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슬그머니_이상섭

  • 단편소설


    슬그머니

     

     



    이 상 섭

     

    자네, 시방 어데고? 휴대폰을 꺼내자마자 강 소장의 거친 억양이 터진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이죽거리는 소리를 뱉고 만다. 현장에 나온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래요? 그라만 지금 퍼뜩 사무실로 들온나. 왜요, 사무실에 무슨 일이 있어요? 사무실이 난리가 나삐릿다, 망할 놈의 개새끼 한 마리 땜시. 개새끼라니요? 아, 어떤 송아지만한 개가 자네 책상 앞에 떠억, 버티고 앉아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카이. 송아지만한 개가요? 그래, 그 바람에 양희, 갸는 놀라 기절할 뻔했고. 순간 내 머리통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느낌이다. 사무실에 개새끼 같은 인간 말종도 아닌 진짜 개가 나타나다니. 혹시,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고개를 내저어 서둘러 의심의 기류를 차단한다. 강 소장이 아무리 엄포가 심하다 해도 무슨 일이 있음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강 소장의 더러운 ‘보리성깔’ 터지기 전에.

     

    강 소장은 조선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양반이다. 현장에서 인부들을 다그치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어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입과 몸이 동시에 논다. 그래서 더 피곤하다. 게다가 성정은 왜 그리 쪼잔한지. 사람이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랬지만 이 위인은 정반대다. 남의 간식은 보기 무섭게 제 입으로 삼키기 바쁘고, 어디 젓가락이라도 들이밀 자리가 생기면 여지없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그렇게 구두쇠 짓을 하는 강 소장이지만 두려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이가 바로 양희다. 양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경리사원이지만 ‘개성 통통한’ 신세대답게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그 바람에 양희의 말이라면 강 소장도 허 그거 참, 하며 꼬리를 내리기 바쁘다. 문제는 이 계집애가 내게까지 기세등등하게 군다는 거다. 직장이란 게 위계사회임을 알면서도 육 개월 빠른 근무 경력을 내세워 턱을 치켜올리곤 한다. 요즘엔 아예 대리라는 직함을 두고 나를 선배라 지칭하며 반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중이다. 그러니 직장까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수리수리 마수리. 처음 수리전문 조선소에 입사할 때만 해도 이 주문을 믿었다. 해서 지역의 ‘강소기업’이라는 말에 입사원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입사한 후 지금까지 타고난 소질만 죄다 휘발하며 보낼 줄은 몰랐다. 근무 연수가 쌓일수록 일생의 목표는 슬슬 일상의 목표로 이동해 갔고, 이제는 목표도 없는 나날만 보내는 중이다. 이러다간 정말 인생 수리고 뭐고 망가지고 찌그러져 퇴직하는 게 아닌가 두려울 정도다.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인다. 밥 굶지 않으려 시작한 일이 밥까지 굶어가며 매달릴 줄이야. ‘깔딱 요기’라도 할까 싶어 운전석 옆을 살핀다. 하지만 오늘 따라 그 흔한 방울토마토 하나 없다. 강 소장 등쌀에 급히 사무실을 나선 것이 화근이다.

     

    인마가 그 유명한 <1박2일>에 나오던 ‘상근이’와 핏줄이 같은 개란 말이제? 한동안 씩씩거리던 강 소장이 되묻고 나선다. 예, 덩치는 커도 성격이 순해서 맹인안내견으로 쓰이는 종입니다. 자네, 혹시 집에 눈 먼 사람 있나? 아뇨. 내가 고개를 내젓자 또 따지듯 묻고 든다. 그라만 인마 주인은 대체 누군데? 이를테면, 뭐 제 옛 친구라고나 할까요. 그라만 시방 그 옛날 친구를 찾아 여까지 왔단 말이가?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거참, 희한하네, 친구 찾아 여까지 왔다꼬? 그거야 몇 번 와 봤으니깐, 왔겠죠. 뭐라, 멫 본 와 봤다꼬? 휴일에 가끔 데리고 나와 잔무를 처리하곤 했거든요. 그래서 인마가 자네 동선을 훤히 꿰고 있었다? 강 소장은 기어이 허야, 소리까지 후렴처럼 내지른다. 그러더니 다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자네, 혹시 그 말 아나, 개한테는 친구가 아닌 주인이 필요하다는 말?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강 소장의 눈치만 살핀다. 내 다시 말하지만 그 친구한테 단단히 일러 놔, 두 번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카몬 직원 회식용으로 써 삐린다꼬. 알아듣것나? 강 소장은 진짜 그럴 생각이 있는지 두리를 보며 입을 다신 다음 돌아선다. 그 와중에도 두리는 반가움을 감추지 않고 연신 내 얼굴을 핥는다. 쌔근거리는 숨소리며 꼬리를 흔드는 게 여간 반가운 게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반갑기는커녕 머릿속만 복잡해진다.

     

    전화번호를 누르자 자동으로 로밍이 된다.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두 번 다시 전화하지 않는다더니 웬일이야? 상황도 모른 채 수연이가 엉뚱하게 나온다. 그 바람에 나 또한 딱딱한 목소리를 만들고 만다. 웬일이 있으니까 전화했지, 그냥 했겠냐? 그럼 용건만 말해, 지금 바쁘니까. 언제 귀국해? 내일, 근데 그건 왜 물어? 두리가 지금 사무실에 와 있거든. 엄마한테 있어야 할 두리를 왜 네가 데리고 있어? 그건 내가 물어야 할 소리지. 그녀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내가 소리친다. 아무튼 지금 당장 데리고 가. 그게 말이 돼? 그럼 나더러 어쩌라구? 우리 엄만 가게 땜에 꼼짝 못하는 거 잘 알면서 왜 그래? 그렇다고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있어야 해? 내가 데리러 갈 때까지만 보살펴줘. 난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내가 비꼬는 말을 뱉자 그녀도 덩달아 비꼬고 나선다. 정 그러면 쓰시마까지 데리고 오시든지요. 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부탁하고 있잖아, 잠시만 같이 지내라고. 난 죽어도 못해! 된고함을 치는 것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긴 했지만 얻은 것도 없이 입싸움만 벌인 꼴이었다. 녀석과 원치 않은 동거라니. 사실, 그녀와 헤어진 후 모든 걸 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일상 곳곳에서 그녀의 흔적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트레이닝복에서 그녀와 함께 먹었던 초콜릿 포장지가 나온다든지, 철 지난 옷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발견한다든지, 서랍 속에서 그녀가 일본에서 보낸 엽서 등등. 그런 사소한 일이 나를 괴롭혔다. 헌데 그중 가장 큰 추억의 부산물인 두리를 또 떠맡아야 하다니. 자고로 처가와 화장실은 멀면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처가와 헤어진 애인의 집은 멀면 멀수록 좋다, 라고 말이다.

     

    여기 냉장고에 넣어둔 방울토마토, 누가 다 먹었어? 내 말에 양희는 엉뚱한 소리를 지른다. 선배, 제발 움직이지 말고 개 옆에 붙어 있으라니깐! 아, 거참. 안 문다니까 자꾸 그러네. 그래도 사무실 밖에 묶어 놓든가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목줄이 있어야 묶어 놓든지 하지. 가서 사 오면 되잖아! 야, 조금 있으면 퇴근시각인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는 왜 해? 그래도 양희는 눈망울을 굴리며 두리의 눈치만 살피는 중이다. 의자 위에 다리가 붕 떠 있는 꼴이 무슨 공중부양 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다. 못된 성깔 부려대더니 잘 됐다 싶다. 야, 그나저나 내 점심 누가 손댔는지 그것부터 대답해! 선배는 왜 맨날 내 이름 놔두고 반말이야? 토마토 누가 먹었냐고? 그거야 강 소장한테 물어야지,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정말 강 소장처럼 직장에서 살까지 찌우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배가 불룩 튀어나와서도 남의 점심까지 착복하다니. 꼬르륵, 배꼽시계가 운다. 내가 쓰린 배를 움켜쥐는데 양희가 또 입을 연다. 선배는 그놈의 토마토 좀 그만 먹을 수 없어. 그대가 왜 남의 식성까지 참견이슈? 양희가 입을 씰룩이며 대꾸한다. 종일 토마토만 먹어대니 냄새가 더 나지. 그럼 네가 다른 간식 좀 사주든가. 선배는 정말,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몰라? 체취야 어떤 사람이든 나는 거지, 안 나면 외계인이게? 근데 왜 하필 방울토마토만 먹어? 그러고 보니 이놈의 야릇한 습관도 다 수연 탓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방울토마토에 집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남자 나이 스물아홉. 그건 가장 우울한 숫자다. 다시 시작하기도 어설프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에도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빈 술병과 나란히 잠들기 바빴다. 그런 어느 날, 친구 몇이 모여 내게 전화를 해왔다. 나와라, 모처럼 네 인생 분위기 쇄신도 좀 하고. 녀석들이야 정규직의 그럴싸한 직장을 얻었으니 나 같은 친구를 앞에 두고 폼 좀 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알고 내가 왜 나가서 박수갈채를 보탠단 말인가. 몸이 안 좋아, 그냥 집에서 쉴래. 사정없이 거절 의사를 날렸다. 근데 다음 말이 나를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야, 진짜 안 올 거야? 너한테 소개시켜 주려고 예쁜 아가씨도 모셨는데? 순간 나는 비굴하게 말했다. 아, 그 자식들, 간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야 돼? 그날, 정말이지 안 나갔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전화를 건 녀석에게 정중히 고맙다고 말한 후 곧장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술값을 지불함으로써 그녀와의 교제 절차를 밟아버렸다.

     

    확실히 그녀는 나를 흥분시키는 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면 황홀했고 헤어지면 아쉬웠다. 그녀가 들려주는 먼 곳의 여행담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생일을 앞두고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에서 맹인을 안내하는 리트리버를 목격했다. 묵묵히 주인을 이끌어가는 녀석. 너무 듬직해 보였다. 수연은 혈통확인서와 함께 온 하얀 개를 보는 순간 ‘살아 있는 생일선물’은 생애 최초라며 기뻐했다. 그런 마음을 수백 번 내 볼과 입술에 키스하는 것으로 표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근데, 얘 이름을 무어라 짓지? 그건 네가 정해, 네 선물이니까. 한동안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다. 두리는 어때? ‘둘이’란 뜻도 되고, ‘두리기둥’할 때의 그 두리란 뜻도 있고. 내가 대꾸했다. 나쁘진 않은데? 그러자 그녀는 흡족한 듯 환하게 웃었다.

     

    퇴근시각이 되자 양희가 바빠진다. 휴대폰을 든 채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두리를 보며 대형 사이렌에 버금가는 비명을 질러댄 게 꼭 쇼만 같다.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 꼴이 남자임이 분명하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양희가 물은 적이 있다. 헤어진 남친이 일 년 만에 연락이 왔다고. 그러면서 남자의 마음을 모르겠다며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잘라서 말해주었다. 어차피 끝난 인연에 연연할수록 사랑이 지저분해진다고, 떠난 건 떠난 거라고. 내 딴에는 진지하게 생각해서 해준 말이었다. 한데 그녀는 그런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고 다음날, 되레 헤어진 남친이 사무실 앞까지 찾아왔다며 달뜬 표정을 짓는 거였다. 그 바람에 양희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느라 미쳐 ‘나자빠지는’ 줄 알았다.

     

    두리를 승용차 뒷자리에 태웠더니 가만 있지 못하고 날뛴다. 차가 움직이자 이젠 아예 혀로 내 얼굴까지 핥아댄다. 두리, 제발 자리에 가만 있어! 소리쳐도 녀석은 막무가내다. 녀석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운전석 시트까지 흥건할 정도다. 이렇게 가다간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것도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 이 길이다. 지금 난 녀석을 믿고 있다. 사무실을 찾아온 기억력이라면 현재 살고 있는 곳도 능히 찾아갈 거라고. 녀석을 어르고 달래가며 골목 초입에 도착하니 자동차 상태가 엉망이다. 녀석의 발톱에 찢긴 뒷좌석의 시트는 폐차 직전의 차량 같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자니 울컥 화가 치민다. 당장 수연에게 전화해 수리비를 청구하고 싶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독인다. 곧 작별해야 처지에 너무 민감하게 굴 필요는 없으니까. 녀석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두리야, 미안해. 내가 집에 데리고 가고 싶지만 이전처럼 마당이 없는 집이거든. 그러니까 여기가 더 편할 거야. 수연의 본가를 향해 녀석의 엉덩이를 민다. 헌데 이게 웬걸. 녀석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험악한 표정을 짓고 때리는 시늉을 해도 마찬가지다. 두리야, 제발 이렇게 빈다, 네 집에 좀 가라, 응?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까지 싹싹, 빌어 본다. 녀석은 이번에는 아예 땅바닥에 제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린다. 정말 미치고 폴짝 뛰고 싶다.

     

    원룸에 들어서자 두리가 두 눈을 뒤룩거린다. 딴에는 낯선 환경이 어리둥절하겠지.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원룸이 1층이란 게. 그렇지 않았다면 녀석과 밤새도록 실랑이를 벌여야 했는지 모른다. 내가 까만 비닐 주머니를 쥐자 무슨 ‘비밀 주머니’가 되는 줄 알고 눈빛을 파닥인다. 녀석의 고집만 생각한다면 애견센터에도 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털이며 몰골을 보자니 마음이 애잔해져 왔다. 봉지에서 녀석을 씻길 샴푸부터 먼저 꺼낸다. 욕실에 가서 더운 물을 받아 놓고 나오니 그새 녀석은 안정을 찾은 것일까. 녀석이 제 발로 실내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때 휴대폰이 운다. 누군가 싶어 살피니 덴마크영감이다. 영감의 목에는 불에 덴 자국이 선명해 그녀와 내가 붙여준 닉. 영감은 우리가 그 집을 떠난 후에도 뻑하면 전화질이었다. 계약서를 파기했냐는 둥, 혹시 보일러가 고장난 적은 없는지, 심지어 우편물을 반송할지, 찾으러 올 건지 시시콜콜 물어대면서. 그러니 마뜩찮은 소리가 나올 수밖에. 또 무슨 일이시죠? 자네, 혹시 말이라, 현관 열쇠 갖고 있는가? 역시 덴마크영감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터진다. 아뇨, 전 가진 게 없는데요. 이, 자네들 살던 셋방이 나갔는디 열쇠가 안 보여서 말이라. 혹시 말이라, 서로 깜빡했을 수도 있으니 함 찾아보기나 혀. 현관열쇠야 함부로 나돌릴 수 없다는 거는 자네도 잘 알잖어. 덴마크영감은 몇 번이나 내게 당조짐을 준 뒤 전화를 끊는다. 덴마크영감 탓인가. 나 또한 가슴에 싸한 기분이 몰려든다.

     

    단칸방에 누워 밤새도록 방울토마토를 깨물고 깔깔거리던 나와 그녀. 그런 우리가 언제부터 다투기 시작했을까. 그녀는 직업상 일주일에 두어 번은 해외출장을 나가야 하는 처지였다. 일본여행 전문가이드답게 스케줄에 따라 후쿠오카나 나가사키, 가깝게는 쓰시마까지 종횡무진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돌아오기 무섭게 쓰러지는 그녀. 어쩌면 그런 그녀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열심히 살고, 나는 마지못해 산다는 것 때문에. 차분하던 녀석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잊을 만하면 달려와 얼굴을 핥아댄다. 꼴로 보아 제법 오래 묶여 지낸 모양이다. 두리의 엉킨 털까지 손질을 끝내니 창밖이 어두워져 있다. 잠시 침대에 누웠더니 녀석이 달려와 난리법석이다. 뱃구레의 지방질도 더 두툼해져서 그런 것일까. 밀어내기 벅찰 정도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부족해 보인다. 두리야, 우리 예전처럼 산책하러 갈까? 그는 두리에게 목줄을 채운 뒤, 밖으로 나선다. 익숙한 길이라 그런 것일까. 녀석이 해안산책로를 뛰기 시작한다. 나도 덩달아 달릴 수밖에 없다. 녀석의 머릿속엔 이 길이 훤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대로 둔다면 덴마크영감네로 달려갈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쥔 줄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 또 휴대폰이 운다. 액정화면을 살피니 이번에는 강 소장이다.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내가 따지듯 묻고 나서자 강 소장이 얼버무린다. 아, 그냥 자네 밥이나 묵었나 싶어서. 이게 뭔 일이람, 부하직원 끼니까지 전화해서 다 챙기다니. 그러고 보니 강 소장은 어디서 술이라도 마셨는지 목소리가 축축 늘어진다. 저야 당연히 밥 먹었죠. 근데 아직 집에 안 들어가시고 술 마시는 중이세요? 아, 아이라. 그양 집에서 잠도 안 오고 해서 전화해 본 기지 뭐. 그러더니 이러쿵저러쿵 회사 처음 입사했을 때 일이며 고생한 일까지 생각나는 대로 입에 올려대는 게 아닌가. 이렇게 나가다간 내일 새벽까지 통화가 이어질 것 같아 중동을 자르며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소장님, 저 지금 무지 바쁘거든요. 죄송해요! 그러자 소장은 섭섭한 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마지못해 “그라만 내일 또 우리 얘기하지 뭐”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잠이 안 온다고 부하 직원한테 전화해서 잠트집을 부릴 게 뭐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강 소장 머리가 어찌 된 게 아닌가 싶다.

     

    한동안 두리 때문에 고민했다. 하지만 녀석을 혼자 좁은 방에 가둬놓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해서 할 수 없이 녀석을 끌고 출근을 하고 말았다. 사무실 건물 뒤편이라면 강 소장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녀석이 얼마나 짖지 않고 참아내느냐다. 종의 특성상 잘 짖지 않으니 믿을 만한 구석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잠시. 강 소장이 나타날 줄이야. 아침부터 난감해진다. 자네, 진짜 직원 회식용으로 희사할 끼라? 어젯밤 전화하던 늘어진 목소리와는 전혀 딴판이다. 소장님도 참. 이 개는 식용이 아니라니깐요. 그라만, 지구상에 못 먹는 개도 있단 말이가? 글쎄, 이 녀석의 주인이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내가 얼버무리자 강 소장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그란다꼬 회사를 개새끼 놀이터로 또 만들 수야 없는 기지, 안 글나? 사무실에는 절대 출입하지 않게 할게요. 내는 저 개새끼를 회사 안에는 절대 못 들여놓겠는데? 딱히 대꾸할 말이 없다. 강 소장이 다시 입을 연다. 자네, 오늘 사장님 귀국하는 거 알고 있기는 하제? 그걸 모를 리 있겠어요? 그런 사람이 일이 아닌 개새끼 처리도 몬하고 데리고 와? 업무에도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유전자 체질인 거 다 아시잖아요, 헤헤. 내가 미소작전을 벌여도 강 소장은 강하게 차단막을 치고 나선다. 체질을 물었나, 업무 차질이 걱정돼 묻는 기지? 강 소장이 좁혀진 미간을 더욱 좁힌다. 어째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싶다. 그렇다고 녀석을 데리고 도로 퇴근할 수도 없잖은가.

     

    오늘 훈련은 묵언수행인 거, 알지? 녀석을 묶으며 다시 한 번 일러두었다. 그런 다음 사무실로 오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양희까지 나서서 내 신경줄을 곤두서게 만든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어떻게 선배 냄새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지? 후각이야 녀석들의 장기잖아. 아니, 내 말은 석 달이나 지난 주인냄새를 여태 잊지 않고 있다는 게 신통방통하단 말이야. 그것도 책상에 묻은 주인 냄새까지 기억한다는 건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만한 재능이구. 양희의 말을 듣는 순간 수연의 말이 떠오른다. 내게 독특한 체취가 난다고 했던가. 처음에 난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몸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덧붙였을 것이다. 만약에 헤어져도 냄새만은 잊지 못할 거라고. 두리도 그녀처럼 나의 독특한 체향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사무실의 내 자리까지 정확히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선박을 수리하는 업체는 이곳만 해도 수십 군데가 넘는다. 다만 다른 곳과 차이가 난다면, 중소형 선박수리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다. 문제는 수리공간이 협소해 사무동을 해안에서 먼 산중턱까지 옮겨왔다는 점이다. 산소를 두 배로 마실 수 있지만,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 단점도 있다. 특히 오늘처럼 은행업무라도 있는 날이면 양희를 태워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얹혀 가는 처지라면 가만히 앉아 있기나 할 노릇이지 양희는 앉자마자 코부터 틀어쥐고 난리다. 못 참겠으면 내려서 걸어가든지. 양희가 세모눈을 만드는 나를 째려본다. 30분이 넘게 걸리니 그건 싫은 모양이다. 헌데 달리다가 다시 보니 이번엔 난데없는 문자질이 한창이다. 눈총을 줘도 문자질은 멈추지 않는다. 기어이 내가 한마디 쏜다. 양다리 걸치다가 칼부림날 수 있다, 너? 어,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눈은 밖에서 보이는 뇌라는 말이 왜 생긴 줄 알아? 그대 눈만 보면 다 알 수 있지. 그런 위대한 능력을 갖추신 분이 사랑을 잃어셨다? 잃은 게 아니라 포기한 거야, 살다 보면 그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거든. 그 길이 틀린 길이면? 틀리진 않아, 난 내 직감을 믿거든. 난 선배의 직감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난 생각은 막연해도 직감은 분명하게 느끼지. 피, 두리가 찾아올 거라는 건 직감하지 못했으면서. 딱히 양희의 말을 받아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괜히 헛기침만 뱉는다. 은행이 코앞에 보인다. 후딱 내려. 볼일 보고 퇴근 전까지 재정보고서 마무리 짓는 거 잊지 말고. 선배가 뭐 소장인가? 양희가 입을 쫑알거린다. 그러더니 쾅, 하고 차문을 닫고선 은행으로 간다. 어제는 강 소장이, 오늘은 양희 저년이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뭐라구, 체류가 연장되었다구? 마치 수연이 거짓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정에 없던 한일 역사학자 세미나가 왜 튀어나오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굴지의 여행사에 일본여행 전문가이드가 그녀 혼자일 리도 없잖은가. 아주 중요한 분들이라구, 정기적으로 학자들 간의 교류행사니까 회사에서도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는 모양이야. 그래서 응낙했다? 피치 못할 상황이었어, 이해해줘. 헤어진 마당에 또 무슨 이해타령이람 오해라면 또 몰라도.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선 톡, 쏘아붙인다. 그건 댁이 알아서 하시고 두리 문제만 해결해 줘, 안 그러면 진짜 유기견 센터에 보내버릴 테니까. 그러니깐 우리 엄마한테 데려다 주라고, 안 그래도 산책하다 놓쳐서 걱정하니까. 내가 왜 니네 집에 가냐? 그럼 데리고 있든지. 난 싫어, 모녀지간에 의논해서 두리 문제부터 처리해. 막상 그렇게 소리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가게로 안 가자니 두리를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하고, 가자니 그녀의 모친을 대할 낯이 없다. 그때, 뭔가 뇌리에 ‘쌈박한’ 생각이 스친다.

     

    선배, 미친 거 아냐, 난 절대 못해! 양희는 내 제의에 고개를 홰홰 내저어댄다. 내가 슬쩍 눙치고 든다. 너, 혹시 못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런 거지? 나, 무지무지 바쁜 사람이라고. 그렇겠지, 두 남자 다 사귀려면.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그럼, 내가 나발을 불어도 괜찮으시다? 선배, 왜 이래? 양희의 얼굴빛이 붉게 변한다. 기회는 이때다. 너, 전번에 아웃백 가고 싶다고 그랬지? 양희가 두 눈을 치뜨며 묻는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역시, 내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문다. 나도 이놈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 근데 이 오빠야가 그 집에 갈 수 없는 처지거든. 양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대꾸한다. 오빠야는 개뿔! 생각해 봐, 개를 데려다 주면 넌 더 오래 양다리 걸쳐서 좋고, 난 애물단지 없애서 좋고, 어때? 이런 걸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하는 거야. 양희가 잠시 고민하는 눈치다. 시간도 얼마 안 걸려, 아주 잠깐이면 된다구. 내 말에 양희가 투덜거린다. 냄새 나서 난 싫단 말이야. 냄새는 무슨, 목줄만 쥐고 따라가기만 하면 돼. 그래도 양희는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이거 손이라도 싹싹 빌어야 하나. 그때 양희가 작심한 듯 드디어 입을 연다. 그럼 오늘 아웃백, 어때? 좋아, 얼마든지 오케이! 양희는 내 약속이 미덥지 못한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지문까지 복사한 다음에야 차에 오른다.

     

    양희는 여전히 코를 싸쥔 채 앉아 있다. 내숭 하나는 끝내주는 계집애다. 이제 잠시 뒤면 수연의 본가가 있는 골목에 도착할 것이다. 근데, 선배. 선배는 왜 그렇게 토마토를 좋아해? 양희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뱉는다. 아, 그건 그냥. 그냥이 어딨어?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덴 이유가 있는 법이지. 별 거 없어, 그냥 다른 과일과 다른 푸른 씨 때문이라고나 할까. 푸른 씨? 하지만 그것도 꿈 많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야. 그럼, 지금은 꿈도 없이 사는 거야? 꿈이 왜 없겠냐, 다만 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여자 때문에 아직 마음이 되게 어두운 모양이네? 그게 아니고,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상하게 작은 것 하나도 무겁게 느껴진다 이거지. 대놓고 쫑알대던 양희의 입이 조용하다. 천천히 골목길로 접어든다. 이쯤이면 두리도 쉬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두리의 기억력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니까. 두리야, 다 왔어, 내려. 내가 승용차 뒷문을 열기 무섭게 녀석이 달려 나온다. 녀석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눈치로 보아 낯설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양희에게 다시 당조짐하듯 이른다. 여기서 왼쪽으로 틀면 과일가게가 붙은 집이 나오거든, 거기야. 양희는 마뜩하지 않은 일에 끼어든 게 후회스럽다는 듯이 인상만 구기고 섰다. 넌 거기까지 그냥 이 목줄만 쥐고 따라가면 된다니까 그러네? 마지못한 듯 양희가 건네준 목줄을 거머쥔다. 드디어 때가 이르렀다. 나는 두리의 덜미를 쓰다듬으며 작별의 수순을 밟는다. 두리야, 네 집이 어딘지 잘 알지? 잘 가. 녀석의 입에 마지막 키스를 하고 엉덩이까지 톡톡거린다. 헌데 이게 웬걸, 또 네 다리를 버티고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어제의 악몽이 떠오른다. 기어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희가 볼 부은 소리를 낸다. 뭐, 별일도 아니라면서? 나도 모르게 양희에게 소리를 뻑, 지르고 만다. 그냥 섰지 말고 너도 앞에서 끌어야지, 그래야 빨랑 끝낼 거 아냐! 괜히 나한테 신경질이야. 양희가 삐죽거린다. 미치겠다. 녀석과의 이별의 과정이 이리 힘들 줄이야.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허사다. 지친 내가 먼저 털버덕 주저앉고 만다. 그 사이에 양희는 카톡이 왔는지 또 휴대폰에 문자를 찍어댄다. 틈만 나면 주고받는 문자들. 그게 과연 얼마나 마음을 담은 내용들일까. 그나저나 둘 중 누구랑 먼저 키스 했어? 그건 왜 물어? 키스까지 했다는 건 연애의 팔부능선을 넘었다는 거고, 그때면 사랑이 무거울지 가벼울지 감이 오는 때거든. 섹스까지 했다면? 그때부턴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지. 그거, 선배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야? 그럼, 그때부터 차이점을 참지 못하면 둘은 내리막으로 치닫게 되는 거지. 그래서 선배도 결국 사랑이 쫑났다? 아니, 그 전에 정상에서 헤어졌어. 그렇다면 선배도 끝장을 본 건 아니네, 뭐. 그럼 내가 한 건 사랑도 아니다 그거냐? 난 끝까지 가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에 칼부림이 날지라도. 그러다가 진짜 칼 맞으면 어쩌려고? 괜찮아, 둘 중에 누가 진짜 날 사랑하는지 알면 그뿐이니까. 이런 게 세대 차이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어수선해진다. 그때 가만 있던 두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아웃백. 양희가 그렇게 와 보고 싶다고 노래하던 곳. 하지만 양희는 잠시 주위를 일별하는 듯하더니 휴대폰만 들여다보기 바쁘다. 왜, 이곳이 맘에 안 들어? 양희는 눈길을 휴대폰 화면에 고정한 채 고개만 가로젓는다. 근데 왜 그리 이곳에 오고 싶었어? 그래도 양희는 아무 말이 없다. 오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 아냐? 그제야 양희가 폰을 테이블 위에 집어던지듯 내려놓고는 입을 연다. 아이들이 제 부모랑 이곳에서 스테이크 먹었다는 게 너무너무 부러웠으니까. 니네도 가족끼리 오면 되지 뭐. 식당 주방에 사는 엄마를 어떻게 불러내?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편모슬하에게 힘겹게 컸다고 했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그런 가정환경 탓에 흔한 대학생인 ‘흔대생’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했던가. 하긴 나 또한 수연과 몇 번밖에 못 와 본 곳이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음식값이 만만찮았기 때문에. 주문하고 꽤 기다렸는데도 미디엄 스테이크는 올 생각이 없다. 그깟 쇠고기 약간 익히는 게 그리 어렵단 말인가. 양희는 테이블 위에 폰을 다시 집어든다. 무료함도 달랠 겸 내가 화제를 꺼낸다. 어제 강 소장한테 전화 왔었어. 내 말에 양희가 고개를 들어 관심을 보인다. 전화해선 밥 먹었냐, 잠이 안 와 그냥 걸어 봤다는 거야. 드뎌 선배한테도 전화하기 시작했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나한텐 진즉부터 전화질을 하는 중이니까. 자기가 무슨 국정원 직원이야, 뭐 땜에 너한테까지 전화질이래? 선배, 정말 몰라서 물어? 내가 두 눈을 끔뻑거리자 양희가 입을 연다. 강 소장, 기러기잖아. 부인이랑 아이들 둘 다 캐나다에 가 있다잖아. 그 바람에 버는 족족 생활비 죄다 송금하는 중이고.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커진 느낌이다. 양희가 다시 말을 잇는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전화하고 싶은데 국제전화비가 만만찮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랑 선배한테 전화하는 거지, 뭐 일종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양희의 말에 구두쇠 강 소장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갑자기 내 어딘가의 뼈가 바로서는 기분이다. 이런 걸 수리라고 하는 건가. 졸지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밤새 뒤척거렸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꼭두새벽부터 전화가 울리는 게 아닌가. 받고 보니 덴마크영감이었다. 혹시 말이라, 자네 개 잃어버리지 않았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게슴츠레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수화기 속에서, 정말 두리의 짖는 소리까지 들렸다. 마치 그 소리는 짖는다기보다는 우는 소리라고나 할까. 두리가 언제 그곳까지 간 거지? 덴마크영감의 말은 계속되었다. 대문 앞에서 하도 짖어 대서 나가보니 자네 집 개라. 혹시 말이라, 안 바쁘면 와서 후딱 데려가게. 알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나는 곰곰이 이 상황을 추리했다. 그 결과, 이 일이 어쩌면 다 수연의 모친이 전략적으로 꾸민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두 번이나 두리를 놓칠 수 있으며, 옛집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다음 절차야 뻔할 수밖에. 항의차 수연에게 바로 전화를 냈다. 하지만 그녀와의 통화는 불능상태였다. 쓰시마는 지형상 통화가 불안정한 곳이 많다. 그렇다면 그녀는 와타즈미신사 쯤에서 일행을 모아놓고 신사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도 수연을 사랑하고 있는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럼, 잊었는가. 잊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랬다면 불쑥불쑥 허공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진 않을 테니까.

     

    사람보다 더 용해, 어째 지 살던 집을 못 잊을까 말이여. 덴마크영감은 대문 열 생각은 않고 혀부터 놀리기 바빴다. 글쎄 말예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네요. 마당으로 들어서서 묶여 있는 두리 곁으로 가는데 영감이 또 말을 이었다. 혹시 말이라, 저거 자네들이 심었는가?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영감이 턱짓으로 마당가를 가리켰다. 영감네가 상추를 심거나 대파를 묻어두는 손바닥만 한 텃밭 쪽이었다. 정말 거기 뭔가 지줏대에 기대어 서 있는 식물이 보였다. 기온을 떨어지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양지 탓에 여전히 싱싱한 잎을 매달고 있었다. 아뇨, 심은 적이 없는데요. 영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참, 희한하네. 자네들 이사 가고 보이 저게 자라고 있더랑께. 그러고 보니 파란 잎 사이에 숨어 있는 방울토마토가 눈에 띄었다. 영감의 말은 계속된다. 그래서 내가 지줏대를 세워줬더이 아, 글씨 열매를 저리 매달지 않았겠나. 덕분에 올여름 입요기는 톡톡히 했네그려. 영감은 말 뒤에 웃음까지 푸짐하게 보탰다. 영감의 말이 맞다면 내가 아닌 수연이가 심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물크러져 밭에 파묻은 방울토마토 씨가 저절로 싹이 텄거나. 아무튼 이사를 가면서 모든 추억의 지문은 지워야 했으므로 나는 서둘러 두리의 목줄을 잡아챘다. 그때 영감이 또 덧붙이고 나섰다. 자네들 다음에 또 심을 거면 기둥 세우는 거는 잊지 말게, 연약한 것일수록 서로 의지해야 하는 법이거든.

     

    수연이 생각이 난다. 내 어깨에 기대기만 하면 스르륵, 잠이 들던 그녀. 잠든 모습이 귀엽기만 하던 그녀. 그런 그녀를 두고 왜 내가 조용히 짐을 싼 것일까. 정말 절정 뒤에 올 파국이 두려워서였을까. 아니면 그녀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왜소함을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 두리의 목덜미를 쓰다듬다가 휴대폰에 눈길이 머문다. 전화를 걸까 말까. 지금쯤이면 히타카쯔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현해탄을 건너고 있겠지. 그때 때마침 휴대폰이 운다. 수연의 번호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연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응, 그냥 조금 늦을 것 같아서.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 돌고래와 한판 거나하게 싸웠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돌고래 떼와 배가 충돌했다구.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 여객선 스크루가 박살이 났지. 정말 이 여자, 태연하다. 망망대해에서 사고를 만나 표류중이면서도. 이게 다 현해탄을 수없이 오간 내공 탓인가. 구조선이 달려오는 중이라니 다행이긴 하다. 수연이 재차 묻는다. 두리는 잘 지내고 있지? 방금 전까지 유기견 센터로 보내려던 중이었어. 보고 싶다, 두리 데리고 마중 나올래? 정말 생사람 잡는 기막힌 발언이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터진다. 미쳤냐, 내가 나가게? 때마침 곁에 있던 두리가 우앙, 와앙,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운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내가 인사를 하자 현장에 나갈 채비를 하던 강 소장의 눈이 커진다. 허파에 바람 들었나, 자네가 웬일로 밝게 인사를 다하노? 내가 대꾸한다. 그렇다고 뭐 인상 구기고 업무 시작할 필요도 없잖아요? 그나저나 두리는 우째삐릿노? 아예, 옛 친구한테 보냈습니다, 어제. 그으래? 그라만 자네도 한 시름 놨으이 밥 사야제. 제가 왜 밥을 사요?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양희가 청소한다고 얼매나 힘들었노, 거다가 내는 또 어떻고. 강 소장의 말에 양희가 힐끔거리며 피식 웃는다. 내가 호기롭게 맞받는다. 까짓거, 좋습니다, 한 턱 쏘죠, 뭐. 근데 뭘 사면 되죠? 뭐 큰 거 살 기 있나, 밥이나 두둑하게 나오면 되제. 강 소장은 공밥을 먹게 된 덕인지 말 끝에 흐흐, 하고 웃음기를 문다.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진다. 바람이 제법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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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섭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슬픔의 두께』,『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바닷가 그집에서, 이틀』, 『챔피언』과 르포집『굳세어라 국제시장』등이 있음. 백신애문학상, 봉생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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