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아라크네의 아이들_박찬순
  • <단편소설>          


                                          아라크네의 아이들
                                     


                                                                                                              박찬순





      오늘 따라 손에 와 닿는 반죽의 감촉이 유난히 매끄럽게 느껴진다. 면발이 술술 잘 뽑혀 나온다. 면판 위에 내리고 반으로 접어 겹치자 어느 새 열여섯 가닥. 다시 양손으로 펼쳐 들고 면발을 앞으로 세 번 돌린다. 손은 유연하게 원을 그리고 허리는 팔 동작에 맞춰 자연스럽게 반동을 탄다. 고개도 발가락도 까딱까딱 면발에 리듬을 보탠다. 몸뿐 아니라 온 신경이 한 데 모아져 면발과 보조를 맞춘다. ‘힘으로 하는 게 아녀. 몸이 율동을 타고 하는 겨.’너는 선배의 말이 이제야 수긍이 간다. 통통한 면발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자 반죽의 장력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숙성이 잘 된 모양이다. 너는 어젯밤 퇴근하기 전에 밀가루를 소금물에 미리 반죽해 두었다. 면발을 반으로 접어 겹치면 서른 두 가닥이 된다. 합친 왼쪽 끝은 꾹꾹 눌러 잘 뭉친다. 그래야만 끊어지는 면발이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을 면발 사이에 끼우고 다시 들어 올려 앞으로 세 번 흔들면서 늘인다. 면판 위에 면발을 내리고 고이 뒤집어 본다. 끊어진 가닥이 하나도 없다. 밀가루를 치고 나서 다시 반으로 접어 겹친다. 이제 면발은 서른두 가닥. 다시 면발을 들어 돌리면서 조심스레 늘린다. 판 위에 내리고 밀가루를 치고 반으로 접어 겹치자 어느 덧 예순 네 가닥. 이제 한 단계만 남았다. 너는 갑자기 움찔한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까. 너는 다 알고 있다. 64가닥의 면발을 보자 원룸 벽에 붙어 있던 형의 네트워크 도표가 떠오른 것이다. 그것은 6단계 64명에서 그쳐 있었다. 수타 면발의 숫자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던 형의 네트워크. 하지만 중간 중간 보이는 X표는 끊어진 그물코를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형을 능가할 수 있을까. 너의 면발에서는 에러가 나오지 않을까. 마지막 단계를 남겨 놓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홀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장면 10인 분 추가요오.”
      형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너는 마지막 단계를 위해 면발을 들어 올린다.  64가닥의 면발을 앞으로 세 번 아이 어르듯 살살 돌리면서 늘인다. 면판에 내리고 반으로 접어 겹친다. 면발을 살짝 뒤집어 살펴본다. 아뿔싸, 끊어진 두 가닥이 보인다. 일곱 번째 단계에 와서 그만 에러가 난다. 너는 끊어진 면발을 왼쪽 뭉치에다 갔다 붙인다.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에 면발을 걸고 왼쪽 끝의 뭉치를 칼로 끊어낸다. 가늘기가 고른 면발이 팔뚝에 걸려 한들거린다. 3년 동안 피나는 훈련을 쌓았건만 아직도 에러가 나온다. 하지만 창 너머에서 작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초보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취향을 너는 알 수가 없다. 구경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자 머쓱해진다. 면발을 팔뚝에 가지런히 걸고 물이 설설 끓고 있는 솥 앞으로 가서 살며시 밀어넣는다. 10인분이면 앞으로 세 번은 더 뽑아야 한다. 꼭 주문을 받고서야 면을 뽑기 시작한다. 반죽도 하루가 지나면 쓰지 않는다. 정직한 수타면. 40, 50년 경력의 숙련된 장인들은 한 번에 12인분도 뽑아내지만 너는 3, 4 인분이 고작이다. 면발 수도 128가닥에 머물러 있다. 고수들은 여기서 3단계를 더 나가 1024가닥을 뽑아낸다. 기스면용이다. 너는 다시 베 보자기에 덮인 반죽을 뜯어 일자로 늘이기 시작한다. 무결점 면발을 위해 너는 계속 달려야만 한다. 가끔씩 냉소다수를 바르면서 길게 늘인 반죽을 반으로 접어 다시 길게 늘였다가 면판 위에 내려치기를 반복한다. 너는 또다시 눈시울이 빨갛게 물든다. 너무 빨리 출근한 것일까. 어제 삼우제를 지내고 곧바로 올라왔다. 빨리 일을 하는 게 형을 잃은 아픔을 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끊어진 형의 네트워크 도표는 네 머릿속에서 또 다른 그림을 불러낸다. 시골집 마당의 살구나무에 악, 하고 탄성을 지를 만큼 정교하게 쳐져 있던 수레바퀴 모양의 거미줄. 간간이 이슬이 맺힌 그것은 손가락으로 튕기면 도르르 맑은 구슬소리를 낼 듯한 악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무엇인가 그 그물에 걸려 버둥거리던 모습.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놀랍게도 몸통의 길이가 한 뼘이나 될 법한 장수잠자리였다. 검은 색의 몸통 마디마다 노란 띠를 뽐내며 유유히 떠다니다 총알처럼 내려와 말벌의 각질에 날카로운 이빨을 내리꽂는다는 공중폭격기. 그것은 ‘장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몇 번 용을 쓰며 꿈틀대다 마지막으로 한 번 파르르 떨고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 영롱한 예술작품이었던 그 그물이 선뜩한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 생각을 하면 너는 지금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다. 더 이상 반죽을 늘일 기운도 없어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 안 돼, 앞으로 10인 분을 더 뽑아내야만 돼. 너는 바지런히 반죽을 늘인다. 일자로 늘인 반죽을 면판에 탕탕 내려치기를 되풀이한다. 둥글고도 고른 면발을 뽑자면 반죽에 들어있는 공기를 빼야 하기 때문이다. 수타면은 치대고 돌리고, 치고, 꼬는 작업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반죽을 면판에 내려치는 일이다. 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나무까지도 선별해서 쓸까. 이 집에서는 두꺼운 미송을 쓴다. 판의 길이도 사람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길다. 반죽을 면판에 치는 사이에 소나무 향이 자연스레 면발에 스며든다. 어릴 때 네 어미가 국수를 밀며 하던 말이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국수를 못하는 년이 피나무 안반만 나무란다' 던.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삼년동안 너를 따라다녔더니 나도 수타면에 대해 웬만큼은 알게 된 것 같다. 너를 왜 따라다녔냐고? 처음엔 네 형을 따라다니다가 너를 눈여겨보게 되었지. 고분고분하지 않고 뻗대는 성격에 끌렸다고나 할까.      
      내가 누구냐. 월드와이드웹(www)보다도 먼저 아득한 옛날에 태어나 이 세상 모든 그물을 주관하는 왕그물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의 후예다.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난  나머지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거미가 된 직녀 아라크네 말이다. 세상 거미들의 어미이자 모든 그물 짜는 네트워커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여신이지. 아라크네가 신들의 패륜행각을 낱낱이 꿰고 있었듯이 나는 네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네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너는 반죽을 늘이면서도 머리에는 형 생각뿐이다.    
     “막상 수술을 하려고 열어보니 이미…….”
      부산에서 어렵사리 뇌사자의 간을 공수해 와놓고도 손을 쓸 수 없다던 의사의 풀 죽은 목소리.
      “하도 많은 종류의 약물이 섞여있어 무엇이 원인인지 파악하기가……”
      폴대가 모자라도록 해독제와 영양제 등 온갖 수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단 채 잠들어 버린 형의 모습. 그 얼굴에 대고 울먹이면서 중얼거리던 너.   
     “희, 희야, 내, 내가 주, 죽일 놈이데이. 모, 목숨 걸고 뜨, 뜯어말리지 몬해 미, 미……”    너는 형이 권하는 바이오 어쩌고 하는 환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다. 형이 발이 부르트도록 팔러 다니는 그 건강보조 식품을. 형이나 먹고 복근 많이 만들라며 핀잔만 주었지. 그놈의 네트워크인가 뭔가 빨리 때려치우라는 말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슴 한 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어쭙잖은 짓 그만 둬. 고졸에다 중국집 주방 보조 노릇 하는 주제에, 대학물까지 먹고 SNS인가 뭔가 하는 첨단 기술로 인간그물망을 짜는 전문가한테 훈수를 둬?’
      그러고는 이제 와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살구나무의 거미줄 탓을 하고 있다. 그때 장수잠자리가 시시각각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왜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을까. 오묘한 그물 솜씨에 질려 버린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마침내 어느 지점까지 이르게 된다. 형도 그물을 쳐 놓고 그 위에서 먹이를 얻어 보겠다고 꼼지락거리던 거미 과의 네트워커가 아니었을까. 살구나무의 거미줄은 형의 운명을 예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글쎄, 과연 그럴까. 네 형이 네트워커라는 건 맞는 얘기지만 그것이 꼭 운명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귀띔해 주는데 그물신은 널려 있고 걸려들 것은 많다. 처음 보는 거미줄이 신기해 놀러왔다 걸려든 어린 나비처럼 네 형도 그럴싸한 그물에 홀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걸려든다. 세상에는 어서 와서 날 덮쳐 주오, 하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너는 다시 일자로 늘인 반죽을 들어 올렸다 면판 위에 내리친다. 하얀 주방장 모자에다 제복을 입고 허리에는 흰 앞치마를 두른 너의 모습은 어엿한 중국집 수타면 기술자다. 차림새에서도 제법 짬밥이 묻어난다. 한참동안 치대면서 길게 늘인 일자 반죽을 반으로 접는다.  접은 반죽을 뭉쳐서 판위에 내려치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한다. 몇 번을 내리쳐야 소나무 향이 묻어올까. 얼마나 내리쳐야 공기가 빠져나가고 밀가루와 물이 완전하게 한 몸이 될까. 그건 글루텐이 형성되어 점성과 탄력이 생겨날 때까지다. 사실 면발을 뽑는 시간은 몇 분 걸리지 않는다. 반죽을 주물러 면발을 뽑을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지루할 만큼 오래 걸린다. 그 때까지 반죽을 주무르고 돌리고 꼬고 치느라 진땀이 나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물을 짜는 것은 아니지만 가느다란 실을 뽑는다는 점에서는 너도 아라크네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만한 수타면 쟁이가 되었다면 왕그물신 재량으로 아라크네의 후예로 받아줄 수도 있다. 우리 그물신들이 하는 일도 거미의 집짓기 작업과 비슷하다. 그만큼 전략적이고 치밀하다. 너도 고향집에서 거미가 살구나무에 거미집 치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낮에 처마 밑에 숨어 지내던 거미는 어스름 저녁 무렵 살구나무로 옮겨가 줄을 치기 시작한다. 배 밑에서 여러 겹의 실을 뽑아내 바람에 날린다. 마치 연을 날리듯이. 실의 끝자락은 바람을 타고 건너편 가지에 가서 걸린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 브리지, 다리를 놓는 것이다.  연날리기를 여러 번 해서 브리지를 아주 튼튼하게 만든다. 전체 거미집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들보다. 그 브리지의 가운데 지점으로 가서 실을 뽑으면서 자기 몸을 밑으로 떨어뜨려 중심을 잡는다. 그 지점의 나뭇가지에 실을 붙이고는 그 점을 브리지의 양 끝과 연결한다. 그 중심점을 꼭짓점으로 해서 역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이번에는 중심점에서부터 밑으로 닻을 내린다. 닻을 내리는 지점은 나뭇가지도 되고 땅도 될 수 있다. 닻줄도 여러 번 왕복을 해서 강한 줄로 만든다. 이제 닻을 내린 지점과 브리지의 두 지점을 각각 연결한다. 그러면 먼저 만든 역삼각형 양쪽으로 각각 한 개씩의 삼각형이 더 생겨난다. 이제 그 중심에서부터 방사선 방향으로 기둥이 될 세로줄을 쳐서 삼각형의 바깥 틀에다 붙인다. 세로줄이 다 세워지면 이번에는 먹잇감을 낚을 가로줄을 칠 차례. 가로줄은 세로줄과는 달리 점성을 띠고 있다. 이 끈끈한 줄로 시계바늘과는 반대방향으로 바깥쪽에서부터 원을 그리면서 쳐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촘촘하고도 낭창낭창한 그물망이 탄생한다. 지켜보던 네 형이 감탄하며 하던 말.    
     “일마들 진짜 일 한번 암팡지게 한대이. 저 줄로 멋진 글까지 쓰는 날도 곧 오는 거 아이가.”
      형은 그런 거미를 몹시 신통하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네 마음속에서는 심술궂은 생각이 스멀대고 있었다. ‘한 번 보고 싶은 걸. 저 번잡스럽게 많은 다리가 제 그물에 걸려 허둥대는 꼬락서니를.’하지만 그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너는 에둘러 말했다.    
     “희야, 거미 쪽에서 보면 그런데, 걸리는 파리나 잠자리 쪽에서 보면 어떨 거 같노. 내사 잘 모르겠대이. 뭐가 뭔지.”
      형이 거미줄에 경탄을 보낼 때 너는 거기에 잡힌 잠자리 편에서 생각해 보았다. 한술 더 떠서 제 그물에 걸린 거미를 보고 싶어 하다니. 발칙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미는 점성이 없는 세로줄로만 건너다니면서 줄을 치기 때문에 끈끈한 가로줄에는 걸릴 일이 없다, 걸려들어도 다리에서 기름이 나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어쨌든 네 형은 몸에 거미와 같은 장치도 없으면서 그물을 짜려 했다. 그것도 인간 그물망을. 그물은 아무나 짜는 게 아니다. 아라크네의 아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 아라크네는 자신이 짠 태피스트리의 무늬에 제우스의 엽색행각을 담아 그의 딸 아테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요정 에우로페를 유괴해 겁탈한 사건이었다. 뭔가를 짜려면 그 정도는 짜야지. 분노한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 버렸다. 평생 베나 짜면서 살라고.
      우리 그물 신들도 사냥감을 선택하고 따라가 덮칠 때까지 거미 못지않게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먼저 상대의 성향을 샅샅이 알아내서 어떻게 하면 걸려들게 할 수 있을까, 연구를 하지. 맞춤한 상대를 찾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짜서 마지막 순간에 덮친다.  
      아,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나는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물신 계의 아폴론이라고들 하지. 머리는 냉철하면서 미남에다 시와 음악을 즐긴다고 해서 말이야. 요즘으로 치면 차도남. 훗훗 너무 심했나. 단지 뇌에 그물돌기라는 게 있는 게 아폴론과는 다른 점이지.
      길게 늘인 반죽을 반으로 접어 살짝 꼰 다음 면판에 내려치는 작업은 아직도 계속된다. 완전한 결합이란 남녀 사이도 그렇지만 밀가루와 물의 경우에도 이루어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밀가루와 물이 잘 결합되었다고 생각되면 길게 늘인 반죽을 반으로 접어 한 손으로 들고 세로로 내려뜨린 다음 꽈배기를 만든다. 꽈배기를 만들 때는 반드시 오른쪽 손목을 슬쩍 왼쪽으로 돌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기다란 반죽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뱅그르르 돌면서 꽈배기가 된다. 그러고 보니 거미가 가로줄을 칠 때의 방향과 같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수없이 꽈배기를 했더니 네 머릿속의 시간도 한참 옛날로 돌아가 있다. 
      형은 거미줄을 볼 때마다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넌 왠지 그것이 으스스하게 여겨졌다. 장수잠자리가 거기에 걸려 숨이 끊어지는 것을 목격한 뒤였으니까. 거미는 걸려든 곤충의 몸에 독한 소화 효소를 주입해 액체로 만든 다음 빨대를 꽂은 듯 쪽 빨아먹고는 하늘하늘한 껍질만 남겼다. 네 속을 모르는 형은 서울에 올라온 뒤로도 툭하면 모든 것을 거미의 그물 치기에 비유하곤 했다.   
     “니는 수타면이나 잘 배워서 면짱 되거래이. 허공에다 짠 하고 그물 치는 거미 맹키로 달인이 되라꼬. 내가 네트워크 크게 짜믄 대학 보내줄 테이께.”
      스마트 폰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네트워크 마케팅에 발을 들여놓은 형이 인간 그물망을 짜고 있을 때 너는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다가 수타면을 배우게 되었다. 밤마다 손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구시렁거리던 네 모습이 저기 보이는 듯하다.‘젠장, 나는 수타면 배우느라 손목의 인대가 나가게 생겼는데 형은 스마트폰으로 인간 그물망을 짜고 있구나. 역시 공부는 많이 하고 볼 일이야.’너는 원룸 벽에 붙어 있는 형의 그물망을 질투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사람 모습의 도형이 새끼를 치면서 숫자가 늘어가는 표였다. 형의 이름 밑에 홍기표. 장태수, 그 아래에 각각 이민하와 김종대, 허신영과 한대호. 두 명으로 시작한 네트워크가 한 단계씩 내려가면서 4명에서, 8명, 16명, 32명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형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게 말이다. 왕창 늘어나면 내 통장에 저절로 수당이 착착 들어오는 기라. 우리 집 살구나무에 쳐져 있던 거미줄 맹키로 큰 놈이 잡히는 기라. 빈 틈 없이 빽빽하게 쳐 놓은 거미줄에 턱하니 장수잠자리가 와서 걸리듯이.”
      너는 뱀처럼 기다랗게 늘인 반죽에 밀가루를 고루 뿌린 다음 살살 앞뒤로 밀어주며 잘 달랜다. 네 손이 어느 누구를 그토록 사랑스런 손길로 만질 수 있을까. 너는 반죽이 말캉말캉 하면서도 쫀득쫀득해질 때까지 주무르고 또 주무른다. 반죽은 이제 네 살점의 일부가 된 듯하다. 더할 나위 없이 나긋나긋해졌다. 주인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 수없이 반죽을 어르고 달래던 너는 마침내 알아차린다. 반죽이 꽃을 피울 때가 왔음을. 너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다가 힐끗 유리창 너머를 보게 된다. 시선은 구경꾼들 사이에 낀 어느 소년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소년은 너를 마치 동화속의 인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형이 동화에 빠져 그물에 대해 환상을 가졌듯이. 
      소백산 깊은 산골에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동화책 한 권이 있었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진 뒤에야 너희 집에 오게 된 그것은 『샬롯의 거미줄』. 주인공 소녀가 아기 돼지를 껴안고 있는 표지 그림, 너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 무녀리로 태어나 곧 햄과 베이컨이 될 처지가 된 아기 돼지 윌버에게 갑자기 헛간 천장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
      올려다보니 기운은 없어도 뭔가를 다 알고 있는 듯 현자의 목소리를 지닌 회색의 암거미 샬롯이다. 샬롯은 거미줄에다 ‘대단한 돼지’라는 말을 써 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윌버를 다시 보게 만든다. 그 뒤로도 아기돼지가 사람들의 밥이 될 처지에 놓일 때마다 샬롯은‘멋진’,‘눈부신’,‘겸손한 돼지’라는 말을 거미줄에 써 놓아 그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샬롯은 오백여 개의 알이 담긴 알집을 윌버에게 맡기고는 죽어가면서 겨우 몇 마디 남긴다.
     “거미의 삶이란 참 지질하지. 고작 덫을 놓아서 파리나 잡아먹고 살다 가니까. 내가 너를 좋아해서 도와주긴 했다만, 꼭 너를 위해서만은 아, 아니야. 어, 어쩜 난 내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스, 승격시키고 싶었던 건지도……”
      동네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이 구절을 낭송해주던 형의 목소리가 지금도 네 귓가에 쟁쟁하다. 네가‘승격’이란 게 무슨 소린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형은 거미의 그물 치는 모습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미줄의 비밀을 알아낸 과학자들처럼. 그들은 거미의 배 밑 거미줄 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백질 실이 공기 중의 습도와 닿으면 끈끈한 점성에다 탄력성까지 갖춘 강력한 실크 실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비단실은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다섯 배, 때로는 스무 배나 더 강했다. 그것으로 짠 옷감은 가볍고도 강하고 탄력성도 좋아 방탄조끼나 항공기 부품에도 쓰일 수가 있다. 손수건을 짜서 가슴에 꽂거나 머리만 싸매도 총알을 막을 수 있다. 거미란 녀석, 참 여러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통통한 반죽을 일자로 늘여가면서 너는 곧게 쭉 뻗은 형의 다리를 생각한다. 보리밥에 시래기 된장국만 먹고도 도내 육상대회에서 우승했던 다리. 삼십 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느라 누구의 것보다도 탱탱했던 종아리였다. 너는 고인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기다란 반죽을 양 손으로 들어 올린다. 앞으로 세 번 돌려 잡아 늘인 다음 반으로 접어 겹친다. 두 가닥이 된다. 두 가닥이 네 가닥으로, 네 가닥이 여덟 가닥으로…… 너는 차곡차곡 면발을 늘려나간다. 이윽고 128개의 가닥이 순식간에 뽑아져 나온다. 아차, 이번에도 한 가닥이 끊어졌다. 고수들은 딱 3분 만에 128가닥을 에러 없이 뽑는다는데 너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3분 보다 더 빨리 뽑으면 면이 딱딱해지고, 더 오래 끌면 면이 삭아버린다. 끊어진 면발을 수습하고 왼쪽의 뭉쳐진 부분을 칼로 잘라 낸다. 맨 팔뚝에다 면발을 가지런하게 걸어 솥으로 가져간다. 면발을 지체 없이 끓는 물에 스르륵 밀어넣는다. 삶는 것도 예술이다. 너무 빨리 꺼내면 뻣뻣하고 너무 오래 두면 불어터져 씹는 묘미가 없어진다. 면발을 처음 끓는 물에 넣으면 가라앉았다가 잠시 후에 떠오른다. 그러고 나서 몇 가닥이 다시 가라앉을 때가 적기다. 옆에 서 있던 보조가 재빨리 면발을 조리로 건져내 찬물로 식힌다. 삶는 불도 중요하다. 센 불에 빨리 삶아야만 쫀득거림이 유지된다. 이 집에서는 도시가스를 쓰지 않고 일부러 화력이 센 LPG를 쓴다.
      비록 한 가닥이 끊어졌지만 잠시나마 하얀 면발을 맨 팔뚝에 걸쳐 들고 있는 너의 모습은 눈부셔 보였다.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을 누가 알아줄까. 아름다움은 남의 주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벽할 뿐. 너는 아무런 포즈도 취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반죽을 떼어내 면판 위에서 치대면서 길게 늘이기 시작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한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몇 번만 하고 나면 진이 빠져 손을 놓고 싶은데, 신기가 들린 모양이다. 이 페이스를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결심한다. 물 한 모금 마실 짬도 내지 않는다.
      한줌의 재로 변한 형을 고향으로 데려갈 때도 너는 쉬지 않고 걸었다. 넌 뭐든 시작했다 하면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르는 아이다. 그때는 그래도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희야’를 불러대면서. 고향 마을길로 들어섰을 때 너는 뒤에 매고 있던 배낭을 돌아보며 물었다.  
     “희야, 이래도 니 아직 그 노래 입가에서 맴도나? 어디 한 번 불러 보래이.‘나는야 꿈꾸는 네트워커/ 인간 그물 짜는 사나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한 감동 엮어가네/ 두 사람이 네 사람/ 네 사람이 여덟 사람/ 불어나는 네트워크/ 언제나 웃는 멋쟁이.’
      형이‘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곡에 맞춰 부르던 네트워커 주제가. 귀에 박히도록 들어 네 입에서도 그 곡조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네 직업에 맞게끔 개사를 해서. 
     ‘나는 꿈꾸는 수타면 짱/ 손으로 국수 뽑는 사나이/ 치댄 반죽 쭉쭉 늘여/ 허공에 띄웠다 내리 치고/ 다시 띄웠다 배배 꼬네/ 한 가닥이 두 가닥/ 두 가닥이 네 가닥/ 네 가닥이 여덟 가닥/ 언제나 웃는 멋쟁이.’
      벽에 붙은 도표에서 형의 인간 그물망이 늘어가는 동안 너의 손바닥에서도 조금씩 면발의 수가 늘어갔다. 묘하게도 형의 인간 그물망과 똑같은 비율이었다.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여덟에서 열여섯으로. 
      취직 시험에 번번이 낙방을 하고 풀이 죽어 지내던 형이 어느 날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합격이래. 구직 사이트 보고 지원했더니. 밑천 없이 돈 버는 직업, 네트워커.’그 소리에 왠지 불안해 오던 네 마음. 숫기라고는 통 없는 형이 많은 사람을 사귀고 설득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염려하는 네게 형이 안심하라면서 들려주던 이야기.
     “아, 이건 물건 억지로 떠다 안기는 그런 거 아니대이. 내가 써 보고 정말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 같이 누리게 하자는 기다. 니도 왜 어디서 맛있는 떡볶이나 순대를 먹고 나면 형 데리고 와야겠다, 싶었다고 안 캤나."
      얼마 후 너는 형에게 채근을 당하게 된다.
      "내가 준 바이오 유산균 니는 왜 안 묵노. 자기가 먼저 먹어 보고 몸이 좋아져야 남을 설득할 수 있을 거 아이가. 내 얼굴 요즘 빛이 나는 것 같지 않냐? 자 여기 팔뚝에 알통 생긴 거 함 만져 보래.”
      형이 팔을 뻗었다 굽혔다 하면서 기를 쓰고 알통을 짜내는 것을 보면서 아연해하던 너의 표정.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버린 형이 낯설게 느껴지던 날들. 일 년도 채 못 되어 벽에 붙여둔 네트워크 도표에 자꾸만 늘어만 가던 엑스 표. 부서져버린 그물망. 수타면 가닥이  끊어져 버린 것처럼 아찔해 오던 순간들. 빛이 나는 게 아니라 나날이 검어지고 초췌해져가던 형의 얼굴. 호감을 주기는커녕 처량남에 왕비호가 되어가던.‘언제나 웃는 멋쟁이’는 이제 없었다.  
      홀에서 다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짬뽕 8인 분.’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주말도 아닌데 웬 손님이 이렇게 몰려드는지 모르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반죽을 떼어내 면판 위에 올리고 늘이기 시작한다. 손님이 몰려온다는 것은 음식이 맛이 있다는 얘기. 수타면 집 자장면, 짬뽕 맛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에 있다. 
      반죽 덩어리를 양 손으로 열심히 치댄 다음 일자로 길게 늘인다. 그 위에 밀가루를 골고루 묻히고 나서 절반으로 접어 다시 길게 늘인다. 늘인 반죽을 들어 올렸다가 면판 위에 소리 나게 탕탕 치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다. 밀가루와 물 사이에 머리카락만큼의 틈새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옆에서는 너의 선배가 부지런히 반죽을 면판에 내려치고 있다. 오늘은 너도 선배 못지않게 손이 빠르다. 반죽을 다루는 재빠른 손놀림을 보자 고향집에 내려가 형의 재를 밥에 비비던 네 모습이 생각난다.     
      너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큰 양푼에 푼 뒤 항아리속의 재를 붓고 비벼댔다. 농약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해서 보냈다. 고개 너머 절에서 온 스님한테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형의 몸을 만지기가 두려워 너는 처음에는 어설프게 주걱으로 뒤적거렸다. 밥알은 뭉쳐지기만 하고 재가 골고루 묻지 않았다. 그러자 너는 팔을 걷어 부친 다음 주걱을 내던지고 두 손으로 밥에다 재를 섞기 시작했다. 뜨거워 입으로 후 후 불면서. 한참을 주무르자 형과 알몸으로 끌어안고 뒹구는 듯했다. 재가 너의 입과 눈, 코, 핏속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알알이 흩어진 뿌연 밥알 위로 물방울 한 개가 똑 떨어졌다. 잠시 후 또 한 방울. 잔뜩 일그러지는 네 얼굴.  
      재로 비빈 밥을 비닐 주머니에 담아 배낭에 지고 너는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등이 따스해왔다. 형이 마지막으로 네 등에 남기고 가는 체온이었다. 아무도 디디지 않은 하얀 눈길에 너는 형과 함께 첫 발자국을 찍어나갔다. 봄이면 칡뿌리를 캐러, 가을이면 땔감을 모으러 둘이 함께 올라가던 길. 양지바른 곳에 이른 너는 재 묻은 밥알을 사방으로 뿌렸다. 속으로 텃새들에게 외쳤다.‘박새, 직박구리 휘파람새, 동박새, 굴뚝새야, 희야가 돌아왔대이.' 하얀 눈 위에 점점이 형의 몸이 흩뿌려졌다. 따뜻한 밥알이 닿자 눈밭에는 퐁퐁 구멍이 났다. 너의 형은 눈밭으로 금세 스며들었다.
      너는 산을 내려오면서 지난 얼마간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형의 휴대폰에 불이 나게 띠릭 띠릭 문자 오던 소리. 어쩌다 형이 두고 나간 그 요술 같은 작은 판때기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던 신비스런 목소리.‘수줍은 네트워커, 당신에게. 네트워킹이야말로 민초들의 자본주의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도 이 업계에 투자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단, 하루에 세 번 자신에게 물어 보라. 나는 모집 전문가인가, 설명전문가인가. 동기부여 전문가인가. 20만 명이라는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를 키워낸 존 해밀턴도 5년 동안은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다. 묵묵히 10년은 투자하라. 뿌린 대로 거둔다. ‘진전이 없을 때는 AVC를 재점검하라.’ABC가 아니고 AVC. 외모와 목소리와 콘텐츠.‘외모가 60 퍼센트다. 인상, 헤어스타일, 옷차림을 다시 돌아보라. 그 다음 30퍼센트는 목소리. 발음, 어조, 스피드다. 나머지 10퍼센트가 상품의 질과 콘텐츠. 아침마다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며 형이 하던 말.   
     “네트워커는 언제 어디서든 성공의 이미지를 팍팍 풍겨야 되는 기라.”
      형이 밥은 안 먹어도 끼니때 마다 거르지 않고 먹는다는 그 환약도 미스터리였다.‘노인에겐 회춘을, 청년에게는 영원한 젊음을’이라는 표어가 새겨진 약병에 눈길이 간 것은 형이 심한 구토증세로 입원을 하고 난 뒤였다.   
     ‘대두 분말, 복분자, 황기, 오미자, 가시오가피, 인삼, 사상자, 계피, 황백, 황금 등 스무 가지가 넘는 한약재와 프로바이오틱스. 프로바이오틱스. 그게 뭔지 너는 모른다. 형의 애타는 호소에도 한 알도 먹지 않고 버티던 너. 하지만 형이 먹는 것까지는 결코 말리지 않았던. 너무 자책하진 마. 그런 게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형제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척도도 되고.
      네가 출근한 뒤 원룸에 혼자 남은 형의 모습은 CCTV가 없어도 비디오였다. 물건값을 받지 못해 통장에는 마이너스가 늘어갔다. 빚 독촉은 심해지고……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환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들이켰다. 평소에 먹던 양의 몇 배였다. 거울 앞으로 간 그는 웃통을 벗고 팔의 알통을 모아보았다. 복근이 생겼는지 배에 불끈 힘도 줘 보았다. 힘이 들어간 얼굴은 울룩불룩 험상궂은 상이 되고 끼니를 걸러 푹 꺼진 배에서는 복근이라고는 생길 기미도 없이 꼬르륵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자존심 때문인지 좀체 속내를 털어놓지 않던 형이 어느 날 저녁 어렵게 입을 뗐다.
     “나는 아무래도 찍쇠도 닦쇠도 못 되는 갑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에 너는 눈을 크게 뜨고 형을 쳐다보았다.  
     “원래 구두닦이 용어인데. 닦을 구두 모아오는 사람을 찍쇠라 카고, 모아 온 것을 윤이 나게 닦는 사람을 닦쇠라고 칸다더라. 이 업계로 말하자면 사람을 찍어 데려오는 이가 모집꾼이고 모인 사람들을 갈고 닦아 달인으로 광나게 해주는 이가 닦쇠인 기라. 회사에서 나보고 찍쇠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해 보라 카는데……”
     “그리 해 보믄 될 거 아이가.”
     “그게 쉽지가 않태이. 카톡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에서 찾아봐도 꼭 내 맹키로 아무 대책 없는 숙맥들만 걸려드는 기라. 밑에 새끼 같은 거 칠 깜냥이 못 되는 녀석들. 니 친구들도 그랬잖나. 물건만 널름 받아가고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10인분의 짜장면과 8인분의 짬뽕용 면발을 감당하느라 너와 선배는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면발을 뽑아댄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뭔가가 기어코 네 속에서 폭발한다.
     “희야, 그렇게 간다고 해서 니도 샬롯처럼 승격이 되는 줄 아나. 천만에. 그건 개죽음인 기라. 개죽음. 샬롯은 위태로웠던 아기돼지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내고 500개도 넘는 알을 낳았대이.”
     ‘개죽음’이라는 말을 생각해 내자 너는 속이 다 후련해진다. 그러다 어쩐 일인지 너는 머리 밑이 오싹해진다. 가슴이 섬뜩해 온다. 안에서 뭔가가 불끈 들고 일어난다. 형이 스물아홉 해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목숨이 툭 꺼져 버린 것에는 분명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에서 나오는 오기. 너는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문다. 반죽을 늘이던 네가 별안간 동작을 뚝 멈춘다. 마치 손을 털고 밖으로 나갈 듯한 자세다. 네 몸짓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에 이 왕그물신도 잠시 찔끔한다. 
      형의 재를 산에 뿌리고 내려와서 마당에 서 있던 살구나무를 봤을 때도 너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겨울인데도 거기 거미줄이 걸려 있었다. 너는 당장 헛간에서 도끼를 꺼내와 찍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겨울나무는 도끼질 몇 번에 쉽게 넘어갔다. 도끼자루를 놓고 일어서던 네가 흠칫했다. 살구나무가 사라지고 없는 데도 거미줄이 공중에 혼자 뎅그러니 떠 있었다. 철사로 짠 듯 더 탱글탱글하고 강력해 보였다. 사람까지도 매어 달만큼. 너는 홀연 네 손으로 뽑은 수타면이 철제 그물이 되어 네 몸을 덮치는 환상을 보았다. 벗어나려 바둥거릴수록 그물은 더 찰싹 달라붙어 목을 조일 태세였다. 너는 도끼로 거미줄을 후려쳤다. 하지만 거미줄은 한 올도 끊어지지 않고 말짱한 모습이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히죽히죽 비웃는 듯한 표정. 그걸 피해 집으로 내려왔는데 그 원조가 널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 거미줄이 지금 네 눈앞에 떠서 알짱거리고 있는 것이다. 네 놈이 그 거미줄을 못 본 체 눈감고 지나간다면 나도 널 건드리지 않을 텐데. 하지만 끝까지 나와 맞장 뜨려고 한다면 하는 수 없다. 그물신의 모토는 언제나 그렇듯 어느 한국영화 제목과 같다.‘인정사정 볼 것 없다.’내가 연식은 오래 됐어도 기운이 빠져 구물거리는 약골 그물신이 아니다. 
      이런, 너는 손으로 눈앞의 뭔가를 내려칠 듯하다가 멈칫한다. 팔다리를 와들와들 떨기 시작한다.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이 왕그물신의 존재를 눈치라도 챈 것일까. 너는 다시 면판 앞으로 가서 일자 반죽을 길게 늘이기 시작한다. 작전을 바꾼 듯하다. 이렇게 나오면 왕그물신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디 한번 붙어 보자. 걸맞은 맞수를 만나 나도 오랜만에 살맛이 나는구나. 나도 목숨 걸고 저항하는 놈을 만나야만 대어를 낚는 느낌이거든. 내가 너의 무결점 면발에 탄복해 물러갈 줄 아는 모양인데. 순진한 녀석. 내가 그 정도로 만족할 것 같나. 내가 기스면을 원한다면 어떻게 할 테냐. 1024가닥. 상상이나 할 수 있어? 면발은 가늘어질수록 툭툭 더 잘 끊어지는 법.
      너는 늘인 반죽을 반으로 접은 다음 밀가루를 치고 다시 주무르기를 계속한다. 어떻든 너는 내 그물에 초대받은 또 한 마리의 장수잠자리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놈을 건드리는 것이 조금 짠하기는 하지만 퍼덕거리는 싱싱한 놈을 덮쳐서 낚아챌 때의 짜릿함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본능의 유혹이다. 너는 길게 늘인 반죽에 냉소다 물을 바르고 밀가루를 친다. 반죽을 반으로 접어 뭉친 다음 살살 문지른다. 다시 들어 올렸다 면판에 탕탕 친다. 옥다물었던 입이 조금 벌어지고 반죽을 노려보던 매서운 눈빛이 그윽해졌다. 어쩐지 수상하다. 혹시 반죽을 형의 재로 빚은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너는 그것을 다시 반으로 접은 다음 공중에 띄워 세 번 앞으로 돌리면서 늘여나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은 세기로. 팔과 허리가 앞뒤로 율동을 할 때마다 면발은 파도처럼 출렁이며 우아한 곡선을 그려낸다. 흰색의 모자와 제복에 걸쳐져 일렁이는 새하얀 면발. 손가락에 끼운 면발이 하도 야들야들해 손이 면발을 애무하는지 면발이 손을 애무하는지 헷갈린다. 마침내 손가락 끝에서 온 몸으로 전해오는 짜릿한 오르가즘. 면발과 하나 된 몸뚱어리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 없이 흥겹게 돌아간다. 단계마다 하나하나 확인하던 버릇도 이젠 잊어버렸다. 한두 가닥 끊어지든 말든 상관도 없는 듯하다. 그저 네 몸이 알아서 수타를 수행하고 있다. 아라크네의 후예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는데 그래. 하나 둘 셋, 둘 둘 셋. 셋 둘 셋. 넷 둘 셋. 이건 네가 너의 ‘희야’와 함께 추는 수타 춤이 아니냐. 나를 꼬셔내어 네 그물에 걸리게 하려는 수법이지. 내가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 너의 은밀한 바람이었어.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해 보자. 왕그물신도 머릿속 그물 돌기가 근질근질해 오기 시작한다.

    박찬순/ 경북 영주 출생.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 한국소설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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