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8> 16장. 나는 꿈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 궁리(窮理)

     <18> 16장. 나는 꿈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장영실이 꿈속에서 주군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다








    - 꿈 속에서도 나는 주군에게 매달린다
    - 내시가 되어도 좋으니 곁에 있게 해달라고…

    누군가에 의해 나사가 풀린 수레 바퀴
    임금이 타는 바람에 죄인으로 몰리고
    이제 우리는 운명의 난장에 서게 됐다

    두 명 모두 용서 받게되면 좋으련만
    이 옥안에서 그런 사례는 없었다
    주군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적막강산에 던져졌다. 등에 식은땀이 좌악 흐른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디로 가지?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듭시다, 대호군 어른."

    옥 구석에서 조순생의 나지막한 말소리가 다시 들린다.

    "큰일 났소, 별이 다 사라져 버렸소."

    "좋지 않은 꿈을 꾸신 모양이오."

    "잠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꿈을 꾸오?"

    "그걸 몽유라 하지요."

    "내가 미쳤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소. 무언가를 절실하게 원하면 실제로 나타나 말을 걸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나눌 수 있다고 하오. 대호군은 지금 한참 동안 주군과 밤놀이를 하고 오신 것 같구려."

    "그런 것 같소. 그런데 지금 옷 두루마기에 무얼 그리고 있소?"

    나는 문득 조순생에게 눈길이 닿는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고 주위 사물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대호군이 만든 측우기 도면이오."

    조순생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면서 측우기 도면을 그대로 베끼고 있다.

    "그 도면은 세자가 만든거요."

    나는 의아심을 누르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걸어 본다.

    "내가 보니 정확하지 못 해요. 장영실 대호군이 만든 걸 더듬어 가며 다시 그리고 있소."



    주군의 발길질에 장영실이 꿈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사진= 국립극단(촬영 심철민)





    나는 그제서야 지금까지의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눈치챈다. 대호군 조순생이 수레 바퀴 나사를 풀어 놓은 게 분명하다. 모든 일은 저 작자가 꾸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꾸민 짓이구려."

    "무슨 말이오?"

    조순생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 본다. 무표정한 눈길, 그러나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차갑고 깊은 저 눈길.

    "당신이 안여 수레바퀴 나사를 풀었지요."

    "소설 쓰시오 ? 무슨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의심하고 소문을 내고 무책임하게 주둥이를 나불댑니다. 그러나 사실 아무런 일도 아니었소. 그냥 우연하게 가벼운 사고가 난 것뿐입니다."

    조순생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꼬리를 감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고초를 겪고 있는 거요?"

    "운명의 장난이지요."

    "운명이 장난질을 칩니까?"

    "그렇게 된 것 같소. 우연하게 일어난 사고일 수 있는데 임금이 타는 바람에 대역죄인으로 몰리고, 이제 우리는 운명의 난장에 서게 될 것 같소."

    "무슨 말이오?"

    "우리 둘 중 하나는 살아남을 것이오."

    "어떻게 아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세상 신경 쓰지 않으려고 바둑을 두는데, 바둑을 두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휜히 다 보인단 말씀이오, 허허 내 참…."

    "바둑판이 곧 세상이니까."

    "그렇소."

    "누가 살아 나갈 것 같소?"

    "글쎄, 임금에게는 특권이 있소. '죄는 밉지만 벌하지 않는다'. 임금이 딱 이 말 한마디만 하면 그 어떤 반론도 통하지 않게 되어 있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일단 명치 끝에 잠겼던 숨이 탁, 풀렸다. 안도의 한숨이 깊게 흘러 나오면서 맥이 풀린다. 조금 전에 꿈인 듯 실제인 듯 주군이 나타나셨지 않은가. 주군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우리 둘 다 용서를 받으면 좋겠구려."

    나는 위로의 말을 건성으로 내뱉고 돌아눕는다.

    "둘을 용서한 사례는 없소. 단 한 사람이오."

    새벽이 훤하니 동터 오고 있다. 나는 새벽잠을 청한다. 밤새 꿈길을 헤먀 다녀서 눈꺼풀이 무겁게 덮이기 시작한다.

    "장영실 대호군 같은 인재가 살아 나가야 하지 않겠소. 주군이 당신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오. 이 도면은 만일을 대비해서 내 품에 넣어 두겠소. 만일 내가 살아나간다면, 이 세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하겠소."

    "고맙구려."

    잠이 들려는 순간 서쪽 하늘 산등성이 조금 위 새벽 하늘 언저리에서 낮은 별 하나가 희미하게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저게 나의 별인가? 저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아, 그리고 저기 주군이 검정 곤룡포를 입고 근정전으로 나오신다. 나는 그만 설움에 겨워 눈물을 왈칵 쏟는다.

    "주군, 제가 하늘의 별자리를 모두 주군이 계시는 경복궁 기와장 위로 옮겨 놓았습니다. 저기 북방칠수 남방칠수 동방칠수 동서남북 사칠 이십팔수가 걸려 있고, 모든 별의 중심에 북극성이 놓였습니다. 북극성은 자미원이라 해서 황제의 별이라서 보통 사람은 건드릴 수 없는 건데, 그걸 제가 다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군."

    "그래 고맙다. 네가 나를 위해 별자리를 바꾸었구나."

    "이제 우리의 시간도 잴 수 있습니다. 이순지가 다음해 일식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오차 없이 정확하게 계산해 놓았습니다. 이제 제가 만든 물시계로 조선의 시간을 잴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 네가 시간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 측우기를 완성하면 주군께서는 놀랍게도 비와 바람과 물을 다스리는 조선의 치우천왕이 되십니다. 아니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신 국조 단군이 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 네가 만든 것이 다 제왕학이고 천자학이다. 그러나 사실 네가 만든 것들은 일반 백성들은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아니, 그건 세상을 다스리는 주군 외에는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란다. 그러니 이제 너도 일상 생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라. 내가 너를 채방별감으로 내려보낸 것도 구리 캐고 광산 개발하면서 일상 생활에 필요한 일을 하라는 뜻이었다."

    "저는 사실 구리를 캐고 철을 다스릴 줄 모릅니다. 제가 배운 것은 천체의 운과 그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읽어내는 천문 기구를 만드는 일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자만이 천문역법의 운행을 읽어낸다. 네가 나를 위해 일을 하다 보니, 하늘의 이치를 훔쳐 보고 말았으니 네 주제를 넘어선 것이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주제 넘은 생각을 하겠습니까? 주군이 원하시니까 한 것입니다. 저는 주군이 원하시는 그 어떤 것도 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숨) 그래,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이제 너를 위한 일을 하거라."

    "저를 위한 일이라굽쇼? 저는 제가 없습니다. 제 속에는 주군만이 있습니다. 저는 오로지 주군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제가 없는 인생을 살아 왔는데 지금에 와서 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라십니까?"

    "흠…. 박연이 조선의 선율을 만들고 있으니 거기 가서 조선의 악기를 만들어 보려무나. 네가 만든 편경이 그리 고운 소리를 낼 줄 누구도 몰랐지 않느냐?"

    "저는 원래 음치라서 제가 아무리 고운 악기를 만든다 하더라도 제가 만든 악기의 소리를 들을 줄 모릅니다. 주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내려 주십시오."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타고 다닐 수레를 만들어라. 그게 네 주제에 맞는 일이 될 것이다."

    "…. 수레는 춘추전국시대에도 바퀴가 서른여섯 개나 되는 걸 만들었습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수레바퀴 숫자까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공들이 철을 녹여서 둥근 쇳덩어리를 만드는 건데 지금 조선의 제련술이 떨어진 것도 아니라서 굳이 제가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하찮은 일입니다."

    "이놈아!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주군!"

    "주군이 타고 다닐 수레를 만드는 일이 하찮은 일이더냐!"

    "아닙니다. 수레 만드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 수레를 만들란 말이다!"

    "…. 그럼, 저는 그렇게 하찮은 인간이었습니까?"

    "아니 이 잡종이!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 더 이상 하늘을 훔쳐보지 말고, 허리 굽혀 낮은 곳으로 몸을 숨기란 말이다. 어디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가서 없는 듯이 죽은 듯이 살란 말이다!"

    "차라리 제 남근을 거세하고 내시가 되겠습니다. 주군 곁에만 있게 해 주십시오. 매일 밤 주군 등창의 피고름을 빨아내더라도 주군 곁에 있어야 저는 살아 있습니다."

    나는 꿈속에서도 주군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린다.

    "네 이놈! 이제부터 너를 너이게 하는 것을 찾아라."

    나는 그만 주군의 발길에 채여 꿈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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