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궁리(窮理) <24> 22장. 북문으로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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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24> 22장. 북문으로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종의 꿈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천상열차 분야지도. 사진=국립극단(촬영 심철민)


    - "영실아 ~~, 이놈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 "전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옵니다"

    - 꿈에서 영실은 돌반석에 앉아 있다
    - 그의 검지 손가락이 허공을 찌르자
    - 밤하늘에 별이 돋고 제례악이 울리고…

    - 영실은 밝은 별자리 한가운데 앉은 채
    - 팔을 들어 부드럽게 별들을 운행하고
    - 북극성이  커지면서 어깨 위에 걸렸다

    - 나는 그제서야 꿈에서 화들짝 깨어난다
    - 문밖에서 통곡이 밴 목소리가 전해진다

    덜컥거리는 충격에 잠을 깨었는데 나는 작은 수레에 실려 가고 있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내 몸 위에 피 묻은 거적때기가 덮여 있다. 나는 몸을 조금 일으키려고 하는데, 뜨끔, 옆구리에 쇠붙이가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악, 비명을 지른다. 그제서야 수레가 멈춘다. 수레꾼이 몸을 돌리는데, 어허, 의금부 백호사령이다.

    나는 그만 반가워서 어허, 어허어 낮은 신음만 뱉어낸다.

    "내가 뭐랬소, 당신은 살아남을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당신은 찾아온 연고자가 없어서 닷새 동안 의금부 옥사에 방치해 놔뒀는데 그래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서 처치 곤란했소. 마침, 밤에 찾아온 이천 장군인가 하는 양반 생각이 나서 물어 물어 연락을 했더니, 그 양반 벼슬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하대. 허 참, 이거 어떡하지, 그래도 산목숨인데 내버려 둘 수는 없고 해서 의금부 도사에게 상의를 드렸더니, 그냥 성 밖에 내다 버리라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수레를 끌고 당신을 내다 버리러 가고 있소."

    수레가 종루 근처를 지나는지 종소리가 들린다. 열두 개의 목각 인형이 춤추는 시간이다. 나는 불현듯 그 인형들이 보고 싶어 눈길을 돌린다.

    "종루를 보고 싶소?"

    나는 절박한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바로 여기요."

    하면서 수레를 길가에 밀어붙인다.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내가 만든 자격궁루를 올려다본다. 세운 지 7, 8년이 지나 먼지가 쌓이고 단청 색깔이 조금 벗겨졌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맙소사!

    종루 바로 앞 모서리에 측우기가 세워져 있다. 내 눈길이 닿자 백호사령의 눈길도 따른다.

    "어렵소, 이거 그 사이 벌써 세웠네, 똑같애." 

    그러면서 주위를 신기한 듯 둘러보고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되돌아온다.

    "자, 이제 갑시다."

    나는 황급히 허우적이며 측우기 쪽으로 팔을 뻗는다.

    "당신이 만든 게 아니오. 명나라 황제가 만들어서 하사한 물건이래요. 그렇게 씌어 있소."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진다. 백호사령이 안쓰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실성했소?"

    백호사령이 근심스런 눈길로 나를 쳐다 본다.

    내 몸 속 어디서 웃음보가 터지는지 실없는 웃음이 꾸여꾸역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백호사령도 어이가 없는지 따라 웃는다. 내 웃음보는 계속 터진다. 백호사령이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한다.

    "갑시다. 성 밖 아무 데나 내다 버리라고 했으니 오랜만에 부산포 앞바다까지 갔다 올까나…. 부산 앞 바다 아무 데나 내려놓고 가랬지요?"

    "가자 가자아-"

    나는 몸을 흔들면서 소리친다.

    "저기 저…. 북문으로! 북문으로!"

    "북문? 거기는 대역죄인들을 참수하는 곳이오. 거기 왜 가자는 거요?"

    "저기 저 내 별이…."

    "북한산이라도 오르겠다는 것이오? 거기 못 올라, 호랑이도 있다는데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나는 강하게 손사래를 쳐대며 헛소리를 내뱉는다.

    "내 별이…. 저기 저 산등성이…. 가자 가자 가자 가자아-"

    당직사령이 산등성이 걸린 별을 보고, 다시 피투성이의 내 모습을 내려보다가 천천히 수레를 끌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래 가자, 북문 가자…."



    23장. 세종의 꿈

    (기록이 없으므로 연대 미상, 그래서 지금까지 미상…)


    등창이 번져서 그 통증이 내 잠까지 깨웠는가 보다 속적삼이 고름으로 흥건하게 젖어서 등에 달라 붙어 미끌거린다. 나는 그만 부아가 나서 방문을 박차고 나가 영실을 불렀다.

    "영실아아-"

    나는 왼쪽 발을 절룩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영실을 다시 부른다.

    "영실이 이놈, 도대체 어디 갔는고!"



    당직 내시 둘이 총총걸음 달려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다. 나는 문득 여름 하늘 별자리를 멍하니 올려다본다. 내 왼쪽 눈은 감겼고, 이제 오른 눈까지 진물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별자리들이 낡은 천상열차분야지도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대호군 장영실을 말씀하신다면…."

    "그래, 그 놈이 대체 어디 갔단 말이냐?"

    "불경죄로 매를 맞고 성 밖으로 내쳐졌습니다."

    "…언제?"

    "오래전에…."

    "오래전에? 그럴 리가…."

    "이미 오래전입니다,  전하."

    "어서 자리에 드십시오."

    "이천은 어디 있느냐?"

    "그저께 한강에서 수군들의 함포 사격 훈련을 지휘하셨으니까 서울 집에 있을 것입니다."

    "이천에게 일러서 장영실을 찾아오라고 일러라."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잠 속에서 영실아- 부르는 이천 장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이 어디인지 처음 보는 낯선 곳인데, 기암괴석들로 사방이 둘러쳐져 있어서 저렇게 험준한 산세라면 우리 조선이 아니고, 혹시 지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천 장군이 유황불을 쳐들고 군사들과 함께 험준한 기암괴석 사이를 뚫고 들어선다. 칠흙 같은 밤이라 동굴 속인지 산 계곡인지 알 수가 없다. 어둠 속을 밟고 전진하는 이천 장군 일행의 유황불이 마침내 고인돌 같이 솟아오른 돌 반석을 발견한다.

    그 돌반석 위에 영실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천 장군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성급히 영실이 쪽으로 다가 가려는데, 밟히는 돌마다 댕대앵-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맑고 고운 편경 소리다. 동굴 속 자체가 거대한 편경이 되어 울리는 것이다.

    "영실아, 어서 돌아 가자."

    이천 장군은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영실은 별스러운 반응이 없다.

    "이놈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그제서야 영실이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여기서는 객을 사절합니다."

    이천 장군이 화가 나서 빽 소리를 지른다.

    "객이 아니다. 주군이 너를 부르신단 말이다!"

    "내 주군은 저기 있소!"

    그러면서 영실의 검지 손가락이 허공을 찌르는데,

    어둔 밤 하늘에 희미하게 별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선율이 일어난다. 멀리서 나팔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현이 따라 붙으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제례악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  음악은 고운 선율로 조화를 이룬 숭고함이 깃들었고, 무거운 거문고의 탄주가 그렇게 높이 천상으로 타고 올라가는 것을 처음 들었다. 음악이 일어나면서 별들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여름 하늘 별자리 전체가 천천히 큰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대이동을 하고, 그 별들의 소용돌이가 점점 빨라지면서 여름 하늘을 눈부시게 밝혔다.


    영실이는 여름 하늘 밝은 별자리 한가운데 앉은 채 두 팔을 들어 부드럽게 별들의 운행을 이끌고 있다. 작은 별 하나가 점점 밝은 빛을 내며 은하 적도를 타고 오르고, 백조는 날고 견우 직녀는 무지개를 넘는다.

    드디어 영실이도 어깨춤을 춘다.

    북극성이 거대한 별 쟁반처럼 커지면서 영실의 어깨 위에 비스듬히 걸렸다.

    나는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 조용히 일어나 앉는다. 문 밖에서 이천 장군의 말 소리가 들려 왔다. 급하게 달려온 듯 거칠고 숨찬 이천의 말 속에 참을 수 없는 통곡이 배어 나왔다.

    "영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연재 끝-


    ※ 다음 주(12일)엔 이윤택 작가(연출가)의 '부산인물 스토리텔링-궁리' 집필 후기가 게재됩니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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