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드라이작 클래식200mm_양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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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작 클래식 200mm



                                          

                                                                             

                                                                                        양 진 채




    너의 휜 등뼈를 검지로 하나하나 쓰다듬고

    밤새 사막을 걸어온 네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모래 털어주고 싶었다.

     


      무심코 소화전을 열어보다 칼과 맞닥뜨렸다. 신문지에 싸여 누워 있는 칼 손잡이가 언뜻 보였다. 겨우 손잡이만 조금 보였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칼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소화전 안에 들어 있는 칼을 본 순간 몸이 얼었다. 칼이 신문지에 싸여 소화전 안에 들어 있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화전을 열었던 나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소화전을 닫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며칠 전 남편 면도기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은 게 있었다. 택배기사가 소화전 안에 넣어 놓고 갔을지도 몰라 혹시나 하고 열어 본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와 우리 집 현관 사이에 있는 소화전이었다. 소화전 안은 감아 놓은 굵은 소방호수 앞쪽으로 책 몇 권 세워 놓을 정도 공간이 비어 있었다. 언젠가도 교체용 면도날을 주문했는데 택배기사가 소화전 안에다 물건을 두었다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칼과 마주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건조한 먼지와 시멘트 냄새가 섞인 소화전 안에 정물처럼 놓여 있는 칼.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소방호수와 무언가를 썰고 다지고 살을 바르며 상처를 냈을 칼이 한 곳에 들어 있다니. 갑자기 등 뒤가 서늘했다. 늘 한쪽은 닫혀 있는, 계단으로 통하는 비상구 문 뒤쪽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가 칼의 주인일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문 뒤에서 나와 내 등에 칼을 들이댈 것만 같았다. 생각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소화전 문을 닫았다. 칼을 봉인이라도 하려는 듯. 도어록 비밀번호를 재빠르게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서서 벽에 등을 붙였다. 등은 무사했다. 대체, 누가 거기다 칼을 넣어 놓은 것일까?

      도무지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설거지를 했던가, 청소기를 돌렸던가, 빨래를 했던가. 뭔가가 조금씩 흐트러져 있었지만 미처 내가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무엇이든 몸과 정신을 혹사시켜 그 일을 잊고 싶었다. 칼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칼이 사라졌다면 방심한 틈을 타 누군가 칼끝을 내게 들이댈 것만 같아 더 무서웠다.

      멀리 벨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서 마주보이는 고등학교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종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몇 녀석이 복도 끝 유리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성급하게 담배를 피웠다. 청소년 폭력이 도를 넘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고 있었다. 저 아이들 중 누군가의 소행일까? 그게 아니라면 앞집에서 우리 집 소화전에 칼을 숨겼을까? 그렇다면 왜? 누가, 우리 집 소화전에 칼을 숨겼을까?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집요하게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도 집 안에 있는 칼을 숨기던 적이 있었다. 알코올이 남편의 정신을 지배했을 때, 아니, 남편이 알코올을 지배하려고 했을 때,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싱크대를 뒤져 칼을 들었다. 남편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칼부터 숨겼다. 집 안 어디에 숨겨도 찾아낼 것만 같은 불안으로 세탁기 빨래더미 밑에, 베란다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저 구석진 곳, 이불장 뒤쪽 또 어디엔가 칼을 숨겼다. 칼을 못 찾으면 머리채를 잡았고, 주먹이 사정없이 날아들었고 발길질이 쏟아졌다. 그래도 칼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덜 다쳐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봐 무서웠다.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을 때, 잠들었을 때만 칼을 썼다. 칼이 손가락을 자를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 칼로 내 손등을 내리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되도록이면 칼을 쓰지 않는 요리를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반 조리 상태이거나 다듬어 썰어 놓은 것들을 골라 샀다. 집에서 반찬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점점 마트에서 조리된 반찬을 샀다. 칼이 사람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저 혼자 어쩌지 못하는데도 나는 칼이 무서웠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날카롭고 억센 이빨을 가진 괴물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턴가 남편에게 등을 보이는 것이 무서웠다. 자주, 느닷없는 순간 등에 칼이 꽂힐 것만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

      안방 손잡이를 살며시 돌렸다. 남편은 다행히 아직 잠들어 있었다. 남편이 잠들면 아슬아슬한 평화가 찾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다가 여호수아가 보낸 메일을 보게 되었다. 제목이 ‘Hello’였다. 안녕하세요, 또는 여보세요. Hello라니. 누가 나를 불러내고 있는 건가? 외국인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무작정 삭제하지 않은 것은 왠지 스팸메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초가 망설인 끝에 메일을 열자 장문의 영어 문장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나를 안심시켰다. 스팸메일을 잘못 열면 불쑥 젖가슴을 드러내거나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뺀 채 게슴츠레 이쪽을 바라보는 붉은 입술을 가진 여자들과 맞닥뜨리는 수가 있었다.

      잘못 날아온 편지를 굳이 읽을 까닭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메일을 삭제하지 못했다.  Hello. 여보세요. 그 단순한, 흔하디 흔한 Hello가 왈칵 반가웠다.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여보세요. 누구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여기 도무지 알 수 없는 칼이 있어요.  

      결혼하고 팔 년이 지나는 동안, 남편을 끔찍해하던 친정 식구들이나 친구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지쳤다. 아무도 이렇게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 뼛속까지 시린 공포를 알지 못했다. 설령 그들이 지치지 않았다 해도 어떤 경우도 내가 될 수는 없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과 나만이 완벽하게 고립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환각, 환청에 시달렸을 때, 남편은 누군가 계속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고 했다. 누가 왔다고, 빨리 가서 열어 보라고. 결국 문을 열면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현관 밖은 완벽하게 고요했다. 누가 온 거 맞지? 누구야? 어지러운 흉터와 사라지지 않는 지린내로 가득한 집안과 완벽하게 나눠진 고요한 복도. 현관문 밖의 세계는 현실이 맞는지, 환각의 세계는 아닌지 멍하니 서 있곤 했다. 그랬는데 여호수아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잘못 날아온 게 분명한 편지를 구글 번역기에 돌렸다. 마치 내게 보내진 편지이기라도 하듯.

      구글 번역기가 제대로 된 문장으로 번역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 편지 내용을 대충 알 수 있을 듯했다.

      구글 번역기의 내용은 뜻밖이었다. 


     지금 저와 제 동생을 도와주세요. 제 이름은 여호수아입니다. 우리는 아모스의 자식으로, 부모님은 늦은 나이에 우리를 낳았고 얼마 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18살이고 제 동생은 15살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가나공화국, 아크라에 도착했습니다. 삼촌이 부친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우리를 독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에라리온공화국의 프리 타운에서 탈출했습니다. 삼촌은 아버지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며 자동차를 수입했습니다. 외숙모는 밥에 독을 탔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지 않고 몰래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밥을 먹은 옆집 후더스트 빈의 집 고양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습니다. 삼촌 집에 있다가는 독살되고 말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하나님은 사악한 삼촌에게서 우리 생명을 구했습니다. 당장 시에라리온 공화국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USD 2,000만 달러를 비밀리에 예금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제 동생은 이 돈을 관리하고 유지하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우리가 이 돈을 가진 것을 삼촌이 안다면 사악한 그들이 우리를 그냥 둘 리가 없습니다. 제발 당신이 우리의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와 동생은 당신에게 200만 달러를 드릴 것입니다. 200만 달러는 당신의 친절과 사랑이 우리를 고아가 되지 않도록 도와준 데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며, 당신이 진심으로 우리에게 정직할 것을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부모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기를 바랍니다.

    여동생과 저는 당신의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저는 의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나라에서 큰 병원을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에 대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세요. 제가 당신과 이 모든 일을 의논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제 메일은 savedme@yahoo.com입니다. 꼭 답장을 주시길 원합니다. 당신의 여호수아로부터.


    구글 번역기의 문장은 형편없었지만 간추리자면 그랬다. 내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용의 글이었다. 머나먼 별에서 뚝 떨어진 운석이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 편지가 내게 왔을까.  

      시에라리온공화국은 또 어떤 나라인가. 가나공화국과 인접해 있으면 아프리카 대륙 어디쯤의 나라일까. 가무잡잡한 피부에 깊고 그윽한 눈빛, 야무진 입술의 한 어린 여인을 떠올려 본다. 어린 여인은 자신과 동생을 도와달라고 한다. 부모가 죽고, 독이 든 밥을 먹이려 했던 삼촌을 피해 가나공화국으로 갔다니. 그 일은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그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신들의 밥을 먹은 고양이가 죽어 있는 걸 본 아이들이 가나공화국에 가서는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이 메일은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까, 스팸 메일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왜 자꾸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칼, 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누가 우리 집 소화전에다 칼을 숨겨 놓은 것일까. 관리실이든 경비실이든 연락을 해야 하나. 앞집에도 알려야 할까. 소화전에 칼이 들어 있다고. 그 칼 좀 어떻게 해 달라고. 그러나 다시 현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경비나 앞집 여자는 어떤 반응을 할까. 그들은 칼이 왜 거기 있는가에 주목하기보다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우리 집 내부를 들여다보려 할 것이다.

      며칠 전, 술에 취한 남편이 잠드는 걸 보고 은행 인출기에서 돈을 찾느라 잠깐 나갔다 왔을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춰 섰다. 문이 열렸을 때, 남편이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다. 선뜻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지 못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가 계속 울렸다. 나가려고 뻗었던 왼발에 걸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열리기를 반복했다. 벨 소리가 끊어졌다 싶으면 다시 울렸다. 문이 발에 걸려 덜컹 소리를 내며 다시 열릴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남편은 셔츠의 한 팔도 제대로 꿰지 못한 채 앙상한 갈비뼈 절반을 내보이고 있었다. 바지는 겨우 허벅지에 걸쳐 있었다. 차고 있던 기저귀가 그대로 보였다. 이불까지 끌고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깔고 앉아 있었다.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소화전 문을 열고 묵직한 소방호스를 꺼내 가슴과 목에 감고 있었다. 소방호스 무게 때문인지 뼈만 남은 몸은 더 굽어 겨우 고개만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는 순간, 소방호수가 그의 몸에 걸쳐진 게 아니라 내 몸에 천형처럼 둘러쳐진 기분이었다. 풀 수도 벗을 수도 없는 손오공 이마에 둘러쳐진 금고아 같았다. 발 넓이의 공간만큼만 내다보이는 그 찰나에서 그냥 멈춰버렸으면 싶었다. 아니 이대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지하로 내려가 차를 타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어딘가에 부딪쳐 죽어버리고 싶었다.

      남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움푹 팬 눈이 나를 보고 커졌다. 남편이 내게 갈퀴 같은 손을 뻗었다. 전화벨 소리가 멈췄다. 나는 끌려가듯 발을 뗐다. 빠끔히 문을 열고 내다보던 304호 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문을 닫았다.

      남편의 뇌는 알코올로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망가졌다. 불과 삼사 년 만이었다. 한 달이 다르게 몸이 망가졌다. 번뜩이는 눈으로 칼을 휘두를 때는 그래도 기력이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동안은 열심히 일을 했다. 지금, 남편은 거동조차 어려웠다. 마흔도 채 안 된 그의 몸과 정신은 노인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잠깐잠깐 정신이 돌아왔다. 기저귀를 차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집 밖으로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묵직한 소방호스를 들어 내려놓고 남편을 부축해 일으켰다. 남편의 흘러내리는 바지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비척비척 집 앞으로 다가가 키를 누르고 문을 열고 현관과 거실을 지나 안방 요 위에 뉘였다. 이불을 가지러 가서 소방호수를 감아 소화전 안에 밀어넣고 이불을 들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경비가 내렸다. 큰 덩치답지 않게 말이 많은 경비였다. 아주머니한테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길래.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먼지가 묻은 이불을 둘둘 말아들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현관 앞에서 주저앉았다. 남편이 어느새 일어나 벽을 더듬어 걸어나오고 있었다.

      남편은 몇 번 더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세 정거장 거리의 친정에 다녀왔을 때는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 거리를 헤매고 있기도 했다. 셔츠는 뒤집어 입었고 바지는 지퍼가 내려진 채였다. 맨발이었다. 짧은 시간인데 어떻게 얼마만큼 거리를 헤맨 것인지 얼굴이고 손이고 발이고 긁힌 상처투성이였다. 남편을 차에 태우고 돌아와서 몸을 씻겼다. 몸을 씻기면서 찰싹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등짝을 때렸다. 이제는 아무런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아 나를 어쩌지 못하는데, 찰싹 소리가 욕실에 퍼지자 나도 모르게 흠칫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온 몸이 여기저기 부딪힌 멍투성이였다. 누르스름하게 옅어져 가는 오래된 멍부터 푸른 멍, 붉은 멍까지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잠깐의 외출조차 힘들어졌다. 식탁에 앉아 멍하게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고 있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주방 라디오 FM 93.9㎒ CBS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흘렀다. 적막이 싫었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건 더더욱 싫었다. 다른 라디오 채널은 몇 명의 패널이 수다를 떤다거나, 퀴즈를 푼다거나 전화 연결을 한다든가, 편지를 소개했다. 그런 방송은 어느 새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그런 게 싫었다. 볼륨을 낮춰 틀어놓았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방송되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런 노래조차도 귀에 닿지 않고 그냥 흘렀다. 적막하지 않으면서 시끄럽지도 않았다. FM 93.9㎒ 방송은 짜도 짜도 끝이 나지 않는 뜨개질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뜨개질을 할 줄 알았다면 내내 아무 무늬도 넣지 않은 넓은 판을 짜고 또 짜며 아슬아슬한 평화를 이어갔을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편두통이 더 심해졌다. 남편이 칼부림을 할 때도 없던 편두통이었다. 남편이 칼조차 쥘 힘이 없어지고 난 뒤부터 왼쪽 귀 위쪽과 정수리 사이가 쪼는 듯 아팠다. 머리가 늘 미열이 있는 듯 묵직했다. 편두통은 원인이 백 가지도 넘는다는 말에 병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플 때면 진통제를 삼켰다. 

      컴퓨터를 끄고 베란다에 널어놓았던 은행을 봉투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묵직했다.

      남편이 잠깐 동안 기력을 찾은 어느 날 남편을 부축해 아파트 뒤뜰로 나갔다. 담 가까운 쪽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일렬로 서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면서 멀리 가지 않고 산책하기엔 그나마 아파트 뒤편이 나았다. 어느새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화단엔 은행도 제법 떨어져 있었다. 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았다. 다행히 가을이 깊었지만 그리 춥지 않았다. 바람이 가지런히 불었다. 남편이 다시 가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은 눈을 감고 바람을 즐기는 듯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가늘게 날렸다. 툭, 툭. 남편은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을 떴다. 다닥다닥 매달렸던 은행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소리였다. 은행. 은행. 남편은 은행이 떨어질 때마다 은행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환시와 환청, 환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은행을 은행이라고 말하는 게 놀라웠다. 굴러다니는 먼지 묻은 검은 비닐봉투를 주워와 은행을 담으며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은행. 남편은 뼈만 남은 얼굴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내가 물을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은행이라고 대답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바삭 마른 낙엽이 바람에 굴렀다. 화단 밖 소음차단벽 너머 도로에서 차가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간간히 은행 떨어지는 소리가 주위를 환기시켰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도대체 누려본 적이 없는 여유 같았다. 언제까지고 은행을 주워 담고 이게 뭐야? 하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주워 담은 은행을 들고 왔다.

      겹겹이 싸인 비닐봉투 안에서 육질은 잘 물러 있었다. 주워올 때도 쪼글쪼글한 은행이어서 그런지 구린 냄새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아니, 냄새가 심했는데 내가 미처 모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미 그런 냄새는 익숙했다. 오히려 집 안에 퍼져 있는 냄새가 남편의 몸 냄새나 지린 오줌 냄새라고 생각하지 않고 은행 냄새라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은행 알을 골라냈다. 그렇게 골라낸 은행을 싱크대에 쏟고 물을 틀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은행을 비볐다. 몇 번 씻고 나자 은행 씨만 남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기를 말리려고 베란다에 널어놓았다.

      냉장고에 기대 앉아 롱노즈를 벌려 은행을 세워 넣고 슬쩍 힘을 주었다. 단단한 껍질에 금이 가면 그걸 벌리고 속껍질에 쌓인 은행을 꺼냈다. 그 일을 아주 천천히 했다. 아직 껍질을 벗겨야 할 은행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누군가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은행을 까면서 시간을 버릴 수 있었다. 한 코 한 코 뜨개질을 하듯 은행을 깠다. 이게 뭐야? 은행. 남편이 거스러미 인 입술을 벌려 은행, 하고 발음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롱노즈에 힘을 주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은행이 뭉개졌다. 갑자기 손에 힘이 빠졌다. 대체 칼은, 칼은 어찌된 일일까? 아직도 칼이 소화전 안에 들어 있을까. 누가 무엇 때문에 칼을 거기다 넣었을까. 다시금 의문이 솟았다.

      시에라리온공화국에서 날아온 편지라니. 아니, 가나공화국으로 옮긴 뒤 보낸 메일이었던가. 지도를 펴 놓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나라가 어디인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이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지도에서조차 찾기 어려운 그런 나라를 찾아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나라와 생활환경이나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 문명이 발달하지 않고 먹을 물을 떠 오기 위해 하루를 소비하는 그런 나라. 수저가 아니라 손으로 밥과 반찬을 비벼 조물조물 먹는 그런 곳으로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지도에서 이름도 낯선 나라들이 스쳐갔다. 시에라리온공화국도 그렇게 내 손끝이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독이 든 밥을 피해 도망친 아이들은 아직 무사할까. 내가 아닌 다른 후견인을 구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나는 여호수아가 내게 원했던 ‘내가 누구인지’를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호주에서 살다 잠시 귀국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조금 늦은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들이 차량이 돌아오는 시간과 겹쳐 차가 밀리기 시작할 때부터 불안했다. 계속 교통방송을 듣고 어떻게든 빨리 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늦었다. 집이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더 뛰었다. 이대로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파트가 보이자 안도했다.

      남편은 그날 내가 늦었다는 이유로 3년이나 함께 살아온 시츄인 복실이를 죽였다. 남편다운 보복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달려와 안겨야 할 복실이가 꼼짝을 안 했다. 거실에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남편은 서재로 들어갔는지 꼼짝도 안 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복실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 등을 보이고 옆으로 누워 있는 복실이의 짓이겨진 머리에서 뇌수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나보다 더 복실이를 예뻐하던 남편이었다. 입을 맞추고 목욕을 시켜주던 복실이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 머리가 깨졌으면 싶었다. 아니, 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먼저 공포가 엄습했다. 이 남자는 내가 지구 끝 어디로 숨어도 기필코 찾아낼 사람이라는 공포였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들도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뼛속 깊은 공포였다. 남편은 그걸 복실이를 통해 각인시키고 있었다.

      가끔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남편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불쑥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남편이 공원 아래 카페에서 내게 청혼을 한 것은 세 번째 만남에서였다. 말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남들 하듯이 수줍게 반지를 내밀었다. 나는 그 반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잘생긴 얼굴에 적당한 체격, 좋은 학벌과 명석한 두뇌로 IT업계에 뛰어난 인재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조건에도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남녀가 만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가 내민 반지를 되밀었을 때 그의 얼굴이 굳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는 식어 버린 커피를 다 마시더니 벌떡 일어났다. 미처 내가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한 뒤, 뒤이어 일어나려는 내 손목을 쥐었다. 겨우 세 번째 만남이었다. 세 번째 만남조차 어색하기 그지없는 만남이었다. 서로를 알기도 전에 반지를 내민 게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달랐다. 무작정 내 손목을 그러잡고 공원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왜 하필 공원으로 올라가려 했는지 묻지 않았다. 손목이 아팠지만 그는 손을 풀지 않았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조그만 슈퍼 한쪽에 쌓아 놓았던 빈 병 박스에서 소주병을 꺼내 벽에 내리쳐 깼다. 병 밑이 날카롭게 깨지는 소리에 내 짧은 비명이 섞여들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분노로 치를 떨고 있었다. 그때에야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산 아래 공원은 단풍놀이 막바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뭇잎은 제 빛깔의 가장 깊은 색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길가에는 호객꾼들의 확성기 소리와 음악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닥에 내려앉은 성급한 잎들이 바람에 밀려다녔다. 그는 공원 뒷길로 빠져나와 날카로운 병 끝을 자신의 목에 대고 말했다. 감히 네까짓 게 나를 버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의 뒤에 있던 우람한 은행나무 잎들은 늦가을 햇빛을 받아 무더기 금빛으로 뒤채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잎 사이로 창끝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살, 잎들은 바라 부딪치는 소리로 챙챙거렸다. 작두에 올라선 신 내린 여자의 버선발 같았다. 챙챙챙챙, 어지러웠다. 이 자리에서 내가 죽어줄까? 그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우 세 번 만났지만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무서웠다. 극한의 공포는 그를 거부하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의 미늘에 깊숙이 꿰여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손목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일주일 넘게 푸른 멍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그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었다. 한동안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빽빽하게 매달려 있는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기가 힘들었다. 채채채챙거리는 바라 소리처럼, 나는 그에게 손목을 잡힌 날로부터 내내 떨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유능한 인재였다. 여직원들에게는 다정하고 자상한 상사였다. 업계에서는 추진력 있고 결단력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에 병 끝을 대는 듯한 심정으로 모든 일들을 끝까지 성사시켰다.

      퇴근하는 길에 소주를 사들고 왔다. 처음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술이라도 한 잔 마셔야 잠들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자라면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왼쪽 팔뚝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과 칼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남편은 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입었다. 남편에게 상처에 대해 물었을 때, 으응 그냥, 하고 얼버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스스로 낸 상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해를 하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몸에 불이나 칼을 대면서 견뎌야 했을 그 많은 밤이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짐작은 되었다. 나는 비겁하게 운명에 순응하듯 살면서도, 그의 눈빛이 무서워 피하면서도,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제에 이름도 모르는 오지의 나라를 찾아 지도에 손끝을 대면서도, 그의 고통을 나눠가짐으로써 그를 바꿔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느 날 술 취해 주정처럼 내뱉던 그의 사랑받지 못했던 불우한 환경과 그 환경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올라선 그를 보듬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리석은 오만이었다.

      그가 나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면, 첫눈에 반한,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내가 그의 사랑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실 때, 나는 두려워서라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려고 했다. 그가 술을 마시는 데는 내 탓도 있었다. 별것도 아닌 내가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지도 않는 데에 화를 냈다. 잘하려고 했다. 진심으로 좋아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겹은 끝내 벗겨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이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원망스러웠다. 예민한 촉을 지닌 남편이 그 한 겹을 모를 리 없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메일의 그 글귀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봄이면 일주일에 두어 번은 교회 신도들이 전도를 하느라 벨을 누르기도 했다. 도어 뷰 렌즈로 밖을 내다보고 서성이는 이가 둘이면 아예 문을 열어줄 생각도 안 했다. 신에게 매달릴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견뎌낸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등 뒤가 무서웠다. 남편 앞에서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 무언가가 날아들지 몰랐다. 외출할 때는 언제나 백팩을 매고 나갔다. 밖에서도 등이 비어 있으면 불안했다.

      남편이 만취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칼을 들었을 때, 칼은 늘 잘못 날아왔다. 남편이 던진 칼은 냉장고에, 싱크대에, 식탁에, 벽에 수많은 자국을 남겼다. 한 번도 내 몸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다. 어느 때는 그 칼이 나를 향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적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칼을 들고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상황은 언제나 끔찍했다. 이제는 집안 곳곳에 낼 수밖에 없던 깊은 칼자국을 보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국들이 익숙해져 처음부터 그런 칼자국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내게 칼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결혼 초, 독일에 출장 갔다 왔을 때였다. 드라이작 클래식 200mm. 칼 이름이었다. 삼지창 그림이 손잡이 부근, 작고 둥근 원 안에 그려져 있었다. 칼은 지문이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칼 상자 안에는 메모용 카드가 들어 있었다.

      눈을 뜰 때, 내 옆에서 당신이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나와 결혼해주어서 고마워. 이 칼로 맛있는 요리 부탁해.

      향수나 반지, 목걸이나 귀걸이, 핸드백이나 지갑, 스카프. 선물로 살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칼을 선물했다. 물론 독일의 칼이 유명하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칼은 뜻밖이었다. 편지 역시 의외였다. 그는 문자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칼을 빌어 내게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는 따뜻한 가정을 오랫동안 꿈꿔 왔다고 했다. 아이들 소리로 거실이 시끄럽고, 음식을 하느라 분주한 주방,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여행을 다니는 화목한 집안.

      나는 그를 위해 요리했다. 칼은 처음부터 내 손에 꼭 맞았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잘렸다. 그를 위해 무 채를 썰었고, 호박전을 부쳤고, 부글부글 찌개를 끓였다. 아침저녁, 늘 새로 지은 밥을 내놓았다. 그러나 칼로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요리되지 않았다. 

      남편이 술 취해서 처음 그 칼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팔뚝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를 떠올렸다. 요리를 하느라 칼이 낸 수많은 상처도 생각했다. 요리되지 않는 내 마음도 떠올렸다.

      여호수아의 편지를 읽는 동안 칼이 낸 오래된 흉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편지가 잘못 날아와 박힌 칼자국처럼 생각되었다. 편지가 난데없이 날아와 낸 자국이 싫지는 않았다. 남편 몰래 이혼서류를 만들고, 남편의 폭력성을 증명할 증거들을 만들 때가 있었다. 늘 도망치고 싶었다. 이제는 도망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남아서 이 지옥을 견디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소주병에 빨대를 꽂아 남편에게 건넬 때, 내 마음은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것인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량한 책임감도, 오만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그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명되어지지 않는,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 쌓은 퇴적물이 있었다. 화장대 서랍에서 아직도 잠자고 있는 짧은 편지. 눈을 뜰 때, 내 옆에 당신이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그는 지금도 제 몸에 숱한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내게 향해 있던, 늘 엇나가던 그 칼끝이 실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끝내 벗겨지지 않는 한 겹에 절망하면서. 그의 무서운 눈빛이 아니라, 팔뚝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만 각인되었다. 그 상처에 더 많은 상처를 덧댄 장본인이 나였다.  

      남편이 앙상한 뼈만 남은 몸으로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칼을 들고 내게로 온 적이 있었다. 죽여버리겠다고 비척대며 걸어왔다. 칼을 들 힘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 어떤 무엇이 그를 질기게 붙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다가왔을 때, 나는 그가 가여워서 가만히 안았다. 그는 아이처럼 순하게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의 앙상한 등뼈를 어루만졌다. 

      남편은 내가 잠이 들려고 하면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깊은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은 환(幻)의 세계에서 살았다. 혼자 중얼거렸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그를 따라다녀야 했고, 무의미한 말대꾸를 해줘야 했다. 나는 가끔 거실에서 무연히 현관을 바라보는 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저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먼지조차 가라앉은 고요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에 발을 딛고 싶었다. ‘평범’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모서리마다 칼자국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서지 못했다. 칼은 아직 거기, 소화전에 있을까. 우리 집과 복도를 가르는 그곳, 현실과 환각이 공존하는 그곳, 소화전에 아직도 칼은 있을까.

      은행 다섯 알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불을 약하게 켠다. 은행이 익으면서 속껍질이 갈라지고 연둣빛 투명한 속살이 드러난다. 은행은 고소하면서도 쌉싸래하다. 쌉쓰름한 뒤끝이 좋다. 입에 넣기 전 속껍질 벗겨 투명해진 은행을 낯선 듯 바라본다. 이게 뭐야? 은행. 챙챙챙챙.   

      안방에서 기척이 들린다. 평화의 줄은 끊어진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소리. 아니, 내 귀는 내내 안방에 붙박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행과 롱노즈를 한쪽으로 치워 놓는다.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빨대를 꽂아 들고 방문을 연다. 남편은 방 한가운데 누런 오줌을 싸 놓고 힘겹게 기저귀를 벗으려 하고 있다. 오줌은 이불 끝으로 스며들고 있고 남편이 뜯어 놓은 기저귀에서는 수분흡수젤 알갱이들이 부서져 나온다. 이미 오줌을 흡수한 누렇고 푸른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떨어진다. 서둘러 남편의 기저귀를 벗기고 물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닦고 새 기저귀를 채운다. 그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요에 누이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소주가 든 빨대를 입에 물린다. 이제 그의 몸과 정신을 병들게 했던 소주만이 유일한 식사이자 약이다. 방바닥에 흥건한 오줌과 수분젤 알갱이들을 쓸어 닦는다. 수분알갱이들이 장판에 달라붙어 잘 쓸리지 않는다. 머리 한쪽 끝이 쪼갤 듯 아프다. 욕조에는 아침에 담가 놓은 이불이 아직 있다. 빨래를 하는 걸 잊고 있었다. 덮을 이불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불장을 열어 때 이른 겨울용 극세사 이불을 꺼낸다.  

      무언가 이불 사이에서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발가락 사이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주저앉는다. 발등과 골 사이에서 피가 나온다. 발 앞에 칼이 떨어져 있다. 드라이작 클래식 200mm. 왜 이불 속에서 이 칼이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발에서 피가 스며나와 방바닥을 적셨다. 우선 남편의 기저귀로 발을 감싸고 거실로 나온다. 거실 서랍에서 소독약을 꺼내 상처에 바르고 거즈를 대고 압박붕대로 감는다. 어딘가에 수시로 부딪히는 남편 때문에 구급약이 상비되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피는 멈췄지만 뭉근한 통증이 온다. 칼이 조금만 비껴 발등 한가운데 박혔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 문을 연다. 칼이 없다. 과도도, 큰 칼도, 오렌지용 칼도 없다. 그동안 칼을 쓰지 않아서 칼이 없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일까. 칼을 버린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이불 속에 넣어 놓은 기억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방 안에 칼을 그대로 놓고 나왔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절뚝거리며 안방으로 달려간다. 칼이 있던 자리, 칼은 보이지 않는다! 꿈이었나. 내 발에 감긴 붕대에 피가 연붉게 스며 나오고 있다. 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장롱 밑도 보고, 이불 속도 뒤져 본다. 욕실에도 없다. 구석구석 뒤져도 없다. 힘이 쭉 빠진다. 칼에 발이 달리지 않고서야. 남편을 바라본다. 어느새 소주를 빨아 마셨는지 반 뼘 정도 줄어 있다. 남편이 덮고 있는 이불 속을 뒤져 본다. 없다. 남편 몸 아래를 손바닥으로 훑는다. 없다. 요 밑을 들춰 본다. 칼이, 요 밑에 있다. 남편이 숨긴 것일까? 남편은 잠들어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잠이다. 라디오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음악은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뿌옇다. 옆으로 누운 그의 등뼈가 다른 날보다 더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에 대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세요.        

      은행을 롱노즈 사이에 넣고 살짝 누를 때 나는, 작고 가는 딱딱한 무언가가 가늘게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양진채/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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