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그날이 오면_정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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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그날이 오면

                                 

                                     정 태 언

     

     

      

     

    1. 자원資源에 대해
      자원이란 말, 얼마나 희망차고 위대한가. 듣기만 해도 괜스레 든든하고 또 배가 불러오는 단어. 온 나라가 자원 확보를 위해 개발에 나서고, 심지어는 자원외교란 말도 나오지 않았는가. 자원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징병검사 때, 그리고 머리를 박박 밀고 훈련소에 들어가서였다. 물론 초중고 사회시간에 인적자원이니 물적자원이니 읊조렸지만 직접 내가 자원에 포함된다는 말이 생소했다. 내가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게 희망차고 위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한 때나마 국가의 자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사회에 나와서는 늘 자원이란 말 앞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자원이란 인간 생활 및 경제 생산에 이용되는 원료로서의 광물, 산림, 수산물 따위를 통틀어 말하거나 인간생활 및 경제 생산에 이용되는 노동력이나 기술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아닌가. 자원의 관점으로 볼 때, 나는 이제까지 경제 생산에 크게 기여하는 역할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자원’은 나 따위는 몰라라 큰소리를 치며 으스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더 나아가 인류에, 지구에 유용하게 쓰인다. 넌 대체 뭐냐?’ 처음에 그런 울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주춤거리며 ‘자원은 위대하다’라고 웅얼거릴 뿐이었다. 갈수록 자원은 더욱 ‘창대昌大’해질 것이라고. 더욱 세력을 넓혀 번창할 것이라고, 너 따위는 까불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소리를 지른다. 창-창! 챙-챙! 탕-탕! 퍽-퍽! 그 소리에 나는 얼른 눈을 치켜뜨며 말을 바꾼다.
      자원은 때려 부수어야 한다! 

      나는 베란다로 나갈까말까 문 앞에서 망설였다. 조용했다. 어쩐지 그게 더 수상해 보였다.  ‘자원’은 버티고 있다가 갑자기 콰-앙하며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손가락에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를 건 채 유리에 알루미늄을 덧댄 현관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새벽 6시부터 자원의 움직임들이 있었다. 오전 6시를 ‘새벽’이라 하면 자원은 펄펄 뛸 것이다. ‘아침’ 6시인 것이다. 나는 슬슬 현관문을 열었다. 눈앞으로 ‘창대자원’이라 세로로 쓴 간판이 다가왔다. 그 뒤 멀리로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의 아파트들. 새롭게 세워진 신도시 안에서도 다시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뉜다. 그 신도시의 구도심이 되어버린 한 아파트에서 십여년 살다가 이리로 이사 오며 나는 자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창대자원’의 힘이랄까. 자원은 쉴 새 없이 꿈틀대며 또 다른 자원을 잉태한다. 나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 단지 쪽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곳을 바라보며 거기서 살던 예전이 좋았다거나, 아니면 이전의 경제 상태를 회복해 다시 그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그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원들 중 일부는 바로 눈앞의 ‘창대자원’으로 실려 올 것이 분명하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문밖으로 나가면 찬란한 아침 해와 함께 ‘창대자원’의 간판이 떡 버티고 있다. ‘창대자원 철거전문, 고철, 비철, 파지’ 창대자원의 주인남자는 이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 물며 째려보는 나를 흘끗 올려보았다. 민소매의 셔츠 밖으로 툭 튀어나온 새카만 알통이 도드라졌다. 가까이 보면 검게 탄 팔 위로 파란 닻 그림의 문신도 보인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집이 꼭 어려서 보던 만화영화의 뽀빠이를 연상시킨다. 그는 내가 보든 말든 아랑곳없이 다시 고철을, 비철을, 양철로 빙 두른 울타리 쪽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챙-챙, 창-창, 퍽-퍽. 철거전문을 내세운 그는 나를 철거라도 하듯, 우리 셋집을 철거라도 하듯 쇠망치를 세게 내려친다. 땅-땅-땅-땅!  옆을 어슬렁대는 창대자원의 여자는 꼭 링 위에 오르는 레슬링 선수같이 떡 벌어진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남자의 일을 돕는다. 어깨를 앞뒤로 씰룩이며, 어디 할 테면 해 봐라 식이다. 그 어깨에 무거운 자원들이 얹혀 트럭에 실리기도 하고, 또 주특기에 맞게 분류되는 칸막이 사이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런 저 둘의 태도는, 죽겠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나를 무시하며 와장창 거릴 때는…… 정말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이건 아니지, 놔둬 봐!  저 자식 가만 안 둬! 안하무인이잖아,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저따위로 사냐 이 말이야!” 창대자원으로 내달리려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려는 나를 아내가 꽉 붙들었다. “흥분만 한다고 뭐가 돼요?” “그럼 저걸 두고 봐야 돼? 왜 주택가에서 저런 소리를 새벽부터 저녁까지 들어야 하냐구!”

      지금 사는 집은 이 도시의 원도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살던 아파트가 날라 갔다. 내 깜냥으로 경제활동을 해보았지만 힘이 부족했다. 힘보다도 어쩌면 내가 이 사회의 자원으로서 효용가치가 신통치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이 근방에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만 해도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런 설렘은 자원이 주는 경건함에서 비롯되었다고나 할까. 그래, 이제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저 사람들 살자고 바삐 움직이는데. 이제 새 출발이다. 방을 보러 골목골목을 드나들 때 곳곳에서 파지, 고철, 플라스틱 통, 헌옷 등을 싣고 바삐 움직이는 리어카들을 만났다. 각오가 새로웠다. 또 셋집을 정할 때도 문 앞에 바짝 위치한 ‘창대자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게 눈에 띄었을 때, ‘우리도 저 소리에 맞춰 부지런히 움직이자’였다. 그런데 이사한 지 열흘이 좀 넘었을까, 그리로 모이는 자원들은 점점 ‘창대’해졌다. 하루만 지나면 산을 이루는 자원들. 알고 보니 근처에 있던 고물상 두 곳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신봉하던 자원의 가치가 점차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귀를 찢는 굉음과 먼지 등으로 괴로워하던 주변 주민들의 원성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갈 곳을 잃은 리어카와 트럭들은 창대자원으로 몰려들었다. 창대자원은 여섯 시 조금 못되어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밤새 모인 자원들은 다섯 시부터 몰려들어 줄을 잇는다. 보통 리어카 다섯 대 정도가 미리 와 문 열기를 기다린다. 골목에서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깬다. 또 줄에 엉성하게 묶인 쇠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캔이 아스팔트 위로 따르르 구르는 소리, 유리병이 몸을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 그런 소리가 그 시각에 골목을 메운다. 그것도 창문을 열고 자야하는 한 여름이다. 머릿속을 온통 엉클어놓는 자원들이 그렇게 아침을 깨우고 나를 깨우고, 식구들을 깨우곤 했다. 매일 그랬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태양마저 부지런했다. 저 소리들을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자고,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꾹꾹 눌렀다.       
      어느 날, 창대자원으로 몰려 든 리어카들과 트럭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한 대 쳤다. 아아, 정말 그걸까. 자원의 가치를 평가절하 해왔던, 주제도 모른 채 자만과 가식 등이 뒤범벅이 되어 자원 앞에 저지른 행실의 결과 같았다. 잔뜩 자존심이 상한 채 창대자원에 빼곡히 집결한 자원들은 결의에 차서 외치고 있고,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 낙원동 탑골공원 뒤 고물상이 있었다. 어느 여름 날 그 근처에서 팔십을 넘긴 노파가 리어카도 아니고 장을 보는 카트에 잔뜩 올린 파지를 끌고 가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얼른 노파를 일으켜 세웠다. 길가로 흩어진 납작하게 눌린 종이박스, 신문지, 생활광고지 따위를 주섬주섬 모아 카트에 다시 실었다. 방향이 같아 내가 카트를 끌었다. 노파가 향한 곳은 고물상이었다. 이상했다. 고물상으로 가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 고물상이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낙원동만 해도 도심 아닌가. 순대와 돼지머리가 커다란 솥 위에서 삶아지며 냄새를 풍기는 바라크 같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는 틈을 비집고 고물상이 박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고물상에도 ‘자원’이라 써 붙였던 것 같다. 나는 절룩이는 노파 대신 카트를 밀고 고물상으로 들어서 무게를 달았다. 파지가 가득 실린 카트를 땅바닥에 설치된 저울, 그 위를 웬만한 트럭이 와 서도 될 정도 크기의 철판으로 된 저울 위에 올렸다. 짐이 실린 상태와 짐을 내린 카트의 무게를 쟀다. 노파는 천 원짜리 두 장을 받았다. 하루 종일 주웠다는 무게는 두 장의 지폐로 맞바뀌었다. 그 뒤 나는 신문지와 박스 등을 모아 일정량이 되면 끈으로 꽁꽁 묶어 아파트 안의 재활용품을 모으는 곳에 내놓지 않고 부러 차에 싣고 나갔다가 그런 걸 줍는 노인들을 만나면 주곤 했다. 그게 자기 주제도 모른 채 자원의 가치를 무시한, 이 나라의 자원이 되지 못하는 주제에 범한 괘씸한 행동이었다, 라고 반성했다.
      어찌 자원이 파지만 있겠는가. 이번 이사를 하기 위해 짐 정리를 하며 거의 수명을 다한 텔레비전, 세탁기, 꽤 값이 나갈 신주로 된 물건들 따위, 그리고 놓을 곳이 없는 몇 백 권의 책들을 그냥 넘겼다. 아마 내게서 자원이 되지 못한 그것들은 리어카로 실어 나른다면 족히 열 번은 넘을 양이었다. 집을 판 날과 비워줄 날짜 사이의 간격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아파트 입구에 붙여놓은 ‘헌옷, 고물, 헌책 수거’라고 써 있는 스티커를 보고 전화를 해 고물상에 그냥 넘긴 것이다. 고물상에서 온 그는 값이 별로 없다며, 대신 고물상에서 필요 없는 것이라도 치워주겠다 했다. 나도 그랬다. 그게 몇 푼 되겠느냐.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지. 내놓은 책들은 트럭 적재함에 막 내던져졌다. 아, 저건 비싼 책인데. 아, 저건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든 책인데. 나는 아쉬워하며 트럭 옆에서 그런 말을 흘렸다. 그때 짐을 싣던 사내는 심드렁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우리는 권卷수로 따지지 않고, 근斤수로 따집니다.” 근수를 무시하고 권수만 알던 나는 그렇게 자원의 가치와 실체를 모른 채 바짝 창대자원과 마주한 13번지 이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자원이란 간판을 보며 마치 거대한 사업을 암시하는 것 같은, 그래서 마치 그 속에 뭔가 중요한 자재들이나 인력들을 보유한 그런 회사인 줄 알았다. 가끔씩 아파트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쌓아 놓는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봐도 무슨 무슨 자원하는 전화번호도 많았다. 구도심 곳곳에 자리한 자원들. 대개 철판으로 울타리를 두른 공터에 세로로 된 간판을 길게 달고 있다. 구도심에 월세로 내밀리며 그 자원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건 고물상이었다. 이제는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정말 자원의 간판만 눈에 들어온다. 대성자원, 삼삼자원, 금성자원 등.  
      다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형편이 어려워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살다가 구도심의 주택가 월세로 밀려났다는 구질구질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원 얘기다. 하기야 내가 십여년 살던 아파트 단지도 이제는 20년도 넘은 곳이니 ‘신新’이나 ‘새’를 붙이기에는 다소 민망한 감도 있다. 어쨌든 거기서 벗어났다. 주택가 골목 곳곳을 누비며 자원을 모으는 노인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맞닥뜨리는 곳, 칠이 군데군데 허물처럼 벗겨져있고 비바람이라도 불면 페인트 칠 조각이 길바닥에 부수어져 내리는 그런 흉물스러운 건물에 매달린 ‘인력’이라는 간판 밑으로 새벽부터 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두런두런 아침잠을 깨우는 그런 곳, ‘구舊’ 또는 ‘원原’자가 붙는 구도심, 원도심이라 부르는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난 이제 골목마다 휘젓고 다니는 노인네들도 무서웠다. 새벽부터, 아마 개중에는 밤새 거리와 골목을 뒤졌을 것이다. 파지와 고철, 그밖에 버린 옷가지들을 리어카에 한 가득 싣고 다섯 시도 되지 않아 골목에 앉아 소리를 냈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는 13번지 뒤의 이층집 할머니는 집주인이고, 또 아들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야쿠르트 배달용인 조그만 리어카에다 파지나 공병 따위를 줍는다. 너나없이 모두가 자원 수집에 열을 내는 것이다. 가끔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다 보면 여지없이 골목 곳곳에서 자원의 움직임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골목 으슥한 곳곳에 놓인 자원들. 못쓰게 된 알루미늄 빨래대나 음료수나 맥주 캔, 어쩌다 운 좋으면 구형 티브이나 고장 난 냉장고 따위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리어카들은 홀쭉해진 배를 채우려 그것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이다. 싯누런 녹을 뒤집어 쓴 고철, 반짝대는 알루미늄, 플라스틱통 등 좀 덩치가 큰 것에서 캔, 파이프 조각까지 메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집어먹으며 배를 퉁퉁 불린다. 가끔씩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괴하게 생긴 물건들도 그 위에 실린다. 퓨전이란 이름을 단 새로운 음식이름처럼, 뭔가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용도를 몰라 가늠할 수가 없다.

      ‘창대자원’이 요란하게 삐걱대는 문을 열면 누워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지만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다. 문 열기를 기다리던 리어카들은 순서대로 무게를 재고 철판으로 된 담장에 마구 그것들을 집어 던진다. 와당탕, 탕탕, 챙챙. 계속 이어지는 자원들의 힘찬 함성.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들을 수 있는 쇠가 내는 소리는 거기서 다 들을 수 있다고 난 장담한다. 싱크대의 개수대, 전기밥솥의 내솥, 찌그러진 냄비, 녹슨 앵글들, 공사장에서 버린 철근 조각들, 휘어져 못쓰게 된 스테인리스 빨래건조대, 하다못해 세탁소에서 나오는 철사로 된 옷걸이 묶음도 있었다. 그것들 모두 제가끔 다른 소리를 냈다. 어떤 것들은 같은 소리 같지만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트럭에 싣고 오는 쇠들은 좀 더 육중하고 깊은 소리를 낸다. 떵-떵-떵! 어떤 공장에서 뜯어 낸 무쇠로 된 보일러. 큰 건물이 철거당하며 나왔을 철골. 창업이라며 수없이 생겨났다 일 년도 못되어 문을 닫는 가게들에서 뜯겨 나온 양철 형광등 커버와 알루미늄 장식들. 거기다가 한정된 자리에 좀 더 빼곡하게 쌓으려 창대자원의 남자가 고철 더미로 올라가 삐죽삐죽 튀어난 쇠들을 다시 정돈하며 집어던지는 그 소리는,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할 때처럼 아름답고 깊은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 머릿속을 득득 긁다가는 뱃속까지 훑는, 그런 괴롭고 더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소리들은 간판의 상호처럼 ‘창대’ 했다.
      ‘창대’라는 기개에 넘치는 말처럼 되려면 쉬지 말아야 한다. ‘창대자원’의 강점은 휴일이 없다는 것이다. 일요일도, 국경일도 없었다. 창대자원의 여자가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일층에 사는 집주인여자에게 들었다. 창대자원의 여자가 교회에 가는 두 시간 동안 남자 혼자 일한다. 집어던지고, 두드리고, 해체하고. 아직 이사 와서 명절을 쇠지 않았으니 그때도 문을 열지 말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창대자원은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고 나에게 우리 식구에게, 일층과 지하의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인근 주택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자원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한시도 쉬지 않고 일깨웠다. 그럴수록 이 나라의 ‘자원’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나, 그리고 하루 종일 학원에서 목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아내, 또 미래의 중요한 자원이 되려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첫째, 둘째 아이 모두 점점 망가져갔다.
      창대자원이 문을 닫고 들어간 시각, 집 주변이 주택가로서 본연의 모습과 정상적 기능을 시작할 때 ‘휴-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몇 시간 지나면 다시 시작될 그 자원들의 소리를 들을 생각에 ‘퓨-우’ 절망의 한숨을 함께 뿜어낸다. 술기운이 오르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 힘껏 가슴을 펴고는 창대자원을 노려본다. 그리고 하늘에서 깜빡이는 별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나도 창대해지리라. 비록 창대자원 앞에서 귀를 틀어막으며 이제 그만 하라고 찌그러진 모습으로 애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창대해지리라. 나도 버젓이 사회에 유용한 자원이 되어 창대해지리라. 당당히 이곳을 벗어나리라.     

     

     

    2. ‘감시는 암보다 더 해롭다’
      13번지(물론 ○○ 7길 따위의 새 주소가 대문에 붙어 있다)에 자리한 이 집에는 세 가구가 산다. 지하, 일층, 이층. 그러니까 일층이 주인집이고 지하와 이층은 월세집이다. 그리고 담 밖으로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6-7미터 도로에 맞닿아 창대자원이 있다.
      13번지의 구성원은 이렇다. 주인집인 일층의 부부와 딸 하나, 지하에 중년여자와 서른 가까워 보이는 아들이 있었다. 거기다가 이층으로 세 든 우리 네 식구, 나와 아내 그리고 사내아이들 둘이 합세했다. 담장 안에 아홉 명이 살고 있으니 만만찮은 숫자였다. 창대자원을 상대하기에는 그렇단 말이다. 본격적으로 창대자원에서 굉음들이 쉬지 않고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해를 못했다. 왜 아무도 따지지 않고 내다만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이사해서 한 달쯤 지났을까, 창대자원의 그 뻔뻔한 소리들을 견디다 못해 따지려고 13번지가 다 같이 쓰는 대문으로 다가갔다. 이층 베란다에서 툴툴거리던 내 목소리를 분명 들었을 것이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지하여자는 고개를 까딱하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주인 내외는 마당에 흙을 부어 만든 텃밭에 심은 고추와 방울토마토, 상추, 치커리 따위에 물을 주다 내게 슬쩍 인사를 보낼 뿐이었다. 13번지가 창대자원을 대하는 방식은 그랬다. 창대자원 쪽을 노려보다가 혼자 열을 내는 게 머쓱해서 도로 올라온 게 몇 번이었다. 하루하루 나와 가족들은 시들어 갔고, 창대자원은 더욱 더 번창하는 중이었다. 내 눈에 비친 이 동네의 자원 수집 연령은 다양했다. 주로는 노인층이었다. 그리고 트럭에 전문성을 띄고 자원을 수집하는 층이 사오십대였다. 그런데 어쩌다 삼사십대, 심지어는 이십대들도 있었다. 집에서 모은 파지나 공병, 아니면 못쓰게 된 가전제품을 가지고 휴일 같은 때 창대자원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가족 나들이를 가며 식구들을 태운 자가용의 트렁크에 자원을 싣고 그대로 무게를 잰 다음 자원을 내려놓고 다시 재는 광경을 본 것도 몇 차례였다. 그렇게 받은 돈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액수였을 것이다. 하여튼 그들도 소음의 진원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럴 때마다 자원을 홀대했던 나를 돌이켜 보았다. 

      내 일은 손에 잡지도 못하고 창대자원을 살피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방이나 거실에서 내다보면 창대자원은 한눈에 들어왔다. 베란다에다 늘어놓은 꽃에다가 물을 주며 바라보면 더욱 세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5월 초,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들을 사다 심었다. 채송화, 맨드라미, 제라늄, 방울토마토, 고추 등을 심은 화분들과 스티로폼 박스를 발코니를 따라 쭉 늘어놓았다. 안 쓰는 항아리에 부레옥잠을 띄우고 연도 심었다. 그 동안 하고 싶어도 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비록 월세지만 아파트에서 벗어나 주택으로 이사 온 보상이라 생각했다. 거름을 사오고 인근 야산에서 퍼 온 흙을 섞어 스티로폼 박스를 채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물을 줄 때 식물들의 몸짓을 읽을 수 없었다. 피어오르는 빨갛고 노란, 주홍색들을, 바이올렛의 은은한 색들을, 창대자원의 날카로운 쇳소리는 뗑겅뗑겅 무참히 베어버렸다. 날이 갈수록 정성껏 키워온 꽃들을 건성건성 대했다. 이제 꽃들이 있는 곳은 창대자원을 감시하고, 그들의 파렴치하고 뻔뻔한 몸짓과 고성들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사 온 지 세달 가량 지났다. 그래도 이 동네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가 중뿔나게 나설 수가 없었다. 창대자원과 마주한, 그래서 거기서 울려오는 소음을 한 몸에 받는 13번지 사람들 중 누군가 나서겠지 때를 기다렸다.  
      주인집이 대문 앞에 너댓 명은 앉을 평상을 짜던 일요일이었다.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난 일요일 오후였다. 휴대용가스레인지와 원형구이판, 그리고 소주 몇 병과 비닐에 담긴 삼겹살이 평상 위에 놓여 있었다. 같이 한 잔 하자며, 13번지 사람들이 처음으로 전부 모였다. 지하와 주인집도 처음으로 자리를 했나 보았다. 몇 달 같이 살았지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던 것 모양이다. 비어 있던 이층으로 우리가 이사 오며 마치 부속 하나가 빠져 작동 못하던 기계가 그것을 끼어 놓자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파지랑 병 같은 건 계단 아래 여기다가 놔두세요. 모아서 가끔씩 삼겹살 먹게” 그러니까 집집이 모은 파지나 공병, 그 밖에 자원이 될 것들을 1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에 모았다가 창대자원으로 가져가면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재화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바꾼 삼겹살을 주인여자와 지하여자가 굽고 있었다.
      그 날 나와 주인남자는 소주를 다섯 병이나 비웠다. 그날 알게 된 사연들이 꽤 많았다. 일층 주인부부는 일주일에 4일을 아파트에 서는 장터를 다니며 떡볶이와 어묵, 순대, 튀김, 슬러시 등을 팔았다. 그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나이가 우리보다 좀 어렸다. 월세계약서를 쓸 때 아내와 주인여자가 계약을 했기에 주인여자가 아내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다는 것은 알았다. 주인남자는 나이가 들어보였다.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 밑이었다. 지하여자는 나와 동갑으로 십여년 전 이혼하고 수원에서 살다가 이리로 온 지 반년 남짓 되었다는 것이다. 수원에서는 교회에 다녀 아는 사람도 많았는데, 아직 이 동네에서 나갈 교회를 찾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혼도 일찍 했는지 같이 사는 막내아들은 벌써 서른이 넘었다. 우리도 이런 저런 사연을 꺼내놓았다. 물론 이사 온 게 우리 경제력 탓이 아닌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이의 학교가 걸어 다닐 정도로 가까워서라고 못 박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 거리에 작은 애 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이삿짐 보니 책이 아주 많던데요. 공부 많이 하셨나 봅니다. 우린 가방끈이 짧아서, 겨우 고등학교 마쳤어요.” 나는 주인남자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내세울 일이 아니었다. 책이 많으면 뭐하는가. ‘권수’는 알아도 ‘근수’를 모르는데. 아주 잡아떼기도 뭐해 주로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내 사정을 슬쩍 흘렸다. 헌데 이사 오고 통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고, 그게 다 저 창대자원 때문이라고 방향을 돌렸다. 그 사이에도 창대자원은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원들의 횡포였다. 너희들은 히히덕거리지만 우리는 지금도 땀을 흘리는 중이야. 그러니까 이깟 소음쯤은 즐겁게 들어 넘겨. 그런 투로 귀를 후벼 파는 창대자원의 소리에 나는 다시 날카로워졌다. “근데 저 소리를 어떻게 견딥니까? 이 집 이사 와 다른 거는 다 맘에 듭니다. 정말 저 소리만 없으면 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봅시다. 창대자원에 항의라도 좀 해봅시다. 정말 미치겠어요. 애들도 잠을 설치곤 합니다. 더구나 작은 애는 수험생입니다.” 나는 평상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발에 꿰었다. 앞장서서 대문 쪽으로 다가섰다. 당장이라도 창대자원과 담판을 짓자는 심사였다. 13번지 주인남자는 언제 기회가 되면 말해보겠다고 슬그머니 뒤로 빼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첫 회합은 끝났다. 창대자원에 대항할 어떤 대책도 없이 비틀대며 계단을 올랐다. 탕탕! 쾅쾅! 챙챙! 부지런한 창대자원. “자원도 아닌 게, 낮술이나 먹고 어찌 자원이 되려고 하니.” 그런 소리를 냈다. 13호 구성원들은 그 날 뒤로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물론 창대자원에 대한 말은 없었다. 사람들이 좋은 것인지 몰라도 이상했다. 나는 점차 13호 구성원들을 자원의 차원에서 살피기 시작했다.        
      지하여자는 별반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대문 앞에 놓인 평상 위에서 매실차나 우엉차를 마시며 시간을 죽였다. 아니면 삼베주머니에 현미를 넣고 만든 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덥혀서는 평상 위에 벌렁 누운 채 배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민망해서 밑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아내도 지하여자에게 배웠다며 그 찜질팩을 만들었다. 지하여자는 찜질을 할 때 창대자원에서 우레가 쳐도 못들은 척 눈을 감고 명상 중이다. 그 어찌 자원이라 하겠는가. 살림이 그리 넉넉지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월세로 살고 있지 않은가. 나와 같은 나이에 그런 환경에 처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바삐 일을 한다. 아내 말로는 지하여자가 늘 여기저기 쑤신다고 했는데, 주인집이 장사를 마치고 들어올 때 도와주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무쇠로 된 가스버너, 또 물건이 가득 담긴 함지박을 번쩍번쩍 들어올린다. 물론 주인집이 팔다 남은 음식 등은 지하가 일차적으로 차지한다. 그리고 남는 것을 자기가 선심 쓰듯 직접 우리 집으로 가져온다. 그녀의 삼십 넘은 아들은 낮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온다. 피자집에서 일한다는 것을 보니 그는 일단 자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하여자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대문을 열고 이집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지하에 돌출된 창을 통해 몰래 감시하는 것만 같다. 그녀가 지하의 창문에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각도면 나나 아내의 손에 뭐가 쥐어져 있는지 대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갔다 들어올 때, 대문이 딸깍거릴 때 지하의 고양이가 얼른 창틀로 뛰어오른다. 그러면 지하여자는 ‘새미’하고 고양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올려본다. 나는 얼른 고양이 걸음으로 숨죽이며 계단을 오른다. ‘야옹’하며 고양이가 바닥에서 유리창으로 펄쩍 뛰어올라 나를 바라볼 때 지하로부터 올라오는 두 시선이 무척 닮아 있음을 느낀다. 내 눈이 그들과 마주쳤다 싶으면 얼른 고개를 돌린다.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곁눈질로 가늠하면 그녀의 시선이 계속 나에게 닿아 있음을 근질근질 느낀다. 나는 얼른 그녀의 시야가 닿지 않는 사정거리 밖으로 황황히 이동한다. 아내가 재활용품을 버리려 계단을 내려와 대문 앞에 서면 평상이나 마당에 있던 지하여자는 페트병이며 캔 따위를 넣은 큰 비닐 봉투를 얼른 스캔한다. 쓰레기봉투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껍질을 보며 한마디 던진다. “아니 누가 그걸 좋아해요, 우리 애도 그거 무지 좋아하는데. 근데 요즘 00콘이 더 맛있는 거 같애.” 또 음식물쓰레기 봉투의 내용물을 눈여겨보며 한마디 던진다. “수박, 소망마트에서 샀어요? 세일한다고 가 보니 맛이 하나도 없어.” 소망마트는 열흘 전쯤 집 근처에 문을 연 큰 슈퍼였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비식 웃으며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내게 그런 환경들이 좀 낯설다고 했다. 또 어느 날은 제 때에 먹지 않아 못 쓰게 된 느타리버섯이나 토마토를 넣은 것을 보고 그런 것 있으면 같이 먹지 남겨서 버리면 아깝지 않냐고 음식물쓰레기봉투를 힐끗댄다. 그 아깝다는 말은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기왕 버릴 것이면 미리 ‘자원으로 활용하자’라는 말인지, 아니면 미리 ‘상납’하라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어쨌든 지하여자가 우리를 감시하는 것만 같아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감시를 받으며 움찔거리다니. 불쑥 화가 치민다.
      일층 주인집 거실 창으로 내가 계단에 오르는 모습이 대각선으로 잡힐 것이다. 밤이라도 되면 내게도 불 켜진 주인집 거실이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 일층 처마 밑에 달아 놓은 센서등, 전구의 촉수도 상당히 높아 내 몸과 손에 쥔 것들이 낱낱이 눈에 뜨일 것이다. 주인 내외는 장사를 나갔다가 밤 아홉시 쯤 들어온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 생활 및 경제 생산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자원들이다. 그 집은 대개 현관문을 열어 놓고 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평상에서 지하여자와 두런거리는 게 거의 일과이다. 나와 아내는 몇 번 그 곁을 지나쳤다. 아내가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이 사회의 자원, 즉 인적자원인 이들에게 별반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원이 아닌 나는 주눅이 들어 몇 번 저 쇳소리들에 대해 말을 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곤 했다. 일을 나가지 않는 날, 창대자원이 왕성한 힘을 뽐내는 시간이면 일층 주인부부는 슬쩍 차를 몰고 나간다. 근처에 사는 동생네로 가거나 아니면 스크린 골프장,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은 골프장에 가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일층의 현관을 거치면 우리 집이 있는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주인집 현관을 지나쳐 이층 계단을 밟는 순간 그제서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계단참을 돌아 이층 내 집 현관에 서면 창대자원의 컨테이너들 위로 얼기설기 천막을 둘러 무허가로 지어 놓고(가끔 거기서 잠도 잔다.) 자원 값을 쳐주는 사무실 겸 식당으로 쓰는 그곳에서 창대자원의 부부가 집 뒤에 서 있는 나를 올려본다. 나는 얼른 시선을 거둬들인다.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치 볼 이유가 있단 말인가. 당당해지자. 저들이 남의 생활을 짓밟아놓고 있지 않은가.
      날이 갈수록 점점 의심이 깊어갔다. 어렴풋한 꿍꿍이를 감지했다고나 할까. 분명 방을 보러 왔을 때 조용했던 까닭은 저들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닐까. 집 보러 올 때만 조용히 해달라고. 두 번째로 13번지 2층을 얻을까 말까 다시 방을 보러 왔을 때도 조용히 파지만 내려놓고 있지 않았는가. 돌이켜보니 정말 감쪽같이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작성한 임대계약서에는 이곳이 2종주거지역이고, 또 소음도 보통이라 명시되어 있었다. 보통의 소음 정도야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파지 정도를 내려놓는 어느 정도의 소음은 도리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각오도 했다. 그런데 그 ‘보통의 소음’이란 게 집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전화통화도 못할 정도이니 그 보통이란 의미는 고쳐져야만 했다. 순간 뭔가 나를 스쳤다. 그 소리를 감내하는 13번지 주인집과 창대자원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자기 집값 떨어지고, 또 세놓기도 힘들 텐데 누가 그 꼴을 본단 말인가. 그렇지만 지금까지 본 저들의 관계는 얼굴을 붉히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분명 주인남자가 이야기했다. 자기가 소음문제를 조정해보겠다고.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진다. 또 지하여자는 늦게 들어오는 아들이 아침잠을 못 잔다며 투덜댔지만, 내가 창문을 통해 본 바로는 창대자원여자와 골목에서 수근대는 게 내 시선에 몇 차례나 포착되었다. 아마 소음에 대한 항의일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지하여자의 약간 비굴하고 과장을 머금은 웃음소리나 표정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동네도 마찬가지다. 근처에 있던 고물상 몇 군데가 문을 닫았다는 소리를 해준 동네 슈퍼아저씨도 처음에 담배를 사러 갔을 때 13번지로 이사 온 사람이냐며 먼저 알은 체를 했다. 나와 우리 식구만 모르는 것들이 많다. 불쑥 나는 우리가 감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이 일었다. 아, 감시는 정말 암보다 해롭다. 이 말은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칼럼의 제목이다. 칼럼에서는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고’였지만 13번지 일대에서는 ‘개인은 개인끼리 감시하고, 감시당하고’였다. 나도 감시를 시작하자.
      창대자원이 빤히 보이는 내 방과 작은 아이 방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13번지를, 창대자원을 더욱 세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간간 사진도 찍어 놓았다. 언제 쇠를 때려 부수는 소리가 그칠까, 그 다음 어떤 자원들이 사정없이 나를 흔들어 놓을까. 나는 방에 숨어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로 창대자원의 방자한 짓들을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언젠가 저들의 목을 옥죄일 증거들을 방충망이 달린 창문을 통해 몰래몰래 찍어댔다. 급기야는 베란다에 나가 화사하게 피어오른 꽃 옆에서 당당히 그 모습을 담았다. 약 올리듯 쇳조각을 하나하나 던지는 모습들, 집게차가 들어와 굉음을 일으키며 거대한 쇠 팔을 휘젓는 모습들. 집게 차가 쇠를 집어갈 때면 나는 정말로 머리를 벽에 쿵쿵 찧고는 베란다로 달려 나갔다. 이미 휴대전화에 내장된 메모리 용량이 꽉 차 몇 차례나 컴퓨터에다 동영상들을 옮겼다. 모니터의 바탕화면에 있는 ‘창대자원’이란 폴더 속에다 저 자원들이 광포하게 날뛰는 꼴들을 낱낱이 모아 놓았다. 그렇게 때를 기다렸다.  
     


    3. 타도하자, 창대자원! 끝장내자, 창대자원!
      나는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 이 집 분위기가 수상하기만 했기에 비밀스레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헌데 나와 아내의 얼굴이 사색이 다되었다. 그 자원들의 방자한 움직임을 제재할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자원은 무슨 우라질 놈의 자원이란 말인가. 고물상이지.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데 답이 없다. 나는 그 자원들을 타도할, 우리의 건강한 삶을 갉아먹는 저 자원들의 횡포를 더 견딜 수 없었다. 포털에 들어가 ‘자원’을 검색하니 탐탁찮다. ‘관광자원’이니 ‘자원봉사자’ 같은 내용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다가 ‘자원고갈’ 같은 섬뜩한 내용도 보인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내 위치가 표시된 지도 아래로 자원들의 위치와 전화번호들이 줄줄이 뜬다. 고물상이란 솔직한 상호도 있다. 그러면 그렇지 자원은 무슨 놈의 자원, 고물상이지. 고물상을 검색하니 줄줄이 나온다. 우리처럼 어둠 속에 숨죽이며 그 소리를 듣다가 더 이상 치미는 화를 다스리지 못할 때 쓴 듯한 하소연들이 이어진다. 나도 그들의 표현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런 표현들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지금이라도 뛰어가 때려죽이고 싶은’ 고물상. 나도 주먹을 불끈 쥔다.
      슬쩍 창밖을 보니 ‘창대자원’의 간판과 함께 집게차가 경보음을 울리며 양철 문 사이를 통과하여 무게를 재려 한다. 그리고 이삼 분 뒤 굉음과 함께 자원들이 트럭에 실린다. 나는 ‘씹어 먹고 싶은’, ‘후다닥 뛰어 내려가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저것들을 타도하기 위해 결의를 다졌다.

      나는 자원의 무서운 힘과 그들이 왕성한 번식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이 나라의 아량에 놀랐다. 그리고 절망했다. 600평 이하의 고물상은 허가도, 신고도 필요 없이 마음대로 차릴 수 있고, 또 이들을 제재할 법적인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창대자원의 울타리 안을 가늠해 봐도 그 이름만큼은 창대하지 않았다. 고작 200평 남짓. 계속 잠을 설친데다 그 절망적인 내용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계약서에 남은 1년 8개월을 어찌 채운단 말인가. 탕탕, 퍽퍽, 창창, 챙챙, 펑펑. 숨이 막혀 왔다. 귀를 막으며 벽에 머리를 수차례 처박았다.
      이미 전국적이 되어버린 자원들의 밤낮 없는 행보. 대한민국에의 자원들은 그렇게 음지에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철거전문, 고철, 비철, 파지’라고 쓴 자원들의 획일적인 간판들. 아마도 간판집에서는 자원을 수집하는 고물상을 위해 판에 박힌 글귀로 통일시키는 듯 했다. 간판에 내걸 내용을 골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상호만 다르지, 철거전문, 고철, 비철, 파지는 거의 자원을 표방한 간판들을 채우는 내용이다. 언젠가 고물값이 치솟았을 때 정말 자원들이 많이 생겼다. 이제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예전만해도 길에서 자원 수집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같았다. 살기가 팍팍하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창대자원만 생각하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거리를 다니거나 조금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지나칠 때면 그런 간판만 눈에 들어온다. 다모아자원, 철거전문ㆍ고철ㆍ비철ㆍ파지. 나는 그 곁에서 숨죽이고 웅크린 채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주택들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물론 자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13번지에서 5분 가량 떨어진 곳에 ‘홍제자원’이 있다. 나는 몇 번 ‘홍제자원’을 살폈다. 창대자원만큼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문을 여닫는 시간도 딱 정해져 있고, 일요일은 쉰다. ‘홍제자원’에서는 들어 온 자원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자르고, 두들겨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홍제자원’ 정도의 소음은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홍제자원은 길모퉁이에 있지만 창대자원은 주택들 한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어느 날, 13번지에 사는, 자원이 되기에는 부족한 자들이 창대자원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와 지하였다. 오전이라 오후부터 시작하는 학원에 아직 나가지 않은 아내가 함께했다. 주인집은 진작 장사를 나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집주인을 성토했다. 비싼 월세 받으면서 세입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그들의 우유부단함에 우리는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그래봤자 우리 소리들은 골목과 마당을 꽉꽉 메운 자원들의 함성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결의를 다졌다. 탕-탕-탕, 챙-챙-챙, 우리가 주인을, 텅-텅-텅, 앞세웁, 쨍그랑,시다. 그렇잖으면, 띵-띵, 월세를 못, 타르륵-창, 내겠다고, 와당탕탕, 버팁시다!
      우선 13번지의 울타리 안에서 세입자들끼리라도 단합해야 했다, 창대자원을 타도하기 위해서. 주인집이 수상쩍다는 느낌이 든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간혹 주인집이 장사 나가지 않는 날이면 평상에서 부침개 따위를 부쳐 두어 조각을 창대자원의 주인여자한테 ‘형님, 이것 잡숴봐’라며 접시를 내미는 것을 몇 차례 보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는 가끔 애처로운 포정을 지으며 창대자원의 소음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를 한다. 이사 온 초기만 해도 나는 점잖게, 넓은 마음을 지닌 듯, ‘어찌합니까, 같이 살아야죠’ 따위의 말을 흘렸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내말에 질겁했다. “정말 그러실 수 있어요? 우리가 죽을 것 같은데 뭘 같이 살아요. 좀 정직해지세요.” 정말 나는 바보 같다. 지적으로 한참 모자라는 바보. ‘근수’는 모르고 ‘권수’만 아는 천치.
      처음에 내 눈에 비친 자원의 남자가 착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한쪽 귀가 안 들린다 했다. 하기야 종일 저 쇳소리를 끌어안고 지내는 데 귀가 어떻게 성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좋지 않습니까’, 하면 지하여자는 먹이를 채는 순간의 고양이 눈을 하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이 좋다구요? 천만의 말씀. 내가 이사온 지 반년이 다되는데 저 인간들이 한 짓을 보면 전혀 착한 사람들 아니라니까요. 우리가 초인종 달아놓은 것을 다 부숴 버리고, 아들차도 쇠꼬챙이 같은 걸로 긁어놓아 돈 들여 도색을 다시 했다니까요. 저 인간들이 분명해요. 내가 시끄럽다고 따지고 난 뒤 며칠 있다가 두 사건이 있었으니까.” 그랬다. 지하는 내가 이사 온 뒤 쇳소리에 괴로워하는 나를 앞에 놓고 ‘자원이 나쁘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신고할 수 없는 노릇이라 했다. 곰곰 상황을 정리해 봐도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정말 이상했다. 지하여자에게 창대자원 여자와 자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군을 잃을 수는 없다.   

      자원을 운반하는 도구들이 창대자원을 들락거릴 때는 당연히 귀가 찢어지는, 또 가슴을 막 후벼 파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운반용 도구들도 다양했다. 리어카와 트럭은 기본이고 대형마트에서 쓰는 카트, 색깔과 상호가 그대로 있는 야쿠르트 배달용 리어카, 자원을 직거래 하는 자가용이나 개인택시 등. 그런데 창대자원에 사람들이 들락거리지 않을 때도 늘 소리가 났다. 쨍강쨍강, 챙, 탕탕탕, 드르르륵. 소리의 진원은 내가 착하다고 했던, 아니 착하게 보이는 창대자원의 남자였다. 자원이 들어오지 않는 때에는 마치 가만두면 군기가 빠질까봐 훈련이라도 시키듯 자원들을 두드린다. 그리고 분해한다. 전기드라이버 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또 무슨 소리인가 창으로 내다보면 고장난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불조절용 플라스틱 손잡이를 떼어낸다. 그 다음 망치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정없이 두들겨 납작하게 만든다. 그다음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 쌓인 곳으로, 쇠 부분은 납작하게 찌부러져 쇠들이 집결한 칸으로 들어가 격한 몸짓으로 정렬한다. 타-앙. 그렇게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쇠를 집어 던진다. 기계톱으로 요란하게 쇠를 절단한다. 위-이-이-잉! 산소 용접봉으로 매캐한 냄새를 품어 올리며 불꽃으로 무쇠로 된 보일러 통 따위를 절개한다. 한쪽을 열어 제친 다음 그 비어있는 공간에 다른 고철을 채워 넣어야 집게차가 왔을 때 부피가 줄어들어 많이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납을 잘하는 것이다. 그 빈 보일러통을 채우며 쇠들은 다시 소리를 지른다. 잔뜩 군기가 든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타-앙 타-앙.   
      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정정했다. 대체 주택가 한가운데에서 ‘자원’을 내세우며 저런 행패를 자행하고 있다니. 이제 캔 따위를 찰캉 던지는 소리만 나도 잠에서 화들짝 깼다. 문도 열기 전 골목에 자리해 웅성대는 무시무시한 노인네들. 그 번뜩이는 삶에 대한 굉장한 집착이 무서웠다. 창대자원의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13번지 주변의 집들도 이상했다. 거기에는 정말 ‘도통한’ 사람들만 사는 듯 했다. 나는 감시를 통해 까닭을 알았다. 옆집 주인은 창대자원 남자와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또 한 집 건너 있는 삼 층짜리 ‘태영주택’의 일층은 자원을 모아 창대자원과 거래하는 사이였다.
      셋집들이 대동단결하여 주인집을 압박했다. 타도하자! 창대자원! 비겁하게 숨지 말고, 당당하게 앞장서라! 그게 지하와 2층에 사는 우리가 주인집을 향한, 더 나아가 창대차원을 향해 외치는 구호였다. 일층의 주인남자는 날을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었을까, 갑자기 어디서 석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 순간 방안으로 매캐한 연기가 빠르게 밀려  들었다. 나는 잠결에 창대자원에서 산소용접봉으로 쇠를 자르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치-지-지-직, 치-지-지-직!
      맨발로 발코니 쪽으로 뛰어나갔다. 나가보니 창대자원의 남자가 산소봉으로 자르던 보일러 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나는 얼른 아내와 아이들을 깨우고, 동영상으로 그 기막힌 광경을 촬영했다. 통 안에 남아 있던 석유에 용접봉의 불꽃이 튀자 불이 붙은 것이었다. 겁이 없는 창대자원의 남자는 기름에 붙은 불을 끄려 보일러 통에다가 물을 부었다. 다시 불길이 활활 솟구쳐 올랐다. 옆으로는 파지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냄새에 뛰어나온 13번지 사람들은 창대자원으로 몰려갔다. “이제 하다하다 유독가스까지 배출합니까? 저 종이더미에 불붙으면 이 근처는 불바다 되는 게 뻔한데 겁이 없는 거요, 뭐요?” 내 목소리였다. 그제야 13번지 일층의 주인여자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아저씨, 좋은 게 좋다고 했는데, 이게 뭐예요? 얼마나 놀랐다구요” “내, 미안하게 됐시다.” 창대자원의 남자는 그 헌 보일러통의 불길 위에 곧 자원으로 분해될 알루미늄 새시 문을 올려 공기를 차단했다. 불길이 통 안에 갇혔다. 곧바로 불길이 닿는 새시 문의 유리가 깨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놀라 뛰어나온 13번지 사람들은 얼른 한 쪽으로 물러났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지하도 일층 주인부부도 뒤돌아서서 대문 쪽으로 발을 떼기 시작했다. 난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뭐요? 미안하게 됐시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때 불법으로 설치한 창대자원의 사무실에서 주인여자가 나오며 대들었다. 늘 내가 베란다에서 그들의 횡포를 보다 못해 증거로 삼을 동영상을 찍으면 영업방해죄로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여자였으니 나와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고물상이 어느 정도 시끄러운 게 당연하지. 그거 모르고 이사 왔나. 어디 맘대로 해봐. 영업방해죄로 집어넣을 테니.” 더 말을 섞다가는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아 나는 씩씩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다. 13번지 사람들이 마당에 죄 모여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였다. 그리고 창대자원 타도를 위한 대책회의를 열자고 나는 일층 남자를 강하게 몰아 세웠다. 나는 이런 말들을 했다. 나도 한 집안의 가장올시다. 내 가정의 안정과 평온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 말입니다. 벌써 몇 달째 저 고물상 때문에 시달리는 거 잘 알잖아요. 뭐, 날 영업방해죄로 집어넣는다고. 그 말 들었죠? 집주인으로 세입자한테 의무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집주인이면 우리를 보호해야지. 조금 있다가 시청에 민원을 내러 같이 갑시다. 일층남자는 한참을 머뭇댔다. 내 눈이 활활 탔다. “하기야 고물상이 맘대로 하라 했으니까,” 내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는 어물쩍 넘어갈 수 없음을 알았는지 그러마고 시간을 정했다. 나는 그때까지 촬영한 동영상들을 USB에 담았다. 타도하자, 창대자원! 끝장내자, 창대자원! 내 가슴은 불탔다. 창대자원의 보일러 통에서 뿜어져 나와 내 몸에 후끈 전해지던 열기보다 더 뜨거운 게 내 가슴을, 내 머리를 뒤덮었다.  

     

            

    4. ‘쌩까다’   
      시청의 직소민원실로 향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일층 남자에게 나는 한껏 목청을 높여 떠들었다. “저 고물상이 있으면 집값도 떨어집니다. 또 누가 세를 들어옵니까. 이참에 그쪽도 잘 된 일이지요. 저 사람들 먹고사는 게 좀 안 되긴 해도 우리가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내 머리 위쪽은 누가 강제로 뜯어낸 것처럼 늘 멍하고 감각이 없을 정도예요. 창대자원의 소음 때문에 견뎌낼 수가 있어야지.” “근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주인남자는 운전대를 잡고 앞을 바라본 채 심드렁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나는 인터넷을 떠도는 고물상에 대한 수많은 기사를 본 터라 그게 뭔지 알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뜨끔뜨끔 저며왔다. “할 수 없잖습니까. 해 보는 데까지 해 보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도 조금은……” 맥이 빠지고 있었다. 시청의 담당 주무관에게 동영상과 주소, 이름,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왔다.
      다음 날 시청의 주무관한테 연락이 왔다. 조치를 취하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13번지와 창대자원이 있는 인근은 2종주거지역이라 고물상이 들어올 수 없다며 좀 참고 기다리라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조속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애써 달라고 정말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이제 너희도 끝이다. 주무관은 길어야 세 달 정도면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다음은 잘 들리지 않았다. 창대자원이 성이 나 사납게 포효하고 있었다. 집게차가 쇠를 집어 적재함에 싣는 소리다. 나는 창문을 모두 닫았다. “세 달씩이나요?”   “다 행정적인 절차가 있는 법입니다.” 나는 다시 창문을 열어 제치고 시청주무관에게 전화기를 통해 창대자원의 거창한 소음을 들려주었다. “저 소음 들리시죠.”  
      전화를 끊고 나는 베란다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문 채 창대자원을 내려다보았다. 창대자원 여자는 보이지 않고, 남자가 여전히 뭔가를 분해하고 있었다. 그 전동드릴 소리가 다시 귀를 후벼팠다. 그래 실컷 해봐라.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불필요한, 아니 필요한 공정이지만 주택가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그런 공정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하는 것이다. 한시도 쉬지 않는, 정말 이 나라의 바람직한 자원상像이다. 표창장을 주어도 모자랄 정도로 쉴 줄 모르고, 오로지 묵묵하게 입을 꽉 다문 채 자기 일만 한다. 기온이 삼십오도 가까이 치솟은 한낮이었다. 저런 작업들이 남자의 인생수행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가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때 리어카에 자원을 가득 실은 노파가 창대자원으로 들어섰다. 언젠가 잠깐 창대자원에 사람이 없을 때 나한테 물 한 잔 달라던 노파였다. 그때만 해도 ‘같이 살려고’ 했을 때라 얼른 페트병에다 물을 담아 주었다. 노파는 근수가 잘못되었다고 창대자원 여자와 실랑이를 벌인다. 물끄러미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제 부딪힐 일도 없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나는 일층남자에게 시청주무관의 말을 전했다. 그날 알게 된 사실. 창대자원의 주인이 13번지의 주인이었다는 것. 그것도 13번지의 전 주인이 늘 시끄럽다고 딴죽을 걸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기에 급기야는 융자를 잔뜩 얻어 13번지 집을 샀다고 했다. 자원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몸값이 한참 올랐을 때였다. 창대자원은 인근에다 또 다른 창대자원 2호점, 3호점을 열었었다. 그때만 해도 치솟던 자원들의 몸값은 곧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창대자원 부부가 13번지 집을 사며 빌린 융자액과 2, 3호점을 내며 빌린 돈을 감당 못하다가 급기야는 새벽에 도주(간단한 짐만 꾸렸다고 했다)하려다가 붙잡혔다는 것이다. 전에 살던 이층의 세입자가 달그락거리며 문에 짐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뛰어가 잡아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일층의 주인남자가 어떻게 창대자원의 비사들을 그리 세세하게 알고 있는지 의심이 버럭 일었다. “그 때 우리는 일층에 전세로 살고 있었으니 창대자원 일은 잘 알지요.” 세 들어 살다가 전세보증금이 날아갈까봐 경매에 들어가려는 이 집을 하는 수 없이 떠안았다는 것이다. 자기네도 아직 창대자원으로부터 이천만원 정도 받을 돈이 있다고 했다. 변호사를 사려 해도 받을 가망이 없어 포기했다는 말까지 했다. 뭐가 뭔지 모를 일이었다. 
      일층 주인남자에게 창대자원이 타도되는 과정을 설명한 뒤 몇 시간 지났을까. 마당의 평상에서 식용유 냄새가 올라왔다. 일층여자가 마당에서 딴 호박과 부추로 평상에서 부침개를 부치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13번지 대문이 떨꺽 열리더니 ‘형님, 잡숴 봐’라며 창대자원 여자에게 종이접시를 내미는 일층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한 시간 쯤 지나자 창대자원 여자는 수박과 참외를 사들고 13번지 대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지하조차 세웠던 발톱을 오그라뜨린 채 웃는 낯으로 창대자원을 대하는 것 아닌가. 나와 아내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더니 이층의 우리를 뺀 13번지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돌기 시작했다. 자원의 남자가 쓰러졌다는 말이 지하여자를 통해 내 귀에 들어왔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그리고 스트레스를 제공한 주범은 나였다니. 괘씸했다. 며칠 전 창대자원 남자가 쓰러졌다는 그날도 집게차가 골목입구에 세워놓은 내 차에 막혀 들어오지 못한다며 창대자원의 여자가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창대자원의 남자가 친척이 죽어 상갓집에 갔다가 술 먹고 쓰러져 있다며 자기 혼자 오후 일을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은근히 화해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런데 지하여자는 그게 술 먹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준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졌다고 두 번씩이나 나와 아내 앞에서 힘주어 말했다. “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이층이 스트레스 많이 줬지.” 일층 주인네도 마찬가지였다. 평상에 지하여자와 함께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면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하곤 했다. 정말로 영문도 모르게, 애들이 쓰는 말대로 ‘쌩까는’ 것이었다. 일층 남자는 내가 시청주무관의 말을 전할 때 이제 창대자원과는 ‘쌩까면’ 그뿐이라 했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이에게 ‘쌩까다’의 뜻을 물었다. “그건 절교하거나 아님 그냥 무시해버리는 거예요.” 며칠 지나자 13번지 담장 안에서 지하와 일층과 마주칠 때 그들은 나와 아내에게, 그리고 인사를 하는 우리 애들에게 ‘쌩까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알은 척을 한다. 그리고 다시 ‘쌩깐다’. 하루하루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13번지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7월 20일: 창대자원에서 불을 내고, 유독가스가 13번지를 뒤덮었다. 나와 일층의 13번지 주인남자가 시청에다 민원을 넣었다. 창대자원의 저 악행을 근절시켜 달라고. 그리고 나와 아내를 포함한 13번지 사람들이 저녁에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와 소주를 마시며 창대자원에 어떻게 대항할지를 의논. 물론 제일 믿을 만한 것은 공권력의 힘이었다.  
      7월 21일: 우리 민원을 접수한 시청의 주무관이 전화를 해왔다. 애초 민원을 넣을 때 일층남자가 난처해하며 머뭇대기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소음과 공해 문제는 환경 쪽에서 그날 중으로 조사를 나갈 것이고, 창대자원의 위치가 2종 주거지역에 있기 때문에 불법건축물을 뜯어내라는 명령과 함께 고물상이 있기 전의 원상태로 돌려놓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릴 것, 그렇지 않으면 고발조치 될 것이라 했다. 나는 그것을 일층 남자에게 전했다. 그는 “쌩까면 된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7월 22일: 하루 종일 창대자원의 자원들이 우리 13번지를 향해 시위를 벌였다. 콰-당, 꽝-당, 텅-텅. 그날 들은 그 소리들을 옮기려면 내가 알고 있는 의성어를 다 동원해도 모자랐다. 차르륵, 타르륵, 드르륵. 몇 시간 동안 정말 난폭한 자원들의 시위 장면을 나는 베란다에서 동영상으로 찍었다. 나를 발견한 창대자원 남자의 고함소리. “야, 공무원 나왔다 갔어. 뭐 우릴 쫓아내? 웃기지 마. 내일부터는 더 일찍 열 거야. 그리고 그 집 지하하고 니네집 창고 불법인 거 알지? 내가 고발해서 다 뜯어낼 거야. 이것들이 사람을 우습게 알고. 야, 니가 배웠으면 얼마나 배웠어. 배우면 뭘 해. 없이 사는 사람들 등이나 치지. 얼마나 똑똑한가 보자.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을 괴롭혀? 내일 아침부터 두고 봐, 몇 시에 문 여나.”
      7월 23일: 새벽, 아니 아침 5시 반경 창대자원의 육중한 문이 야단스레 삐걱대며 서둘러 아침을 맞이했다. 부지런한 태양은 벌써 우리 현관으로 뜨거운 열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연일 삼십여도의 폭염. 그 폭염과 함께 13번지의 상징이 된 창대자원의 그 요란한 소리들. 정말 세 시간 정도 그 쇳소리가 이어졌다. 일층 주인네도 쉬는 날이었다. 그런데 나와 마주한 남자가 모른 척 집으로 들어간다. 아마 잠을 설친 탓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쇳소리를 피해 그리고 아내의 출근과 함께 집을 나설 때는 평상에 있던 일층 주인여자와 지하가 우리를 보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채 ‘쌩깠다’. 평소였다면, 그러니까 민원을 넣기 전까지만 해도 ‘잘 다녀오라’던가, ‘이따 저녁에 산책 갑시다’ 따위의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 데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나는 세를 들어올 때 부동산이 준 13번지 등기부 등본을 꺼내 꼼꼼히 읽었다. 1층과 2층은 슬라브조의 주거시설로 되어 있다. 이제 보니 창고로 되어 있는 지하를 불법으로 세놓은 것이다. 아뿔싸 그것을 창대자원이 물고 늘어지는 것 아닌가. 
      7월 24일: 창대자원의 소리는 역시 우렁우렁하다. 5시 30분. 저 희망에 찬, 저 위대한 소리들. 국가에 보탬이 되고 인류에 유익한 저 행보에 동참하지 않는 버러지 같은 인간들에게는 괴로울 테지만,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저 자원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힘이 솟는 소리일 터였다. 그러한 믿음으로 자원들은 씩씩한 행군을 시작한다. 나는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창대자원 남자는 쇳소리를 피해 도서관으로 가는 내 작은 아이에게 달려들며 욕을 퍼부었다. 피가 머리 위로 치솟았다. 그때 순찰차가 도착했다. 경찰은 오더니 자기네가 어찌할 상황이 아니라며 창대자원에게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그날 경찰이 해 준 역할은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라는 내 강력한 항의를 전달, 실현시킨 것이다. 전날 ‘쌩까던’ 일층남자가 나를 보자고 했다. 몇 시간 동안 내가 ‘쌩깠다’. 우리 아이가 창대자원의 남자에게 당하는 것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만보고 있던 인간 아닌가. 저녁에 다시 아내한테 좀 보자고 일층여자가 전화했다. 어쨌든 집주인 아닌가. 그날 일층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지하를 살기 좋게 리모델링 한 사람은 바로 창대자원의 부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기네가 주인이기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뭔가 해법이 있을 것이라며 전하고는 집으로 올라왔다.
      7월 27일: 시의 건축담당 공무원에게 지하 창고를 문의하니 현재 집주인에게 벌금과 철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 그런데 사람이 살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원인제공자, 즉 창대자원의 주인을 고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일층남자에게 걱정 말라며, 이참에 창대자원을 정리 못한다면 계속 ‘코가 꿰어’ 살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하여자도 떼어놓았던 주민등록등본을 가지고 올라와 자기 주소가 지하로 되어 있지 않으니, 자기네가 일층에 산다고 우리가 입을 맞춰주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주민등록상의 주소를 2층으로 분명히 했다. 일층여자가 쪼르르 창대자원에 달려가 자기네도 고발할 수 있다는 내 말을 전했다. 창대자원은 자기네도 정말 고발당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고 했다며 일층여자가 전했다. 바보 같은 일층여자. 나보다 더 멍청해 보였다. 이 날은 13번지 사람들이 서로 ‘쌩까지’ 않았다.  
      7월 29일: 민원처리에 대한 일차 답변이 왔다. 환경담당이 나왔다 갔다(그 결과 이틑날 이른 새벽부터 자원들의 거친 몸부림이 있었다.), 도시건축과 도시행정 담당이 나가 증거확보를 위한 사진 촬영을 나올 것이고, 2종 주거지역(더구나 창대자원으로부터 백미터도 안 된 위치에 유치원이 있다)에 고물상이 영업할 수 없다는 법에 따라 창대자원이 들어오기 전의 상태대로 원상복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햐-아, 숨통이 트여왔다. 나는 일층과 지하에게 창대자원이 날뛸 테니 낮에는 피해 있으라 전했다. 그런데 나갔다가 그날 밤 함께 들어 온 일층과 지하가 퇴근하는 아내를 보고 다시 ‘쌩까기’ 시작했다. 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7월 31일: 창대자원은 여전히 건재하다. 8시 30분에 문을 여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게 전과 다름없다. 폭염에도 자원들의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다시 주인이 우리를 부른다.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하란다. 공무원 나오면 살림하는 게 뻔한 지하를 어떻게 창고로 속일 수 있겠나, 또 공무원이 속아 넘어가겠느냐였다. 만약의 경우 창대자원이 고발하면 지하는 쫓아낼 수 없으니 벌금을 내고 계약기간 동안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짐을 넣은 창고는 부수겠다고 한다. 분명 계약서에는 그 시설 일체가 포함되었다. 그게 없었다면 이리로 이사 오지 않았을 터였다. 괘씸했다. 그러니까 당신네가 참지, 왜 들쑤셔서 이 꼴로 만들어, 그런 뜻이었다. 나는 그 동안 13번지를 위해 수집한 정보와 수습 방안을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맘대로 하쇼. 당신들이 벌금 내든 말든 난 상관 안 하니까 맘대로 해보쇼. 나도 짐 못 빼. 계약에 있는 대로 할 테니 어디 두고 보쇼.” 내 어투도 창대자원 남자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갑작스런 내 어투에 실린 통고가 주인네를 놀라게 했나 보았다. 그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난 한마디 덧붙였다. “당신 말대로 이제 ‘쌩깝시다’!”  그때 지하여자가 뛰어 들어오더니 나와 아내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가만 있으면 됐는데 당신네가 전부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냥 빠져주면 될 일이지, 왜 위세를 부려 들쑤셔 놔.” “아니, 그럼 고물상 소리는 우리 집이 제일 시끄럽게 들리는데 어떻게 살아요?” 아내가 항변했다. 그때 내 생각으로는 아내가 당해 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나는 거칠게 쏘아 붙였다. “아니 배우고 안 배우고가 무슨 상관이요? 사람이 죽겠는데. 그럼 안 배우면 막 불법 저지르고, 남이야 죽는다고 해도 제 잇속만 챙겨도 된단 말입니까?” “뭘 그렇게 잘난 척 해요? 주인집이랑 난 못 배워서 몰라요. 남이 죽든지 말든지.” “뭐요, 모른다구요? 진짜 말해 볼까요? 입 다물고 있으니까. 아주머니도 다 알고 들어온 것 아닙니까? 13번지 등기가 12월 12일인가 났는데 등기도 나기 전에 계약하고 세를 살았다면 지하가 싸고 넓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니까 불법시설에 알고도 들어온 건 아주머니 맞잖아요. 어디다 화살을 돌립니까? 정 그러면 부동산중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어디다가 책임을 돌려! 지하도 불법시설이고 고물상도 불법이라 이 말이요.” 나는 씩씩대며 다시 ‘쌩까자’는 말을 뱉었다.
      8월 1일: 줄지은 리어카 주인들의 소리. “어찌 자기들만 산대. 지금이 몇 신데 문을 못 열게 해. 못된 것들!” “노인들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 보면 짠하지 않나?” 다섯 시 좀 넘으면 참새소리와 함께 우리 방안으로 사정없이 쳐들어오던 귀에 익은 음성들. 얼굴을 안 봐도 누군지 나는 다 안다. 우리와 지하는 서로 ‘쌩깠다’. 가끔씩 창 밖에서 지하여자와 창대자원 여자가 같이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층 주인 내외는 어정쩡하게 우리를 대한다. 물론 말을 섞지 않았다. 집세를 내야 하는 날이다. 그 돈을 내고 이 집에서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날 수도 없다. 그래도 집세를 냈다. 평상에서 두런거리는 지하와 일층의 대화로 미루어 두 집이 함께 장어구이를 먹고 온 모양이다. 분명 우리가 낸 월세를 가지고 보신을 했을 터였다. 
      8월 2일: 일요일이다. 역시 창대자원은 문을 열었다. 일층 주인 부부는 골프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한 시간 가량 소리들이 나더니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대낮에 갑자기 찾아 온 정적. 나는 베란다에서 그 고요와 진짜 주택가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휴일을 맞았다. 그런데 두 시간 지났을까. 창대자원의 트럭이 내는 엔진소리가 들린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창대자원 부부와 지하여자가 함께 내리는 것 아닌가. 지하여자의 손에는 선물박스 같은 게 들려있었다. 목사님,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함께 교회에 다녀오는 게 틀림없었다. 아마도 교회에서 서로의 안녕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겠지. 고물상을 보존케 해달라고. 지하를 보존케 해달라고. 나도 기도한다. 어서 저 소리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대문을 들어서던 지하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지하로 숨어든다. 다시 창대자원의 소리가 일요일을 들쑤시고 있다.   

      나는 계단에 서서 내 손에 쥔 칼을 바라본다. 저 창대자원을 향할, 그리고 13번지의 주인과 지하를 향할 번득이는 칼날을. 창대자원만 13번지 지하의 비밀을 아는 것도 아니다. 나는 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짚자. 이 모든 원인은 창대자원이다. 어디, 너희만 자원이냐. 나도 당당한 자원이다. 창대자원을 타도할 강력한 자원이란 말이다. 이제 ‘근수’를 알아채기 시작한 자원이란 말이다.

     

     

     5. 그날이 오면
      나는 시에서 알려준 기간을 가늠했다. 창대자원이 버틴다는 가정 아래 모든 절차가 끝나려면 네 달 가까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버틴다면 경찰에 고발이 들어갈 것이고 그게 집행되는 과정은 아직 모를 일이다. 그 가간이라는 게 가슴을 꽉 짓눌렀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날’을 기다린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 살 때 위층, 407호는 무지 시끄러웠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었는데 사내아이가 장난이 심했다. 밤에도 벽에 대고 공을 차고, 늘 쿵쿵 뛰어다니고 거기다가 개까지 길렀다. 부부 말고 할머니가 같이 살았는데 다리 한 쪽이 불편해서 늘 뒤뚱뒤뚱 거구를 움직였다. 그 소리가 대단했다. 다-다-다-당. 보폭이 잘다, 그건 사내아이다. 쿡-쿵-쿡-쿵. 이건 균형이 맞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는 할머니 소리. 쿵-쿵-쿵. 이건 그 집 부부가 내는 소리. 거기다가 툭하면 마늘을 빻는 소리. 그렇지만 이웃이라 어쩌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며 지나쳤다. 간혹 그 사내아이와 함께 갈 때면, 얘 좀 야단치세요. 얘가 늘 뛴다니까. 뭘-요, 자랄 땐 다 그렇죠. 저도 사내애만 둘 키웁니다. 나는 속에 없는 말로 얼버무리곤 했다. 어느 날 먼저 407호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그날이 올 것이라고. 할머니 말로는 12월 21일, 겨울방학하자마자 남매가 일 년 동안 미국으로 연수를 간다는 것이었다. 애들 아버지가 미국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동안만 참아줘요. 이거 미안해서.” “무슨 말씀을요. 아닙니다!” 잔뜩 신이 난 내 목소리는 높아졌다. 나는 그날을 기다렸다. 12월 21일. 가슴을 졸였다. 21일이 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소리는 계속되지 않는가. 뭔가 잘못된 걸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미국 간다는 말은 괜한 것이었나. 아니면 계획이 변경된 걸까. 변경되었다면 언제 가는 걸까. 아예 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맥이 풀렸다. 아예 21일에 대해 듣지 않은 것만도 못했다. 다-다-다-당, 왕-왕-왕, 다-다-다-당, 쿵-쿵. 나는 그 소리의 진원지 쪽을 절망에 찬 눈으로 올려보았다. 그런데 정말 한 달인가 만에 그날이 온 것이었다. 
      나는 창대자원이 타도되는 그날을 손꼽았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13번지 안에는 여전히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창대자원은 계고장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이층을 올려다보며 흘끔흘끔 눈치를 본다. 며칠 전부터 아들까지 나와 함께 일을 한다.  창대자원 아들은 골목에서 나와 마주치자,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 이렇게 사는 사람들 형편 좀 봐주시죠’, 라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니, 창대자원 아들은 외제차 푸조를 끌고 다닌다. 나도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빡빡하다. 흔들리면 안 된다. 저들의 애처롭게 표정 짓는 얼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저들은 자원을 통해, 아니 자원을 빌미로 내세워 자기들의 배만 채우고 있다. 나는 집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 대학생인 큰 아이도 학교도서관으로 아니면 알바를 하러 집을 빠져 나간다. 한창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작은 아이는 시립도서관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라도 되면 소리를 질러댄다. 아, 먼저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건 불가능한 소리다. 이 나라의 유용한 자원이 되지 못한 내 탓이다. 월세 내고 아이들 학비라도 내려면 케이블방송에서 쉬지 않고 내보내는 고금리의 대부 광고를 눈여겨보아야 하는 처지이다.
      쉬지 않고 들락거리는 리어카, 트럭. 자원 수집을 하는 노인들이 우리 이층을 원망스레 바라본다. 문 닫으면 저 리어카들은 어디로 가나. 어두운 얼굴로 들어와 나는 그런 소리를 했다. “저 노인들, 홍제자원으로 가면 되겠지? 근데 거기도 주택가라 뜯길 지도 몰라. 다른 시에서는 저런 고물상들을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열도록, 부지 같은 걸 제공했다는데 여기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빠, 왜 그러세요, 정말! 저 사람들 언제 우리 사정 봐줬어요? 죽든 말든 몰라요. 최소한의 우리 생존권이예요. 이중적인 말 마세요.” 아이들의 힐난. 다시 쇠를 메치는 우당탕탕 소리. 그래, 정말로, 타도해야 한다. 저 창대자원을. 나를 일깨우는 쇳소리들을 들으며 나는 흐트러졌던 전열을 다시 가다듬는다.      

      그렇게 8월 15일 광복절이 왔다. 창대자원은 변함없이 문을 열었다. 일층 부부와 지하여자가 함께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나는 창대자원의 소리에 맞서려 텔레비전의 소리를 크게 높여놓았다. 어디선가 광복절을 맞아 ‘심훈’의 시를 낭송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두둥실……” 그래 해방이다. 저 창대자원의 횡포에서 해방되리라. 나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넣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날이 오면, 그래 그날이 오면, 나도 창대해지리라. 그 날이 오는 순간을 그리는 그 때였다. 내 비장한 표정을 뚫고 속에서 다른 가사가 실린 멜로디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대학을 다니던 이십대에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데모를 준비하며 학생회에서 틀어대던 낯  익은 멜로디와 가사. 그때 자주 듣고 자주 부르던 ‘그날이 오면’이었다. 사회가 소란스러울 때였다. 하필 창대자원을 타도해야 할 이 시점에 대체 그 노래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이십여 년 잊고 살던 노래 아닌가. 그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 노래를 불렀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른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 사회에 유용한 자원도 아니고 또 제대로 된 무엇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다시금 내 자신에게 각인시켰다. 살아야 한다. 우리 가족도 살아야 한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해방을 기념하며, 그것도 70주년이라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창대자원은 우렁차게 쇳소리를, 힘찬 망치 소리를, 그리고 전기톱 소리를 냈다. 마치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라도 하듯 산소용접봉으로 노란 불꽃을 창대자원의 마당에 마구 튀겨댔다. 13번지 이층에 사는 우리는 해방의 기분을 누리기는커녕 저 창대자원의 압제에 쩔쩔맸다. 광복절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나는 어둠에 잠긴 13번지와 창대자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십여년 전 난 왜 ‘그날이 오면’을 되뇌었을까. 영원히, 아니 우리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어쩌면 ‘그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는 규제할 방도가 없다는 공무원들의 판에 박힌 답변이 ‘그날’ 위에서 서성댔다. 어둠 속에서 삐죽삐죽 날카롭게 솟은 자원들의 실루엣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저 위대한 자원들이 용트림하는 소리가 다가오는 새벽을 뒤흔들 것이었다. 이 나라의 자원이 되는데 2% 부족한 나는 어둠 너머 검푸른 하늘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편치 않은 광복 70주년의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 태 언(鄭泰彦):2008년 『문학사상』에 「두꺼비는 달빛 속으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2012년 대산창작기금수혜. 작품집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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