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동화_아기뱀 꼬물이>다시 은사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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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일러스트: 이지산


     


    23. 다시 은사시나무

     

    누룩이가 꼬물이를 찾고 있을 무렵, 꼬물이는 저수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꼬물이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해가 떠올라 물 위에 어린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게 될 굴을 마련하려고 꼬물이는 저수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그리고 은사시나무가 보였습니다. 그 밖에도 느릅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가 있었고, 찔레와 칡덩굴이 엉긴 덤불도 있었습니다.

    꼬물이는 오리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살금살금 밑둥까지 내려간 꼬물이는 커다란 입구를 발견하고 살금살금 들어갔습니다.

    “누구야?”

    커다란 능이가 자다 말고 번쩍 머리를 들었습니다. 꼬물이는 깜짝 놀라 냅다 달아났습니다.

    ‘엄청나게 크구나.’

    정신없이 달아나서 칡덩굴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또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입을 벌리면 단번에 꿀꺽 삼켜버릴 만큼 커다란 능이가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무섭지? 어제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꼬물이는 작은 또아리 속에 머리를 묻은 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곧 머리를 들었습니다.

    ‘난 율모기야. 율모기는 영리하고 용감해.’

    꼬물이는 가만히 자기에게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무서움이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또아리를 풀고 칡덩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은사시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은사시나무 아래에 도착한 꼬물이는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넓은 잎이 뒤집어지면서 은빛을 냈습니다.

    꼬물이는 은사시나무를 한 바퀴 빙 돌았습니다. 워낙 커다래서 둘레만 해도 꼬물이 몸 길이의 몇 배나 되는 나무였습니다.

    은사시나무 둥치 아래 뱀굴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살그머니 머리를 집어넣고 누가 살고 있는지 조심조심 둘러보았습니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굴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꼬물이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굴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굴 한가운데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서 살면 되겠어.’

    꼬물이는 오래 떠났던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그만 스르르 눈이 감겼습니다.

    꿈이었을까요?

    꼬물이는 은사시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꼭대기에서는 넓은 저수지와 먼 곳의 산과 들판까지 환히 보였습니다. 고개를 들자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머리를 한껏 젖히고 높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물아! 꼬물아!”

    커다란 율모기가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초록 바탕에 빨간색 무늬가 찍힌 율모기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하늘색 도화지에 풀밭과 꽃을 그려 놓은 것 같았습니다.

    “누, 누구세요?”

    “꼬물아. 엄마란다.”

    꼬물이는 혀를 내밀며 다가갔습니다. 혀로 커다란 율모기를 만져본 꼬물이는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어, 엄마……”

    꼬물이는 엄마를 부르며 잠에서 깼습니다. 꿈이었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굴에서 나왔습니다. 은사시나무는 꿈에서 본 그대로 하늘 높이 뻗어 있었습니다.

    ‘저 꼭대기에 엄마가 있을지도 몰라.’

    꼬물이는 고개를 힘껏 젖혀 은사시나무를 올려다봤습니다. 얼마나 높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청 높구나. 올라가 봐야겠다.’

    꼬물이는 꼬리로 땅을 디디고 머리를 은사시나무에 갖다 댔습니다. 배에 힘을 주고 힘껏 배비늘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금방 땅에 툭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해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기를 거듭하다 보니 꼬물이는 마침내 지치고 말았습니다. 은사시나무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다음날에도 꼬물이는 은사시나무를 기어오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굴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조금씩 몸이 자라고 뭔지 모를 힘이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틀이 더 지나자 좁은 곳에 갇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가슴만 답답한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꼬리까지 꽉 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꼬물이는 은사시나무에 대고 몸을 비볐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나무에 몸을 비빌 때마다 소리가 났습니다. 미끄럽고 촉촉하던 피부가 딱딱하고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바싹 마른 겉 피부 안에 새 피부가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아하! 허물을 벗을 때가 왔구나.’

    몸의 변화를 알아차린 꼬물이는 은사시나무에 입을 대고 살살 문질렀습니다.

    은사시나무의 작고 뾰족한 옹이에 입 주변에서 일어난 겉껍질을 단단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힘껏 머리를 잡아당겼습니다.

    포근한 가을 햇살이 허물이 벗겨진 꼬물이의 머리 위로 풍성하게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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