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거짓말쟁이 엄마



  •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일러스트 이지산>





    21. 거짓말쟁이 엄마

     

    사방이 깜깜해진 뒤에야 꼬물이는 감나무 아래 굴로 돌아갔습니다.

    “꼬물아. 왜 이렇게 늦었니?”

    먹치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꼬물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꼬물아. 엄마한테 오렴.”

    먹치가 다정하게 불렀지만 꼬물이는 무뚝뚝하게 대꾸했습니다.

    “전 그냥 여기 있을래요.”

    “그럼 그렇게 하렴. 참, 꼬물아. 네 동생들이 깨어났단다. 이리 와서 동생들 좀 보지 않을래?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단다.”

    꼬물이는 다가가지도 않고 건성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동생들아.”

    “안녕, 형아야.”

    “형아는 어떻게 생겼어? 어두워서 안 보여.”

    아기 먹치들이 종알거렸습니다. 꼬물이는 가만히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엄마 품에 모여 있는 동생들이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난 혼자 있는 게 좋은데 엄마와 동생들은 그렇지 않은가 봐.’

    두꺼비와 무자치가 한 말이 떠올라서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또아리를 튼 채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왜 그러니, 꼬물아?”

    나직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해 보렴.”

    “저 먹치 맞아요?”

    재잘대던 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꼬물이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먹치니까 너도 먹치가 아니겠니?”

    꼬물이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답답하던 가슴도 뻥 뚫린 것 같았습니다.

    엄마 말대로였습니다. 먹치 엄마에게서 태어났으니 먹치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쓸데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꼬물이는 목소리를 높여 투덜거렸습니다.

    “대숲에 있는 두꺼비하고, 저수지에서 만난 무자치가 저더러 율모기라지 뭐예요? 멍청한 뱀들 같으니.”

    “저런! 그래서 화가 났구나. 넌 틀림없는 먹치니까 두꺼비나 무자치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단다.”

    “그래요, 엄마. 전 먹치예요.”

    꼬물이는 작은 또아리를 풀고서 먹치에게로 기어갔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엄마 품을 비집고 들었습니다.

    엄마 품은 편안했습니다. 꼬물이는 동생들 틈에 끼어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금세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꼬물이가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엄마를 찾고 있을 때, 온몸이 새까만 아기뱀이 툭 치면서 다가왔습니다.

    “넌 누구냐?”

    새까만 아기뱀을 향해 눈을 부릅떴습니다.

    “너야말로 누구냐?”

    아기뱀도 머리를 치켜들고 노려보았습니다.

    “누구라니? 난 꼬물이야. 여긴 우리 집이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꼬물이는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꼬리가 따끔했습니다. 엉겁결에 꼬리를 잡아당기며 돌아보니 또다른 아기뱀이 꼬물이의 꼬리를 힘껏 깨물고 있었습니다.

    “아야!”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 빼낸 다음 꼬물이는 어이없는 투로 두 아기 뱀을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둘 다 새까맣고 둥글넙적한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굴 안에는 똑같이 생긴 아기뱀이 무려 아홉이나 되었습니다.

    아기뱀들은 굴 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느라 법석이었습니다.

    꼬물이는 꼬리로 버티면서 몸을 꼿꼿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기뱀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희들은 다 뭐냐? 아침부터 왜 남의 집에 와서 난리들이야?”

    꼬리를 깨문 아기뱀이 꼬물이 앞에 발딱 몸을 세우고 맞섰습니다.

    “난 첫째야. 그리고 쟤들은 내 동생들이야.”

    첫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뱀들이 우루루 꼬물이에게로 몰려왔습니다.

    아홉이나 되는 아기뱀들은 꼬물이를 에워싸더니, 입을 모아 소리쳤습니다.

    “여긴 우리 집이야!”

    꼬물이도 지지 않았습니다.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 엄마가 사는 곳이니까.”

     

    먹치 엄마가 한입 가득 지렁이를 물고 굴로 돌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얘들아. 왜들 이러니?”

    꼬물이는 아기뱀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소리쳤습니다.

    “엄마. 시꺼멓고 못생긴 얘들은 누구예요?”

    아홉 마리 아기뱀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엄마. 이상한 애가 우리 집에 있어요.”

    첫째가 꼬물이를 가리키며 눈을 흘기자, 셋째와 넷째도 덩달아 눈을 흘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굴 안은 갑자기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지렁이를 내려놓은 먹치는 아기 먹치들과 꼬물이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차리고는 꼬물이와 아기 먹치들을 갈라놓았습니다.

    “꼬물아. 저 아이들은 어제 태어난 네 동생들이란다. 그리고 얘들아. 꼬물이는 바로 너희들 형아야.”

    꼬물이와 아기 먹치들은 다투어 소리쳤습니다.

    “내 동생들이 이렇게 생겼을 리 없어요, 엄마.”

    “알록달록하게 생긴 형아는 싫어요, 엄마.”

    열이나 되는 아기뱀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먹치는 어쩔 줄 모른 채 허둥거렸습니다. 그러나 곧 침착함을 되찾았습니다.

    “꼬물아. 내가 알을 품고 있는 걸 봤잖니? 그 알들이 어제 깨어난 거란다. 그리고 얘들아. 형아는 너희들보다 하루 먼저 깨어났어.”

    꼬물이는 엄마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알에서 깬 동생들은 자기처럼 알록달록하지 않았습니다.

    꼬물이는 새까만 몸 색깔에 둥글넙적한 머리를 가진 동생들이 모두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울상을 지으며 꼬물이는 동생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왜 쟤들과 저는 다른가요?”

    꼬물이의 말에 첫째가 냅다 소리쳤습니다.

    “바보 멍청아. 우린 먹치고, 너는 율모기니까 그렇지.”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와 여섯째와 일곱째와 여덟째와 아홉째도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었습니다.

    “쟤한테서는 독냄새가 나요.”

    “눈빛이 아주 기분 나빠요.”

    그러면서 아기 먹치들은 꼬물이를 바깥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꼬물이는 고개를 바짝 들고 맞서려고 했지만, 아홉이나 되는 아기 먹치들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꼬물이는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내 말 좀 들어 보렴.”

    먹치 엄마가 가로막으며 타일렀지만 아기 먹치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문 앞에까지 밀려난 꼬물이에게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먹치 엄마가 다가와서 감싸안으려고 했지만 꼬물이는 고개를 싹 돌렸습니다.

    “전 율모기였어요. 두꺼비와 무자치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거예요. 엄마는 거짓말쟁이예요.”

     

    꼬물이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굴 밖으로 나갔습니다.

    꼬물이는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엄마와 아기 먹치들이 굴 입구에서 꼬물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기 먹치들은 의기양양해 있었지만, 엄마 먹치는 슬픈 표정으로 꼬물이를 지켜보았습니다.

    꼬물이는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슬펐지만 마음을 다져먹었습니다.

    ‘난 율모기야. 그러니 먹치들과 함께 살지 않겠어.’

    외딴집 마당으로 내려간 꼬물이는 꽃밭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꽃밭에는 변함없이 꽃들이 피어 있었고, 싱그러운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향기로운 꽃냄새와 싱그러운 풀냄새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촉촉하게 이슬이 내린 땅 위를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놀려 먹을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청개구리 한 마리가 보란 듯이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쫓아가서 놀래주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바보였어. 진작에 두꺼비와 무자치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꼬물이는 자기가 태어난 굴이 있는 감나무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외딴집 밖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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