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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어중씨 이야기_원작 최영철/ 각색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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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중간한 어중씨의

    달밤환타지산책극

     

    어중씨 이야기

     

     

     

     

    원작-최영철

    각색-오세혁

     

     

     

     

     

     

    *이 희곡은 최영철 시인의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희곡 중간에 쓰이는 노래 가사들 또한 최영철 시인의 시를 재구성하였다. 도요무크에 실리는 희곡은 초고이며, 2016년 공연을 앞두고 계속 대본을 수정 보완할 예정임을 밝힌다.

     

     

    줄거리

     

    도야마을에 사는 어중씨.

    이 빠른 세상에

    어떻게든 느리게 살아보려다

    자꾸만 어중간해지는 어중씨가

    해가 뜨는 아침에 마님의 심부름을 나갔다가

    해도 밝고 꽃도 피고 바람도 불어서

    심부름은 뒷전이고

    느릿느릿 걷고 서고 앉고 누우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달은 뜨고

    마님의 심부름은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마님에게 주려고

    길에서 주운

    빗자루랑 털장갑이랑 장화를 들고 말이죠.

     

     

     

    등장인물

     

    어중씨

    마님

    코러스

     

    *코러스는 다역과 노래와 음악과 춤을 담당한다.

     

    무대

     

    도야마을에 있는

    어중씨네 집 마루.

    마루를 둘러싼 아름다운 길.

     

     

     

     

     

     

     

     

     

     

     

     

     

     

     

     

     

     

     

     

     

     

     

     

     

     

    #1 우리 서님 어중씨

     

     

    아침이다.

     

    코러스들,

    어중씨네 집 마루를 둘러싸고 앉아서

    도야마을을 이루고 있는

    온갖 아침의 소리들을 낸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닭소리, 강아지소리, 고양이소리 등등.

     

    그러다가, 빗소리

     

    마님, 마루에 서서 비를 보며

    노래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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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내린다

    하늘에서

    내린다

    물은 더 필요없다고

    내린다

    너희들 먹으라고 내린다

    땅이 맛있게

    받아먹는다

    오늘은 먹고 남아

    아래로 아래로

    보낸다

    여기도 되었다고

    쨍쨍 해편에

    돌려보낸다

     

    마님 : 우리 서님이 지은 시에요. 우리 서님은 시인이에요. 스님 말고 서님이요. 서님은 줄임말이에요. 무엇의 줄임말일까요? (관객들의 답을 듣고) 맞아요. 서님은 서방님의 줄임말이에요.

     

    어중씨, 느릿하게 걸어나와

    외출 준비를 한다.

    상당히 느릿하다.

     

    어중씨 : 마님, 버스 오려면 몇 분 남았죠?

    마님 : 10분이요. 서둘러요.

    어중씨 : 많이 남았네.

    마님 : (관객에게) 서님은 나를 마님이라고 불러요. 마님은 무엇의 줄임말일까요? 맞아요. 마누라님의 줄임말이에요.

    어중씨 : 마님, 버스 오려면 몇 분 남았죠?

    마님 : 8분이요. 좀 서둘러요.

    어중씨 : 많이 남았네.

    마님 : (관객에게)보시다시피 우리 서님은 아주 느려요. 아주 느긋해요. 시간도 잘 못 챙겨요. 버스시간도 내가 옆에서 말해줘야 알아요.

    어중씨 : 마님, 버스 오려면 몇 분 남았죠?

    마님 : 6분이요. 제발 좀 서둘러요.

    어중씨 : 많이 남았네.

    마님 : (관객에게) 보세요. 거북이가 형님 할 정도로 느려요. 염소들이 아부지 할 정도로 느긋해요. 이러다 갑자기.

    어중씨 : 마님, 버스 오려면 몇 분 남았죠?

    마님 : 5분 남았어요. 5.

    어중씨 : 어이구! 많이 안 남았네! 서둘러야겠네!

    마님 : 못 말려! 6분 남았을 때도 꾸물꾸물하더니 꼭 5분이 되서야!

    어중씨 : 1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인데요. 60초 동안 좋은 생각을 한 번 할 수도 있고, 콧노래를 한 번 부를 수도 있고, 그리고 (마님 볼에 입 맞추며) 마님한테 뽀뽀를 한 번 할 수도 있잖아요.

    마님 : (관객들 의식하며) 세상에, 아침부터, 누가 보면 어쩌라고.

    어중씨 : 보긴 누가 봐요. 이 아침에. (관객들 보며) 오늘 아침은 좀 많이 보네. 그럼 다녀올께요.

    마님 : 뭐뭐 사 오는지 기억하시죠?

    어중씨 : 그럼요. 그게, 아 그게, 그러니까 그게, 보자 보자 그게, 거참 그게

    마님 : 어이구, 갈대 빗자루!

    어중씨 : 맞다! 갈대 빗자루! 그거면 되요?

    마님 : 그거면 되요.

    어중씨 : 에이, 중요한 걸 빼먹었잖아요.

    마님 : 뭔데요?

    어중씨 : 붕어빵. 우리 마님이 가장 좋아하는 붕어빵.

    마님 : (흐뭇해서 관객에게) 우리 서님은 좋아하는 게 딱 두 가지에요. 하나는 시 쓰는 거. 다른 하나는 뭘까요? (관객 대답 듣고) 맞아요. 나에요. 호호호호.

    어중씨 : 근데 마님, 버스 오려면 몇 분 남았죠?

    마님 : 가만가만가만, 아이고! 1분 남았어요 1!

    어중씨 : 아이고! 1! 마님! 나 버스 타러 가요!

     

     

     

    #2 또 멈춰요. 어중씨.

     

    어중씨, 달린다.

     

    마님 : 너무 뛰지 마요! 넘어져요! (어중씨, 넘어진다.) 이미 넘어졌네. (관객에게) 괜찮아요. 버스 정류장이 마을 입구에 바로 있거든요. 이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탈 수 있어요. 서님이 가다가 딴 짓만 안 하면

     

    마님, 마루에 앉아 어중씨를 지켜본다.

     

    어중씨 : 괜찮아. 버스 정류장이 마을 입구에 바로 있으니까 이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마님 : 그렇지,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어중씨, 갑자기 멈칫

     

    어중씨 : 허어, 해가 참 밝네. 어찌 저리 밝지. 허어, 꽃이 피었네. 언제 피었지. 허어, 못 보던 강아진데, 어디서 왔지. 허어, 허어, 허어

    마님 : 안돼, 안돼, 버스, 버스, 버스으!

     

    버스기사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간다.

     

    어중씨 : 어어, 어어, 버스, 버스, 버스으! ……떠났네. 어쩌지, , 걸어가면 되겠네. 오히려 잘 됐네. 마님! 나 걸어갈께요!

     

    어중씨, 걷는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아주 즐겁게 걷는다.

     

     

     

     

    마님, 그 모습을 마루에서 바라보며

     

    마님 : 못 말려! 오늘도 어중간하게 외출 준비하다가 어중간한 시간에 나가서 어중간하게 걷다가 어중간하게 버스도 못 타고 어중간하게 걸어갔다가 어중간한 시간에 집에 오겠네! (관객에게) 오죽하면 우리 서님 별명이 어중씨에요. 세상을 하도 어중간하게 산다고 해서 어중씨!

     

    어중씨, 노래한다.

     

    <무위>

     

    그냥 하는 거 좋다

    고개 마루까지 가 보는 거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거 말고

    먹은 거 소화시키는 거 말고

    강물이 좀 불었나

    건너 마을 소들은 잘 있나 살피는 거 말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놓고 건들건들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놓고 건들건들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놓고 건들건들

     

     

    #3 우리 마을 어중씨

     

     

    어중씨 : (관객에게)) 읍내 장에 갑니다. 마님 심부름으로. 걸어서 가니까 참 좋네요. 난 걷는 게 좋아요. 하루종일 걸어도 안 질려요. 먼 길 가려면 차를 타야겠지만 가까운 길은 걸어다녀요. 차를 타면 너무 빨라요. 너무 빨라서 마주치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기 전에 지나쳐 버려요. 도야마을은 작아서 서로 다 알고 지내요. 그래서 인사가 아주 중요해요.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아주 힘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중씨와 마님이 인사한다.

     

    어중씨 : 안녕하세요. 이번에 마을로 이사온……

    마을 사람들 : ……흐음

     

    마을 사람들, 지나친다.

     

    마님 : 뭐죠? 왜 인사를 안 받죠?

    어중씨 : 어색해서 그렇겠죠. 우릴 처음 보니까. 계속 인사하면 달라지겠죠.

     

    마을 사람들이 또 지나간다.

     

    어중씨 : 안녕하세요. 이번에 마을로 이사온……

    마을 사람들 : ……아아

     

    마을 사람들, 또 지나간다.

     

    마님 : 또 인사를 안 받네요. 이 마을 이상해요.

    어중씨 : 그래도 흐음에서 아아로 바뀌었네요. 저 분들한테는 우리가 이상할 거에요. 이 깊은 시골에 갑자기 살겠다고 왔으니까. 계속 인사하면 달라지겠죠.

     

    마을 사람들, 또 지나친다.

     

    어중씨 : 안녕하세요. 이번에 마을로 이사온……

    마을 사람들 : ……아아,

     

    마을 사람들, 또 지나간다.

     

    마님 : 해도해도 너무하네. 인사도 안 받는데 언제까지 인사를 해요?

    어중씨 : 그래도 아아에서 아아, 네로 바뀌었네요.

    마님 : 난 모르겠어요. 꼭 친해져야 되요? 우린 어차피 농사도 안 지을 건데 그냥 적당히 모른 척 하고 살면 안돼요?

    어중씨 : 마님, 이 마을에는 편의점도 없고 반찬가게도 없고 철물점도 없어요. 이 마을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이 마을 사람들한테 구해야 되요. 감자가 필요하면 감자농사를 짓는 분한테 가야 되고, 톱이 필요하면 톱을 가진 분을 찾아가야 되요. 모른 척을 하면 절대 살아갈 수 없어요. 우리 계속 인사해요. 계속 인사하다 보면 흐음이 아아가 되고 아아가 아아, 네가 되고 아아,네가 안녕하세요가 될 거에요.

    마님 : 어느 세월에요.

     

    마을 사람들이 또 지나간다.

     

    어중씨 : 이번에는 마님이 인사해 봐요.

    마님 : 싫어요, 서님이 하세요.

    어중씨 : 안 되요. 마님이 해야 되요.

     

    어중씨, 마님을 민다.

    마님, 마지못해

     

    마님 : , 안녕하세요.

     

    마을 사람들,

    어중씨 부부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 사람들 : 네에! 안녕합니다!

     

    어중씨 부부, 감격해서

    거듭 인사한다.

     

    어중씨 부부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을 사람들 : 안녕합니다! 안녕합니다! 안녕합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하다가

     

    마을 사람들 : 그만 좀 인사해! 같은 마을 사람끼리 원!

     

    마을 사람들, 퇴장.

     

    마님 : 우리가 이제는, 같은 마을 사람이네요.

    어중씨 : 그래요, 같은 마을 사람. 인사 계속 하길 잘 했죠?

    마님 : , 그런데, 서님 지금 뭐하고 있어요?

    어중씨 : 아 맞다! 장에 가야지! 갈대 빗자루!

     

    어중씨, 뛴다.

    뛰면서

    어중씨를 스쳐지나가는

    꽃과 나무와 새와 들짐승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한다.

     

     

    코러스들이 노래한다.

     

    <바람의 노래>

     

    나는 비록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견딘 매화나무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나는 비록 새가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잃고 먼 하늘 헤맨

    소쩍새 소망이 헛되지 않게

    나는 비록 밥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찾아 온 눈밭을 들쑤신

    삵쾡이의 배고픔이 슬프지 않게

     

     

    #4 도망쳐요 어중씨

     

    어중씨 : (관객에게) 해가 중천이네. 좀 있으면 해가 질 테고, 그럼 달이 뜨겠네. 달이 뜨기 전에 장에 가야 할 텐데요. 장이란 해가 뜨면 개장이고 달이 뜨면 파장이니까요. 갈 수 있을 거에요. 지금처럼 조금만 서두르면. 가다가 마을 사람들만 안 만나면. 여기 마을 사람들은 조심해야 되요. 만나면 그냥 보내주는 법이 없거든요.

     

    한씨 아저씨가 술병을

    이씨 아줌마가 감자를

    오씨 할머니가 닭죽을

    박씨 할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저마다 손에 들고

    어중씨에게 흔들며 다가온다.

     

    한씨 아저씨 : 어이! 아우님!

    이씨 아줌마 : 봐요! 선생님!

    오씨 할머니 : 이봐요! 조카님!

    박씨 할아버지 : 이보게! 젊은 신랑!

     

    어중씨 : (관객에게) 마을 분들이에요. 부르는 게 다 달라요. 한씨 아저씨는 성이 같다고 아우님, 이씨 아줌마는 내가 선생을 했었다고 선생님, 오씨 할머니는 마을 살면 다 친척이라고 조카님, 박씨 할아버지는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고 젊은 신랑.

     

     

     

    한씨 아저씨 : 좋은 술 구했어! 한 잔 하고 가!

    이씨 아줌마 : 감자 쪘어요! 잡숫고 가요!

    오씨 할머니 : 닭죽 끓였어! 뜨고 가!

    박씨 할아버지 : 돼지 잡았어! 쳐먹고 가!

     

    어중씨 : 아니에요! 달 뜨기 전에 장에 가야 되요!

     

    한씨 아저씨 : 딱 한 잔만 하고 가!

    이씨 아줌마 : 딱 입만 잡숫고 가요!

    오씨 할머니 : 딱 한 술만 뜨고 가!

    박씨 할아버지 : 딱 한 점만 쳐먹고 가!

     

    어중씨 : 그걸 한 잔, 한 입, 한 술, 한 점씩 먹다간 해 다 지겠어요. 갈께요.

    한씨 아저씨 : 에이, 하고 가.

    이씨 아줌마 : 에이, 잡숴요

    오씨 할머니 : 에이, 뜨고 가

    박씨 할아버지 : 에이, 쳐먹고 가

    마을 사람들

    먹고 마실 것들을

    흔들어댄다.

     

    어중씨, 입맛을 다신다.

     

    어중씨 : , 그럼, 딱 한 잔, 한 입, 한 술, 한 점씩만 해 볼까.

     

    마루 위에서 바라보던 마님.

     

    마님 : 서님!

     

    어중씨 : 아이고, 마님. 아니에요. 안 먹어요. 나 장에 가요!

     

    어중씨, 도망친다.

    마을 사람들,

    먹고 마실 것을 흔들며

    쫓아온다.

    어중씨와 마을 사람들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어중씨,

    언덕 위까지 도망쳐서

    나무 뒤에 숨는다.

     

    마을 사람들, 어중씨를 찾지만

    찾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 : 이런! 못 찾겠군! 할 수 없지! 집으로 가자고!

     

    마을 사람들,

    우르르 어중씨네 집 앞에 와서

    먹고 마실 것들을

    담 너머로 휙휙 던진다.

     

    마님 : 아이고! 또 던지러 오셨네! 안되요! 우리 부부 다 못 먹어요! 어르신들 드세요!

     

    마님, 담 너머로 넘어오는 것들을 주워서

    다시 던진다.

    한동안 마을 사람들과 마님의

    던지고 받기의 공방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의 승리.

     

    마을 사람들, 만세를 부르며

    퇴장.

     

    마님 : 오늘도 졌네. 졌어. (잠시 생각하다가, 관객들에게) 참 고마워요. 우리가 농사 안 짓는다고 걱정이 많아요. 농사도 안 짓는데 맨날 쫄쫄 굶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만날 때마다 한 잔, 한 입, 한 술, 한 점이에요. 할 수 없지. 나도 슬그머니 내려놓고 와야지. (씨익 웃으며) 잘 안 팔리는 우리 서님 신작 시집.

     

    마님이 관객들에게

    어중씨의 신작 시집을 선물한다.

     

    마님 : 우리 서님 시가 참 좋아요. 들어보실래요?

     

    마님과 코러스들이

    노래한다.

     

     

    <노부부>

     

    늦은 밤 지하도 모서리 자리 펴고

    얻어온 것 서로 입에 넣어주며

    화려했던 한 시절 나누고 있는 부부

    집도 절도 사랑도 명예도 가고

    어디 소풍이라도 나온 듯

    부끄러움도 기다림도 남은 게 없는

    풍비박산의 시간을 베개 삼아

    조금 추운지 거짓말 같은지

    빙그레 껴안고 잠든

    두 개의 둥근 알

     

     

    #5 던져 봐요 어중씨

     

     

    어중씨,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어중씨 : 다들 갔겠지. 이제는 마음 놓고 다시 길을 가야지. 가만, 아까 뛰어서 그런가. 땀이 범벅이네. 할 수 없지. 강가에 가서 한바탕 씻어 볼까나. 달이 뜨기 전에만 길을 가면 되니까.

     

    어중씨, 희희낙락하며

    강가로 뛰어오는데

     

    어느 낮선

    등산복 차림의 사나이가

    천천히 강가로 걸어온다.

     

    어중씨 : 저 분은 누구신가. 낚시꾼? 캠핑족? 길을 잃었나?

     

    어중씨, 그 사나이를

    잠시 지켜보는데

     

    사나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강물에 던진다.

     

    어중씨 : 어이구? 핸드폰을 던지네?

     

    사나이, 가방을 열더니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을 꺼내서

    천천히 강물에 던진다.

     

    어중씨 : 어이구 저런! 저걸 다 강물에! 여보세요! 잠시만요!

     

    어중씨, 사나이에게 다가온다.

     

    어중씨 : 처음 뵙는 마당에 죄송하지만, 그 물건들 왜 다 강물에 던지시나요?

     

    사나이, 어중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사나이 :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핸드폰이며 노트북이며 온갖 비싼 것들을 강물에 버리는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분명히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구요. 저 귀한 것들을 왜 버리냐고.

    어중씨 : 아닌데요. 귀한 줄은 잘 모르겠고, 강물에 던지면 강이 오염되잖아요.

     

    사나이. 깜짝 놀란다.

     

    사나이 :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까?

    어중씨 : 단지 그 이유라니요. 강물이 오염되는데. 강물이 오염되면 물도 못 마시고 멱도 못 감고 조용히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지도 못하잖아요. 얼마나 아까워요.

    사나이 : 스마트폰은 안 아깝구요? 노트북은? 아까 던진 저 물건들은?

    어중씨 : 글쎄요. 어떤 사람들에겐 아깝겠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사나이 : 안 갖고 싶으세요? 강물에 던진 저 물건들을?

    어중씨 : 글쎄요. 제가 워낙 서투르고 어중간한 사람이 되놔서 스마트폰이니 뭐니를 갖게 되면 분명 사고를 치게 될 것 같아요. 뭘 잘못 눌러서 요금이 많이 나온다던가. 사고를 치느니 안 갖고 있는 게 낫죠. 그래서 전 스마트폰이 없어요.

     

    사나이, 어중씨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사나이 : 실례지만, 철학자라든가, 스님이나 목사님이라든가 도를 닦는 분이십니까.

    어중씨 : 아닌데요. 전 그냥 여기 도야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인데요.

    사나이 :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으실 수 있죠. 남들 다 갖고 싶어하는 걸 안 갖고 싶으시다니.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시겠다니. 대단하십니다.

    어중씨 : 어이구, 전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제가 이 빠르고 똑똑한 세상에 적응을 못 하니까 알아서 느리고 헐렁하게 살려고 하는 거에요. 전혀 대단하지 않아요.

     

    남자, 갑자기 주저앉아서

    엉엉 운다.

     

    어중씨 : 이런, 나이도 지긋하게 잡수신 분이 무슨 설움이 그렇게, 별 수 있겠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크게 울어도 되요. 강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못 들어요.

     

    사나이, 그 말을 듣고

    정말로 대성통곡하며 운다.

     

    어중씨, 우는 남자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잠시 후,

    사나이가 울음을 그치고

    사나이 : 다 버리려고 했어요. 제가 가진 모든 걸. 물건들을 다 던진 다음에는 이 가방에 든 돈을 모조리 던지려고 했어요.

    어중씨 : 무엇 때문에요?

    사나이 :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렸거든요.

    어중씨 : 그게 뭔데요?

    사나이 : 우리 집사람이요.

     

    음악이 흐르며

    사나이의 이야기가

    인형극으로 펼쳐진다.

     

    사나이 : 저는 부자가 되고 싶었어요. 집사람을 사랑했거든요. 얼른 돈을 벌어서 집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죠. 돈을 열심히 벌었어요. 안 해 본 장사가 없었어요. 집사람하고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집사람한테 말했죠. 우리가 겪을 행복을 조금만 더 미루자고. 지금 정신없이 일해서 나중에 행복해지자고.

    어중씨 : 그래서 행복해지셨나요?

    사나이 : 조금만 더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그 바로 직전에 집사람이 세상을 떠났어요. 우울증이었대요. 유서를 써 놓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요. “여보 미안해요. 당신은 꼭 행복하세요

     

    두 남자,

    잠시 동안 말이 없다.

     

    어중씨 : 자녀분들은요?

    사나이 : 어릴 때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어요. 지금은 거기서 결혼도 하고 국적도 바꿨어요. 연락이 거의 안되요. 그 아이들은 행복하겠죠.

     

    두 남자, 다시 말이 없다.

     

    사나이 :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어중씨 : 그럼요.

    사나이 : 제가 지금부터 이 돈을 강물에 다 던져버리려고 하는데, 눈 감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중씨 : 아니요.

    사나이 : 왜요? 강물이 오염되서요?

    어중씨 : 아니요.

    사나이 : 그럼요?

    어중씨 : 돈을 강물에 다 던져도, 선생께서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요. 선생 팔만 아플 것 같아서요.

     

    사나이, 다시 말이 없다.

     

    사나이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중씨 : 그 돈은 그대로 두세요. 돈을 가지고 다니다가 꼭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조금씩 주세요. 그리고 저 강물에는 선생이 버리고 싶은 마음들을 던져 버리세요.

    사나이 : 마음을 던지라구요? 어떻게요?

    어중씨 : 그거야 쉽죠. 이렇게. (강물에 던지는 시늉을 하며) ! ! ! !

     

    사나이, 어중씨가

    강물에 열심히

    던지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자신도

    함께 던지는 시늉을 하기 시작한다.

     

    사나이 : ! ! ! !

     

     

     

    한참 동안

    두 중년 남자가

    강물에 열심히

    던지는 시늉을 하고

    기분 좋게 헉헉거린다.

     

    사나이 : 땀이 범벅이네요. 오랜만이네요. .

    어중씨 : 그럼 씻어야죠. 강물에.

     

    어중씨, 사나이에게 물장난을 친다.

    사나이, 똑같이 물장난을 친다.

     

    어중씨와 사나이

    한참동안 물장난을 치며

    시원하게 물로 범벅이 된다.

    사나이 : 강물에 버리고 가니 좋네요. 전 이제 가겠습니다.

    어중씨 : 어디로요?

    사나이 : 계속 걸어야죠. 걷다가 만나는 사람 중에, 이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건네줘야죠. 이 돈을.

    어중씨 : 좋네요.

    사나이 : 선생한테도 조금 드릴까요?

    어중씨 : 어이구, 마님이 심부름 하라고 준 돈도 잃어버릴까 봐 고민인데 그 돈까지 받으면 난리나요.

    사나이 : 그러실 줄 알았어요.

     

    사나이, 어중씨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강가에 난 길을 따라

    저 멀리 사라진다.

     

    어중씨 :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잘 가겠지. 잠시 배웅을 좀 해줄까. 언덕 위에 올라서. 마님 심부름은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달이 뜨기 전에만 가면 되니까.

     

    어중씨, 언덕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간다.

     

    코러스들이 노래한다.

     

     

    <돌돌>

     

    순한 것들은 둥글게 말려서 돌돌돌

    죽을 때가 가까우면 순하게 돌돌돌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 꿇는 것

    엊그제 떨어진 잎이 돌돌돌

    저 건너건너 밭고랑

    호미를 놓친 노인 돌돌돌

    돌돌 말린 등으로

    수레가 구르듯 세 고랑을 돌돌돌

    구부러진 호미 들고

    호미처럼 구부러지며 돌돌돌

    고랑에 돌돌 말려

    고랑 끝에 다다른 노인 곁에

    몸을 둥글게 만 잎들이 돌돌돌

     

     

    #7 내 친구 어중씨

     

    언덕 꼭대기에

    어중씨의 옛 제자

    영철이 누워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영철 : ……? 선생님? 보바 선생님?

    어중씨 : ……너는, 영철이구나?

    영철 : 우와, 그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어중씨 : 그래, 그때 이후로 처음이구나.

     

    어중씨와 영철

    갑자기 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어중씨 : 손 들어 이 녀석아! 너 왜 학교에 안 왔어? 어제도 안 오고 그제도 안 오고!

    영철 : 죄송합니다.

    어중씨 : 죄송하단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왜 안 왔는지 듣고 싶은 거지.

    영철 : 말 안 할래요.

    어중씨 : ?

    영철 : 학교에 안 온 이유요. 진짜로 말했다가 더 혼날까 봐요.

    어중씨 : 듣고 나서 사정이 이해가 가면 혼내지 않을 거야.

    영철 : 좋아요. 아침에 학교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비가 왔어요.

    어중씨 : 그래서?

    영철 : 기분이 슬퍼졌어요. 비가 오니까. 그래서 마루에 가만히 앉아서 비 오는 걸 계속 바라봤어요.

    어중씨 : 뭐야? 그럼 그저께는 왜 안 왔어?

    영철 : 날이 너무 맑아서요. 햇살이 너무 눈부셨어요. 기분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마루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햇살을 온 몸으로 맞았어요.

    어중씨 : ……

    영철 : 절 혼내실 거죠?

    어중씨 : ……, 솔직히, 이해는 못 하겠다.

    영철 : 그럼 혼내시는 거죠?

    어중씨 : 하나만 묻자. 그때, 비를 맞고 햇살을 쬐면서, 진짜로 슬프고, 진짜로 행복했니?

    영철 : .

    어중씨 : , 잘 모르겠구나. 혼내얄지 말아얄지.

    영철 : 정말로요? 이번에 안 혼나면 저는 또 학교에 안 나올 수도 있는데요?

    어중씨 : , 그래도 잘 모르겠구나. 혼내얄지 말아얄지.

    영철 : 우와, 선생님, 애들 말이 맞았네요. 보바 선생님.

    어중씨 : ?

    영철 : 그런 게 있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화를 내며 등장.

     

    교감 : 한 선생! 무단결석 학생을 왜 안 혼내는 겁니까!

    어중씨 : 정말로 슬프고, 정말로 행복했다는데, 어떻게 혼냅니까.

    교감 : 한 선생이 그렇게 무르게 구니까 애들이 한 선생을 보바선생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요!

    어중씨 : ? 보바 선생이요?

    교감 : 몰랐어요? 전교생이 그렇게 불러요! 보바 선생이라고!

    어중씨 : 보바가 뭐죠?

    교감 : 허허, 거참, (관객들에게) 여러분은 알죠? 보바가 뭘까요? 그렇죠. 바보. 바보를 거꾸로 해서 보바 선생이라 부른단 말요!

    어중씨 : 이야, 듣기 좋은데요, 보바 선생.

    교감 : 허허, 이렇게 물러서야. 아무튼 무단결석 학생은 엄하게 다뤄야 됩니다. 정학조치를 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어중씨 : 말도 안돼요! 그깟 학교 며칠 빠졌다고 정학이라뇨!

    교감 : 어허! 그깟 학교라니! 학교교육의 근본을 부정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당장 정학조치를 하세요!

     

     

     

    어중씨 : 가끔 학교 나오는 대신에 비도 맞고 햇살도 쬐고 이래도 되는 거 아닌가요?

    교감 : 어허, 한 선생! 선생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구만!

    어중씨 : , 그렇구나. 난 선생의 자질이 부족하구나.

    교감 : ……?

    어중씨 : 교감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선생인 저도 가끔 학교에 오기 싫은데 학생들은 얼마나 오기 싫겠어요. 그런데도 저는 저를 속이고 학생들한테 학교에 나오라고 하다니. 전 선생의 자격이 없어요. 전 오늘부로 그만두겠습니다.

    교감 : ……?

    어중씨 : (뛰쳐나가며) 마님! 짐 싸요! 저 학교 그만 갈래요! 우리 시골 가서 살아요!

    교장 : , 이봐요! 이봐요 한 선생!

     

    현실로 돌아온다.

     

    영철 : 와아,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셨다구요?

    어중씨 : 그래, 부끄럽지만

    영철 :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학교 가기 싫은 건 똑같나 봐요.

    어중씨 :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건 아냐. 훌륭한 선생님들이 훨씬 많아. 내가 이상한 거지.

    영철 : 저두요. 모범적인 학생들이 훨씬 많은데, 저만 이상해요.

    어중씨 : 이상한 선생 제자끼리 드디어 만났네. 어떻게 지냈니?

    영철 : 저는 저 산 너머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녀요. 저처럼 이상한 애들이 많아요. 왕따를 당했던 애도 있고, 가출을 밥 먹듯이 했던 애도 있고 손목에 칼을 몇 번이고 그었던 애도 있고.

    어중씨 : 저런, 서로 친하니?

    영철 : 걔들끼리는 안 친한데 저랑은 다 친해요.

    어중씨 : 그래? 어떻게 친해졌니?

    영철 : 물어봤거든요. 왜 왕따를 당했고, 왜 가출을 했고, 왜 손목에 칼을 댔는지. 선생님이 왜 학교에 안 왔는지 물어봐 주셨던 것처럼.

    어중씨 : ……옛날 얘기는 그만하자. 재미 없다.

    영철 : 맞아요. 재미없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중씨 : 난 이 마을로 이사왔어.

    영철 : 이사를요? 왜요?

    어중씨 : 조용히 살고 싶어서.

    영철 : 이 마을은 어떻게 아셨어요?

    어중씨 : 나랑 우리 집사람이랑 조용한 마을을 찾아 보기로 했지. 차를 타고 무작정 달리고 달리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안 오는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달리고 달렸지. 달리다 보니 길을 잃었어. 길을 잃어도 계속 달리고 또 달렸어. 그러다 보니 강이 하나 나오더구나. 작고 예쁜 강이었어. 그 강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어. 그러다 보니 마을이 나오더구나. 작고 예쁜 마을이었어. 그래서 차를 팔고 여기에 남았어.

    영철 : 무작정 달리고 달리셨다구요?

    어중씨 : 그래.

    영철 : 역시, 선생님은, 진정한 보바 선생님이에요.

    어중씨 : 근데 영철아, 난 이제 선생이 아닌데 선생님이라 부르니 좀 그렇다.

    영철 : 그럼 뭐라고 부르죠? 아저씨?

    어중씨 : 그건 좀 아닌데

    영철 : 삼촌?

    어중씨 : 삼촌도 좀

    영철 : ?

    어중씨 : 얌마.

    영철 : 그럼 선생님, 저희 그냥 친구 할까요?

    어중씨 : 친구?

    영철 : , 저도 학교 가기 싫어하고 선생님도 학교 가기 싫어하니까 친구하기 딱이잖아요.

    어중씨 : 듣고 보니 그렇구나.

    영철 : 저 사실 오늘도 학교 안 갔어요.

    어중씨 : 뭐야? 이 녀석이.

    영철 : 대신에 친구가 한 명 생겼잖아요.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

     

    영철, 웃는다.

    어중씨도 웃는다.

     

    영철 : 친구가 된 기념으로 비료푸대 경주 할까요?

    어중씨 : 잠깐, 근데 내가 어디에 가고 있었는데

    영철 : 어디를요?

    어중씨 : 그게, 뭐였더라. 에라 모르겠다. 일단 놀자! 놀다 보면 생각나겠지!

     

    어중씨와 영철

    비료푸대를 타고

    신나게 경주를 한다.

    경주를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외친다.

     

    영철 : 정말 신나요! 비료푸대가 계속 달리고 달려서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았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보고 싶어요!

    어중씨 : 나도 신나는구나! 영철아!

    영철 : !

    어중씨 : 이 세상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보고 싶다면!

    영철 : !

    어중씨 : 그렇다면!

    영철 : !

    어중씨 : 때때로 공부도 열심히 해 두면 좋을 거야!

    영철 : !

    어중씨 : 공부를 가르쳐 주는 곳은 학교일 테고!

    영철 : !

    어중씨 : 학교를 좀 더 좋아해 주면 좋겠어! 친구로서!

    영철 : 좋아요! 친구의 부탁이라면!

     

    어중씨와 영철의 비료푸대가

    거침없이 달린다.

     

    그들의 상상 속에서

    비료푸대가 하늘로 떠오른다.

     

    어중씨와 영철이 노래한다.

     

    <우짜노>

     

    , 비 오네

    자꾸 비 오면

    꽃들은 우째 숨쉬노

    젖은 눈 말리지 못해

    퉁퉁 부어오른 잎

    자꾸 천둥 번개 치면

    새들은 우찌 날겠노

    노점 무 당근 말린 자리

    흥건히 고인 흙탕물

    몸 간지러운 햇빛

    우째 기지개 펴겠노

    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

    골대만 꼿꼿이 선 운동장

    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

    우째 먼 길 가겠노

     

     

     

     

     

    비료푸대가

    땅으로 내려앉는다.

     

    어중씨와 영철

    땅바닥에 드러눕는다.

     

    어중씨 : 달이 뜨네. 달 참 예쁘네. 가만, 달 뜨기 전에 어디를 갔다와야 되는데, 달 뜨기 전에 뭐를 해야 되는데, 그게 뭐지. 그게 뭘까.

     

    어중씨, 그대로

    기분좋게 잠든다.

    영철, 그런 어중씨를 바라보다가

     

    영철 : ……선생님, 고맙습니다.

     

    영철, 건너편 마을로

    천천히 걸어간다.

     

    #8 이야기꾼 어중씨

     

    어중씨는 계속

    기분 좋게 잠들어 있다.

     

    저 멀리서

    사람이 아닌

    한마디로

    도깨비 같은 어떤 것들이

    어중씨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도깨비1 : 이봐, 일어나.

    어중씨 : 아니요. 난 잘 거에요.

    도깨비2 : 잘 때가 아니야. 일어나.

    어중씨 : 달빛이 이리 좋은데 어떻게 일어나요. 잘 거에요.

    도깨비3 : 할 말이 있어. 일어나.

    어중씨 : 할 말은 다같이 한숨 잔 다음에 하죠. 다들 주무세요. 가만, 이 밤중에 누가 날 불러?

     

     

    어중씨, 천천히 눈을 뜨다가

    깜짝 놀란다.

     

    어중씨 : 세상에! 누구세요? 사람은 아니죠?

    도깨비1 : 그래, 우린 사람이 아니야.

    어중씨 : 그럼, 누구세요?

    도깨비2 : 글쎄, 우린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있는 것도 아닌 존재랄까.

    도깨비3 : 원래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데, 누군가가 오랫동안 우릴 아껴줘서 뭔가 살아있는 것처럼 돼 버렸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살아있는 건 아닌, 뭔가 상당히 어중간한 존재야.

    어중씨 : 아아, 그런 존재시군요.

    도깨비1 : 이상한 친구네. 우리가 안 무서워?

    어중씨 : 무섭긴요. 친근한데요.

    도깨비2 : 우리가 친근해?

    어중씨 : 사실 저도 상당히 어중간하거든요. 어중간하다고 해서 별명이 어중씨에요.

    도깨비들 : 뭐어? 어중씨? 이야! 웃긴다!

     

    도깨비들, 한동안 웃는다.

     

    어중씨 : 그런데, 어중간하신 여러분들이 어중간한 저한테 무슨 볼일이신가요

    도깨비3 : 그게 말야. 우리가 사정상 이 곳에 한동안 있었거든.

    도깨비2 : 그러다 보니 상당히 심심해. 만나는 이도 없고 찾는 이도 없어서 말야.

    도깨비1 : 우리는 재밌기를 원해. 오랫동안 심심했으니까.

    어중씨 : 재미, 재미라. 글쎄요. 아시다시피 전 상당히 어중간한 인간이라.

    도깨비3 : 이거 실망인 걸. 오랜만에 재밌을 줄 알았는데.

    도깨비2 :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어중씨는 하는 일이 뭐야?

    어중씨 : 저는 뭐, 시라는 걸 쓰기도 하고,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도깨비들 : ? 이야기?

    도깨비1 : 우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게 이야기야! 이야기 한 토막 해 줘!

     

    도깨비들, 멍석과 병풍을 세워서

    이야기판을 벌린다.

    어중씨, 멍석에 앉는다.

     

    어중씨 : , 그러니까, 하나만 해 보자면, 옛날 한 스님이 혼자 산을 넘다 도둑을 만났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가진 것은 물론 옷까지 다 벗어주었는데 도둑은 내가 사라질 때까지 꼼짝 하지 말라며 장난삼아 근처의 풀을 당겨서 스님을 꽁꽁 묶었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그걸 헤치고 나오면 그만이었겠지만 풀이 다칠까 봐 스님은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었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한참 뒤 지나가던 사람이 스님을 풀어 주었지만 스님은 제 몰골은 아랑곳 않고 풀이 다친 데는 없는지 한참을 살폈대.

     

    어중씨, 도깨비들 반응을 살핀다.

     

    도깨비1 : 에이 뭐야, 바보 스님 이야기잖아.

    도깨비2 : 근데 좀 재밌다. 뭔가 교훈도 있고.

    도깨비3 : 근데 뭔가 좀 싱겁다. 서운하고. 이야기 하나 더 듣자.

     

    어중씨,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어중씨 : 누더기를 얻어 몸에 걸친 스님이 한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했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불쌍히 여긴 주인이 부엌으로 간 사이 집오리가 제 주인이 만지던 옥구슬을 냉큼 삼키고는 포식이라도 한 듯 뒤뚱뒤뚱 광으로 사라졌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먹을 걸 가져온 주인은 조금 전까지 자기가 만지던 옥구슬이 없어진 걸 알고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며 스님을 광에 가두었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주인이 재차 닥달해도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구슬을 안 내놓으면 스님의 배를 갈라서라도 확인하겠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스님은 오히려 밤새 배앓이를 하는 집오리의 배를 어루만져 주었대.

    도깨비1 : 이해가 안가네. 오리가 먹었다고 말하면 되지. 답답한 스님.

    도깨비2 : 그럼 집주인이 오리의 배를 가를 거잖아. 스님은 오리를 살리려던 거야. 착한 스님.

    도깨비3 : 그래서 스님은 어떻게 되었어?

    어중씨 : 다음날 오리가 똥을 누었고, 거기서 옥구슬이 나왔대.

     

    어중씨, 도깨비들 반응을 살핀다.

     

    도깨비1 : 에이 뭐야, 또 바보 스님 이야기잖아.

    도깨비2 : 이번에도 재밌어. 교훈도 있고.

    도깨비 : 근데 이번에도 뭔가 시원하지 않고 뭔가 서운한 이유는 뭐지?

     

    도깨비들, 한참 생각하다가

     

    도깨비1 : 맞다. 그 스님은 옛날 사람이야. 만난 적도 없어.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재미도 없고 생생하지도 않아.

    도깨비2 : 맞다. 아는 사람 이야기를 듣자. 자네, 자네는 대체 누구야?

    도깨비3 : 맞다. 자네, 자네 이야기를 해 봐.

     

    도깨비들 자네 자네 자네를 외친다.

     

    어중씨 : , 나는 그리 재밌는 사람이 아닌데. 늘 어중간하고.

     

    도깨비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외친다.

     

    어중씨, 고민하다가

    운율을 넣어

     

    어중씨 : 어중간한 어중씨가 어느날 저녁에 술을 마셨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어중간하게 술을 먹고 어중간하게 술 취해서 어중간하게 길을 나섰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어중간하게 비틀대다가 어중간하게 발을 헛디뎌서 어중간하게 굴러떨어졌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어중간하게 다쳐서 어중간하게 병원을 가서 어중간하게 치료를 받았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어중간한 어중씨가 어중간하게 누워서 하루이틀삼일사일 계속 시간이 갔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그러던 어느 날, 어중간한 어중씨가 퇴원을 했는데, 몸이 옛날같지 않았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머리를 다쳤는지 다리를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자꾸 느려졌대. 걸음도 느려지고 행동도 느려지고 생각도 느려지고 말도 느려지고.

    도깨비들 : 옳지! 그래서?

    어중씨 : ……, 좋았대.

    도깨비들 : 으응?

    어중씨 : 옛날엔 너무 빨랐대. 걸음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 생각도 빠르고 말도 빠르고. 그래서 늘 급하고 바쁘고 화가 나고 싸웠대.

    도깨비들 : 옳지!

    어중씨 : 근데 느려지니까 너무 좋았대. 걸음이 느리니까 주변을 둘러볼 수 있고, 행동이 느리니까 여유가 생기고, 생각이 느리니까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말이 느리니까 말 실수를 안하고.

     

    어중씨, 도깨비들을 살핀다.

     

    도깨비들 : 우와, 우와, 우와, 재밌다아!

    도깨비1 : 자네 이야기, 너무 재밌어.

    도깨비2 : 자네 이야기를 해주니까 자네가 이해됐어. 자네가 좋아졌어.

    도깨비3 : 고마워, 자네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어중씨 : 다행이네요. 전 참 재미없는 사람인데.

    도깨비들 : 아니야! 자네는! 재미난 사람이야!

    어중씨 : 그런데, 도깨비님들은 어떤 분들이셨습니까?

    도깨비들 : …………?

    도깨비1 : 글쎄, 우리가 어떤 분들이었지.

    도깨비2 :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우리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거.

    도깨비3 : 그래, 맨날 무섭다고 도망치기만 했지.

    어중씨 : 제 이야기 해 드렸으니 도깨비님들 이야기도 해 주셔야죠. 제가 잘 들어드릴께요.

     

    도깨비들, 망설이다가.

     

    도깨비1 :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느 마을에 흉년이 들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1 : 그 중에서 한 가족은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1 : 그 집에는 늙은 어머니가 있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1 : 아들은 고민 끝에 어머니를 지게에 이고 산을 올랐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1 : 산 깊은 곳에 도착한 아들은 어머니를 내려놓고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그랬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1 : 늙은 어머니는 산 속 깊은 곳에서 아들을 기다렸대. 아들은 오지 않았대.

    다같이 : ……

    도깨비1 : 그 늙은 어머니가 바로 나야.

     

    모두들, 잠시 말이 없다.

     

     

    도깨비2 :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욕심 많은 부자가 있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마을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 부자네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그 부자는 커다란 저수지도 가지고 있어서 모두들 그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지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그러던 어느 날, 가뭄이 와서 땅이 말라가고 있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마을 사람들이 부자를 찾아가서 저수지 물을 열어 달라고 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부자는 밀린 소작료를 내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겠다고 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이 달 안에 밀린 돈을 내지 않으면 이자를 두 배로 올린다고 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마을 어르신이 찾아가서 빌었더니 부자는 그 어르신을 멍석에 말아서 두들겨 팼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들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부자네 집에 쳐들어갔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곳간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주고, 저수지 물을 열어서 땅을 흠뻑 적셨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다음 날, 나라에서 온 병사들이 마을로 쳐들어와서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2 : 그리고 어르신의 아들을 끌고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대.

    다같이 : ……

    도깨비2 : 그 아들이 나야.

     

    모두들, 잠시 말이 없다.

    도깨비3 :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나라에 전쟁이 났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이쪽 군대가 마을로 오더니, 마을 젊은이들이 저쪽 군대에 협력했다며 모조리 밧줄로 묶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그 젊은이들은 밧줄로 묶인 채 산 속 깊은 곳으로 끌려갔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그 젊은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며칠 후에, 이번에는 저쪽 군대가 마을로 오더니, 마을 젊은이들이 이쪽 군대에 협력했다며 모조리 밧줄로 묶었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그 젊은이들은 밧줄로 묶인 채 산 속 깊은 곳으로 끌려갔대.

    다같이 : 옳지!

    도깨비3 : 그 젊은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대.

    다같이 : ……

    도깨비3 : 그 젊은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나야.

     

    모두들, 잠시 말이 없다.

     

    어중씨 : 괜히 미안하네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도깨비1 : 아니야. 너무 좋았어. 고마워. 우리한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도깨비2 : 선물을 주고 싶어. 뭘 주면 좋을까?

    어중씨 : 글쎄요. 선물을 바란 건 아닌데.

    도깨비3 : 그래도 말해 봐. 꼭 주고 싶어.

    어중씨 : , 그러면, 우리 마님이, 나보고 장에 가서 사 오라고 한 게 있는데, 어쩌다 보니 못 샀어요. 그걸 주실 수 있다면

    도깨비1 : 뭐든 줄 수 있어! 그게 뭔데?

    어중씨 : , 갈대, 갈대 뭐였더라.

    도깨비2 : 갈대?

    어중씨 : 집에서 쓰는 거라던데. 꼭 필요하다고.

    도깨비3 : 집에서 쓰는 거? 꼭 필요한 거? 갈대로 만든 거?

    도깨비들 : 혹시? 갈대 빗자루?

    어중씨 : 맞아요! 갈대 빗자루!

    도깨비들 : 그리고 또?

    어중씨 : , 겨울 오면 마님 손 시렵지 말라고 털장갑 사 주려 했는데

    도깨비들 : 그리고 또?

    어중씨 : , 여름 오면 장마철에 마님 발 젖지 말라고 장화 사 주려 했는데

     

    도깨비들, 환호한다.

     

    환호하면서

    한동안 춤을 춘다.

     

    도깨비들, 한동안 춤을 추다가

    갑자가 연기가 펑 하더니

    도깨비들은 사라지고

    낡은 갈대 빗자루 하나

    낡은 털장갑 한 켤레

    낡은 장화 한 켤레가 덩그라니 있다.

     

    어중씨, 빗자루와 털장갑과 장화를

    소중하게 들어올린다.

     

    어중씨 : 선물, 고마워요. 오래오래 아껴줄께요. 절대 버리지 않을께요.

     

    #9 춤을 춰요 어중씨

     

    어중씨, 물건들을 들고

    집으로 간다.

     

    마루 위에

    마님이 앉아서

    어중씨를 기다리고 있다.

     

    마님 : 이른 아침에 나가서 한밤중에 돌아왔네요. 우리 서님 심부름 한 번 참 잘하시네요.

    어중씨 : 이유가 있었어요. 그게

    마님 : 뻔하죠 뭐. 꽃에 취하고 바람에 취하고 해에 취하고 달에 취하고 사람들한테 취하다가 버스도 못 타고 장에도 못 가고 그저 내키는대로 걷다가 이제야 돌아왔겠죠.

    어중씨 : 역시 우리 마님이에요.

    마님 : 내가 이런 서님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중씨 : 맞아요. 나도 마님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그 이유를 알 때까지 꼭 붙어서 잘 살아 봐요.

    마님 : 못 살아 정말.

    어중씨 : 그래도 심부름은 완수했어요.

     

    어중씨, 물건들을 내민다.

     

    마님 : 이걸 다 어디서 구했어요?

    어중씨 : 버스를 탔으면 구하지 못할 것들이었어요.

    마님 : 지금은 봄인데 여름 장화랑 겨울 털장갑은 왜?

    어중씨 : 그러게요. 지금은 봄이네.

    마님 : 역시 우리 서님은 진정한 어중씨에요. 어중간한 어중씨.

     

    마님, 웃는다.

    어중씨, 함께 웃다가

     

    갈대 빗자루를 들고

    보란 듯이 마당을 쓸다가

     

    털장갑을

    마님의 손에 끼워준다.

     

    장화를

    마님의 발에 신겨준다.

     

    마님,

    못 살겠다는 웃음을 짓는데

     

    어중씨,

    마님의 손을 잡고

     

    어색하지만 유쾌하게

    춤을 춘다.

     

    어중씨와 마님이

    달밤 아래 춤을 춘다.

     

    모두가 노래한다.

     

    <바람의 노래>

     

    나는 비록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견딘 매화나무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나는 비록 새가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잃고 먼 하늘 헤맨

    소쩍새 소망이 헛되지 않게

    나는 비록 밥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찾아 온 눈밭을 들쑤신

    삵쾡이의 배고픔이 슬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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