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獨 생태시인 100인_송용구
  • ▶ <韓獨 생태시인 100인>쏘아 올린 화살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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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한국과 독일의 시인들 10인(5)
    쏘아 올린 화살의 귀환

     

     

    송용구(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 시인: 이기철, 이문재, 위선환, 김상미, 배한봉
    *독일 시인: 넬리 작스, 예르크 칭크,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에리카 라우슈닝,  울리 하르트

     

     


    “자연으로 돌아가라.”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행위가 사람에게 행복이 아닌 불행을 안겨 주리라는 것을 루소는 일찍이 간파하였다. 문명의 발전을 급진적으로 추진할 때에 자연은 도구로 전락할 것이며, 이러한 자연의 도구화는 사람과 자연의 상생을 파괴하여 사람의 불행과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를 문명의 발전을 반대한 인물이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사람의 이성에 의한 문명과 역사의 발전을 신뢰하는 대표적 계몽주의자였다. 다른 계몽주의자들과 비교해볼 때 루소가 갖고 있었던 비판의식은 ‘속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문명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진정한 이성의 길이었다. 급진적으로 치닫는 문명의 발전 속도를 점진적 속도로 늦춘다면 자연을 돌아볼 여유를 얻는 동시에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루소의 문명관이자 자연관이었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발언은 18세기 후반 독일의 젊은 시인들에게 정신적 동기를 제공함으로써 ‘질풍노도’ 문학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서부터 독일의 ‘자연시’와 ‘자연문학’의 모체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생태시’의 뿌리도 ‘자연시’다. 양쪽 시 형태의 출발점은 다르지 않다. 자연을 소재의 중심으로 수용하고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시의 테마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생태시도 자연시의 한 갈래인 것이다. 그렇다면 생태시는 자연시와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필자(송용구)는 자연시와의 관계 속에서 생태시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해본다. “생태시는 자연시가 갖고 있는 낭만주의 전통을 극복하고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게 된 비판적 자연시이자 리얼리즘적 자연시”라고.

    무엇보다도 생태시가 자연시에 대하여 갖는 변별점은 생태시의 정신적 토대인 ‘생태주의’라는 사상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자연시는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벗어나서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며 시인의 관념적 상상 속에서 자연을 변용變容시키는 경향이 우세하였다. 생태주의 관점으로 이러한 문학경향을 비평한다면 ‘자연’은 사회와의 관계가 단절된 시인의 은신처이자 도피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 뮌헨 대학교의 ‘정치-생태학’ 교수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타쉬P. C. Mayer-Tasch에 의해 유럽 문단과 학계에 처음 제시되었던 ‘생태시’의 성격에 따르면 ‘자연’은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세계다. 자연과 사람의 유기적 ‘상호의존’ 관계가 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은 1866년 독일의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발표했던 ‘생태학’의 개념과 일치하고 있다. 헤켈의 ‘생태학’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의 학술용어로써 사용되어 오다가 환경문제가 전세계의 사회문제로 떠오른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인문과학 및 사회과학의 사고방식과 연관성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생태학’은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과 함께 소통하는 가운데 ‘생태학적 사상oekologische Gedanken’으로 발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생태학적 사상’을 우리는 ‘생태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제5회 연재의 글에서는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사회의식이 선명히 나타나는 한국과 독일의 생태시 10편을 초대하였다. 이문재와 예르크 칭크 등 한국과 독일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묵시록은 생태적 사회의식을 잃어버린 모든 현대인을 향해 띄우는 경고의 편지다.

    이 기획 연재의 글은 저서로서 출간이 예정된 글이다. 인용을 제외한 표절을 삼가주시길 부탁드린다.(해설과 번역: 송용구)

     

     

     

    사랑의 순환

    - 이기철의 「봄날」

     

     

    내게 하늘의 길 가르친 이 없어

    나는 지상의 길을 걸어간다

    개나리꽃이 지기 전에 완성하리라던 봄은

    짧은 편지 몇 통 끝내기도 전에 지나가버렸다

    완성이 순금의 빛깔이라면 미완은 옥토의 빛깔이다

     

    내 부르는 노래가 사람의 마음 속에 닿지 않는다면

    슬픔이지만

    내 가슴의 모음들이 닭과 오리의 발등에 닿을 수만 있다면

    즐거우리

    길가의 떼질레꽃이 봄을 가득 채운 뒤 시들어 떨어지듯이

    완성은 완성 다음의 공허를 두려워한다

    누가 슬기의 햇빛을 모아 지혜의 첨탑을 쌓겠는가

     

    걸어가면서 상한 것 병든 것의 이름도 불러주며

    미완을 포개 하루를 엮으면

    그때 쥐어보는 돌들과 나무들은 따뜻하리라

     

    - 이기철의 「봄날」전문

     

     

    *「봄날」: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한 시인 이기철. 그는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해왔다. 199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대표적 시집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세상 만물의 조화로운 화합과 소통을 서정적 언어로 노래한 시집이다. ‘새’와 ‘나무’를 비롯한 모든 생물이 마을의 주민처럼 모여서 살아가는 가운데 사람을 가족으로 끌어 안고 있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의 품 속에 안겨있듯이 사람은 자연의 품 속에서 살아간다. 이기철의 시에서 사람은 자연의 파트너이자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자연시’의 전통적 성격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일반적 자연시와는 다른 이기철 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태적 생활방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연’이라는 녹색 매체를 통해 정신적 구도(求道)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도’의 길은 자연에게서 배운 겸허와 사랑을 사람에게 소통시키고 그 사랑을 다시 ‘자연’에게로 순환시키는 삶을 뜻한다. 생태사회를 닮은 이상적 사회를 향해 산책하듯이 천천히 나아가는 삶이다. 이기철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청산행』(1982),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1989),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1993) 등이 있다.

    「봄날」은 199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시집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이 걸어가려는 “길”은 “하늘의 길”이 아니다. “지상의 길”이다. 그가 받으려고 하는 “가르침”은 하늘의 가르침이 아니라 지상의 가르침이다. 시인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모음(母音)”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인생이 그가 걷고 있는 지상의 길이다. “닭”과 “오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을 따스한 연민의 모음으로 감싸주는 것이 그가 배우는 지상의 가르침이다. 이기철 시인은 자신의 시 「세상 속으로」에서 “나는 오랫동안 풀꽃의 생애를 노래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人事에 대해서 노래하련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시인의 고백은 ‘자연’을 향한 시의 길을 사람을 향한 길로 바꾸겠다는 뜻이 아니다. “풀꽃”을 향한 사랑의 길도 “사람”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향한 손길을 다시금 ‘사람’에게로 되돌려서 사랑의 순환길을 열어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가슴의 모음”으로 위로해주고, 석양녘에 지는 “꽃”의 이름을 불러주며, 사람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나무들”과 “돌들”을 시의 손길로 “따뜻하게 쥐어보는” 사랑의 순환길이여. 모든 독자와 함께 걸어가야 할 지상의 길이여.

     

     

     

    노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 넬리 작스의 「늙은 혹성, 지구」

     

     

    노인이 된 혹성, 지구여! 그대는 날아가려고 하는

    나의 발을 빨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끌어안은 그대 리어 왕이여!

     

    그대는 바다의 눈을 들어

    영혼의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슬픔의 잔해들을 흐느껴 울고 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길러진 그대의 은발銀髮위로

    지구의 연기 꽃다발 위로 별처럼 떠 있는 광증(狂症)은

    불타는 화염의 향기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의 자녀들

     

    그들은 벌써부터 그대 죽음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습니다.

    눈 먼 개를 닮은 바람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은하수의 거렁뱅이인 그대가

    그대의 별자리에서

    그저 돌고 또 도는 것밖에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 넬리 작스의 「노인이 된 혹성, 지구」전문

     

     

    *「노인이 된 혹성, 지구/Erde, Planetengreis」: 1891년 베를린에서 출생한 유태계 독일 시인 넬리 작스Nelly Sachs.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체제에 의해 전쟁과 유태인 학살이 시작되던 1940년 당시 넬리 작스는 스웨덴의 여류 소설가 셀마 라게를뢰프의 도움으로 스웨덴에 망명하였다. 여류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라게를뢰프는 『닐스의 모험』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대학살은 넬리 작스의 시를 낳는 소재가 되었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태어난 반전反戰 의식과 박애 정신은 그의 시세계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동족인 유태인을 향하여 띄우는 연민의 편지와 ‘사랑’의 노래는 인류 전체를 향한 휴머니즘의 메시지로 승화되었고, 전쟁을 혐오하는 비판의식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감싸안는 생태의식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이 낳은 재독在獨 음악가 윤이상은 넬리 작스의 유고 시작품 「밤이여 나뉘어라」를 음악시극詩劇으로 작곡한 바 있다. 넬리 작스는 196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독일어권 지역의 여류 작가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대표적 시집으로는 『시신屍身의 집에서』(1947), 『도주와 변신』(1959), 『티끌 없는 세상으로의 여행』(1961) 등이 있고, 시극 『엘리:이스라엘의 고통에 대한 신비극』을 남겼다. 시집 『티끌 없는 세상으로의 여행』은 1991년 윤삼하 시인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사사연’에서 출간되었다.

    「노인이 된 혹성, 지구」 시인 넬리 작스의 반전의식, 휴머니즘, 생태의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유태인 학살과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었던 시인 에게서 반전反戰의식과 생명사랑의 정신이 나타나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의식과 반전의식을 시적 언어로써 형상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넬리 작스가 유태인 동족을 향한 비애와 연민을 평생 동안 독일어로 노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를 ‘민족주의’라는 틀 속에 가둘 수는 없다. 그의 시는 세계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시 「노인이 된 혹성, 지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치당의 총수 아돌프 히틀러는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독재권력자의 대표적 모델이다. 독재자는 국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로써 국민의 사고방식을 세뇌시킨다. 이 때, 이데올로기는 독재자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국민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지적과 같이 “자동인형”이나 “자동기계”로 전락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례들을 지구상의 곳곳에서 목격하지 않았는가? 스탈린, 무솔리니, 카다피, 차우세스쿠, 카스트로 등. 그 중에서도 히틀러는 대표적 모델이다. 독재권력자에 의한 지배구조의 강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의 패권주의적 야욕과 침략이다. 이미 독재자의 ‘자동인형’으로 전락한 국민을 총동원하여 세계 각국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일으키는 전쟁은 어떤 결과를 남기는가? “지구”의 “자녀들”인 인류는 아버지인 “지구”의 몸에 “연기의 꽃다발”을 걸어주고 “화염의 향기”를 옷처럼 입혀준다. “연기”와 “화염”은 아버지 “지구”의 머리카락을 노인의 “은발”로 변색시켰다. 전쟁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지는 자연과 사람과 생명의 “잔해들”을 자녀의 시신처럼 앞에 두고서 지구는 아버지 “리어 왕”처럼 잿빛 “슬픔”을 흐느끼고 있다. 넬리 작스의 시 「노인이 된 혹성, 지구」는 지구의 모든 “자녀들”에게 보내는 묵시록의 편지다.

     

     

     

    쏘아올린 ‘화살’의 귀환

    - 이문재의 「오존 묵시록」

     

     

    오존강은 푸른데

    그 강 너머 오는 별빛들 칡넝쿨처럼

    얼키는데 오존강에 설키는데

     

    어른이란 사실이 이젠 범죄여서

    이 지구에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파렴치여서

    우리가 날마다, 알지도 못하는 채

    쏘아올리는 화살이 있었구나, 매일매일을 우리가

    떠내려보내는 뜰것들 있었구나

     

    하늘로 쏜 화살이 내려오지 않는다

    바다로 간 뜰것들 가라앉아 버린다

     

    오존강 말라서, 오존강 갈라져서

    아 우리들 살던 옛집 푸른 지구

    막무가내로 무너진다

    하늘로 쏘아올린 화살 벼락처럼

    내려온다 불의 비, 질타의

    장대비, 섭리의

    쇠못같은 비, 거침없이 퍼부어진다

    모두 잠긴다 떠내려 가는 것

    아무것도 없다 지구에서 쏘아올린

    화살과, 바다로 흘려보낸 뜰것들로

    가득하고 가득하고 가득하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이미 늦은 것

    오존강 건너

    묵시록의 굵은 글자들, 우리가 별이라고 믿었던

    빛들이 붉은 피를 떨군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이미 묵시록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이문재의「오존 묵시록」전문

     

     

    *「오존 묵시록」: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한 시인 이문재. 그는 1982년 『시운동』 제4집에 시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을 발표하여 등단한 이후 시창작과 문학평론을 병행해왔다. 이념과 경향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과 시대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시의 소재로 다루어왔다. ‘생태문제’도 그의 시세계 안에서 중심적 소재가 되었다. 1991년 문학평론가 이경호와 시인 고진하가 엮은 생태 엔솔로지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에 이문재 시인의 작품이 발표됨으로써 그는 1990년대 한국 문단에서 생태의식을 형상화하는 선두 그룹에 속하였다. 「산성눈 내리네」, 「고비 사막」, 「비닐 우산」, 「산길이 말하다」등은 그의 대표적 ‘생태시’로 손꼽힌다. 이문재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내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1988), 『산책 시편』(1993), 『별빛 쏟아지는 공간』(2005), 『공간 가득 찬란하게』(2007) 등이 있다.

    「오존 묵시록」 1991년 ‘다산글방’에서 출간된 생태 엔솔로지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고진하 & 이경호 엮음)에 수록된 작품이다. ‘생태 위기’로 인하여 지구가 대재앙을 겪을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경고하는 생태시다. ‘묵시록’을 사용하는 생태시는 ‘종말’을 예언하는 형식을 통하여 종말을 방지하기 위한 옐로우 카드를 인류에게 내민다. 생태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현대시가 ‘묵시록’이라는 언술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과 독일의 문단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생태위기’의 문제는 인류의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생태시의 묵시록은 특정 지역을 초월하는 범세계적 문단의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 「오존 묵시록」의 화자는 “우리”다. 이문재 시인이 인류를 “우리”라고 호칭하는 것은 생태위기로 인한 재앙의 책임이 곧 인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하늘로 쏘아올린 화살”은 미사일, 핵폭탄, 방사능, 매연, 탄소 등을 상징하는 은유다. 이 “화살”은 “우리들”이 살던 “옛집 푸른 지구”로 귀환한다. 무수한 “화살”들이 “불의 비”가 되어, “쇠못 같은 장대비”가 되어 “벼락처럼 거침없이” 지구촌의 곳곳을 예고 없이 공격한다. “욕망”의 엔진으로부터 에너지를 빨아들여 비대해진 “화살”들이여! “지구”로 돌아올 때는 “오존층”을 박살낼 정도로 강력한 “붉은 피”의 군단이 되어 “우리”의 욕망을 비웃듯이 “우리”의 생명을 “질타”하는가? “우리”가 “바다로 흘려보낸” 욕망의 배설물들이여! “뜰것”을 모른 채 “흘려보낸” 우리의 무지를 조롱하듯 “바다”의 생물들을 질식시키고 그들의 시신屍身을 “푸른 지구”의 물결 위에 “가득” 떠오르게 하는가?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이미 늦은 것 (…) 이미 묵시록은 시작되고 있다”라는 발언 속에는 시인의 탄식과 비판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생태위기로 인한 재앙은 ‘재난 영화’에서나 연출되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진행형의 현실임을 경고하고 있다. 외관상으로는 비가悲歌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으나 시의 행간行間에는 “우리”의 각성과 변화가 “시작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짙게 배어 있다.

     

     

     

    인류에게 보내는 초록빛 묵시록

    ― 예르크 칭크의 「인류의 마지막 7일」

     

     

    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수백만 년이 지난 뒤

    인간은 말하였다. “여기서 누가 하느님을 입에 담어?

    나는 스스로 미래를 손에 쥐고 있다구.”

    인간이 손아귀에 미래를 틀어 쥔 다음

    지구의 마지막 7일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 아침

     

    인간은 결심했다

    자유롭고 착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더 이상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기를 원했다

    그래도 인간은 무엇인가를 믿어야만 했기에

    자유와 행복을

    숫자와 집합을

    증권거래소와 진보를

    개발계획과 안전을 믿었다

    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인간은 발 밑의 땅을

    유도탄과 원자폭탄으로 가득 채우고야 말았다

     

    둘째 날

     

    공업용수 속에서 물고기들이 죽어갔고,

    화학공장에서 제조한

    살충용 가루약품에 새들이,

    거리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배기가스를 마시며 야생토끼들이,

    소시지에 곱게 칠한 염료를 먹고 애완용 개들이,

    바다의 기름과

    대양의 밑바닥에 쌓인 쓰레기를 먹고 청어들이 죽어갔다

    쓰레기들이 활성적活性的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날

     

    들판의 풀과

    나무 잎사귀

    바위틈의 이끼와

    정원의 꽃이 시들었다

    인간이 스스로 날씨를 가공하고

    정확한 계획에 따라 비를 분배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를 나누어주는 전자계기를 작동하면서

    사소한 실수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 실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아름다운 라인강의

    메마른 강바닥 위에 짐배가 멈춰 있었다

     

    넷째 날

     

    40억 중 30억의 인간들이 멸망해갔다

    한 무리는 인간이 길러냈던

    들 때문에 죽어갔다

    다음 번의 전쟁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컨테이너 뚜껑을 닫는 것을

    누군가가 깜빡 잊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약품들도 소용이 없었다

    약품들은 이미 오랫동안

    마사지용 크림과 돼지 허릿살에 사용되어야 했으니까

    또다른 무리는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갔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곡식창고의 열쇠를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굶어 죽어간 자들은 그들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하느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하느님은 정녕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었던가!”라고

     

    다섯째 날

     

    마지막 인간들이 붉은 단추를 눌렀다

    그들로서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불덩이가 지구를 뒤덮고

    산들이 불타오르며 바다는 증발해버렸다

    도시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검게 그을린 채 연기를 뿜고 서 있었다

    하늘의 천사들은

    파아란 혹성이 빨갛게 되고

    그 다음엔 더러운 갈색으로 변했다가 결국은 잿빛이 되는 것을 보았다

    이때 천사들은 그들의 노래를 10분간 중단하였다

     

    여섯째 날

     

    빛이 꺼졌다

    먼지와 재에 가려서

    태양과 달과 별이 보이지 않았다

    로케트 벙커 속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바퀴벌레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과도한 열 때문에 죽어갔다

     

    일곱째 날

     

    마침내

    안식이 찾아왔다

    지구는 황폐하고 텅 비어 있었다

    메마른 땅 표면에서 갈라져버린

    틈새와 균열 위로 어둠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죽은 유령이 되어 혼돈 위를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저 아래 심연, 지옥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손아귀에 틀어 쥔

    인간에 대해

    왁자지껄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웃음 소리가 하늘로 크게 울려 퍼진 나머지

    천사들의 합창 소리에 닿고 말았다

     

    - 예르크 칭크의 「인류의 마지막 7일」전문

     

     

    *「인류의 마지막 7일/ Die letzten sieben Tage der Menschheit」: 1922년 독일 엘름에서 출생한 시인 예르크 칭크Jörg Zink. 그는 개신교의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기독교 문화를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그의 기독교 사상은 『성서』의 이론과 종교적 교리에 갇혀 있지 않았고 사회적 실천으로 확대되었다. 예르크 칭크는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 선 성직자였다. 그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기독교 세계관과 ‘생태주의’ 사이의 접점을 찾았다.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피조물과 함께 나누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화였다. 그러므로 성직자로서의 예르크 칭크와 시인으로서의 예르크 칭크는 그의 생태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생태시는 신학神學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환경운동과 문학이 ‘삼위일체’를 이룬 성과물이었다.

    「인류의 마지막 7일」은 1972년 슈투트가르트와 베를린에서 출간된 예르크 칭크의 시집 『아직 미래는 있다』에 수록된 대표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1년 뮌헨의 베크C. H. Beck 출판사에서 간행한 생태 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제7장 ‘묵시록’ 편에 재수록되었다.

    1970년대 이후 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언술방식은 묵시록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묵시록과 생태시의 묵시록은 의도와 성격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종교의 묵시록이 인류의 종말을 선언하는 ‘예언’에 내용의 중심을 두고 있다면, 생태시의 묵시록은 교육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예언’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예르크 칭크의 시 「인류의 마지막 7일」이다. 이 시는 『신약 성서』의 『요한 묵시록』을 떠오르게 할 만큼 인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에서 일곱 개의 ‘봉인封印’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서로 다른 일곱 가지의 재앙이 흘러 나왔듯이, 이 시에서도 7일 동안 날마다 다른 재앙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구약 성서』의 『창세기』 1장에서 7일 동안 진행된 하느님의 창조 과정이 이 시에서는 7일 동안의 파멸 과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서 여섯째 날은 하느님이 모든 생명체의 창조를 완성하는 날이었지만, 이 시에서 여섯째 날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멸망하는 날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창세기』에서 마지막 일곱째 날의 “안식”은 완성 후의 충만감과 만족감을 의미하지만, 이 시에서 일곱째 날의 “안식”은 파멸 후의 공허와 적막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요한 묵시록』과 『창세기』를 패러디한 생태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하느님”을 자연법칙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성서』와 기독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자연법칙을 창조한 이도 “하느님”이요, 자연법칙을 주관하는 이도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인간”이 자연법칙을 거스른 행위에서 지구 종말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인간도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까닭에 자연의 순환질서에 순응해야만 생명을 유구히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부터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었다는 것이 시인의 견해다. 인간은 자연을 공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취급했던 까닭에 지구의 멸망을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이용하게 되면 행복과 번영이 보장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조작, 가공, 개발, 남용이 거듭될수록 인간의 낙관적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자연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들이 오히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보복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의 파트너십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마지막 “일곱째 날”을 예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경고하고 있다. 외관상으로 볼 때는 시인이 인류의 파멸을 예언하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구원의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시인의 목소리는 역설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탄의 비가悲歌는 “비상구를 찾아야 한다”는 희망의 출정가出征歌다.

     

     

     

    죽음에 맞서는 ‘완강한’ 반항

    ― 위선환의 「자갈밭」

     

     

    東江의 자갈밭에 비비새가 누워 있다

     

    주둥이가 묻혔다 자갈돌 몇 개가 바짝 틈새기를 좁혀서

    비비새의 부리를 물고 있다

     

    꽉 다문 틈새기, 의 저 힘이

     

    비비새 아래로 강물을 흐르게 했을 것이다

    비비새를 강물 위로 날게 했을 것이다

     

    흐르는 힘과 나는 힘이 오래 스치었고 스미어서

     

    강 밑바닥을 훤히 비치게 했고, 다음 날은 더 깊이

    비비새를 비쳐서

     

    강물 속으로 날아가는 비비새가 보였고

    비비새가 씻기었고 비비비, 강물이 지저귀기 시작했고

     

    비비새의 창자 속으로 강 울음소리 같은, 긴,

    시푸른, 쓴, 죽음이 흘렀고

     

    지저귀다 목이 쉰 강(江)의, 더는 울지 못하는 비비새의,

    혓바닥 끝에다 독을 적셔 말렸고

     

    지금은 그 주검이 부리를 내밀어 완강하게

    자갈 틈새기를 물고 있다

     

    - 위선환의 「자갈밭」전문

     

     

    *「자갈밭」: 전라남도 장흥에서 출생한 시인 위선환. 그는 2001년 월간『현대시』9월호에 시 「교외에서」외 2편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위선환 시인은 2007년 1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새 떼를 베끼다』를 출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집에서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과 소통하려는 시인의 생태의식이 허무의식과 충돌하는 양상을 읽을 수 있다. 한 쪽 측면에서만 본다면 위선환의 시는 무상감이 짙게 배인 허무의식을 노출시킨다. 시집의 곳곳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허망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무의식은 시인의 생태의식과 모순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 모순은 피상적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위선환의 고전주의」라는 평론에서 “길 잃은 자리는 길 잃은 자의 안식처가 된다”고 암시한 것처럼 상실에 따른 무상감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의 생명감으로 극복된다. 소멸하는 것과 생성되는 것, 떠나는 것과 오는 것, 잃은 것과 얻은 것, 사라지는 것과 남아있는 것 사이의 내밀한 생태적 연관체계 속으로 언어의 촉수觸手를 드리우는 시인이 위선환이다. 생명의 덧없음을 극복하려는 위선환 시인의 본능적 몸짓은 그의 시세계 안에서 더욱 차원 높은 생태의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새 떼를 베끼다』(2007), 『두근거리다』(2010)가 있다.

    「자갈밭」 시집 『새 떼를 베끼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독일 시인 울리 하르트는 그의 시 「눈 앞의 풍경」에서 사람의 마을을 떠나간 “나무들”을 그리워하며 사람과 나무 사이에 이어져있는 생명의 길이 끊어진 것을 슬퍼하였다. 나무는 “새”의 집이며 고향이다. 새와 사람이 만나는 녹색의 휴게실 같은 곳이 나무다. 나무가 사람의 동네에서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새를 만날 수 없다. 나무는 사람의 생명과 새의 생명을 소통시키는 ‘길’이다. 이 ‘생명의 길’이 단절되는 현상에 대해 비가를 읊고 있는 시인 위선환. 그는 “강물”의 “독”이 적셔진 “혓바닥” 끝에서 노래가 말라버린 “비비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그의 시 「자갈밭」은 “강물”과 “비비새” 사이에 이어진 생명의 핏줄이 끊어지고 강과 새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원소인 “물”과 생물의 대표적 종인 “새” 사이에 상생이 교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생태적 관계를 더 이상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위선환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끊어진 생명의 연결고리를 이어놓으려는 능동적 생태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강과 새의 관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사람 사이의 상생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생태의식은 시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시인의 생태의식을 강화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비비새와 같은 독립적 종이 갖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에서 생겨난다. 비비새는 죽어서도 그 “주검”으로 “부리를 내밀어 완강하게 자갈 틈새기를 물고” 있다. 비비새는 죽음의 장벽에 부딪쳐 죽음과 맞서 싸우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인은 지상의 모든 종이 갖고 있는 생명의 강인성과 생명권을 존중한다. 어떤 생물이든지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각자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 이 권리를 실현하려는 본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위선환의 생태의식은 이처럼 모든 생물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과 대지에게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천부생명권天賦生命權의 사상에 부합하고 있다. 시인은 모든 피조물이 각자의 고유한 생명을 보존해나갈 생명권을 평등하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생태주의자’다.

     

     

     

    하느님의 초록빛 역사책, 생명공동체

    ― 요하네스 보브롭스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여」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여

    나무여, 날아다니는 새여,

    초록빛 강물이 흘러나오는

    불그레한 바위여, 그리고

    숲 위로 어둠이 질 무렵

    하얀 물안개 속에 파닥이는 물고기여

     

    기호들과 색깔들

    그것은 하나의 유희이어라, 내 죽는 날까지

    그들의 이름을 남김 없이 부를 수 있다면

    무슨 근심이 있을까

     

    내가 잊어버린 것을 어느 누가 가르쳐 주겠는가?

    돌멩이들의 잠, 날아다니는 새들의 잠,

    나무들의 잠을 누가 가르쳐주겠는가?

    어둠 속에 흐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시어

    나를 불러주신다면,

    그 곳의 땅을 두루 밟아보리라, 잠시만이라도

    더 머물다 가리라.

     

    - 요하네스 보브롭스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여」전문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여/ Immer zu benennen」: 1917년 동프로이센의 메멜Memel 강변 틸지트Tilsit에서 출생한 시인 요하네스 보브롭스키Johannes Bobrowski. 그가 태어난 곳은 독일의 영토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소련에 귀속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 지금은 리투아니아의 영토가 되었다. 리투아니아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의 덕택으로 소련에서 분리, 독립하게 되어 옛날의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1920년대 리투아니아 지방의 모치슈켄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보브롭스키는 함께 살던 외조부모로부터 줄곧 기독교적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에는 東베를린에 거주하면서 독일의 저명한 작가 페터 후헬이 주간을 맡았던 문예지 『의미와 형식』에 고정적으로 시를 발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문예비평가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기 시작하더니 1959년부터는 문예 전문 출판사 『우니온/Union』의 편집주간직을 맡아 1965년 작고할 때까지 왕성한 문학활동을 전개하였다.

    보브롭스키가 독일시사詩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원인은 그의 ‘자연시’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시는 낭만주의 시대로부터 20세기 중엽까지 독일시의 중심적 경향이었다. ‘자연시’는 시인의 관념적 상상 속에서 ‘자연’을 변용變容시키는 까닭에 사회적 현실을 벗어나서 ‘자연’을 바라보는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해왔다. 자연과 사람의 ‘상호의존’이 이루어지는 현실적 생명공동체를 ‘사회’라고 인식하는 ‘생태시’와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 요하네스 보브롭스키는 독일 자연시의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마술적 자연시파自然詩派’의 시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자연시의 전통과는 차별성을 보여준 시인이었다. 그의 자연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연풍경이 시인의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서 묘사된 자연풍경은 동유럽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한 은유의 역할을 맡아왔다. 이 ‘자연’의 생명체들은 슬라브 민중의 조화로운 공동체를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이기도 하다. 자연은 심미적 체험의 세계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보브롭스키의 자연시에서 생태의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사르마티아의 시절』(1961), 『그늘진 땅을 흐르는 강』(1963)이 있다. 유고 시집으로 『기상도(氣象圖)』(1967), 『메꽃 덤불』(1970)을 남겼다.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이여」는 1987년 독일 슈튜트가르트의 ‘DVA’ 출판사에서 출간된 『보브롭스키 전집 제1권』에 수록된 작품이다. 보브롭스키는 동유럽의 ‘자연’을 민중의 생활공간으로 바라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북간도의 ‘자연’을 생명들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시각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문학비평가 귄터 하르퉁은 보브롭스키의 시에서 나타나는 “동유럽 지역의 풍경은 자연풍경이 아닌, 역사적 풍경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주장하였다. 자연풍경의 역할이 동유럽의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유럽 주민들의 생활사生活史와 사회사社會史를 알려주는 객관적 상관물의 역할과 일치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에 있어서 핵심적 소재로 취재된 ‘자연’이 동유럽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나타내는 ‘사물공동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보브롭스키는 이 지역의 ‘자연’을 시창작의 소재로 수용하는 시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시인은 이곳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또한 이곳의 자연을 형성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탐구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연풍경 속에 깃들인 사람들의 노동의 역사歷史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러한 당부의 말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보브롭스키의 시에 나타난 동유럽의 ‘자연’은 슬라브인들의 노동의 현장이며 역사의 보고寶庫라는 사실이다. “입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는 “초록빛 강물”, “불그레한 바위”, “숲”, “물고기”, “돌멩이들”과 “새들”, “나무들”은 수천 년 동안 슬라브인들의 생활공간을 형성해왔던 중요한 구성원들이다. 호명된 이름들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자연’은 슬라브인들의 역사 속에서 그들과 함께 ‘상호의존’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보브롭스키가 기억하고 있는 공동체의 네트워크 안에서 자연과 사람 사이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어주었던 매개체는 어로漁撈, 사냥, 수렵, 농경 등 슬라브인들의 다양한 노동행위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슬라브인들의 노동의 손길이 묻어 있는 ‘자연’의 생명체들을 “이름 부름”으로써 그들 모두의 형상을 자신의 내면세계 속으로 옮겨놓는다. 자연과 생명체들의 형상은 시인의 내면세계 안에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호”로 변용되어 슬라브 민중의 역사를 보존하는 “하느님”의 초록빛 역사책이 되었다.

    생명체들의 “이름을 부르는” 언어행위는 슬라브인들의 생활과 ‘자연’ 사이의 생태적적 연관성을 환기시킨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 함께 공생해왔던 토착민들의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려는 시인의 소명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내 죽는 날까지/ 그들의 이름을 남김없이 부를 수 있다면/ 무슨 근심이 있을까”라는 고백이 바로 그것이다. 보브롭스키의 시에 나타난 동유럽의 자연, 생명체들, 사물들은 발터 겝하르트의 말처럼 토착 민중의 생활공간에 대한 시인의 ‘역사의식’과 ‘사회사적社會史的’ 의식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필자는 발터 겝하르트와 귄터 하르퉁의 견해를 근거로 삼아 ‘생태주의’ 관점에 의해 보브롭스키의 시를 “역사적 생태의식과 사회사적 생태의식의 보고寶庫”라고 규정해본다.

     

     

     

    자연의 몸에서 잘려나가는 아이들

    ― 김상미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

     

     

    내게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굶주려 죽어 가는 아이들도 없고

    가미가제식 총알받이로 전쟁터에서 사라진 아이들도 없고

    매맞고 버림받는 아이들도 없고

    성추행 당해 내일을 빼앗긴 아이들도 없고

    미래가 싫어 초고속 오토바이에 현재를 싣고

    질주, 마냥 질주해대는 아이들도 없고

    무뇌아로 태어난 처참한 아이들도

    …… 없습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다 무덤 속에 있습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겹겹으로 쌓여 있습니다

    인간으로 불리어지기도 전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하얀 뼈들로 쟁이고 쟁여져 있습니다

     

    누가 내 아이들을 그리로 데려갔나요?

    그들의 하얀 뼈들이 수의처럼

    지구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 위로

    내가 읽는 책과 신문 위로

    부모님 손을 잡고 꽃구경 나온 아이들의 행복 위로

    대형 백화점 쇼윈도, 페스트푸드점 화려한 간판 위로

    어린이 대공원 수많은 인파들의 재잘거림 위로

     

    창백한 수심을 걸치고 우리들을 조롱하듯

    하나 둘 지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려 천사조차 되지 못한 아이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요?

    우리들이 힘 모아 앞으로 끌어주지 못한 아이들

    지상에 두 발 굳건히 세우기도 전에

    목부터 잘라버린 아이들

     

    그런데도 우리는 마이더스의 손가락 같은 가위를 들고

    그들이 꾸는 꿈이란 꿈은 모두 다 잘라내고 있습니다

    맑고 푸르게 색칠해야 할 아이들의 얼굴을 검푸르게 칠하고 있습니다

    남동풍 따뜻한 바람 같은 아이들 마음에 차가운 북서풍을 들이붓고 있습니다

     

    키 작고 어린 나무에조차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는

    어른의 얼굴을 한 저 잔인하고도 무분별한

    메커니즘의 뇌우 속에서!

     

    - 김상미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전문

     

     

    *「보이지 않는 아이들」: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한 시인 김상미. 그는 1990년 계간 『작가세계』 여름호로 등단하였다. “세상에 사랑은 단 하나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 안에서 내 길을 찾는다.”라는 시인의 고백으로부터 시를 쓰는 이유를 알게 된다. 김상미 시인은 “사랑” 안에서 “길”을 열어왔고 “사랑”의 힘으로 지금도 새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 “길”은 시의 길이다. 「시에 미친」이라는 그의 작품 이름이 말해주듯이 ‘시’라는 외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게 만드는 힘은 “사랑”이다. 미시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 사랑은 시를 향한 사랑이지만 거시적 시각으로 본다면 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과 생명을 향한 사랑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김상미 시인이 살고 있는 “집”은 그의 詩다. 이 “집”에 거주하는 “존재”들은 사람, 자연, 생명이다. 생명, 자연, 사람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메커니즘”은 시인의 집을 파괴하는 침략군과 같다. 시인은 ‘시’라는 집을 지켜내기 위해 날마다 “사랑”의 힘으로 “언어”의 창검槍劍을 올곧게 세우고 폭력적 “메커니즘”에 맞서고자 한다. ‘시’라는 집을 지켜내는 것은 시인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요, 시인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생명을 옹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상미 시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1993), 『검은, 소나기떼』(1997), 『잡히지 않는 나비』(2003)가 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2004년 5월 『현대시학』에 발표된 작품이다. 어린이는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나무」에서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나무이다”라고 말했지만 필자는 이 시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고 싶다. “자연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는 어린이”라고. 어린이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자연성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도, 두려움도 없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어린이다. 어린이의 내면 속에는 ‘자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말처럼 어른이 어린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자연’을 닮은 천진함과 가식 없는 순결함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자연성을 배우고 지켜주어야 할 어른들이 언제부턴가 그 자연성을 유린하고 짓밟아버렸다. 어머니의 품 속 같은 대지에서 평화롭게 자라고 있는 나무, 꽃, 풀을 베어내고 구멍이 숭숭 뚫린 자리에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어른들의 폭력. 그 폭력의 손길이 아이들의 숨결과 웃음마저도 질식시킨다. 어른들은 “마이더스의 손가락 같은 가위를 들고 그들(어린이들)이 꾸는 꿈이란 꿈은 모두 다 잘라”낸다. 잘려나간 “꿈”의 조각들은 어른들의 욕망의 창고 속에서 “하얀 뼈들로 쟁이고 쟁여져 있다.”

    뮌헨 대학교의 정치생태학 교수인 마이어-타쉬P. C. Mayer-Tasch 교수는 ‘직선直線’으로만 질주하는 서구의 문명사회를 비판했었다. 김상미 시인이 바라보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습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잔인하고 무분별한 메커니즘”의 쾌속 열차를 타고 직선들의 “뇌우雷雨”처럼 자본의 바벨탑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한국의 문명사회. 이 질주가 계속된다면 “키 작은 어린 나무”의 뿌리와 우리의 분신인 “아이들”은 “지상에 두 발을 굳건히 세우”지 못할 것이다.

     

     

    실상實像을 추방하는 모상模像들의 거주지

    - 에리카 라우슈닝의「백화점」

     

     

    미끈하게 털을 깍은

    우리의 도시들.

    콘크리트 건물마다

    민숭한 대머리를 맞대고 서 있다.

    도시 한 복판의

    백화점들.

    만들어낸 꽃 뒤에서

    누구든 숨박꼭질을 즐길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상품 꾸러미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모든 상품에서 등꽃색과 초록색이

    반짝이며 흘러나온다

    네온 불빛 아래

    현란한 깃털 장식과

    잔디를 본뜬 양탄자.

    우리는 불빛에 홀려

    물건을 찾아다닌다 .

    이미 이 곳에서

    팔려나간 상품들을.

     

    - 에리카 라우슈닝의 「백화점」전문

     

     

     

    *「백화점/Kaufhäuser」: 1923년 독일 슈트랄준트Stralsund에서 출생한 시인 에리카 라우슈닝Erika Rauschning. 시를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하면서 수필, 소설, 드라마 창작에도 능력을 발휘한 여류 시인이다. 에리카 라우슈닝은 수채화를 즐겨 그린 화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에게 적합한 호칭은 ‘여류 예술가’다. 그는 드레스덴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오스카 코코쉬카Oskar Kokoschka로부터 회화 수업을 받았다. 코코쉬카는 독일 ‘표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화가로서 독일의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드레스덴 시절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베르너 오테Werner Otte로부터 석판화 수업을, 빈Wien에서는 루돌프 흐라딜Rudolf Hradil과 아릭 브라우어Arik Brauer로부터 각각 부각腐刻 수업과 회화 수업을 받았다. 미술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의 수련을 쌓은 경험은 에리카 라우슈닝의 글쓰기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글쓰기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 가운데 현대의 테마들을 과감히 수용하였다. 에리카 라우슈닝이 발표한 시작품들은 관념과 철학보다는 인생체험에 의존해왔다. 생활 속에서 겪은 사건과 현상으로부터 얻은 깨달음만을 ‘시’라는 캔버스에 유화油畵처럼 옮겨놓았다. 그의 시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소재는 자연, 생태, 생명이다. 이것은 인생체험의 진실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예술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유럽작가동맹의 회원으로 활동해온 에리카 라우슈닝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자기주장』(1980), 『오월의 나날들』(1981) 등이 있다.

    「백화점」 197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1981년 마이어-타쉬 교수의 엮음으로 ‘베크’ 출판사에서 간행한 생태 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제3장 ‘아름다운 신세계’ 편에 재수록 되었다. “미끈하게 털을 깍은/ 우리의 도시들./ 콘크리트 건물마다/ 민숭한 대머리를 맞대고 서 있다.”라는 시인의 발언에서 조롱 섞인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시인이 비판하는 현상은 무엇일까? 대도시의 사회 안에서 ‘자연’이라는 존재의 위치가 상실되었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더스의 손가락 같은 가위를 들고 그들(어린이들)이 꾸는 꿈이란 꿈은 모두 다 잘라내는” 메커니즘을 비판했던 한국의 김상미 시인과 독일 시인 에리카 라우슈닝의 비판의식은 동반자의 길을 걷는다. “도시”를 “민숭한 대머리”처럼 생명의 불모지대로 재단해가고 있는 “마이더스의 손가락”은 도시인들의 소유욕과 소비욕이다. 그들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하여 도시 안에서 “자연 그대로의” 사물은 “더 이상 남아 있을” 곳이 없다. “만들어낸 꽃”과 “잔디를 본뜬 양탄자”에서 드러나듯, 자연을 가공한 상품들과 모조품들이 “네온 불빛”으로 도시인들의 물질적 욕망을 자극한다. 도시인들은 갖고 싶은 물질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자연의 모상模像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만족스러워 한다. 자연의 실체와 자연의 모상 사이에서 가치를 구별하려는 시도가 그들에게는 무의미해졌다. 자연의 실상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모상들의 “불빛”은 자연을 향한 도시인들의 그리움을 “콘크리트”처럼 마비시킨다. “흙”을 닮았던 사람의 마음에서 나무를 향한 그리움을 “잘라내고” 구멍 숭숭한 자리에 욕망의 콘크리트를 채워넣는 “마이더스의 손가락”이여.

     

     

     

    직선直線의 쇠바퀴를 마멸시키는 생명의 ‘둥근 춤’

    ― 배한봉의 「과수밭은 둥글다」

     

     

    복숭아나무가 감나무 손을 잡고

    감나무가 자두나무 손잡는 걸 보니

    새삼 눈물 난다

    저 가지들이 내 인생에 들어와

    은근슬쩍 연애라도 하자 하면

    둥글게 과일 익어가듯 연애하다 보면

    나도 둥글게, 둥글게 이웃 손을 잡고 있을까

    그러다 동서남북 서로 얽힌 저 나무뿌리들이

    내 삶을 송두리째 점령한다면

    거대 자본이 뿜어내는 소비사회의 강풍에도

    끄떡없는 검푸른 숲 되어 있을까

    절제 없이 가지 뻗어 얽힌 나무 풍경이야

    어제 오늘 보는 것만도 아닌데

    나는 왜 새삼 가슴이 다 아픈 것이냐

    강강수월래, 나무가 나무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 산이 산의 어깨를 곁고

    강강수월래, 햇빛이 바람의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누가 저 둥근 춤, 멈추게 할 수 있으랴

     

    - 배한봉의 「과수밭은 둥글다」전문

     

     

    *「과수밭은 둥글다」: 1962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한 시인 배한봉. 그는 1998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하였다. ‘시’를 중심으로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전개하고 있는 문화운동의 양상 중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생태운동이다. 한국 생태계의 보고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경상남도 창녕 우포늪 일대에서 해마다 ‘우포늪 詩 생명제’가 개최되고 있다. 배한봉 시인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포늪 詩 생명제’는 ‘시’라는 문화미디어를 통하여 생태와 생명의 가치를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생태문화의 모델’ 역할 및 ‘생태문학의 전도사’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왔다. 그가 추구해왔던 이러한 생태문화는 고스란히 그의 시세계에 반영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배한봉 시인의 시세계를 “생명을 가진 만물과의 교감이 살아 숨쉬는 문학적 리얼리티의 집”이라고 규정해본다. 그의 대표적 시집으로는 『우포늪 왁새』(2002),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2006), 『복사꽃 아래 천년』(2011) 등이 있다.

    「과수밭은 둥글다」는 2004년 7월 『현대시학』에 발표된 작품이다. “탕!”하는 총성 소리와 함께 100m 앞의 목표 지점을 향하여 번개처럼 질주하는 단거리 육상 선수 “우샤인 볼트”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100m 육상 선수처럼 물질, 명예, 권력, 기술을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달려가는 방향은 바람의 허리를 동강낼 듯이 직선적이다. 곡선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다. 양쪽 다리에 칼날이 매달려 있듯이 우리가 달려가는 자리마다 나무들은 쓰러진다. 우리가 달려왔던 자리마다 새들의 노래는 그쳤다고 한다. 우리가 달려갈 마을은 곧 황무지로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우리는 옆과 뒤를 돌아볼 줄 모르는 의안義眼의 소유자들이 되었는가? 우리의 몸은 꽃잎의 살결을 느낄 줄 모르는 쇠붙이가 되었는가? 우리의 “손”은 “이웃”의 “손을 잡을” 줄 모르는 “자본”의 도구가 되었는가? 독일 시인 에리카 라우슈닝이 한탄하였듯이 우리의 “손”은 물건과 “상품”의 사슬에 꽁꽁 묶인 소비의 노예가 되었는가?

    상생을 파괴하는 ‘직선’의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곡선에서 우러나온다. 직선의 시대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는 회오리 바람 같다. 그 회오리의 대열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곡선의 인생을 선택해야만 한다. 곡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직선으로 질주하는 욕망의 집단행진 속으로 빨려 들지 않는다. 직선의 시대에 맞서 싸우는 정신적 전사戰士의 길은 곡선의 인생이다. 그렇다면 ‘곡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돌아보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며, 다독거리고, 감싸 안으며, “어깨를 곁고”, 지켜주며, “손을 잡고” 행복의 동산을 향해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급진적 질주의 속도가 아니라 점진적 산책의 속도가 필요한 인생이다. 이것이 직선의 시대를 다스리는 곡선의 생활방식이다.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진정한 삶이다.

    배한봉 시인은 이 진정한 삶을 도와주는 조력자를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그 조력자는 “둥근 춤”이다. 곡선을 그려내는 상생相生의 무도舞蹈다. 사람이 모든 생물과 “손을 잡고” 둥근 몸짓으로 엮어내는 상생의 “춤”은 직선의 시대를 변화시킬 마지막 희망의 보루다. “나무가 나무 손을 잡고 햇빛이 바람의 손을 잡는” 상생의 춤이 시인의 마음을 “송두리째 점령”해 버렸다. 우리들이 “강강수월래”의 초록빛 춤 속에 어울려 함께 손을 잡고 조금씩 둥그렇게 원을 넓혀간다면 우리들의 춤은 “거대한 자본”의 “강풍에도 끄떡없는” 생명의 방패가 될 수 있다. 쾌속으로 질주하는 직선의 쇠바퀴를 마멸시키는 “둥근 춤”이여!

     

     

     

    사람의 마을을 떠나가는 ‘나무’

    ― 울리 하르트의 「눈 앞의 풍경」

     

     

    처음엔 나무들이

    눈 앞을 가로막아

    숲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엔 모든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히는 바람에

    더 이상 숲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콘크리트를 밟는 사람은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이 곳에 풀이 자라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것을.

     

    - 울리 하르트의 「눈 앞의 풍경」 전문

     

     

    *「눈 앞의 풍경/Sichtung」: 1948년 독일의 바트 홈부르크에서 출생한 시인 울리 하르트Ulli Harth. 그는 엔솔로지, 신문, 시사잡지, 라디오 방송 등에 다수의 시를 발표해왔다. 울리 하르트의 글쓰기는 시창작에 한정되지 않았다. 에세이, 풍자문학, 잠언 등 ‘대중문학’의 영역으로 문학의 범위를 넓혀갔다.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엘리트 의식을 경계하면서 문학과 대중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 라디오 방송에 자주 발표했던 시작품들을 엮어 간행한 그의 시집 『만행蠻行』은 시를 대중문학의 마당으로 초청한 대표적 사례다. 문학의 대중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시사문제에 밀착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울리 하르트는 1950년대와 60년대 서독에서 산업의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짐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관심은 생태시 창작으로 발전하였다. 자연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분리되는 현상을 고발하고 자연친화적 세계의 회복을 희망하는 생태시들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1980년 뮌헨에서 출간된 시집 『녹색』은 울리 하르트의 대표적 생태시집이다. 마이어-타쉬 교수가 엮은 생태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에는 울리 하르트의 생태시 3편이 수록되어 있다.

    「눈 앞의 풍경」은 196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생태 엔솔로지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제3장 ‘아름다운 신세계’ 편에 수록되었다. “나무들이 눈 앞을 가로막아 숲을 볼 수 없었습니다.”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고백이다. 한국의 김현승 시인이 “나무”를 인생길의 반려자로 받아들이듯이 독일의 시인 울리 하르트도 “나무들”을 같은 마을에서 생명을 함께 나누는 ‘녹색’의 이웃으로 맞이하였다. 시인이 바위 의자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에 쏟아지는 뙤약볕을 막아주는 듬직한 양산이 있었다. 나무들이었다. 「시편 23편」의 전원적 풍경과 같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 마을 사람들이 소풍을 즐길 때에 그들의 행복을 감싸주는 순수한 병풍이 있었다. 나무들이었다. 나무의 살갗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공기는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어 그들의 숨결이 되었다.

    시인의 그리움이 말해주듯이 나무들의 품 속에 안기어 살아가던 시절에는 “숲” 속에 살면서도 숲의 고마움을 느낄 수 없었다. 김현승 시인이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큰 키와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라고 고백하였듯이 같은 마을 안에서 수많은 나무들과 함께 어울려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아가는 것은 평범한 일상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개발과 건설사업으로 인해 나무들이 사람의 마을을 떠나간 “지금”. 시인은 실향민처럼 숲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가슴 아파한다. “풀이 자라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콘크리트” 위에 이방인처럼 서 있는 시인이여! 잃어버린 친구의 자취를 수소문하는 에뜨랑제의 방랑길을 떠나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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