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조명숙동화_아기뱀 꼬물이>허물을 벗다




  •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일러스트 이지산>



    24. 허물을 벗다

     

    해가 남쪽으로 한참 기울어질 무렵, 꼬물이는 허물을 다 벗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척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꼬물이는 초록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진 몸을 이끌고 은사시나무 아래 굴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잠에서 깨자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허물을 벗고 한숨 푹 잔 덕분인지 몸이 부쩍 커진 것 같았습니다.

    꼬물이는 굴을 나와 저수지까지 천천히 기어갔습니다. 배가 너무너무 고팠습니다. 첫번째 허물을 벗었으니 먹기 시작해야 할 때였습니다.

    물 가까운 축축한 땅에서 꼬물이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지렁이를 발견했습니다.

    꼬물이는 가만히 지렁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물렁물렁한데다 느려터진 지렁이라면 한 입에 삼켜도 옴짝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디, 먹어 볼까?’

    꼬물이는 지렁이를 한 입에 물고 꿀꺽 삼켰습니다.

    ‘오호라, 맛있는 걸.’

    지렁이를 먹고 배가 불러진 꼬물이는 천천히 쏘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부들 잎에는 청개구리가, 초록이불처럼 물을 덮은 노랑어리연꽃과 생이가래 위에는 참개구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청개구리를 보면서 꼬물이는 꿀꺽 침을 삼켰습니다. 지렁이와 달리 청개구리를 잡으려면 머리를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내일이면 널 먹어 버릴 거야.’

    꼬물이가 청개구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길다랗고 커다란 머리가 쑥 올라오더니 노랑어리연꽃 위에 앉아 있는 참개구리를 덥썩 물어갔습니다.

    꼬물이는 깜짝 놀라 몸을 숨겼습니다. 저수지 물 속에서 만났던 커다란 무자치였습니다.

    ‘어휴, 조심해야겠어.’

    무자치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꼬물이는, 그때 무자치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무자치는 버드나무 아래에 나이가 많은 율모기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엄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도 했지요.

    꼬물이는 율모기 할머니에게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은사시나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버드나무 아래서 커다란 뱀굴을 발견한 꼬물이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계세요?”

    꼬물이가 다시 한 번 외쳤을 때야 머리 위에서 쉬어빠지고 갈라터진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 찾는 게 누구야?”

    율모기 할머니가 버드나무에서 슬글슬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꼬물이는 놀라서 그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꿈에서 본 엄마 모습과 율모기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비슷했습니다.

    화려한 무늬를 가진 율모기 할머니의 날렵하게 생긴 머리 위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정말 잘 타시네요.”

    “그렇단다, 꼬맹아.”

    율모기 할머니는 우아한 동작으로 땅에 내려와서, 으스대며 길다란 몸을 건들거렸습니다.

    “율모기는 나무를 잘 타지. 특히나 나처럼 나이가 많으면 나무 타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란다.”

    몸을 반쯤 세운 채로 율모기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넌 어디서 왔냐?”

    “저어기 외딴집 감나무 아래 살다가 어제 이리로 왔어요.”

    “쬐끄만 게, 귀엽군. 그런데 너 지금 외딴집 감나무라고 했니?”

    “네.”

    율모기 할머니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습니다.

    “오호라. 네가 바로 그 놈이구나."

    율모기 할머니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빛냈습니다. 그러다 곧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무자치가 한 말이 사실이었구나.”

    “무자치가 뭐라고 했는데요?”

    “바보 멍청이 아기 율모기가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얼마나 멍청한지 자기가 먹친 줄 알고 있더라나?”

    무자치가 말한 바보 멍청이는 바로 꼬물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꼬물이는 창피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전 율모기예요. 처음엔 헷갈렸지만 앞으론 율모기처럼 살 거예요. 벌써 허물도 한 번 벗은 걸요.”

    다부진 꼬물이의 말에 율모기 할머니가 머리를 끄떡이며 말했습니다.

    “암, 그래야지. 쬐끄만 녀석이 꽤 쓸만하군. 그래, 어디서 살고 있니?”

    “저기 은사시나무 아래서요.”

    “잘 됐구나. 네 엄마도 거기 살았었지.”

    우연히 발견한 은사시나무 아래 굴이 바로 엄마가 살던 곳이라니.

    꼬물이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작은 몸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제 엄마를 아세요?”

    꼬물이는 궁금증과 그리움이 가득 찬 눈으로 물었습니다. 율모기 할머니가 입꼬리를 비틀면서 말했습니다.

    “알고 말고. 꽤나 멍청한 율모기였지. 알을 품고 싶다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사람에게 밟혀 죽고 말았지 뭐냐. 외딴집에 사는 하얀 사람이 네 엄마를 밟아버렸지.”

    “네?”

    꼬물이는 너무 놀랐습니다. 사람에게 밟혀 죽은 멍청한 뱀이라니. 엄마에 대해 듣게 된 첫마디치고는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꼬물이는 고개를 푹 떨궜습니다. 율모기 할머니가 빈정대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멍청한 율모기가 죽으면서 알 하나를 남겼지. 가만히 둬도 잘 깨어날 텐데 누룩이란 녀석이 그 알을 먹치에게 갖다 맡겼지 뭐냐. 그래서 태어난 게 바로 너란다.”

    엄마의 흔적을 찾았다는 기쁨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까불었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꼬맹아. 너 지금 우는 거니? 창피하지도 않니? 어쩜 그리 네 엄마처럼 멍청하니?”

    율모기 할머니가 쌀쌀맞게 쏘아부쳤습니다.

    꼬물이는 입술을 꼭 물었습니다. 자기가 멍청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까지 바보 멍청이로 몰아붙이다니,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울음을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앞으론 절대 울지 않을 거예요. 전 영리하고 용감한 율모기니까요.”

    “아무렴, 그래야지. 하지만 네 말을 누가 믿겠니? 먹치 물이 잔뜩 들어서 엄마 같은 거나 찾아대는 주제에.”

    꼬물이는 작은 머리를 똑바로 들었습니다.

    “율모기다워질 수 있다면 뭐든 하겠어요.”

    “그래? 그럼 네 엄마를 죽게 한 하얀 사람부터 콱 물어버려.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갚을 줄 알아야 진짜 율모기라 할 수 있지.”

    야멸찬 웃음을 남기고 율모기 할머니는 자기 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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