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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요문학무크>물컹물컹한 생_ 안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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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컹물컹한 생

     

                                                            

     

    안주철

     

     

     

    가슴이 봉긋하게 솟기 시작하는 딸을 두어 달에 한 번

    만나는데 안아주면 안 될 것 같고

    멀리에서 걸어오는 아내를 바라보면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데 자꾸 내 나이를 생각한다.

     

    어디에서 깎고 어디에서 보탠 것인지 모르는 고통은

    그때 찾아온다.

     

    이제 집 없이 사는 삶도 괜찮다 말하는 아내에게

    그런 거 다 부질없는 욕심이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가끔 들르는 술집에 손님이 가득 차면

    유리창에 맺힌 안과 밖을 뿌옇게 들여다보다가

    발길을 돌리지만 그래도 아직 순서를 기다리면서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 아내는 그게 다 마음에 달린

    문제라 한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가짜 고통을

    내가 아직 철없이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니체를 전공한 아내는 마을에 작은 연구소를 내고

    동네 사람 몇몇 모아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만만하게

    여긴다.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알기 위해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게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불안해하는 데

    몽땅 낭비하면서 밤을 새고

    때로 새벽 천변에 나가 가짜,

    고통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천변과 같아진다.

     

     

     

     

     

    찬비가 내려서

     

     

    1

    찬비가 내려서

    가게 앞을 밝힌 전등이 빛난다.

    찬비가 내려서

     

    하나가 빛나고 둘이 빛나고

    고인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저렇게 빠르게 피는 꽃도

    저렇게 빠르게 지는 꽃도

    처음이다

     

    지는 꽃인지 피는 꽃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찬비가 내려서 꽃이 빛난다.

     

    필 때 빛나는 꽃이 있고

    질 때 마지막으로 빛나는 꽃이 있겠지만

    오늘은 물웅덩이에 꽃이 핀다고 말할 수 없고

    오늘은 빗방울이 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는 꽃잎이 흘러간다. 물결을 만들며

    피는 꽃잎이 흘러간다. 물결을 만들며

     

    2

    가게 앞을 밝힌 전등이 빛난다.

    한 상자가 빛나자 두 상자가 빛나고

    세 상자가 빛나자 오토바이가 배달을 마친다.

     

    찬비가 내려서 물웅덩이에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어디까지가 꽃잎이고 어디까지가

    줄기인지 알 수 없지만

    밤 또한 깊었지만

     

    피는 꽃도 지는 꽃도 아래로 흘러간다.

     

    꽃이 피는 물계단을 만들며

    꽃이 지는 물계단을 만들며

     

     

     

    안주철 | 2002년 계간창작과비평시 등단.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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