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9> 17장. 지금까지 우리는 왜 조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 했는가
  •  궁리(窮理)

    <19> 17장. 지금까지 우리는 왜 조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 했는가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행궁 서까래가 무너져서 신하들과 동행한 신빈이 불안에 떨었다. 나(세종) 또한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하여 서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사진=국립극단(촬영 심철민)







    - 행궁 서까래가 무너졌다 만일 저기 서 있었더라면…

    이제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북경 황실의 내정간섭을 벗어나
    새로운 조선의 하늘을 펼치겠다

    무지렁뱅이 천재 장영실 등과 함께
    잔인한 시기를 가로질러야 한다
    나는 다시 생기를 찾고 힘을 얻었다


    (1442 임술 세종 24년 4월 1일)

    이천 온천 행궁의 감독에 소홀했던 박강 이순로 이하 등을 추국하라 전지하다

     

    며칠 동안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구름이 끼어서 노천 밝은 햇빛 아래 목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온천이 흘러 들어와 고이는 바위 사이 웅덩이에 지붕을 대고 벽을 막아 실내탕을 만들었다. 좁고 어두운 그곳에 쪼그려 앉아 있으려니 영 임금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천 온천물이 효능이 있어서 퉁퉁 붓고 진물이 나던 눈의 붓기가 사라지고 벌겋게 충혈되었던 안구도 많이 맑아졌다. 무엇보다 온 몸에 번지던 가려움증과 붉은 반점이 상당히 사그러 들었다.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중궁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합궁에 성공했다. 중궁의 나이도 나보다 두 살 위라서 이제 쉰을 바라보는데 그렇게 피부가 곱고 탱탱할 수가 없다. 내가 합궁에 성공하자 이 양반이! 하고 쳐다보는 중궁의 표정이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아침에 오줌을 누는데 오줌 줄기가 맑고 어느 정도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이제 바지춤에 오줌을 흘려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지를 갈아 입지 않아도 될 모양인가.

    오늘 아침은 간만에 해가 나와서 대청마루를 지나 담장으로 내려서는데 행궁 서까래 한쪽이 무너져 내리면서 흙더미가 와르르 쏟아졌다. 뒤돌아보니 등골이 서늘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내가 만일 저기 서 있었더라면….

     

         
    행궁 관리자 박강 이하 이순로 등을 의정부로 송치하여 불경죄로 다스리기로 했다.

     


    행궁 관리자 박강 이하 이순로 등을 의정부로 송치하여 불경죄로 다스리기로 했다.
    행궁은 졸지에 난리가 났다. 김종서 대감이 흰 도포 차림으로 달려나와 행궁 관리자들을 모조리 잡아 들여라 고함을 치고, 대호군 박강 이하 이순로 사알 등 행궁 관리들이 모조리 불려 나와 무릎을 꿇었다. 자세히 보니 박강은 개국공신의 집안이다. 일단 이들을 의금부로 송치하라고 일렀다. 어차피 이제 나도 서울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내가 이천에 온 것은 세상의 이목으로부터 나를 비우기 위해서였다. 올해 5월 단오를 기해서 내가 전격적으로 시행할 새로운 시책은 의정부 육조와 별개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그 책임자는 예문관 대제학 정인지다. 한때 나와 같이 일했던 변방의 과학자들, 이천 김담 이순지 장영실이 다시 모이고 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조선의 하늘을 펼쳐 보일 것이고, 조선의 바람과 비와 구름을 관장할 것이다. 진정한 제왕은 우주 자연의 순행을 알고 그 순리에 따르는 자다.

    근래 들어 북경 황실에서 집요하게 간섭하려 든다. 간특한 사신 오양이 장기간 체류하면서 왼갖 간섭을 다 하고 왼갖 것을 다 요구해도 다 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오양도 사람인지라 이제 좀 친해지려나 했는데 명나라 조정에서 송환령이 떨어졌다. 그 대신 이제는 계속 사람을 북경으로 불러들인다. 이조는 지금 불려 다닌다고 정신이 없다. 왜 이조를 불러들여 닦달을 하는가. 이는 곧 나에 대한 지시이며 내정 간섭이 분명한 것이다.

    만주 일대와 함경도에 걸쳐 살고 있는 야인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박멸을 해 버리겠다는 것이 명의 입장인 것 같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와 살고 있던 북방야인들은 이제 스스로 국경을 넘어 가고 있다.

     

    (1442 임술 세종 24년 4월 2일)

    함길도 도절제사 이세형이 치계하기를,

    "잔류하여 살던 오도리 외 야인 15명이 지금 국경을 너머 도주하려는 형적이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임금께서 야인들에게 정성껏 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명에서는 이들을 다 쫓아내라고 닦달을 하니, 이들이 자진 도주하려는 것입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가거나 말거나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되어 치계를 올리는 것입니다…."

    나는 황보인을 시켜 이렇게 전계를 보낸다.

    "도망가려는 자를 강제로 붙잡아 돌아오게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뿐더러, 도리어 훗날 폐해가 될지 모른다. 그냥 모르는 척만 같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회령 땅으로 옮겨 와 농사짓고 있는 동오사합 동인두 권적 아하다 등 야인들에게는 종자와 양식을 주고 안심케 하라. 그러나 말 많고 간특한 동망내와 이시가는 국경을 넘어가 무슨 말로 우리 조정을 곤란케 할지 모르므로 돌려보내지 말고 붙들어 두어라."

    명 조정의 의심은 북방 야인들에게만 가 닿지 않는다. 내가 지역 변방 출신의 천민출신 기술자나 무장들과 어울리는 것을 끔찍이 경계한다. 유교 논리의 궤를 벗어나는 승려들과 어울리는 것도 언간들의 세치 혀를 통해 계속 씹어 댄다. 사헌부는 이미 중국의 명을 충실하게 따르기로 작정한 듯하다. 허기야 그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대중국의 우산 아래 서는 게 조선 사직을 위해 안전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희망이 없다. 스스로 속국으로 살면서 안전을 유지하려는 논리는 소극적인 현실추수주의에 다름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소극적인 그런 논리가 대내적으로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기운을 억압하는 칼날로 작용하는 게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나는 남방 왜구나 북방 야인들과 힘을 모아 대중국을 밀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나의 국가를 창의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싶을 따름이다. 왜 나의 그런 뜻을 못미더워 하는 것인가. 중국이 북경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배치하듯, 조선은 서울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래야 국가가 성립된다. 중국의 시간과 조선의 시간이 다른 것은 과학적으로 엄연한 진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조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 했는가. 장영실은 자격루와 옥루를 만들어 내면서 명나라에서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명나라의 물시계와 자격루는 엄연히 다르다. 더욱 장영실이 만든 옥루는 중국에도 없는 천문시계다. 자기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조선이 가지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떤 심보인가. 이번 5월 단오절에 조선 팔도에 측우기를 세우게 되면 아마 명 조정은 난리가 날 것이다. 자기네들이 가지지 못한 과학기술을 조선이 가진다는 것을 생각하기 싫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있지도 않은 측우기를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겨댄다는 것이다. 지난해 측우기 도면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도면은 누군가를 통해 중국 당국에 유출되었다. 그리고는 적반하장으로 이런 도면을 누가 명에서 훔쳐갔는가 출처를 밝히라는 전문이 왔다. 측우기는 누가 만들어도 중국 것이다!는 결론을 먼저 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 도면은 미완성이다. 그 도면으로는 아무리 만들어도 비를 다스릴 수 없다. 영실이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만 의금부에 붙들려 있다. 참으로 속 좁고 무지한 놈, 이 무지렁뱅이 천재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 돌아가야 한다. 가는 즉시 이 잔인한 시기를 가로질러야 한다. 나는 다시 생기를 찾고 힘을 얻었다.

     

    (1442 임술/세종 24년 4월 2일)

    황보인과 김종서가 아뢰기를,

    "지금 계신 온천 행궁은 큰 산이 서로 우뚝 서 있고 큰 내가 세차게 흐르고 있으므로, 만약 장마가 있게 되면 수재가 두려우니, 대가가 오래 거주할 곳으로는 적당하지 못합니다. 신등이 매양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처음 와서 땅을 살펴본 사람이 일이 험하다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여 이번 행차를 하게 한 일입니다. 옛말에 '부호의 자식은 마루 가에 앉지 않는다' 고 하였으니, 이것은 보통 사람을 가르쳐서 한 말인데, 하물며 대가로서 어찌 위험한 곳에 오래 거처하겠습니까."

    "지금 대신의 말이 옳다. 13일에 서울로 행차하는 것이 어떠한가?"

    도승지 조서강이 아뢰기를,

    "목욕하신 후에 몸을 조섭한 지가 오래 되지 않았으니, 대가가 마땅히 빨리 돌아갈 수 없겠습니다" 하므로,

    "그러면 16일이 좋을 것이다" 대답해 주었다.

     

    나는 이제 서울로 돌아간다. 부서진 수레는 이미 고쳐 놓았다. 이제 그 수레를 타고 태연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18장. 세 정승의 밀담(상)


        
     
    내가 사전 연락도 없이 의정부에 들어 가 황희를 찾았더니 뜻밖에 대사헌 정갑손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옳다구나 잘 되었다. 화는 여러 갈래로 와도 불은 한꺼번에 끄라고 했겠다.

    "안녕들 하셨소이까?"

    하고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니,

    "아니 숭록대부 조말생 대감이 여기 웬 일이시오?"

    황희가 급히 일어난다.

    "웬일이라니요. 나는 여기 오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소?"

    나는 넉살좋게 털썩 황희의 영상 자리에 앉는다. 대사헌 정갑손이 인상을 찌푸리며 엇험,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린다.

    "어명이요!"

    나는 거두절미하고 엄포를 놓아 버린다.

    "어명이라니요?"

    황희가 엉거주춤 그대로 서 있다. 그제서야 정갑손이 슬그머니 일어서서 허리를 조용히 굽힌다.

    "임금이 타고 가던 안여가 부서졌소."

    "글쎄 그렇잖아도 대사헌과 지금 그 문제를 논의 중이었소."

    "앉으시오. 서로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 황희정승과 나 사이가 서로 딱딱하게 대하는 처지가 아니잖소."

    "하, 그렇고 말고요."

    황희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옆에 앉고,

    "자네도 그리 서 있지 말고 앉으시게."

    나는 정갑손에게 먼저 하대를 해 버린다. 정갑손은 슬그머니 앉으면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입장을 먼저 드러낸다.

    "그 문제는 이미 사헌부에서 결정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결정을 보았는데?"

    "대호군 장영실에게 안여를 만들라 했으니, 형률에 의거하여 곤장 1백도를 치도록 명하고, 선공직장 임효돈과 녹사 최효남도 제조 감독의 실무자이므로 곤장 80도를, 대호군 조순생도 최종 감리 책임자로서 '이 정도면 부서지거나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말했으니 곤장 80도를 쳐야 할 것입니다."

    "어허, 다 죽게 생겼네. 곤장 80도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지. 장영실이는 그렇잖아도 약골인데 확실히 숨이 끊어 지겠군. 무슨 형률에 의거하여 그렇게 곤장형을 결정했나?"

    "불경죄입니다."

    "역모죄라면 어떤 형벌이 내려지나?"

    나는 내친 김에 다그치듯 몰아대고 황희와 정갑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역모죄라니오?"

    황희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왜 대답이 없나! 역모죄는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가 묻고 있지 않는가?"

    나는 집요하게 정갑손에게 묻는다.

    "참수형입니다."

    정갑손은 낮게 대답한다.

    그 순간 차가운 긴장감이 완연하게 드러난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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