니가 이번에는 킁, 하고 세게 코웃음을 쳤다. 
    “백원짜리에 십원짜리까지, 우리 같은 사람 상대로 먹고 살면서 너무 야박하지 않냐? 사천원 하고 몇백원이면 오천원 주고, 오천원하고 몇백원이면 육천원을 주는 거야. 그런 걸 인정이라고 한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곱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주름이 많고 검은 얼굴에다 키가 작은 할머니였다. 등이 볼록 튀어나온 탓에 어깨에서 곧장 뻗은 팔이 침팬지처럼 길었다. 심부름 왔다가 몇 번 본 적도 있었고, 지나가다 전단지나 구겨진 종이컵까지 악착스레 줍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힘겹게 수레를 끌고 메롱공화국을 찾아오는 걸 보고 일부러 못 본 척 하기도 했다.
    메롱공화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아주 늙었거나 몸이 불편했다. 그들이 가져오는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들을 사들여 이윤을 남기고 파는 것이 할아버지의 사업이었다. 그런 만큼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거나 늙었거나간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사정을 봐주기로 치자면 끝이 없고, 그렇게 소문이 나면 당장 고물상 문을 닫아야 할 거라고 했다. 법원에 법이 있다면 고물상에는 고물상의 원칙이 있었다. 나는 곱추 할머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종이에 물이나 먹이지 마세요!”
    내 버럭에 그때까지 존재감을 접고 있던 규봉이가 벌떡 일어났다. 규봉이는 다가오더니 곱추 할머니 손에서 다짜고짜 돈을 빼앗았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내 돈도 뺏어갔다.
    “할머니. 여기 만 원. 이만하면 되겠어요?”
    규봉이는 천원짜리 열 장을 세어 곱추 할머니 손에 쥐어주고, 나머지 돈을 내 주머니에 다시 쑤셔넣었다.
    “얘가요, 공부만 못하는 게 아니라 철도 없어요. 오늘은 제가 값을 매겨드릴 테니까, 어서 가셔서 폐지 또 모아 오세요. 지금부터 딱 네 시간 동안 고물값 팍팍 준다고 소문도 내세요.”
    팔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규봉이가 건덜거렸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사이 곱추 할머니는 기뻐하며 수레를 끌고 사라졌다. 나는 규봉이의 등짝을 후려쳤다.
    “이 자식이, 미쳤냐? 네가 주인이냐?”
    “나 주인 아냐. 그러니까 이러는 거다.”
    “뭐라고? 이 자식이….”

    3.
    나는 규봉이의 멱살을 잡았고, 규봉이는 내 멱살을 잡았다. 우리는 폐지 위에 나뒹굴었다. 주먹이 오가고, 엎치락 뒤치락 한바탕 난리를 친 다음에 우리는 지쳐 떨어졌다. 숨을 몰아쉬면서 규봉이가 말했다. 
    “너 담에 뭐가 되고 싶댔냐? 우주비행사?”
    규봉이가 갑자기 물었다.
    “그렇다, 왜?”
    “우주터미널엔 고물 많겠지?”
    “우주터미널이 아니라, 지구 밖 우주는 고물집합소라더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다 우주고물이라니까. 먼지만큼 작은 금속에서부터 수백킬로그램에 달하는 우주선 부품도 많대더라.”
    “난 이담에 고물상 할란다. 우주고물상. 우주쓰레기 주워다 팔면 엄청 괜찮겠더라. 죄다 고급 금속이래잖냐.”
    난데없는 우주고물상 얘기였지만 나는 시큰둥 대답했다.
    “그러시든지. 하여튼,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거냐? 참고로, 나 돈 없다. 돈이 없을 뿐 아니라 너한테 이만원 빚까지 있는 신세다.”
    규봉이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난 빚쟁이네. 신난다. 그런 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 아빠 사업 망했을 때 빚쟁이들이 집으로 몰려온 적이 있었는데, 어릴 때였지만 기분이 정말 더럽고 이상하더라고. 당하는 사람 기분 같은 거 그 사람들도 느껴보게 해주고 싶었어.”
    한숨을 내쉬며 내가 말했다.
    “빚쟁이 원망할 것 없어. 입장 바뀌면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어?”
    친구란 자식의 꿈이 고작 빚쟁이에 고물장수라니,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이고 절망이고 매달려 있을 틈이 없었다. 당장 축난 돈부터 어떻게 해야겠는데, 규봉이는 천하태평이었다.
    “좀전에 그 할머니랑 너랑 다투는 거 보면서 생각한 건데 말야. 우리 지금부터 메롱할아버지 돌아오실 때까지 고물 팔러 오는 사람한테 달라는대로 주기 하자.”
    “이만원 주셨는데 벌써 만원을 썼다. 고작 만원으로 뭘 어쩌겠다고.”
    “나한테 비상금 약간 있거든. 넌 없냐?”
    나는 머리를 저었다. 할아버지와 살게 되고부터 만원 이상 가져본 적이 없었다. 용돈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그것도 엄청 잔소리를 덤으로 얹어서 받아야 했고, 삼촌이나 이모, 매형이나 할머니처럼 몰래 쥐어주는 사람도 없는 처지였다.
    “네가 비상금을 투자하든 말든, 그것까지 난 책임 못 져.”
    “좋아. 그럼 작업은 상규 네가 해라. 오케이?”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몰라서 나는 대충 대답해버렸다. 규봉이가 의자에 앉아 헛기침을 했다.
    “이제부터 나는 메롱공화국 대통령이다. 총리는 명령에 따르기 바란다.”
    눈을 흘겨주고 나는 구석을 찾아가서 앉았다. 폰을 열어 게임을 시작했다. 규봉이가 무슨 궁리를 하든 할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만 그럭저럭 버틸 작정이었다. 설마 만원 이상 지출해야 할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4.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폐지와 빈병을 가득 실은 수레가 공화국에 도착했다. 다리를 저는 사십대 남자였다. 값을 잘 쳐준다 해서 집에 쌓아뒀던 걸 가져왔다고 했다. 규봉이 자식이 뱉은 말을 곱추 할머니가 그 사이에 퍼뜨린 걸까?   
    폐지를 저울에 달고, 빈병을 종류별로 나눠 값을 매기자 이천원이 나갔다. 다리를 저는 남자는 아무 말도 않고 이천원을 받아갔다. 빈병을 모아 온 할아버지가 있었고, 책 한 보따리를 들고 온 깔끔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있었다. 종류대로 가격을 매겨 정확하게 셈을 치렀는데도 남은 만원이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규봉이는 폰을 끼고 앉아 메롱공화국의 상태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다. 나는 그만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께는 만원어치 고물을 사고, 만원은 규봉이랑 이것저것 군것질을 했다고 대충 둘러댈 계획을 세웠다. 엄청난 구두쇠일 뿐만 아니라 돈계산에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할아버지니까 내가 사들인 고물이 이만원어치가 되는지 안되는지는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군것질했다면 장난 아니게 야단을 맞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돈 떨어졌으니 문 닫아야겠다.”
    나는 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규봉이에게 소리쳤다. 규봉이가 폰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서 지그시 쳐다보았다.
    “돈 다 나갔다고? 그럼 이제부터 진짜 내 공화국이네.”
    규봉이는 두 팔을 들고 헐헐 웃더니, 곧 폴짝폴짝 뛰었다. 뭐가 좋은지, 만세라도 부를 기세였다. 미친 걸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나는 규봉이가 앉았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허리가 직각으로 팍 꺾인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왔다. 유모차에는 조각조각 잘린 종이가 담긴 비닐봉지가 실려 있었다.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분량이었다. 규봉이가 유모차 할머니에게 말했다.
    “아유, 할머니. 고물 가져오셨네요. 그래, 얼마 받으실래요?”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유모차 할머니가 귀에다 손나발을 했다. 규봉이가 한층 더 큰소리로 말했다.
    “얼마가 필요하냐구요!”
    비로소 알아들은 듯, 유모차 할머니가 축 처진 눈꺼풀 속에 가늘게 감춰진 눈을 깜빡거리면서 말했다.
    “천원만 줘. 우유 사 먹게.”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할머니였다. 폐지 중에서도 파지는 제일 쌌다. 유모차가 넘치도록 가져와도 천원어치가 될까 말까인데 한 주먹이나 되는 걸 가지고 와서 다짜고짜 천원을 달라니. 냉정해지려고 애쓰면서 나는 규봉이를 쳐다보았다. 규봉이가 이천원을 쥐어주면서 할머니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이천원 있어요, 할머니. 우유 두 개 사 드세요.”
    투자하네 어쩌네 하더니 규봉이 자식, 결국 구두쇠 메롱할아버지를 엿먹일 심산이었던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돌아가는 할머니 등에 대고 깎듯이 인사까지 하는 규봉이에게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너 그만 가라. 이만원 빚진 거, 두 달 안으로 갚을게.”
    규봉이가 데면데면하게 말했다.
    “내가 왜 가? 가고 싶으면 네가 가.”
    “그걸 말이라고 하냐?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이런 식으로 하자고 했잖아, 내가. 너도 동의한 줄 알았는데?”
    “내가 언제? 너 혼자 멋대로 지껄였잖아. 남의 사업 말아먹지 말고 그냥 꺼지는 게 좋겠다.”
    규봉이가 할아버지처럼 낼름 혀를 내밀어서 메롱하며 말했다.
    “싫다면?”
    참을 수 없어서 나는 눈에 보이는 알미늄 막대를 집어들었다. 강제로라도 쫓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규봉이 상대가 못됐다. 규봉이는 훌쩍, 날렵하게 몸을 날려 막대를 피했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쳐서 막대 날리기를 포기했고, 규봉이는 다시 혀를 내밀며 메롱을 했다. 정말 약오르고 화가 났다.
    할아버지 메롱은 땀을 닦느라 시작됐다고 들었다. 일을 하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틈이 없어서 혀로 땀을 핥아먹었는데, 그게 완고한 행동이 돼버렸다고. 할아버지의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메롱을 규봉이가 함부로 흉내내는 건 할아버지를 틱 장애가 있는 어벙이 정도로 여긴다는 얘기였다.
    머릿속에서 또 삐꺽 소리가 난다 싶을 때 통조림 깡통 세 개를 든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규봉이는 친절하게 맞이하고서, 할아버지가 달라는대로 천원을 주었다. 깡통 세 개에 천원이라니,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규봉이 자식, 메롱할아버지가 고물을 팔러 오는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군다는 욕을 자기식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잔뜩 배려심 있는 태도를 취하고서 어른스런 척하다니 아니꼬웠다. 차라리 메롱할아버지 구두쇠, 자린고비라고 한 마디 하고 말 것이지, 이렇게 더러운 경우가 있나 싶었다.
    규봉이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는 잠깐 긍정적으로 할아버지를 생각해 봤다. 할아버지로 말하자면 세상에 고물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일제시대 말기에 태어났고, 야학에서  한글과 숫자셈을 익힌 할아버지는 농사 짓는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도시로 와서 넝마주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 일을 평생 해오는 동안 할아버지는 한 번도 말끔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함부로 돈을 쓴 적도 없었지만, 당신 스스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행색은 남루해도 빚을 진 일도 남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으니 그만하면 잘 살아낸 셈이라면서 말이다. 
    나는 삐꺽 소리를 내는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고물상을 하는 구두쇠지만 내게는 하나뿐인 할아버지였다. 제발 헌옷 좀 입지 말라고 엄마가 사정하고 호소해도 할아버지는 고물상에 들어오는 헌옷을 골라 입었다. 신발뿐만 아니라 양말까지 헌것 중에서 골라 신은 탓에, 할아버지 차림새는 항상 너절하기 짝이 없었다.
    훌륭한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걸 대략 알게 된 지금까지 고물장수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 적은 물론 한 번도 없었다. 때로는 밉고 때로는 한심했다. 그렇지만 최소한 나는 할아버지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존경할 수는 없지만 존중해야 할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였으니까.
    삐꺽 소리가 나는 의자를 흔들면서 나는 숨을 골랐다. 삐꺽 삐꺽 의자의 신음소리가 엉망이 된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제 규봉이랑은 끝난 것이다. 규봉이가 없다면 세상에 친구는 하나도 없게 되지만, 결심을 해야 했다. 나는 폰을 꺼내 할아버지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규봉이가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할아버지. 고물상에 도둑이 들었어요! 빨리 좀 오세요!”

    5.
    할아버지는 사십 분이나 지난 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타났다. 흐르는 땀을 혀로 닦느라 열심히 메롱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보기 딱해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사이에 규봉이는 제 비상금 이만원을 써버린 상태였다.
    “고물상에 도둑 들었단 소리, 평생에 처음이다.”
    할아버지는 내게서 의자를 빼앗아 앉더니 메롱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할아버지처럼 낡은 의자가 삐꺽 소리를 냈다. 나는 할아버지의 빈손을 쳐다보았다. 길을 가다가 쓸만한 게 있으면 박카스 병 하나라도 집어오는 할아버지였는데, 빈손이라니, 허겁지겁 달려온 게 분명했다.
    “그래 뭘 가져갔냐?”
    잠시 숨을 고른 할아버지가 물었다. 우물쭈물하고 있자니까 규봉이가 냉큼 대답했다.
    “도둑 안 들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상규 저 자식 괜히 그래요.”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계속 우물쭈물하다간 규봉이에게 당할 것 같아서 나는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내게 부탁한 시간은 네 시간, 그 중에서 세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규봉이가 한 짓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일러바쳤다. 이러다간 나쁜 소문이 돌아서 고물상이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내 말을 다 들은 할아버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로 성큼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뺨을 갈겼다. 얼마나 세게 갈겼는지 몸이 휘청했고, 눈앞에서 별이 왔다갔다했다. 나는 확확 달아오르는 뺨에 손을 대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허겁지겁 올 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할아버지 혀가 쉴새없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번쩍, 뺨에 불이 일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쪼글쪼글하고 검게 탄 얼굴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도 나를 노려보았다. 규봉이가 겁먹은 얼굴로 나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두 손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왜 때려요? 뭘 잘못했다고 때려요?”
    씨이에서 시작해 연발로 욕이 터지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말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냐, 아직도? 고등학교씩이나 다닌다는 놈이 그렇게 세상의 안과 밖을 몰라? 규봉이보다 못한 놈.”
    이런 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고물상을 멋대로 운영한 건 규봉이지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규봉이를 칭찬하고 나를 혼내다니. 머릿속에서 의자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삐꺽 삐꺽. 고물 의자 같으니라고. 내 머릿속에 고물 의자를 남겨 놓고 할아버지는 다시 가버렸다.  
    한참동안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규봉이는 내 주위를 맴돌면서 시나브로 메롱이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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