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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요문학무크>북친, 데리다, 크로포트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대시_송용구
  • 생태사회를 꿈꾸는 한국과 독일의 시인들

    - 북친, 데리다, 크로포트킨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대시 

     

     

     

    송용구

    (문학평론가고려대 연구교수)

        

     

     

     

    <1> 생태문제는 사회문제인가?

     

    미국의 철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그의 저서 사회 생태론의 철학 Philosophy of Social Ecology에서 생태문제는 사회문제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하였다. 그는 현 시대의 생태문제는 사회문제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에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생태문제의 틀과 사회구조 그리고 사회이론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사유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생태eco의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이다. ‘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낱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집이라고 한다면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누구인가? 자연과 인간이 아닌가? 물과 공기와 흙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간과 나무와 새와 꽃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이 지구라는 집에서 동거하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도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머레이 북친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공동 주택인 지구는 이미 반세기 전에 북친이 염려했던 생태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였다. 집의 곳곳에 구멍이 나고 물이 새는 것처럼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현상으로 인하여 지구의 곳곳에서 재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국립빙설자료센터(NSIDC)“2012916일 북극 해빙의 넓이가 342km2, 위성관측 방법으로 북극해 면적을 기록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고 같은 해 919일에 측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5년 전의 결과이니 그 동안 북극 해빙의 넓이는 더욱 왜소해졌을 것이다. NSIDC의 발표에서 드러나듯이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인과응보처럼 인류에게 닥쳐온 기후 변화는 지구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북친의 예견이 적중한 것이다.

    모든 생물을 길러주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물, 공기, . 이들은 지구라는 집을 지탱하는 토대이다. 그런데 이들이 병들어간다. 사람의 몸에 비유해볼까? 물의 핏줄은 혼탁하고 공기의 숨결은 가쁘고 흙의 살결은 창백하다. 비와 눈도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의 얼굴이 아니다. 산성酸性이라는 무기를 가슴에 품고 생물들을 공격하는 가해자로 인간에게 인식된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나 흘렀다. 옥수수, 오렌지, 포도, 파인애플, 사과, 배 등은 인간의 식탁에 베풀어지는 자연의 선물이다. 그러나 하늘과 대지의 조화로운 사랑 속에서 태어난 이 열매들조차도 화학물질에 오염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망설이며 먹어야만 한다.

    이 모든 현상들이 머레이 북친이 말한 생태 위기를 증명하는 일상의 모습이다. 지구의 온가족을 생태 위기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들의 지나친 소유욕, 생산과 수익에만 중점을 두는 기업의 플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국가의 경제정책,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타국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세계 열강의 패권주의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이 아닌가? 존엄성과 인격을 가진 인간이 자본의 가치로 환산되어 상품의 등급으로 판정받은 끝에 효용의 지수에 따라 대우를 받게 되었다. 소유한 물질을 마음껏 소비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편리와 쾌락이 인간의 정신을 마네킹처럼 마비시킨다. 더 많은 물질과 더 빠른 기술을 소유하려는 도시인들의 욕망이 녹색의 마을에서 나무들과 꽃들을 내쫓고 그들의 터전인 흙을 콘크리트로 바꿔버린다. 독일 시인 아르님 유레Arnim Juhre의 시를 주목해보자. 소유와 소비에 길들여진 인간의 물질적 욕망이 인간 스스로를 생태 위기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다는 것을 아르님 유레는 신을 향한 원망의 반어적 어법으로 비판하고 있다.

     

    나의 하느님! 솔직하게 말씀 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이 이처럼 값싼 것이 되다니요

     

    어찌하여 당신은

    사람을 그토록 강한 존재로 높여 놓으셨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운 혹성 위

    흙과 영으로 빚으신 아담의 자손,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사람의 손에 당신의 작품인 그 혹성을 맡기셨단 말입니까?

     

    새들, 물고기들, 대지,

    이 모든 생명이 이미 사람에게 약탈된 물건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길러냅니다

    모든 것을 시장 가치로 값을 매기고

    길들이고, 도살하고, 걸러내고, 증류합니다.

    동물원에는 마지막 야생 동물을

    마지막 종으로 전시해놓습니다.

     

    - 아르님 유레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알람을 울린다. 시편 8전문

    아르님 유레의 시는 북친이 지적한 바 있는 생태 위기에 대한 문학적 옐로우 카드로 읽혀진다. 유레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의 경보음이 중단 없이 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새들과 물고기들과 대지와 숲을 비롯한 모든 생명물건으로 취급하여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시스템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명을 시장 가치로 바꾸어 이윤을 얻으려는 탐욕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가치로 값을 매길때 이윤이 남는 생물은 길들임도살걸러냄증류의 과정을 통해 상품으로 가공되고 활용된다. 그러나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생물은 폐품으로 분류되어 폐기처분을 당한다. 시장 가치의 계산법에 따라 최소한의 이윤이라도 남길 수 있는 생물이라면 상품의 라벨을 붙이는 유용한 물건이 된다. 그러나 이윤 ‘0’으로 계기판에 기록된 생물이라면 생명을 가진 존재임에도 상품의 효용성이 없는 까닭에 존재 가치를 박탈당한다. 나무도, 숲도, 새들도, 그들을 키워준 대지도 사람의 소유욕과 소비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의 기능을 발휘하는 경우에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물고기들도, 수초水草들도, 그들을 길러준 강과 바다도 사람의 필요와 이익을 만족시키는 경우에만 물건의 목록에 이름을 등재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無聲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상품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전진하는 주인공 찰리! 그 영국 신사처럼 인격을 가진 사람조차도 시장 가치의 등급에 따라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간성이 상품이나 부품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산업혁명 이후 21세기의 지금까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 듯이 반복되고 있는 기괴한 현실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사이클이 무려 200년 이상이나 반복되고 있다니! 이러한 사회구조 안에서 자연의 만물은 생명권生命權을 보장받지 못하는 물건으로 분류되어 자본중심의 효용성에 따라 처분이 결정된다. 시장 가치에 종속되어 있는 생명의 가치를 해방하지 않는다면 동물원에 마지막 야생 동물을 마지막 종으로 전시하는종말의 임계점에 부딪칠 수도 있다. 인류가 생물학사生物學史의 마지막 페이지에 마지막 종으로 기록될 알람의 경보음이 울릴 수도 있다. 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가치에 대한 인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독일의 여류 작가 크리스타 볼프Christa Wolf가 충고한 것처럼 좀 더 빨리, 좀 더 높게, 좀 더 좋게만을 외치는 시장 가치의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의 체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른 가치의 체계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시장 가치의 체계 위에 서서 시장 가치를 다스리는 생명 가치의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최우선의 가치를 점유했던 시장 가치의 체계를 오히려 생명 가치의 시스템아래 종속시키는 것이다. ‘소통이론의 대가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의 말처럼 자본에게 종속된 생명의 식민구조를 해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가 지구라는 거대한 박물관에 마지막 생물의 화석으로 전시될 마지막 전람회를 막을 수 있는 길은 가치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2> 생태사회로 나아가려면 지배구조를 해체하라!

     

    우리 사회가 생명의 가치와 정신의 가치를 외면하고 물질의 가치만을 추구하면서 소유의 욕망에 길들여진다면 가족 간의 상생이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의 가족은 인간만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생명공동체이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이 어려워지는 까닭에 가족의 집인 지구 전체가 흔들리는 현상이 머레이 북친이 경고했던 생태 위기인 것이다. 북친의 말처럼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가 생태 위기를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 자연지배의 현상은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 근본적 원인을 두고 있다.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인간지배의 풍조가 자연을 도구로 남용하는 자연지배로 이어지면서 생태 위기의 속도를 빠르게 만든 것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서 기인起因하기 때문에 위계질서와 지배체제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것이 현재의 생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사회생태론의 철학(머레이 북친 지음, 문순홍 옮김, 솔 출판사) 중에서.

    글로벌 사회문제로 굳어진 생태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인류의 과제이다. 그러나 북친은 위계질서와 지배체제를 비판하고 해체하는것을 생태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재 권력으로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거나 기업주가 노동자들의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하는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자연의 생식능력과 자정능력을 착취하는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의 구조가 갈수록 강화될 뿐이다. 공화국의 주권을 갖고 있기에 모든 권력의 근원이 되어야 할 국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지적처럼 그 국민이 독재자의 사디즘적 정치 리모컨에 일방적으로 조종당하는 마조히즘적 정치 구조를 거부하면서 자유를 지켜내려는 능동적 정치 구조를 구축해나가야만 한다. 국민의 주권과 인권이 억압당하지 않는 사회구조에서만 자연의 생명권을 보호할 수 있는 생태사회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독일의 대사상가 마르크스Karl Marx에게서 크나큰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자 머레이 북친!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토대를 두고 그의 독특한 아나키즘 이론과 사회생태론Social Ecology를 발전시켰다. 그는 마르크스의 명저 자본론 Das Kapital에서 노동자들의 시간과 임금과 노동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자본가들의 착취구조를 비판한 것에 주목하였다. 그런데 이 경제적 착취구조는 고스란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구조로 전이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를 안고 있다고 북친은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배구조와 위계질서를 해체하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의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생태 사회의 초석을 다지는 시초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고방식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인간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가? ‘지구라는 집에서 인간과 동거하고 있는 물, 공기, , 나무, , , , 곤충! 생명을 가진 이 모든 존재를 인간과 함께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적 동료로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을 인간만의 자연으로 예속시켰던 멍에를 이제는 자연으로부터 벗겨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생명 중심의 사고방식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전망했던 3의 길은 이러한 생명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열릴 것이다.

    자연을 사회의 주축으로 복귀시키는 제3의 길! 이 길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다른 존재양식과 역할을 갖고 있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열린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Jaques Derrida가 말한 것처럼 자연을 인간과는 존재 양식이 다른 타자他者로 바라보는 유연한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인간의 주체속에 자연을 가두어 놓고 주체의 입장에서만 자연을 관념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주체의 밀실에 갇혀 있던 자연을 독립적 존재로 해방해야 한다. ‘타자인 자연의 입장에 서서 수평적 시각으로 자연의 고유한 역할을 존중하는 주체의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 인간은 자연에게서 혜택을 부여받고 자연은 인간에게서 보호를 받는 생태적 상호의존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주체 중심의 사고방식을 탈피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주체가 되어 객체이자 대상인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인류에게 널리 알려진 천부인권사상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유롭게 행복을 누릴 권리를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으며 그 권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로크, 볼테르, 루소 등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전파된 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의 인내천人乃天을 토대로 출발한 한민족의 동학東學도 천부인권을 옹호하는 사상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라는 집에 거주하는 공동 세입자의 평등한 권리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 공동 세입자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이 아닌가? 이제는 자연에게도 세입자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지구라는 다세대 주택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다른 세대인 모든 생물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는 천부생명권天賦生命權이다. 인간의 천부인권과 함께 모든 생물의 천부생명권을 옹호하는 생태사회의 공동 세입자 의식이 절실하다.

    어떤 생물이든지 태생적으로 하늘과 대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누구나 예외 없이 평등한 생명권生命權을 갖고 있다. “위계질서와 지배체제를 해체해야 한다는 머레이 북친의 주장으로부터 인간 상호 간의 평등을 인간과 자연 간의 평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소망을 읽을 수 있다. 그 평등이란 곧 생명권의 평등이다. 독일 시인 페터 쉬트Peter Schütt의 시로부터 생명권의 평등을 옹호하는 생태사회의 실현 가능성을 전망해보자

     

     

    <3> 생명권의 평등과 만물의 상호부조가 이루어지는 생태사회

    북해 연안의

    모래톱에 펼쳐진 바다는

    독일연방공화국의 것도 아니고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것도 아닙니다

    그 바다는 정유회사 ESSO의 것도

    BP의 것도 아닙니다

    그 바다는 유일하게도

    바닷가를 달리는 사람들과 모래톱의 달팽이들

    좀조개와 후추조개

    게와 새우들

    바다전갈들

    가자미와 청어들의 것입니다

    그 바다는 빙어와 큰 가시고기

    줄무늬 청어와 혀가자미

    물개와 바다표범

    검은머리 물떼새

    작은 도요새

    흑기러기와 솜털오리

    장다리 물떼새와

    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입니다

    그 바다는 샤르회른 지방의 조류보호 감시자와

    쥘트 지방의 천진난만한

    벌거숭이 아이들의 것입니다

    나는 단호히 주장합니다

    이 소유관계를

    결코 바꾸지 말 것을

     

    - 페터 쉬트의 소유관계전문

     

    바다는 개인의 전유물도, 회사의 자본도, 국가의 재산도 아니다. 시인이 주장하는 소유관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그가 믿고 있는 소유관계는 만물이 생명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주의적 소유관계이다. 이 소유관계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창조된 패러다임이 아니다. 태초부터 근원적으로 존재했던 고유한 소유관계이다. 소유관계에서 자연의 대표로 등장하는 바다는 개인과 회사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바다는 모든 생물의 공생共生의 터전이다. 이 사실은 어떠한 존재도 자연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굳이 주인을 지목한다면 바닷가를 달리는 사람들조류 보호 감시자천진난만한 벌거숭이 아이들을 포함하여 바다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이 바다의 주인일 것이다.

    인디언 수쿠아미쉬 족의 추장 시애틀은 부족의 땅을 팔라고 요구하는 워싱턴 시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이상하군요.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입니까?” 시애틀의 생각처럼 자연의 존재 가치는 결코 자본의 값으로 환산될 수 없다. 상품의 등급으로 평가될 수도 없다. 자연은 인간의 지배권 아래 종속된 대상이 아니다. 효용과 기능을 만족시키는 물건도 아니다. 인간과 모든 생물이 동반자로서 함께 가꾸어 나갈 공동의 살림터가 자연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바다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달팽이, 조개, , 새우, 전갈, 가자미, 청어, 빙어, 가시고기, 물개, 바다표범, 물떼새, 도요새, 갈매기와 함께 바다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의 권리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들이 꿈꾸는 미래의 멋진 신세계, 생태사회는 세입자의 권리를 만물이 공유하는 사회가 아닌가? 인간도 그 만물 중의 일원이라는 진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만물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생명공동체를 형성하는 독립적 구성원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서로 연합하고 있다. 그 엄연한 사실을 김지하의 시에서 보게 된다.

     

    풀잎들 신음하고
    흙과 물 외치는 날


    오랜만에
    교회에 간다

    산 위에 선 교회

    벽만 있는 교회

    지붕 없는 교회

     

    해와 달과 별들이

    나와 함께 기도하고

    혜성이 와 머물고

    은하수와 성운들 너머

    먼 우주가 내려와 춤추고

     

    (중략)

     

    나의

    새로운 교회

    풀잎의 흙과 물의 교회

     

    예수회 교회

     

    꿈인가

     

    - 김지하의 새 교회전문

     

    김지하가 노래하는 새 교회는 인공적으로 건설한 성전聖殿이 아니다. 그가 찬미하는 교회는 인간인 와 나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함께 기도하면서 호흡을 나누는 생태사회이다. “의 형제들과 자매들은 누구인가? “풀잎”, “”, “”, “”, “”, “”, “혜성이다. 김지하는 그의 시 공경에서 사랑은 공경/ 높여야 흐르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위의 시 새 교회에서도 시인은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만물을 공경하여 그들을 형제와 자매로 높여준다.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도구로 남용되었던 만물을 시인은 자신과 동등한 동반자로 공경하고 있다. 혜성, , , , , , 풀잎 등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과 함께 시인은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결속된다. 시인을 포함하는 생명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라는 대자연의 예배당에서 서로를 한울님처럼 섬기며 공경을 주고 받는다. 생명권生命權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녹색의 생태사회가 위에 신세계로 서 있다.

    생태사회 안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동등한 시민권市民權까지도 부여받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떻게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한 그루 나무에 대하여 나와 함께 세계를 형성해야만 하는존재라고 말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인간과 함께 생태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를 인간과 함께 지탱해나가는 독립적 주체인 것이다. 자연을 더 이상 객체이자 대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부버가 협력의 파트너로 삼고 있는 나무와 김지하에 의해 새 교회의 신도가 된 풀잎, , 물 그리고 페터 쉬트가 바다의 주인으로 인정한 달팽이, 바다전갈, 청어는 결코 생태사회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그들 모두가 인간과 함께 생태사회를 튼실하게 강화해나갈 주역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인간과 평등한 생명권뿐만 아니라 평등한 시민권까지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생태사회의 구성에 기여하는 그들의 몫과 역할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중심주의적 패러다임을 통하여 고래들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시민의 이름을 헌정하는신세계의 의식儀式이 펼쳐지고 있다. 이건청의 고래들의 주민등록을 열람해보자.

    20091110일 오후 4시 울산광역시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바다의 빈객인 돌고래 4분들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헌정하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중략)

     

    울산 시민이 되어 고래 도시 울산시의 홍보대사 역할을 할 네 분들은 식이 거행되는 동안 시종 의젓하였으며 이따금 꼬리를 치며 식장을 서서히 휘돌며 하객들에게 사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이날, 정식 울산 주민으로 모신 분들은 고아롱(10수컷), 장꽃분(10암컷), 고이쁜(7암컷), 고다롱(5수컷)인데 아롱님과 꽃분님은 부부이시고, 이쁜씨와 다롱씨는 꽃분님의 시숙분들이셨다. 이분들에게는 이들이 울산에 도착한 날짜인 091008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가 헌정되었다.

     

    양촌리 내 집 문

    열어 놓을게

    꿈길까지 열어 놓을게

    밤새도록 외등도

    밝혀 놓을게

    개들이 짖거든

    집 주인 친구라고 하게나

     

    심야 고속버스를 타시게

    좌석이 넓은 우등버스를 타시게

    꼬리를 조심하시게

    고래 전용 버스가 만들어질 때까지

    불편한 길, 조금 참고 오시게나

     

    꿈길까지 열어 놓을게

    밤새도록 외등도

    밝혀 놓을게.

    - 이건청의 고래들의 주민등록전문

     

    고래들이 시민권을 부여받은 도시는 울산이다. 대한민국의 공업도시로 이름난 울산은 예전에는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던 도시였다. 그러나 시당국의 환경정책과 시민들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울산은 생태도시로 환골탈태하는 미래의 비전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시인이 울산을 고래 도시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 도시에서 생태사회가 실현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고아롱”, “장꽃분”, “고이쁜”, “고다롱네 분의 고래 님들은 동해에서 울산으로 이사 온 이주민들이다. 네 분은 주민등록번호를 헌정 받고 울산 시민과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 받았다. 시인은 고래를 아래로 내려다 보지 않는다. 인간을 바라보는 눈높이의 수평적 위치에서 시인은 고래를 마주본다. 인간의 언어, 인간의 지식, 인간의 기술은 고래보다 사람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우위의 조건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없는 고유한 속성과 능력을 고래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인간과 고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고래의 생명권生命權을 인간의 생명권과 평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네 분의 고래 님들은 기존의 울산 시민들과 함께 울산의 생태사회를 형성할 새로운 시민의 자격을 얻었다. 네 분의 고래 님들은 현재의 울산 사회를 생태사회로 바꿔놓을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과 시민권의 헌정은 고래들이 인간들과 함께 생태사회를 실현하는 공동의 사회적 역할을 맡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고래 님들이 시인의 양촌리 집에 초대 받아 놀러오는 꿈길이 열리는 것도, “고래 전용 버스가 만들어질 때까지이 행복한 꿈을 시인이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생태사회의 구성에 참여하는 고아롱, 장꽃분, 고이쁜, 고다롱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고래 님들과 토박이 울산 주민들과 시인이 막역한 친구가 되어 도타운 정을 나누면서 살아갈 마을이여! 이렇게 멋진 신세계의 마을을 미래의 생태사회로 맞이하려는 비전은 과연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현실적 실현의 가능성은 만물과 상호부조의 파트너십을 결속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최영철의 풀수염을 읽어보자.

    여름 내내 밭에 못 갔다 풀들이 멋대로 놀았겠다 놀다가

    내가 궁금해 땅을 박차고 나왔겠다 그 중 몇 놈, 먼 길을 어

    찌 날아왔는지 내 코 밑에서 자란다 턱수염을 만지는데 새

    록새록 뿌리를 박은 것들이 까칠하다 땅에 있을 때는 가냘

    프고 연약했던 것들, 수백리 일자무식 빈 촌놈들, 물어물어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겠다 산 넘고 물 건너 밟히고 넘어지

    며 단단해진 근육, 수풀을 헤치며 수염을 밀어내며 수염 속

    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겠다 수염과 같은 보호색이었다

    가 어느새 수염으로 진화한 풀들, 나는 세수할 때마다 풀수

    염 뿌리에 몰래 물을 준다 잘 삭은 콧물도 한바탕 뿌려준다

    코밑에서 풀들이 쑥쑥 자란다 감쪽같이 새까매져서 어느 게

    풀인지 어느 게 수염인지 모를 정글이 되어간다

     

    - 최영철의 풀수염전문

     

    멋대로 놀다가 땅을 박차고 나온 풀들”. 그들은 아기 풀씨의 시절부터 바람 행글라이더를 타고 먼 길을 날아온생명체들이다. 날아와서 시인의 코 밑에서 자라는풀들. 시인의 코 밑은 이고 피부의 세포들은 무수한 흙알갱이다. 시인도 땅에서 태어나고 땅에서 자라난 생명체이니 그의 코 밑은 땅의 연장선이자 일부분이다. 그곳에 시인의 근친이자 땅의 또 다른 자녀인 풀들이 뿌리를 박고기술문명의 쇠붙이를 벗어나 까칠한생명력을 왕성하게 퍼뜨린다. 풀씨의 껍질을 부수고 싹으로 돋아났을 때는 가냘프고 연약한몸이었다. 그러나 생활의 세파를 시인과 함께 온 몸으로 버텨내면서 밟히고 넘어져도시인의 의지처럼 더욱 단단해진 근육으로 일어선 풀들이여! ‘이라는 모태에서 시인과 함께 태어난 혈육답게 풀들은 애환의 멍에마저도 시인과 함께 맨다. 풀들은 시인과 생명의 연대의식을 나누며 시인의 반려가 되었다.

    풀들의 성장을 수염으로 진화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인이 자신의 주체 속에 가둬 둔 을 해방하였음을 뜻한다. 자크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시인은 자신의 주체 속에 을 종속시켰던, 주체 중심의 지배구조를 해체한 것이다. 비로소 시인의 주체 속에 부속물로 갇혀 있던 이 풀려난다. 풀은 시인의 주관적인 생각에 좌우되는 대상이 아니다. 풀은 시인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된 타자他者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 자크 데리다가 강조했던 바로 그 타자로서 말이다. 풀은 독립적 존재로서 시인과 동등한 수평적 위치에 서 있다. 데리다가 자연을 타자로 존중한 것처럼 시인도 풀을 독립적 존재로 인정한다. 그는 이 갖고 있는 풀의 고유한 속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인은 풀의 입장에서 풀의 생태적 삶을 이해하고 있는 까닭에 의 일부인 코 밑에서 자신과 함께 풀들이 쑥쑥 자라나는공동의 동반 성장을 염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 동반 성장의 비전을 함축하는 시적詩的 키워드가 풀수염이다.

    시인의 코 밑에서 자라나는 풀들은 시인과 함께 에 삶의 뿌리를 박고 공생하는 생명공동체의 일원들이다. 코 밑을 땅으로, 땅을 지구로 확대하여 바라본다면 풀들은 지구라는 집에서 인간과 함께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상호부조의 파트너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 말한 것처럼 만물이 서로 돕는상호부조의 관계를 인간과 자연이 변함없이 유지해나갈 때에 만물의 집인 지구는 멋진 신세계, 생태사회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므로 결합해서 상호부조를 실천하라! 이것이야말로 각자 그리고 모두가 최대한의 안전을 확보하고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살아가고 진보하는 데 제일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중에서

     

    -

    미주

    1) 머레이 북친, 《사회생태론의 철학》, 문순홍 옮김, 솔 출판사, 1997, p. 234.
    21)P. A.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5. p. 106.
    3) 머레이 북친, 《사회생태론의 철학》, 문순홍 옮김, 솔 출판사, 1997, p. 234.
    4)머레이 북친, 《사회생태론의 철학》, 문순홍 옮김, 솔 출판사, 1997, p. 244.
    5)〈북극 얼음면적 최소치 또 경신〉, 《동아일보》, 2012년 9월 21일.
    6)1979년 독일 함부르크의 ‘루터 출판사’에서 출간된 아르님 유레의 시집 《우리는 성긴 지표地表 위에 서 있다》에 처음 수록되었다.
    7)1936년에 발표된 찰리 채플린(감독․시나리오․주연)의 코미디 영화. 자본주의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만능주의와 기술만능주의 풍조가 만연되고 인간이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8) 송용구, 시 〈심각경보〉, 《창작21》제36권, 2016년 겨울, p. 65.
    9) 송용구, 시 〈심각경보〉, 《창작21》제36권, 2016년 겨울, p. 65.
    10) 머레이 북친, 《사회생태론의 철학》, 문순홍 옮김, 솔 출판사, 1997, p. 244.
    11)에리히 프롬, 《자유에서의 도피》(세계사상전집49), 고영복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3, p. 207.
    12)에리히 프롬, 《자유에서의 도피》(세계사상전집49), 고영복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3, p. 208.
    13)독일어 발음으로는 ‘맑스’라고 불러야 한다.
    14)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한상진 외 옮김, 생각의 나무, 1998. 참조.
    15)자크 데리다, 《해체》, 김보현 옮김, 문예출판사, 1996. 참조.
    16)1980년에 처음 발표된 후 1981년 페터 쉬트의 시집 《꿈과 일상 사이에서》에 수록되었다.
    17)1994년 ‘솔’ 출판사에서 간행한 김지하 시인의 시집 《중심의 괴로움》에 수록되었다.
    18)2010년 ‘동학사’에서 간행한 이건청 시인의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19)최영철, 《돌돌》, 실천문학사, 2017, p. 11.
    20)조규형, 《해체론》(살림지식총서 339), 살림, 2008. 참조. 
    21)P. A.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5. p. 106. ​

     

     

     

     

     

     

     

     

     

     

    송용구 

    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저서독일의 생태시,느림과 기다림의 시학, 인문학 편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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