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업둥이 알



  • 아기뱀 꼬물이 


     



                                                                                                                 <일러스트 이지산>


     

    13. 뱀들의 약초


      누룩이는 뱀들의 약초를 입에 물고 산길을 힘껏 기어갔습니다.

      바위틈에서 잠을 잔 누룩이는 또다시 힘껏 기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누룩이는 은사시나무 아래 율모기의 굴에 닿았습니다.

      “율모기야. 오래 기다렸지? 내가 뱀들의 약초를 구해 왔어.”

      누룩이는 약초를 내려놓고 율모기를 불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율모기의 몸이 아주 조금 움직였습니다.

      “누룩이 아저씨……”

      꺼져가는 목소리로 율모기가 말했습니다.

      누룩이는 뱀들의 약초를 율모기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사이 더 나빠졌구나. 이걸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귀한 걸 구해 오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요?”

      감격한 율모기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휴, 힘들긴 힘들었어. 산을 두 개나 넘어서야 겨우 찾았지 뭐냐? 그런데 심술궂은 살퉁이가 지키고 있지 않겠어?”

      “저런! 살퉁이라면 사납고 독송곳니를 가진 뱀이잖아요? 다치지는 않으셨어요?”

      “하나도 안 다쳤어. 첨엔 좀 고약하게 굴더니, 뱀들의 일이라면 자기도 돕고 싶다고 하더군. 알고 보니 살퉁이도 의리 있는 뱀이었어.”

      “정말 고마운 일이군요.”

      누룩이는 율모기에게 어서 뱀들의 약초를 먹으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율모기는 머리를 저었습니다.

      “전 틀린 것 같아요, 누룩이 아저씨.”

      “뱀들의 약초는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어. 넌 꼭 나을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는 법이예요. 누룩이 아저씨. 제가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말해 봐. 네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게.”

      율모기는 잠시 숨을 모으더니 겨우 말을 이었습니다.

      “누룩이 아저씨가 떠난 뒤 저는 알을 낳았어요.”

      “뭐? 알을 낳았다고? 그 몸으로 어떻게?”

      누룩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죽어가는 중에서도 알을 낳다니, 율모기의 의지가 놀랍기만 했습니다.

      “다 깨져버린 줄 알았는데 용케 하나가 무사했던 모양이에요. 하나 뿐인 제 알을 누룩이 아저씨가 좀 맡아주셨으면 해요.”

      어리둥절한 채로 누룩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누룩이는 숫뱀이라서 알을 낳은 적이 없었습니다. 암누룩이가 알을 품는 걸 본 적은 있어도 남의 알을 맡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율모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알 걱정은 마. 내가 잘 돌봐줄게. 하지만 네가 빨리 나아서 알을 품고 그 알에서 새끼가 나오는 걸 보는 게 더 좋지 않겠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누룩이는 머리로 살짝 율모기를 건드려봤습니다.

      축 늘어진 율모기는 움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율모기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율모기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먼 길을 다녀온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누룩이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습니다.



      14. 업둥이 알


      저수지를 건너온 아침 햇살이 율모기의 굴에 비쳐들었습니다. 

      햇살이 얼굴에 닿자 누룩이는 눈을 떴습니다.

      ‘이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구나.’

      아침햇살이 축 늘어진 율모기의 몸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율모기……”

      누룩이는 죽은 율모기의 몸을 곧게 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흙을 깊이 파서 잘 묻어주었습니다.

      “율모기야, 잘 가.”

      율모기의 무덤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 누룩이는 율모기의 알을 찾아냈습니다.

      하얀 율모기 알은 피고름과 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누룩이는 혀로 율모기의 알을 깨끗이 닦아서 뱀들의 약초와 함께 입에 물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 돌담 아래 굴로 돌아온 누룩이는 율모기 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하고, 알에 귀를 대 보기도 했습니다. 또아리를 만들어 품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누룩이는 율모기의 알과 뱀들의 약초를 물고 먹치에게 갔습니다.

      아홉 개의 알을 낳아서 품고 있던 먹치는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누룩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룩이는 율모기를 도와주려고 먼 곳까지 약초를 구하러 갔던 일을 말했습니다. 

      “누룩이는 정말 친절하구나.”

      먹치가 칭찬했지만 누룩이는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살퉁이가 조금만 빨리 약초를 줬어도 율모기를 살릴 수 있었을 거야.”

      “살퉁이 탓이 아니란다. 율모기의 상처가 너무 컸던 게지.”

      “하지만 살퉁이 녀석에게 무당개구리며 지네를 잡아다주고, 얘기도 해주고 하느라고 약초를 얻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어. 내 잘못이야. 살퉁이와 한 판 붙은 다음에 약초를 빼앗아 오는 건데…….”

      누룩이는 율모기를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넌 최선을 다했어.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먹치가 위로했지만 누룩이는 여전히 슬퍼했습니다.

      “난 자랑스럽지 못해. 약초를 늦게 구해서 율모기를 죽게 했고, 율모기가 맡긴 알도 돌볼 수 없으니까.”

      “율모기가 맡긴 알이라고?”

      먹치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누룩이는 입안에 머금듯이 물고 온 율모기의 알을 보여주었습니다.

      “율모기 알이 틀림없구나. 처음 낳은 알 치고는 꽤 큰데 그래?”

      “응. 율모기가 내게 이 알을 맡아 달래. 하지만 난 숫뱀이라서 알을 품을 줄도, 돌볼 줄도 몰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염려하지 마, 누룩이야. 그 알은 내가 품어줄게.”

      “정말? 율모기도 기뻐할 거야.”

      누룩이는 율모기의 알을 먹치의 또아리 속에 살짝 내려놓았습니다.

      

      먹치는 아홉 개의 자기 알과 함께 율모기의 알을 품었습니다.

      알을 품은 먹치는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아래쪽에 있던 알은 위쪽으로 옮기고, 왼쪽에 있던 알은 오른쪽으로 옮겼습니다.

      누룩이는 알을 품고 있는 먹치를 지켜보았습니다.

      긴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알을 쓰다듬는 먹치의 얼굴은 따뜻한 모성애가 넘쳐흘렀습니다.

      누룩이는 감탄하면서 말했습니다.

      “먹치 아줌마. 알을 품은 모습이 마치 세상을 품은 것과 같네.”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지.”

      “지난 가을에 저와 짝짓기를 한 암누룩이도 지금쯤 알을 품고 있을까?”

      “그럴 거야. 누룩이 너 암누룩이가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들 먹치와 누룩이는 알을 품기는 하지만 암수가 함께 살진 않으니 말이다.”

       먹치가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자, 누룩이는 쑥스러운 듯 꼬리로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괜찮아. 언젠가는 함께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 율모기가 알을 품고 싶어 했던 것처럼, 우리도 암수가 함께 살고 싶어 한다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구나.”

      먹치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뭐가?” 
      “누룩이야. 혹시 이 율모기의 알이 상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난 조심조심 물고 왔단다.”

      “네 탓이 아니라, 율모기가 죽어가면서 낳은 알이라서 하는 말이야.”

      “알은 깨뜨려보지 않으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거잖아?”

      “그렇지 않단다. 알이란 깨뜨려보지 않아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어.”

      누룩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떻게?”

      “알을 낳는 순간 우리 먹치는 알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거든. 자기를 품어서 깨어나게 해 달라는 간절한 생명의 부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율모기 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 그 생각은 미처 못했어.”

      “어쩌지, 그럼?”


      먹치와 누룩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뒤에 누룩이가 생각난 듯이 머리를 들었습니다.

      “먹치 아줌마. 율모기의 알은 품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어나잖아? 그러니 은사시나무 아래 굴에 다시 갖다 두면 어떨까?”

      먹치가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 될 말이야. 율모기 할머니가 한 입에 먹어 버릴 걸. 이 알은 특별하니까 내가 품고 있을게. 율모기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거야. 깰지 깨지 못할지는 두고 보는 수밖에.”

      “그래 주면 정말 고맙지.”

      누룩이는 기쁜 눈으로 먹치를 바라봤습니다. 먹치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뱀들의 약초를 구해 오느라 많이 힘들었을 테니, 넌 그만 가서 쉬도록 해.”

      “그래. 뱀들의 약초도 여기 두고 갈게. 아기 먹치나 아기 율모기가 깨어나면 혹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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