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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요문학무크>포스트드라마시대, 연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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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드라마 시대, 연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경미  

     

     

    독일의 연극학자 한스-티스 레만(Hans-Thies Lehmann)은 그의 포스트드라마 연극(Das postdrmatisches Theater에서 지금까지의 연극사를 드라마 이전의 연극(pre-dramatic theatre)’, ‘드라마연극(dramtisches theare)', '드라마 이후의 연극, 즉 포스트드라마연극(post-dramatic theatre)'로 정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희곡이 연극의 절대적인 중심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대신 다른 매체들이 고유한 표현성을 획득하는 보다 행위중심적이고 탈기호적인 공연들을 통칭한다. 그리고 그 시대적 스펙트럼은 멀게는 20세기 초, 가깝게는 1960년대를 지나 현재에까지 걸쳐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극적 실험들의 정도가 때로는 예측가능한 수준을 뛰어넘어 확장/발전되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레만이 이 용어를 빌어 설명하고 있는 현대연극의 일반적 경향 또한 어느덧 진부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연극은 현대사회에서 연극 스스로가 어디에,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를 묻는 치열하고도 진지한 자기 반성의 산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희곡 : 만들어진 서사에서 구성되는 서사로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turn)’, ‘시각적 전환(pictorial turn)’, 그리고 공간적 전환(spatial turn)’ 과 같은 용어가 말해주듯, 1960년대 이후 문화의 중심축은 언어로부터 행위, 이미지로 옮아갔다. 이러한 문화 현상과 맞물려 연극 역시 서사 중심의 희곡적 연극에서 벗어나 몸과 움직임, 음악과 빛,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무대 공간이 갖는 고유한 물질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연극의 이와 같은 다양한 실험 속에는 약 80여년 전, 그 전까지 절대적인 중심이었던 희곡이 실제로는 무대에 더없이 커다란 장애물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신이 아닌 감각과 소통하는 물리적인 새 언어를 되찾을 것을 요구했던 아르토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무대가 구체적이며 물질적인 장소라는 점이다. 무대는 무엇인가로 채워질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대로 하여금 구체적인 언어를 말하도록 해야 한다” (앙토냉 아르토, 잔혹연극론57)

     

    음악이나 춤, 조형, 판토마임, 무언의 몸짓, 제스처, 억양, 건축, 조명, 무대장치 등, 모든 수단들의 결합, 작용과 반작용, 상호간의 파괴를 통해 무대가 비로소 고유한 시정(詩情)”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른 연극실험가들의 생각들과 어우러져 오늘날까지 연극에 실험에 대한 당위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지난 100년 동안 무용이나 영화, 회화, 건축과 같은 고전적인 인접장르와 연극의 경계는 이미 오래 전에 허물어졌으며, 이제는 디지털미디어에 대해서도 서슴치 않고 경계를 허무는 바람에, 연극작업에 있어 미디어아트, 인스톨레이션이라는 용어조차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따라서 전에 없이 매체적으로 풍성해진 이 무대들을 이야기 할 때, 이제 많은 연극학자들은 연극이 아닌 공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연극이라 하기에는 현재 진행되는 이 모든 실험들이 더 이상 연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연극은 행위예술, 무용적 연극, 음악적 연극(music theater)과 같은 부분적인 경계넘기의 단계를 지나, 무대를 극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기차역, 지하철, 일반 가정집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 영역 안에 놓기도 한다. 때때로 관객은 말 그대로 일상의 삶들로 넘치는 도시공간을 간단한 MP3나 핸드폰 문자메세지에 의지해 돌아다니며, 그 전까지 일상의 눈으로 대했던 공간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면서 공간과 인간, 나의 관계를 현상학적 체험하기도 한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아주 간단한 연극적 약속 하에 무대에 올리기도 하며, 특정 입장을 위해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온갖 보고서와 인터뷰, 신문자료들이 여과 없이 제시되면서 무대 자체를 사실로 채워진 하나의 토론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물론 캄캄한 객석에 앉아 무대가 잘 만들어 보여주는 완결된 허구세계에 공감하는 것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생각했던 전통적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연극의 실험들이 더없이 낯설고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과 같이 무대 위에서 연극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극적 세계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관객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1990년대 이후 현대 연극의 무대가 단순히 의미 없는 피상적 이미지들이나 자기도취적 실험으로 채워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연극학을 그 시대의 문화 및 문화변동의 차원과 연결지어 문화학의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현대연극의 실험들 역시 사회, 문화적 지평과 동떨어진 자기도취적 예술관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를 연극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해 적극 문제를 제기하려는 진지한 반성의 행위이다.

     

    실험의 주요 화두, 현상학 & 상호매체성 & 수행성

    현대연극은 이제껏 의미의 재현에 종속되어 왔던 무대 위의 말과 배우, 배우의 움직임과 소리, 그리고 빛, 더 나아가 카메라와 영화, 비디오, 그리고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들 하나하나가 갖는 표현성에 주목하면서, 의미의 체계로부터 분리된 독립된 기표로서 이들이 갖는 고유한 매체적 성질에 초점을 맞춘다. 의미에 대해 종속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매체들이 그 자체로서 서로에 대해 대등한 관계를 갖고 상호작용하는 ‘-사이(-inter)’라는 미적공간은 관객의 상상력이 극점에 달하는 생산적 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공연에서는 상호매체성(intermediality)이 더없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다.

    예를 들어 2010년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초청작이었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Krapp's Last Tape)(사뮈엘 베케트)에서는 연극의 절대적인 중심축으로 생각되었던 언어조차도 하나의 청각적 울림으로, 리듬으로 변용되면서 지극히 물질적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언어가 파편화되어 일종의 콜라주 재료가 됨에 따라 배우는 더 이상 내러티브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배우의 움직임 속에서 심리적 단위로서의 인간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다. 배우 역시 하나의 물질적인 매체가 되어 다른 매체들과 함께 배치되는 것이다. 통상적인 감각으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배우의 몸,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녹음해 두었던 테이프를 몇 번이고 되감아 다시 트는 반복적 행동으로 인해, 관객에게는 시간의 흐름조차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중간중간 발생하는 침묵이나 바닥을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 무대 위에 다양한 각도로 드리우는 빛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그림자 등 다양한 매체들이 서로에 대해 빚어내는 차이 속에서, 관객은 삶이라는 형용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묵직하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호매체적 전략 속에서 배우의 몸을 비롯한 연극의 모든 표현 매체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위로, 과정으로, 미적 사건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예컨대 그것들은 모두 허구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아니라, 그때그때 관객의 살아있는 감각과 조우하는 물질그 자체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와 생성의 과정 속에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며 무대와 객석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에너지이다. 그런 이유로 메를로 퐁티(Merlau Ponty)의 말을 빌자면, 이 물질들은 관객의 지각 속에서 관객의 감각을 새롭게 구성하고, 현실에 대한 그의 지각방식을 변화시키기는 현상학적 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강렬한 경험이면서 동시에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또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힘이 되어 관객의 의식에 작용한다. 이 지점에서 오늘날 연극은 언어학 및 기타 사회, 문화 영역에서 논의되어 왔던 수행성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현상학적 몸과 그 몸의 에너지로 충만한 무대는 더 이상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 중에 있는 하나의 미적 과정 그 자체이다.

     

    감각의 교란, 상상력 그리고 질문하는 무대

     

    독일의 실험적 작곡가이자 연출가인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els)20113LG 아트센터에서 공연 되었던 그의 작품 <나는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지 않았다(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에 대해 프로그램 북에 다음과 같이 짧게 연출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았다.

     

    무엇을 보러 가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예술적 경험에 관객은 더더욱 열려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확신할 수 없을 때야말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채 변화시키니까요〔…〕무대엔 살롱 하나, 집 한 채, 호텔방 하나가 있지만 그것이 뭔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보게 될 것은 듣게 되는 것 만큼의 경험일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나는 좁은 의미를 담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연극은 언제나 사회에 대한 도덕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며 사회 통합을 위한 공론의 장이 되어왔다. 대표적인 예로 고전주의의 연극 무대는 관객들이 허구의 형식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할 행동방식, 그리고 덕과 악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확대경과 같은 것이었다. 예컨대 몰리에르(Moliere)나 실러(Friedrich Schiller), 레싱(Gotthold Lessing)의 연극에서 알 수 있듯, 연극은 상황을 관객들이 인식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구성해서, 이를 통해 사람들이 반드시 준수하거나 반드시 피해야 할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델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연극에서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일관된 합의의 코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연극은 무대가 제시하는 하나의 담론으로 관객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으나, 오늘날처럼 각종 이해관계 및 사유화된 담론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체제 속에서 이러한 연극의 교육학적 모델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연극이 끊임없이 추구했던 공동체적 이상은 다른 모든 거대 담론과 마찬가지로 그때그때의 사회, 힘들, 욕망과 권력 기호들에 따라 조성되고 또 파기되고 또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일시적이고 임의적이며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현대연극은 더 이상 단일한 관객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즉 관객이 수동적으로 자신의 무대 속으로 흡수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대에 능동적/비판적으로 대면하기를 바란다. 공연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놓는 괴벨스의 이러한 태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무대가 의미의 통합체가 되기 보다는, 연극 스스로 자신의 형식을 해체하여, 작게는 무대 위, 크게는 세계 속의 합의된 질서들의 한계를 노출시킴으로써, 그 무()의 공간 속에서 관객 스스로 세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구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연극은 더 이상 관객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고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해진 의미의 틀을 지워버린 가운데 매체들이 빚어내는 감각적인 공간들 속에서 관객의 능동적인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들만을 던져 놓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위의 글, 즉 자신의 무대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것이 없으니 보는 것만큼 보고 듣는 것 만큼 보라는 괴벨스의 퉁명스러운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관객에게 특정 화두를 미리 만들어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무대로부터 의미의 흔적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비우둠으로써, 관객 스스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통해 무대를 새롭게 자신의 것으로 구성하기를 원한다

    오늘날 연극은 스스로 의미를 표방하지 않으며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준다. 선험적인 의미가 배제된 무대 공간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며 인간과 삶에 대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보기(Sehen)'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객주체는 오늘날 정치철학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현대 연극에서 행해지는 모든 실험은 동시대의 현실에 대해 예술적, 정치적으로 대응하려는 적극적 행위이다.

     

     

    이경미 | 연극평론가. 공저 동시대 연극비평의 방법론과 실재, 퍼포먼스와 연극,

    옮긴 책 20세기 연극: 선언문, 양식, 개혁 모델, 계간 연극평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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