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5>13장.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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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이 윤 택

     

     

     

    <15>13장.측우기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매는 맞아도 먹어야 한다고 밥상을 넣어주는 당직사령. 깨지고 터진데 바르라고 된장까지 준다. 사진제공= 국립극단(촬영 심철민)
     

    - 측우기 도면 끄트머리에 세자 이름 '향'이 적혀 있다


    누군가 도면을 새로 정리한 것 같은데
    왜 세자 이름이 쓰여져 있을까?

    옥사에 찾아온 이천 장군이 말했다
    "중국 사대주의자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주군이 너를 구해 주실 것이다
    도면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고 고쳐라"

    측우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쇠통이 없으니 대나무로 만들어 볼까

    "예로부터 국조 단군이 신단수에 내려오실 제 풍백 우사 운사 세 신을 데리고 왔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는 이치를 모르겠느냐? 치우천왕도 물을 다스릴 수 있어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주군은 이번 오월 단오절을 기하여 서울을 천체의 중심에 놓고 측우기를 조선 팔도에 세울 계획을 진행해 오셨다. 이제 그 날이 오고 있고, 너는 그 중심인물이야."

    "저는 지금까지 선공감에서 임금 수레를 만들고 있었고 지금 옥에 갇혀 있습니다. 왜 진작 저를 서운감으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이놈아 내가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 듣겠느냐? 네가 서운감에서 측우기를 들고 있다는 소문만 들렸다면, 너는 자객의 칼에 죽었거나 지금 중국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측우기를 만들고 있을 거다. 이제 서운한 감정 거두고 내 말 잘 들어라."

    "죄 없는 사람들을 역적으로 내 몰면서 저 혼자 빠져 나가지 않겠습니다."

    "너를 빼낼 수 없다. 물론 죄 없는 사람들은 큰 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임금 수레를 부실하게 만든 죄 만큼만 받겠지. 그러나 너는 다르다. 중국의 권세를 배경으로 조선을 유지하려는 사대주의자들은 너를 죽이려 들 것이 틀림없다. 사헌부는 지금 네 죄 형량을 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말거라. 주군이 너를 구해 주실 거다. 그러니 여기 옥에 있을 동안 이 도면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고 고쳐라."

    이천 장군은 얼른 조선 종이에 양피지를 붙인 두루마기를 내 허리춤에 꽂는다.

    "옥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서운관에 전해 줄 수 있소이까?"

    "누군가 그것을 가지러 올 것이다, 기다려라."


     

       
      주둥이가 부르터져 밥을 먹지 못하는 장영실에게 억지로 밥을 밀어 넣는 죄수들.

    이천 장군은 소리 없이 옥사를 빠져 나간다. 밖에서 풀잎을 밟으며 이동하는 발자국 소리가 낮게 깔린다. 나는 꺼지게 한숨을 쉬고 벌렁 드러눕는다. 코가 너무 아프고 입은 부어서 감각이 없다.

    조금 있으려니 나장들이 선공감 일행들을 짐짝처럼 끌고 들어와 패대기친다. 모두 어이쿠, 아야야, 살살 다루거라! 비명들을 질러대는데, 그 비명소리가 살아 있다는 환희처럼 들린다.

    "다들 무사하시군요."

    나는 그제서야 반색을 한다.

    "무사허기는, 발바닥이 다 타 버려서 이제 날아 다녀야 할 것 같소."

    최효문이 불평을 털어 놓고,

    "나는 왼쪽 어깨죽지가 내려 앉은 것 같애. 이거 봐 걸으니까 한쪽 팔이 덜렁덜렁 곰배팔이 같지."

    임효돈이 울상을 짓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몰골을 보고,

    "어, 대호군 코가 없어져 버렸네. 입술은 띵나발이고, 허허, 곰배팔이 여기 계시네."

    그러면서 또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악명 높은 의금부의 심문 과정을 이 정도로 통과했다는 안도감을 숨기지 않는다. 의금부에서 심문 받는 도중에 죽어 나가는 죄인이 많다는 말을 평소에 들어 왔다. 조순생 대호군은 정강이 뼈가 부러졌는지 앉은뱅이처럼 앉아서 두 손바닥으로 땅을 밀고 온다.

    "대호군은 어떠시오?"

    나는 걱정이 되어 묻는다.

    "앉은뱅이로 살아야 할 것 같소."

    조순생은 우울하게 대답한다.

    "미안허요. 나 하나 없어지면 될 일을…."

    "이게 어디 대호군 탓할 일이오? 운이 나빴을 뿐이오. 다 팔자소관이려니 생각해야지. 나는 아직 괜찮소. 이 정도면 바둑은 두는데 문제가 없으니까…."

    조순생은 당대 최고의 바둑 고수답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나마 대호군을 의심해서 죄송하요."

    최효문이 조순생에게 사과를 했고,

    "괜찮아. 그래도 자네는 의금부 도사 앞에서는 나를 고발 않더군. 세상이 다 아니 세상에 대고 물으시오. 왜 우리한테 이러시오- 하는 말을 들으니 참 맞는 말이다는 생각이 들었네. 최녹사가 그만한 안목을 갖추고 있는 지 몰랐네. 이번에 살아 남으면 크게 될 인물일세."

    "어, 그때 실성해 있었는데 어찌 들었소?"

    "실성한 척 했지. 매 안 맞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허긴 그렇소."

    우리 모두 웃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선공감에 두 달 동안 같이 일하면서도 서로 서먹해 하고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서로의 흉금을 털어 놓는다.

    이때 당직 백호사령이 큰 밥솥을 들고 들어선다. 그 뒤로 나장이 국솥과 개다리 소반을 들고 뒤따른다.

    "자, 다들 맞는다고 배 고팠으니 요기들 하시지."

    "어이그, 저 입버릇 좀 보게. 꼭 백정이 개새끼한테 개밥 주는 것 같애."

    최효문이 자기를 인두로 직접 지진 당사자라 화가 나서 욕질을 해 대고, 

    "우리 집안이 백정 집안인 줄 어떻게 알았소?"

    백호사령은 덤덤하게 말을 받아준다.

    "자, 다들 아직 살아 있으니 밥 먹읍시다."

    조순생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내면서 다가와 수저를 들었고,

    "된장 한 사발 가져왔으니 먹지만 말고 아픈데 골고루 쳐 바르시오." 

    백호사령은 끝까지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나는 밥 숟갈을 들다가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입술이 부어서 아가리를 아무리 열어도 수저가 들어가지 않는다. 

    "쯧쯧, 그냥 손으로 밀어 넣으시오."

    임효돈 말대로 나는 밥을 밀어 넣었다.
     

       
      감옥에서 문득 측우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장영실.

    밥을 먹다 말고, 이천 장군이 주고 간 측우기 도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도면 끄트머리에 '향'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내가 지난해에 올린 도면 그대로인데, 양피지로 곱게 그린 그림이며 글씨체가 고급스럽다. 누가 도면을 새로 정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향?

    "궁에 향자 이름을 쓰는 사람이 누구지요?"

    하고 물었더니,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한자로 어떻게 써요?" 

    엉덩이로 기어온 최효문이 아는 체 하고 들여다 보다가, 

    "모르겠는데 누구 아는 사람 있소?"

    하면서 양피지를 흔든다. 임효돈이 들여다 보다가 고개를 젓고, 최효문은 끙끙 앓고 있는 조순생에게 기어 가 보여준다.

    "세자야."

    "향이?" 

    "세자 이름이라고!"

    왜 세자 향의 이름이 내가 지난해 올린 측우기 도면에 기재되어 있을까?

    "그게 뭐야?"

    다시 최효문이 기어와 들여다 본다. 

    "측우기일세."

    "측우기라면?"

    "빗물을 받아서 비가 얼마나 내렸는가 측정하는 기구요."

    "어떻게 그걸 아는가?"

    "내가 지난해에 만들어 올렸으니까. 이건 물시계를 만들고 나서 곧장 생각해 낸 거요. 물시계의 원리를 이용한 거지."

    "빗물을 받아서 비가 얼마나 내리고 있는지를 측정한단 말이지. 거 대단한 물건이네.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임효돈이 맞장구를 친다.
     

       
     

    나는 문득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간단해. 여기서 한번 만들어 볼까?"

    "어떻게?"

    나는 도형을 보아 가면서 공작을 해 나가기 시작한다.

    "원래는 쇠통인데…. 여기서는 쇠통이 없으니까 대나무로 하지. 백호사령, 거 옆에 있는 대나무 통 좀 잘라 주겠소?"

    "뭐하게?"

    "심심해서 공작이나 좀 하게."

    "얼마나 자르면 되는데?"

    "길이를 1척 5촌 정도로 자르고, 원통은 직경이 7촌이면 되지."

    백호사령은 크고 작은 대나무들로 엮어져 있는 대에서 큼지막한 대나무 한 개를 빼낸 다음 허리에 찬 도를 꺼내어 대나무 원통을 가볍게 잘라 버린다.

    "자, 이 정도면."

    "먼저 이렇게 대(臺)를 짓고, 쇠로 만든 길이 1척 5촌, 직경 7촌 정도 되는 원통을 세우는 거요. 이제 비가 오는 거야, 비가 와야지."

    "비가 어디서 내려?"

    나는 문득 일어나 허리춤을 내린다.

    "여기서 이렇게 내리지."

    오줌을 싼다.

    "옳지, 비 내린다. 비야 비야 내려라! 울 어매 무덤가에 눈물 되어 내려라! 울 아비 길 떠날 때 하염없이 내려라!"

    임효돈도 오줌을 싸며 노래한다.

    최효문도 발 뒤꿈치로 일어나 오줌을 싼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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