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6> 14장. 옥 창살에 걸린 천상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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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이 윤 택

     

     

     

     

    <16> 14장. 옥 창살에 걸린 천상열차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옥에서 만든 일성정시의를 들고 춤추는 당직사령.




    - 숭숭 뚫린 윗 저고리 구녕으로 달빛이 별자리를 드러낸다

    윗 저고리 등짝에 28개 별자리 뚫어
    옥문 창살에 걸었더니 그럴싸한 천문도
    사령도 갇힌 우리도 더불어 즐겁다

    기다림과 울분의 세월동안 쌓였던
    나의 상상력이 이곳 옥에서 폭발해
    천문시계·소간의·해시계로 탄생하네


    "자, 이제 비가 억수로 내렸으니까 얼마나 왔나 재야지. 주척이라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바닥에서 쇠 갈고리로 척 촌 분수를 눈금으로 그어 돌을 파고, 받침돌 사이에 이렇게 원통 옆에 같이 세우거든. 그런 다음 물의 깊이를 이렇게 재고, 비가 내린 일시와 물 깊이를 척 촌 분으로 재는거요."

    "엣 퉤퉤! 바가 더럽게 냄새나고 독하네."

    최효문이 코를 막고

    "우리네 인생이 그러니까."

    임효돈이 시큰둥하게 푸념을 한다.
     

    감옥에서 천문 관측기구 선기옥형을 만들어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영실
    .





    다시 침묵이 온다. 나는 이천 장군이 주고 간 측우기 도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던져 버린다. 이 측우기는 세자가 만든 것으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만 지금까지 지나쳐 온 내 삶이 허망하다.

    나는 무엇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가. 무엇을 좇아오다가 보니 다 잃어 버렸다. 내 고향 동래 관노산에서 뛰놀던 친구들도 잃어 버리고 저녁답 황혼이 깃들면 나를 부르던 어미의 목소리도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못생긴 여동생은 시집가서 잘 사는지…. 부산 앞바다 포화 속에서 같이 달리던 수군들은 지금 어디로 뿔뿔이 흩어졌는지…. 나는 그들을 등지고 앞만 보고 달렸다. 처음에는 이천 장군을 좇아다녔고 궁에 들어와서는 주군만 보고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나는 그냥 물건만 만든 물건인가? 내가 만든 물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나는 문득 내 물건들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내가 윗도리를 벗어 나무 꼬챙이로 구멍을 숭숭 내니까 당직 백호사령이 슬그머니 뒤에 와서 들여다 본다.

    "지금 뭐하는거요?"

    "천문도를 만드는거요."



    나는 형틀에서 불거져 나온 큼지막한 나무못 하나를 성큼 뽑아든다. 백호사령이 순간 긴장한다. 나는 나무 못을 들어 보여주면서 히죽 웃어주었다. 그제서야 백호사령도 계속 하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내 윗 저고리 등짝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의 별자리를 뚫어 나갔다.

    "자, 밤하늘에 걸어 보자."

    나는 윗도리 등짝에 뚫어 놓은 천문도를 옥문 창살에 걸어 둔다. 신기하게도 달빛이 숭숭 뚫린 구녕 사이 사이로 분명하게 뚫고 들어와 그럴싸한 별자리를 드러낸다. 백호사령이 신기한 듯 다가서고 침울하게 퍼질러 있던 조순생이 눈을 들어 보다가 경탄을 한다.

    "천상열차다!"

    "그렇소. 이게 조선에서 본 천문도요. 여기 중심에 북극성이 있고 이렇게 28수 별자리가 있소. 점으로 찍힌 것이 수미산이고, 이렇게 선으로 이어져 내리는 게 불경에 나오는 삼십삼천이오."

    "흠, 천문학인 동시에 운명론일세."

    조순생이 호기심을 강하게 보여 나는 간단하게 선기옥형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바닥에 떨어진 대나무 조각을 주어 백호 사령에게 내민다.

    "이 대나무를 좀 잘라 주시오."

    백호사령도 신기한 듯 슬그머니 단도를 꺼내어 대나무 통을 자른다. 대나무를 베는 솜씨가 여간 아니어서 묻는다.

    "칼을 참 잘 쓰네요."

    "우리 집안이 백정 집안이오."

    "사람은 안 썰어 봤소?"

    "많이 썰었지요."

    "어디서요?"

    "부산포, 내가 왜구 모가지 쓰는 귀신이었소."

    "나는 그때 화포를 만들었지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묻는다.

    "그때 우리 만난 적 없소?"

    "전혀 없소."

    "이천 장군을 모르시오? 엊그제 들이닥친 장군 말이오."

    "…모르오."

    그의 대답이 갑자기 서늘해진다.
     

    선기옥형을 들고 춤추는 임효돈. 사진=국립극단(촬영 심철민)





    잘게 자른 대나무를 휘어서 간단하게 선기옥형을 만들어 손바닥에 들어 올린다. 달빛이 옥 창살을 뚫고 들어와 대나무로 엮은 원구를 눈부시게 비춘다.

    "와아-"

    옥 안의 사람들 모두 탄성이 터진다.

    "이게 선기옥형이오."

    나는 눈 높이로 선기옥형을 대고 옥 창살에 걸린 천문도를 겨냥한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시계지요. 눈높이에서 보이는 천체의 모양이 시간이 지날수록 바뀐다오."

    "어디 좀 봅시다."

    최효문이 엉덩방아로 기어 와 내 손에서 선기옥형을 뺏어 들어 옥창살을 향해 본다.

    "지금 천체의 별들이 옥 창살에 갇혀 있어. 움직이지 못하니까, 대신 그 선기옥형을 돌려 보시오. 별자리 모습이 순간 순간 바뀔거요."

    "정말 그렇네."

    최효문이 원구를 돌리며 신기해 하고

    "어디 나도 좀 보세."

    임효돈이 뺏어 든다.

    "백호사령이 저 옥문에 붙어 있는 용 조각상을 떼내 준다면, 휴대용 간의를 만들어 드리리다."

    "적도를 가리키는 천문기구 말이오?"

    "그렇소. 그걸 태양 아래 높이 쳐 들고 서면 지금 내가 이 세상 어디 쯤에 서 있는지 알게 되지요."

    "그걸 만들어 내게 주겠다고?"

    "그렇소. 저 세상 언제 떠날지 모르는 몸인데 내가 그 물건 어디 쓰겠소."



    백호사령은 거침없이 허리에 찬 도를 꺼내어 옥문 구석에 매달려 있는 나무 용조각 상을 한칼에 잘라 낸다. 나는 얼른 들어 소간의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디 나무 막대기 같은 거 없소?"

    하니까, 최효남이 얼른 가져 오고,

    "내가 대나무로 만드는 원형을 각기 하나씩 만들어 주시오."

    하니까, 최효문 임효돈이 얼른 따라 만들기 시작한다. 눈치를 보던 백호사령도 슬그머니 따라 만든다.

    "작은 못이 있어야 돼!"

    "이 작은 쇠침은 어때요?"



    백호사령이 손바닥에 한아름 내민다.

    "이게 뭐요?"

    "이거 사람 몸에 꽂는 침이오. 가장 악랄한 고문이지."

    "잇크, 이거 사람 잡을 물건이네."

    "괜찮소 아주 적당하오. 어디 나무 판대기 하나 가져다 주시오."

    "여기 이거 쓰시오."

    그러면서 조순생이 작은 판대기를 던져 준다.



    "아니 이거 바둑판 아니오?"

    "바둑판이 없어서 만들고 있었는데…. 에그, 다 부질없소."

    나는 드디어 멋진 소간의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없는 물건 주워 모아서 조합했는데 의외로 그럴 듯 하다.

    "자 이걸 오른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면서 서시오."

    백호사령에게 건네주니까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 들어 보시오."

    "대호군이 들고 일어서 보라 그러지 않소."
     


    최효문과 임효돈이 잠시나마 죄인 신분을 잊었는지 백호사령에게 농지꺼리를 해 댄다. 수줍어 하던 백호사령이 소간의를 들고 벌떡 일어선다. 높이 쳐들린 소간의에 달빛이 쏟아진다. 옥 안의 죄인들이 박수를 쳐 대며 좋아라 한다. 이때부터 나는 그만 미쳐 버린다. 지난 몇 년 동안 천문을 잊고 지내며 기다림과 울분의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내 상상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나는 먼저 눈에 띄는 밥 그릇과 수저를 가지고 재빨리 해시계를 만들어 보여 준다. 그릇 둥근 안쪽 면에 숟가락 끝으로 13개의 금을 긋고 그 중앙에 수저를 걸어 두었다.

    "자, 이게 앙부일구 솥과 같은 모양의 해시계요. 여기 그릇 안에 놓아 둔 게 영침이라는 건데 해 그림자를 기록하는 13개의 절후선이 그려져 있소. 이걸 옥 창살 옆 선반에 놓아 둘테니 내일부터 시간 좀 재어 가면서 사시오."

    교대 시간을 알리는 소고 하나가 벽에 걸려 있길래, 그걸 들어 중간에 나무 못으로 중간에 구녕을 내고 그 주위를 원으로 그리고 가장자리에 눈금을 죽 주욱 그었다 그걸 개다리 소반에 각도를 잡아 앉혀 놓는다.

    "이것도 해시계요. 현주일구라고 하는데, 원형의 눈금을 적도면과 평행으로 놓아두어야 하오. 저기 소간의가 가리키는 적도면이 이쪽이니까, 여기 이렇게 고정시켜 놓으시오."

    "이왕이면 자격루도 여기서 만들어 보시지 그러요."

    조순생이 문득 입을 뗀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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