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궁리(窮理)<23> 20장. 별이 되리라
  • 궁리(窮理)

    <23> 20장. 별이 되리라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저녁 무렵 매질이 시작됐다
    -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뜬다
    - 아! 저건 분명 나의 별이다

    등짝이 마구 뜯겨나가는 듯한 통증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앙다문다.
    내 별은 천천히 하늘 중심으로 이동한 뒤 꼬리서 환한 빛을 발하며 자취를 감추고 난 내 별과 함께 서서히 의식을 잃어간다.




    태형 80대를 받아내면서 비로소 자신의 별자리를 확인하는 장영실. 사진=국립극단(촬영 심철민)




    의금부 마당에서 최효문의 비명 소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임효돈은 곤장을 맞기도 전에 반쯤 넋을 잃었다. 그냥 서서 부들부들 떨면서 으흐흐흐~ 병든 신음소리만 낸다. 밖에서는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최효문의 까마귀 울음, 안에서는 병든 곰의 넋 잃은 신음소리로 을씨년스럽다. 나는 계속 심호흡을 하며 차례를 기다린다.

    "괜찮아요, 곤장 60대 맞고 안 죽어요."

    그동안 같이 지냈던 의금부 옥사 백호사령이 임효돈을 달랜다.

    "곤장 맞을 때 딴 생각 말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시오. 무슨 생각을 하시려오."

    "집에 가고 싶소. 집에 가서 새 집 짓고 살고 싶소."

    임효돈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그래요, 곤장 한 대 맞을 때마다 기둥 하나씩 올리고 서까래 얹고 회벽 바르고 기와장 올리고 그러다 보면 끝나요. 알것소? 밖에 가족은 와 있소?"

    "지금 고향에서 다 올라와 있소."

    "그럼 됐소.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해요. 자 가시오."



    임효돈이 마당으로 끌려 나가자 백호사령이 뒤따라 나간다.

    옥사에는 이제 나와 조순생만 남았다.

    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자 쪼그리고 앉았던 조순생이 올려다보며 계면쩍은 미소를 보내준다.

    "미안허요. 당신이 받을 특권을 내가 가로챈 것 같소."

    "이제 그런 거는 나한테 아무런 소용이 없소."

    "다시 태어나면 공신의 후손으로 태어나시오."

    "다시 태어나도 인간으로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오. 나는 별이 되고 싶소."

    "내 옷 속에 그린 도면은 누구에게 전해 줄까요?"

    "누구면 어떻소.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 주시오."




    곤장 80대를 맞는 최효문.



    바깥에 나갔던 백호사령이 희색이 만면하여 들어온다

    "살았소, 최효문이 살았소. 곤장 60대면 어지간하면 골로 가는데…."

    하다가 내 눈치를 본다.

    "걱정 마시오. 대호군은 80대를 맞지만 회초리요. 회초리 맞고는 안 죽어요."

    "죽어도 상관없소."

    "죽기는 왜 죽어요. 내 말대로 숨을 끊었다가 풀었다가 반복하시오. 자 해 보시오, 맞을 때는 흡!"

    "흡!"

    "맞고 나며는 바로 하-"

    "하-"

    "그렇소. 그렇게 하는 거요. 맞으면서 한 가지만 집중하시오."

    "알았소."

    "가족은 와 있소?"

    "없소."

    "가족이 없소?"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오."

    "갈 곳은 있소?"

    "…다 잃어 버렸소…. 그냥 죽은 목숨이건 살아 있건 부산 앞바다에 가져다 버리시오."

    "거기 누가 있소?"

    "누군가 날 알아보는 친구가 있으려나 모르것네."

    "자, 시간 됐소. 나갑시다."

    "왜 임효돈의 비명소리가 툭, 끊어졌소?"

    "그 사람은 매를 견딜 몸이 아니었소. 자 나갑시다. 마음 모질게 먹으시오."



    벌써 저녁답이 되어 의금부 마당은 황혼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낭자한 피와 찢어진 살은 황혼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매를 맞는데 구경꾼은 왜 그렇게 많은지. 관리들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구경꾼들은 숨을 죽이며 자신들의 궂은 욕망을 숨긴다.

    그래, 나는 이제 어차피 물건이다. 정신을 잃어버리고 나면 인간도 결국 빈 껍데기 물건일 뿐이다. 궁을 향해 절을 하라기에 주군이 계신 곳을 향하여 절을 올리는데, 그렇게 그립던 주군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는 이 세상 모든 시야가 검게 보인다.

    양팔이 형틀에 묶이고 팔자 걸음으로 섰는데, 매질이 시작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통증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인가? 하기야 시체에 매질을 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 서 있는데 내 맞은편 산등성이 위로 작은 별이 하나 희미하게 나타난다. 아, 그렇지, 저건 엊그제 내가 발견한 나의 별이다. 나는 그 외롭게 떠오른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별이 점점 분명한 색으로 두드러지면서 비로소 통증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읍, 하- 읍, 하-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부릅뜬다. 별을 보기 위해서다. 별은 점점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높이 가로질러 오른다. 통증은 참기 힘들 정도로 강해져서 내 등짝이 다 뜯겨나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이를 앙다물면서 하늘을 본다. 밤하늘에 희미하게 별이 돋기 시작한다. 나는 별을 보기 위해 뒤로 벌렁 누워 버린다.

    나장이 내 몸 위로 물을 끼얹었고, 한동안의 휴식이 왔다. 그 짧은 휴식에도 별은 쉬지 않고 돋아나기 시작하고, 내 별은 하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내 별이 흐르면서 은하계는 점점 밝아진다. 다시 내 손목을 묶은 밧줄이 도르래를 타고 위로 끌어 올려지고, 매는 이제 내 허리와 엉덩이 쪽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맞을 때마다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데 밧줄이 내 몸을 고정시키고 있어서 꼭 그네 타는 기분이 된다. 나는 그네를 타고 5월의 밤하늘 별 구경을 하고 있다.



    내 별이 저기 나를 인도하고 있길래 나는 아직 살아 있을 수 있다. 통증이 더해질수록 별은 더욱 밝아지고 비로소 내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화염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문득 내려다보니까 바지 가랑이가 피범벅이 되어 있다.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가 내 아랫도리부터 찔러 들어온다. 통증이 창자를 헤젓고 명치께를 쑤시고 가슴팍 뼈 마디마디를 부러뜨리면서 밤하늘은 불탄다.








    별들이 온통 붉게 물들면서 내 외로운 작은 별이 은하적도를 타고 살같이 비상한다. 북극성 큰 별 위를 스쳐 지나 망망대해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나는 멀리 꼬리에서 빛을 발산하며 사라지는 내 별을 보면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간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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