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창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환대_황은덕
  •                   환대

     

     

     

    황은덕

     

     

    너의 미래는 청춘의 한 지점에 멈춰 있었다. 너는 오늘이 2027년이고 자신은 스물두 살이라고 했다.

    -아니야, 지금은 2017년이야.

    너는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무연한 표정으로 탁자 아래의 한 점을 응시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너는 바닥을 응시하고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너는 고개를 들었다.

    네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내 오른손을 가리켰다.

    -만져 봐도 돼?

    탁자 위로 천천히 두 손이 다가오더니 내 오른손을 쥐었다. 양손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지상의 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악력이었다. 너는 내 오른손을 얼굴 가까이에 가져가 손톱과 손가락뼈와 피부 아래의 정맥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어디로 살이 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3층 병동의 면회실에 들어선 지 10여분 만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감정의 근육이 조금쯤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꼭꼭 잘 숨어 있어.

    내가 대답했다.

    지난봄에 만났을 때 너는 살이 쪄서 몸집이 몹시 비대했었다. 아까 면회실에 들어서자마자 몇 달 전의 네 모습이 떠올라서, 살이 많이 빠졌네, 하고 말했다. 너는 즉시 숫자로 대답했다. 49킬로그램. 그런 후에 내게 물었다. 넌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 나가?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곧 대답했다. 나는…… 72킬로그램. 그때부터 너의 머릿속에 궁금증이 더해갔던 것 같다. 도대체 그 많은 살이 어디에 숨어 있을까 하고.

    잠시 후 네가 말했다.

    -널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

    -뭐가 생각나?

    너는 대답하는 걸 잊은 듯 다시 바닥을 응시했다. 시간이 약간 흘렀다. 네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예쁘다고?

    너는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 예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진 눈매와 점점 뚜렷해지는 팔자주름과 가슴 아래로 출렁이는 뱃살들 때문에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는 나날이었다.

    -뚱뚱하잖아. 나이 들었잖아.

    너는 정색했다.

    -아냐, 넌 항상 예뻐.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다.

    -난 스물두 살이야.

    너와 입씨름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지금이 2017년이든 2027년이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우리가 스물두 살인지, 마흔아홉 살인지는 이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

    지난봄에 우리는 병원의 1층 로비에서 만났다. 그때 너는 3층 병동에서 담당 간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안내데스크 앞에 초조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왔다. 무려 이십여 년만의 만남이었다.

    종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경기도의 병원 단지로 향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엉클어졌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정문에서 방명록을 작성한 후 오르막길을 따라 정신병원 건물로 걷는 순간에도 머릿속이 뒤엉켜 있었다. 병원 1층 안내데스크 앞에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한 가지 질문만이 남았다. 도대체, 네가, ?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각각의 장면들은 잊힌 채 무거운 납덩어리가 되어 가슴 한가운데를 짓눌러 뭉갰다.

    간호사가 한 팔로 나를 가리켰다. 너는 걸음을 멈추고 멀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이름을 불렀다.

    -은희야.

    동행한 간호사가 너에게, 친구 분 맞죠? 하고 확인했다. 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간호사가 안도의 눈길을 내게 보냈다. 나는 몇 걸음 다가갔다. 너의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 같은 게 스쳐갔다.

    -진숙아. 나 알아보겠어?

    예전과 너무도 달라진 너를 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안에서 솟구쳐 나왔다. 내부에서 갑작스럽게 분출한 그것은 불꽃처럼 짧은 순간 의식을 감전시켰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로소 하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너는 살이 쪄서 몸집이 커 보였다. 예전처럼 귀 위로 짧게 커트한 머리칼은 부스스하게 일어선 허연 새치들로 가득했다. 긴팔 환자복 위로 남색 카디건을 걸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건 얼굴 표정과 눈빛이었다. 예전처럼 쏘는 듯한 눈빛이 아니었다. 초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가 전방을 향해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었다.

    -잘 있었어?

    느릿한 목소리로 너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마치 엊그제 만났다가 헤어진 친구를 다시 본 양 심상한 말투였다.

    -지석 씨는?

    너는 내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집에 있어.

    너는 내 아이의 안부도 물었다.

    -애는?

    -잘 있어.

    결혼 직후 지석을 따라 해외 근무지로 떠났기 때문에 너는 내 아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에서의 십 년, 귀국 후 십 년 동안 너를 만난 적이 없으니 네가 내 아이들의 존재를 알 리 없었다. 결혼했으니 당연히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면회 온 누군가로부터 내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몇 발자국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내게 인사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면회 규칙에 대해 물었다. 특별한 주의사항이 없다고 했다. 면회시간 제한 같은 것도 없었다. 면회를 마친 후 환자를 3층 병동으로 직접 데려다 달라는 당부뿐이었다. 그날 간호사가 왜 너의 면회 절차에 대해 유독 관대했는지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내데스크를 지나 복도 끝 국화실로 들어갔다. 출입문을 닫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네가 물었다.

    -너 우리 집에 왔었어?

    -. 니네 집 어디?

    오래전에 나는 너의 고향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여고와 대학시절에 살던 K시의 자취방에도, 간호사로 근무할 때 네가 잠시 얹혀살던 서울의 친척집에도, 그리고 하염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연남동 빌라 5층의 전세방에도 간 적이 있었다.

    -해남 우리 집.

    -. 예전에 갔잖아. 대학교 1학년 때.

    -아니, 지난달에

    -지난달에는 안 갔어.

    내 대답이 너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는 곧 무심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우리의 대화는 자주 끊겼다. 너는 자주 말을 멈추고 탁자 아래를 무연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난 놀아. 맨날 놀아. 텔레비전만 보고.

    -그래?

    -공부해야 하는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계획도 세워 보고.

    공부나 앞날에 대한 계획 따위, 이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도 해 보고. 그럼 안 되니?

    -뭘 하고 싶은데?

    -전도사. 선생님도 하고 싶고. 이제 국문과 갈려고.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로비의 안내요원에 물으니 국화실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너는 자장면, 이라고 대답했다. 팔선각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 두 그릇과 군만두를 주문했다. 내가 전화 통화하는 걸 지켜보던 너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가 병원들을 전전하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나는 탁자 위에 휴대폰을 올려 놓고 바탕화면의 프로그램들에 대해 설명했다. 너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의 얼굴 위로 뭔가가 움찔, 지나갔다. 너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헬멧 쓴 나이든 남자가 배달가방 안에서 자장면과 만두 그릇을 꺼내 탁자 위로 올렸다.

    -자장면, 진짜 오랜만에 먹어.

    너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젓가락을 쥔 오른손이 간간이 떨렸고 그때마다 젓가락질을 멈췄다. 체머리를 앓고 있는 듯 머리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기도 했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으니 오랜 세월동안 약을 복용한 탓에 후유증이 생긴 거라고 했다.

    자장면을 목 안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런데 너는 자주 식사를 멈추고 나를 채근했다.

    -은희야, 먹어.

    네가 동작을 멈추고 재촉할 때마다 자장면 면발을 목안으로 삼켰다. 네가 말했다.

    -맛있어.

    식사를 마치고 빈 그릇들을 출입문 바깥에 내려놓자 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산책하자.

    병원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건물 위쪽으로 좁은 길이 나 있고, 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가꾸어져 있었다. 노란 개나리꽃과 붉은 철쭉이 나무들 사이에 피어있었다. 햇볕이 따뜻했다.

    -남자친구가 의사거든. 내가 사귀던 오빠. 내가 얘기 안 했니?

    네가 갑자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고향집에 가려면 눈을 감고 해남, 하면 단숨에 갈 수 있다거나, 죽은 큰오빠나 상규오빠가 퇴원 수속하러 왔는데 잠들어버려서 만나지 못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너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날 퇴원시키려는 의지가 너무 부족해.

     

    *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자인 상규오빠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병원 규정상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허용되지 않아서였다. 몇 년 전에도 상규오빠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상규오빠의 지인을 수소문해서 너를 면회하고 싶다고 전했었다. 하지만 너의 상태가 악화되어 누군가 너를 만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대답을 전해 들었다. 이번에는 상규오빠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여동생의 오랜 친구를 쉽게 기억해 냈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무렵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맹맹한 콧소리가 약간 섞인, 변함없는 목소리로 그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화제가 여동생의 근황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상규오빠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다소 뜬금없이,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지난 몇 년 동안 너를 면회 온 가족이나 친척이 아무도 없었다는 담당 간호사와의 전화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맘이, 아파요. 자꾸 퇴원시켜 달라고 해서……. 상규오빠가 얼버무렸다. 그는 곧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나의 면회 일정에 동의했고, 그 사실을 내게 문자메시지로 알려주었다. 그날 이후 병원에서는 더 이상 그의 허락을 요구하지 않고 면회신청을 받아들였다.

    스물다섯 살 무렵의 발병 이후 너의 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스물다섯에서 스물일곱 살까지 너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한동안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너는 다시 병원들을 전전했다. 그즈음엔 상규오빠와 남동생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기르면서 생활인으로 단련되는 동안 두 사람은 더 이상 너를 찾아가지 않았다. 네가 병원 매점에서 사용하는 간식비는 꼬박꼬박 너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간식비가 매달 일정한 날짜에 송금될 수 있도록 상규오빠는 은행에 자동이체를 신청해 두었다.

    전화통화 이후에 가끔씩 상규오빠의 인터넷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희생과 감사에 관한 명언들, 자기개발을 다짐하는 글귀들, 환하게 웃고 있는 여행사진들,‘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같은 성경구절들. 그런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너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유 없이 마음이 사나워졌다.

     

    *

    너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였다.

    앉은키 순서로 교실 좌석이 배정되어 키와 체격이 엇비슷했던 너와 나는 책상 앞뒤로 앉게 되었다. 우리는 3월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가까워졌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깜짝 놀랄 만큼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K시 고등학교로 유학 왔고, 두 칸짜리 자취방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둘 다 고향에서는 이름깨나 날렸지만 K시 고등학교에서는 평범한 우등생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우리는 상념이 많고 헛꿈을 자주 꾸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어지러운 잡념과 몽상을 서로에게 얘기했고, 그것들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막연히 시인이 되기를 원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던,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삼중당 세계문고를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탐독했다.

    우리는 어느새 말투와 몸짓과 글씨체까지 비슷해졌다. 담임을 비롯한 교과목 담당 선생들이 너와 나를 헷갈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좋아했던 국어와 국사 선생들조차 두 사람을 쉽게 구별하지 못했다. 은희와 진숙. 반 아이들은 우리를 희숙이라고 한꺼번에 불렀다. 누군가 희숙아, 하고 부르면 자연스럽게 둘 다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두발과 복장 규칙을 잘 지켰고, 교실과 복도를 걸을 때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종례 직전까지 마쳐야 하는 학급청소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맡은 구역을 청소했다. 몸이 아파서 결석하지 않은 한, 아침 자율학습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빼먹지 않았다.

    너는 두 살 터울의 오빠를 위해 밥상을 차렸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들은 우리보다 먼저 K시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부모들은 중학교를 마친 너와 나를 K시로 딸려 보냈다. 부모들이 암암리에 부과한 의무가 무엇인지 너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일일이 행동지침을 일러주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달걀찜이나 된장국을 끓였다. 아침밥을 먹은 후에는 설거지를 했고, 자취방을 서둘러 걸레로 훔친 후에 부랴부랴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를 향해 달렸다.

    그 시절의 평범한 여고생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낙엽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기를 좋아했다. 낙엽 진 보도를 걷다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나 빨간 단풍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시를 즐겨 읽었다. 그 시인이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학도병 지원을 부추기는 시들을 썼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조금이라도 더 길쭉해 보이는 목을 만들기 위해 고개를 한껏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음울함과 고뇌에 매료되었다. 니나, 전혜린,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이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너는 교통사고로 죽은 큰오빠에 대해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가슴이 따뜻한 대학생이었는지, 집성촌인 너의 고향마을에서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리던 그가 집안 어른들이 대부분인 마을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불어넣었는지를 너는 조용조용 말했다. 너는 지갑에서 큰오빠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눈썹이 짙고 콧날이 오뚝한 잘생긴 청년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는 밤중에 큰오빠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성적이 떨어져 속상할 때나 밥상을 차리고 빨래하는 일이 귀찮아질 때, 생활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급식비를 낼 수 없을 때, 그럴 때면 너는 큰오빠에게 상의하고, 투정을 부리고, 불평을 쏟아냈다.

    나도 내 오빠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오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대문을 지나 주인집 안채와 마당을 가로질러 왼편으로 꺾어들면 오빠와 내가 세 들어 사는 상하방이 있었다.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두 칸짜리 방은 그러나 마음만 먹으며 언제든 상대의 공간을 침범할 수 있었고, 침입자는 항상 오빠였다. 오빠는 가끔씩 미닫이문을 열고 내 방으로 건너와 가슴과 배를 걷어찼다. 주먹으로 등을 가격하거나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기도 했다. 말수 적은 모범생이었고 부모에게 복종적이었으며 누구보다도 소심했던 오빠의 내부 어디에 그런 폭력성이 자리 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빠의 존재는 끊어질 듯 위태로웠던 부모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곤 했던 유일한 밧줄이었고, 그런 이유로 나는 오빠의 구타에 대해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오빠를 앞에 앉혀두고 번갈아가며 말하곤 했다.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진즉에 집을 나갔다.

    오빠의 구타는 일 년 동안 계속되었다. 3인 오빠가 고1인 여동생을 때려야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 그날 모의고사 시험을 망쳐서, 실수로 책상에 물을 엎질러서, 건방지게 말대꾸해서, 또는 대꾸를 안 해서. 오빠의 주먹질이 시작되면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신음소리가 바깥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애썼다. 무엇보다도 안채의 주인 내외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입시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불안한 사춘기를 홀로 건너야 했던 오빠는 역시 낯선 도시에서 예민한 시기를 보내는 여동생을 구타하며 청춘의 위기를 극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자 오빠의 폭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은 비밀을 서로에게 말하고, 그 비밀을 굳건히 지키면서 우리는 서로를 더욱 의지해 갔다. 그 시절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삶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서로의 얼굴을 떠올렸다.

     

    *

     

    사범대에 지원한 너는 전기입시에 실패한 후 3년제 간호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재수를 원했지만, 집안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위로는 대학생 오빠가, 아래로는 고등학생 남동생이 있었다. 너는 선택지가 없었다. 사범대가 아니면 간호대학이어야 했다. 졸업과 동시에 즉시 취업해야 했다.

    성인간호학이나 기본간호학 같은 교과목들, 그리고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실습 시간을 너는 버거워했다. 이른바 문과형 인간인 너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교과과정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여자들끼리의 신경전과 경쟁심이 견딜 수 없다고 털어놓았을 때 내가 너를 진심으로 이해했던가? 너를 충분히 배려하고 위로했던가? 잘 모르겠다.

     

    *

     

    너의 고향집을 방문한 건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날 너는 그 폐가로 나를 데려갔다. K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목포에서 내려 다시 배를 갈아타고 너의 고향마을에 당도했을 때는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너의 어머니가 마루에 차려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너는 보여줄 게 있다고 귓속말했다. 흐린 구름장이 낮은 하늘에 걸리고, 희끗한 진눈깨비가 하나둘씩 흩날리기 시작하는 오후였다.

    너는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앞장서서 걸었다. 좁은 마을길을 벗어나자 양파와 옥수수와 콩잎이 심긴 비탈진 경작지가 나왔다. 밭두렁 아래로 실개천이 흘렀다. 마을이 저만치 멀어지고, 잡목과 넝쿨식물이 무성한 언덕배기로 올라서자 그 폐가가 나타났다. 언덕 뒤편으로 야산이 이어졌다. 밭작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듯 야산이 시작되는 입구에 쇠막대로 고정된 녹색 그물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울타리 에야생멧돼지 출몰지역이라고 붉은 글씨로 적힌 경고 푯말이 걸려 있었다.

    그 폐가는 제법 널찍하게 지반이 다져진 공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쩐지 으스스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집이었다. 시멘트 지붕의 절반이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흙이 무너진 담장 둘레에는 잡초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었다. 녹슨 철제대문과 깨진 유리창 사이로 벽지가 벗겨지고 앙상한 철골이 드러난, 한때 방이었고 거실이었고 부엌이었던 황량한 빈터가 보였다. 깨진 형광등과 사기그릇 조각들, 담배꽁초들, 다 쓴 비료부대와 마대자루들, 크고 작은 비닐봉지에 묶인 쓰레기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너는 삐걱거리는 철문을 밀치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손에 쥔 비닐봉지에는 네가 부엌에서 챙겨온 찐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너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불쌍해.

    폐가에 사는 남자의 이름은 용가리, 라고 했다.

    -용가리통뼈 할 때 그 용가리?

    -. 마을 애들이 지어줬어.

    폐가와 남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언제부터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홀연히 마을에 나타난 그 남자는 아직 무너지지 않는 한쪽 지붕 아래에 볏짚과 이불을 펴고 잠을 잤고, 마을사람들이 바가지에 던져주는 밥덩이를 얻어먹으며 살게 되었다고 했다. 전기도 수돗물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수수께끼라고 너는 말했다.

    -용가리를 본 적 있어?

    -. 마을에 내려오면 동네 애들이 항상 뒤를 따라다니면서 놀렸어.

    간혹 짓궂은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질 때에도 용가리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휘적휘적 걷는다고 했다. 용가리가 순하다는 걸 알게 된 동네어른들이 그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수시로 꾸짖고, 아주머니들이 번갈아가며 밥덩이와 반찬을 바가지에 부어주면서 용가리는 차츰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일원이 되어갔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아무렇게나 뒤로 묶고, 한여름에도 길고 두터운 검정색 파카를 입고 털신을 신고 다니는 그가 불쌍하다고, 너는 눈물을 글썽였다.

    네가 그렇게 용감한 아이였던가? 두려워서 차마 대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나를 등 뒤에 남겨둔 채 너는 철문을 넘고, 깨진 유리 조각과 쓰레기가 흩어진, 한때 누군가의 거실이었던 빈터의 한가운데로 홀로 들어가 검은 비닐봉지를 놓아두고 뒤돌아 나왔다.

    다시 언덕을 내려와 밭두렁 위를 걷는데 자꾸만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몇 번을 뒤돌아봤다. 희끗희끗한 눈발 사이로 검정색 파카를 입은 누군가의 시커먼 머리통을 본 것 같았다. 폐가의 창문에 달린 깨진 유리조각 틈으로 덥수룩한 머리칼을 풀어헤친 남자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

     

    스물다섯 살 무렵의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우리는 둘 다 서울에서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주말이면 신촌이나 여의도의 카페에서 만나 서로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골뜨기였던 우리는 서울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년제 간호전문대와 지방 국립대를 각각 졸업한 너와 나는, 서울 시내의 번듯한 대학을 졸업한 동료들 사이에서 열등감에 시달렸다. 4년제 정규 간호학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너는 병원 업무에서 제외되는 일이 종종 생겼고, 그로 인해 번번이 마음을 다쳤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가차없이 도태되는 냉혹한 직장에서 하루하루 고투를 벌였다.

    그즈음 너는 교제하던 남자와 헤어졌다. 네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남자였다. 너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런데도 정작 그와 헤어지게 된 자세한 경위를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렸다. 네가 교제하는 동안 나는 그를 만나본 기억이 없다. 그가 사무직 직원이었던가? 일용직 근로자였던가? 의사였던가? 돌이켜보면 그때야말로 네가 누군가가, 영혼의 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토록 무심했던 것일까. 너는 왜 입을 다물었던 것일까.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너를, 그리고 나를, 이해할 수 없다.

    *

    어느 날 국화실에서 네가 말했다.

    -힘들지?

    나는 놀라서 너를 바라보았다.

    -, 내가 힘들어 보여?

    -.

    너는 예의 그 무연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지석과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던 여자애와 그녀를 보자 지석의 얼굴에 환하게 번지던 생의 활기에 대해 말할 뻔 했다. 지석을 선배님, 이라고 부르던 여자애는 지석이 근무하는 회사의 직원이었다. 부장님이 아니라 선배님인 이유는 그녀가 지석의 대학후배이기도 해서였다. 사모님, 전에 헬싱키에서 뵌 적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낯이 익었다. 배낭여행 중인 대학 후배가 도착했다며 지석이 직접 반타공항까지 차를 몰고 가서 데려와 저녁식사에 초대했던 여자애였다.

    지석의 마지막 해외 근무지였던 헬싱키는 국내 제약회사의 말단 직원이 살기에는 터무니없이 물가가 비싼 도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지석을 출근시키고 나면 두 아이가 잠에서 깼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다시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다 보면 하루해가 갔다. 천기저귀를 빨고, 유동식과 고형식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하루에 두 번 유모차에 태워 산책 나가고, 틈틈이 시간 내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봤다. 아이들이 좀 더 자란 후에도 비슷한 생활이 이어졌다. 유모차 산책이 놀이터로 바뀌고, 블록 쌓기 놀이가 동화책 읽어주기로 변했을 뿐이었다. 육아와 집안일에 관한 지석의 태도는 결혼 직후부터 변함없었다. 난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지석이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이었다. 주말에도 지석은 바빴다. 회사 업무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다양한 취미와 자기개발 활동으로 건전하게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석은 여자애에게로 쏠리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모든 고민을 내게 떠넘겼다. 지석이 참가하는 테니스와 자전거 동호회 여행에는 어김없이 여자애가 동행했다. 그는 그 사실을 내게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단체사진은 물론 둘이 함께 찍은 사진들도 보란 듯이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석이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한 어느 날,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여자애였다. 오늘 선배님이 연락이 안 되어서요. 내가 전화를 받아서 당황했다기보다는 하루 종일 지석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는 탁자 아래를 응시했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말했다.

    -두려워.

    -뭐가?

    그동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세상의 습속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법규를 위반한 적도 없고, 무임승차를 한 적도 없고 교통질서를 위반한 적도 없는데. 서시오 하면 서고, 앉으시오 하면 앉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네가 말했다.

    -사람들이, , 사는 게, 힘들어.

    *

     

    3층 병동의 면회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흰 벽으로 막혀 있고, 시계도 달력도 없었다. 실내에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만이 놓여 있었다. 1층에서의 면회와 산책이 금지된 날이었다. 네가 퇴원을 요구하며 며칠 째 약 복용과 식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깥은 한여름이었다. 전국의 대도시에 폭염주의보가 발령 중이었다. 그런데도 너는 긴팔 환자복 위에 겨울용 파카를 껴입고 있었다.

    -추워?

    이마에 밴 땀을 손수건으로 누르며 내가 물었다. 병원 앞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걸어오느라 등이 땀에 젖어 있었다.

    -난 괜찮아.

    나는 의자에 올려둔 배낭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샐러드 먹자.

    얼음 팩으로 포장해 온 플라스틱 용기를 열었다. 너는 일회용 드레싱 봉지를 집더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니…… 소스니?

    네가 소스, 라고 발음하는 걸 듣자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 카스텔라도 먹을래?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배낭에서 또 다른 비닐봉지를 꺼냈다.

    -단팥빵 먹을래?

    너는 고개를 저었다.

    -단팥빵 먹으면 안 돼.

    나는 단팥빵을 다시 배낭 속으로 넣었다.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 그리고 그건 어떤 규칙으로 결정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육식을 피하는 건가 싶었지만 샐러드에 섞인 닭고기를 먹는 걸 보면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규칙을 알 수 없으니 면회 올 때 이것저것 계통 없이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소화가 잘 되는 야채나 과일, 혹은 예전에 좋아하던 빵 종류나 음료수를 준비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말없이 샐러드를 먹었다. 네가 자주 동작을 멈추고 너도 먹어, 넌 왜 안 먹어? 라고 채근했으므로 나 역시 일정한 속도로 샐러드를 먹었다. 달걀도 먹어. 내가 달걀 조각을 밀어주자 너는, 달걀이야? 하며 세심하게 살폈다. 네가 포크로 달걀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양상치도 먹어. 네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양상치야, 양상추야? 갑작스런 물음에 양상치인지 양상추인지가 헷갈렸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휴대폰을 꺼내 검색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너는 다시, 양상치야, 양상추야? 라고 말했다. 혼잣말이었다.

     

    *

     

    너의 첫인사는 항상 응, 잘 지냈어? 이다. 전화선을 통해 전해지는 말투가 심상하다. 목소리에 나른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너는 지루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하루하루가 지겹다. 아니다. 너는 지루하지 않다. 너는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의 시공간은 갑작스럽게 팽창하거나 축소된다. 원하기만 하면 너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너는 3층 병동의 홀 중앙에 서 있다.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환자복을 입은 누군가가 너에게 다가와 웅얼웅얼 말을 걸고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귓속말로 속삭인다. 너는 사람들을 헤치고 홀 벽면의 공중전화기를 향해 느릿느릿 걷는다. 녹색 공중전화기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환자복 위에 덧입은 파카 주머니에서 전화카드를 꺼내 투입구 안으로 밀어 넣는다. 병동 입구의 카운터에 간호사 둘이 앉아 있다. 간호사들 뒤로 남자 보호사 두 사람이 대기 자세로 서 있다. 너는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너는 기억력이 좋다. 지난번에 내가 종이쪽지에 적어준 휴대폰 번호를 너는 잘 외우고 있다. 뚜뚜. 신호음이 들리고 휴대폰 액정화면에 너의 이름이 떠오른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너와 남쪽의 항구도시에 사는 내가 연결된다. 여보세요, 진숙이니? 너는 대답과 질문을 동시에 한다. , 잘 지냈어? 너는 오늘 기분이 좋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의 산책시간에 병실 밖으로 나갔다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들을 봤기 때문이다. 방금 밖에 나갔다 왔어. ! 단풍이 떨어진다. 너의 목소리에 가벼운 콧소리가 섞여 있다.

    오빠가 지금 오고 있어 빨리 퇴원해야지, 라고 너는 말한다. 하지만 너는 오늘 오빠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몇 년 전에도, 너는 병원으로 면회 온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 날 면회 왔는데, 그런데 못 만났어. 내가 잠들어버렸거든. 너는 언제나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네가 죽은 큰오빠나 상규오빠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면회시간에 네가 잠들어버렸거나,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 측에서 너와 네 가족의 면회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너는 혼잣말을 웅얼웅얼한다. 잘 안 들려. 내가 말한다. 하지만 너는 한참동안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잠시 기다리기로 한다. 수화기를 손에 들고 갈팡질팡하는 네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뭐 사 갈까. 뭐 먹고 싶어? 내가 묻는다. 니가 사 오는 건 다 맛있어. 네가 보일 듯 말 듯 미소짓는다.

     

     

     

     

     

    황은덕: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한국어 수업, 역서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부산작가상,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