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연극소설 궁리(窮理)_이윤택
  • ▶ <12>10장.실패한 정치가 조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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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리(窮理)

     

     

    이 윤 택

     

     

    <12>10장.실패한 정치가 조말생

     궁리(窮理)-장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종 천문 역법 프로젝트의 완성품이라 할 수 있는 조선천상열차분야지도가 무대 위에서 재현되고 있다.
     
    - 권력서 소외되어 있으니 권력이 오히려 잘 보인다

    - 드디어 주군의 어명이 떨어졌다 
    - 나더러 상왕 태종의 혼백이 되어 
    - 자신을 지켜달라고 하신다
    - 나라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아! 
    - 의금부에 가서 장영실을 구하라

    이제 사헌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사간원이 힘을 보태고 의금부가 그 앞잡이 노릇을 한다. 이들 사정의 칼날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가? 지난달에 사헌부 탄핵을 받은 관리가 한방지 이순지 김담이다. 조선천하 최고의 사냥꾼 한방지는 세자들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세자의 선생을 주군이 첨지중추원부사에 임명하고자 하니, 다른 사람이 잡은 짐승을 자기 것으로 빼앗아갔다고 음해를 해서 떨어뜨렸다. 지금 칠정산 내외편을 만들고 있는 젊은 두 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의 복직을 사헌부에서 가로막고 있다. 이순지와 김담은 예조참의 고득종을 따라 명에 갔다가 불법으로 약재를 들여오려다 들킨 죄로 파직을 당했다. 그러나 약재는 고득종이 들여오려고 했던 것이고, 이순지와 김담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명 사신 오양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고득종은 방면되어 복직했는데, 정작 옆에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파직된 이순지와 김담만 예문관에 복직이 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금 주군이 주재하는 천문 수리 사업의 오른팔인데 주군 옆에도 못 간다. 주군이 벼슬을 주어 곁에 두고자 하면 씹어 제끼니…. 한 마디로 주군 곁에 무인 천문학자 의약사 광대 승려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잡스러운 민중들이 주군 곁에 몰려 있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주군이 이천 온천으로 떠나실 때 흥천사 경찬회 기간 중에는 중들이 도첩 없이 자유롭게 서울을 드나들게 하라 명을 내렸는데도 도첩 없는 승려는 서울에 발도 못 들여 놓는다. 이제 임금 말도 안 듣겠다는 건지 귀가 어두운 것도 아닌데 못 들은 척 한 건지….




       
      1444년(세종 26년) 이천과 장영실이 만든 갑인자로 인쇄된 칠정산 외편. 젊은 학자 이순지와 김담이 펴낸 천문역서다. 그러나 이때 장영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진 후였다.
    주군이 조선을 다스린 지 24년, 이제 정권 말기 증세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사헌부 대사헌 정갑손과 이조판서 최부의 권력 쟁투로 드러난다. 주군이 이조판서 최부의 사촌간인 윤삼산을 사간원 장령으로 발령내었는데, 대사헌 정갑손과 집의 이의흡 지평 최중겸 박추가 모두 들고 일어나 윤삼산을 탄핵하여 결국 떨어뜨렸다. 이조판서 최부가 벼슬을 내 놓겠다고 항변하고, 형조가 울화가 치밀어 정갑손 이하 사헌부 관리들을 주군에 대한 불경죄로 맞고소를 하면서 모두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간원 우정언 여효온이 사헌부 언관의 탄핵을 불경죄로 벌한다면 언로가 막힌다고 또 들고 일어나고….

    결국 주군은 영의정 황희에게 판단케 했는데, 그 결과가 심상치 않게 나타나고 말았다. 황희는 정갑손과 이의흡의 불경죄는 사면하고, 사헌부 관리 최중겸과 박추만 파면시켰다. 결국 주군도 사헌부 시간원 언관의 기세를 꺾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원 언간 여효온을 좌정언으로 승급시켜 주었다. 






       
      세종조 행정 수반으로서 최고 권력을 누렸던 영의정 황희(이종구 분).
    이천의 동생 이온도 탄핵을 받았다. 이온은 선공감 정의로 공물을 대답할 때 장물 혐의가 있다고 몸 수색을 당했다. 종 3품 대호군 벼슬인 선공감 정의를 몸 수색 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사헌부의 횡포다. 형 이천을 따라 야인 정벌을 할 때 칼 한번 안 쓰고 뒤에서 쫓아 다녀 놓고서는 논공을 따질 때 허위로 공을 올렸다는 것이 탄핵의 사유가 되었다. 이온을 전의판사로 제수하려던 주군의 뜻은 결국 좌절되었다. 당대 최고의 명의에게 전의판사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그 의사로서의 명예를 하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무장이자 주군의 천문 역법 프로젝트를 이끈 장본인이 십 여 년 전 북방 개척시대의 책임으로 삭탈 관직 당하고 유배를 갈 때 알아보았다. 아하, 이제 세상이 바뀌려 하는구나…. 누군가가 주군을 흔들면서 세상을 바꾸려 하는구나.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짓을 주도하고 있는가? 

    태종시대라면 그 권력 암투의 주모자들을 모조리 가려내어 도륙을 낼 상황인 것이고, 내 손에 칼자루가 쥐어졌다면 지금 당장 사헌부에 쳐 들어가 대사헌 정갑손부터 주리를 틀어 누가 주모자인자 밝혀낼 것이다. 정갑손이 명목상으로는 주군의 장인이지만, 주군의 몇 번 째 첩인지도 모르는 딸을 믿고 설치지 못할 것이다. 상왕 태종은 임금의 장인 목을 치고 임금의 장모를 지방 관아 종으로 내려 보냈다. 그렇다면 정갑손은 도대체 누굴 믿고 그렇게 권세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가? 지금 정갑손은 노골적으로 주군의 수족들을 자르고 있다. 황희인가? 절대 그럴 위인이 못 된다. 나이도 이미 팔순에 접어 들었고, 스스로 주군이 될 의사가 전혀 없는 소심한 선비일 뿐이다. 비록 내 뒤통수를 쳐서 나를 궁 뒷방으로 내몰았지만, 주군을 내몰 만한 위인은 못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갑손을 내세워 주군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어디에 있는가? 사헌부 내 젊은 삼, 사십대 언간들이 수상하다. 장령 이사철 같은 인간은 주군의 사촌되는 왕족으로 새로운 주군을 꿈꾸어 봄직도 하다. 그러나 어림없는 짓이다. 주군의 왕자들은 정치력에서 이사철 보다 훨씬 큰 그릇으로 성장했다. 아. 혹시, 그렇다면, 주군의 왕자 중에서…. 여기에서 나의 상상과 추리는 멈춘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이 참혹한 세상을 떠나고 싶다. 주군의 아들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참극을 벌이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 주군도 이제 40대 중반에 불과하다.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서는 안 되고, 만일 일어난다면, 이 조선은 엄청난 피바람을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명나라 사신 오양의 지시인가? 오양은 지난 2년간 왼갖 패악질을 일삼다가 올해 이월 돌아갔다. 오양이 순순히 돌아갈 리 없고, 그렇다면, 지금 정갑손은 오양의 지시를 받고 주군을 공격하고 있는 것인가? 흠, 이쯤 되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다. 만일 명이 중국 대륙의 기세로 이 조선을 치고 주군을 바꾸려 한다면, 해볼 만한 싸움 아닌가. 어차피 조선은 언제라도 중국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다. 이게 반도의 운명이다.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으니, 권력이 오히려 분명하게 잘 보인다. 나는 지금 십년 째 아무런 관직도 받지 못하고 그냥 궁의 뒷방살이를 하고 산다. 내 고향이 경기도 양주 고을이라 멀지도 않고 해서 집안 식솔들은 그냥 귀향하라고 한다. 고향에서 마음 편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내가 고향 집구석에 처박히면 나는 그냥 죽는다. 내 불같은 성격에 집구석에서 은퇴 생활을 하라면 홧병이 나서 죽을 것이다.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시도 짓고 후학을 가르치는 것도 말년의 즐거움이라고 하지만, 나는 은둔형 선비가 아니다. 과거 시험을 통해 급제한 전문 관리 출신이다. 내 지식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당파적이었다. 나는 태종 이방원의 화신이었다. 그의 명석함과 대의를 위해서라면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성이 좋았다. 나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대를 가로질러 온 정치가다. 세상이 바뀌어 나 같은 구시대 인물이 보수 꼴통으로 천대받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뒷전에 밀려나 정치라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야 정치라는 게 내 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구경꾼이다. 



       
      태종조의 최고 권력자였으나 세종조 뒷방 신세였던 숭록대부 조말생(전형재 분).
    그런데 난데없는 방문을 받는다. 주군이 나를 찾아 의논하라 했다고? 쥐구녕에 햇볕들 날도 있는 것인가? 어스름 저녁 나절 이천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천, 자네는 이태 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북방 국경 수비 책임자로 파직되어 귀향생활을 했고, 지금 자네 직책은 산릉수리도감 제조야. 장영실과 함께 간의혼의 앙부일구 등 천문역법을 관장하던 호조판서가 아니란 말일세. 태조임금 능을 수리하고 있잖아 지금…." 

    "사실은 주군 측근에 돌아와 있습니다. 주군이 강원도 이천으로 가시는 길에 저를 수행케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주군께서 조말생 대감을 직접 찾아가 의논하라는 하명을…."

    이천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심하게 떨고 있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살피고는 방문을 닫는다.

    "입 조심하게, 지금 우리가 하는 밤 말을 어떤 쥐새끼가 엿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래, 주군이 무슨 일을 나와 의논하라고 하셨는가?"

    "주군은 지금 다시 십년 전의 수족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천문 역법을 다루었던 기술자들을…. 이순지와 김담은 지금 예문관 대제학 정인지의 비호아래 직책도 없이 칠정산 외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칠정이라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일곱 개 행성인데…."

    "그 일곱 개 행성의 중심인 북극성을 서울을 중심으로 놓고 계산하는 것이 칠정산 외편입니다…."

    "조선의 하늘을 중심으로 세계는 움직인다. 하, 임금이 드디어 조선을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 하는구나. 그러면 장영실이는…."

    "측우기지요. 이미 지난해에 장영실이 제작 도면을 완성해서 서운관에 보내었고,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장영실이를 다시 서울에 불러다 놓고 마지막 감리를 맡길 참이었는데…."

    "장영실이는 지금 어디 있나?"

    "의금부 옥사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이, 또 뇌물을 받아 처 먹었구나. 어서 열배라도 상환하고 빼내어서 호조 서운관으로 데리고 가야지 하여튼 상것들은 그렇다니까. 아무리 재주가 있어 봐야 뭣해. 행실이 도눅놈 근성이면 제 누깔 제가 찌르고 제 밥그릇 제 발로 찬다니까…."

    "임금이 타고 가던 안여의 수레바퀴가 빠졌습니다."

    "장영실이가 만들었나? 장영실이가 왜 임금 타고 다니는 수레 따위를 만들어? 그 인재를 왜 그렇게 써 먹어? 아니 도대체 장영실이가 수레나 만들어 봤어? 장영실이는 과학자야. 수레 만드는 철공소 노역이 아니란 말일세, 흥, 천하가 다 아는 과학자를 궁 부서진 기와장이나 고치고 아무리 임금이 타고 다닌다 하더라도 수레를 만들게 해?! 그리고 재수없게 장영실이 만든 임금 수레 바퀴가 빠져 달아나서 지금 불경죄에 몰려 의금부에 갇혔다? 기가 찰 노릇이군. 임금이 일을 시키면서 일꾼을 그렇게 가두면 어떻게 일을 하나?"

    "주군이 가둔 게 아닙니다. 주군이 궁을 비울 때는 황희 정승이 명을 내립니다. 안여가 부서지는 즉시 서울로 내달려 왔는데 의금부에서 벌써 장영실이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한발 늦었습니다."

    "…한발 늦은 게 아니야. 상대가 너무 빨랐던 거지. 자네가 날 찾아온 이유를 알겠네. 내 나이 칠순을 넘어 이제 그만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임금이 놓아 주지를 않았어. 아니 그러면 요직이라도 주면서 주저앉히지 이렇게 계급만 숭록대부지 별로 할 일도 없단 말이지. 음, 그래 알겠다. 임금의 뜻도 알겠어. 이럴 때 나서라 이 말씀인 것 같애."



       
     
    아, 나 조말생에게 드디어 주군의 어명이 떨어졌다. 나는 주군이 하사하신 숭록대부의 궤장을 짚고 일어선다. 주군이 내린 이 지팡이를 써 먹을 때가 온 것 이다. 그럼, 그렇지, 주군이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태종 상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주군도 스스로 불안할 때는 검정 곤룡포를 입고 나타나시지 않는가? 이제 주군은 나더러 나서라 한다. 나더러 상왕 태종의 혼백이 되어 자신을 지켜달라고 하신다. 아무렴, 아무렴 입죠, 이제 조말생이 주군의 명을 받잡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갑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아! 임금은 강원도에 온천 가셔서 장기 체류 중이고 나라의 일꾼들이 영문도 모른 채 밀려나고 옥에 갇히고 있어. 이천, 자네에게 방패군 오백을 직접 거느리게 하겠다. 이 지팡이를 줄테니 이걸 높이 쳐들고 의금부에 가서 장영실이를 구하라! 나는 의정원에 들어가서 영의정 황희를 만나겠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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