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獨 생태시인 100인_송용구
  • ▶ <韓獨생태시인100인>'새들'은 나의 형제_송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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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독일의 시인들 10인 (8)    


                                       ‘새들’은 나의 형제
     
                                                                    송용구(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 시인: 박성룡, 고진하, 박노해, 노유섭, 함민복 
    *독일 시인: 헤르만 헤세, 에른스트 얀들,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귄터 헤어부르거, 우베 그뤼닝 



     

     ‘생명’을 가진 생물의 몸은 유기체有機體다. 몸 속의 각 기관들 중에 단절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하나의 기관은 독립적으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다른 기관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 가운데  ‘상호작용’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생물의 몸은 “유기체적 네트워크” 혹은 “유기체적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풀여치의 몸, 가녀린 안개꽃의 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생물의 ‘몸’은 생태계를 축소시킨 마이크로코스모스와 같다. 그러나 또 다시 부인할 수 없는 자연과학의 진리가 떠오른다. ‘몸’이라는 작은 생태계는 그 ‘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생태계 안에 속해 있다. 한 생물의 ‘몸’은 ‘지역 생태계’라는 네트워크 안에서 물, 공기, 흙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공장의 폐수와 폐유가 강물을 오염시키고, 건물과 자동차에서 배설되는 배기가스가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폭시킨다면 이 지역의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나무, 꽃, 새를 비롯한 모든 생물의 ‘몸’은 차례로 쓰러지고 만다. ‘몸’이라는 작은 생태계들이 도미노 현상처럼 연쇄적으로 몰락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기의 ‘몸’에 모유를 공급해주는 어머니의 몸 속에 수은, 납, 카드늄이 쌓이듯이 생물의 ‘몸’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그 지역의 생태계가 산성화되었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이 쌓여있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뇌수 없는 아기가 태어나듯이 강물 속의 중금속을 먹는 물고기들의 등도 굽어질 수밖에 없다. 모유 속의 독성을 흡수하는 아기의 ‘몸’ 속 혈액이 병들어가듯이 공기 속의 탄소를 마시는 나무의 ‘몸’ 속 수액樹液도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몸’이라는 작은 생태계는 그 ‘몸’이 살고 있는 ‘지역 생태계’의 물로부터 혈액을, 지역 생태계의 공기로부터 호흡을, 지역 생태계의 흙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게 마련이다. 오염된 물을 먹는 날이 계속될수록 ‘몸’의 혈관이 막히고 혈액이 멈출 날도 빨라진다.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공간에 노출될수록 ‘몸’의 폐부가 수축되고 숨결이 마를 날도 앞당겨진다. 이와 같이 생물의 ‘몸’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지역 생태계’라는 유기체적 시스템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대안사회는 ‘자연과 사람 간의 유기체적 시스템’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이며, 이 ‘유기체적 네트워크’를 보존하기 위해 ‘자연과 문명 간의 상호의존 시스템’을 강화하는 사회다.
     필자가 해설하는 한국과 독일의 시인 100인은 이러한 ‘유기체적 시스템’論 혹은 ‘유기체적 네트워크’論에 합당한 생태주의 패러다임을 갖춘 시인들이다. 이 기획 연재의 글은 저서로서 출간이 예정된 글이다. 표절을 삼가주시길 부탁드린다.
                                                             (해설과 번역: 송용구)
     
     

    ‘물결’ 같은 생명선生命線, 누구에 의해 끊어지는가? 
     - 박성룡의 「물결」

    19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시인 박성룡. 그는 1956년 『문학예술』에 「화병정경花甁情景」등의 작품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박성룡의 시에서는 화가 박수근의 그림처럼 한국의 ‘흙’ 냄새가 물씬 풍겨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정신을 외면해온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과 사람의 조화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적 생명감生命感이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인식을 갖고 있었다. 시의 ‘생명’과 같은 서정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기술문명과 물신주의가 뒤섞여 있는 메커니즘에 저항하는 것이 그의 인생길이었다. 그의 대표시 「풀잎 1」, 「풀잎 2」에서 만져볼 수 있는 “풀”의 생명. 그 생명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파괴적 메커니즘을 비판하는 것은 ‘생명’을 지켜내려는 시인의 본능적 저항이었다. 그러므로 박성룡의 작품 속에는 생태의식과 현실인식, 서정성과 저항성, 순수성과 참여성, 개인과 전체가 ‘화해로운 융합’을 이루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동백꽃』, 『고향은 땅끝』, 『풀잎』등이 있다.


    꽃은 물결이다. 그 향기가 물결이며 그 웃음이 물결이다. 그 누가 꽃에는 목소리가 없다 말했던가. 꽃밭에는 분명 카랑카랑한 목소리들이 있고, 그 목소리 또한 출렁이는 물결이다. 크고 작은 파문은 우물을 이루고, 호수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바다를 이룬다. 그 융융한 물결 위에 벌나비는 한동안씩 떠 흐르다가, 정신없이 떠 흐르다가 기진맥진을 한다.

    너의 얼굴도 물결이다. 그 웃음이 물결이며, 그 눈물이 물결이며, 그 표정 전체가 물결이다. 그것은 맑은 우물이며 산골짜기 계곡이며, 강물이며 바다며 크고 작은 파도이다. 그 융융한 물결 위에 나는 한동안씩 몸을 뒤척이며 떠 흐르다가 문득 꿈을 깨고 만다. 그래서 까닭없이 속으로 통곡한다.

    세상도 물결이다. 골목골목이 물결이며 신작로가 물결이며, 산이 물결이며, 바다가 물결이며 또한 하늘이 물결이다. 기쁨의 물결, 슬픔의 물결, 아우성의 물결, 몸부림의 물결, 총알의 물결, 포성의 물결, 아비규환의 물결, 물결, 물결, 물결, 물결 … 물결, 물결, 물결 … .

     - 박성룡의 「물결」전문


    *「물결」: 1998년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한 박성룡의 시집 『풀잎』에 수록된 작품이다. 둥그런 해안海岸을 닮은 꽃잎의 가장자리에서 “향기”의 물결이 흘러나온다. 그 “향기”에 젖은 “나비”의 날개들이 “물결”을 이룬다. “나비”를 따라 둥그런 춤을 추는 아가씨들의 “웃음”도 “물결”로 넘쳐 흐른다. 아가씨들의 이야기가 수런거리는 산기슭의 산책길을 따라 출렁이는 나무들의 “물결”. 나뭇잎들과 함께 춤을 추는 실개천의 노래 “물결”. 실개천의 수많은 핏줄들이 꽃가지처럼 펼쳐지는 “강”의 “물결”. 강의 헌신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바다”의 노을빛 “물결”. 그 물결의 투명한 빛들이 살고 있는 “하늘”의 구름 궁전이여. 푸르른 “물결”의 마을이여. “꽃”으로부터 “하늘”로 천천히 산책하듯이 녹색의 “길”을 여는 “물결”의 생명선生命線이여. 하지만 이 생명선을 끊어놓는 전쟁의 “물결”을 보라.
     전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물결”. 그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의 “아우성 물결”. 아우성을 꿰뚫고 마지막 남은 붉은 피의 “물결”마저도 토막내는 “총알”의 물결. 그 총알과 “포성”의 출정가를 들으며 ‘평화’라는 이데올로기의 “물결”을 타고 약소국의 영토를 쓰나미처럼 쓸어버리는 강대국의 패권주의 “물결”…. 박성룡의 시 「물결」은 만물의 생명선을 단절시키는 원인들을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물결”을 낳은 비인간적 정치의 “물결”이며 반反생명적 정책의 “물결”이다. 잘못된 정치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심각한 병인病因이 되었다.   

     

     

     

     

     

     

    피에 젖은 탄식의 노래
     - 헤르만 헤세의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헤르만 헤세(1877~1962).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시인.
    그의 문학작품은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877년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의 ‘칼프’ 市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그의 아버지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기독교 선교사였고 어머니는 인도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었다. 헤세의 외할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기독교 선교사, 철학박사, 인도학자인 헤르만 군데르트였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세계 각국의 문학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헤세는 소년 시절부터 외할아버지의 권유로 책을 폭넓게 읽었고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1890년(13세)엔 시인이나 작가 이외엔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결심하였다. 인생의 목표를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1891년(14세)에 아버지의 강요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였음에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듬해 2월에 신학교를 탈주하였고 퇴학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6월엔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로 끝나고 정신요양소에 들어가기도 했다. 1895년 10월 ‘튀빙엔’ 市에서 서점의 견습원이 되어 책읽기에 정열을 바쳤고 산문을 쓰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서점의 정직원이 된 1898년(21세)에 시집 『낭만의 노래』를 자비로 출간한 이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03년(26세)엔 평생 작가의 외길만을 걷기로 결심하여 서점을 퇴직하였고 1907년(27세)에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여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다. 문필 활동에 전념하면서부터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 『게르트루트』, 『로스할데』,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1919년 스위스의 ‘몬타뇰라’ 市로 이주하여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고 평생 동안 이곳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69세인 1946년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괴테 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9월엔 소설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제외한 헤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시선집』(1921),『위기』(1928),『생명의 나무에서』(1933), 『신新 시집』(1937),『꽃핀 가지』(1945)가 있다. 1987년 프랑크푸르트 市의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헤르만 헤세 문학전집』이 간행된 바 있다.
     
     
    죽은 아벨은 풀 속에 누워 있습니다.
    형 카인은 달아나고 말았군요.
    새 한 마리 날아와서 자신의 부리를   
    피에 담그다가 화들짝 놀라 날아갑니다.

    그 새는 온 세계로 날아갑니다.
    그의 비상은 불안합니다. 그의 울음은 찢어질 듯 합니다.
    끊임없는 애통과 울음을 토해냅니다.  
    아름다운 아벨과 그가 당한 죽음의 고난을,
    어두운 카인과 그가 겪는 영혼의 고통을,
    새(鳥) 자신의 청춘을 슬퍼하며 웁니다.
            
    카인은 곧 자신이 쏜 화살을 제 가슴에 박을 것입니다.
    카인은 곧 다툼과 전쟁과 죽음을
    모든 오두막집과 도시로 실어 나를 것입니다.
    적들을 만들고는 이내 때려 죽일 것입니다.
    적들과 자신을 절망적으로 증오할 것입니다.
    적들과 자신을 모든 길마다 쫓아다니며
    괴롭힐 것입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결국 카인이 자신을 죽일 때까지.

    새들이 도주합니다. 피 묻은 그 부리에서
    죽음에 대한 비탄의 소리가 온 세계를 향해 울려 나옵니다.
    새의 소리를 카인이 듣습니다. 새의 소리를 죽은 아벨이 듣습니다.
    하늘 장막 아래 살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듣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수만 명, 혹은 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아벨의 죽음에 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카인과 그 마음의 고통에 관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숱한 상처로부터 터져 나오는 피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어제 일어났던 전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그리고 자신들이 지금 소설로부터 읽는 뜻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배부르고 즐거운 이들에게는
    저 강하고 사나운 이들에게는
    카인도 아벨도, 죽음도 고통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을 위대한 시대로 찬양할 뿐입니다.

    탄식하는 새가 곁을 스쳐 날아가면
    그들은 그 새를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비관론자”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강한 자라고, 침범할 수 없는 자라고 느끼면서
    새에게 돌을 던집니다.
    마침내 새는 노래를 그치고 자취를 감추거나
    이제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듭니다.
    그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피를
    부리에 적신 채, 새는 세계의 곳곳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벨에 대한 새의 슬픔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습니다.  
       
     - 헤르만 헤세의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 Das Lied von Abels Tod」: 헤세는 독일 ‘나치’의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삼아 현실비판과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인류애와 자연사랑을 노래하는 등, 현대적 테마를 자신의 시 속으로 도입하게 된다. 전통적 서정성의 토대 위에 모더니티를 구축함으로써 반전의식과 생태의식이 어우러진 현대적 ‘자연시’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시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 Das Lied von Abels Tod」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창작된 작품이다. 1987년 프랑크푸르트 市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한 『헤르만 헤세 문학전집』과 그의 자선自選 시집에 수록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4년 당시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극단적 애국주의를 비평하는 글을 발표하여 독일 당국과 국민으로부터 ‘매국노’라고 매도당한 바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 당黨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취했던 까닭에 헤세의 작품은 1939년부터 1945년 종전終戰까지 독일땅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 주도한 두 차례의 전쟁에 대하여 ‘안티Anti’의 색깔을 표명했던 헤세의 반전反戰의식이 위의 시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로 표현되었다. 이 시는 헤세의 반전의식, 휴머니즘, 생태의식이 삼위일체처럼 융합된 작품이다.
     좁은 시각으로 본다면 “카인”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 당이지만,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히틀러의 침략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던 독일 국민 전체를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카인’이라는 이름 속에는 히틀러의 정책을 선전했던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같은 반反역사적 작가들과 지식인들도 포함된다. 헤세의 말대로 극단적 애국주의에 빠져있던 그들은 “전쟁을 위대한 시대로 찬양”하였다. 그 당시에 전쟁의 불행을 겪지 않은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배부르고 즐거운 이들”의 눈에는 카인도, 아벨도, 죽음도, 고통도, 전쟁도 보이지 않았다.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을 비판했던 시인 에리히 프리트Erich Fried의 시 「나무에 관한 대화」를 기억하는가? 이 시에서 “내 집의 지붕은 잘 수리되었어/ 이제 창틀만 불에 그슬리고/ 칠하면 되지. 화재보험료가/ 집값의 상승으로 올라버렸어”라고 말하는 첫 번째 화자를 닮은 그들은 개인적 안락과 이익에만 눈이 멀어 “전쟁”, “고통”, “죽음”, “아벨”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독일땅에 살고 있던 “배부르고 즐거운” 기득권층의 사람들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이기주의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극단적 애국주의’였다.
     나치Nazi는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의 줄인 말이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의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명칭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민족주의’는 진정성을 상실한 슬로건에 불과하였다. 비록 수많은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는 해도 무력과 물리적 폭력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은 진정한 민족주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치의 민족주의는 전체주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일 뿐이었다. 이렇게 왜곡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와 지식인들이 헤세의 시에서 “탄식하는 새”로 변용되었다. 소수에 불과한 그들의 입에서 “울려 나오는 비탄”의 “노래”는 아벨을 “적”으로 “만드는” 것을 그만두라고 카인에게 호소한다. “새”의 “노래”는 아벨을 “때려 죽이는” 만행을 중지하라고 카인에게 절규한다. “다툼”과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카인은 “자신이 쏜 화살”을 “제 가슴에 박을” 것임을 경고하는 노래가 “새”의 “피 묻은 부리”에서 울려 나온다.
     그러나 “탄식”의 노래를 부르는 “새”를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비관론자”라고 비아냥거리며 “새”의 “부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은 누구인가? 히틀러와 나치 로 대표되는 패권주의자들, 그들을 추종하는 극단적 애국주의자들, 지나친 이기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배부르고 즐거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작은 피”를 “부리에 적신” 채 “아벨에 대한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새”의 날개를 향해 그들은 박해의 “돌을 던진다”. 반전反戰사상과 휴머니즘과 생명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의 글을 그들은 ‘불온문서’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새”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부리”가 부러진다고 해도 사람과 자연과 생명을 향한 사랑의 “음악”은 “새”의 목청에서 마르지 않는다. 폭력의 “돌”에 맞아 일시적으로 부리가 꺾일지라도 “새”의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사랑의 “목소리”는 “온 세계”의 “아벨”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가고 있다.
     “새”가 상징하는 시인과 작가는 “자연”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용되고 있다. “새”는 전쟁의 물리적 폭력에 의해 고난을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자연이다. “새”는 “피” 맺힌 고통을 증언하는 고발자로서의 자연이다. “새”는 “아벨의 죽음”을 탄식하는 시인과 자연을 함께 나타내는 중의적 은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시인 위르겐 베커의 말과 같이 “자연은 곧 詩 Natur-Gedicht”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시’를 “역사적 현상과 사건을 다루는 시”라고 정의했던 발터 힌더러Walter Hinderer의 견해에 따르면 헤세의 시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는 ‘정치시’의 성격을 가진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비판과 혐오, 전쟁으로 인하여 “죽음”을 강요당하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비애감, “카인”의 “화살”을 피하여 “새들이 도주하듯이” 세계 곳곳으로 망명을 떠나는 작가들에 대한 연민, 현실인식과 반전反戰의식을 공유하는 그들의 연대의식 등을 근거로 삼는다면 헤세의 시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는 ‘정치시’라고 부를만한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역사의식, 반전의식, 생태의식이 조화롭게 융합된 정치시”라고 명명해본다. 그 무엇보다도 생태계의 유기체적 시스템을 파괴하고 사람과 자연 간의 생명선生命線을 단절시키는 메가톤급 폭력의 근원이 “전쟁”임을 고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는 생태시의 면모를 갖춘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 기념 박물관에 전시된 책상과 타자기. 
    그의 창작활동에 직접 사용한 사물들이다.
    벽면은 헤세의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다.  

     

    새들은 ‘나’의 형제
     - 고진하의 「프란체스코의 새들」

    1953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한 시인 고진하. 그는 강원도 산골에서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며 ‘청빈’을 몸소 실천해왔다. ‘가난’의 성직자 聖 프란체스코처럼 고진하 목사가 가졌던 ‘소박함의 용기’는 ‘소유’를 포기하는 것과 ‘소비’를 최소화하는 일이었다. 욕망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는 성직자의 길은 프란체스코의 일생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만물을 형제와 자매로 감싸 안는 일이었다. 목사 고진하의 인생은 기독교 정신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만물에 대한 박애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필자(송용구)가 명명한 “만물에 대한 박애주의”는 시인 고진하의 시를 움직이는 근원적 에너지가 되었다. 그는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만물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생동감 넘치는 시어詩語로써 재생하는가 하면, 하나의 종種과 다른 종 사이의 공생을 유지시키는 “생명선生命線의 미세한 떨림”을 고요한 시어로써 어루만져 보기도 했다. 그가 20년 이상 가꾸어왔던 ‘시’의 나무로부터 변함없이 수확하여 독자에게 안겨준 열매는 “생태주의적 생명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생태주의적 생명의식”을 동시대의 시인들과 함께 공유하려는 고진하 시인의 소명의식이 한국 문단에서 “한국적 생태시”의 지평을 여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문학평론가 이경호와 함께 1991년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생태엔솔로지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를 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태위기’의 시대에 직면한 시인들의 문학적 대응 방식을 다양하게 모색하려는 그의 소명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집이다. 고진하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프란체스코의 새들』을 비롯해 『우주 배꼽』, 『얼음 수도원』이 있다.

     

    ‘새들’을 “형제”라고 부르며
    ‘새들’에게 설교하는 聖 프란체스코


    새벽 명상을 하다 문득 天上에선 듯 쟁쟁하게 울려오는새소리를 들었다 가는 귀먹은 늙은 하느님,쿨쿨 코골며 새벽 단잠을 즐기는 젊은 것들이야 듣건 말건청정한 새벽 숲속을 울리는소쩍새, 뻐꾸기, 찌르레기 구슬픈 울음 소리……그 사이로가끔씩 웬, 맑은 은방울 굴리는 새소리도 들렸다(저 새소리가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 藥이……?)오, 그렇다면 올빼미 박쥐 굼벵이 등어둠 속에서 퍼드덕거리며 꿈틀대는 진귀한 神樂들을어렵사리 구해다 먹고도肝에 달라붙은 암덩어리를 어쩌지 못해싸리 가지처럼 빼빼 말라 죽어가는그녀에게, 나는 왜, 저 은방울 굴리는 목소리로차라리 그대 한 마리 새가 되어 푸드득 날아다오,말해주지 못하고 새벽마다징징 지렁이 울음 소릴 흉내내고 있는 걸까아아, 그러나 나는저 아시시의 聖者처럼 지상의 병든 새들을 불러드넓은 가슴에 품어안지 못해도내 얇은 귓바퀴에 소리의 화살이 되어 정겹게 날아드는황홀한 새소리에 취해어둡고 음울한 지렁이 울음 소리를 잠시 거둔이 청정한 새벽 숲속

     - 고진하의 「프란체스코의 새들」


    *「프란체스코의 새들」: 199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한 고진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天上에선 듯 쟁쟁하게 울려오는 새소리”는 “새벽 명상”에 침잠하고 있는 시인의 영혼 속에 “맑은” 빛을 쏟아붓는다. “은방울 굴리는 새소리”는 실개천의 실로폰 소리처럼 시인의 영혼 속에서 청아하게 흘러가지만 “소쩍새, 뻐꾸기, 찌르레기”의 합창소리는 빛무리의 융단 폭격처럼 “숲”에 녹색의 불을 지르기도 한다. ‘새’라는 종種은 저마다 “소리”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숲”의 오케스트라처럼 “소리”의 교향악 속에 하나의 화음으로 녹아들어 바다를 닮은 하늘 속에 합류한다. 찌르레기, 뻐꾸기, 소쩍새 … 서로 다른 “새들”의 개별성, 독립성, 다양성이 변주곡의 울림처럼 “숲”을 “새소리”들의 생태계로 변용시킨다.
     때로는 “새들”의 아카펠라에, 때로는 “새들”의 관현악 연주에 영혼의 귀를 기울이는 존재가 곧 시인이다. 그는 중세 “아시시의 聖者” 프란체스코를 닮았다. 프란체스코는 「태양의 노래」에서 “주여, 내 자매인 물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 주여, 내 자매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 주여, 내 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라고 노래하였다. 린 화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생태파괴의 근본적 책임을 기독교에 전가하는 것에 대한 반론은 곧 “프란체스코”의 삶이다. 기독교의 자연친화적 생태의식을 대표하는 모델은 “프란체스코”다.    
     그렇다면 “새”, “올빼미”, “박쥐”, “굼벵이”를 포함하는 자연의 모든 종種을 하느님의 피조물이자 자신의 형제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삶은 프란체스코의 현현顯現이자 ‘시의 길’이기도 하다. “아픈 이들”의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육신의 질병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이 “새소리”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은 새와 나무와 숲과 사람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생명선生命線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이 만물 사이에 서로 돕는 ‘상호의존’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시인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 프란체스코와 시인 사이에 생명친화적 연대의식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프란체스코처럼 “지상의 병든 새들을 불러 드넓은 가슴에 품어안지”는 못할지라도 나뭇잎을 파랗게 물들이는 “황홀한 새소리”가 사람의 영혼과 내면을 “청정”케 하는 “신약神藥”임을 알고 있는 시인의 지식은 프란체스코의 지식과 다르지 않다. ‘집’ 안에서 동거하는 한 형제가 다른 형제를, 한 자매가 다른 자매를 도울 때에 ‘집’은 가정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듯이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새들과 시인, 새들과 프란체스코, 자연과 사람이 서로 돕는 생명선生命線의 상호작용을 그치지 않을 때에  ‘녹색의 집’인 생태계는 하느님의 에덴 동산으로 회복될 수 있다.
     『성서』의 「요한 일서一書」4장에서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말하였다면 시인에게는 ‘시가 곧 사랑’이다. “하느님”의 성직자 프란체스코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새들”을 품어안았듯이 ‘생명’의 성직자인 시인은 시의 “가슴”에 자연을 근친으로 끌어안고 있다. 올빼미, 박쥐, 굼벵이를 생명을 가진 피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병病에 잘 드는 “약”쯤으로만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시인의 눈에 안타깝게 비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생명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늑대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는 聖 프란체스코.
     


    ‘언어’ 가족의 집, ‘문화’ 가족의 집 ‘생태계’여! 
     - 에른스트 얀들의 「대척자對蹠者들」


    오스트리아 시인 에른스트 얀들.
    독일어권 문단에서는 ‘구체시具體詩’의
    중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192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시인 에른스트 얀들Ernst Jandl. 그는 실험적 ‘전위시’의 달인이었다. 도형, 그림, 몽타쥬, 콜라쥬 등 다향한 실험형식을 통하여 ‘언어’를 절대적 의미체계로부터 해방하는 시를 썼다. 그러므로 독일문단에서는 오이겐 곰링어, 헬무트 하이센뷔텔 등과 함께 ‘구체시具體詩’ 운동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언어의 자유화를 통하여 개별적 존재의 ‘독자성’과 개체의 ‘독립성’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얀들은 사람, 자연, 사물 상호 간의 모든 위계 질서, 지배 구조, 종속 구조를 ‘해체’하려고 하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가 극복하려고 했던 “종속의 식민구조”가 얀들의 시 안에서 ‘해체’ 되고 있다.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식민구조, 한 남성에게 종속된 다른 남성의 식민구조, 사람에게 종속된 자연의 식민구조, 하나의 사물에게 종속된 다른 사물의 식민구조가 얀들의 시 안에서 와해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생태주의’ 패러다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해체’의 양상 때문이다. 절대적 의미체계의 해체와 ‘종속 구조’의 해체는 모든 개별적 존재들의 ‘공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서 나타나는 건축학적 이미지, 회화적 이미지, 음악적 이미지는 ‘해체주의’의 자연스러운 열매다. 2000년 6월 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1997년 ‘루흐터한트 문학출판사’에서 간행한 『에른스트 얀들 시전집』(전10권)이 있다.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책상 하나
    그리고 그 밑에
                 바닥 하나
    그리고 그 밑에
                 방 하나
    그리고 그 밑에
                 지하실 하나
    그리고 그 밑에
                 지구 하나
    그리고 그 밑에
                 지하실 하나
    그리고 그 밑에
                 방 하나
    그리고 그 밑에
                 바닥 하나
    그리고 그 밑에
                 책상 하나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장
    그리고 그 밑에
                 종이 한 장

     - 에른스트 얀들의 「대척자들」전문


    *「대척자들 Antipoden」: 『에른스트 얀들 시전집』(1997)과 문학전집(1990)에 수록된 작품이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관점으로 얀들의 시를 바라보면 한결 이해하기 쉬워진다. ‘나’ 중심의 ‘주체’ 속에 갇혀 있던 ‘나’ 자신, 여성, 남성, 자연, 생명체, 사물 등을 ‘주체’로부터 해방하는 ‘탈주체’의 경험을 통하여 사물, 생명체, 자연, 남성, 여성을 각각 독립적 존재인 ‘타자他者’로 인정하고, ‘타자’와의 ‘차이’를 존중함으로써 상호 간의 소통의 길을 열어나가는 현대적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얀들의 시는 ‘생태계의 마이크로코스모스’ 역할을 한다. ‘생태eco’라는 낱말은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파생되었다. ‘오이코스’는 ‘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는 자연과 사람이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얀들의 시 안에서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사람, 개별적 존재로서의 생명체, 개체로서의 사물, 개체로서의 언어․문장․낱말, 개체로서의 ‘문화’가 각각 독립적 존재로서 ‘타자’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얀들의 시는 개별적 존재들과 개체들이 공존하는 사회이자 ‘집’이다. 때로는 개인으로서의 사람과 개체로서의 생명체가 동등한 수평관계를 이루며 공생하는 ‘집’이 곧 ‘시’다. 때로는 개체로서의 낱말들이 모여 살고, 개체로서의 문장들이 협력하는 언어의 ‘집’이 곧 ‘시’다. 시가 ‘언어 간의 네트워크’가 되는 것이다. ‘언어 간의 네트워크’는 ‘문화 간의 네트워크’로 변용된다. 따라서 에른스트 얀들의 시는 ‘사람과 자연의 생태사회’, ‘생물의 생태계’, ‘사물의 생태계’, ‘언어의 생태계’, ‘문화의 생태계’를 압축시킨 생태계의 zip 파일이다. 그의 시는 개체의 독립성과 ‘관계’의 상생相生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집’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시 「대척자들」에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두 지역은 “대척자”이면서도 각각 독립적 세계다. A 지역의 언어는 B 지역의 언어와 서로 “대척”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생태 언어학’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두 지역의 언어는 각각 독립적 언어의 종種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A 지역 ‘언어’의 입장에서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B 지역의 언어가 ‘나’와는 다른 ‘타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A 지역의 언어와 B 지역의 언어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인정하고 “대척” 언어의 장점을 서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때에 두 지역의 언어는 “대척”을 상극이 아닌 소통의 연결고리로 삼게 된다. ‘언어 종種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지구”는 ‘언어 생태계’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된다. 얀들의 시는 ‘언어 생태계’를 축소시킨 압축 파일의 역할을 맡게 된다. A 지역의 “종이”에 기록된 A 지역 사람들의 언어는 B 지역의 “종이”에 기록된 B 지역 사람들의 언어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언어적 에코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글로벌 대안문화의 비전이 빛나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박사였던 에른스트 얀들의
    창작활동과 교육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에른스트 얀들 공원’의 안내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위치해 있다. 
               


    ‘언어 생태계’의 오염과 한국어 종鍾의 ‘말살’을 막는 ‘모국어 교육’
      - 박노해의 「영어회화」

    1958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한 시인 박노해. 그는 노동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서 살아왔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 섬유, 금속, 화학, 운수, 정비 공장을 편력하는 동안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하층 민중에 대한 연민을 키워왔고, 그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항거의 길을 걸어왔다. 1984년에 출간된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그의 ‘노동 현장’ 체험과 저항의식의 결합에서 잉태된 노동문학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98년  ‘특별 사면’을 받은 후 세계 각지를 돌며 반전反戰운동과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 등은 박노해 시인이 펼친 ‘글로벌 평화나눔’의 뚜렷한 증거다. 특히 ‘생명․평화․나눔’을 추구하는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중심으로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대안적 삶의 비전을 제시한 것은 생태운동 및 생명운동과 연결되어 그의 시세계를 ‘보편적 참여문학’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박노해의 시세계를 지탱하는 토대는 ‘휴머니즘’, ‘반전의식’, ‘생태의식’, ‘생명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노동의 새벽』(1984), 『참된 시작』(1993), 『겨울이 꽃핀다』(1999) 등이 있다.   

    누나는 못 배워서
    무식한 공순이지만
    영석이 너만은 공부 잘 해서
    꼭 꼭 훌륭한 사람 되거라
    하지만 영석아
    남 위에 올라서서
    피눈물 흘리게 하지는 말아라
    네가 영어공부에 열중할 때마다
    누나는 노조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가 생각난다
    부유층 아들딸들이 유치원서부터
    영어회화 교육에다
    외국인학교 나가고
    중학생인 네가 잠꼬대로까지
    영어회화 중얼거리고
    거리 간판이나 상표까지
    꼬부랑 글씨 천지인데
    테레비나 라디오에서도
    영어회화쯤 매끈하게 굴릴 수 있어야
    세련되고 교양있는 현대인이라는데
    무식한 공순이 누나는
    미국 전자회사 세컨라인 리더 누나는
    자꾸만 자꾸만 노조에서 배운
    우리나라 역사가 생각난다

    말도, 글도, 성도, 혼도 빼앗아 가고
    논도, 밭도, 식량도, 생산물까지
    마침내 노동자의 생명까지도
    차근차근 침략하던 일제하
      조선어 말살
      생각이 난다
    미국 전자회사 세컨라인 리더 누나는
    컨베이어 벨트에 밀려드는 부품에
    QC활동에 칼처럼 곤두설수록
    조선어 말살
    생각이 난다     

      - 박노해의 「영어회화」


    *「영어회화」: 1984년 ‘풀빛’에서 간행한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수록된 작품이다. 독일 시인 에른스트 얀들의 시 「대척자들」은 ‘언어 생태계’를 축소시킨 마이크로코스모스였다. 얀들의 시는 ‘문화 생태계’의 은유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박노해의 시와 에른스트 얀들의 시는 ‘언어 생태계’ 및 ‘문화 생태계’의 평형을 깨뜨리는 ‘영어제국주의’ 현상과 ‘문화제국주의’ 현상에 능동적으로 맞서 항거하는 ‘생태언어학적 생태시’이자 ‘문화생태학적 생태시’로 명명될 수 있다.
     지금은 언어학자 로버트 필립슨이 명명한 “영어제국주의”가 한국의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어제국주의’에 의해 ‘언어 생태계’와 ‘문화 생태계’의 평형이 교란되고 있음에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개인들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식민문화’를 길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돌아보아야 할 상황이다. ‘언어 식민지’와 ‘문화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한국의 ‘언어 생태계’와 ‘문화 생태계’의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시 「영어회화」는 “영어 교육”의 득세와 ‘모국어 교육’의 약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시인은 일제 치하의 “조선어 말살” 사건을 환기시킨다. 해방 이전의 “조선어 말살”이라는 구시대적 사건이 도대체 “영어 교육”에 대한 오늘의 비판의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시대와 사건은 달라졌어도 언어교육에 대한 시인의 패러다임은 “우리 나라 역사”의 내부를 환히 들여다 본다. 박노해의 비판의식은 “영어 교육”의 유행 풍조로 인하여 모국어의 생명력이 상실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우러나오는 ‘문화적 저항’이다. 박노해는 ‘문화제국주의’, ‘언어제국주의’, ‘영어제국주의’ 현상이 대한민국의 ‘언어 생태계’와 ‘문화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문화 식민지’이자 ‘언어 식민지’로 길들여져 가고 있다는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을 박노해의 시에서 발견하게 된다.
    한국종韓國種 문화 콘텐츠와 외래종外來種 문화 콘텐츠가 ‘공생’해야만 한국내의 ‘문화 생태계’가 건강해질 것이다. 문화 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한국 문화의 발전과 외국 문화의 발전을 병행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강대국의 외래종 ‘문화 콘텐츠’가 한국의 학계, 산업계, 예술계 등을 장악하여 한국종 ‘문화 콘텐츠’와 유럽 및 제3세계에서 유입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잠식해들어가는 현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박노해의 시 「영어회화」에서 고발되고 있는 이러한 현실상황은 ‘문화제국주의’, ‘언어제국주의’, ‘영어제국주의’의 침입으로 인하여 한국의 ‘문화 생태계’ 및 ‘언어 생태계’가 “차근차근 침략”되고 있는 상황과 일치한다.
    그러나 시인이 “영어를 배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 「영어회화」를 ‘영어배척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시인은 국수주의자도, 쇄국주의자도 아니다. 시에서 드러나듯이 “영어공부”와 “영어회화 교육”에 전적인 비중을 쏟아 붓는 ‘영어 일방주의 교육’과 ‘영어지상주의 교육’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모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고 다양한 외국어들에 대한 관심과 학습의 기회를 차단하는 국가정책과 사회적 환경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언어교육의 현실’을 개혁해나가자고 한국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해의 시 「영어회화」를 움직이고 있는 ‘언어교육’의 패러다임은 ‘생태 언어학’과 ‘문화 생태학’의 관점에 근접해 있다. 비록 박노해 시인이 생태주의에서 파생된 이 두 가지의 새로운 학문 종種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여도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베리 카머너를 위한 시詩 아닌 글」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1944년 독일의 베츨라르Wetzlar에서 출생한 시인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Hans-Christoph Buch. 그는  시, 에세이, 단편 소설, 라디오 방송극본 및 TV 드라마 극본, 문학비평, 사회비평 등 ‘글쓰기’의 모든 분야에 능통했던 문학 귀재였다. 1960년대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는 서독의 ‘68 운동’과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다수의 사회비평적인 글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로볼트Rowohlt’ 출판사의 편집인으로서 문예지 『문학 매거진』을 발간하였다. 1972년에는 시인 발터 휄레러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베를린 공대’에서 철학박사 학위 논문을 받을 정도로 학문 연구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 후 서독과 미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담당하였고,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을 여행하는 가운데 자연체험과 문화체험의 폭을 넓혔다. ‘문화인류학’적 현상에 대한 부흐의 남다른 관심은 1980년대 카리브해 지역과의 특별한 관계로 이어졌다. 독일인이었던 부흐의 친조부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약사藥師의 삶을 살다가 아이티 여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부흐의 친조모다. 부흐의 문학작품에 아이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가족관계와 1980년대의 카리브해 체험에 원인을 두고 있다. 1990년대 부흐는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혼란과 경제 파탄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르포’와 ‘다큐멘터리’ 등의 논픽션 형태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회적 위기 현상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였다. 부흐의 비판적 지성은 독일의 사회문제를 넘어 전세계의 사회문제를 문학의 소재로 삼았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지구촌의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것도 그의 비판정신이 낳은 자연스러운 산물이었다.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대표적 작품집으로는 『새로운 세계에서』(1975), 『(아이티)포르토프랭스의 결혼식』(1984), 『카리브해의 찬 공기』(1985), 『세계의 새로운 무질서』(1996), 『아프리카의 카인과 아벨』(2001), 『아프리카의 블랙박스』(2006), 『(쿠바)아바나에서의 죽음』(2007), 『아프리카의 묵시록』(2011) 등이 있다.


    1952년 런던 상공에 하얗게 피어오른 구름떼가
    불과 일주일만에 성인 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그 구름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스모그,
    이것은 스모크(연기)와 포그(안개)를 합쳐놓은 이름이다
    (화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산화황과 질산이 결합된 물질로서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흔히 광화학 스모그라고도 한다)

    1976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2200여명이 죽어갔다. 1945년 원폭피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1950년대에 이어진 핵실험의 희생자들은
    (유산된 아기들과 기형아들을 제외하고서도)
    전 세계에 걸쳐 수십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이후 북극의 빙벽에서는
    방사능이 현저히 증가하여
    앞날을 불안하게 하였다. 
    (특히 에스키모들과 유럽 북단의 라플란드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록의 고기를 먹고 살고,
    순록은 이끼를 먹고 살며,
    이끼는 대기大氣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1964년 전투 편대의 한 비행기가
    노스 다코타 주州 상공에서 폭탄 두 개를 분실하였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파괴력을 1000배 능가하는 폭탄이었다.
    자동 점화장치를 제어하기 위해 마련된
    4중 안전 시스템은
    세 번이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노스 다코타 주州 먼데인 회사의 우유에서
    갑자기 방사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30마일 떨어진
    태평양 밑바닥엔
    방사성 폐기물을 담은 통들이 쌓여있다.
    1945년 이후 미국 원자력 위원회가 이곳 태평양에
    통들을 가라앉힌 것이다. 구멍난 다수의 폐기통에서
    방사능이 새어 나왔다.
    미 해군 잠수부가 어느 하나의 폐기통 위에서
    어마어마한 해면海綿을 발견하였는데,
    그 잠수부는 해면을 물 위로 끌어올리려 시도하다가
    그만 상어떼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 글은 결코 시詩가 아니다

     -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베리 카머너를 위한 시詩 아닌 글」


    *「베리 카머너를 위한 시詩 아닌 글 Kein Gedicht für Barry Commoner」: 197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1981년 ‘뮌헨’ 市의 체. 하. 베크C. H. Beck 출판사에서 간행한 생태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제4장 ‘공업’ 편에 재수록 되었다. 필자는 제6회 연재에서 만났던 한국 시인 김용락의 시 「대구의 페놀 수돗물」을  “교육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르포’를 차용한 논픽션的 생태시”라고 정의했었다. 그렇다면 독일 시인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시 아닌 글」도 필자의 이러한 개념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차용한 논픽션的 생태시 ”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부흐가 작품 제목에서 밝혔듯이 이 시의 언술방식은 반시反詩적이다. 1945년 이후 지구 곳곳에서 전개된 환경파괴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라는 논픽션의 형태로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발’을 통하여 생태문제를 지구촌의 사회문제로 부각시켰고, 전세계인의 공동 대처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흐의 「시 아닌 글」은 그의 ‘사회비평’ 정신이 낳은 문학적 산물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문학적 산물’이라는 필자의 발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시 아닌 글」에서 외관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언표言表는 논픽션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오염․원폭피해․방사능오염 사건이 발생 년도 및 통계 수치와 함께 정확히 재생되는 까닭에 다음과 같은 독자의 비평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이 독일 작가도 자신의 글에 ‘시 아닌 글’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지. 어떻게 이런 글이 ‘문학적 산물’이 될 수 있는 거야?”라고. 
     그러나 언어 속에 숨겨진 시인의 문학적 의도를 들여다 보자. 마지막 시행詩行의 “이 글은 결코 시가 아니다”라는 부흐의 독백은 반어적 표현이다. 생태계의 자정능력에 빨간 불이 켜지고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생태위기’로 인하여 세계 곳곳에서 재앙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 대하는 모든 작가들이 이제는 더 이상 ‘예술지상주의’에 집착할 수 없다는 반성적 시론詩論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글은 결코 시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모든 작가들의 소명의식을 일깨우는 ‘참여문학’적 선언이다. ‘언어’라는 청진기를 통해 자연의 병든 몸을 진단하고 자연을 치유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소명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명’ 속에는 인류의 멸망과 생물의 멸종을 경고하는 예언자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의 작가들이 ‘생태위기’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환경오염과 생태파괴의 실상을 가공 없이 재생하고 고발해야만 하는 책임이 뒷따른다.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들이 전통적 예술관에 집착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고수하려 든다면 우려되는 현상은 무엇일까? 언어 속에 예술적 기법과 기교가 반영될수록 ‘생태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비판의식을 이끌어내기도 어렵다는 것이 부흐의 우려섞인 견해다. 다큐멘타리와 르포와 같은 고발적 성격의 언술방식을 차용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독일 시인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시 아닌 글」은  논픽션과 픽션 간의 경계를 허무는 현대적 참여문학의 모델이다.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더 멀어져가는 이 시대에 문학의 생명력을 지켜내고 문학의 대중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도 ‘논픽션의 픽션화化” 작업은 꼭 필요하다.

     

    ‘실어증’에 걸린 시詩 
      - 노유섭의 「시인」

    1952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한 시인 노유섭. 그는 1973년 월간 『풀과 별』에 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노유섭은 1994년 광주 지역의 시인들과 함께 ‘녹색시’ 동인회를 결성하여 생태의식과 환경의식을 형상화하는 길을 걸어왔다. 노유섭의 이러한 문학적 행보는 1990년대 초 한국 시단의 주류로 떠오른 생태시와 생명시의 물줄기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생태의식은 ‘문학’이라는 몸을 지탱하는 정신적 뼈대 역할을 맡아 왔다. 필자의 평評을 증명할만한 문학 콘텐츠가 있다. 1999년 ‘시와시학사’에서 간행한 노유섭 시인의 시집 『아름다운 비명을 위한 칸타타』. 이 시집에 대하여 허형만 시인은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생명중심주의의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라고 해설한 바 있다. 허형만 시인이 규정한 이 시집의 성격은 사실상 노유섭 시인의 문학 전체를 포괄하는 경향이자 그의 문학적 뇌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물질만능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인간성 상실의 현상에서부터 환경오염과 생태파괴의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유섭은 ‘녹색시’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이러한 현실인식의 토대 위에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애의 손길로 자연의 모든 생명을 보듬어 안으려는 ‘생명중심주의’의 패러다임이 노유섭의 생태시를 키워낸 혈액이 되었다. 그의 생태시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그의 ‘생명중심주의’ 패러다임은 나무 속의 ‘식수 공급차’이자 수액樹液이 아니겠는가?(오규원의 시 「나무 속의 자동차」참조). 노유섭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풀잎은 살아서』, 『아름다운 비명을 위한 칸타타』, 『눈꽃으로 내리는 소리』등이 있다.


    아직도 비와 눈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지만
    비도 눈도 그냥 맞을 수 없고
    아직도 거리는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추억의 길은 끊기고 숨이 막힌다
    뉘라서 그 겨울날의 황새떼처럼 기쁜 날들을
    다시금 노래할 수 있을까
    아득한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에 취해
    시인은 길 위에서 길을 잃고
    폐수와 분뇨로 된 물을 마시면서
    아득한 굴뚝연기를 보고
    낙엽처럼 그만 손을 놓아 버렸는지
    이제는 아름다운 말들을 빚어내지 못한다.
    실어증에 걸렸는지, 넋을 잃었는지
    천식을 앓으며 시인은
    오색빛 고운 꿈을
    발처럼 엮어내지 못한다.
    병든 고기마냥 두 눈을 꿈벅거리며
    아직도 그리움은, 추억은 남아 있지만
    그립고 외로웠던 날들의
    비가 오고, 눈도 내리지만
    호수는 별을 잠그지 않고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

     - 노유섭의 「시인詩人」전문


    *「시인詩人」: 1999년 ‘시와시학사’에서 간행한 노유섭 시인의 시집 『아름다운 비명을 위한 칸타타』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 독일 시인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작품 「시 아닌 글」의 마지막 시행에서 “이 글은 결코 시가 아니다”라는 발언과 의미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시대는 더 이상 낭만주의적 서정시 혹은 자연친화적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강조하는 반어의 접점을 발견하게 된다. 노유섭과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두 시인의 마지막 시행은 현실적 자연관에서 우러나오는 리얼리즘의 시학이 필요함을 말해주는 반어적 시론詩論이 아니겠는가?
     독일 시인 위르겐 베커는 그의 시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주게나」에서 “멀지 않아 창문을 열 수 있는 것도 특권이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미래의 파국을 경고하였다. 베커가 인류에게 내미는 시적詩的 ‘옐로우 카드’는 1995년 5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열린 ‘한․독 작가회의’에서 “지금의 시대는 단순하고 소박한 서정시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베커의 발언을 상기시킨다. 이형기 시인의 생태시 「전천후 산성비」에서 목격하였듯이 우리는 “비도 눈도 그냥 맞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구슬 같은 “비”와 꽃잎 같은 “눈”은 “추억”의 동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만 남게 되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 이제 그것은 말로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위르겐 베커의 비판적 탄식은 노유섭의 시와 함께 비가悲歌의 이중창을 울려주고 있다.
     시인의 눈길에 포착된 현실과 같이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의 잿빛 장막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예전처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들이 줄어들고 있다. 산소가 점점 더 왜소해져가는 상황 속에서 어느 ‘누가 하늘을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폐수”와 “분뇨”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은빛 제방에 막혀 물의 “길”을 잃어버린 강江을 바라보며 오늘의 시인들은 “호수”의 살결에 드리우는 맑은 “별”의 “추억”을 “다시금 노래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아름다운 말들을 빚어내지 못한다”라는 노유섭의 발언은 ‘아름다운 말을 빚어내고 싶어도 빚어낼 수 없는 시대상황 속에 살고 있다’는 현실인식을 대변한다.
     시인의 현실인식은 인류의 종말과 지구의 파멸을 경고하는 묵시록적 편지의 발신지가 되고 있다. 제7회 연재의 글에서 만났던 사라 키르쉬의 “내일 그대는 나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라는 발언과 노유섭의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는 발언은 묵시록의 반어적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다. ‘불’의 ‘천국’으로 타락해가고 있는 ‘대지’와 그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살려내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주의적 선지자의 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금빛 소비의 ‘마차’
     - 귄터 헤어부르거의 「낮의 미인」


    젊은 시절의 귄터 헤어부르거
           (1932~생존)

    1932년 독일 남부 ‘이즈니임알고이 Isny im Allgäu’에서 출생한 시인 귄터 헤어부르거Günter Herburger. ‘뮌헨 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 철학, 연극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공부를 마친 후 1954년부터 해외여행을 시작하여 마드리드, 오란 등을 떠돌며 ‘물’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러므로 ‘자연’과 ‘생태’에 대한 귄터 헤어부르거의 관심은 젊은 시절부터 깊어졌다고 볼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남부독일방송국SDR’에 근무하면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언제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헤어부르거는 ‘구체시’의 대가로 알려진 시인 헬무트 하이센뷔텔의 소개로 많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첫 작품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1963년 이후 글쓰기에만 전념하던 헤어부르거는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방송극과 영화대본 창작에도 힘썼다. 1964년부터는 가장 권위 있는 작가동맹 ‘47 그룹’의 멤버로 참여할 만큼 독일 문단의 주목 받는 작가가 되었다. 초기에는 문학비평가 디이터 벨러스호프Dieter Wellershoff에 의해 제창된 ‘신新사실주의’ 경향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1970년대 이후엔 주로 사회주의적 이상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되는 사회문제들을 비판하게 되었고, ‘생태문제’는 그 중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귄터 헤어부르거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오페레타』(1973), 『목적들』(1977), 『난초』(1979),  『입맞춤』(2008), 『풍경 속의 구멍』(2010) 등이 있다.

            
    시민계급 훈계의 채찍질
    시민계급 권력의 업적들
    시민계급 욕망의 예배들
    곧 온갖 힘들을 가지려는 의지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입니다.
    온통 황금으로 뒤덮인
    소름끼치도록 무거운 마차가
    부패한 폐기물로 가득한  
    강물 속에 빠져버리듯이.

     - 귄터 헤어부르거의 「낮의 미인」      


    *「낮의 미인Belle de Jour」: 1977년 ‘로볼트Rowohlt’ 출판사에 간행한 귄터 헤어부르거의 시집  『목적들』에 수록되었다. 시의 본문은 독일어로, 시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쓰여진 작품이다. 제목 ‘벨 드 주르Belle de Jour’는 루이 브뉘엘 감독의 1967년 영화 ‘세브린느’의 원제이기도 하다. “낮”에는 의사 부인이지만 밤에는 고급 창녀의 이중생활을 하는 “미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프랑스의 대표적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가 주연을 맡아 더욱 유명해진 영화다. 그런데, 이 ‘벨 드 주르’라는 이름은 전직前職 고급 창녀이자 의학 박사인 ‘브룩 메그난티’라는 영국 여류 작가의 필명이기도 하다. 메그난티는 의과대학 박사과정 재학 중에 학비를 벌기 위해 ‘콜걸’로서 일했던 체험담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다가 이것을 소설로 엮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 ‘세브린느’의 내용, 영국 작가 브룩 메그난티의 일화, 그리고 독일 시인 귄터 헤어부르거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belle de Jour’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물질만능의 풍조가 아닐까?         
     시인 귄터 헤어부르거는 생태파괴의 원인으로 물신주의를 지목하고 있다. 『구약 성서』에 기록된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처럼 물질, 자본, 돈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현대의 대도시. 이곳은 생태계 안에 존재하고 있으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생태위기’의 진원지가 되기 쉽다. ‘도시 계획’ 속에 자연과의 공생 정책을 포함시키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큰 곳이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계급”은 “훈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정보의 내용과 정보의 질은 시인의 비판을 비켜가지 못한다.
     “시민”이 주고 받는 정보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자본과 황금을 더 쉽게, 더 빠르게, 더 많이 쌓아 올리느냐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말(馬)이 쉴 새 없이 “채찍”을 맞고 사람에게 길들여지듯이 “시민”은 정보의 네트워크 안에서 “황금(자본)”을 증식하기 위한 “훈계”들에 익숙해진다. 그러한 정보를 가르치고 전수받는 무수한 “채찍”을 맞으며 ‘자본형 인간’으로, ‘주식형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맘몬, 즉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배금교拜金敎’의 신도로서 의식이 마비되어 간다. ‘인생’이라는 제단 위에 “욕망”이라는 제물을 바침으로써 “황금”의 축복을 얻어내려는 “시민계급”의 기형적 “예배”를 어찌해야 하는가? 계산된 “욕망”의 제물에 비례하여 거둬 들이려는 ‘소유’의 창고는 맘모스처럼 비대해진다.
     시민들의 소유 창고에 “황금(자본)”을 더 이상 쌓을 공간이 모자랄 때 시민들은 황금을 소비의 “마차”에 싣고 ‘시장市場’이라는 “강물” 속으로 몰아넣는다. 독일 시인 루드비히 펠스Ludwig Fels의 시제목과 같이 자연은 시민들에 의해 “소비 테러”를 당한다. “황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름끼치도록 무거운 마차”는 단 한 번 사용된 뒤에 버려진 “부패한 폐기물로 가득한 강물” 속에 빠져 들어간다. 귄터 헤어부르거의 시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도시인들의 ‘과잉 소유’와 ‘과잉 소비’ 문화가 기형아를 낳듯이 자연의 “부패”를 부추긴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나무야,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 함민복의 「지구의 근황」

    1951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한 시인 함민복. 그는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메커니즘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그의 시를 키우는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91년 생태엔솔로지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에 수록된 함민복의 ‘생태시’들은 생태적 생명의 문제를 ‘시의 심장’으로 삼고 있는 그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함민복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 『말랑말랑한 힘』(2005),『자본주의의 약속』(2006) 등이 있다.    


    나무를 기억한다, 사람들 가슴에 늘 푸른 붓이 되던
    나무를 사랑한다, 어디서 보나 등은 없고 가슴만 가진
    나무를 추억한다, 바람 불 때마다 여린 식물의 뿌리를 잡아 주던
    나무를 애도한다, 꿈의 하늘을 향해 서서히 솟아오르던 녹색 분수

    나무가 산다 사람들 마을에 사람들처럼
    줄을 맞추고 그 길 그 공원의 격조에 맞춰
    나무가 산다 아황산가스가 질주하는, 쾍쾍, 나무가 산다

    기름진 시멘트 산에 잡초처럼 나무가 산다 성장력 왕성한
    시멘트국에 볼모로 잡혀온 자연국의 사신처럼 나무가 산다
    시멘트가 더러 나무로 푸른 문신을 새긴다 시멘트가
    나무 반지 나무 목걸이를 하고 뽐낸다 시멘트가 나무를 다스린다

    가로수 혹은 담장, 그 푸른 시멘트의 넥타이
    철커덕
    가로수 혹은 담장, 시멘트가 자신의 목을 처단하는 푸른 오랏줄
    지구의 사지가 뻣뻣이 굳어진다
                               
     - 함민복의 「지구의 근황」


    * 「지구의 근황 」: 1991년 생태엔솔로지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에 수록된 작품이다. “나무”는 “지구”라는 몸의 살점이자 세포임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나무는 타고난 화가였다. 가지의 “푸른 붓”을 들어 “사람들”이 지닌 “가슴”의 캔버스마다 “푸른” 숨결의 멜로디를 채색하는 이가 “나무”이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의 말처럼 나무는 “등은 없고 가슴만 가졌나” 보다. 그 누구에게도 “등”을 돌릴 줄 모르고 푸른 가슴으로 넉넉히 품을 줄만 아는, 타고난 모성의 모범은 “나무”다. 거센 “바람”에 위태로이 쓰러지는 “여린 식물”의 양부養父가 되어 그의 “뿌리를 잡아 주던” 약한 이의 옹호자여. 나무여. 흔들리는 잎새들을 춤추는 음표로 바꾸어 ‘하늘 오선지’에 물방울의 점묘처럼 그려 넣던 푸른 “분수”여.
     나무는 사람과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공원’은 나무들의 다세대 주택이다. 물론, 공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나무들인 까닭에 ‘공원’은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생활공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팽창과 생산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서만 “질주”하는 메커니즘의 배기구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아황산가스”의 홍수는 ‘나무 주민’들을 질식시킨다. “잡초”처럼 무리지어 살고 있는 나무들은 예전엔 잡초만큼이나 성장력이 왕성했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안위를 염려할 때다. “시멘트국”의 위상을 뽐내기 위한 장식용으로 살아가는 “나무”는 시멘트국의 국익國益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될 수 있는 “자연국” 출신의 “볼모”다. 다른 나라의 “사신”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것을 대외에 알릴 때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처럼 “시멘트국”은 자신의 소유물이 된 “나무”로써 자신의 삭막한 외모를 치장한다. “시멘트가 더러 나무로 푸른 문신을 새긴다 시멘트가 나무 반지 나무 목걸이를 하고 뽐낸다”라는 고발에서 드러나듯이 사람의 이웃이자 동료였던 “나무”는 시멘트국의 외모를 디자인하는 장식물 신세로 전락하였다.
     “시멘트가 나무를 다스린다”는 말이 시사하듯이 시멘트국을 건설한 사람들과 나무들 사이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보게 된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적과 같이 사람들에게 종속된 나무들의 “식민구조”를 알게 된다. 생산, 개발, “성장”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나무를 “처단”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목”을 자르는 자기모순의 극치임을 모르고 있다. 나무를 살해하는 것은 “지구”의 살점을 도려내고, 지구의 세포를 녹슬게 하는 범죄다. 나무를 처단하는 것은 “지구의 사지”를 마비시키고 대재앙의 “근황”을 앞당기는 자살행위다. 소돔과 고모라의 시민들처럼 탐욕의 볼모가 된 시멘트국의 사람들이여. 나무의 안부를 잊은 지 오래된, 그대들의 “근황”에 빨간 불이 켜지려는가?
                   


    지구의 내장을 ‘들이키는’ 식욕의 ‘팽창’
     - 우베 그뤼닝의 「팽창」
          


    독일의 시인, 소설가, 정치가
    우베 그뤼닝

    1942년 폴란드 ‘파비아니체’에서 출생한 시인 우베 그뤼닝Uwe Grüning. 그는 ‘작센’ 주의 소도시 ‘그라우카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66년 이후 엔솔로지와 문예지에 시, 에세이,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였고, 마침내 1977년 첫 시집 『12월의 여행아침』을 출간하였다. 1982년 이후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우베 그뤼닝은 ‘정치’ 참여에도 열정을 기울였다. 자신의 본거지 ‘작센’ 주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일 통일의 해인 1990년 ‘기민당(CDU)’ 소속 ‘작센’ 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2004년까지 의원직을 역임하였고, 기민당의 ‘작센’ 주 대변인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풍부한 정치경험은 사회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워주었고 그의 시를 ‘사회교육의 메타포’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생태의식도 정치참여와 깊은 상관성이 있다. ‘생태위기’와 환경오염은 잘못된 정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베 그뤼닝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12월의 아침여행』(1977), 『불의 주변에서』(1984), 『누를 길 없는 방랑』(1995)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는 『고모라 市 뒤편』(1981) 등이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우베 그뤼닝의
    사회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소설집 『고모라 市 뒤편』


    우리가 돌아왔을 때, 이곳
    지구의 나이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빙하 밑에서 납작하게 바뀌어
    산들은 조용히 쉬고 있었지요.
    어떤 아라라트 산도 우리의 눈길에는
    희망의 빛을 던지지 않았지요.

    해초海草 낀 여러 웅덩이 가까이에서
    인간은 지구의 내부를 바닥까지 다 마셔버렸습니다.

    우리는 늪 바로 곁에
    우리의 입을 갖다 댔지요.
    그러나 살아있는 숨결로 뒤덮인
    거울은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젠가 한 번
    만물이 존재하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세 번째로 깨어나길
    열망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바싹 말라버린 웅덩이 위로 석화石化된 잎새들을 가진
    물푸레나무 화석이 일어섰지요.
    그 나무는 천년의 슬픔 주변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구의 표면 위로 솟아 올랐습니다.

    우리는 되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지요.
    우리도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셨답니다.
    어떤 얼음의 살갗 같은
    어둠이 덮인 혹한酷寒을 우리는 목격했지요.

    옛날의 것과 동일한 텍스트가 세계와 언어를
    품어 감싸고 있는 것이 기억 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알아차렸습니다. 그 텍스트가
    어떻게 생명을 죽이고 갈기갈기 찢어놓았는지를.  
                 
    - 우베 그뤼닝의 시 「팽창」전문.
     『작은 것이 위대하다 - 독일 현대시 읽기』(박설호 지음) 참조.


    *「팽창 Dilitation」: 한국 시인 함민복이 경고했던 대재앙의 ‘근황’이 독일 시인 우베 그뤼닝의 시에서 완전한 파멸의 근황으로 “팽창”하고 말았다. “지구”의 종말, 인류의 멸망, 생물의 멸종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원인은 인류의 “팽창”된 탐욕이라는 것을 시인 우베 그뤼닝은 시종일관 비참한 분위기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는 함민복이 예견했던 지구의 죽은 ‘사지四肢’에 대한 진혼가다. 시의 화자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영화 「혹성탈출」에서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유영하다가 지구로 “돌아온” 우주인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 비친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계산한다면 최소한 수백만 년쯤은 흘렀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물론 물리적 시간이 얼마나 경과되었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 현상은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지구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활력으로 넘쳐 흐르던 “산들”은 묘지의 시신屍身처럼 “쉬고” 있다. 아황산가스와 이산화탄소의 연합으로 인해 증폭된 ‘지구 온난화’의 기운이 쓰나미처럼 지구를 강타하여 북극과 남극의 얼음 무리를 “지구” 전체에 방생하였다. 지구의 모든 피조물들은 옛 빙하기의 맘모스처럼 냉혈 박제의 운명이 되어 거대한 노천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성경』의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류를 징벌하기 위해 ‘대홍수’의 심판을 내렸다고 한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 커플을 ‘방주’ 안에 태워 구원한 뒤에 지금의 터키 땅에 있는 “아라라트” 산꼭대기 위에 방주를 안전하게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찾아온 새로운 ‘빙하기’의 ‘심판’ 앞에서는 어떤 방주도, “어떤 아라라트 산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줄 수 없다. “팽창”해버린 인간의 탐욕스런 “입”이 지구의 내장을 “바닥까지도” 남김없이 파먹어버린 까닭에 지구의 재생능력이 고갈된 것이다. ‘빙하기’로 첫 번째 멸망의 잠에 빠져들었던 태고 시절의 지구도, ‘대홍수’로 두 번째 멸망의 잠에 취했던 원시시대의 “지구”도 타고난 자생력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깨어” 났었다. 그러나 ‘생태위기’의 쓰나미를 타고 지구 전체를 범람해버린 새로운 ‘빙하기’의 동면冬眠으로부터는 그 어떤 “생명”도 “깨어날” 줄 모른다. 지구는 “세 번째” 멸망의 잠에서 깨어날 능력을 잃어버렸다. 한국 시인 함민복이 수소문했던 나무의 안부와 ‘지구의 근황’에 대해 독일 시인 우베 그뤼닝은 나무의 멸종과 지구의 사망으로 답신을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베 그뤼닝의 시 「팽창」은 탐욕의 “팽창”으로 인하여 맞이할 수도 있는 지구의 멸망을 막아내기 위해 인류 전체에게 보내는 ‘시적詩的 경고의 사이렌’이다. “살아있는 숨결로 뒤덮인” 지구의 초록색 “거울”이 “석화石化된 숨결”의 회색 무덤으로 바뀌는 것만큼은 우리의 모든 “숨결”을 모아서 막아내야만 한다는, ‘시적 묵시록의 옐로우 카드’다. 원시 시절부터 “동일한 텍스트”처럼 전승되어 왔던 인류의 탐욕을 더 이상 “팽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축시켜야 함을 권고하는 사회교육의 메타포가 우베 그뤼닝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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