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동화 아기뱀 꼬물이_조명숙
  • ▶ 하얀 사람 작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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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뱀 꼬물이 



     




                                                          <일러스트 이지산>




    9. 하얀 사람, 작은 사람

     

    저수지 둑 여기저기서 물레나물이 쑥쑥 자라는 오월의 어느 날.

    은사시나무 아래 굴에서 율모기가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사방에서 꽃냄새 풀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물땡땡이가 맴을 돌고 있는 저수지는 넓고 파란 도화지 같았습니다.

    ‘저기 들어가서 실컷 헤엄을 치면 얼마나 신날까!’

    그렇지만 물 속에 들어갔다가는 극성스런 무자치들에게 내쫓길 게 분명했습니다.

    드넓은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상쾌하고 시원한 물 냄새를 실컷 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율모기는 혀를 내밀어 바람의 방향을 살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저수지 물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풍덩! 소리와 함께 물 위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번졌습니다.

    ‘뭐지?’

    율모기는 몸을 절반쯤 쑥 내밀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곧 머리를 땅에 댔습니다. 턱 밑에 달린 감각기관에 자박자박 발소리가 잡혔습니다.

    율모기는 소리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딱 셋뿐인 아이들 중에서 제일 작은 사람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아기 염소를 몰고 저수지에 오는 아이였습니다.

    아기 염소를 저수지 둑에 매 놓고 작은 사람은 꼭 돌멩이 하나를 저수지에 던져넣었습니다.

    풍덩!

    ‘별 거 아니군. 아침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율모기는 굴에서 나와 부지런히 외딴집으로 향했습니다.

    외딴집에 도착한 율모기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대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때 바로 곁에 뭔가 툭 떨어졌습니다.

    ‘이크! 뭐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또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아기 염소를 매 놓고 마을로 돌아간 줄 알았던 작은 사람이 거기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작은 사람은 외딴집에 놀러왔습니다.

    작은 사람은 일요일 내내 그 집에서 놀았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꽁지머리와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쬐끄만 녀석이 겁도 없이…… 콱 깨물어버릴까 보다.’

    율모기는 휙 머리를 돌려 작은 사람을 노려보고는 대문 밑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작은 사람은 꽁지머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트럭이 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귀찮게 됐군.’

    율모기는 대숲 언저리로 가서 몸을 숨겼습니다.

    트럭은 곧 대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꽁지머리가 내리자 작은 사람이 깡총깡총 뛰어가 안겼습니다. 두 사람은 기쁜 듯이 뺨을 비볐습니다.

    ‘저렇게 뺨을 맞대면 어떤 기분일까?’

    율모기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습니다. 알을 품으면 사람이 서로 볼을 부빌 때의 느낌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한 번 해 볼까?’

    율모기는 바로 앞에 놓인 돌에 머리를 갖다 댔습니다. 슬슬 문질러 보았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돌이라서 그럴 거야. 내 알을 쓰다듬으면 다른 느낌이겠지.’

    그때 으앙! 소리가 들렸습니다. 율모기는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꽁지머리 곁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몸도 하얗고 옷도 하얀 사람은 환히 웃고 있었지만 작은 사람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다니, 이상하네…….’

    율모기가 갸웃갸웃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작은 사람이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에 혼쭐이 난 듯 허둥지둥 달려가는 작은 사람의 뒷모습이 너무나 우스웠습니다.

    ‘고거 쌤통이다.’

    율모기는 작은 사람의 뒷모습에 대고 혀를 쏙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사람이 무서워서 달아난 하얀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얼굴이 구름처럼 하얀데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서 있는 건지 공중에 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가벼워서 사람이 아니라 귀신처럼 보였습니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마르고 약해 빠졌담.’

    율모기는 혀를 끌끌 차주고는 슬그머니 몸을 돌렸습니다.

     

    하얀 사람은 그렇게 외딴집에 왔습니다.

    일요일에만 나타나던 꽁지머리는 매일 아침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왔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마당을 풀을 뽑거나 돌을 골랐습니다.

    꽃들에게 물을 주거나 맨손체조를 하기도 했고요, 집 주위를 왔다갔다하면서 살피기도 했습니다.

    외딴집에 꽁지머리와 하얀 사람이 살게 되자 율모기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율모기는 꽁지머리와 달리 하얀 사람은 그다지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꽁지머리가 집을 떠나고 나면 하얀 사람은 방문을 열어 놓고 마당을 내다보거나, 좁은 마루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수지까지 산책을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도 하면 하얀 사람은 빙긋 웃었습니다. 하얀 사람은 율모기가 싫지도, 무섭지도 않은 듯했습니다.

    하얀 사람은 개구리와 벌레들이 마당과 꽃밭을 왔다갔다하는 것도 내버려두었습니다.

    나비나 새들이 오면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율모기는 마음 놓고 쥐와 개구리를 사냥했습니다. 그러다 꽁지머리가 돌아오거나, 작은 사람이 놀러 와서 마당을 뛰어다니면 재빨리 숨어버렸습니다.

     

     

    10. 에그머니

     

    “에그머니!”

    햇빛이 짜랑짜랑 내리쬐는 칠월의 한낮.

    난데없는 비명이 외딴집 앞에서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저수지와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 퍼졌습니다.

    낮잠을 자던 돼지는 깜짝 놀라 구왝구왝 소리를 질렀습니다.

    암소는 으엄머어 울었고요, 저수지 둑에서 야물야물 풀을 먹던 새끼 염소는 폴짝폴짝 뛰었지요.

    뿐만 아니었습니다. 무자치는 물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고, 대숲에 놀러왔던 휘파람새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감나무 위에서는 까치가 대록대록 눈을 굴렸고, 자귀나무에서는 곤줄박이가 지재글재글 소리쳤습니다.

     

    모두들 비명을 지르는 그 순간, 율모기도 깜짝 놀라 눈을 데록데록 굴리고 있었습니다. 허리가 뜨끔하는 것이, 뭔가가 꾹 누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살펴보니, 하얀 사람이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대문을 나서는 걸 봤는데, 그 사이 돌아온 모양이었습니다.

    ‘아차! 내가 방심했구나.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마음 턱 놓고 지나가려고 했더니.’

    율모기는 당황해서 하얀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율모기를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밟아버린 하얀 사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하얀 사람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보기 딱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미안해요, 놀라게 해서. 하지만 나도 놀란 걸요. 이제 조심해서 다닐게요.’

    하얀 사람에게 율모기는 중얼거렸습니다. 허리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참을 만했습니다.

    그런데 하얀 사람 옆에 서 있는 작은 사람이 날카롭게 소리쳤습니다.

    “앗, 뱀이다!”

    작은 사람은 재빨리 주위를 살피더니 두 손으로 커다란 돌을 집어들었습니다.

    율모기는 달아나려고 얼른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밟힌 자리가 아파서 동작이 재빠르지 못했습니다.

    작은 사람이 율모기를 향해 돌을 집어던졌습니다.

    툭.

    돌은 율모기의 허리에 정확하게 떨어졌습니다.

    ‘아아 아프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를 수도 없어 율모기는 사정없이 몸을 뒤틀었습니다.

    “얘야. 그러지 마. 내게 밟힌 것만 해도 아플 텐데 돌까지 던지면 어떡하니?”

    주저앉은 채 떨고 있던 하얀 사람이 작은 사람의 다리를 붙들었습니다.

    “아줌마를 놀라게 한 나쁜 뱀이잖아요.”

    온몸을 버둥거리면서 율모기는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에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저것 봐요. 도망가려고 하잖아요.”

    작은 사람이 소리치며 또 돌을 집어들었습니다.

    “안돼. 제발 그냥 보내 주렴.”

    하얀 사람의 목소리가 간절했던지, 작은 사람이 주춤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 틈을 타 율모기는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났습니다.

     

    율모기는 아픔을 참고서 은사시나무까지 가까스로 기어갔습니다.

    굴에 들어가서 아픈 곳을 살펴보니, 허리 아래가 움푹 들어가 있었고 살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아, 어쩐담!”

    다친 곳은 하필 알이 들어있는 자리였습니다.

    율모기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조심할 걸.’

    외딴집 마당에서 먹이감을 사냥한 율모기는 먹치 굴에서 놀았습니다. 해가 기웃해져 있었고, 꽁지머리가 돌아오기 전에 굴로 돌아가던 참이었습니다.

    분명히 땅바닥에 가슴을 대고 소리를 들었고, 두 눈으로 이쪽저쪽을 잘 살폈습니다. 그런데 하얀 사람과 작은 사람이 언제 나타났던 것일까요.

    ‘알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율모기는 둥그렇게 몸을 말아 또아리를 만들고, 머리를 쏙 집어넣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은사시나무와 버드나무가 힘껏 숨을 내쉬었습니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와 오리나무도 질세라 큰숨을 내쉬었습니다. 신선한 나무 냄새가 저수지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물자라와, 게아재비와, 물매미가 부지런히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초록 이불처럼 덮은 생이가래 사이로 물여뀌풀과 노랑어리연꽃과 부레옥잠과 부들이 이슬에 흠뻑 젖은 몸을 뒤척였습니다.

    왕잠자리는 부들 잎에 앉아서 젖은 몸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은사시나무 아래 굴에서 밤새도록 끙끙 앓은 율모기에게 아침은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다친 허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배설강(항문)에서는 누런 진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굴 밖에서 곤줄박이와 휘파람새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얀 사람이 율모기를 밟았대.”

    “하얀 사람은 병이 덧나서 병원에 갔대. 미요미요 차가 와서 데려갔대.”

    새들은 하얀 사람이 걱정이라고 떠들었지만, 율모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율모기는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새들은 율모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아픔을 참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꿈결처럼 누가 불렀습니다.

    율모기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율모기 거기 있니? 나 누룩이야.”

    사람이 사는 마을 돌담 아래 사는 누룩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누룩이 아저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겨우 눈을 든 율모기는 힘없이 인사를 했습니다.

    “소문이 좍 퍼졌는 걸. 새들은 지저귀고 벌레들은 소리를 질렀단다. 하얀 사람에게 밟히다니, 모두들 네 잘못이라고 떠들고 있어.”

    율모기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수지 주변에서 친절하기로 소문난 하얀 사람에게 밟혔다면, 이쪽에서 주의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욕을 들을 만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사람이 돌을 던졌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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