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정염情炎_강동수

  • 단편소설


                                         정 염
    情炎

                                                                                           강 동 수

     

    나주목의 젊은 관원이 강진현 귤동 정약용의 적소로 찾아온 것은 을해년(1815년) 정월 열엿새였다. 오후 내내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목화 같은 굵은 눈송이를 떨어뜨리던 신시 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약용은 산책을 나섰었다. 왠지 아침부터 안절부절 못하는 심사였던 것이다. 며칠 전 아들 학연이 집안 종 구들이 편으로 보내온 편지 때문인지도 몰랐다. 꿀, 약재, 누비두루마기와 배자가 담긴 부담과 함께 온 그 편지에서 학연은 아비의 안부를 물은 다음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전해왔다. 그리고 말미에 어쩌면 유배가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사헌부 장령 이태순의 전언을 써놓았던 것이다. 약용은 담담하게 아들의 편지를 접어 서낭 안에 밀어 넣었다.

    해배령이 내렸다가 철회된 게 벌써 세 번째였다. 십이 년 전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가 풀어주라 명했으나 좌의정 서용보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오 년 전엔 아들 학연의 상소로 해배령이 내려졌으나 공서파(攻西派)가 벌떼처럼 일어나 철회됐다. 작년에도 형조에서 석방명령서까지 작성됐지만 전 수안군수 강준흠의 상소로 취소됐었다. 흑산도에 유배된 형 약전에게 유배가 풀리면 찾아가 뵙겠다고 인편에 편지까지 보냈다가 좌절된 다음엔 약용은 더는 연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터였다.

    그랬는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부터 왠지 마음이 산란해졌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도 써지질 않아 점심을 먹고서는 짚신을 꿰고 초당 뒤편 만덕산 숲을 거닐었던 것이다. 이럴 때 백련사의 혜장(惠藏)이라도 있어 찻상을 마주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나누면 샘물에 떠다니는 티끌 같은 잡념이 가라앉을 텐데. 유배지에서 사귄, 속마음을 털어놓을 유일한 벗의 죽음이 그는 새삼 아쉬웠다.

    약용은 언덕바지에 서서 성긴 눈발이 휘날리는 강진만을 내려다보았다. 썰물 때라 바다는 널따란 갯벌을 남기고 저만치 물러나 있었는데 물색은 하늘을 닮아 칙칙했다. 아득한 저 바다 건너 흑산도가 있을 테고 약전 형님이 배소의 지붕 낮은 토방에 웅크려 기침을 쿨럭이고 있을 것이었다. 두어 달 전 인편에 전해온 소식으론 형님의 허로(虛勞:폐결핵)가 악화돼 기침이 더 심해졌다니 걱정이었다.

    아내 홍 씨 생각도 떠올랐다. 학연은 편지에서 어머니가 편찮다고 썼다. 유배된 지 14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내였다. 3년 전 혼주 없이 막내딸 혼사를 치렀을 때는 그 심사가 오죽했으랴. 7년 전, 병석에 누운 아내가 40년 전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명주치마 다섯 벌을 아들 편에 유배지로 들려 보냈을 때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애틋했을까. 어쩌면 이승에선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를 남편에게 대한 이별의 정표나 아니었을까.

    눈발이 눈앞을 가릴 지경이 됐을 때에야 그는 초당으로 돌아왔다. 사립문을 들어서는데 딸랑딸랑하는 워낭소리가 들렸다. 싸리 울타리 옆 석류나무 둥치에 나귀 두 마리가 매여 있었다. 마당을 들어서는데 제자들의 숙사인 서암에서 황상이 종종걸음으로 뛰어왔다. 강진현 아전의 아들로 약용이 처음 이곳에 이배돼 왔을 때 열다섯의 나이로 문하에 든 이후 12년을 변함없이 모셔온 청년이었다.

    “선생님, 나주에서 웬 관원이….”

    두 손을 마주 쥔 상의 얼굴엔 낯선 관원의 느닷없는 방문이 준 긴장과 불안이 서려 있었다. 약용은 고개만 끄떡여 보이고는 초당의 섬돌을 디뎠다. 며칠 전엔 학연이 편지를 보냈고 오늘은 이 적막한 적소에 평소엔 얼씬도 않던 관원이라. 설마한들 사약이야 오지 않았을 테고 이배령이라도 내렸나.

    짚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는데 한 구석에 짚 둥구미가 놓여 있었다. 씨알 좋은 나주배가 가득 들어 있었고 보자기에 싸인 두루미병도 보였다. 장지문을 열고 들어서니 윗목에 젊은 관원이 단정히 앉아 있다가 황급히 일어섰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였는데 눈썹이 짙고 하관이 좀 강팔라 보였다. 관복이 아니라 양태 긴 갓에 도포 차림이었다. 약용이 서안 앞에 좌정하자 관원이 절을 올렸다. 약용 역시 두 손을 방바닥에 짚어 맞절했다.

    “참의 영감, 시생은 나주목의 교수(敎授)로 있는 정기원이라 합니다.”

    “허어, 참의라니 망발이오. 나라에 죄를 지어 귀양살이하는 죄인에게….”

    교수라면 수령을 보좌해 정사를 처리하고 향교의 유생을 훈육하는 종육품 문관직이었다. 젊은이는 잠깐 우물쭈물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오면… 선생님이라 하겠습니다.”

    약용은 빙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언제 환로에 드셨소? 관향은 어찌 되시고?”

    “예, 신축생(정조 5년)으로 경오년 식년문과 을과로 입격했습니다. 동래 정가 직제학공파이옵고 제 선친은 현자, 순자를 쓰시온데 밀양부사를 지내셨습니다. 하옵고 … 제가 선생님의 선성을 일찍이 들었사오니 말씀을 낮추시지요.”

    이 관원의 아비인 정현순은 병오년(정조 10년) 약용이 정시 초시에 수석 했을 때 함께 입격했던 사람이었다. 신축생이라면 이제 서른 넷, 장남 학연보다 두 살 위였다. 약용의 망막 위로 아비를 잘못 만나 폐족이 되어 과시에도 나서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아, 그런가? 선친은 나와 동년입격한 분이니 죄인의 처지로 관원에게 하대하는 게 민망하네만 크게 망발은 아닐 듯하구먼.”

    그런 수작이 오가는 중에 방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상이 찻상을 들고 들어왔다. 만덕산에서 자생하는 차나무에서 따낸 우전이었다. 약용은 데워낸 사발에 담긴 물을 찻잎이 든 다관에 따랐다. 그리고 얼마간 우려낸 다음 찻잔에 따랐다.

    “자, 드시게.”

    정기원은 아직까지 벌겋게 곱은 손으로 찻잔을 집어 들고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삼켰다.

    “헌데, 무슨 일로 이 초라한 적소를 찾으셨는가?”

    정기원은 대답 대신 바람을 맞아 제풀에 반쯤 열린 장지문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눈보라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고 마당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뜸을 들이던 정기원이 뚜벅 입을 열었다.

    “시생이 선생님을 찾아뵌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본읍 안전의 소청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허, 모를 일이로다. 대읍의 관장께서 한낱 유배죄인에게 청할 일이 무어 있다고?”

    정기원은 허두를 떼기가 쉽지 않은지 다시 뜸을 들였다. 이윽고 난처함을 털어버리려는 듯 빠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난 해 섣달에 본읍에서 해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상풍패속(傷風敗俗)의 일이오라 입에 올리기 자못 민망하오나….”

    “상풍패속이라니?”

    “본 읍의 한 백성이 몰래 음행을 벌이던 중 음녀와 더불어 불에 타 죽었는데 일이 하도 괴이하고 수상쩍은지라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방화로 보기에도 석연치 않사옵고 또한 실화라 단정하기도 어려운 정황이어서….”

    정기원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였다.

    지난 섣달 열사흘, 나주 백성 나은갑의 셋집에서 불이 나 남녀가 타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은갑의 진술에 따르면 서른다섯 먹은 김점룡이란 친구가 전날 초경(밤 8~10시) 무렵 유 소사(柳召史)란 여인과 함께 찾아왔다. 점룡은 은갑에게 방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은갑이 오래 쓰지 않은 빈 방을 빌려주자 점룡은 여인을 방에 들여보내고는 지고 온 땔감 석 단으로 불을 때고는 남은 숯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들여갔다.

    은갑은 제 방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기척이 없어 문밖에서 점룡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방문이 젖어 있었고 문틈으로 연기가 새어나왔으므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화염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했다. 서로 껴안고 누운 남녀가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은갑이 크게 놀라 집주인인 고은옥을 불러 함께 불을 껐다. 불은 지붕에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 몸은 불에 타 문드러졌다. 점룡의 오른발이 화로에 올라 있었는데 깊이 잠든 뒤에 화롯불이 옮아 붙었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화로에 걸쳐진 발은 멀쩡한데 몸뚱이만 타서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흠.”

    약용은 말없이 정기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롯불에 의한 실화라면 두 남녀가 불에 타면서도 꼭 껴안은 채로 죽었을 리 없는 데다 화로에 걸쳐진 발만 오히려 성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나은갑이 신고에 늑장부린 경위를 의심해 문초했더니 김점룡에게 반 년 전에 돈 쉰 냥을 빌린 정황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자가 남녀를 미리 죽인 다음 실화로 조작한 것으로 초검장(初檢狀)을 작성해 감영에 보고했더니 순천부사에게 복검이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감영에서 제사(題詞)를 보내오기를 사건 정황이나 수사 결과에 의문이 많다고 삼검을 명해 왔습니다. 본읍 안전께서 다시 형방에 영을 내려 조사해 보았지만 달리 다른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안전께서 소직을….”

    “그러니까 나에게 자문을 구해 보라고 하셨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곡산부사로 고을살이를 하실 적에 송화현과 수안군의 살인사건 같은 난제를 해결하신 바 있고, 형조참의로 계실 때에도 양주의 살인사건을 재조사해서 12년 만에 진범을 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요즘 전국의 형사 사건을 수집하여 책으로 쓰고 계시다는 소문을 들기도 했고…. 해서, 선생님께서 조용히 본읍에 내왕하셔서 검안 문서도 살피시고 죄인들을 취조해 진상을 밝혀 주십사 하는 것이 저희 안전의 당부입니다.”

    “허어, 그건 안 될 말이네. 내가 적소를 무단이탈할 수는 없는 노릇일세. 나주목사는 영명한 분인데 일개 화재사건으로 죄인에게까지 아쉬운 소리를 하실 리 없네. 잘 헤아려서 가닥을 잡으실 테지.”

    기원이 무릎걸음으로 약용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실은, 지금 조정에서 각 군현이 적용한 형률의 잘, 잘못을 점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경상도 상주의 살인사건 수사가 잘못 되었다고 한 선비가 상소를 올렸는데 전하께오서 진노하셔서 미제사건은 물론 확정 판결이 난 것도 다시 법에 따라 회계(回啓)하라 형조에 명하셨습니다. 이번 사건도 감영에 올린 초검장과 순천부사가 올린 복검장의 내용이 달랐다고 합니다. 해서 감사께서 초검과 복검장을 첨부한 계장을 형조에 올리는 한편 저희 안전께 삼검을 명했습니다. 나은갑의 처가 감영에 탄원서를 넣은 게 결정적이었지요. 해서 안전의 고심이 큽니다.”

    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 그렇다면 나주목사가 좌불안석인 이유를 짐작 못할 바도 아니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 수령이 수사해 초검장을 관찰사에게 보내면 감영이 인근 군현의 수령에게 복검을 의뢰하는 것이 절차였다. 복검관은 사건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초검 때와 똑같이 검시하고 관련자들을 심문한 후 복검장을 관찰사에 보낸다. 관찰사는 두 건의 보고서를 대조한 후 의혹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고, 시체를 유족에게 내주어 매장하도록 한 후 검안(檢案)을 정리하여 형조에 보고했다. 만일 의혹이 남으면 형조는 삼검은 물론 사검도 명했다. 수사에 소홀함이 있거나 뇌물을 받고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면 수령의 파직은 물론 중형에 처해지는 것이 법도가 아닌가. 전조(정조) 때인 기미년(1799년) 4월 약용이 곡산부사에서 내직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의 특명으로 형조참의로 승차했을 때도 그랬었다. 전국의 형사사건을 재심하라는 어명이 자신에게 내려졌던 것이다. 확정 판결이 난지 10년이 넘은 것을 포함해 특히 부당한 사안을 뽑아 경연에서 상주하자 왕이 제반 문건을 어람하시고는 초검을 잘못한 수령을 파직했고 약용은 전하의 수결을 받아 무고히 죄를 입은 자들을 석방시켰던 것이다. 자칫 목이 달아날 판이니, 나주목사는 예물과 나귀까지 갖추어 이 젊은 관원을 보냈을 것이었다.

    “자네 안전의 처지는 딱하네만, 그렇다고 어디 내가….”

    “선생님께서 곧 해배되어 조정에 귀임하실 것이란 소문이 파다한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저희 안전께서 강진현감에게 묵인해 줄 것을 청하는 서찰을 쓰셨으니 며칠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약용은 눈길을 마당으로 돌렸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데 마당가 연못의 얼음판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적소의 관할지를 넘는 건 마음에 걸렸지만 유배된 지 어언 14년, 초기의 엄중한 감시도 느슨해진 마당이라 강진현감이 눈감아준다면 며칠 비운다 해서 새삼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사건 역시 흥미를 끌었다. 남녀가 꼭 껴안고 죽었는데 방화인지 실화인지도 알 수 없다니. 갖가지 기이한 형사사건을 분석해 형률 집행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책을 쓰고 있기도 하니…. 무엇보다 억울하게 죄를 입는 백성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약용은 고개를 돌려 젊은 관원을 마주 보았다. 정기원은 약용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안전의 청이 그렇듯 곡진하시니….”

    정기원은 하룻밤 묵으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당을 내려갔다. 강진현의 객사에서 유숙하고 다음날 일찍 찾아오겠다며 어두운 대숲 길을 내려갔다.

     

    이튿날 진시에 약용은 상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솜을 둔 두루마기를 입고 휘양(머리에서 목덜미까지 덮는 방한모)까지 썼건만 목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매서웠다. 붓과 벼루, 그리고 안경이 든 필낭이 나귀의 엉덩이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나주까지의 이백 리 길은 멀었다. 높고 험한 월출산 풀티재를 넘을 적에는 관노에게 견마 잡힌 나귀가 눈길에 자주 미끄러져 몇 번이나 낙마할 뻔 했다. 영암의 객주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여운재를 넘어 금정, 동창을 지나 나주 읍성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유시 무렵이었다. 동문을 지나 밤마을에 들어섰을 때 약용은 옛 생각에 문득 목이 메었다. 15년 전 약전 형님과 함께 유배를 왔을 때 형제는 이곳 주막에서 하루를 묵고는 흑산도와 강진으로 생이별을 했던 것이다.

    이슥해서야 나주관아에 닿았다. 정문인 정수루(正綏樓)를 넘어 동헌 앞에 서자 기원이 댓돌 앞에 서서 “참의 영감을 모시고 왔습니다.” 하고 거래를 올렸다. 장지문이 벌컥 열리더니 목사가 상반신을 드러냈다. 약용은 짐짓 두 손을 맞잡았다.

    “죄인 정약용, 목사께 현신이오.”

    목사는 버선발로 뛰쳐나와 약용의 손을 끌었다.

    “정 참의, 원로에 노고가 크셨소이다. 현신이라니 그 무슨 민망한 말씀을…. 날이 찬데 어서 오르시오.”

    정청 옆 큰방에 들어서서 약용은 목사와 맞절을 했다. 군불을 얼마나 넣었던지 온돌방이 절절 끓었다. 출사가 늦었던 듯 목사는 환갑을 두어 살 앞둔 늙은이였다. 크게 모진 데는 없어 보였지만 축 늘어진 볼 살에 총기 없는 눈빛은 선정을 베푸는 목민관의 풍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석에 앉은 목사가 설렁줄을 당기자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지 곱게 차린 기녀 둘과 함께 다담상이 나왔다. 산적에, 떡갈비에, 갖가지 해물과 나물에다 나주 특산인 홍어애탕까지 곁들인 떡 벌어진 상이었다. 약용은 쓴웃음이 나왔다. 사학귀신이라 타매하며 자신을 송충이처럼 피했던 지방 수령들이 아니었던가. 이 자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구나. 목사가 직접 술을 치며 설레발을 쳤다.

    “자 자, 따끈한 술 한 잔 하시오. 소관이 무능하여 이 추운 날 먼 길을 오시게 했으니 면목 없소이다. 참의께서 직접 우리 고을 형옥의 일을 살펴 주신다니 한시름 놓았소이다.”

    목사와 술잔을 서너 순배 나누던 약용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관장께서도 이제 내아로 돌아가 쉬셔야 할 것인즉 저는 이만….”

    곁에 앉힌 기녀를 데려가라는 목사의 은근한 제의를 약용은 쓴웃음으로 사양했다.

    다음날 새벽 약용은 소세하고 옷을 갖춰 입은 다음 필낭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는 간밤에 기원이 가져다 준 문건을 읽었다. 나주목의 초검장은 기원의 말과 큰 차가 없었다. 약용은 시장(屍帳:시신검험서)도 읽어 보았다.

    ‘두 눈구멍에서는 선혈과 흰 즙이 흘러나와 서로 섞였고 어금니는 꽉 다물었으며 왼쪽 어깨의 쇄골이 데어 꺼멓고 왼쪽 견갑과 겨드랑이가 데어 문드러졌으며 팔꿈치와 두 손도 데어 문드러졌다. 또한 갈빗대와 옆구리, 하복부나 사타구니가 데어 문드러졌고 살갗은 오그라들었다. 자지는 발기되었으나 까맣게 데었고 불알도 까맣게 탔다. 피가 흐른 자국이나 칼에 찔린 흔적은 없었다.”

    여인의 시장도 남자와 비슷했는데 오른쪽 겨드랑이와 가슴이 까맣게 탔고 생식기도 까맣게 데었으나 두 다리와 얼굴 그리고 열 개의 발톱은 온전하다고 쓰여 있었다. 약용은 초검과 재검 때『무원록(無寃錄)』이 정한 절차를 밟았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별다른 잘못은 없어 보였다. 시신 역시 규정대로 거적에 말아 구덩이에 넣은 다음 문짝으로 덮어 그 위에 흙으로 봉토를 만들고 회를 뿌려 놓았다고 돼 있었다.

    객사로 날라져 온 조반을 치렀을 때 관복 차림의 정기원이 찾아왔다.

    “어떻게… 죄인을 신문하시겠습니까.”

    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내가 동헌 뜰에서 소란 떨 처지가 못 되니 죄인을 객사의 뒤뜰로 조용히 데려오게. 형구를 차릴 필요는 없네.”

    끌려온 사내는 한 달 넘은 옥살이로 초췌했다. 떡이 진 머리칼은 봉두난발이었고 피멍 든 얼굴은 시퍼렇게 추위에 얼었으며 차코를 찬 발목은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나졸이 사내의 무릎을 차 섬돌 앞에 꿇렸다. 약용은 문이 활짝 열린 객사 상방에 앉았고 기원이 배석관 시늉으로 약용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툇마루엔 붓을 든 나주목의 형방이 서안을 끼고 있었다.

    “고개를 들라.”

    약용과 사내의 눈이 마주쳤다. 나이깨나 먹은 낯선 도포짜리를 보자 또 무슨 경칠 일인가 싶었던지 사내의 눈에 겁이 더럭 실렸다. 약용은 어조를 낮추어, 그러나 목소리에 힘을 실어 물었다.

    “네가 나은갑이 맞느냐?”

    “예? 예에.”

    “네가 김점룡과 유소사를 방화 살해하였다지?”

    사내의 눈이 한껏 벌어지더니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멫 번을 말씸디리야 한다요? 소인은 절대로 점룡이를 죽인 적이 웂구만이라. 하룻밤만 방을 빌려달람시로 하도 졸라 싸서 마지못혀서 빌려준 죄 말고는 웂어라.”

    약용은 서안에 놓인 검험서를 집어 흔들어 보였다.

    “여기 본읍에서 조사한 내용이 다 있다. 한 치라도 거짓말을 해선 살아남지 못할 게야. 네가 점룡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자 두 사람을 죽인 연후에 방에다 불을 지른 게 아니냐.”

    “아, 아니어라. 지가 점룡이에게 돈을 빌리긴 혔어도 올 삼월까지는 갚겠다고 약조를 혔고 점룡이가 갚으라, 재촉한 적도 웂었는디라.”

    “그럼, 네가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그 자가 외간 여인과 음사를 벌이도록 방까지 빌려줬단 말이냐?”

    “그, 그건….”

    사내가 말을 더듬자 툇마루에 앉았던 형방이 눈을 부라렸다.

    “이눔아, 얼른 이실직고하지 못하것느냐? 저런 육시랄 눔 같으니….”

    약용은 말없이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어깨를 떨던 사내는 한참만에야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다.

    “지, 지는 점룡이와 고추친구였제라. 성 밖 싸릿골에서 함께 자랐는디요. 수향이는 우리네 옆 마을인 물골에서 살었고요. 헌데, 두어 달 전에 점룡이가 허는 말이….”

    수향이란 유 소사의 이름일 것이었다. 약용이 더 말하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려 보였다.

    “그라니께 그게 벌써 20년 가까운 옛날 이야그구만요. 점룡이와 지는 농사꾼 자식이었고요, 수향이 아버지는 성내 관아의 장교살이를 다녔구만이라. 장교라고는 혀도 급료가 박허니께 농사도 항꾼에 지었제라. 그려도 인근에선 수향이네 집이 질로 포실혔지라. 점룡이가 수향이와 눈이 맞았는디 둘이 죽고 못 살았지라. 그란디 어느 날 덜컥 수향이가 서울의 높은 무관의 첩이 되어뻔졌구만요. 뭐 녹도만호를 지내던 이가 호군(護軍)인가로 승차혀서 한양으로 가던 길에 나주목에 들렀는디 수향이 아부지가 이 냥반을 하룻밤 자기네 집에 모셨다등만요. 동네사람들은 수향이 아부지가 딸을 첩살이로 팔아먹었다고 손가락질도 혔제라.”

    약용은 나은갑의 진술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벼슬아치가 유숙을 청하는데 관아의 객사가 비좁으면 병방이 끼끗한 집 꼴이나 가진 관내 장교에게 모시라 지시했을 법도 했다. 중인이라고는 하지만 향읍의 하급 장교 따위로서 막 승차해 기고만장한 한양 사영의 정사품 호군짜리의 위세에 눌려 딸을 내준 것도 드물기는 하나 있을 수 없는 노릇도 아니었다.

    “수향이가 한양 양반을 따라가고 나서 점룡이의 낙망한 정경은 친구로서 보기 딱할 정도였당께요. 어쨌든지 세월이 흘러서 다른 여자와 혼인을 허고는 아들, 딸 낳었지요. 점룡이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나는 장사로 생업을 바꾸어 나주성 안에 들어와 살았구만이라. 지는 점룡이가 옛날일은 다 잊어뻔진 중만 알었지요. 헌데, 긍께 한 두어 달 전 이 친구가 느닷없이 찾아와설랑 지를 주막으로 끌고 가더랑께요. 술이 들어가니께 미친눔처럼 웃고 울고 알아들지 못할 소리를 중얼중얼 해쌌등마요. 머시냐, 수향이가 한양 양반 첩살이를 작파하고 나주로 돌아왔다나, 뭐라나. 혀서 소인이 옛날일은 이미 물에 다 떠내려 간 것이니 아여 딴 맘일랑 묵지 말라고 침을 줬지라. 그란디 작년 섣달에 친구가 느닷없이 찾아왔어라.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빈 방이 있으면 하룻밤을 빌려달라등마요. 무슨 뚱딴지 소린가 싶어 담 밖을 보니 희끗희끗 그림자가 어리는 것이 장옷을 쓴 여자 하나가 서 있등마요. 혀서 소인이 ‘이 미친눔아, 그여 일을 벌이는 게비냐’고 눈을 부라렸더니 점룡이가 내 소매를 붙들고 통사정을 하지 않겄어라. 지가 점룡이와 수향이의 첫정을 아는 터라 그 정경이 애달프기도 혀서 박절하게 쫓아내지를 못혔제라. 그래서 이 일을 어쩔끄나 함서도 방을 내 주었는데 그 꼴이….”

    약용은 나은갑에게 몇 가지 더 묻고는 다시 하옥하라 일렀다. 그리고는 오후에는 김점룡의 아내 김 소사를 불렀다. 농사꾼의 아내답게 엄전한 여염 부녀였다. 약용이 남편이 죽던 날의 행적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섣달 열이틀이 시아버지의 대상이었는디 점심을 묵자마자 남편이 아들을 시켜 제사지낸 고기를 단골 술집에 보내라 하등마요. 저녁을 묵고는 밖에 일이 있어 나간다던 남편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는디 이튿날 이웃집 아그가 숨이 차 뛰어와 하는 말이 남편이 고은옥이네 집에서 불에 타 죽었다고 혔제라. 낭중에 술장수 노파에게 물어본께 그 고기를 받은 사람은 반남(潘南) 길가에 사는 여자라 하등마요.”

    “그럼 남편이 죽은 현장을 목격했던가?”

    “예. 급히 가서 본께 연기가 방에 가득 차 있더구만이라. 남편의 머리가 웬 여자의 오른팔을 베었고 여자의 다리는 남편의 배 위에 걸쳐 있었제라.”

    여인의 진술 역시 검험서와 크게 다른 대목은 없었다. 눈물을 비 오듯 흘리던 여인이 말을 이었다.

    “쩌기…그란데 나리, 제 남편의 시신을 그만… 내 주시면 안되겠어라?”

    “수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임의로 내 줄 수는 없네. 그런데 왜 그러나?”

    여인은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지 남편이 남의 손에 죽었거나 급살 맞았거나 한 달이 넘도록 장사를 못 치르고 있응게 미우나 고우나 계집 된 마음에 하도 짠혀서…. 그려도 제 남편은 평생을 못 잊던 정인과 한날한시에 죽었으니 여한은 웂을 게라.”

    “알았네. 빨리 수사를 종결해서 시신을 내줄 테니 기다리게나.”

    김 소사를 내보낸 다음 약용은 사건의 의문점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다. 복상사는 가끔 있지만 대개 남자만 죽는 법인데 이번처럼 남녀가 함께 죽은 것이 첫째 의문이었다. 불이 나면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버둥거리는 게 보통인데 팔을 베고 껴안은 채 죽어 있었다니 그 또한 괴이한 일이었다. 불이 붙어 옷이 탔으나 버선은 오히려 멀쩡한 것이 셋째 의문이었다. 불은 아래로부터 타기 시작하여 위로 올라가는 법인데 허리와 배가 새카맣게 탄 반면 등은 거의 타지 않았으니 이 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사내가 자지가 뻣뻣이 서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누웠던 곳의 재와 먼지를 깨끗이 쓸고 초(醋)를 뿌려봤는데도 방바닥에 핏자국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칼에 찔려 죽은 것은 아니었다. 목구멍에 들어간 은비녀가 변색되지 않았으니 독살 또한 아니었다.『무원록』에 이르기를 ‘강제로 목이 졸려 살해된 후 시체를 몰래 불 속에 던져 넣은 경우엔 머리털이 누렇게 타고 얼굴에서 전신에 이르기까지 위아래가 모두 검게 타며 피부가 쪼그라들어 쭈글쭈글해진다’고 했지만 남녀의 머리카락이 온전하니 다른 곳에서 목을 졸라 죽인 다음 시신을 옮긴 위장 방화일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약용은 뒷짐을 지고 객사의 방을 서성거렸다. 생각할수록 사건이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두 남녀의 죽은 모습이 마치 꿈꾸는 듯 보였다….

    그는 초검발사에 쓰인 구절을 곱씹었다. 불에 타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서로 굳게 껴안은 채 꿈꾸는 듯 했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남녀의 음욕이 얼마나 강했기에 그럴 수가 있었을까. 글쎄, 음욕이라….

     

    다음날 조반을 치른 다음 약용은 관아를 나섰다. 현장 검증을 나선 길이었다. 정기원과 병방 나졸 하나를 딸린 채였다. 그동안 초검이니, 재검이니 해서 여러 관원이 다녀갔을 터이지만 일단 현장에 가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약용은 김점룡과 유수향이 불에 타 죽은 방에 쳐진 금줄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타다 만 방은 벽이고 천장이고 거멓게 그을음이 눌러 붙어 있었고 방바닥엔 화로가 뒹굴고 있었다. 사람 둘의 형상으로 타다만 요에는 누런 기름기가 배어 있었다. 이곳저곳 주의 깊게 살폈지만 한 달이나 지난 터라 예상대로 건질 단서는 없었다. 현장에서 나오는데 기원이 뚜벅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습니까?”

    약용은 빙긋 웃었다.

    “글쎄, 무어 아직은….”

    객사인 금성관으로 들어서다가 약용은 문득 정기원을 돌아보았다.

    “김점룡에게 노모가 있다고 했던가?”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초검과 재검에서 그 어미를 불러 진술을 들었던가?”

    “글쎄요.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어서 따로 진술을 듣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은 그 어미를 불러오도록 하게.”

    “예.”

    몇 발자국 더 떼다 약용은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찰이나 뭐 정표 같은 것도 있을 법하니 나졸을 시켜서 한 번 훑어보게나.”

     

    김점룡의 어미가 불려온 것은 다음날 사시 무렵이었다. 그 어미를 데리러 갔던 나졸은 점룡의 방 문갑에서 유수향이 보낸 편지도 찾아왔다. 수향의 집에서도 점룡의 편지가 나왔다. 점룡의 어미는 환갑이 넘은 노파였다. 약용은 노파를 객방으로 올라오게 했다. 노파는 황송한 기색으로 윗목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므로 약용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래, 아들이 비명횡사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겠나.”

    “…”

    노파는 방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 없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새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망자의 사인을 밝히려는 뜻이네. 죽임을 당했다면 범인을 찾아내야 망자의 원한이 풀릴 것이고, 스스로 죽었다면 또한 그 까닭을 밝혀내야 억울하게 죄를 입는 자가 없을 게 아니겠나.”

    그래도 노파는 말이 없었다. 잠깐 뜸을 들이다가 약용은 말을 이었다.

    “그래, 나은갑의 이야기로는 자네 아들과 유소사가 처녀 총각이었을 적 첫정이었다는데 사실인가?”

    노파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한참을 앉아 있더니 기어드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구만이라.”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게.”

    “저희는 지금은 비록 무지렁이 농사꾼이라 하나 원래는 양반 가문이었지라. 점룡이의 육대조가 효종대왕 때 함평현감을 지냈지만 그 담에는 현관이 나오지 않었고 더구나 저희는 지손이라 점룡이의 조부 대부터 농사꾼 지체로 떨어져 부렸구만이라. 가난한 살림이었어도 점룡이 아부지가 아들을 서당에 보내 소학권이나 떼게 했제라. 이웃 마을의 서당에 다니면서 그 마을 장교네 딸과 눈이 맞았등가 봅디다.”

    “그래서?”

    “그 소문이 지 아부지의 귀에 들어가서 점룡이가 경을 쳤구만이라. 점룡이 아부지는 비록 집안이 영락해 토반 부스러기도 못 되는 농사꾼의 처지가 됐다고는 혀도 엄연히 족보가 있는 양반의 후예로서 어찌 중인의 여식과 혼인을 할까비냐, 너를 서당에 보낸 것은 혹시라도 과거나 해서 집안을 일으킬랑가 허는 기대 때문인데 공부는 뒷전이고 계집과 분탕질이 머시냐고 귀쌈까지 때렸제라. 그 장교 집에서도 농사꾼인 우리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딸을 단속했다등마요.”

    “흠…”

    “서리 맞은 푸성귀 꼴인 아들놈을 보기 딱혔지요. 혀서 쇤네가 점룡이 아비에게 대들었당께요. 우들이 양반의 핏줄이라고는 혀도 누가 양반으로 대접허느냐, 무슨 수로 다시 버젓한 현관을 내겄느냐, 저리다가 공연시리 아이 하나 망치것다. 애 아부지가 말이 웂길래 되든 안 되든 통혼이나 혀 보자고 매파를 부를 참인디, 한양의 높은 무관이 그 집 딸을 양첩으로 채갔다는 소리를 들었어라.”

    이 대목에서 노파는 말을 끊더니 저고리 고름으로 마른 눈물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노파는 한참만에야 갈라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이후로 점룡이의 정경은 딱해서 볼 수가 웂을 지경이었제라.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있더니 산이고 들판이고 밤낮으로 쏘댕겼어라. 지 말로는 속에서 불이 솟구치는 듯해서 미칠 것 같다고 혔제라. 그라더니 대처 바람이나 쐐야 쓰것다고 애비 몰래 집을 나가서는 반년 만에 지게에 실려왔는디 온 삭신에 피멍이 들고 엉덩이가 걸레처럼 해지고 뼈마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제라. 혈분까지 내서 보는 사람마동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지요. 두 달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디 그때부터 말을 잃었제라. 한참 후에야 알고 보니 이눔이 한양의 무관집을 찾아가선 월장을 혔다가 멍석에 말려 무릿매를 맞았다고 헙디다. 하인들이 집밖에 내쳤는디 수향이가 수발드는 안잠자기를 시켜 몰래 사람을 사서 점룡이를 의원에게 보여 제우 목심을 살맀다 하등마요.”

    약용은 묵연히 이야기를 들었다. 노파는 하소연하듯, 갈라진 목소리로 오래 묵은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아들이 몸을 추슬르자 서둘러 맞춤한 양민 집 딸과 혼인을 시켰지라. 이놈이 이번에는 수걱수걱 시키는 대로 하등마요. 며느리가 무던한 아이라 지금까지 아들 딸 낳고 십팔 년 동안 탈 없이 농사짓고 살아왔제라. 재작년에 시아비가 세상을 떠난 후 대상도 아금받게 치렀고요. 그런데 몇 달 전에 사단이 나고야 말었습니다. 아 글씨, 고 급살 맞을 년이 고향으로 쫓겨 내려왔다등마요. 소문을 듣자 허니 첩살이 허면서 딸을 낳았답디다. 사 년 전에 그 무관이 죽었는디 안방마님이 원래 투기가 많았던 모양이등마요. 더는 첩과 한 집에서 살 수 없다면서 맨몸으로 모녀를 내쫓았다더구만요. 수향이는 셋집에 살면서 바느질로 호구를 했는디 딸까지 역질에 잃었다등마요. 졸지에 적막해진 수향이가 친정 근처에서나 살겄다고 여그로 왔는디 그 친정이 또한 첩살이 하다 쫓겨 온 딸을 부끄럽게 여겨 집에 들이지 않었답디다. 혀서 나주 읍내에서 기생첩들 바느질을 하며 살었는디 그만 지난해 여름에 나주장에서 닭을 팔러 나갔던 점룡이와 마주쳤뻔지지 않았것어라? 이 속 웂는 눔이 술에 꼭지가 돌아 왔는디 그런 실성한 놈이 없었지라. 닭을 넣었던 어리는 달아나고 개천을 건너다 자빠졌는지 이마는 깨지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는디 밤새도록 기집 이름을 부르며 난리를 쳤어라. 그라더니 담날부터 농사를 작폐하고 읍내로만 댕겼지라. 이눔아, 지금 아버지 대상인데 상주된 놈이 이럴 수가 있간디 하고 따지먼 한 사날 집에 처박혀 있다가 다시 미친눔 맹키로 빠져 나가니 어디 메누리 볼 낯이 있었간디요.”

    약용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더 들어볼 것도 없을 것이었다. 노파를 내보내고 난 다음 약용은 나졸이 찾아온 언문 서찰을 펼쳐 읽었다. 먼저 점룡이 보낸 편지였다.

     

    내 지난 이십 년이 천지간에 적막하더니 이제 다시 자네를 만나 마른 가지에 새잎이 돋은 듯하오. 자네와 해후할 때를 다시 생각하면 기연이었거니와 자네를 그리던 내 간절함에 하늘이 응답하심이 아닐까 하오. 그때 내가 읍성 안 남문외장의 주막에 있지 않았다면, 막걸리 잔을 놓고 거리를 무심코 내다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돌개바람이 일어 자네가 쓴 장옷을 날려 보내지 않았다면 내 어찌 자네를 알아챌 수 있었으리요. 긴가 민가 주춤주춤 다가갔을 때 놀람으로 한껏 눈이 커지며 나를 올려보던 자네의 얼굴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아리땁던 규수의 얼굴은 세월의 풍상에 추연히 잔주름이 졌건만 그래도 내 어찌 자네를 몰라볼 수 있으리오.

    내 자네를 마지막 본 것이 십팔 년 전이었거늘 그때의 통분한 심사는 아직도 어제 일인 듯 선연하이. 녹의홍상, 삼회장저고리에 스란치마 입고 곱게 분단장한 채 아미를 숙이며 가마를 탄 자네가 구렁말에 구군복을 입은 사내를 따라 동구 밖 들길 너머로 나비처럼 가뭇없이 사라졌을 적에 나는 피가 솟구치도록 이마를 동산의 소나무 둥치에 처박고 또 처박았다네. 나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오, 그저 허깨비였거니 생각할수록 자네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워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세월이었소.

    주막거리에서 잠깐 만난 자네 얼굴이 꿈속인 양 하 삼삼하오. 이제 자네를 다시 만난 것도 하늘의 인연이 아니겠소. 자네와 내가 처음 만났던 길목의 주막 할미에게 은근히 부탁하여 호젓한 사처를 잡을 터이니 자네는 부디 내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 말고 사흘 후 술시에 나와 주기를 간절히 청하오.

     

    약용은 이번엔 수향의 답서를 펼쳤다. 꼭두서니로 물들인 듯 옅은 주황빛 한지에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곱고 단정한 언문체였다.

     

    천지간에 뜻밖으로 오라버니를 만난 지 이제 닷새, 제 가슴이 아직도 먹먹하고 벌렁벌렁 뛰나이다. 오라비께서 길을 막고 서서 ‘이보오, 아짐씨’하고 저를 불렀을 때 소녀는 그만 쓰러질 듯하였나이다. 눈과 눈이 서로 마주쳤을 때 입에서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아! 하고 튀어나오더이다. 십팔 년만의 노중상봉이라니 이 무슨 기박한 운명인가요. 하지만 소녀는 나주로 온 후 오라비께서 후덕한 실인을 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산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더이다. 하오니 소녀가 무슨 염치로 나설 수 있었겠나이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득한 세월이었나이다. 서울 양반의 강압에 못 이긴 제 아비가 소녀를 손님방에 밀어 넣으려 했을 적에 소녀는 목을 매었나이다. 박복한 년이 그조차 어미에게 들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내 몸을 버리고 가마 타고 먼 길을 떠날 적에 소녀는 껍데기만 남아 있었을 뿐 정신은 나주에 남겨 놓고 간 것이었나이다. 오라버니께서 한양으로 찾아와 제 거소로 월장을 하였다가 하인배들께 무릿매를 맞고 거적에 싸여 버려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제 소녀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요. 찢어지는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어 가슴 깊은 곳에 피멍울이 졌답니다. 이제 오라버니가 일가를 이루어 잘 사신다니 소녀는 그것만이 다행이옵고 다른 욕심이 아무 것도 없삽내다. 오라버니의 뜻은 너무도 잘 아오나 이제 다시 소녀를 만나신다면 모처럼 이룬 집안의 화평이 깨질 터이니 부디 자중자애하옵소서.

     

    그러고는 만나자느니, 안 된다느니 하는 편지가 다시 두어 번 더 오간 눈치였다. 그랬다가 사건 전날 김점룡이 주막 할미를 시켜 제수 음식과 함께 만날 것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유수향이 마침내 뜻을 굽혀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점룡이 호젓한 곳을 찾노라고 수향을 데리고 나은갑의 집을 찾아갔을 터였다.

    그런데, 점룡과 수향은 어쩌다 불에 타 죽었단 말일까. 어쩌다 그 간절한 만남이 화마에 휩싸여 파탄났단 말일까.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으로 옮겨가려고 함께 죽기를 기약했다는 것일까.

    약용은 뒷짐을 지고 금성관 뜰을 거닐었다.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는 그의 모습에 상도 스승의 눈치만 볼 뿐이었고 정기원도 말을 붙이지 못하였다.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만 궁굴린 지 이틀만이었다. 서안에 앉아 초검, 복검 검험서와 두 남녀의 편지를 뒤적거리던 약용의 머리에서 문득 아득한 옛날의 기억이 섬광처럼 튀어올랐다.

    피맛골 어느 술자리에서 박제가와 이덕무가 젊은 선비들을 불러 만든 술자리였다. 약용이 소과에 합격해 진사가 됐을 무렵이었다. 박제가와 이덕무는 서얼이었지만 그때 정조의 부름을 받아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음담도 왁자했을 것이다. 무슨 말 끝엔가 이덕무가 술에 취해 떠들었다.

    “사람의 몸은 모두 물과 불이 모인 것이거든. 그래서 도가(道家)에선 물을 올리고 불은 내리는 것을 극공(極工·지극함을 다함)이라 했고, 의가(醫家)에선 음(陰)을 북돋아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을 지요(至要·지극히 중요함)라 했단 말일세. 음욕이란 것은 섶과 같아서 음욕에 이끌려 정욕의 불이 세차게 되면 사람의 몸이 타는 것은 얼마든 있을 수 있단 말이지.”

    만 권의 경서를 읽어 별명조차 ‘책만 읽는 바보(看書癡)’였던 이덕무였다. 술에 취하면 동서고금 넘나드는 박람강기를 과시하곤 했던지라, 이 검서관은 이제 보니 음담까지 꿰뚫은 모양일세, 하고 다들 웃고 넘어갔던 터였다. 그랬는데, 삼십 년도 더 지난 기억이 망각의 장막을 뚫고 불쑥 솟아올랐던 것이다.

    ‘음욕이란 섶과 같아서 정욕의 불이 세차지면 몸이 탄다….’

    이덕무가 남녀가 방사를 할 때 음욕이 지나치면 스스로 몸에서 불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약용은 ‘원, 세상에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구. 허풍하고는….’ 하면서도 덕무가 이십 년이나 존장이어서 따지지 않고 웃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막상 허풍만은 아닌 듯싶었다.

    사람이 손을 마주 비비면 뜨거운 열이 생기지 않는가. 병가(兵家)에서도 사람의 기름덩이로 맹화유(猛火油)를 만들어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게 불덩이를 쏘아 보낸다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사람의 기름은 인화성이 강하다는 이야기일 터였다. 가만, 초검보고서에 뭐라고 돼 있었더라. 그래, 두 남녀의 심장과 뱃속에 있던 황고(黃膏·지방)가 다 타고 없어졌다 했지.

    약용은 급히 옆방에 있던 상을 불렀다.

    “너, 지금 정 교수에게 가서 책실에 주양공(周亮工)의『인수옥서영(因樹屋書影)』이란 책이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해라.”

    주양공은 명조에 진사에 오르고 청조에서 시랑 벼슬을 산 사람으로 고금의 시문과 서화에서 금석문까지 통달한 박물군자였다. 두어 식경 후에 상이 책을 가져왔다. 약용은 서둘러 책을 뒤적였다. 기억 속의 대목이 책에 있었다.

    ‘곡주현(曲周縣)의 영동(令桐) 진우계(陳于階)가 말하기를, 그 고을의 부잣집 며느리가 친정에서 돌아온 다음날 일어나지 않았다. 문을 뚫고 들어가니 연기가 코를 찔렀는데 마치 유황이 타는 것과 같았다. 침상으로 가서 보니 이불이 반쯤 타서 구멍이 났고 두 몸이 함께 탔으나 다리 하나만은 불에 타지 않았으니 인간의 이치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용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여기 중국 곡주현의 일과 김점룡의 사건이 똑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는 눈을 감고 사건을 재구성했다.

    고기를 싸들고 간 주막 할미를 따라 나선 유수향은 주막에서 점룡과 은밀히 만났을 것이었다. 너울거리는 촛불 아래 점룡은 저고리 고름만 만지작거리는 수향의 하얀 가르마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술상을 앞에 놓고 지나간 추억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무상한 세월을 탄식하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 곡절을 겪을 만큼 겪은 남녀인지라 마주치는 눈빛에서 뜨거운 정욕도 읽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 만의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어둠이 짙어지자 점룡은 나뭇짐을 구해 들고 나은옥의 집으로 갔을 것이었다.

    냉방에 불을 지피고 화로에 불을 붙인 다음 둘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껴안고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점룡이 떨리는 손으로 수향의 저고리와 치마를 벗겨낸 다음 무지기와 단속곳, 가슴가리개와 다리속곳을 차례로 벗겨내고…. 훌렁훌렁 제 옷을 벗어 던진 사내가 부서져라 여인을 끌어안는다. 20년 동안 그리던 몸뚱이였으니 맨살이 부딪칠 때 불꽃 같은 정욕이 오죽했을 것인가. 술도 한잔 했겠다, 살과 살이 맞비벼지고 팔다리가 빈틈없이 얽히자 불이 튀는 듯 눈앞이 아뜩하면서 입에선 단내가 나고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리라. 마침내 점룡의 몸이 수향을 비집고 들어가 힘차게 방아를 찧을 적에 달대로 단 오장육부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약용의 망막에 벗은 몸을 겹쳐 안고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 버둥거릴 때에 폭약 터지듯 삽시간에 몸뚱이에 확하고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떠올랐다. 평생을 억누르고 억눌렀던 그리움이 일시에 폭발했을 터이니. 정염(情炎), 욕정의 불꽃이란 말이 있기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유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제 몸을 태워버리는 욕정이 있었단 말이던가. 약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의 몸뚱이까지 태워버린 그 사랑과 절망의 깊이를 잴 수는 없었다.

    “허…”

    그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냈다.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는 객방의 황촉불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고 건넌방에서 상이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오시 경 약용은 동헌으로 목사를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낮잠에 들었던지 목사는 의관을 정제하느라 한참이나 지체한 후 맞았다.

    “그래, 내막은 살펴보셨소이까.”

    약용은 잠시 뜸을 들이다 사건의 진상을 설명했다. 목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원 세상에… 남녀가 방사를 하다 음욕이 과해 오장육부에 열이 나서 제 몸뚱이를 태우다니요.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소.”

    약용은 목사의 얼굴에 서리는 의혹을 보면서 쓴웃음을 삼켰다. 그는 약용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자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기야, 나도 처음엔 의심을 했소만,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소. 관장께서도 수사를 해보셨지만 방화 살인이란 증거도 없고 실화일 까닭도 없지 않았소이까. 그러하니…”

    약용은 이어서 초검과 재검장에 나온 내용을 들어 중국의 사례와 비교하고 동서고금의 예를 자세히 들었다. 목사는 고개를 끄떡이긴 했지만 끝내 얼굴이 펴이지는 않았다.

    “수사의 달인이라는 참의께서 내리신 결론이니 소관은 믿을 밖에 없소이다만 감영이나 형조에선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걱정은 마시오. 내가 직접 조목조목 삼검장 초본을 써드릴 테니 그걸 베껴 제출하면 큰 추궁은 없을 게요.”

    “참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한번 올려보도록 하지요. 그럼 사건 처결은…”

    “나은갑과 고은옥은 살인의 죄가 없으나 상풍의 정을 알면서도 방을 빌려 주었고 관에 사건을 즉시 발고하지 않았으니 곤장이나 때려 방면함이 옳을 것이오. 김점룡과 유소사의 시신은 각기 유족에게 내주어 장례를 치르게 하시고…”

    약용은 삼검장을 쓰느라 하루를 더 머무른 후 강진으로 돌아왔다. 목사와 하직하고 돌아서는데 정기원이 정문인 정수루까지 따라 나왔다.

    “선생님께서 이번 사건을 밝게 처결해 주셨으니 저희 안전도 한시름 놓으셨을 겁니다. 이거 제가 모시고 가야 하는데 한사코 마다하시니….”

    “허허, 관무에 바쁜 몸이 무얼…. 그래 자네도 곧 내직으로 올라가겠지. 신중히 처신하여 나처럼 관재를 입지 말게나.”

    약용은 관노가 견마 잡은 나귀를 타고 나주 거리를 빠져나갔다. 점룡과 유소사가 처음 만났다는 남문외장의 주막거리를 지날 때 약용은 고개를 돌려 이엉이 삭아 주저앉은 주막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선생님, 세상에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도무지….”

    성문 밖을 빠져나올 때쯤 목사가 사례로 준 포목과 어포 등짐을 멘 상이 뚜벅 한마디 던졌다.

    “이 녀석아, 세상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으니라. 그래서 불가에서도 ‘말길이 끊겨서 더는 논의할 수 없고 생각의 길이 끊겨서 더는 생각할 수 없다(言語道斷故不可議 心思路絶故不可思)’고 하지 않더냐.”

    약용이 이틀 노정으로 귤동으로 돌아온 것은 정월 스무엿새였으니 꼬박 열흘간의 외출이었다. 아들 학연이 다른 노복을 시켜 보낸 서찰이 그새 다시 와 있었다.

    “전하께서 해배령을 내리려 했사오나 이번에도 공서파들이 들고 일어나 좌절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부디 마음을 굳게 잡수시고….”

    약용은 말없이 아들의 편지를 접어 서낭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김점룡과 유수향의 일이 퍼뜩 떠오르는 바람에 깨어났다. 더듬더듬 호롱불을 켜고는 서랍에 간직해 둔 서첩 하나를 꺼냈다. 아들과 딸들에게 줄 요량으로 아내가 보낸 치마를 가위로 잘라 시와 그림을 그려『하피첩(霞帔帖)』이라 제목을 단 서첩이었다. 노을빛으로 바스러진 명주화첩을 쓰다듬을 때 열다섯 꽃다웠던 아내의 얼굴이 삼삼해 그는 그 밤 더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약용이 유배에서 풀려 고향인 경기도 양주의 마재로 돌아온 것은 3년 후인 순조 18년 8월이었다. 그의 나이 쉰일곱이었다. 그는 강진에서 쓰던 형옥에 관한 글을 마재에서도 이어갔는데 나주의 그 기이한 일을 못내 잊을 수 없어 그 사건의 기록을 끼워 넣었다. 이듬해 원고가 완성되었을 때 그는 붓을 들어 표지에 제목을 썼으니『흠흠신서(欽欽新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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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 경남 마산 생.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소설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금발의 제니』와, 장편소설『제국익문사 1,2』, 시사산문집『가납사니의 따따부따』등이 있음. 교산 허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요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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