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4>12장.심문-천민에게는 속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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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이 윤 택

     

     

    <14>12장.심문-천민에게는 속이 없소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임금에게 서운했다고 말하다가 주리를 틀리는 장영실. 사진제공= 국립극단(촬영 심철민)
     
    - 임금에게 서운했소…나는 수레를 만드는 철공이 아니오


    나는 금속 천문기구 제작자요
    궁궐 서까래나 고치고 말 안장이나 갈고
    수레나 만드는 곳에 왜 처박아 두셨소

    조선을 세상 중심에 두려는 것이
    주군의 뜻이다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를 만들려면
    측우기를 완성해야 해
    지금 조선은 너를 필요로 한다


       
      의금부도사에게 잘못 맞아 전신 경련을 일으키는 선공직장 임효돈.
    "다음 죄인은 주장당문이다."

    이천은 눈 하나 꿈쩍 않고 몰아 부친다. 엄청나게 큰 붉은 몽둥이를 든 나장이 성큼 일어선다. 임효돈은 몽둥이를 보자 그대로 주저 앉는다. 나장 2명이 겨드랑이를 붙들고 의자에 앉힌다.

    "이러실 거 없소. 내가 한눈을 팔아서 그런거요."

    "어디다 한 눈을 판 거냐?"

    이제 의금부 도사가 자신감을 얻었는지 심문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이천은 가만히 있어준다. 그러면서 문득 나를 본다. 나의 충혈된 눈빛과 마주친다. 그래도 이천 장군의 눈은 흔들림이 없다. 그냥 있으라. 장군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대답은 않고 어디다 한눈을 파는 거야!"

    의금부도사는 나장의 붉은 몽둥이를 뺏아들고 임효돈의 가슴팍을 툭 친다.

    "사실 집을 짓고 있소."

    "집? 누구 집을 어디다 짓는데? 말 못해?!"

    다시 쿡 찌른다. 

    "하이구 어깨뼈 다 내려 앉겠네."

    "이놈이, 정말 내려 앉혀 줄까!"

    의금부 도사가 몽둥이를 들어 임효돈의 어깨죽지를 내리쳐 버린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의자에 묶인 임효돈의 육중한 몸이 옆으로 기우뚱 넘어가 버린다. 임효돈은 소리도 못 지르고 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의금부 도사가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을 모른다. 



       
      누가 발명했는지 알 수 없는 측우기. 기록에는 세자 환의 작품이라 하고, 브리태니카 사전에는 명나라 황제의 하사품이라 기록되었다. 그러나 측우기 발명 한해 전 장영실은 측우기 부표를 만들었다.
    "어디를 잘못 맞은 모양이오. 사람을 그렇게 마구 패는 게 아닌데…."

    백호사령이 언짢은 기색으로 임효돈의 눈을 까뒤집어 본다.

    "이걸 어떡허지?"

    의금부 도사의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우황청심환을 두알 혀 밑에 녹여 먹게 하고 두꺼운 이불로 몸을 덮어 주어라."

    이천은 눈 하나 꿈쩍 안고 앉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다. 선공감 관리 하나 맞아 죽는 것은 별일도 아니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천 장군은 옥에 들어오자마자 내 주둥이를 쥐어 박아 말문을 막아놓고, 선공감 관리들을 역모죄로 몰아 가려는게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빼 내어 가려고 이 밤길 광솔불을 밝히며 온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억지다. 이렇게 구차스럽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선공직장 임효돈은 고향에 새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나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튕겨나간다. 임효돈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 주고 싶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고향에 새 집을?"

    의금부 도사가 되묻는데 말에 힘이 없다. 그는 지금 죄인이 매에 맞아서 죽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

    "그렇소 평생을 일했는데 나이 육순에 들어도 당상관에 오르지 못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오. 그래서 이번 일을 끝내면 사직서를 내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소. 그런 사람이 무슨 큰 역모의 앞잡이가 되어 임금이 타고 가실 안여의 수레바퀴를 느슨하게 풀어 놓았겠소? 이건 그냥 우연한 사고입니다. 그냥 단순한 사고라고요."

    "그 수레에 임금이 타고 있었다."

    이천 장군의 말은 천금보다 무거웠다.

    "그렇다면, 제가 대역죄인입니다. 저를 벌하시오-"

    "허, 이놈 이제 바른 말 나오는구나. 이실직고 하겠는가?!"

    의금부도사가 다시 말에 생기를 얻는다 

    "그렇소 사실대로 고하겠소. 내가 주범입니다. 내가 임금의 안여를 내 목숨보다 귀중하게 다루어야 하거늘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 무슨 꿍꿍이 속이 있었기에…."

    "꿍꿍이 속이요? 나한테 무슨 그런 속이 있겠소? 나는 원래 속이 없는 천민이오. 천민에게는 속이 없소. 그냥 서운했겠지오."

    "누구에게 서운했단 말이냐?"

    "임금이오."

    "저 발칙한 주둥이를 놀리는 놈을 당장 형틀에 묶고 주리를 틀어라-"

    이천장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나는 계속 말이 하고 싶어진다. 안여를 만들면서 나를 우울증에 빠뜨리게 했던 그 심중을 다 털어내고 싶었다. 

    "나는 금속 천문기구 제작자요, 나는 수레를 만드는 철공이 아니란 말이오! 그래서 수레 따위는 만들고 싶지 않았소! 나를 왜 궁궐 서까래나 고치고 말 안장이나 갈고 수레나 만드는 곳에 처박아 두셨소-"

    나는 형틀에 묶이면서도 고래고래 패악질을 치며 울었다. 

    "저 오활한 놈의 주리를 틀어라!"

    이천 장군의 냉정한 불호령이 떨어지고

    "주, 주리를 틀어라아!"

    의금부도사가 엉거주춤 되받는다. 

    등뼈가 비틀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간다. 그러면서도 말을 하고 싶어진다 말을….



       
     
    얼마나 정신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 내 주위에서 얼씬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당직 백호사령이었다. 그는 내 부러진 코뼈에 고약을 붙이고 삼베로 머리통을 싸매 주었다.

    "이제 되었다. 내가 부를 때까지 밖에 물러나 있거라."

    이천장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고, 당직 백호사령이 황급히 몸을 숙이면서 뒷걸음질 쳐 물러난다. 분명 옥 안인데 의금부 도사도 영사도 나장들도 사라지고 없다. 조순생은? 임효돈은? 최효남은?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가 저승인가? 아니면 꿈인가?



    "죄인들은 다른 옥사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너는 여기서 받았고…. 이제 너와 나 둘 뿐이다."

    문득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드니 이천 장군의 모습이 보였다.

    "제 오활함이 죄입니다 장군님." 

    "그렇지 않다. 너는 결코 오만하고 교활한 인간이 아니다. 너는 수레 따위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네가 어릴 적 짚쌔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이건 단순한 사고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왜 이런 지경에 처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안여는 문제가 없었다. 그 무거운 안여를 고갯길로 밀어 올리는 게 무리였고, 게다가 역꾼들 수가 너무 적었다. 주군이 가능하면 수호군사나 역꾼들 숫자를 줄이라고 해서 그렇게 따르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생각지도 않은 올가미에 발목이 잡혀 버렸다."

    "올가미라니오?"

    "지금 이순지와 김담이 예문관 정인지 대감의 보호를 받으며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아, 그 젊은 천재들이 서울에 있군요."

    "그들은 지금 북극성 별자리를 서울 경복궁 기와장 위로 이동시키고 있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해와 달과 화성 목성 금성 토성 일곱 별자리를 돌리려 하지.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알지."

    "조선을 세상의 중심에 놓으려는 주군의 뜻입니다."

    "그래, 바로 그렇다. 이번 5월 단오절을 기하여 칠정산 내외편이 반포되고, 우리가 이전에 만들었던 혼천의와 일성정시의가 우주의 순행을 관찰하기 시작할거다. 네가 만든 천문시계 옥루도 설치되겠지."

    "주군의 나라가 서겠군요."

    "주군과 장영실의 나라지."

    "아니오, 주군과 우리의 나라입니다. 중국과 다른 우리 나라."

    "그래서 너는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저는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장군님 저는 천문학자가 아닙니다…."

    "측우기가 아직 완성이 되지 않고 있다. 몇 번이나 실험을 해 보았는데 물이 고이지 않아."

    "제가 직접 만들지 않아서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 저를 서운관에 있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난해까지 나도 천안에 유배가 있었다. 지금 이순지와 김담은 직책도 얻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어."

    "누가 왜 우리를 못 살게 굴지요?"

    "중국이지. 이조 참판이 북경까지 가서 중국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오면 주군은 왕세자와 의정부 육조 대신들을 모두 데리고 모화관에 나가 칙서를 받아 읽어야 한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국이건 조선이건 그런 게 그렇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이면 족합니다. 저를 필요로 해 주는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래 지금 조선은 너를 필요로 한다. 측우기를 완성해야 돼!"

    "측우기가 제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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