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무자치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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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


    조 명 숙



                                                         <일러스트 이지산>



    20. 무자치가 한 말


      먹치가 한 입 가득 지렁이를 물고 굴로 돌아가고 있을 때, 꼬물이는 저수지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꼬물이는 저수지 주변 축축한 곳을 함부로 돌아다녔습니다.

      물속에 뿌리내린 풀과 물 위에 동실동실 떠 있는 풀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벌레와 물 위를 헤엄치는 벌레들을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물 가장자리에 뛰어들어 찰방거렸습니다. 물은 참 신기했습니다. 몸을 담그자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참 놀다 보니 몸이 차가워졌습니다.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풀밭에 길게 몸을 폈습니다. 그러자 금방 따뜻해졌습니다.

      풀밭 위를 뒹굴던 꼬물이는 하얀 구름을 발견했습니다. 구름은 한없이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저기 누우면 정말 편안할 거야.’

      꼬물이는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구름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어딘가에 구름 한 덩어리가 떨어져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쪽을 쳐다보던  꼬물이의 눈이 저수지 한가운데서 딱 멈췄습니다.

      ‘어라? 저기 떨어져 있네!’

      벌떡 몸을 일으킨 꼬물이는 무조건 저수지로 퐁당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깊어질수록 몸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물결이 꼬물이의 작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습니다.

      ‘영차 영차!’

      꼬물이는 물결에 휩쓸리려는 몸을 가누면서 힘껏 헤엄쳤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무자치가 뒤쫓아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봐, 꼬맹이.”

      무자치가 꼬리로 옆구리를 쿡 찔렀을 때야 꼬물이는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회색 뱀 무자치를 말똥말똥 쳐다보았습니다.

      “재미가 좋으시군 그래.”

      무자치가 꼬리로 물을 튕기며 이죽거렸습니다. 자기에 비해 엄청나게 큰 무자치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꼬물이는 냉큼 대답했습니다.   

      “네. 물은 마치 공기 같아요. 물속에 있으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인 걸요.”

      “당연하지.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까. 사람 세상의 과학자들은 뒤늦게야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우리 무자치들은 사람보다 훨씬 먼저 알고 있었지.”

      거드름을 피우면서 무자치가 말했습니다. 꼬물이는 신나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럼요. 사람들이란 늘 뒤늦게 알아낸 사실을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들만 아는 것처럼 떠들어대지요.”


      “그건 그렇고, 넌 어디서 왔냐?”

      무자치가 꼬물이의 말꼬리를 싹둑 자르며 물었습니다.

      “저어기서요.”

      꼬물이는 고개를 돌려 멀리 보이는 외딴집 감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꼬물이의 눈길을 따라가던 무자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저기라니?”

      “외딴집 감나무 아래 말이에요.”

      “어라? 거긴 먹치가 사는데?”

      “맞아요. 먹치가 바로 우리 엄마예요.”
      꼬물이는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무자치가 갑자기 긴 몸을 위 아래로 흔들어 마구 물장구를 치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무자치는 또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꼬물이 주위를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꼬물이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덩치가 커다란 어른뱀이 물을 참방거리면서 까불대다니,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 웃어요?”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로 무자치가 말했습니다.

      “꼬맹아. 네 엄마가 먹치라고 했니?”

      꼬물이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럼요. 먹치가 바로 우리 엄마라니까요. 우리 엄마는 아줌마보다 훨씬 커요. 새까맣고 머리는 둥그스름한 게 얼마나 멋지다구요.”


      무자치가 다시 물장구를 치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는, 꼬물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꼬맹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니?”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잖아요.”

      “나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니?”

      꼬물이는 시큰둥 대꾸했습니다.

      “뭐 별로요. 하지만 뱀이겠죠. 길다랗게 생겼으니까.”

      “하하하. 나는 무자치라고 해. 무자치는 물에 살고, 대체로 나처럼 색깔이 이래. 알겠니? 그리고 너처럼 알록달록한 뱀은 율모기라고 해. 우리처럼 헤엄을 치기도 하지만 땅에 사는 걸 더 좋아하지. 그러니까 저기 외딴집 감나무 아래 사는 새까만 뱀은 네 엄마가 아니라구.”

      무자치의 말에 꼬물이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뭘 모르시는군요? 지금은 이래도 허물을 벗으면 엄마처럼 새까매진다구요.”

      “고 녀석, 하는 짓도 꼭 율모기네. 너 같은 걸 업둥이로 키우다니, 먹치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지 뭐냐.”

      “우리 엄마 흉보지 마세요.”

      꼬물이는 신경질을 내며 소리쳤습니다. 무자치가 다시 물을 참방대며 웃었습니다. 그 바람에 꼬물이의 몸이 몹시 흔들렸습니다.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씨이. 남은 화가 나 죽겠는데 뭐가 재밌어요?”

      투덜거리며 무자치를 노려보았습니다.

      무자치가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면서 말했습니다.

      “꼬맹아. 우리들 뱀은 말야, 태어날 때 그 색깔 그대로 계속해서 사는 거야. 넌 업둥이 율모기라니까.”

      “자꾸 율모기, 율모기 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단 말이예요.”

     꼬물이가 발칵 화를 냈습니다. 무자치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저어기 버드나무 아래 굴에 한 번 가 봐라.”

      “거긴 왜요?”

      “거기 너랑 똑같이 생긴 율모기 할머니가 살고 있어. 아마도 네 진짜 엄마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줄 거다.”
      그래 놓고 무자치는 한가로이 헤엄을 치며 가버렸습니다.

      구름을 잡으러 가던 일을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무자치 때문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난 먹치야. 그런데 업둥이 율모기에다 진짜 엄마는 또 뭐람.’

      ‘아니야. 뭔가 이상해. 그저께 만난 두꺼비도 나더러 율모기라 그랬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름없이 물가로 헤엄쳐 나왔습니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어.’

      꼬물이는 저수지 둑에 앉아 몸을 말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해는 어느덧 기울었습니다. 저수지에는 발그레한 노을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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