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조명숙동화_아기뱀 꼬물이>귀를 기울여


  •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26. 귀를 기울여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꼬물이는 눈을 떴습니다. 희미한 빛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죽은 세상인가 봐.’

    겁이 나서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입에서 끈적거리는 것이 터져나왔습니다.

    “켁! 켁!”

    끈적거리는 것을 뱉어낸 꼬물이는 혀를 내밀어 눈을 닦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여긴 어디지?’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깨어났구나, 꼬물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뱀 머리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누, 누구세요?”

    꼬물이는 갑자기 나타난 뱀을 쳐다보았습니다.

    눈은 둥그스럼하고 머리는 넓적한 뱀이었습니다. 누런 바탕에 회색과 갈색의 무늬가 찍힌 뱀의 커다란 몸이 바로 곁에서 구불거리고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꼬물이는 꼬리를 바닥에 딱 붙이고 머리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그놈 참, 용감하네. 놀라지 마. 난 누룩이라고 해.”

    꼬물이는 머리를 쳐든 채로 물었습니다.

    “여긴 어딘가요?”

    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을 벌리며 누룩이가 말했습니다.

    “지옥은 아니니까 염려 마라.”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외딴집에서 꽁지머리한테 잡힐 뻔한 거 기억 안 나니?”

    그때서야 꼬물이는 하얀 사람을 깨물어 버리려고 방에 들어갔다가 꽁지머리에게 쫓겨 좁은 곳으로 빨려들어간 일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 했지 뭐냐. 꽁지머리가 너를 막 잡으려는 순간에 내가 널 삼켜버렸단다. 이렇게 꿀꺽!”

     

    누룩이가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습니다.

    단단한 턱뼈가 벌어지면서 잘 발달된 입 안의 근육이 금방이라도 꼬물이를 삼킬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다져 먹은 꼬물이는 똑바로 누룩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다시 절 삼키실 건가요?”

    “으하하하하!”

    입을 딱 벌린 채로 누룩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녀석아. 다시 삼킬 작정이었으면 왜 뱉어냈겠니? 사람에게 잡히지 않도록 이렇게 내 뱃속에 넣어왔다가 꺼내놓은 거야.”

    꼬물이는 의심을 풀지 못한 채로 누룩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누룩이가 꼬리로 툭 쳤습니다.

    “의심이 많은 놈이구나. 하지만 뭐, 괜찮다. 의심이 많다는 것은 궁금증이 많다는 거고, 궁금증이 많다는 건 영리하다는 증거니까.”

    꼬물이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누룩이의 굴을 살폈습니다.

     

    누룩이 굴은 은사시나무 아래 굴보다 좁고 바닥은 딱딱했습니다.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콩콩, 투덕투덕, 쉬크르륵…….

    소리의 주인들이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것 같아서 꼬물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누룩이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좀 시끄럽지?”

    “네.”

    “여긴 사람이 사는 마을이고, 내 굴은 사람의 집 돌담 아래 있단다. 처음엔 소리들 때문에 가슴이 철렁철렁하지만, 좀 지나면 아주 재밌단다. 가슴을 땅에 대 봐.”

    누룩이가 머리를 낮추고 바닥에 가슴을 대고 소근거렸습니다.

    “저 소린 개가 지나가는 소리란다. 제딴에는 살금살금 걷고 있지만 우리들 뱀은 땅을 디디고 가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단다. 어때, 들리지?”

    “네에, 그렇군요.”

    꼬물이는 가슴을 배에 대고 개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마리가 지나간 뒤에 다시 또 한 마리가 지나갔습니다. 조금 작은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이번에는 좀 작은 개인 것 같았습니다.

    “저건 고양이 소리란다. 건너집 고양이가 개 뒤를 따라가는 거야. 고양이는 아주 가볍게 걸어서 훨씬 작은 소리를 낸단다. 고양이 녀석, 가끔 부딪치면 빤히 바라보면서 발톱을 세운단다. 이렇게 말이다.”

    누룩이가 꼬리를 치켜들어 보였습니다.

    꼬물이는 고양이와 개가 지나가는 소리를 머릿속에 담았습니다.

    너구리나 오소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기는 했어도 개와 고양이가 지나가는 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르릉 구르릉 계속해서 지나가는 건 누군가요?”

    “저건 세탁기 소리란다. 헛간에 세탁기를 두고 쓰는데, 며칠 전부터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구나.”

    “세탁기가 화를 내는 건가요?”

    “하하하. 세탁기는 기계라서 화를 내지 않아. 아마 고장이 난 게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병이 난 거라고 할 수 있지.”

    “여긴 너무 시끄러워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섭기도 하구요. 아저씬 괜찮아요?”

    “첨엔 무서웠지만 이젠 괜찮아. 소리를 듣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단다. 그저께는 저 윗쪽 기와집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지 뭐냐. 돈을 꿔가고선 갚지 않았다고, 덩치가 커다란 사람 둘이서 멱살을 쥐고 싸우더라구.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오랫동안 말이다.”

    커다란 몸과 머리를 구불텅구불텅 흔들면서 누룩이는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흉내냈습니다. “그건 그렇고,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단다.”

    누룩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꼬물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뭔데요?”

    “아주 특별한 율모기에 대한 이야기란다. 날 따라오렴. 몸을 말리면서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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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가 드디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아기뱀 꼬물이>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서출판 가교, 2013. 2. 25.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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