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3>11장.심문-세상에게 물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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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이 윤 택

     

     

    <13>11장.심문-세상에게 물을 수는 없다.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천 장군이 방패군 500명을 거느리고 전격적으로 의금부를 점거하고 있다. 국립극단(찰영 심철민) 제공
    - 임금의 신변을 위협한 역모다…배후를 이실직고 하라

    - 누가 죄인들을 잡아 들였는가?
    - 역모꾼들의 주리를 틀어라
    - 이건 대신들의 음모요
    - 장영실 대호군 때려 잡으려고
    - 꾸민 짓 아니오 세상이 다 아오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지고 시뻘건 광솔불들이 옥문으로 다가왔다. 창밖으로 내다보던 최효문이 화들짝 놀라면서 "무장군사들이 쫘악 깔렸소-" 소리를 내질렀다. 이어 "옥문을 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바로 이천 장군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순간 몸에서 맥이 쫘악 풀렸다. 이제 살았구나 싶으니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의금부 당직 백호사령은 엉겁결에 도를 뽑아 들었으나 야밤에 급습한 무장군사들의 기세에 눌려 꼼짝을 못했다.

    "어서 옥문을 열지 못할까, 여기 임금의 어명을 대리하는 숭록대부의 궤장이 보이지 않느냐?"

    그제서야 의금부 당직 도사가 달려와 영문을 모르는 채 문을 열라고 했고, 당직 백호사령이 엉거주춤 옥문을 열었다. 오래된 박달나무 지팡이를 든 이천 장군이 성큼 옥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장군니임-" 겨우 기어 나오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퍽! 내 면상을 내려치는 지팡이에 바로 코뼈가 주르르 피와 함께 흘러 내렸고,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의금부는 임금의 명에 따라 움직인다. 누가 이 죄인들을 잡아 들였는가?"

    "사헌부에게 즉각 체포 구금하라는 요청이 와서 낭관이 붙들어 왔습니다. 무슨 죄로 붙들려 왔는지는 아직 모르고, 사헌부에서 조서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정신 나간 인간들이 있나? 임금은 지금 이천 온천에 계시고 행차 중에 변을 당하셔서 교지를 내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사헌부에서는 임금의 교지도 받지 않고 이들을 잡아 들이라고 했는가?"

    "임금이 궁을 비울 때는 의정부에서 통상 업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의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통상업무가 아니다. 임금의 신변을 위협한 역모란 말이다. 그래서 나 이천은 현장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즉각 서울로 달려왔고, 숭록대부의 궤장을 하사 받아 죄인들을 추궁하기로 한다. 의금부 도사는 즉각 이 역모꾼들을 고문틀에 붙들어 매고 주리를 틀어라!"



       
      발바닥을 인두로 지지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상에 대고 물어보라고 항변하는 선공감 교리 최효문.
    심한 통증과 코에서 흘러 내리는 피범벅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이천 장군의 엄중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질겁을하며 우는 임효돈과 최효남의 소리가 들렸고, "선공감 정의는 어디 있는가" 하는 이천 장군의 소리에 이어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일어서는 조순생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순간 "의금부 도사는 저 대역죄인을 들어 매고 고문을 준비하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쿠, 이게 무슨 변이오" 당황해 하는 조순생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지도 못한 채 드러누워 이천 장군이 왜 나를 지팡이로 때렸는가를 생각하다가 여기서 이천 장군을 아는 체 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천 장군은 지금 내 입을 막을 생각이다. 그래서 이천 장군은 내 코뼈만 부러뜨린 게 아니라 주둥이까지 띵나발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아프다. 

    "저 죄인은 지금 맞아 정신이 없는 모양이니 대충 피를 멈추게 하고 그냥 내버려 두라. 나머지는 모두 의자에 묶어라. 의금부 도사는 신장, 압슬, 낙형, 난장, 주리를 트는 순으로 고문을 준비하시오."



    야밤에 불청객을 맞은 의금부는 갑자기 부산스러워진다. 불려온 당직 의금부 도사는 졸지에 심문관이 되고, 영사 한명은 기록, 그리고 힘깨나 써 보이는 나장 서넛이 들어선다. 당직 백호는 졸지에 체형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천 장군이 역모 사건이기 때문에 조용히 조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더 이상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밖은 지금 방패군이 지키고 있다. 그들 모두 광솔불을 끄고 어둠 속에 잠복한 것이다. 

    "선공감 정의 조순생은 네 죄를 알렷다!"

    이천이 차갑게 물으며 의금부도사에게 눈짓을 던진다. 의금부 도사는 엉겁결에 말 끄트머리만 붙잡아 던진다. 

    "알렷다!"

    "네에-"

    "이실직고 하라."

    "이실직고 하라."

    "임금이 타고 가실 안여를 부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저 놈 신장 열도를 쳐라!"

    의금부 도사가 처음부터 매를 치면서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는 눈짓을 보낸다. 그러나 이천은 눈 하나 까딱 않는다. 

    "시, 신장 열대를 쳐라!"

    의금부 도사의 어정쩡한 명이 떨어지자 백호사령이 의아스런 눈짓을 보내면서 회초리를 튕긴다.

    "어서!"

    "쳐라!"

    길이 1미터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의금부의 물푸레나무 회초리는 살을 파고 드는 아픔을 동반한다. 의자에 다리를 묶어 놓고 정강이 부위를 집중적으로 때리는데 잘못하면 영영 걷지 못하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조순생은 매에 아주 약했다. 한 대 한 대 내려칠 때 마다 먼저 질겁을 하고 온 몸을 뒤틀면서 비명을 질러 댄다. 칠, 팔도에 이르러 조순생은 먼저 백기를 든다. 

    "저를 죽여 주시오-"

    "네놈이 얼마나 엄중한 죄를 지었는지 이제야 아는구나. 그러나 너 같은 한량이 그런 무서운 음모를 꾸몄을 리 만무하고, 이제 그 배후를 대라 누가 시킨 짓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호라, 이놈이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무릎을 꿇게 하고 압슬을 시행하라."

    "아, 압슬을 시행하라."



       
      영문을 모르는 채 끌려나와 고문을 당하는 선공감 정의 조순생.
    이번 일이 단순한 사고 사건이 아닌 배후설이 이천의 입에서 나오면서 의금부 도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몸을 떤다. 그러나 당직 백호사령은 무표정하게 의자에서 조순생을 풀어내 자갈이 깔린 고문대에 무릎을 꿇린다.

    조순생이 혼비백산하여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애걸을 해 대지만, 백호사령은 아무 표정없이 무릎 위에 널빤지를 얹어 놓는다.

    "밟아라!" 이천이 냉정하게 내뱉는다. 

    "밟아라!" 의금부 도사가 열에 들뜬 목소리로 소리친다.

    백호사령은 아무 표정없이 몸을 붕 띄워서 내리 밟는다. 나장 한명이 같이 널빤지 위로 올라가 그네 타듯이 붕붕 뛰며 당직 백호와 주거니 받거니 밟는다.

    조순생의 외마디 비명이 너무 처연해서 최효남은 꺼이꺼이 울어 대면서 몸부림치고, 임효돈은 아예 얼굴을 가랑이 사이에 파묻고 흐느낀다.

    나는 그제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이 어처구니 없는 현장을 휘둘러본다. 이천 장군과 시선을 마주치려고 애타게 바라보는데 장군은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고문에만 집중한다.

    "어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소!"

    조순생의 말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숨 넘어가기 직전의 맹수가 마지막으로 포효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조순생의 처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진실이다. 거짓말을 저렇게 말할 수 없다. 조순생은 서너번 더 밟히다가 결국 혼절해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실신한 죄인은 걷어내고 그 다음 저 깡마른 녹사 놈에게 낙형을 시행하라."

    "아이고, 저는 심문이 필요 없습니다 나리. 저는 일찌감치 이번 사고가 음모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이미 다 토해 내었습니다. 그렇지 않소 백호사령? 엊그제 내가 이 옥사에서 그런 말 한 것 기억이 안 나요?" 

    백호사령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최효문의 양 발목을 묶어 나지막하게 매달아 놓고 숯불에 달군 인두를 든다.

    "나한테 한 말은 다 소용 없소. 의금부 도사 어른에게 하시오."

       
     
    그러면서 인두를 발바닥에 대고 지져버린다.

    "흐아악-" 깡마른 최효문의 상반신이 벌떡 들리면서 눈방울이 튀어 나올 듯 이천을 향한다.

    "이건 음모요. 장영실을 죽이려는 대신들의 음모요-"

    "멈추어라." 이천은 여기서 벌떡 일어난다.

    "멈추어라." 의금부 도사도 같이 일어선다.

    "누가 시켰는가!"

    "누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아요."

    최효문은 어깨가 바닥에 닿인 상태 그대로 엉겁결에 대답을 한다. 

    "계속 지져라."

    "지져라."

    벌떡 솟구친 최효문의 시선이 장영실에게 향한다.

    "아그, 생사람 지지네, 저 사람에게 물으시오!"

    "저 사람이 왜?"

    "왜?"

    "다 장영실 대호군 때려 잡으려고 꾸민 짓 아니오. 세상이 다 아오. 누구보다 세상이 다 아는데 왜 우리를 붙들고 이러시오-"

    "세상에게 물을 수는 없다."

    "없다."

    "그러나 세상은 다 아오. 위엣분들이 하시는 일들을 새가 들어 옮기고 쥐가 물어 퍼뜨린다오. 그러니 정작 알고 싶으시거든 위엣분들을 추달해 보시오."

    "저 망측한 놈! 지져라!" 이젠 의금부도사가 바로 나선다.

    "아이그 뜨거라, 날 죽여라!"

    "저 발칙한 놈이!"

    "흐악!" 그렇게 최효문도 혀를 물고 실신을 한다.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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