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조명숙동화_아기뱀 꼬물이>율모기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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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

    조명숙




                                                         <일러스트 이지산>


    25. 율모기답게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꼬물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율모기 할머니의 말이 옳았습니다. 이제껏 멍청하게 굴었던 걸 생각하면 율모기 할머니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율모기 할머니는 내 편일 거야. 율모기는 율모기만을 믿어야 해.’

      꼬물이는 있는 힘을 다해 외딴집을 향해 기었습니다.

      외딴집 마당에 도착한 꼬물이는 마타리꽃과 사상자꽃 사이를 지나서 구절초꽃이 우거진 곳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감나무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감나무에는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아래 굴에 먹치 엄마가 있었습니다.

      ‘엄마……’

      먹치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몰아내던 아기 먹치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제풀에 머리를 내저었습니다.

      ‘난 율모기야. 먹치와 함께 살 수는 없어.’

      감나무에서 눈길을 돌린 꼬물이는 외딴집 방문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하얀 사람이 마당에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닫힌 방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루해진 꼬물이는 하품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옴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침내 방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사람은 꽁지머리였습니다.

      실망한 꼬물이가 투덜거리고 있을 때, 꽁지머리는 빗자루로 마당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사람은 어디 있는 거야?’

      꼬물이는 목을 쑥 뽑았습니다. 열린 방문 저쪽에 하얀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옳지. 저기 있군.’

     하얀 사람을 깨물자면 쓰악쓰악 마당을 쓸고 있는 꽁지머리의 눈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구절초 꽃밭을 빠져나온 꼬물이는 마당 가장자리를 조심조심 기어갔습니다.

      흙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뒤란으로 가 보니 조그만 창문이 있었습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까마득 높았습니다.

      꼬물이는 배비늘을 바짝 세우고 흙벽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흙벽은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습니다.

      배비늘을 세우고 가슴에 힘을 준 꼬물이는 몸을 한껏 구부렸습니다.

      “끙차 끙차.”

      숨을 몰아쉬면서 창턱에 도달한 꼬물이는 머리를 내밀고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얀 사람이 침대에 걸터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나쁜 사람 같으니. 어디 혼 좀 나 봐라.’

      꼬물이는 창틀 아래 놓인 화장대에 머리를 걸쳤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타고 살금살금 내려갔습니다.

      거울은 몹시 미끄러웠습니다. 배비늘에 잔뜩 힘을 주어도 몸이 줄줄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꼬물이는 미끄러지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나란 말이야? 정말 예쁘네.’

      꼬물이는 눈을 깜빡이며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더 잘 보려고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 바람에 균형을 잃었습니다. 꼬물이는 화장대 위에 툭 떨어졌습니다.

      꼬물이가 떨어짐과 동시에 화장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병들이 와그락 소리를 내며 넘어졌습니다.

      꼬물이는 하얀 사람 앞에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에그머니!”

      하얀 사람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꼬물이는 발랑 뒤집어진 몸을 파닥거려 자세를 고쳤습니다. 그리고 하얀 사람을 노려보았습니다.


      하얀 사람의 비명을 듣고 꽁지머리가 달려왔습니다.

      “아니, 율모기 새끼잖아. 어떻게 들어왔지?”

      꽁지머리가 빗자루로 꼬물이를 들어올렸습니다.

      꼬물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동거리며 빗자루에 몸을 휘감았습니다.

      꽁지머리는 꼬물이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사정없이 마당으로 내던졌습니다.

      털썩.

      잠시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꽁지머리가 마루 끝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꽁지머리 뒤에서 하얀 사람이 엉금엉금 기어나왔습니다.

      ‘쳇, 실패했군. 하지만 두고 보라지.’

      꼬물이는 하얀 사람을 노려보았습니다. 꼬물이와 하얀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하얀 사람은 꽁지머리를 향해 손을 내저었습니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하얀 사람의 손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꽁지머리는 본 체도 않았습니다.

      “조그만 놈이 아주 독하게 생겼군. 안되겠다. 멀찌감치 갖다버리든지, 아예 잡아서 뱀술을 만들어버려야겠다.”

      꽁지머리가 성큼 마루를 내려서더니, 빗자루를 들고 잰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얀 사람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뭐라고 소리쳤지만, 꽁지머리는 들은 체도 않았습니다.

      꼬물이는 재빨리 몸을 돌렸습니다. 어정거리다가는 큰일을 당할 것 같았습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달아나는데 꽁지머리가 빗자루를 휘두르며 쫓아왔습니다. 마당에서 꽃밭으로, 꽃밭에서 다시 마당으로 꼬물이는 힘껏 달아났습니다.

      마침내 꼬물이는 지치고 말았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작은 연못가 바위틈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꽁지머리가 숨을 헐떡이며 꼬물이 앞에 멈췄습니다.

      ‘이제 잡히나 보다.’

      꼬물이는 절망에 빠져서 꼬리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캄캄해졌습니다. 좁은 곳으로 몸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꼬물이는 있는 힘을 다해 바둥거렸습니다.

      ‘아아 답답해!’

      꼬물이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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