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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요문학무크> 나는 그때 죽었다_고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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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때 죽었다

     

    고형렬

     

     

    나는 그때 죽었다

    그해 겨울 연해주 남쪽 그 도시의 새벽 칼바람의

    어둠이 유리 속에서

    그 후의 나는 살아 있지 않았다 밖에 사람이 없는

    영혼 같았다

     

    돌아갈 수 없는 블라디보스토크 끝

    지옥의 사우나탕에서

    시퍼런 잎은 얼마나 자신을 때렸던지 그 엽맥은

    부서져버렸다

    돌이켜보니 그 엽맥이 나였다 멀리서 도망 온 자가

    자신을 원없이 때렸던 그 등줄기

    시퍼런 핏자국

     

    죽은 나는 서울로 갔다

    연해주 남쪽 그 도시에서 그들의 문체와 함께 살았던

    굶주림의 나날들

    그 검은 시대 검은 청춘들의 이름과 구두와 가방

    쓸 데 없는 시들처럼

    허무한 종로 산() 잡지들

     

    쓸 데 있는 것이라고 쓸 데 있는 것도 아닌 시간 속에서

    그들은

    아무리 달려도 시간을 세월로 만들지 못했다

    그들은 영원한 아이들이기에 어른의 슬픔을 알 수가

    없었다

    달 아래 저

    연해주 남쪽의 어느 도시에서

    그때 이미 죽은 나는, 그 콱콱 막힌 어두운 시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죽음의 사실만 블라디보스토크에 표석을 세우고

    언제나 수 초 늦는 말은

    폭격 맞은 아침 아무르 강의 얼음 같았다

    나의 영혼은 아래턱이 얼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

     

    이른 새봄 얼음도 깨어지기 전 흙도 뒤집지 않은 나라

    만주풀종다리 울음소리처럼

    홍수가 나기 전

    그 연어 치어들의 새빨간 알몸이 사할린의 추억을 지나

    베링 해에서 그때 죽은 나를 만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이 문장만 유효할 것 같다, 나에게

    나를 만날 수 없는 자신에게

    살아 있어서 서로 만난들 무엇 할 것이며 무엇으로 즐길 것인가

     

    그때 나는 죽어서 그들의 삶을 보기 위해

    나의 삶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비로소 나는 살아 있고 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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