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뱀들의 전사


  • 아기뱀 꼬물이
     









                                          <일러스트 이지산>

     






    11. 뱀들의 전사
     

    율모기의 퉁퉁 부은 허리와 배를 살펴본 누룩이가 혀를 끌끌 찼습니다.

    “아니, 이건 돌에 맞은 상처잖아? 하얀 사람이 네게 돌을 던졌니?”

    율모기는 얼른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예요, 누룩이 아저씨. 하얀 사람이 그럴 리 없잖아요.”

    “그럼 어떻게 된 거야?”

    “하얀 사람과 딱 부딪쳤어요. 우리는 서로 놀라서 멈췄는데, 작은 사람이…… 돌을 던졌어요.”

    “쯧쯧, 그랬구나……. 그 녀석 외딴집에 자주 들락거리는 게 꺼림찍하더라니, 결국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 내 이 녀석을 그냥!”

    누룩이는 당장 달려가서 작은 사람을 깨물어버리겠다는 듯이 혀를 낼름거렸습니다.

    율모기가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작은 사람을 다치게 하면 하얀 사람이 몹시 슬퍼할 거예요. 하얀 사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누룩이가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외딴집 하얀 사람이 슬퍼한다면 누룩이도 마음이 아플 것 같았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참 먹치 아줌마는 알을 낳았단다. 소문은 들었지만 올 수가 없다고 전해 달랬어.”

    “고맙습니다. 누룩이 아저씨와 먹치 아줌마의 친절만으로도 전 충분하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율모기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룩이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알을 가진 뱀은 울면 안돼. 엄마가 울면 알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든. 그나저나, 상처가 너무 크구나.”

     

    누룩이는 율모기의 상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크고 작은 상처는 웬만하면 저절로 낫기 마련이지만, 피부가 찢겨진 데다 피고름이 흘러내리는 율모기의 상처는 저절로 낫기를 바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대로 낫기를 기다릴 수는 없겠어. 뱀들의 약초가 필요하겠어.”

    “뱀들의 약초라구요? 구할 수 있을까요?”

    뱀이 다치거나 병이 들었을 때 먹는 약초에 대해서는 율모기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뱀들의 약초를 구하는 일이 몹시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군락지는 파괴되었고, 어쩌다 남은 것은 사람이 뿌리째 뽑아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고를 당하는 뱀은 자꾸 늘어나는데 뱀들의 약초를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니 정말 큰일이야.”

    누룩이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얼마간의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누룩이가 머리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단단히 결심을 한 듯, 누룩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든 뱀들의 약초를 구해 올게. 넌 특별한 율모기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

    누룩이는 가슴과 배로 힘껏 땅을 밀면서 율모기의 굴을 빠져나갔습니다.

     

    누룩이는 사람이 사는 마을 뒷산으로 떠났습니다.

    가시덤불과 바위틈을 헤치고 가는 동안 누룩이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괜찮아. 난 씩씩하고 용감하니까.’

    누룩이는 긁히고 상처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 뒷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뱀들의 약초는 한 포기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누룩이는 실망하지 않고 산 하나를 더 넘었습니다. 그 산에서도 뱀들의 약초를 구하지 못한 누룩이는 낯선 바위틈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자 다시 산을 넘었습니다. 두 개의 산을 더 넘은 뒤 누룩이는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뱀들의 약초 한 포기를 발견했습니다.

    “다행이다. 율모기를 살릴 수 있게 됐어.”

    누룩이는 아프고 지친 것도 잊고 뱀들의 약초를 향해 서둘러서 다가갔습니다.

    뱀들의 약초를 따려고 입을 크게 벌렸을 때, 날카롭고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야? 내 약초를 탐내는 놈이?”

    세모꼴의 머리를 바짝 치켜든 살퉁이였습니다.

    강한 독이 든 송곳니를 가진 데다 바위처럼 몸 색깔이 우중충한 살퉁이는 성질이 급하고 잘난 체하는 뱀이었습니다.

    누룩이는 얼른 뱀들의 약초에서 물러났습니다. 작고 날쌘 몸을 가진 살퉁이를 잘못 상대하다가는 다칠 수도 있었습니다.

    “넌 어디서 왔냐? 이 근처에선 보이지 않던데?”

    경계심이 가득 찬 눈길로 살퉁이가 물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독을 가지고 있고 몸이 날쌔다고 하지만 덩치가 큰 누룩이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룩이는 위엄있게 목을 쳐들고 살퉁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좀 멀리서 왔어. 아픈 친구가 생겨서 말야.”

    “그래? 용케 찾아냈네. 요즘 뱀들의 약초가 얼마나 귀한지는 알고 있어? 이건 몇 개의 산 가운데서 딱 한 포기 남은 거야.”

    “알고 말고.”

    누룩이는 다친 율모기 때문에 두 개의 산을 넘어온 일을 설명하고, 뱀들의 약초를 조금만 나눠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살퉁이의 대답은 야멸차기만 했습니다.

    “율모기라면 별로 돕고 싶지 않아. 독사(毒蛇)도 아니면서 독사인 체하는 얼간이니까.”

    살퉁이는 이죽거리면서 덧붙였습니다.

    “넌 또 왜 그리 멍청하니? 남의 일로 여기까지 오다니.”

    살퉁이는 누룩이와 율모기를 한꺼번에 비웃었습니다.

    계곡이나 바위틈에 살면서 알 대신에 새끼를 낳는 살퉁이는 자기가 낳은 새끼조차 잡아먹는 인정사정없는 뱀이어서 남을 도우려는 누룩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살퉁이는 뱀들의 약초 앞에 딱 버티고 앉아서 입을 딱 벌렸습니다. 누룩이가 뱀들의 약초에 다가가기만 해도 덤벼들 기세였습니다.

    누룩이는 살퉁이가 조금도 겁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살퉁이라 해도 몸통을 휘감아 죄어버릴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룩이는 살퉁이와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몰차고 인정없기는 해도 살퉁이 역시 뱀이었습니다.

    ‘뱀들끼리 싸우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돼. 그건 우리들이 정한 규칙이니까. 어떻게든 달래 봐야지.’

    누룩이는 잘난 체 하기 좋아하고 성질 급한 살퉁이를 추켜세웠습니다. 잘난체 하기 좋아하는 살퉁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칭찬보다 더 좋은 건 없었습니다.

    “넌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이 뱀들의 약초도 사람에게 뺏기고 말았을 텐데.”

    머리를 빳빳하게 치켜든 채로 살퉁이가 기세등등 소리쳤습니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썩 꺼져.”

    누룩이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뱀들의 약초를 지키자면 힘들지 않니?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을까?”

    살퉁이가 매몰차게 쏘아붙였습니다.

    “꺼져 주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너 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있잖아.”

    “그랬어? 그럼 잠시만 기다려.”

     

     

    12. 누룩이의 활약

     

    누룩이는 얼른 가까운 계곡으로 갔습니다. 계곡에는 살퉁이가 좋아하는 무당개구리가 떼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입 가득 무당개구리를 물고서 누룩이는 살퉁이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뱀들의 약초 곁에서 옴짝도 하지 않고 있던 살퉁이는 누룩이가 가져온 무당개구리를 팽개쳐 버렸습니다.

    “이까짓 걸로 뭘 어쩌자는 거야? 어림없어!”

    “무당개구리 싫어? 그럼 지네 좀 잡아올까?”

    “싫어!”

    살퉁이는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누룩이는 참을성있게 말했습니다.

    “미안 미안. 무당개구리나 지네는 그만둘게. 그럼 뭘 해줄까? 재밌는 얘기 해 줄까? 난 아는 이야기가 많아.”

    “끈질긴 자식, 정말 귀찮게 구는군. 그렇게 나불거릴 거면 차라리 무당개구리나 더 잡아 와!”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누룩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냉큼 무당개구리를 잡으러 갔습니다.

    살퉁이는 누룩이가 두 번째 잡아온 무당개구리를 마지못한 듯 입에 넣었습니다.

    살퉁이가 무당개구리를 먹는 동안, 누룩이는 살퉁이를 설득했습니다.

    “이제 뱀들끼리 도와야 해. 내가 사는 곳에서는 뱀들끼리 돕고 있어. 사람들이 농약을 마구 뿌리고 여기저기 파헤쳐서 우리들 뱀이 살 수 있는 곳이 자꾸 줄어들고 있으니까 말이야.”

    살퉁이는 세모꼴의 눈을 깜빡거리면서 누룩이의 말을 들었습니다.

    누룩이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산과 들과 과수원은 들쥐와 개구리, 뱀이 살 수 없을 만큼 농약이 뿌려졌고, 그나마 살만한 곳은 물길을 새로 만들거나 길을 닦았습니다.

    길 위로는 씽씽 소리를 내며 차들이 지나갔습니다. 뱀들은 먹잇감을 찾으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하긴 그래. 내가 여기로 이사를 온 것도 사실은 사람들이 굴을 파헤쳐버렸기 때문이었어. 난 용감하고 씩씩해서 빠져나왔지만 그때 이웃들 여럿이 죽었지.”

    살퉁이가 고개를 끄떡이자 누룩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율모기의 일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친 율모기를 위해서 뱀들의 약초를 나눠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멍청한 율모기 같으니라구. 사람에게 밟혔으면 뒤꿈치를 콱 깨물어버릴 것이지.”

    살퉁이는 소심한 율모기의 흉을 보면서 커다란 독니를 드러냈습니다. 누룩이는 얼른 살퉁이를 치켜세웠습니다.

    “모든 뱀들이 너처럼 용감하진 않아.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기분이 좋아진 살퉁이가 곧추세웠던 머리를 늘어뜨리고 뱀들의 약초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습니다.

    “뱀들의 일을 모른 척한다면 뱀이라 할 수 없지. 약초를 가져 가. 조금 밖에 줄 수 없지만, 그걸로도 충분할 거야.”

    누룩이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점잔을 빼며 말했습니다.

    “정말 고마워. 율모기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뱀들에게 네가 얼마나 의리가 있는지 말해줄게.”

    “살퉁이는 뱀들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강해. 그 말도 꼭 전해줘.”

    “그럼, 그렇고 말고! 넌 뱀들의 전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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