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배회의 기술_ 김가경
  • <단편소설> 

     

     

     

    배회의 기술

       

     

     

    김가경

     

     

     

    나는 무풀론을 끌고 집을 나왔다. 놀이터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의 입에 당근을 넣어주었다. 녀석은 천진한 얼굴로 당근을 잘도 받아먹었다. 그나마 집을 나오면서 당근을 한 줌 쥐고 나온 게 다행이었다. 아내는 녀석을 처분하기 전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했다. 목장에 다시 데려다 주든지 아니면 중탕집으로라도 끌고 가라는 것이다. 야생동물이라 뿔이 실해 좋아할 거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풀론과 내가 잘못한 것이 뭐란 말인지. 거실에 똥 좀 쌌기로, 녀석의 똥이라야 염소 똥과 마찬가지로 정로환보다 좀 크고 청심환보다 좀 작지 않던가. 하긴 내가 녀석의 목줄을 풀어 준 게 문제긴 했다. 야밤에 아내가 녀석과 마주친 것이다. 아니 녀석의 견고한 뿔과 마주쳤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거기다가 똥까지 밟았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래도 중탕집까지 운운할 정도로 야박한 사람은 아닌데 이 밤, ‘당근 보고서쓰기가 몹시 힘든 모양이라고 애써 마음을 돌렸다. 아마도 당근에 대해 쓸 게 너무 없다는 것이 고충일 거였다.

    아내와 나는 식품회사 입사 동기였다. 올 봄, 회사 옥상에 거대한 텃밭이 생겼다. 회장은 놀기 삼아 쉬엄쉬엄, 자율적으로 가꿔 보라고 했다. 신선한 야채를 취급하는 회사이니만큼 친환경적으로 가꿔 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원들도 자발적으로 옥상을 드나들며 밭을 가꾸었다. 그때까지는 이랑에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군데군데 풀도 자랐고 말라 죽는 잎도 생겼다. 그런데 회장이 옥상을 다녀가고부터 이랑마다 사원의 이름표가 꽂혔다. 아침 조회 장소도 옥상으로 옮겼다. 그 뒤부터 사원들은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풀을 뽑거나 이랑을 고르기 바빴다. 어쩌다 보니 경작 보고서까지 써야 하는 별난 업무를 거치게 된 것이다. 텃밭은 단계별로 오이나 고추, 가지 같은 식물에서 무나 당근 같은 한 뿌리 식물로 옮겨가게 되어 있었다. 한 뿌리 식물의 경작은 옥상 텃밭을 벗어나 산지에서 이루어졌다. 태생적으로 무언가 길러내는 일에 미숙한 나에 비해 아내는 그 단계를 잘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내도 당근 보고서를 쓰는 것만은 쉽지 않은 듯 했다.

    놀이터를 벗어나 단지 내 슈퍼를 지날 때였다. 무풀론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전봇대에서 영역표시를 하고 있는 치와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도시의 동물들은 대개 전봇대라는 무연고 기표 아래서 적을 만난다. 전봇대를 본 적 없는 무풀론이 아무 경계심 없이 치와와에게 다가갔다. 주먹만 한 치와와가 으르렁거렸다. 야심한 시간, 전봇대 아래에서 불쑥 용기가 치솟는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낮은 몸을 땅에 바싹 붙이고 좁은 어깨를 잔뜩 세운 다음 마구 짖어댔다. 무풀론이 당황한 것 같았다. 아내의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잘도 버티던 녀석이었다. 밤하늘에 음메에에에 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자신 없이 잦아드는 녀석의 목소리에, 뿔은 폼으로 달고 있느냐고 한마디 하고 말았다. 이내 녀석이 목소리로 세를 다져온 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에 있어 모반은 고사하고 그저 초원 위를 옮겨 다니며 풀이나 뜯고 뿔이나 키웠을 녀석이었다.

    정말 센 놈들은 뿔을 키우지 않지.’

    집을 나가기 전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뿔 수집이 낙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늘 세상과 동떨어진 얼굴을 하고 뿔에 미쳐 다닌다고 타박을 했었다. 어릴 때 골방 문을 열면 벽면 가득 뿔이 걸려 있었다. 그 중에는 뿔을 살리기 위해 머리도 함께 박제한 것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어설픈 박제 솜씨 탓에 눈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 놓았거나, 싸구려 유리구슬처럼 생긴 의안을 박아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골방의 것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예닐곱 살쯤이었던 나는, 죽음은 곧 눈을 감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검게 비워진 박제 동물의 눈에서 죽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의안을 꽂은 눈을 보고 살아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과 너무 비슷해 보여서였다. 일찍이 나는 무언가 따서 모으는 데 재주가 없었다. 구슬치기도 마찬가지였다. 종일 쳐도 구슬 몇 개 챙기는 게 다였다. 그나마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주머니에 구멍이 난 탓에 구슬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유리구슬은 잃어버리는 것 혹은 사라지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던 것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뿔 사이에 유일하게 제 모습을 갖춘 초식동물의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뿔을 구하러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꿈에 흉흉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버지가 객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 주변머리에 딴 살림을 차렸을 리도 만무하고. 어머니가 숱하게 점쟁이를 찾아다닌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골방의 뿔을 내다 팔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후 생활은 아버지가 말단 공무원 월급을 뿔 수집에 털어 넣었을 때보다 더 기름진 생활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엉뚱한 것에 홀려 아버지처럼 집을 나갈까 봐 늘 겁을 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무언가 떠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니 그것을 넘어선 죄의식 같은 게 늘 있었다. 어머니는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를 행방불명 상태로 내버려두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나 또한 지금까지 서류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무풀론의 목줄을 당겼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치와와가 서서히 꼬리를 내렸던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리드줄을 들고 달려왔다. 아래층 여자였다. 여자는 얼마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개를 키우며 지내는 것 같았다. 생물 선생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다. 가끔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을 끼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여자는 치와와 앞에 있는 무풀론과 나를 번갈아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범죄 현장이라도 목격한 듯 관리사무실에 연락하겠다고 휴대폰을 들었다. 슈퍼를 기점으로 이곳은 아내가 도보로 걸어 다니는 경계지점, 즉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관리사원들이 순찰을 도는 마지막 표지이기도 했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관리실 직원이 근무를 설 리도 만무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지 여자는 다른 연락처를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액정을 빠르게 쓸어 올렸다. 여자나 나나 이 시간에 불러낼 사람이 없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긴 했다. 여자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며칠 전 무풀론을 처음 보았을 때도 여자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는데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녀석이 밤사이 입주민 공동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줄을 매어 놓았는데 어떻게 풀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충 차려입고 내려가 보니 녀석은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밭을 망친 범인이 양인지 염소인지 의견이 분분히 오가는 중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양에게 빚진, 떳떳하지 못한 그런 게 있었다. 개중에 양일지도 모르니 정자 옆에 터를 내주자는 말이 나올 때였다.

    ……무풀론이에요.”

    어디선가 자신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였다. 여자는 뭐에 홀린 듯 개를 품에 안은 채 동물도감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무풀론을 외면하다시피 곁눈질로 쳐다보는 거였다. 무풀론이라니. 입주민들이 웅성거리자 여자는 동물도감을 펼쳐 보였다. 사람들은 양도, 염소도 아닌 왜소한 동물이 종의 꼭짓점에 올라있는 것을 탐탁찮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풀론이 양의 기원이라는 것보다 야생동물이라는 것에 더 동요하는 것 같았다. 결국 모든 것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그들은 다시는 주민들 눈에 띄지 않게 하라며 최종구형을 내렸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주머니를 털어 소박하게 변상을 하였다. 무풀론이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동물도감을 들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여자만 부질없이 쳐다보았다. 여자는 이물질을 보듯 무풀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녀석을 끌고 집으로 올라오려는데 뒤에서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물 선생이 동물을 보고 그리 놀라는지. 이른 아침, 무풀론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여자라고 했다.

    나이든 딸내미를 그리 금이야 옥이야 끼더니만.”

    노친네가 죽고 여자가 혼이 빠진 것처럼 해 다니더라며 경비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경비원이 내 쪽을 자꾸 흘깃거리기에 쫓기듯 무풀론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여자는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자신이 또 다시 무풀론과 맞닥트린 것이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뿔을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평생……엄마가 키워온 화분인데…….”

    여자가 느닷없이 전화기를 부여잡고 울먹였다.

    ……지렁이가 나온다구요. 지렁이가.”

    무풀론에 이어 지렁이까지, 나는 녀석의 뿔만 정처 없이 쓰다듬었다.

    어떻게……무풀론, 아니 지렁이를……치워 줄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나도 아는 바였다. 나는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물고 싶었다.

    지렁이는 왜 달팽이처럼 뚜껑을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요.”

    여자는 자신을 책망하듯 읊조렸다. 그때 치와와가 갑자기 다른 전봇대를 찾아 달려갔다. 여자는 지렁이가 있는 한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치와와를 따라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자와 치와와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다 발길을 옮겼다. 걷다 보니 회사 쪽으로 발길이 기우는 거였다.

    자네 이랑에는 내 맘에 드는 가지가 없네.’

    얼마 전 회장이 옥상의 이랑을 둘러보고 그렇게 말했다. 내 이랑에서 자라는 가지가 다 그만그만한 놈들뿐이라는 것이다. 입사 동기인 조 대리를 비롯해 다른 동료들의 이랑에는 알이 실한 보라색 가지들이 제법 열려 있었다. 고추와 오이에 이어 가지까지, 내가 경작한 작물은 회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는 천성적으로 가지치기나 솎아내기에 미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애초부터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도대체 자네가 잘 하는 게 뭔가, 같은 인신공격성 질책은 하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관심사원 대하듯 나를 보면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줄 뿐이었다. 그 뒤부터 이상하게 조 대리나 다른 동료들이 피우던 담배꽁초를 내 이랑에 던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직원이 없을 때는 내 이름표 위로 경쟁하듯 오줌을 내갈기기도 했다. 내 이랑에 잡풀이 우거지면 우거질수록 다른 동료들의 이랑은 더 실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 그렇게 수확한 작물은 직원의 이름을 달고 매장에 진열되었는데, 제법 홍보효과가 좋았다. 지난달에는 회장이 정자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어느 잡지에 크게 실렸다. 신선한 야채의 유통이 생명인 회사에서 옥상 텃밭은 회사 매출 향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전 사원이 유기농 경작법을 몸소 실천하는 윤리적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사실 나도 가지를 솎아내려고 이랑을 기웃거렸었다. 처음에는 어느 것을 솎아내야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 그만그만해 보였다. 다시 이랑에 섰을 때 이미 자라난 잔풀에 마음이 가 있었던 것이다. 섞여 있어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나는 무풀론과 함께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물론 차를 타고 출근할 때와는 달리 일곱 정류장쯤을 걸어야 했고, 인도가 없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회사 입구에 창립 기념일에 맞춰 심은 회화나무를 지나 회사의 삼엄한 경비를 뚫어야 했고 야근하는 팀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17층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옥상 문을 열었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다. 헬기 서너 대 쯤은 너끈히 내려앉을 수 있는 옥상은 하나의 거대한 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유독 잎이 무성한 내 이랑을 바라보았다. 가지와 풀이 한데 뒤섞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안에서 온갖 벌레들이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을 거였다. 나는 주머니에 남아 있는 당근을 꺼내 무풀론의 입에 댔다. 여전히 녀석은 당근을 잘도 받아먹었다. 나는 정자 기둥에 줄을 매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늘을 보니 달은 차 있었고 바람도 시원했다.

    내가 작정하고 목장에 간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관리하는 당근 밭을 나오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차 방향을 꺾었던 것이다. 뭐라도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아내는 한 무리의 양떼를 보고 치즈라도 만들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돌렸다. 나는 그럴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망아지처럼 한 번 뛰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치즈 만들기 체험 무리에 끼어 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초원 위를 달려 나갈 때였다. 옷을 하나씩 벗은 게 화근이었나, 야호라고 소리를 지른 게 화근이었나. 사람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유인지 뭔지 체험 무리 쪽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속에 섞여 있을 아내의 표정이 훤히 그려졌다. 나는 완만하게 휘어진 초원 위를 힘껏 달려 나갔다.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산등성을 넘어 버렸다. 바람 때문이었나, 타잔을 꿈꿔온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속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미친놈처럼 알몸으로 뛰었다. 그러다 무풀론이 있는 곳까지 가게 된 것이다.

    무풀론은 양 무리를 벗어나 홀로 서 있었다. 나는 녀석이 골방에 걸려 있던 사진 속 동물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가슴 한 쪽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녀석은 한줌의 풀을 시가처럼 씹어 돌리며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무풀론이라네.”

    그때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카우보이 모자에 웨스턴 부츠를 신은, 나름대로 멋을 낸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애매했는데 육십은 훨씬 넘어 보였다.

    할 일 없이 산등성이를 넘어 온 사람은 젊은이가 처음이네. 가뜩이나 불알을 덜렁거리며 말일세.”

    내 행색을 훑어보며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남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곳을 가렸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남자는 마치 목욕탕에라도 온 듯 자연스럽게 옷을 벗었다. 벗은 몸을 보니 옷의 무게가 더 나갈 만큼 말라 있었다. 나는 근육이 얼추 빠져나간 남자의 사타구니를 흘깃 보았다. 가랑이 사이에 센 털을 보니 왠지 모를 연민이 일었다. 남자가 초원 위에 벌렁 누웠다. 그러자 무풀론도 남자 옆에 슬며시 눕는 거였다. 나도 그들 옆에 누웠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서로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걸세.”

    남자는 나침반이 흔들리고 시계가 뒤섞이는 지점에 누워 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씁쓸하게 눈을 감았다. 골방의 뿔도 다 팔아갈 즈음이었다. 어느 상공에 우주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어머니와 나는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들렀다가 탕수육까지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막연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적하지 못할 커다란 힘에 의해 아버지가 휴거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덜어지는 거였다.

    대개 사람들은 저 밑자락에서 양에게 먹이를 주거나 젖을 짜거나 치즈를 만들 뿐이지. 명분을 만들고 왔으니 충실히 작정한 일을 하고 가는 거라네. 적어도 오늘 하루는 그들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걸세.”

    아무 목적 없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남자가 물었다. 그만그만한 업무나 전전하는 나는, 그저 푸른 초원이 있기에 올랐을 뿐이었다.

    남자는 뒤늦게 자신을 양치기의 후예라고 소개했다. 남자는 내가 이미 무풀론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 전 재산을 털어 잠적한 사기꾼을 만난 심정이었다. 멱살을 잡고, 아니 뿔을 휘어잡고 그동안의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 대신 내가 뿔을 팔기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으로 마지막 뿔을 팔면서 무풀론의 뿔이 귀하며 제 값을 받으려면 머리와 함께 박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최상품을 만들기 위해 동공이 살아 있는 상태, 즉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사라진 것은 그 작업을 앞두고서라고 했다.

    무풀론이 한량처럼 한가로이 대자연이나 구경하자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닐세.”

    남자는 무풀론이 양들에게 치여 잠시 피신 중이라고 말했다. 못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면 양에 대한 순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양들이 한두 번 덤비다 보면 무풀론의 뿔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채지, 뿔이 크면 클수록 겁이 많은 놈이라는 것을 말일세.”

    전국 방방곡곡 따라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사람과 달리 녀석의 처세가 늘지 않더라고 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남자도 몸을 일으켰다.

    다른 건 아쉬운 게 없는데 말일세…….”

    남자가 멋쩍은 듯 등을 돌렸다.

    시원하게 좀 긁어주게.”

    나는 남자의 등을 조심스럽게 긁었다.

    좀 더 시원하게 긁어보게.”

    나는 손톱을 세워 남자의 마른 등을 박박 긁었다. 남자의 등에 붉은 손톱자국이 생기며 마른 비듬이 일었다.

    그렇지, 그렇게 말일세.”

    나는 남자의 등에 대고 뭐라도 챙겨 먹고 다니라는 말을 흘렸다. 남자는 자유롭게 초원 위를 떠돌다가 객사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상하게 남자의 말이 황당하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잠시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어디서 뵌 적이…….”

    나이가 들면 사람들 얼굴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법이네.”

    남자는 얼굴을 수북하게 덮은 털을 털털거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살면서, 마음 안에 잃어버린 사람이 많았나 보군.”

    다소 낭만적인 대답이었다. 나와 무풀론, 그리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초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한 무리의 양떼와 체험 무리가 평화롭게 뒤섞여 있었다.

    나는 모든 걸 버리고서야 무풀론과 친해졌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내게 무풀론을 내 주었다.

    어딜 가든, 불알까지 보여준 인간을 기억할 걸세. 잘 사귀어 보게.”

    그리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무풀론과 함께 초원을 내려오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모기 때문에 눈을 떴다. 가운데 이랑쯤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조 대리였다. 나는 조 대리가 나를 발견하지 않는 한 모른 척 있을 생각이었다. 딱히 할 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풀론을 본다면 찌질하게 염소까지 끌고 다닌다고 소문을 낼 게 뻔했다. 잠시 뒤 조 대리가 담배꽁초를 내 이랑으로 던지고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몸을 낮췄다. 달이 밝은 까닭에, 조 대리가 손에 들고 뿌려대는 것이 무엇인지 얼추 짐작이 갔다. 조 대리는 자신의 이랑에 그것을 충분히 살포한 다음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풀과 가지가 뒤섞인 가지 이랑을 거닐었다. 볼 폼은 없어도 내 가지도 나름대로 알이 굵어가고 있었다. 무풀론이 한가로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랑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무래도 자네는 한량의 자손인가 보네.”

    돌아보니 회장이었다. 이 시간에 텃밭에는 웬일이냐는 얼굴이었다. 나도 뜻밖이긴 마찬가지였다. 회장은 간단한 운동복 차림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 손에는 플래시까지 들고 있었다. 회장은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운동 삼아 겸사겸사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회사 기사가 실린 잡지를 챙겨 보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챙겨 보지 못했다고 하자 회장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진을 보니, 잡풀이 무성한 자네 이랑이 확연히 눈에 띄더군.”

    다른 이랑으로 가야 할 시선이 관리가 안 된 내 이랑으로 쏠린다는 거였다.

    어쩌지도 못하게 떡하니 가운데 버티고 서서는.”

    생각하니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회장은 촬영 당시, 취지에 맞지 않아 기자가 난감해 했다고 꼬집었다.

    기자가 시골 출신인 모양인데, 고수레 이랑을 아느냐고 묻더군.”

    회장이 감정을 가다듬었다. 아내와 당근 밭에 갔을 때 밭주인으로부터 고수레 이랑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마치 고수레처럼 멧돼지 같은 유해동물들에게 이랑 하나를 내 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유해동물이 다른 밭을 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만그만한 이랑 하나를 방치한다는 말이었다. 일종의 희생 이랑인 셈이었다. 하지만 밭주인은, 고수레 이랑을 너무 가까이 두면 애첩의 치마폭을 엿보는 것처럼 자꾸 일손을 놓게 된다고 귀띔했다. 자신도 언젠가 고수레 이랑 때문에 당근 수확량이 확 준 적이 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어쨌든 자네 이랑이……고수레 이랑이, 되었네.”

    마지못해 통보하는 말투였다. 나는 이런 곳에 유해동물이 있겠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맷돼지만 어디 유해동물이겠나!”

    회장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라고 말할 바는 아니네만, 어쨌든 자율적으로…… 가꿔 보라고 한 거고.”

    회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내 이랑을 건너다보았다. 그때 이랑 속에서 불쑥 무풀론이 고개를 들었다. 달이 밝았기에, 무풀론의 뿔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자태를 드러냈다. 뜻밖에도 회장은 놀라지 않았다. 천천히 플래시로 그곳을 비추었다.

    …… 무풀론이군.”

    탐색을 마친 회장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어디서 구했나?”

    마치 오래된 산삼의 출처를 묻는 것 같았다.

    ……버뮤다…… 삼각 지대에서…… 만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남자의 말대로 나침반이 흔들리고 시계가 뒤섞이는 그 지점에 대해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회장이 침묵과 함께 플래시를 내렸다.

    …… 버뮤다 삼각 지대라…… 왠지 어렸을 때 먹어 본 싸구려 과자 생각이 나는구만.”

    이 시간에 관심사원의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짜증스러운 모양이었다. 회장은 플래시를 들고 서둘러 이랑 쪽으로 갔다. 이랑마다 플래시를 비춰가며 가지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조 대리의 이랑에서 가지를 몇 개 따서 벙거지에 담았다.

    자네 집사람, 안 대리 말이네, 새벽에 당근 보고서를 보내 왔더군.”

    밭을 둘러본 회장이 뜬금없이 보고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가지 보고서는 잘 돼 가느냐고 물었다. 사실 가지에 대해서 쓸 게 별로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회장은 자네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안 대리 같은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겠다며 기어이 한마디 내뱉었다.

    버뮤다에서 무풀론을 구해 온다고 보고서 쓸 시간이 없었겠구만.”

    회장은 이죽거리며 플래시로 내 이랑 한 번 휘저었다. 그러다 새삼 가지밭으로 고개를 뺐다.

    좀 전에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회장이 고요한 이랑을 보며 물었다. 혹시 헛것을 봤나 싶은 모양이었다. 풀 더미 사이로 뿔이 움직이자 그제야 플래시를 내렸다.

    그래 저걸 어쩔 셈인가?”

    회장이 다그치듯 물었다.

    집으로 가 봤자 안 대리가 반길 리도 없을 테고, 자네가 말하는 버뮤다 삼각 지대에 다시 끌고 가겠나?”

    회장은 벙거지 안의 가지를 할 일 없이 뒤적였다. 그러다 웬일인지 무풀론을 정자 옆에 매어 놓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에, 선심 쓰듯 퇴근하라며 옥상을 내려갔다. 나는 퇴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풀론을 정자에 매어 놓고 누웠다. 하룻밤 묵기에 정자는 그만이었다.

    정말 이럴 거야.’

    카우보이 복장이라더니, 목장에 그런 사람이 없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아내에게서 문자가 연달아 왔다. 무풀론을 처분하기 위해 목장에 전화까지 한 모양이었다. 남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도 카우보이 모자와 웨스턴 부츠를 신은 모습보다 벗은 몸이 더 기억에 남았다.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 왠지 그의 깡마른 몸부터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들 벌거벗은 몸을 본 것 이외에 내가 남자에 대해 달리 설명할 것이 없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문자에 답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아침 햇살은 반짝였고 이랑의 작물들은 질서정연하게 제 빛을 발했다. 무풀론은 풀 한 줌을 씹어 돌리며 한 시간째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조회를 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 직원들이 웅성거리며 무풀론을 쳐다보았다. 그들 사이에서도 양인지 염소인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 누구 하나 무풀론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슬쩍 고개를 돌리고 딴 곳을 보고 있었고 조 대리는 눈인사를 보내고 내 가지밭을 슬쩍 비켜갔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회 전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거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풀이 우거진 내 이랑 보는 것을 즐기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지못해 웃어 보였다. 어디선가 잡지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고수레 이랑이라는 말까지 들려왔다. 그들과 섞여 있던 신입사원 한 명이 천진한 얼굴로 나에게 웃어 보였다. 아내가 한심한 표정으로 몸에 난 모기자국을 훑어보며 그러고 다니니까 좋으냐고 물었다. 내가 얼버무리는 사이, 고수레 이랑으로 기사회생한 것을 축하한다며 조회 대열로 들어갔다.

    회장이 유쾌한 얼굴로 옥상 문을 열었다.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맞추었다. 나는 대열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조 대리가 국민체조 음악을 틀려고 할 때였다. 회장이 이를 잠시 제지하고 정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풀론의 줄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무풀론은 되새김질을 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무풀론이 조회 대열을 가르고 중간 쯤 왔을 때였다. 녀석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로환보다 더 크고 청심환보다 좀 작은 환 덩어리 예닐곱 개를 엉덩이 사이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녀석의 똥을 밟아 본 아내가 멀찍이 떨어졌다. 직원들이 분비물을 피해 움직이자 조회 대열이 흐트러졌다. 녀석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하게 볼일을 마치고 내 옆으로 와 섰다. 나는 내심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풀론이 어딜 가든, 불알까지 보여준 자네를 기억할 걸세. 남자의 말이 떠오르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국민체조 음악이 흘러나왔다. 회장이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당근 보고서를 제출한 아내도 하늘 높이 팔을 뻗었다. 나는 녀석의 분비물을 치우기 위해 조회 대열 한 가운데로 갔다. 그리고 분비물을 손으로 주워 내 이랑으로 던졌다. 무풀론은 음악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메에에 소리를 내며 이랑 사이를 돌아다녔다. 회장은 이 산만한 풍경을 애써 외면했다. 조회 끝 무렵, 회장은 재미삼아 따 보았는데 집 사람이 조 대리의 가지를 좋아하더라는 말로 비공식적인 가지 품평회를 마쳤다.

    점심을 먹고 나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텃밭에서는 다음 달 잡지에 실을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무풀론이 도시 텃밭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장면을 찍는다는 거였다. 내 이랑을 보니 회장의 말대로 그만 그만한 가지들뿐이었다. 그 안에서 무풀론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얼추 사진을 다 찍어 갈 때쯤이었다. 기자가 무풀론을 조 대리 이랑으로 몰아달라고 했다. 나는 무풀론을 데리고 조 대리 이랑으로 갔다. 녀석은 이랑 언저리에서 코를 박으며 돌아다닐 뿐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을 조 대리의 가지 밭에 겨우 불러들여 촬영을 끝냈다. 찍은 사진을 돌려보던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이랑의 무풀론과는 달리 조 대리 이랑의 무풀론이 자꾸 침입자처럼 느껴진다는 거였다. 기자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조 대리 이랑의 사진을 지워나갔다.

    퇴근 무렵 나는 총무과에 가지 보고서를 제출했다. ‘남자의 것과 닮았다는 한 줄 이외에 더 쓸 게 없었다. 당직실에 들러 모포를 챙겼다. 옥상으로 퇴근을 하는데 아내가 따라 올라왔다.

    정말 이럴 거야?”

    아내가 풀밭을 어슬렁거리는 무풀론을 흘깃거리며 말했다. 무풀론도 해결되었는데 왜 퇴근을 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무풀론이 내 이랑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얼마나 설득력 없는 대답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정자에서 더 자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거 또한 아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답이었다. 아내는 당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생물 선생처럼 영원히 밖으로 나돌게 만들어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때 조회 시간에 보았던 신입사원이 옥상 문을 열고 머뭇머뭇 다가왔다. 손에 모포를 든 채였다. 정자에 모포를 내려놓으며 같이 자도 되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모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옥상을 내려갔다. 신입사원은 내 가지 이랑을 보면서 자신도 고수레 이랑으로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가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놔 두었을 뿐이라고 그럴듯하게 말 폼을 잡았다.

    ……모기장이라도 사 올까요?”

    신입사원이 내 몸에 난 모기자국을 보며 물었다. 하루 더 자면서 결정할 요량이었다. 신입사원은 야생동물인 무풀론이 어떻게 대리님을 알아보냐며 신기한 듯 물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신의 불알을 보여주면 된다고 이야기 했다. 영문도 모르면서 신입사원이 비죽 웃었다. 그날 밤, 웬일인지 아무도 옥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곁에 누운 신입사원이 무풀론에게 자신의 불알을 보여줄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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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가경 |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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