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꼬물이 태어나다

  • 아기뱀 꼬물이  




     

    <일러스트 이지산>
     





    15. 꼬물이 태어나다


      구월이 왔습니다. 그렇게 뜨겁던 태양도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자 어쩔 수 없이 식어갔습니다.

      한낮은 여름처럼 더웠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감은 커다래지고 박과 호박이 탐스럽게 자랐습니다.

      들판에는 벼가 튼튼하게 여물었지요. 수수며 참깨며 콩도 꼬투리가 터질듯이 볼록해졌습니다.

      새들은 신이 났고요, 벌레들도 덩달아 열심히 울었습니다.

      외딴집 마당에는 갖가지 가을꽃이 피었습니다. 국화, 구절초, 미역취, 산자고, 마타리 같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외딴집은 온통 꽃이었습니다.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 몰려왔고요, 청개구리와 참개구리, 두꺼비와 도롱뇽도 갖가지 꽃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감나무 아래 먹치 굴에서는 아홉 개의 먹치 알과, 업둥이 율모기 알 하나가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몹시 맑고 높은 오후였습니다.

      아기 율모기는 윗입술에 있는 날카로운 젖니로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초록색 바탕에 빨간 무늬가 새겨진 아기 율모기는 끝이 갈라진 혀와 입 주위의 감각기관으로 재빨리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먹치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안녕, 아가야.”

      아기 율모기가 마름모꼴의 까만 눈을 대록대록 굴리며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난 먹치 엄마란다. 너를 깨어나게 했지.” 

      먹치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아기 율모기는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먹치 엄마와 자기 몸을 번갈아 살폈습니다. 

      그러더니 새까만 엄마와 달리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제 몸이 이상한 듯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그럼 나는 뭔가요?”

      “내가 먹치니까 당연히 먹치지.”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아기 율모기가 말했습니다.  “

      “그럼 나는 언제 엄마처럼 되나요?”

      갑작스런 물음에 먹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기 율모기는 조금 상심한 듯하더니 곧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알록달록한 건 좀 이상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언젠가는 엄마처럼 새까맣고 의젓해지겠죠.”

      “그, 그래.”

      아기 율모기는 먹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 작은 머리를 살며시 기댔습니다.

      ‘세상에! 신기하기도 하지.’

      먹치는 아기 율모기의 머리를 꼬리로 살며시 쓰다듬었습니다.

      “엄마…….”

      아기 율모기가 가느다란 혀를 내밀어 먹치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한 달 넘게 품어준 먹치의 따뜻한 모성애 덕분이었을까요.

      “그래 그래 아가야. 배고프지?”

      먹치는 사랑이 넘치는 목소리로 아기 율모기가 깨고 나온 알껍질을 가리켰습니다.

      “우선 저 알껍질부터 먹어두렴.”

      알껍질을 말끄러미 쳐다보더니 아기 율모기는 고개를 싹 돌려버렸습니다.

      “싫어요. 맛없을 것 같아요.”

      “알껍질은 뼈를 단단하게 해 준단다.”


      먹치가 타일었지만 아기 율모기는 들은 척도 않았습니다.

      먹치는 그제야 율모기가 첫 허물을 벗기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럼 이건 내가 먹어둬야겠다.”

      “그런데 엄마. 지금 밖에 나가 보면 안돼요?”

      아기 율모기가 냉큼 말했습니다.

      먹치는 당황했습니다. 아기에게서 율모기의 습성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모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떠나서 혼자서 살아가는 뱀이었습니다. 그래선지 아기 율모기의 눈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쩌지? 밖에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아기뱀에게 바깥세상은 너무나 위험해.’

      먹치는 걱정으로 가득 차서 아기 율모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아기 율모기는 굴 밖으로 나가려고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야, 아가야.”

      “왜요, 엄마?”

      “굴 밖에는 위험한 것들이 많아. 독수리나 오소리, 쥐, 두꺼비 황소개구리 같은 것들이 널 먹으려고 할 거야. ”

      아기 율모기는 놀라서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리쳤습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내겐 이렇게 커다란 엄마가 있잖아요.”

      먹치는 감격해서 덩달아 소리쳤습니다.

      “그럼, 그럼. 누군가 해치려고 하면 어서 엄마를 불러야 한다. 우리 뱀들은 아주 멀리서 나는 작은 소리까지 잘 들을 수 있단다.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소리쳐. 그럼 내가 당장 달려갈게.”

      “네, 엄마.”

      아기 율모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습니다. 먹치는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아무 데나 꼬물꼬물 기어다니다가는 큰일난단 말이야. 가까운 곳에서 놀다가 내가 부르면 곧장 달려와야 한다. 알겠니?”

      “네. 그럴 게요.”

      아기 율모기의 대답은 여전 심드렁했습니다. 먹치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넌 이제부터 꼬물이라 불러야겠다.”

      “꼬물이요? 그게 뭔가요?”

      “네 이름이야.”        

      “이름이란 뭔가요?”

      아기 율모기는 작은 꼬리를 흔들며 말똥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널 특별하게 해 주는 거란다.”

      “정말이에요? 아이 좋아라.”

      아기 율모기가 촐싹거리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굴 밖으로 나갔습니다.

      먹치는 꼬물이가 기어나간 바깥을 걱정스럽게 내다보았습니다.



      16. 환한 세상


      꼬물이는 꼬물꼬물 굴을 나왔습니다.

      굴 밖은 너무나 환했습니다.

      “아이 눈부셔.”

      꼬물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해가 떠 있었습니다.

      해가 비추는 세상은 너무나 넓고 컸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을 욜량욜량 흔들며 꼬물이는 외딴집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샛노란 마타리가 향기를 내뿜었습니다. 마타리 옆의 국화도 덩달아 향기를 내뿜었습니다. 

      꽃향기에 취한 꼬물이는 둥실 하늘로 떠오른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너무 너무 멋져! 매일매일 와서 놀아야지.”

      꼬물이는 팔딱거리면서 구절초에게 갔습니다.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하얀 구절초가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참취와 쑥방망이꽃에게도 갔습니다. 미역취와 사상자꽃에게도 가서 향기를 맡았지요.

      

      꽃밭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에 꼬물이의 몸도 향긋해졌습니다.

      “저건 뭐지?”

      길다란 꽃대 위에 빨갛게 매달려 있는 꽃무릇이었습니다. 꼬물이는 눈을 빛내며 다가갔습니다.

      “참 신기한 꽃도 다 있네.”

      꼬리로 살짝 건드려 보았습니다. 움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머리로 조금 세게 밀어봤습니다. 역시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꼬물이는 살금살금 꽃무릇을 기어올라갔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길다란 꽃술 사이에 혀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때 크고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너 거기서 뭐 해? 내려오지 못해?”

      등이 넓적하고 눈이 커다란 두꺼비가 불룩한 배를 쑥 내밀고 앉아 있었습니다.


      검정색과 회색과 갈색이 뒤섞인 몸 색깔은 우중충했고, 등에는 울퉁불퉁한 혹이 잔뜩 달려 있었습니다.

      두꺼비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타고 올라가면 어떡해? 벌이나 나비라면 몰라도, 너 같이 무거운 게 올라가면 꽃대가 부러지고 말 거야.”

      꼬물이는 대답 대신 꼬리를 흔들며 깔깔 웃었습니다.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가 긴 두꺼비가 우스꽝스럽기만 했습니다.

      꼬물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습니다.

      “너 참 고약하게 생겼구나.”

      “뭐라고?”

      “왜 그렇게 못 생겼냐고? 나를 좀 봐. 얼마나 예쁘니? 난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생겼지.”

      꼬물이는 알록달록한 제 몸을 두꺼비 앞으로 쑥 내밀었습니다.

      어이가 없는 듯 두꺼비가 눈을 껌벅거렸습니다.

      눈을 껌벅거릴 때마다 두툼하고 넓은 눈꺼풀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그 바보 같은 눈꺼풀은 또 뭐냐?”

      꼬물이는 눈꺼풀 없이 맨숭맨숭하고 길다란 자기 눈을 좀 보란 듯이 깜빡였습니다.

      “난 두꺼비야. 그리고 넌 율모기지. 그러니 다를 수밖에.”

      두꺼비는 점잖게 말했지만 꼬물이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율모기라니? 하하하. 넌 못 생긴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하구나. 난 율모기가 아니라 먹치란 말이야.”

      이번에는 두꺼비가 커다란 입술을 실룩였습니다.

      “네가 먹치라고? 초록 바탕에 빨간 무늬가 있는 뱀은 율모기야.”

     

      꼬물이는 약이 올랐습니다. 못생긴 두꺼비한테 놀림을 당하다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난 먹치야. 알겠어? 지금은 아기라서 이렇게 알록달록하지만 조금 있으면 우리 엄마처럼 점잖고 멋있는 색이 될 거야.”

      꼬물이는 두꺼비 앞에 머리를 꼿꼿하게 치켜들고 말했습니다.

      “엄마처럼? 네게 엄마가 어딨냐?”

      “저어기 우리 엄마 있어.”

      꼬물이는 의기양양 감나무가 있는 쪽을 가리켰습니다.

      힐끔 돌아본 두꺼비가 짧은 목을 주억거리며 말했습니다. 

      “아하, 네가 그 업둥이 율모기구나. 알았다 알았어. 네 말대로 먹치라고 해 두자.”

      “먹치라고 해 두는 게 아니라 먹치라니까, 먹치.”

      꼬물이가 속상해하며 대들었습니다.

      두꺼비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어이, 꼬마 친구. 당장 먹어버리고 싶지만, 널 품어서 깨어나게 한 먹치의 수고를 생각해서 한 번만  봐 주지.”

      그래 놓고 두꺼비는 느릿느릿 가버렸습니다.

      꼬물이는 두꺼비가 사라진 쪽을 흘겨보았습니다.

      “흥! 나야말로 한 번 봐 주는 거야.”

      꼬물이는 꽃무릇 대궁에서 내려와 작은 몸을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외딴집을 쏘다니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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