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천방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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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 



                                      <일러스트 이지산>


     
    17. 천방지축

      

    키 큰 꽃들이 있는가 하면 키 작은 꽃들이 있었습니다. 넓은 잎이 다보록 우거져 있는가 하면 가느다란 잎들이 빼곡 들어차 있기도 했습니다.

      옴폭 패인 고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은 흘러서 작은 연못에 모였다가 다시 졸졸 흘러갔습니다. 이끼가 곱게 앉은 돌멩이들이 주욱 늘어서 있기도 했습니다.  

      꽃밭에서 연못으로, 연못에서 마당 가장자리로, 마당 가장자리에서 마당 가운데로 꼬물이는 꼬물꼬물 기어다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황토를 바른 담벼락까지 갔습니다. 

      작은 마루와 방문이 보였습니다. 마루에는 사람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크고 하얀 사람가 작고 오동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꼬물이는 신기해서 머리를 바짝 치켜들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모락모락 떠올랐습니다. 

      그때 작은 사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꼬물이와 작은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작은 사람의 눈이 반짝 빛을 내는가 싶더니, 이내 발딱 일어났습니다. 주먹을 꼭 쥐고 한 걸음 다가오는 작은 사람을 꼬물이는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뭐야, 저 눈빛은?’

      꼬물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 작은 사람이 냅다 소리 지르며 돌멩이를 집었습니다. 

      “뱀이다! 아줌마, 뱀이에요!”

      어느 새 돌멩이가 꼬물이 곁에 툭 떨어졌습니다. 

      ‘이크, 깜짝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꼬물이는 투덜거리면서 작은 사람을 노려보았습니다. 작은 사람이 다시  돌멩이를 집어들었지만 꼬물이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하얀 사람이 뭐라고 하면서 작은 사람의 손에서 돌멩이를 뺏어 멀리 던졌습니다.

      꼬물이는 가만히 하얀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얀 사람도 꼬물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말끄러미 자기를 쳐다보는 하얀 사람 눈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라는 거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꼬물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재빨리 몸을 돌렸습니다.


      꼬물이가 다시 굴로 돌아오자 먹치는 무척 기뻤습니다.

      혼자 살 곳을 찾아 떠나지 않고 돌아오다니, 알을 품어서 아기들을 지키겠다던 엄마 율모기가 생각났습니다.

      ‘꼬물이는 정말 특별해. 이 다음에 알을 품으려고 할지도 모르겠는 걸.’

      먹치는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꼬물이 세상 구경을 하고 오더니 한결 의젓해졌구나. 첫 허물을 벗고 나면 정말 어른스럽겠어.”

      “허물을요?”

      “우리들 뱀의 몸은 얇고 튼튼한 막으로 싸여 있단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지. 몸이 자꾸 커지면 옷이 작아지지 않겠니? 허물을 벗는다는 건 새옷을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그렇게 몇 번 허물을 벗고 나면 어른이 되는 거야.”

      꼬물이가 눈을 빛내며 물었습니다.

      “첫 허물은 언제 벗게 되나요?”

      “해가 일곱 번 지고 나면 그때가 온단다.”

      팔짝팔짝 뛰면서 꼬물이가 말했습니다.   

      “빨리 해가 졌으면 좋겠어요. 허물을 벗으면 저도 엄마처럼 새까매지겠지요?”

      먹치는 얼른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럼, 그럼. 새까만 것은 지혜의 상징이란다.”

      힘차게 고개를 끄떡인 꼬물이가 외딴집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엄마. 저어기 꽃이 많은 집에서 사람을 봤어요. 온몸이 하얀 사람하고 조그만 사람이었어요.”

      먹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얀 사람은 꼬물이 엄마를 밟았고, 작은 사람은 꼬물이 엄마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칠월의 어느 날에 일어난 뜻밖의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꼬물이 엄마 율모기는 몹시 앓게 되었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율모기가 죽은 후에도 작은 사람은 뱀을 보기만 하면 사정없이 돌을 던졌습니다. 돌담 아래 누룩이에게도 먹치에게도 작은 사람은 다짜고짜 돌을 던졌습니다.

      

      먹치는 꼬물이에게 작은 사람을 조심하도록 단단히 일렀습니다.

      “걱정마세요, 엄마. 참, 그리고 대숲에서는 두꺼비도 만났어요. 이렇게 커다란 두꺼비 말이에요.”

      꼬물이가 제 몸을 두꺼비만큼 둥그렇게 말았습니다.

      먹치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꼬물이는 두꺼비가 아기뱀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삼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런! 얼른 도망치지 그랬니?”

      먹치는 놀라서 소리쳤지만 꼬물이는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도망치긴요. 까짓 두꺼비가 뭐 무섭다고요. 전 도망치지 않았어요. 두꺼비가 도망갔지요.”

      먹치는 혀를 끌끌 찼습니다.

      “넌 아직 두꺼비 상대가 안 돼.”

      “걱정 마세요, 엄마. 제가 어서 자라서 두꺼비를 먹어버리면 되잖아요.”

      꼬물이는 의기양양 말했지만 먹치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와서 천방지축인 꼬물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먹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물이는 눈을 대록대록 굴리며 다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두꺼비가 이상한 말을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

      “저더러 업둥이라지 뭐예요? 업둥이가 뭐예요?”

      먹치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착하게 일렀습니다.

      “업둥이란 말이다, 부모가 죽거나 키울 형편이 못돼서 다른 집에서 자라게 된 아기를 말한단다. 네게는 이렇게 엄마가 있고, 곧 깨어날 동생들이 있으니 업둥이일 리 없지 않니?”

      “그러게나 말이예요. 두꺼비 녀석, 참 멍청하네요.”

      꼬물이는 굴 한 쪽으로 가서 쌔근쌔근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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