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보이는 詩_최영철
  • ▶ <최영철의 세상이 보이는 시>예스터데이_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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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터데이


                                  한혜영



    휘청휘청 돌아가는 연못

    낡은 턴테이블 앞에 쭈그려 앉습니다

    예스터데이∼ 흐느끼는 물풀 위로

    한 떼의 시간이 꼬리를 끌며 지나갑니다

    촌스런 전나무도 이런 팝송 하나쯤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거리고

    오렌지는 아까보다 조금 더 붉어지는데

    난데없이 튀어 오르는 판! 금이 간

    청춘 위에서 깨어진 노래 알갱이들이

    딸꾹 딸꾹 튀다가 구르고 있습니다

    속절없이 복제되는 비틀즈

    파장과 파장 사이 떠오르는 수천 개

    입술이 복화술을 쓰듯 오물거리기 시작합니다

    뒤죽박죽 엉키는 세월, 시린 물 속으로

    곤두박인 나무그림자에 매달린 여자 하나가

    어제의 한 고비를 넘지 못해 마구 휘둘립니다

    펄럭이던 지느러미 위험하던 시절의

    판… 판을 꺼야 하는데……

    후미진 구석에 앉아 가슴으로 적갈색

    커피를 폭폭 끓여대며 짝사랑했던 더벅머리

    그 날의 디제이는 긴 긴 외출 중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혜영:  1953년 충남 서산 출생.  1989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조가, 1998년 『계몽사 아동문학상』에 장편동화 당선.  1994년 『현대시gkr』,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시작 활동.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가 있다.  한국아동문학창작상과 미주문학상 수상.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레코드판을 연못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중앙에 둥근 공간이 있으니 연못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중심부의 허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레코드판은 중심의 그 허방 때문에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흐느끼는 물풀 위로/한 떼의 시간이 꼬리를 끌며 지나’가는 착시 역시 그 허방이 만든 세계일 것이다. 거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금이 간/ 청춘 위에서 깨어진 노래 알갱이들이/딸꾹 딸꾹 튀다가 구르’는 변주는 상처가 자아내는 무늬일 것이다. 그것을 운행하던 디제이는 우리가 떠나보낸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디제이,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뮤직박스 안의 디제이는 멋지게 움직이는 마네킹 같기도 하고 그 음악의 연주자 같기도 했다. 그 안에 한 번 들어가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칠십년대 말 부산 서면의 한 음악다방이 그 꿈을 이루어주었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원하는 고객을 뮤직박스에 넣어주는 순서가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뮤직박스 안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나온 적이 있다. 뮤직박스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후회했다. 주목을 받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을 운용하는 디제이는 음악을 즐길 수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당시의 낭만자객들에게 음악다방은 안온한 은닉처였다. 그 공간이 없었다면 많은 청춘들의 항로가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너나없이 표류했지만 음악다방이 있어 난파를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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