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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간 때문이야_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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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 때문이야

                                                           

     

    이정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직장을 다니면 상사나 동료를 믿지 않는 사람도 한 가지만은 믿는 것이 생긴다. 한 집단의 구성원이 일정 수 이상이 되면 또라이는 꼭 생겨난다. 희한한 것은 문제의 또라이가 나가더라도 어디선가 다른 또라이가 그 자리를 메운다는 점이다. 그래서 또라이의 질량은 똑같이 유지된다. 또라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어쩌면 그 또라이는 나일지도 모른다.

    퇴근을 하고 펍pub에 들러 창가 자리의 바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와 눈을 잠시 마주쳤다.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금세 시선을 돌리고 땅콩을 입에 넣었다. 사내는 가게 안을 서성이다가 내가 앉은 바bar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사내 역시 혼자였다.

    이 지역은 개발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다. 신도시계획에 맞춘 회사 이전과 발령으로 갑작스럽게 가족과 떨어져 이 지역에 흘러들어온, 홀로 사는 직장인이 많다. 대다수의 가게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 중심으로 메뉴를 짜고 1인이 다수 앉을 수 있게 자리배치를 했다. 사내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우리 둘 다 묵묵히 자신의 맥주를 마셨다. 출출해서 시킨 돈까스를 저녁 대신으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직장동료에게 말하는 듯, 사내가 내게 말했다.

    내일 여자 한 분을 만날 겁니다. 아마 사랑했던 사람이겠지요.”

    처음에는 뜨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내게 한 말이냐고 물었다. 사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무슨 뜻이냐고 재차 물었다. 남자가 일어서서 자신의 가방을 들고 나가면서 말했다.

    간 때문입니다.”

    만약 또라이 법칙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 술집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또라이는 방금의 그 사내였을 것이다. 저거 완전 또라이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러면 여기 남은 사람 중에 새로운 또라이는 누구지?

     

    다음날 퇴근을 하고 마트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고호와 마주쳤다. 고호는 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던지 고호가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고호는 나의 놀란 표정을 재미있어 했다. 우리는 마트 안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그 사람이 질투 나서 못 견디게 힘들었던 고호와의 연애시절이 까마득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끔 소식이 끊긴 친구들의 연락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어렵사리 시간을 내 만난 자리에서 하나같이 물건을 팔았다. 고호, 그녀 역시 우연히 마주친 내게 영업을 했다. 세상에, 한때 사랑했던 이에게 물건 파는 행위라니. 미치게 정 떨어졌다. 동시에 영업하는 표정과 태도가 아주 멋있어서이 죽일 놈의 사랑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헤어지고 나서 참담한 마음으로 펍에 갔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앉아 고호와 나눈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때 어제의 그 또라이가 들어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남자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왜소하고 깡마른 체격과 다르게 팔에서 느껴지는 사내의 근력이 엄청났다. 나도 모르게 팔에서 손을 떼버렸다.

    어제 했던 말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당신 누구야? 고호와 어떤 사이야?”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서 있던 사내는 조금 있다가 아, 하고 짧게 외쳤다.

    만났군요? 저는 그 여자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믿으실 진 모르겠지만 제가 예지력이 조금 있습니다. 어제 제가 본 장면은, 뭐랄까, 여러 가지로 여운이 남아서 나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그 부분,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참 궁금합니다.”

    이건 진짜다. 진짜 또라이가 나타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중얼거렸다.

    , 저는 예전에 살던 곳을 포함해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까지 또라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본 장면은 거짓이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본 장면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혹시 점쟁이인가. 대학 졸업을 하고 취직이 되지 않아 엄마를 따라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점쟁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애매한 답만 잔뜩 늘어놨다. 눈빛이 탁하고 손을 떠는 것이 알코올중독자 같았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죄인이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1년 안에 취직되는 부적을 비싸게 사서 돌아왔지만 결국 취직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투병생활을 하다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나 또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병행하느라 간염에 걸렸었다.

    이 사내는 그때 그 점쟁이와 비교하기에는 눈빛이 아주 맑았다. 말투가 좀 어색하긴 하지만 또박또박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평범한 인상이었다. 어쩌면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무언가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사랑하다 슬프게 헤어진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 않습니까? 어딘가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 어색하게 시선을 마주치다가 갑자기 카페에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두 장면 사이에 잘린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근처 카페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은 누가 먼저 했을까. 카페까지 가는 동안 둘은 나란히 걸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을까. 집 앞에서 마주쳤는데 저 정도 규모의 큰 카페가 있는 번화가까지 나오려면 오래 걸었어야 하지 않나. 택시를 같이 타고 나가는 것은 좀 우스운데. 예전에 겪었을 수치스럽고 화나는 기억, 사랑을 나누던 시절의 오그라드는 행동이 막 떠오를 텐데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카페까지 갈 생각을 했나. 그런데 선생님이 그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마트에서 마주친 그 여자가 그랬을 겁니다. 여기 카페에서 차 한 잔 하고 가. 선생님은 멍하니 뒤따라갔고 열 걸음 만에 카페가 나왔지요. 거침없고 당당한 자세를 가진, 여전히 멋있는 여자를 보며 선생님은 가슴이 두근거렸을 거고 우리가 왜 헤어졌나를 떠올렸겠지요. 선생님의 음료 취향을 여전히 기억하는 여자가 센스 있게 커피를 사 와 선생님께 건네며 물었을 겁니다. , 간은 건강하니, 하고요.”

    부분적으로 틀린 곳이 있지만 거의 정확했다.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별주부 헬스 케어 서비스 -건강관리 자료부 사원 김진> 나는 고호에게서 받았던 명함을 찾아 꺼냈다. 똑같은 회사명이었다. 역시, 둘이 아는 사이였구나. 나를 갖고 놀렸구나. 화가 난 나머지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사내는 두려움 따위 배운 적 없는 사람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역시, 같은 회사였군요. 선생님께서는 이미 인터넷으로 회사 검색을 해봤겠지요. 실제 존재하는 회사입니다. 십여 년 안 된 회사지만 엄청난 규모로 성장 중입니다. , 이건 제 회사 출입카드입니다. 이건 제 신분증이고요. 못 믿으시겠다면 지금 회사에 전화를 걸어 저를 찾으십시오. 별주부 주식회사는 크게 건강관리 파트와 건강회복 파트로 나뉩니다. 저는 건강관리 파트에서 일을 하고 아마 그 여자 분은 건강회복 파트에서 근무하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특히 저는 관리업무라 사내 근무를 하고 여자 분은 영업부라 외근 위주로 일을 할 것입니다. 만난 적도 없겠지요. 저는 예지력은 있지만 그저 몇 개의 장면을 볼 뿐입니다. 사람의 정확한 이목구비를 보거나 이름 같은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 분을 이곳에 데려와도 저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크게 쓸모 있는 능력은 아니지요.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제 능력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 고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사내의 말도 충격적이다. 나는 별주부 헬스 케어 서비스 회사의 또라이 둘을 하루 안에 다 만난 것이다. 김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에게 물었다. 도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길게 설명했다.

     

    별주부 헬스 케어는 고객의 정보를 토대로 앞으로의 건강한 삶을 설계해주고 치료하고 유지시키는 기업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한지 1년여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방은 1에서 출발합니다. 하나의 방, 하나의 책상, 하나의 의자, 하나의 모니터, 그리고 하나의 나. 각각의 물건과 사람을 구성성분과 세포의 수로 확장시켜 따진다면, 1이 수천, 수백만으로 늘어나기도 하겠지만 결국 1로 수렴되는 방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0이나 다름없는 방입니다. 제 일이 그런 작업으로 이루어진 일이니까요.

    출근을 하면 늘 그렇듯 흰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로 갈아입고 전자파 차단용 감색 모자를 씁니다. 시력 보호 안경을 쓰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탈의실을 나서면 복도를 걷는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습니다. 차림새는 물론이고 체격, 체형, 걸음걸이까지 비슷해 보입니다. 대개 회사 내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지키기 때문이지요. , 혹시 선생님의 세계에도 표준이 되는 체격, 체형, 걸음걸이가 있습니까? , 없을 것 같았습니다. , 왜냐고요? 그냥……, 느낌으로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배를 보다니요. 안 봤습니다. 근데, 배가 좀 나왔다고 해도 흉하진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어쨌거나 복도를 걸어서 제 방에 들어섭니다. B-185.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의 전원을 켭니다. 커피 한 잔이요? 방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입니다. 모든 음식물은 식당에서만. 그게 규칙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은 자신의카페인 권장섭취량을 지키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에서 먹거나 아예 마시지 않습니다.

    암튼 컴퓨터의 리듬체크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모니터에 가로 방향으로 기다란 선이 그어집니다. 그 선은 누군가의 생체 리듬을 표시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생활할 때의 반복되는 리듬을 조사해서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 사람의 지금 리듬과 비교합니다. 그 사람이 보내는 현재의 리듬이 다르다면 컴퓨터가 경고음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저는 그 리듬을 예의주시합니다. 다른 리듬이 길어지면 고객의 위치를 추적하고 고객에게 직접 연락합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인지하면 본부에 알립니다. 그러면 본부에서 그 사람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요.

    예를 들자면, 선생님이 우리 회사의 고객이라고 합시다. 선생님은 평소 자신의 건강에 대해 염려가 많았습니다. 딸린 식구가 있고 가족력에 특정한 병이 존재하고 생활 습관이 좋지 않으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의사를 포함해서요, 자신의 신체인데도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암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꾸준히 관리하고자 애를 쓰고 돈을 쓰고 시간을 쓰지요. 그러다가 건강을 관리해주는 회사에 연락을 취합니다.‘애를 쓰거나 시간을 쓰지않는 상태를 돈으로 살 수 있으니까요. 이때 들이는 비용은 스스로 관리할 때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우리 회사는 선생님의 평소 리듬을 조사합니다. 건강검진결과, 평소 습관, 요일별, 시간별 하는 일과 움직임의 양 등을 체크하는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발바닥과 손바닥 등 몸의 여러 군데에 신호를 감지하거나 보내는 칩을 삽입합니다.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과 비슷합니다. 선생님은 삽입 시술 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지속하면 됩니다. 나머지 관리를 회사가 해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체에 이상은 없는지, 음주와 흡연 습관이나 일 때문에 몸에 무리를 주는 일은 없는지, 선생님은 배가 좀 나왔으니 성인병이나 기타 질병에 노출된 확률이 크다는 점 등을 집중해서 체크하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뱃살은 그저 예시로 말씀 드린 겁니다. ? 아무래도 관리하면 훨씬 쾌적하고 건강한 삶이 따라오지요. 뱃살 관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주짜리로 관리 받으시면 금세 표준 허리둘레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척 저렴해요. 저를 통해 가입하시면 직원할인가로 계산 가능하고, 1년짜리 건강 관리권을 끊으시면 2주 단기 뱃살관리권은 사은품으로 드리니 참고하시고요.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 관리 체크. 이렇게 조사한 항목을 토대로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고객님께 피드백 해드립니다 이번 주 운동량이 얼마이오니 어떤 운동을 좀 더 하시고, 섭취하신 영양소 중에 무엇이 부족하니 어떤 어떤 음식을 섭취하시고……, 추천 운동은 스피닝입니다. 30분 이상 지속하세요. , 이런 식으로요.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는 당뇨와 혈압 체크 기능이 있고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다면 약을 자동 주입하는 기능 등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요즘 같이 좋은 세상에서 자기 건강관리는 필수지요. 그걸 회사가 대신 해주니 얼마나 편합니까.

    제가 할 받은 고객은 6명입니다. 위험인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이지요. 일종의 보험으로, 최소한의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들입니다. 화면에 색상이 다른 여섯 개의 선이 가로로, 모니터의 왼쪽에서 오른쪽 끝을 향해 나갑니다. 이 가로선들은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분홍의 직선들이 더 길어지지도, 짧아지지도 않고 서로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뻗어가는 것을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젊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선생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젊음은 좋은 것인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생체 리듬 체크를 맡겼을까요? , 갑작스럽게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우매한 인물로 찍힐 만큼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질문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하나 떠오르면 다른 것들도 연쇄적으로 궁금해집니다. 저는 그것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회사에서 근무태만으로 걸렸습니다. 추가 작업을 내주더군요. ‘어제의 일 보기였습니다.

    6개의 직선 위로 화면을 하나 더 띄웁니다. 무작위로 파일을 하나 골라 열면 누군가의 어제를 담은 영상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하루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에 설치한 CCTV가 찍은 내용입니다. 거실이나 주방, 직장의 사무실이 대부분입니다. 간혹 화장실이나 침실에서 찍힌 영상이 있다고는 들었지만-집 화장실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직접 봤다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나의 근무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생활을 보려면 영상을 1.2배속, 혹은 1.5배속으로 재생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날 안에 다 보는 것이 빠듯합니다. 노련한 사람들은 2배속으로 돌려서 필요한 정보만 재빨리 정리한다지만 저는 1.2배속 영상도 겨우 봅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해야 할 일은 대상자의 움직임, 식습관, 작업 유지 시간, 주변인과의 대화 시간, 표정 등을 조사해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생체리듬과 성향을 고려해 최적화된 맞춤형 생활계획표를 짜 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그것의 기본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하는 것이 추가된 작업이지요.

    생활계획표를 짜 주는 전문가요? 아니, 없습니다. 계획표를 짜는 것은 컴퓨터가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컴퓨터가 다 합니다. 사람은 기본 정보를 수집하고 짜인 프로그램을 최종 점검해서 고객과 상의하는 일을 합니다.

    , 제가 하는 일은 실상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저는 힘듭니다. 어떤 것이 필요한 정보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매번 고민합니다. 이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문득 CCTV 카메라를 올려보고 응시할 때를 기록해야 할까요? 거실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웃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볼 때는 기록해야 할까요? 저는 다른 사람의 정보정리서류철보다 많은 분량의 서류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반려되기 일쑤입니다. 컴퓨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정보가 많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야근이 잦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의 직선이 위아래로 요동치길 기다리면서, 동시에 영상 속의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 일이 그렇듯 특별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위기를 기회처럼 여기며 사는 일은 그래서 몹시도 피곤합니다. 위기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위기를 불러올만한 고객의 행동을 놓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납니다. 작은 것을 놓친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성심성의껏 지켜봅니다. 영상을 사진으로 쪼갠다면 1초에 30장 정도의 장면을 본다고 쳐도 1분에 1800장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1에서 출발한 방은 6개의 선으로 나뉘었다가 분당 1800번의 시선으로 쪼개집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저는 다시 1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곤란을 겪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작업한 기분이 들지만 모니터가 꺼지는 순간 같이 있던 사람들은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대화 한 번 못 나눠본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는데,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지요.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참으로 고독한 직업입니다.

    좋은 점도 있습니다. 세상 사는 일에 서툰 저는 어제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새삼 사람들의 일과를 배웁니다. 요즘 유행하는 옷의 디자인과 아침식사용으로 잘 나가는 시리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선호되는 텔레비전 채널과 방송 프로그램도 알게 되지요. 일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오늘 본 제품들, 그러니까 어제 사용된 그 물건들을 찾아보고 구매합니다. 물론 인터넷 구매가 훨씬 편합니다. 여러 가지 선택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굳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배달도 해주니까요. 하지만 저는 직접 가서 보면서 사고 싶습니다. 냄새를 맡고 비교를 하고 적정량을 직접 골라 담고. 회사 관리자가 본다면 또 혀를 끌끌 찰지도 모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유한한데 그렇게 막 쓰고 다닌다고요. 저는시간을 생각하거나 본 적이 없습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늘 과거의 시간만 들여다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 , , 그렇군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을 자각하지 않고 산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다면, 제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네요? ? 하던 얘기나 마저 하라고요? , 남은 얘기는 별 거 없습니다. 장을 본 다음에는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거나 이렇게 펍에 와서 맥주를 마시지요. 평소에는 한 병만 마시지만 금요일 밤에는 특별히 2, 3병을 마십니다. 그리고 제 방에 돌아와 잡니다. 눈을 뜨면 다음날 아침이고 우리 모두의 방은 1에서 출발하지요. ……제 일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이 답니다.

     

    사내의 이야기는 알 듯 말 듯, 있을 듯 없을 듯, 했다. 그의 설명은 막힘이 없었고 그저 멍하게 듣게 되는 낮은 목소리였다. 신분증 상으로는 나와 나이가 같았지만 아주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호가 일하는 건강회복부서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선생님을 만나면서간의 안녕을 물었겠지요. 그리고 말했을 겁니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는 고객의 건강한 간을 지켜준다고. 이런 말도 했을 겁니다. 간은 인간의이 다 들어있는 장기다. 간은 곧 그 사람이다. 구미호가 누군가의 영을 뽑아가는 이야기를 간 빼 먹었다는 이야기로 와전시킨 것도 간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전지구가 오염된 이 시절을 잘 살아가려면 해독기능을 하는 간이 건강해야 한다. 그녀의 말대로 헬스 케어 건강회복 프로그램은 무엇보다이라는 장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위가 기능을 못하면 장으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이 망가지면 다른 장기로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심장, 신장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이식수술을 받는 사람이 있지요. 운동과 식이요법? 물론 중요하지만 이미 망가진 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초를 다투며 변화를 요구하는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방법은 단 하나. 건강한 장기를 자신의 신체에 넣어서 직접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선생님, 그녀가 말한 것과 똑같은 내용이지요? 입사하면 제일 처음 듣는 교육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생님께 건강한 간을 사라고 했을 겁니다. 별주부주식회사는 의료 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과 업무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건강기본관리 프로그램을 사원복지차원에서 가입한 회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별주부주식회사는 선생님의 건강검진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 인터넷상에 무엇을 검색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세계의 모든 회사가 사람들의 생활리듬을 계량화하고 그렇게 계량화된 정보를 이용해서 영업을 합니다. 돈을 그렇게 버는 겁니다.

    선생님은 간이 아픈 적이 있겠지요. 아버지 직계의 가족력이 한몫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영업사원을 파견해 간이 더 상하기 전에 수술을 받으라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하필 선생님의 옛 사랑이 그렇게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별주부주식회사는 평소 바른 생활습관을 가졌고 꾸준한 건강관리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적당히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선별해서 좋은 간을 약간씩 얻습니다. 선생님 간의 손상된 부분을 적출하고 건강한 사람의 간을 배양해서 만든 특수 캡슐을 그 자리에 이식합니다. 간이식 수술보다 안정적이고 부작용도 덜하지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캡슐의 유효기간은 200. 200일마다 선생님은 캡슐을 바꿔달아야 합니다. 캡슐을 바꿔 다는 일은 시술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지요. 모든 가입 고객이 그런 서비스를 받습니다.

    고호에게서 회사 설명을 들을 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새삼 느꼈다. 십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조금만 더 살아계셨다면 별주부 헬스 케어를 신청해서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나저나 고호와의 마주침이 계획된 일이라 듣고 나니 머릿속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사내가 물었다.

    선생님, 맥주 한 병 더 하시겠어요? 제가 살게요. 안주는? 저는 맥주를 마실 때엔 안주를 먹지 않습니다. 오늘은 맥주를 3병 마실 계획입니다. 여기에 안주를 먹으면 회사에서 정한 하루 적정 칼로리를 넘어섭니다. 무계획적인 폭식은 건강의 적신호입니다. , 이런! 이런 종류의 말은 재수없다고 배웠는데. 선생님, 사과의 의미로 제가 안주도 사겠습니다. 치킨세트는 어떠세요? , 그럼 그걸로 드세요. 선생님, 오늘은 제게 좀 특별한 날입니다. 사람이 되고 나서 이렇게 오래도록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일은 없었거든요. 아니지, 사람이 되기 전에도 이렇게 이야기 나눈 적은 없었네요. 제가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이 상황을 참 만족스러워한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난 지 고작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게 멱살잡이도 당한 마당에, 그렇게 천진한 표정으로 흥분해서 말하는 사내가 조금 귀여워 나도 웃으며 말했다.

    태어나서도 아니고사람이 되고 나서라니요, 표현이 재미있네요.”

    그러자 사내가 몹시도 당황한 표정이 되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그게 뭐랄까, 제가 왜 그런 말을 했냐 하면요, ……, …….”

    사내의 그런 반응이 안쓰러울 정도여서 나는 그냥 농담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며 진정시켰다. 그러자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 크게 결심한 것처럼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나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뺐다. 그가 속삭였다.

    사실 사람이 되기 전에 저는…… 용왕이었습니다. 수궁에서 살았지요.”

    , 나도 모르게 크게 외쳤고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돌아봤다. 이렇게 스케일 큰 허풍이라니. 나는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용왕이면 그…… 인당수 심청? 공양미 삼백석의?”

    , 심청전이나 토끼전에 나오는 그 용신 맞습니다. 동해바다에 있는 수궁이 저의 신전이었지요. 쑥스럽지만 토끼전에 나오는 용왕의 실제 모델이 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전되는 별주부전, 그 이야기요. 용왕의 목숨으로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죠.”

    말을 마친 그가 옛일을 회상하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나 싶었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그를 보자니 어쩌면 농담을 능청스럽게 아주 잘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자기 세계에서 또라이로 소문났다고 스스로 말한 사람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로 충격을 겪으면 마음을 바꿔 새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참 진부한 이야깁니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 없는 현시대에 자기 의지로 변하다니요. 신이 아니고서야 가당키나 합니까. 제가 용신이던 시절에는 의지를 가진 변화가 가능했습니다. 저와 토 선생, 별주부가 그런 존재들입니다.‘별주부전전체 이야기는 아시지요? 제 생에 그렇게 아찔한 심리 스릴러는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 허풍이 과하다고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지금의 별주부 주식회사는 그 시절의 당사자들이 있어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사실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처음에오직 토끼의 간 아니면 죽는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신인데……, 이렇게 죽으면 쪽팔려서 어떡하나.’싶었지요. 물을 관장하는 신이 죽으면 이 물들은 다 누가 관리하나, 걱정도 했어요. 그때 나선 별주부를 저는 참 아꼈습니다. 뭍까지 거리가 어마어마했거든요. 파도도 거셌거든요. 그렇게 힘들게 뭍으로 가서 토 선생을 데리고 온 겁니다. 수궁의 높은 벼슬자리를 주겠다고 뻥까지 쳐가면서요.

    토 선생이 자신의 간을 바위 위에 널어두고 왔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지만요. 토 선생 조상이 간 씻고 있는 것을 본 낚시꾼이 간 씻은 물을 떠 마셨더니 160살까지 살았다 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토 선생 부친을 구해준 동방삭이가 간을 얻어먹고 삼천갑자, 무려 18만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는 모든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고 누군가 말을 하면 무조건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다시 뭍으로 보냈습니다. 예지력이요? 글쎄, 그 시절엔 그런 예지가 필요 없었습니다. 저는 이었으니까요. 아니, 신이 아파서 죽는 마당에 초능력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일단 신이 살아야 바다도 살지 않겠습니까? 그저 간 한 조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지요. 하지만 토끼의 간도, 별주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이 짜고 달아난 거였어요. 더 좋은 신을 찾아간 거지요. 지금이야 검색만 하면 위치추적해서 다 찾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어요.

    그 이후 저는…… 쫓겨났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수궁에서 나와야 했지요. 그렇게 단호히 쫓아낼 줄 몰랐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땅도, 다 같이 잘 살자고 쿵짝쿵짝 손뼉 치면서 열심히 접대했는데……. 지들은 같이 안 즐겼나? 같이 놀아 놓고선 고개를 돌리더군요.

    수궁의 시간은 몹시도 빠릅니다. 별주부가 토 선생을 데리고 올 때만 해도 조선 후기쯤이었는데 둘이 다시 뭍으로 떠나고 그 뒤에 제가 쫓겨날 때 즈음엔 현 시대와 가까워졌습니다. 그때부터 바다 속이 연일 시끄러웠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바다에 쓰레기 양이 급격히 증가했거든요. 사람들이 해양자원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바람에 바다 속 생태계가 무너졌지요. 어류를 비롯해 바다 생물이 급감했습니다. 종수도 줄었지요. 얼음이 자꾸 녹아드는 것도 막기 힘들었습니다. 기름이 유출되거나 배가 침몰되거나 전쟁이 나서 포탄이 떨어지고 난민이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간척과 군사기지 건설로 바다와 뭍의 경계가 폭력적으로 나뉘었습니다.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가뭄과 홍수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액체인 물이 흘러가던 지구가 수증기의 한증막과 얼음의 냉동고만 있는 극단적인 세계로 바뀌는 바람에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겼지요. 지구의 모든 생물이 다 바다 신을 탓하더군요. 그러면서 포세이돈 캐릭터는 사랑하고 말이지요. 저는 참 운 나쁜 시기에 용이 돼서 고생을 말도 못하게 많이 했습니다.

    한류와 난류를 따라 바다 속을 떠돌다가 강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별주부와 토 선생이 뭍으로 간 길을 수소문해서 그대로 따라 갔지요. 수궁도 뺏긴 마당에 그 사기꾼들을 잡아서 옥황상제 앞에 무릎 꿇리고 벌을 내려달라 간청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뭍에 있는 강에서 제 2의 용신 생활을 시작하려 했지요.

    의지를 가지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몸이라 용답게 물과 하늘을 오가거나 인간의 신체로 몸을 바꾸어서 별주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쇠약해져서 장시간 변신은 힘들었습니다. , 별주부의 별은자라라는 뜻이지만 사실 거북이입니다. 낙동강 하류가 바다와 합쳐지는 지점에서 새벽목욕을 하던 별주부를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천년을 넘도록 살아서 그런지 덩치가 아주 커졌더라고요. 당황한 그는 다급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는데 기름이 가득 낀 살을 출렁거리며 턱을 삐죽 내밀고 거만한 표정을 가진 중년의 형태였습니다. 그 모습으로 인간 세상을 살고 있었더군요.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아십니까? 검색해 보십시오. 정보가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온 거지요.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검색했더니 정말 대화가 가능하다고 나왔다)

    저만 보면 고개를 조아리고 굽실거리던 그는 그 사이 많이 변했습니다. 저를 보고 아이고오, 용 형님, 오랜만입니다아.” 그러더라고요. 화가 솟구친 저는 거북이를 바닥에 뒤집어 놓고 말했습니다. 내가 몸이 아파 힘을 많이 잃었으나 너 하나쯤은 염라대왕 앞에 보낼 수 있다고. 그랬더니 거북이가 다급하게 말하더군요. 지금 세상은 신의 세계와 차원이 다르다. 지금은 인간이 대세다. 신으로서 자연에서 살기 힘들지 않냐. 인간들은 신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편리하게 산다고요. 그러면서 육지로 함께 들어온 토끼는 놓쳤지만 더욱 좋은 간을 찾았다. 지구상에서 제일 싱싱한 간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세상 좋은 것 다 챙겨먹는 인간이다. 용왕께 드릴 인간의 간을 구했으니 염려 마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외출을 하면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에 들러 요양도 했는데 요즘 그런 행사를 잘 챙기는 곳이 없더군요. 인간들이 신보다 더 찾는다는, 새롭게 믿는 존재가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큰 신이기에 그럴까 싶었습니다. 일단 간을 섭취해서 원기를 회복하자는 거북이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 낙동강 중류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날씨가 몹시 더운 날이었습니다. 거북이가 어느 바위 위에서 저를 향해 신호를 보냈습니다. 토 선생이 바위 위에 간을 널어서 말린다더니 저 바위 위에 인간의 간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고 내려갔지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저는 강에 갇혀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기술의 진일보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댐이다, 보다, 뭘 잔뜩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끈적끈적한 녹조가 생긴 것입니다. 용이 승천할 때에는 물과 하늘 사이에 물기둥을 만들어서 오릅니다. 물이 걸쭉해졌으니 제가 날지 못하게 된 겁니다.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바다의 수궁을 떠났으니 이제 이 강의 용신이 되어야 하는데 자연이 상하고 형님도 상해서 승천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요. 몹쓸 녀석이 토끼한테서 나쁜 거짓말만 배워서 나를 속인 겁니다.

    그는 자신이 내주는 간을 먹고 자신을 따라 인간세계로 가서 회복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자신이 인간세계에서 하는 사업이 있는데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인간을 보고 그의 내일을 알려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요. 녀석은 유능한 사기꾼이 되었더군요.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저는 인간이 되기로 했습니다. 별주부를 보니 자연도 신도 모두 점령한 인간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별주부가 인간의 간이라고 무언가를 내줬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소의 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을 먹어야 한다는 처방부터가 가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인간의 간은 돈을 버는 곳에 이용되더군요. 별주부가 나를 떠나 새롭게 믿고 섬기는 신은이었습니다.

     

    꽤나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허무맹랑한 신별주부전을 듣고 있자니 김진은 소설가 지망생인가, 싶었다. 나는 사내 이야기의 허점을 찾아서 지적했다. 우선 아까 본인이 하는 일과 거북이가 해 달라고 맡긴 일이 다르다고 했다. 사내는 인간의 삶을 살수록 예지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고 그래서 별주부가 더 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회사의 극비라면 극비라 할 수 있는 정보를 잘 모르는 내게 말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김진 씨의 그런 심한 허풍을 들으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오해하기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첫 청자이자 마지막 청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느 날 인간이 되긴 했지만 사람답게 살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어떤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것이 신기했다. 임기응변이 강하고 순발력, 재치가 좋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재미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설정한 이야기를 토대로 맞받아치고 대답을 듣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술이 얼근하게 오르자 마음이 한껏 풀어져서 나는 그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녹조 때문에 하늘을 날지도 못하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생활합니까. 그는 웃었다.

    제가 갇힌 강바닥에 가서 가라앉을 겁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자연신의 최후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강바닥에 앉아 있다가 운 좋으면 용이 되고 아니면 익사하겠지요.”

    사내가 진지한 표정일 때는 웃겼는데 막상 그가 웃으면서 말하니 자살을 언급하는 것 같아 무서워졌다. 나는 맥주를 더 주문해서 사내에게 권했다. 그리고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어쩌다 깨닫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동안 허공을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십분 전이었다면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겠지만 텅 빈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어쩌면 진짜 이야기라고 믿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나의 미래를 살짝이라도 언급해 준 인연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허풍이 심할지 몰라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입을 열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1년에 두 명 이상의 고객유치를 독려합니다.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인사고가에 반영되니 다들 가족 친지 사돈 팔촌 친구 등등을 설득해서 가입시킵니다. 자기 사비를 들여 가입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족도 없고 갑자기 연락해서 가입을 권할만한 친한 사람이 없지요. 그래서 저는 제 이름으로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직원관리를 이미 받고 있지만 비용을 들여 업그레이드 버전의 프로그램으로 계약 갱신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출근해서 CCTV 영상을 켰습니다. 무작위로 다운로드 되는 영상을 눌렀는데 모니터에 제가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고객이긴 하지만 제 손으로 스스로에 대해 정보 수집을 하다니요. 그런 경우 그냥 취소 버튼을 누르고 다른 영상을 다운 받아서 일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찍히는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어제의 나는 무얼 했더라? 그런 생각으로 조금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제 뒤쪽, 오른편 천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방의 대부분이 프레임에 담겨 있었지요. 연한 아이보리색 벽과 천장과 바닥 위에 흰 책상과 흰 모니터. 그 속에 시커먼 동그라미가 떠 있습니다. , 김진의 모자 쓴 머리통이지요. 옷까지 밝은 색이라 머리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기묘한 모습입니다. 화면 속의 김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면 속에 나오는 모니터에서 고객이 움직일 때마다 저는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평소 어깨통증의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자세도 다른 사람의 영상에서보다 훨씬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업무에 대한 이런 태도가이 일을 즐겼다고 의미하는지, 견뎠다고 의미하는지고민이 되었습니다.

    영상의 재생 속도를 0.8배속으로 느리게 설정했습니다. 자신을 좀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참동안 그렇게 들여다보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보류-재확인버튼을 눌렀습니다. 다음날 다시 확인하겠다는 표시입니다. 영상 하나의 정보를 넘기는 데에는 최대 일주일의 시간을 줍니다. 평소의 김진은 이틀에 하나 꼴로 정보를 넘기는 편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동영상을 넘기는 데에는 7일의 시간을 다 썼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저는 자신의 영상을 재생시켰습니다. 모든 영상은 무조건 재생되는 시점의 하루 전,‘어제의 영상을 보여줍니다. 김진은 7일 동안 7번의 어제를 봤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7번의 오늘이기도 하지요.

    마지막 7일째 되던 날, 김진은 화면에 찍힌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표정을 보니 어떤 호러물을 기대하시는 것 같은데요. 기대하지 마십시오. 단호히 말씀드리건대 들어서 아시겠지만 제 이야기는 늘 상상 이하이고 무엇이든 미끄러지는 결론이니까요.

    김진이 일하는 방에는 거울이 있습니다. 책상 앞의 벽에는 한 면을 전부 차지한 거울이 부착되어 있고 김진 뒤에도 앞의 거울보다는 작지만 꽤 큰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CCTV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라지만 김진은 그 거울을 보면서 늘 스스로에게 긴장합니다. , 예측하신대로 화면에 찍힌 사람은 여러 개의 김진입니다. 그렇게까지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시다니요, 참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남은 이야기는 꼭 들어주십시오, 제발.

    거울 속에는 화면을 들여다보는 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거울 속의 거울에는 또 다른 제가 들어 있습니다.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에는 또 또 다른 제가 들어 있습니다.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거울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김진이 보고 있는 모니터화면 속에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제가 있습니다. 모니터 속의 모니터에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제가 있습니다. 모니터 속의 모니터 속의 모니터에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제가 또 있습니다. 모니터 속의 모니터 속의 모니터 속의 모니터…….

    하나의 화면에 여러 개로 쪼개집니다. 거울, 거울, 거울, 거울, 거울로 쪼개고 화면, 화면, 화면, 화면, 으로 쪼개집니다. 거울 속에는 아직도 거울 속의 내가 무한대로 증식하고 있고 화면 속에는 아직도 화면 속의 내가 무한대로 증식합니다. 정말 징그럽지 않습니까? 자잘하고 똑같이 생긴 것이 그득 들어찬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소나무 군락지의 빽빽한 침엽,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국화축제의 무수한 꽃잎, 재래화장실 속 구더기, 지렁이를 옮기는 수백 마리의 개미, 쌀통을 점령한 쌀벌레, 당신 피부 위의 모공, 위 안쪽 점막의 무수한 융모…….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만화경.

    김진의 의지와 다르게 분할, 복사, 반복되는 김진을 본다는 것은 징그러운 일입니다. 타인은 한 명도 없이 오직 김진 만이 여러 명 존재하는 세계.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면 김진에게 미래는 저주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김진은 그렇게 쪼개져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목숨을 걸고 다시 승천할 마음을 먹은 겁니다.

     

    왜였을까. 마지막 설명은 어딘가 허술하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는데 그의 단호한 말투 때문에 코끝이 찡해졌다. 내 미래를 함부로 보고 밤늦은 시각까지 사람을 이렇게 흔들어 놓고서 무책임하게 떠난다고요, 내 간은 앞으로 어떡하라고, 나는 고백하듯 중얼거렸다. 말해 놓고 부끄러워서 용왕님, 내가 술이 좀 취했어요, 외쳤다.

    선생님, 제가 오래도록 생각해봤는데요. 간은 휴대전화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회사는 선생님 간의 존재유무만을 생각하지, 간의 안녕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간은 돈을 벌기 위한 상징일 뿐입니다. 휴대전화의 약정처럼 회사는 고객에게 일정 기간 동안 우리 회사에 묶여 있겠다는 신뢰를 받아내는 일을 합니다. 바꿔 말하면 선생님이 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몸을 회사가 사는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신체를 회사에서 제공하는 간을 원하게끔 바꾸는 거지요. 나중에는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회사의 간 캡슐을 찾으러 오게 됩니다. 특별히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회사를 찾게 만드는 신체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간 이식수술을 받으러 회사를 찾게 될 겁니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한 삶을 약속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지요. 인간이 모시는 돈이라는 신은 그래서 위대한 겁니다.

     

    나는 돈이 무섭지, 위대하다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문득 쓸쓸해졌다. 그렇게 노력해서 취직하고 성실히 일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는데 용왕님은 그런 결론을 내리다니 비약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사과했다. 듣다 보니 신이 인간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무서우니까 위대한 거 아니겠어요? 왜 사과를 해요? 하고 버럭, 화를 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꽤 취했기 때문에 생각에 일관성이 사라졌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눈이 감겨왔다.

    펍의 점원이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새벽 5시였다. 용왕은 점원에게도 똑같이 사과를 하더니 깨끗한 물 한 잔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흐트러짐 없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결국 그는 고호와 같은 영업사원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도의 전략으로 자기 회사를 디스하면서 고객을 유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스토리텔링 시대에 맞춰 저런 이야기를 통해 역으로 신뢰를 얻는 사람. 그러니 그렇게 상품이 비싸지. 연봉을 얼마나 받을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용왕님.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뭔가 능력을 더 보여주면 안 될까요? 당신이 신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요. 어차피 이런 이야기, 마지막이잖아요.

    그러자 그가 물 컵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나는 컵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손가락 끝을 향해 컵 속의 물이 소용돌이치며 물기둥을 만들어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우스워서에이, 빨대로 장난치지 말라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눈이 감기고 필름이 끊기기 직전에 그가 말했다.

     

    인간의 삶이 신의 생활보다 나은 것 같아서 인간되기를 원했지만 막상 살아 보니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이게 모두 다 간 때문입니다.

     

     

    *김진의 회사에 대한 내용은 검색되지 않을 자유(임태훈, 알마)시간의 파편을 사고파는 경제:‘디지털 헬스케어에 관하여를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이정임: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손 잡고 허밍.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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