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비문飛蚊_이병순


  • 단편소설

     

    비문飛蚊

     




                                                                                               이 병 순

     




    소쿠리의 사과들은 과수밭에서부터 멀쩡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는 낙과였다가 밭의 여러 진드기들에게 물어 뜯겼거나 들쥐들에게 파 먹혔을 것이었다. 수리가 밭에서 솎고 추려온 사과들은 거의 얼금뱅이, 깨진 것, 쥐가 갉작거린 것, 벌레 먹은 것, 꼭지가 문드러진 것, 짓물러 움푹 파진 것 등이었다. 소쿠리에 파과를 담아 놓은 지도 열흘이나 흘렀다.

    부엌의 선반과 살강을 달그락거리는 쥐가 아침의 적막을 깨뜨린다. 수리는 사과 소쿠리를 들고 툇마루에 나간다. 사과를 차례차례 헛간 옆으로 던진다. 물컹한 사과들을 만지자 쉬파리들이 후르르 날아오른다. 쉬파리 떼들이 후룩 수리의 얼굴을 덮치다 이내 허공으로 치솟는다. 손에 묻은 사과의 농액은 추깃물 같다. 풀덤불 속에 묻힌 사과들은 또 다른 미물의 집적거림을 받으며 먼지와 햇빛과 바람에 버무려질 것이다. 던져진 사과들은 풍장으로 제 생을 갈무리할 것이다.

    수리도 깨어나지 못했다면 풍장을 치렀을 거라 했다. 멍석에 둘둘 말린 수리를 안유백이 들판에 내던져 버리라 호통을 쳤다는 것이었다. 곤장 50 대까지는 견딜 만했다. 멍석에 둘둘 말릴 때만 해도 설렁줄을 잡고 고함을 지르는 안유백 목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여종들의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철썩철썩 허벅지를 내려치는 소리가 아련하다 싶었을 때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잃은 지 딱 하루 만에 깨어났다. 눈을 뜨자 머리맡에는 동이아범이 지황탕 약사발을 들고 있었고 동이어멈은 더운 물에 무명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제 부모를 따라온 동이는 윗목에서 종지에 든 조청을 손가락으로 파 먹으며 주위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옆구리를 더듬었으나 그림주머니가 없었다. 늘 꿰차고 있던 주머니였다.

    지 애비 때려죽인 원수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걸세, 지독한 놈! 동이아범은 지황탕 약사발을 수리의 입에 물리면서 치를 떨었다. 상두는 어찌 됐는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이만 하기에 다행이야, 어서 발딱 일어나야지. 동이어멈은 더운 무명수건으로 벽에 기대앉은 수리의 이마와 얼굴을 닦았다. 턱뼈와 관자놀이가 당겨 왔다. 비로소 곤장을 참다 어금니를 세게 악다물었던 전날이 생각났다. 모처럼 동이 식구가 와서 됫박만한 방은 꽉 찼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두가 덕이를 찾아 꼭꼭 숨어 잘 살았으면 한다는 말을 할 때 동이아범은 목소리를 낮췄다. 안유백의 오촌 당숙이 도망간 노비들을 잡으러 갔다가 노비들한테 되잡혀 작두에 잘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동이아범은 또 꺼냈다. 쉿! 동이어멈은 제 남편을 바라보며 검지를 코에 갖다 댔다. 안유백도 언젠가는 노비들한테 맞아 죽을 날이 있을 거라는 말은 노비들끼리 쉬쉬거리며 했던 말이었다. 빨래터나 우물가, 장시나 들판에서 도망간 노비와 그들을 잡으러 간 상전들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예사였다. 이제 돈이 양반이고 상전인 세상이라고 이야기는 마무리되곤 했다.

    “안에 있어?”

    푸드득거리는 새소리 사이로 동이아범 목소리가 끼어든다. 동이아범이 댓돌 앞을 서성이는 모습이 장지문에 비친다. 수리는 동살이 방안에 가득 찬 것도 여태 모르고 있었다. 펼쳐놓은 그림을 한쪽으로 밀친다.

    “오랜만에 붓을 잡았구만.”

    동이아범은 방바닥에 놓인 그림을 보며 마루에 걸터앉는다.

    “이것 챙겨.”

    동이아범이 건네는 종이는 수리가 상두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펼치자 상두가 볏단에 기대앉은 모습이 환하게 나타난다. 화선지 테두리는 그슬려 있고 상두 이마 가운데 불구멍이 뚫려 있다.

    “아궁이에 들어가는 걸 동이엄마가 꺼냈다더라고, 한 발만 늦었어도 타고 없어졌겠지.”

    이제 이 그림이 아니면 상두를 볼 수 없다. 수리가 상두를 찾아 밤길을 떠난 다음날 아침에 안유백이 그의 방을 뒤져 그림을 가져갔다. 시렁 위에 올려 놓은 그림은 움켜쥐기 편했을 것이다.

    상두가 도망갔던 그날도 청명했다. 수리는 과수밭에서 파과를 줍고 거스러미를 훑는 일을 일찌감치 끝내고 논두렁을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망념 없는 가슴처럼 후련했다. 활래정에서 새 지붕을 이을 줄 알았던 상두가 팔베개를 하고 볏단에 기대고 있었다. 수리는 얼른 지게를 내려놓고 옆구리에 꿰찬 주머니를 뒤져 지필묵을 꺼냈다. 상두의 감은 눈매를 그릴 때는 손에 힘을 뺐다. 유건 속에 삐져나온 앞머리는 붓을 살짝 눕혀 그려야 했다. 밑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상두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상두가 누리는 잠포록한 시간을 깨고 싶지 않아 수리는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볏단보다 더 고요해 보이는 상두를 표현하려면 어떤 색깔이 필요할까 생각하며 맑은 빛깔을 띤 국화를 골랐다. 집근처 탱자나무 울바자 부근에는 국화가 지천이었다. 꽃잎을 똑똑 따자 알싸한 국화향이 맴돌았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파리를 쫓고 있을 때 동이어멈이 고샅길에 숨 가쁘게 뛰어오고 있었다. 상두가 사라졌어. 하루 종일 상두가 보이지 않았어. 수리는 지그시 쥐고 있던 국화꽃잎을 지게에 담고 작대기로 지게를 받쳤다. 상두가 도망가기 전날 밤에도 행랑채에서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는 동이어멈의 말을 채 듣지 못하고 수리는 들판으로 달려 나갔다. 상두가 하루 종일 어느 음지를 돌고 돌아 볏단에 기대고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그걸 따질 때는 아니었다. 들판은 어느덧 암회색에 젖어 있었고 상두 없는 들판은 세상이 텅 빈 듯 했다.

    온 산과 들판을 헤매다 돌아온 깊은 밤이었다. 그리다 만 그림을 꺼냈다. 볏단 뒤의 노을 진 하늘은 찧어 으깬 국화꽃잎 즙으로 물들였다. 백분을 섞은 꽃잎 즙은 엷은 주홍빛이 우러났다. 배코를 친 듯 벼가 싹둑 잘린 논바닥은 보풀자국 찍듯 처리했다. 노을에 색을 입히는 것과 상두 저고리 곁마기에 덧댄 헝겊쪼가리와 늘어진 고름들에 공이 많이 갔다. 완성한 그림을 밀쳐놓고 보았다. 상두는 여전히 볏단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소처럼 크고 맑은 상두 눈빛이 그새 그리웠다. 입동이 며칠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두의 옷은 얇은 무명이었다.

    이부자리를 펼쳤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수리는 모아 둔 엽전꾸러미와 몇 닢 은전을 챙겨 걸망을 꾸렸다. 우물가 뒤쪽으로 난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을 벗어났다. 상두가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라도 쥐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수리는 상두를 찾지도 못하고 사흘 만에 붙잡혀 왔다. 곤장질을 당하는 동안 상두가 간 곳이 어디냐고, 작년 봄에 도망간 덕이도 수리가 빼돌린 것이 아니냐는 안유백의 추궁과 다그침은 반복되었다. 수리는 도망을 간 게 아니라 상두를 찾으러 갔을 뿐이라고 몇 번이나 항변했지만 안유백은 수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상두와 수리의 연이은 도망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한 뒤 이루어진 모사라고 단정 지었다.

    “꼭 상두가 여기 앉아 있는 것 같구만. 안유백이 왜 자네한테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그렇게 목을 매는지 알 것 같네. 이번에 안유백 하자는 대로 해주고 자네 마음대로 그림이나 실컷 그리면서 살라고.”

    동이아범의 입가는 주름이 잡힌다. 그는 스물 중반에 당시 별당 시중꾼이었던 동이어멈과 혼례를 치렀지만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없었다. 마흔 넘어서야 얻은 동이를 금지옥엽 키우고 있다. 그는 안유백과 같은 나이지만 안유백보다 몇 살 많아 보인다.

    “그래도 자네는 언제부턴가 우리와는 달리 약간은 자유로운 몸 아닌가 말일세.”

    사람들은 수리가 면천이나 된 듯 여겼다. 어노적, 백대웅이 천민이지만 시 짓는 재능을 타고났기에 여러 선비들이 돈을 내어 그들을 면천시켜주었다는 것이었다. 안유백과 어울리는 선비들 중에도 수리가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놓아 주라고 안유백을 설득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안유백의 반응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암튼 내일 오동각에 가서 잘 하게. 난 볏단 나르러 가야겠네, 약 마저 챙겨 먹으라고.”

    동이아범은 헛간 옆에 넘어져 있는 삽을 세워 놓고 사립문을 빠져나간다. 사립짝 너머 햇살이 환하다. 절구와 갈퀴, 호미, 낫 등이 널브러진 헛간 주위로 버석한 나뭇잎이 수북하다. 마당가의 풀덤불들은 바싹하게 메말랐다. 초겨울의 쌀쌀한 아침, 정신이 번쩍 맑아 온다. 박태기나무와 대나무가 바람과 뒤섞여 서로 비벼대는 소리가 삽상하다.

     

    도망간 노비를 찾음. 이름은 쇠돌이.

    나이는 17세. 지난 10월 초에 노비 하나가 도망가 돌아오지 않음. 노비 차림은 닳아서 구멍 난 누른 베옷을 입고, 해진 짚신을 신었음. 왼쪽 이마에 ‘강비(姜卑)’라고 새긴 인두자국이 있음. 혹 이 노비를 본 군자가 있으면 통기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보상으로 엽전 천 냥과 무명 백 필을 드리리라. 대안문 강상천 알림.

    대장간 기둥에 붙은 방(訪) 앞에 몇 사람이 모여 있다. 도망간 노비를 찾는다는 방은 갈수록 늘었고 그것은 더 이상 저잣거리의 주요 화제가 되지 못했다. 이마에 인두질을 새겼다는 것은 세 번 도망가다 붙잡혀 왔으며 이번에 잡히면 저 노비는 노비 주인의 선처가 없다면 평생 관아에서 보내게 될지 모른다.

    “곧 엄동설한이 닥칠 텐데 베옷으로 어쩌려고 쯧쯧. 열일곱이면 우리 작은아들과 같은 나이구만.”

    등짐으로 장독을 실은 사내가 기둥 앞에서 뒷걸음쳐 나오며 혼잣말을 한다. 도망간 노비가 젊을수록 주인은 포상금을 많이 내걸었다. 열일곱 살이면 중년 노비 두 명 몫의 일을 해 낼 나이다. 수리는 열일곱 살에 과수밭 일을 주로 하면서 견마잡이, 나무꾼, 급수비, 발등거리를 겸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종일 일해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 기름, 쌀, 옷감 따위라면 인생만큼 싱거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때도 열일곱 살부터였다. 벌레에 깨물린 것이나 멍든 과일을 소재 삼았던 때도 열일곱 무렵부터였다. 살구, 자두, 참외, 수박, 포도, 배, 사과 등 과수밭에는 언제나 파과가 지천이었고 날벌레가 버글거렸다. 그 전까지는 개울에 앉은 아낙이나 지게를 진 농부들의 모습이나 넓게 트인 과수밭 등을 주로 그렸다.

    “최 화공이 여기 어쩐 일인가?”

    화구점상 주인 방 씨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몸은 단단해 보인다.

    “그냥 바람도 쐴 겸해서 나와 봤습니다.”

    “아재, 이것 보세요.”

    동이는 편자박이 노인이 말발굽에 편자를 박는 것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노인이 편자를 말발굽에 대고 징을 박아 대갈마치로 내리치자 말이 휘이이잉 하고 신음을 뱉는다. 그 소리에 동이는 뒤로 몇 발 물러선다. 수리는 천막을 친 곳으로 가는 방 씨 뒤를 따른다. 둘은 동이가 잘 보이는 곳에 선다. 천막 아래 참빗장수와 망건땜장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상두 무덤에 놓을 막걸리와 포 종류를 사고 바람이나 쐴 겸 장시를 나서던 중 들머리에서 혼자 노는 동이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외진 대숲 골에 사는 동이는 어울릴 친구가 없었다.

    “자네 친구가 화선지 뭉치를 사 갔는데 받았지?”

    받았다. 수리가 방 씨 화선지만 쓴다는 것을 잘 아는 상두는 장시를 들를 때면 간혹 방 씨 화구점상을 기웃거렸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 되는 대로 한 절이나 반 절씩 화선지를 사 주었지만 한 뭉치는 처음이었다. 깨를 몇 됫박 털어야 화선지 한 뭉치를 살 수 있다. 수리가 무슨 돈이 있어 화선지를 뭉치 째 샀느냐고 묻자 상두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아까 장시에서 덕이를 봤다는 사람을 만났어. 소쿠리 등짐장수였는데 덕이가 묘향산의 어느 암자에서 공양주로 있더래. 덕이 찾으러 갈 테야. 수리는 화선지 뭉치를 매만지며 상두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문고리를 바짝 잡아당겼다.

    “그러잖아도 자네를 만나고 싶었어. 연암골 어느 선비가 자네 그림 한 점 사고 싶어 해.”

    팔 그림이 없다. 안유백이 가져간 뒤로 그가 찢어버렸다는 말도 있었고 불쏘시개로 태워버렸다는 말도 있었다. 방 씨는 화구점상뿐만 아니라 화상(畵商)까지 겸했다. 그는 수리가 화선지를 사러 갈 때마다 새로 사들인 그림을 보여주곤 했다. 그것은 수리의 안목을 틔워 주려고 했다는 것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화선지와 바꾸는 수리 물건은 다양했다. 자리 짠 것, 짚신 몇 켤레, 들꽃다발을 묶은 것, 파과 망태기 등이었다. 언젠가 방 씨는 수리에게 붓의 크기대로 황모필을 몇 자루 선물로 주었다. 황모필은 단전의 1년 녹을 모두 털어야 겨우 살 수 있는 붓이었다. 수리는 그에 보답하기 위해 그림 몇 점을 주었다. 방 씨는 그것을 김홍도에게 보였고 김홍도는 여러 선비들에게 보였다.

    수리가 선비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는 그의 그림은 안유백의 된장독 덮개나 불쏘시개로 쓰이곤 했다. 이웃마을에서 노비들이 도망갔다는 소문이 잦기 시작하자 안유백은 밤에 집안 구석구석을 돌곤 했다. 수리의 방에도 불쑥 나타나 방바닥에 놓인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호롱불빛을 받는 파과들은 발그스름했고 그 위를 나는 몇 마리 쉬파리는 얼룩처럼 찍혀 있었다. 많고 많은 과일 중에 왜 하필 썩은 것들이냐! 안유백은 수리의 방을 나가면서 바닥에 깔린 그림을 꾸깃거려 들고 나갔다. 다음날 새벽 일찍 본채의 아궁이에 가면 전날 빼앗긴 수리의 그림이 갈비더미 사이에 던져져 있곤 했다. 안유백은 가끔 놀러 온 손님을 이끌고 과수밭을 어슬렁거렸다. 그에게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꼭 그려 보고 싶다며 흐뭇한 눈길로 포도밭을 바라보곤 했다. 그와 함께 과수밭을 거니는 손님이 시인일 때와는 말이 달랐다. 이 달디 단 과육이 품고 있는 자연의 숨결을 시로 읊고 싶소만 그런 재능이 내게 없음에 통탄할 뿐이구려. 시인은 갓을 새로 여밀 뿐 안유백의 말에 아무 대꾸가 없었다. 이게 과일이야? 우리 피고름이지. 안유백 일행이 지나고 나서 상두가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상두 그 친구 일은 참 안 된 일일세. 이제 세상이 달라져 안유백도 제 노비라고 마음대로 어쩌지 못할 것이야. 그나저나 내일 안유백 초상화 그린다면서? 다들 자네가 그리는 초상화에 관심이 많더라고.”

    “예,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킬지 말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약속은 안유백이 먼저 어겼다. 수리는 멍석말이를 당한 이튿날 안유백을 찾아갔다. 온 몸이 쇠줄에 묶인 듯 무거웠고 허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었다. 초상화 그릴 날짜가 몇 남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그날 소인의 깜냥대로 최선으로 다해 초상화를 그리겠습니다. 초상화를 잘 그려주는 대가로 소인을 면천시켜주신다고 하셨지요? 나리, 소인 대신 달아난 상두를 찾지 말고 놓아 주셨으면 합니다. 소인이 상두 일의 몫까지 다 해낼 테니 상두를 놓아 주십시오. 수리는 같은 말을 두어 번 반복했다. 안유백은 수리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상두를 운운하는지 의심쩍다며 대답에 뜸을 들였다. 그러다 곧 수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노라 약속했다.

    약속을 하고 난 사흘 만에 상두는 잡혀왔다. 포상금을 노린 누군가의 제보로 파주에서 붙들렸다. 안유백은 포승줄에 묶인 상두를 들판으로 끌고 갔다. 평생 먹여 주고 입혀 주었더니 배신하다니, 그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너희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겠다! 안유백은 사람들이 둘러싸인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굶주린 맹수 같았다. 언젠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하던 상두에게 동이 째 물을 붓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간질에는 물벼락이 약이라며 몸을 뒤트는 상두에게 그는 물동이를 뒤집어씌웠다. 수리는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상두를 들쳐 메고 와 방에 눕혀 온 몸을 주물러주었다. 앙상했던 상두 몸피가 생각났다. 나리! 소인과 했던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당장 매질을 멈춰 주십시오. 수리는 상두가 덕이를 찾으러 가도록 놔 주어라는 말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덕이가 도망가기 전에 안유백이 밤이면 간혹 덕이 방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불에 기름을 끼얹는 짓은 하지 말아야 했다. 퍽퍽. 몽둥이가 멍석을 내리쳤지만 상두의 모질음이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멍석을 펼치자 상두는 죽어 있었다. 고문이 끝나고 나서 그에게 닥칠 고통이 무엇인지 상두도 잘 알았을 것이다. 상두는 평생 안유백의 고통을 견디느니 혀를 깨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시체는 그대로 들판에 버려졌다. 안유백은 상두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은 하수인들을 크게 나무랐다.

    “꼬마 데리고 와, 저기 주막에서 국밥이라 한 그릇씩 하자구.”

    동이는 어느새 풍각쟁이를 졸졸 따라가고 있다. 수리는 동이를 향해 천막 밖을 나선다. 날라리를 부는 사내를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동이 얼굴에 오후 햇살이 환하다.

     

    “아재, 나무에 매달린 사과도 많은데 왜 땅에서 주운 썩은 사과를 무덤 앞에 놓아요?”

    엿이 입에 든 동이의 발음은 어눌하다. 수리는 절을 마치고 막걸리를 새로 따른다. 봉분의 흙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내년 봄쯤에는 풀이 돋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상두와 함께 꼴담살이를 하며 형제처럼 지냈다. 상두는 수리보다 한 살 적지만 형처럼 믿음직스러웠다.

    절을 할 때마다 옆구리가 결린다. 만신창이가 됐던 몸은 아직도 삐거덕거린다. 장시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싶어 서둘러 걸었다. 어차피 상두 무덤에 오려면 사과밭을 질러 와야 했다. 오줌 누고 싶다는 동이를 사과밭 귀퉁이로 이끌었다. 동이가 오줌 누는 동안 수리는 띄엄띄엄 떨어진 사과를 주워 망태기에 넣었다. 황태포와 함께 무덤 앞에 놓을 요량이었다. 사과는 거의 끝물이었다.

    사과나무에 듬성듬성 남은 열매는 며칠 안에 모두 따서 곳간에 저장할 것들이다. 매달려있는 사과를 보며 침을 삼키는 동이에게 수리는 장시에서 사 갖고 온 깨엿을 쥐어 주었다. 파과만이 수리 것이었다. 설과 대보름을 쐬고 봄에 줄줄이 있는 안유백의 제사 때 써야 할 사과다. 그런 곳에 쓰고도 곳간의 사과는 남아 넘쳤다. 초여름까지 곳간을 버티다 사과는 곪아 문드러졌지만 노비들 누구도 곳간의 그 사과를 입에 대지 못했다. 쉬파리가 우글거리면 식초로 만들기에도 이미 늦은 때였다.

    “아재는 왜 김홍도 아저씨처럼 우리가 서당에서 공부하는 것은 안 그리고 썩은 과일이나 파리, 모기, 거미 같은 것만 그려요? 김홍도 아저씨는 전에 대장간 아저씨들이 일하는 것도 그렸대요.”

    동이는 무덤 앞에 놓인 사과를 보며 묻는다. 사과는 굼벵이가 파먹은 흔적이 있고 밑동이 찍혀 거뭇하게 말라 있다. 동이는 방금 과수밭에서도 떨어져 썩은 사과를 꼬챙이를 뒤집으며 한참동안 그 속에 꼬인 벌레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동이가 꼬챙이로 사과를 뒤집자 벌레들은 후르르 날았다. 진물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벌레들은 창백하고 말갰다. 풍장에 든 사과들은 모두 날벌레들을 게워내고 있었다.

    이 파리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 썩은 것은 무엇입니까? 언젠가 안유백은 김홍도 앞에 펼쳐진 수리의 그림을 보고 따지듯 물었다. 안유백이 김홍도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몇 년 전이었다. 모두들 수리의 그림을 추어올리는데 그 까닭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안유백이 수장한 중국 화가들의 그림들을 차례차례 펼쳐 보인 다음이었다. 중국 것이라면 고삐나 재갈은 말할 것도 없고 종지까지 사들이는 안유백이었다. 그날은 김홍도와 몇 명의 선비들이 초대되었다. 수리는 복숭아에 붙은 유충을 떼 내다 급히 활래정에 불려왔다. 이놈이 수리입니다. 안유백은 소매 깃으로 땀을 닦고 있는 수리를 좌중에 소개했다. 여기 나리들께서 네 그림을 보고 싶어 하신다, 한 번 꺼내 보거라. 안유백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기름졌다.

    수리는 허리춤에 꿰차고 있던 그림주머니를 헐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장을 펼쳤다. 복숭아 씨앗 속에 벌레가 꼬물대며 파고드는 것, 나비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 쪼개진 수박의 붉은 과육에 벌레들이 우글우글 꼬여 있는 것 등의 그림들이었다. 우리는 이미 구면이지요? 술상 맨 안쪽에 앉은 김홍도가 고개를 내밀었다. 언젠가 방 씨를 따라 그의 집에 가서 봤을 때의 모습에 비해 김홍도의 얼굴은 초췌하고 쇠약해 보였다. 멸해가는 생명을 이토록 생명감 넘치게 표현한 그림쟁이는 조선에 없었소. 썩은 것이 이렇게 크게 호흡하는 듯한 그림도 처음입지요. 여기 이 그림도 그대 그림이오? 이것은 얼마 전에 제비 바위골 어느 선비한테 내가 아끼는 두꺼비 연적과 바꾼 것이오. 김홍도가 내민 수리의 그림은 복숭아가 궤짝 째 썩어가는 그림이었다. 그 위로 쉬파리가 무더기 째 그려져 있었다.

    수리는 그의 그림을 두고 ‘멸해가는 생명’ ‘호흡’ 따위의 어휘가 동원되어 설명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을 들은 뒤부터 수리가 붓질을 할 때면 머뭇거림이 잦았다. 썩은 과일을 그릴 때마다 멸해가는 생명을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고 그것에 호흡을 불어넣어야 할 것만 같았다. 썩고 물크러진 것은 바람과 시간의 분비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수리에게 김홍도의 설명이 괜한 팃검불로만 여겨졌다. 자, 한잔들 듭시다. 모두들 수리의 그림에 고개를 빠뜨리고 있자 안유백이 정적을 깨며 잔을 들었다. 수리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 복숭아밭으로 달려갔다. 나무에 매달린 복숭아는 모두 벌레가 파먹은 듯 보였다.

    “양기 형아도 그림 잘 그린다요? 그 형아도 자기 아버지 닮았나 봐요.”

    “동이는 좋겠구나. 서당에서 공부도 하고 그런 형들과도 어울려 놀고.”

    “나 그 형아 집에도 가 봤어요. 형아 집에 그림 많아요.”

    수리는 방 씨를 따라 두어 번 김홍도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싸한 묵향과 세월에 절어 있는 종이 냄새와 첩첩이 쌓인 화첩들에 눈이 어리둥절했다. 장정들이 둘러싼 틈에 사내 둘이 씨름하는 그림, 무동이 악단에 맞춰 춤추는 그림, 여인네들이 베 짜는 모습을 담은 그림 등 수묵담채 그림이 많았다. 그의 그림 중에 수리의 눈길을 잡아맸던 것은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였다. 그림이 말보다 더 큰 말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했던 그림이었다. 게가 갈대꽃을 악문다는 김홍도의 발상도 대담했지만 거침없이 벌어진 게의 발이 눈길을 잡아맸다. 게는 제 디딜 곳이 어디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터를 넓게 잡고 당당하게 발을 벌리고 있었다.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 ‘바닷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라고 그림 위에 써 놓은 글씨마저 거침없는 필체였다. 힘 앞에 주눅 들어 버정거리며 앞으로 걸을 것이 아니라 천성대로 당당하게 옆으로 걷겠다는 게의 뚝심이 전해진 그림이었다. 갈고리처럼 쩍 벌어져 묵색깔이 짙고 두꺼운 게의 발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사과가 엿만큼 달달하다요.”

    동이 입안에 사과가 가득 찼다. 수리가 썩고 벌레 파먹은 곳을 깨물어 뱉어내고 동이에게 건넨 사과다. 장시에 파과 망태기를 걸머메고 갈 때마다 금세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도 파과가 멀쩡한 과일보다 단맛이 짙었기 때문이었다. 수리의 파과를 사기 위해 장시를 찾는 단골은 갈수록 늘었다. 파과 더미에서 나온 벌레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것을 보는 것도 좌판의 재미였다. 손님을 기다리는 틈틈이 그린 그림들도 방 씨가 사 갔다. 파과 무더기와 연기처럼 그 위를 피어오르는 쉬파리 떼가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동이의 누비무명저고리는 얇아 보인다. 지는 해에 비친 동이의 눈동자는 구슬처럼 맑다. 수리가 동이 앞에 등을 내밀자 동이는 그의 등을 피해 앞서 걷는다. 서당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동이는 얼른 형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수리에겐 열 살짜리 동이가 아기처럼 보일 뿐이다.

    웅덩이 옆 돌감 밭에서 아이 몇이 작대기로 감나무가지를 내리친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매달린 감은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다. 밭두렁 사이에 떨어져 터진 감 주위로 날벌레들이 뱅뱅거린다. 수리는 아이들에게 몇 남지 않은 감을 까마귀나 까치먹이로 두라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야산의 주인 없는 감나무가 아니면 아이들이 작대기질 할 만한 과일 나무도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안유백은 녹아내려 쉬파리가 들끓어도 노비들에게 곶감 하나 맛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앞서 걷는 동이이의 머리가 억새 덤불 사이로 보였다 가렸다 한다.

     

    오동각 앞뜰은 오랜만에 와 보는 곳이다. 과수밭을 맡고부터 오동각에 올 일은 거의 없었다. 안유백 장남이 혼례를 치룬 뒤부터 내안은 교전비와 어린 시중꾼이 드나들었다. 수리는 더 이상 장남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아도 되었다. 철마다 구기자, 해당화, 능소화가 피고 지는 오동각의 뜰을 지나칠 때면 잠시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에 잠기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안유백 장남과 함께 오동각 연못가에서 논 기억이 새롭다. 겨울에는 장남의 방을 데우기 위해 방안까지 드나들기도 했다. 다듬이질이 된 이불호청에서 밀가루풀 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군데군데 헝겊쪼가리를 덧대 기운 바늘 자국과 땀내가 밴 수리의 이불에 비한다면 그것은 이불이 아니라 목화꽃송이였다. 겨울철, 이부자리를 데워 주기 위해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어 장남이 들어오면 도망치듯 이불속을 빠져나오곤 했다. 수리의 오두막집을 향하던 밤에 칼바람이 드셌던 기억도 새롭다.

    “과연 길일이로구나!”

    안유백은 바람을 떠안듯 양팔을 벌리지만 오동각 대청 안은 바람이 들지 않았다. 바람은 불지만 초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다. 우묵한 사방관에 각띠 두른 둥근 깃 담홍포는 살집이 푼더분한 안유백의 풍채와 어울린다. 이마에 바짝 조여 맨 망건, 하얀 옥관자는 관아의 높은 벼슬아치의 자태와 비슷했지만 그는 벼슬과 거리가 멀었다. 진사출신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때문에 그의 집은 지금까지 ‘진사댁’이라고 불리지만 안유백은 진사는커녕 말단 미관직에도 앉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과거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의 두 아들도 아직 과거에 연연하지만 그들은 내아나 사랑에 있는 날보다 활쏘기나 사냥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직 멀었느냐?”

    “곧 완성됩니다.”

    안유백은 목을 자라처럼 뺐다 하며 어깨를 뒤튼다.

    수리는 화구 틀을 받침대에 놓고 다시 먹물에 붓을 찍는다. 안유백은 비단에 백분을 칠해놓은 것과 초록, 흰색, 빨강, 등의 천연 물감과 아교까지 준비해 두었다. 여태까지 비단화폭에 초상화를 그렸으니 한 번쯤 화선지에 그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으나 안유백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초상화는 그 사람의 정신을 그리는 거라 했겠다? 이목구비를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게 흐르는 기운을 드러내야만 진정한 초상화라? 어제 늦은 밤에 안유백은 수리를 찾아왔다. 안유백의 철릭자락이 펄럭이자 호롱불이 일렁였다. 그는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 듯 했다. 파란 공단의 철릭은 호롱불빛에 비쳐 얼룩덜룩하게 보였다. 수리는 초상화를 그리는 데 규칙이나 방법이 따로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으므로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수리는 상두 이마에 난 불구멍을 때우는 작업을 막 끝내고 그림을 방 가운데 두었다. 쌀가루를 섞은 물을 뿜은 화선지를 볕에 말려 불에 그슬린 그림을 붙였다. 구멍 난 상두 이마가 메워졌다. 새끼라도 꼬고 했어야 할 시간에 저놈이 들판에서 저러고 있었단 말이지? 안유백은 그림 속의 상두를 향해 혀를 찼다. 초상화는 이번 내 생일에 초대되어 온 손님에게 보일 것이니 네 가진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보거라, 그럼 내일 오동각에서 기다리겠다. 비록 노비일망정 집안에 초상을 치룬지 겨우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초상화는 다음에 그리면 안 되겠냐고 수리는 안유백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안유백은 일부러 갑산까지 가서 용하다는 점쟁이한테 초상화 그릴 기일을 뽑아온 것이라고 힘줘 말하면서 발등거리를 들고 앞서 걷는 행랑머슴의 뒤를 따라 총총 걸어 나갔다.

    “김 화원이 내 초상화를 거절한 까닭이 그가 내 정신을 읽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김 화원이 왜 나리 초상화를 그리지 않겠다고 했는지 소인은 잘 알지 못합니다.”

    수리는 화구 틀을 무릎에 얹으며 대답한다.

    “내 집에 너 같은 그림쟁이를 두고 굳이 그 꼬장꼬장한 김 화원한테 내 초상화를 청할 것은 무언가. 제 까짓것 어전 출신이면 뭐해, 제 아들 서당 월사금도 못내 설설 매는 주제에. 빈대 바글대는 제 집에 오천 냥이 어디라고 그걸 마다한단 말인가, 고작해야 중인 출신인 주제에 도도하기는!”

    안유백은 김홍도가 오천 냥에 초상화를 그려줄 것이라 믿었다는 말투다. 수리는 어화를 그리라는 임금의 명령을 거절했다가 삭직까지 당한 조영석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그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조영석이 알량한 기예를 내세워 갖은 술수를 동원해 화원 자리를 메운 화공들 틈에 끼어 있기 싫어서, 그들과 함께 말단 기예를 펼치고 싶지 않아서 임금의 명을 뿌리쳤다는 이야기는 장시의 상인들까지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 사람 아내가 삯바느질로 겨우 식구들 끼니를 때운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 모두 아는데 고고한 척은!”

    수리는 김홍도가 규장각 화원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서민들의 생활상을 주로 화폭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선비들과 한담 중 몇 번이나 오갔는데 듣지 못했냐고 물으려다 참는다.

    “나리께서 말씀을 자꾸 하시니 입매가 흐트러집니다.”

    “흠흠!”

    안유백이 헛기침을 하자 그의 눈가는 엷은 경련이 일고 버성긴 수염마저 파르르 떨린다. 퉁방울 같은 눈, 불거진 광대뼈, 뭉툭한 코, 얇은 입술, 처진 볼과 각진 턱을 덮은 텁수룩한 수염 등은 쉰한 살이라는 그의 나이보다 더 많아 보인다. 미친 늙은이! 상두는 안유백을 미친 늙은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안유백이 덕이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지켜본 상두는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안유백이 덕이 방을 거쳤다 나온 다음날이면 안유백 아내는 덕이를 괴롭혔다. 그의 아내는 끼니를 굶기면서 덕이에게 하루 종일 물을 긷게 했다. 상두는 괴롭힘을 당하는 덕이가 안쓰러워 어서 그녀와 혼례를 치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안유백은 두 사람의 혼례를 허락하지 않았다. 미친 늙은이! 언젠가는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불끈 쥔 상두의 주먹은 돌덩이 같았다.

    “아직도 멀었느냐?”

    안유백은 목을 좌우로 돌리며 소리 지른다.

    “다 됐습니다.”

    수리는 화구 틀을 들고 일어선다.

    “어디 보자꾸나.”

    안유백은 용포의자에서 일어나 수리 쪽으로 걸어온다. 그의 초상화가 궁금하기도 했겠으나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결박되다시피 했던 몸을 놀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나리 초상화입니다.”

    화구 틀을 받아든 안유백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화폭 가득 시커멓게 칠해진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느니라!”

    “나리 초상화입니다.”

    “온통 먹물로 칠한 이것이 내 초상화라고? 정녕 네놈이 실성을 한 것이로구나, 네 이노옴!”

    안유백의 눈망울은 금방 튀어나올 듯이 부리부리하다.

    “대체 이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나리 초상화입니다. 나리에게 느껴지는 기운을 잘 살려 그린, 나리 초상화입니다. 초상화란 그 사람 언저리를 맴도는 기운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나리께서도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나리를 맴도는 기운을 그대로 그렸을 뿐입니다.”

    “똥파리 같은 사람들이 너를 오냐오냐 추켜 세워줬더니 네가 기고만장해져 눈에 뵈는 게 없는가보구나! 이것이 어째서 내 초상화란 말이냐!”

    “나리 눈엔 이것이 검은 바탕으로만 보이십니까? 소인의 눈엔 쉬파리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꼬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리께서는 혹시 비문증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눈 한쪽 망막에 검은 점이 있어 언제나 파리 한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병이지요. 나리는 모르셨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비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앓는 비문증은 이상하게도 푹푹 썩은 것만 보면 온통 파리가 바글바글 들끓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잇!”

    안유백이 그림을 바닥에 패대기치자 화구 틀이 부서진다. 틀에서 떨려나온 비단화폭은 바람에 들썩인다. 아직 덜 마른 먹물 탓에 화폭은 진드기처럼 바닥에 처져 있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안유백의 고함은 허공에 쩌렁쩌렁 울리다. 집안 노비들 모두 내일 안유백의 생일잔치 준비에 바쁠 터였다. 어디선가 구부정한 장노비가 느릿느릿 걸어온다.

    “뭐하느냐, 이놈을 묶지 않고!”

    수리는 대청을 내려선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오동잎이 떨어진다.

     

     

     

     

    이병순/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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