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난 왜 다른 거야

  •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일러스트  이지산




    22. 난 왜 다른 거야

     

    꼬물이가 외딴집을 나서고 있을 때, 사람이 사는 집 돌담 아래 굴에서는 누룩이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습니다.

    누룩이가 감나무 아래 먹치 굴에서 업둥이 율모기의 알이 깨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휘파람새가 호이이호잇 알려주었고, 곤줄박이도 지재글재글 떠들어댄 덕분이었습니다.

    휘파람새와 곤줄박이는 먹치 알이 깨어난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업둥이 율모기 알이 무사히 깨어났다는 소식에 누룩이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 엄마처럼 사려깊은 율모기였으면 좋겠어.’

    누룩이는 어서 빨리 아기 율모기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먹치 굴로 향했습니다.

     

    풀섶의 이슬을 털면서 외딴집에 도착한 누룩이는 우선 마당을 살폈습니다.

    이른 아침, 외딴집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꽃과 풀이 뒤엉킨 꽃밭을 지나 누룩이는 뒤란에 있는 감나무 둥치까지 갔습니다.

    먹치 굴에 도착한 누룩이는 굴 앞에 앉아 있는 먹치를 발견했습니다.

    “먹치 아줌마. 마침 나와 있었군요.”

    “아, 누룩이구나. 마침 잘 왔어.”

    먹치는 누룩이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알들이 모두 깨어났다면서요? 큰일을 해내셨어요, 먹치 아줌마.”

    누룩이가 넓적한 머리를 끄떡였습니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무슨 말씀을요. 아홉 개의 알을 다 깨어나게 하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거기다 율모기 알까지! 먹치 아줌마가 품어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율모기 알은 무사히 깨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누룩이는 마치 자기 알을 품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먹치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먹치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새까맣고 현명한 눈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고요, 머리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누룩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치를 쳐다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알을 품느라 힘이 다 빠져버린 것일까?’

    누룩이는 혼자 떠들어댄 것이 머쓱해서 그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때 아기 먹치들이 한꺼번에 굴 입구로 몰려나왔습니다. 아기 먹치들은 누룩이를 보더니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댔습니다.

    “아저씬 누구예요?”

    “맘씨 좋게 생겼어. 나쁜 냄새도 안 나고.”

    “아저씨. 우리랑 놀아주면 안돼요? 심심해 죽겠어요.”

    아기 먹치들이 누룩이에게 몰려들어 떼를 썼습니다.

    누룩이는 새까만 아기 먹치들을 차례차례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어휴, 참! 귀엽기도 하지. 하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모여드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아기 먹치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누룩이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먹치에게 물었습니다.

    “먹치 아줌마. 아기 율모기는 어딨어요?”

    “누룩이야. 그게 말이다…….”

    먹치가 슬픈 표정으로 누룩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누룩이는 아기 먹치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가만히 먹치의 말을 들었습니다.

     

    꼬물이가 굴을 나가버린 사실을 알게 된 누룩이는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먹치 아줌마. 자기가 율모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자연세계는 위험한 것 투성이지만, 그 위험을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거잖아요.”

    “내가 걱정하는 건 그 때문이 아니란다, 누룩이야.”

    “꼬물이가 마음을 다쳤을까 봐 그러는 거지. 마음을 다친 뱀은 앙갚음을 한댔으니까.”

    누룩이가 놀라 물었습니다.

    “앙갚음이라고요?”

    “사람들과 오래 살다 보면 이것저것 주워듣게 되지.”

    먹치의 말에 누룩이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친 뱀이 앙갚음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룩이야. 넌 마음을 다친다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누룩이가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즐겁지는 않아요.”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때 자기 마음도 쓰리고 아픈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을 다치는 일이지.”

    “그럼 꼬물이는 마음을 다친 게 분명하군요. 앙갚음을 하려고 들면 어쩌지요?”

    걱정스런 눈으로 누룩이가 물었습니다. 먹치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음을 다쳤을 때 앙갚음을 하는 건 사람들의 일이란다. 사람들은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갚으려 하지. 어떤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나쁜 마음을 우리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모양이구나.”

    먹치의 말을 들은 누룩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요.”

    “꼬물이는 다정하고 상냥한 마음을 타고 났어. 제 엄마가 그러기도 했지만, 나더러 엄마라고 불렀고, 어제는 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단다. 특별한 율모기라 할 수 있지.”

    “그럼 알을 품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가엾게 죽은 율모기의 꿈이 꼬물이에게서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룩이는 꼬물이가 사라진 외딴집 마당을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꼬물이를 찾아보겠어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위험하기도 할 뿐더러 나쁜 소문을 듣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사람을 무턱대고 미워하게 되거나 다른 뱀들과 앙숙이 되기 전에 엄마 율모기의 꿈에 대해 말해줘야겠어요.”

    “하지만 어디서 찾지? 세상은 너무나 넓어.”

    “아마 멀리 가진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제겐 친구가 많잖아요. 여기 저기 물어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누룩이는 꼬물이를 찾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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