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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환송_오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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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 송

     

     

     

    오수연

     

     

     

    새벽 숲은 수선스럽다.

    나뭇가지를 누비는 새들, 몸을 숨겨가며 이동하는 작은 동물들. 아니다. 이르게 지는 낙엽이다. 머리 위에서 바람 없이 일렁이는 건 낙엽이다. 사방에서 풀썩이는 것도 저만의 때에 맞춰 떨어지는 낙엽이다. 큰 빗방울 듣는 소리로 낙엽이 진다.

    못 본 거미줄이 뺨에 닿아 끊어져 버린다. 손에 묻어난 한 줄은 길게 늘어난 진득한 침 같다. 안개는 모든 것에 흠뻑 스며 이슬로 뿜어 나오기 직전이다. 숲은 아침 햇살을 받기에 앞서 엄청 땀을 흘릴 테다.

    거미줄이 남아 있었으니 이리로는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절정을 지나 빛깔이 탁해져가는 풀 사이로 불그스레한 오솔길은 저 앞에서 또 급히 꺾인다. 저 굽이를 돌면 또 다른 오롯한 풍경이 열리겠으나, 나는 뒤를 돌아본다. 나오는 굽이마다 저기까지만 가보자고 하다가 등산로를 꽤 벗어난 느낌이다. 어쩌면 멧돼지가 다니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리로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빨간 공이 튀어나온다. 내가 방금 지나온 저 뒤의 굽이가 길로 내놓은 건 빨간 등산 재킷의 여자다. 멈칫하는 여자의 얼굴마저 붉게 물든다. 호젓한 산속에서 남자와 마주쳐 당황한 것이다. 혼자 등산하는 여자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반면에 나로서는 마음이 놓인다. 내내 등 뒤에서 느껴지던 기척은 멧돼지가 아니라 나처럼 등산로를 벗어난 등산객이었다.

    나도 모르게 머금은 미소는 오해를 부르고 만다. 여자는 대번 뻣뻣해지며 나를 노려본다. 당연하다. 나는 돌아서서 가던 길로 걸음을 옮긴다. 여자를 안심시킬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라져주는 것일 게다.

    산길은 그물망 같아서 갈라졌다가도 다시 만나기 마련이다. 갈림길에서 나와 반대 방향을 택했을 그 빨간 등산복이 내가 갈 길을 앞서 간다. 여자는 나보다 더 초보자인 모양이다. 완만한 경사라도 섣불리 속도를 내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좋은데, 발을 지면에 꾹꾹 눌러서 체력을 낭비하고 있다. 고개 숙여 시선도 발끝에 머물러 있으니 도저히 자연을 즐기는 자세라 할 수 없다. 벌써 지친 걸까. 등에 진 헐렁한 배낭까지 축 처졌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산중에서 무슨 생각이 저리 많을까.

    여자가 돌아본다. 경계심 어린 눈에 분노가 화르륵 점화된다. 거듭 쌓이는 오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가주는 것뿐이다. 어깨를 움츠리며 공손히 여자를 우회한다. 여자도 외면하며 길가로 붙어 선다. 하지만 속세를 멀리 둔 고요한 별세계는 어쩔 수 없이 뒤틀린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력과 척력이 좁은 산길에서 순간 작동한다. 여자의 눈가에 힘주어 지고, 내 눈가에도 힘이 들어가고. 맑은 땀과 함께 까맣고 억센 머리카락이 몇 가닥 달라붙은 여자의 귀 밑이 두부처럼 뽀얗다.

    해는 어느새 훌쩍 떠서 숲의 초록 천장을 수직에 가깝게 꿰뚫는다. 나는 좀 더 굵은 빛줄기를 발등에 받기 위해 지그재그로 걷는다. 눈에 익은 나무를 새삼 관찰하며 이름을 추정해보기도 한다. 정체되어 후덥지근해지는 공기 속에 초목의 향기가 농밀하다. 콧속으로 액체가 빨려드는 느낌이다. 과도한 피톤치드로 내 몸이 초록색이 되어 버릴 듯싶다.

    뒤를 돌아본다. 초록의 물결 어디쯤엔가 꼭꼭 숨어 있을 빨간 등산복을 찾는다. 여자가 내 뒤를 몰래 밟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나 보다. 자신을 비웃으며 걸음을 뗀다. 뒤를 돌아본다.

    바위를 타넘은 것이 옳았다. 역시 빨간 등산복은 나를 추월해 있었다. 여자는 기력을 회복했으나 제 페이스를 잃었다. 속도가 다소 과하다. 틱 틱 틱, 짧게 접혀 여자의 배낭 옆구리에 꽂힌 두 개의 등산지팡이가 서로 부딪친다. 여자는 등 뒤의 나를 분명 의식하고 있다. 팃팃팃팃, 박자가 점점 더 빨라진다. 연거푸 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이 더 이상 일그러지기 전에, 나는 가슴으로 여자의 등을 들이받는다. 뒤로부터 끌어안아 입을 틀어막으면서 수풀로 끌고 들어간다.

    풀줄기에 여자와 함께 미끄러진다. 여자가 다칠까봐 팔을 풀지 못해 나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튀어 일어나 한 손으로는 여자의 입을 막은 채 다른 팔로 여자를 들어 올려서 비탈을 내려간다. 시야가 붉어지도록 온힘을 다해 길에서 더 멀리, 더 으슥한 곳으로 내닫는다. 덤불 속에 쓰러져서는 여자가 아무 데도 가지 못하도록 나의 사지로 결박한다.

    넌 나를 못 떠나.”

    옷 속에 손을 넣어 단단한 젖가슴을 감싸 쥐며 여자의 귀에 속삭인다. 젖꼭지를 물고 찝찔한 맛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끓는 수은처럼 눈알을 태워버리고 검게 고인다.

     

    바닥에서 얼굴을 들고 일어나 앉는다. 나는 혼자다.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 본능적으로 뒷머리를 더듬고 눈앞으로 내려온 손을 발작하듯 턴다. 짤막하고 통통한 갈색 메뚜기가 손에 붙어 있다. 털수록 메뚜기는 납작하게 엎드려 내 피부에 발톱을 박아 넣는다. 등줄기에 돋은 연노란 색의 짧은 털이 마치 곰팡이 같다. 메뚜기가 피도 핥아 먹나? 뒤통수에서 메뚜기가 붙어온 내 손에는 피도 묻어 있다. 그 부위에서 피가 난다. 나는 메뚜기를 잡아 뜯어 던져 버린다. 메뚜기가 미처 날개를 펴지 못하고 곤두박질 친 데서 먼지 일 듯 날벌레들이 날아오른다.

    머리 숙여 상처를 다시 만져본다. 발치에 내 배낭이 나뒹굴어 있다. 옆으로 보이는 헤드랜턴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 검붉게 얼룩진 피는 내 것일 테다. 저지른 짓이 떠올라 온몸이 떨린다. 관목을 거적처럼 뒤덮은 칡넝쿨 속으로 나는 무작정 기어들어간다.

    피 냄새 탓이다. 멧돼지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사체도 먹는다던, 출처 모를 토막 상식이 머릿속에서 다급히 깜빡인다. 아니면 근처에 새끼가 있을까? 멧돼지가 휙 휙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날렵한 줄이야 결코 몰랐다. 나는 배낭을 힘없이 휘두르다 던져버리고 뛴다. 등을 보이지 말라거나 나무를 타올라가라는 지침이 그래도 여유 있을 경우에 해당됨을 사무치게 깨닫는다. 등 뒤에서 와삭와삭 낙엽이 짓밟힐 때는 아니다.

    공포로 졸아든 뇌가 두개골 속에서 달각거린다. 팃팃팃팃……. 아까 내가 그랬듯이, 멧돼지는 도망치는 상대에게서 생생한 절망의 냄새를 맡을 것이다. 내 숨소리에 내 귀가 아플 지경인데 다리는 마비된 듯 둔하다. 상체를 끄덕대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나처럼, 아까 여자도 추격자를 떨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흉기가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쓰고말고. 손을 뒤로 돌려 등에 맨 배낭의 지퍼를 내리고, 묵직한 헤드랜턴을 꺼내 고무 밴드를 잡고 내려치고말고.

    하지만 정말로? 추격자가 멧돼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나한테. 나한테, 나한테!

     

    밤중에 저 건너에서 불을 휘휘 흔들고 그래서, 우리 애가 가서 데려온 적도 있어요. 우리 집 불빛을 빤히 보면서도 내려오는 길을 못 찾은 거라. 산은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돼요.”

    할머니는 물속에서 떼로 소용돌이치는 자잘한 사과를 두 손아귀 가득 건져 올린다.

    젊은 한 쌍인데, 남자가 아주 사색이드만. 자기가 산 잘 탄다고 큰 소리 치며 여자를 데려왔겠지. 여기 우리 집마저 없으면 어쩔 뻔했어?”

    할머니는 새로 물을 받고 있는 이쪽 다라이에 사과를, 그렇잖아도 따끔거리는 내 얼굴에는 힐난의 눈길을 던진다. 나는 가느다란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맞은 듯 붉은 줄이 산만하게 그어진 손으로 사과 한 알 집어 든다. 손보다야 덜하겠지만 얼굴도 산에서 나뭇가지에 많이 긁힌 듯싶다. 목 주위로는 긁힌 데가 덧나려는지 가려운 기미마저 있다.

    들어요. 입은 시원할 거야. 어차피 서리 안 맞고 익은 치들이라 보관도 안 되고, 다 떨어져버려.”

    할머니가 사과나무에 보내는 눈길 또한 못마땅하다. 사과는 껍질이 두껍고 단맛도 신맛도 적어 밍밍하다. 이런 열매일망정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수두룩이, 어찌 버티나 싶을 만큼 가지가 안 보이도록 그악스럽게 달고 있다. 막 터진 사과 폭죽, 또는 과도한 장식품 같다. 사과가 인정사정없는 기생 생물이고 나무는 가련한 숙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

    문을 연 음식점까지 걸어서 한 시간쯤이나 걸린다니 내게는 다른 수가 없다. 시골사람의 관념으로 한 시간이면 실제로는 훨씬 더 걸리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아니더라도, 일단 평상에서 엉덩이가 떨어질 것 같지가 않다.

    돈 받고 어떻게 그래요? 돈을 받지를 말든지, 대충 차리지를 말든지. 며늘애가 와야…….”

    언제 오시는데요?”

    어디쯤 왔는지 전화해 볼게요. 방은요?”

    방도 주시고요. 얼맙니까?”

    그래서 방부터 보라잖우.”

    자기 할 말만 하는 노인의 화법에 진이 빠진다. 할머니는 사과를 다 씻어 놓기 전에는 방을 보여줄 의향이 없으며, 방을 보여주기 전에는 어떤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속의 사과들을 휘젓느라고 수그린 파마머리가 염색할 때 지나 밑이 허옇다.

    나는 산속에서는 먹통이던 휴대전화에 언제부턴가 쌓인 메시지들을 건성으로 넘긴 다음 지도를 띄운다. 현재 위치는 국립공원이 끝나는 경계에 가깝다. 그러나 화면을 확대하면 온통 초록색에, 이 지점이 끝인 도로 표시가 실낱처럼 가느다랗다.

    화면을 줄여본다. 그 일이 벌어진 부근과 여기 사이에는 산봉우리가 몇 개나 있다. 그걸 다 뛰어넘으면서 나는 그런 줄도 몰랐다. 범죄자는 겁에 질려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평상과 마주한 봉우리는 기울어가는 햇살을 배경으로 벌써 침침하게 안색을 바꾸고 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여자가 치를 떨며 산을 내려갔으리라고, 마음 한 구석에서 내 목소리가 주장한다. 등산 경험이 적은 여자가 산을 종주한다든가 심지어 야간 산행을 할 계획은 아니었던 거라고, 거듭 장담한다. 헤드랜턴은 그저 비상용이었을 거라고. 그러나 침묵하는 다른 쪽은 확신한다. 여자도 나처럼 정신없이 도망치다 길을 잃었고, 아직도 저 산속을 헤매고 있음을.

    오늘따라 얘들이 볼 일 보러 나가 갖구…….”

    할머니의 핑계는 마찬가지다. 외출하여 없는 아들 내외를 할머니는 어지간히 써먹는다. 조립식 원룸은 썰렁하고 퀴퀴하다. 문 닫아 걸은 인근의 민박 겸 음식점들처럼, 이 집도 휴가철에만 손님이 들어 요즘은 휴업 중이었던 듯하다. “내가 얼른 걸레로 훔쳐 줄게요. 전기장판 켜 놓고 뜨끈뜨끈하게 주무셔.”

    손님의 피로도에 방값은 비례한다. 비수기에 후진 방이 턱없이 비싸다. 노인의 뿌연 눈동자에 욕심이 기름처럼 떠 있다.

    걸레질은 됐고요, 밥이나 빨리 해주세요.”

    나는 밥값으로 만 원 짜리 한 장 더 건넨다. 문턱에 걸터앉아 등산화 끈을 푸는데, 할머니의 슬리퍼 신은 두 발이 냉큼 다가든다.

    에그, 여기 많이 다쳤네!”

    허리를 굽히니 피가 몰리는 뒤통수의 상처에 할머니의 손가락질까지 느껴진다.

    미끄러져서 찧었어요.”

    뒷머리의 머리카락에 피떡이 뻑뻑하게 엉겨 있다.

    그래갖고 이부자리에 누울라구?”

    무엇보다 이부자리가 더럽혀질까봐 걱정인, 할머니의 본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발끈한다.

    씻을 겁니다! 안에 화장실 있다면서요?”

    할머니의 슬리퍼 안에서 덧버선 신은 두 발이 발가락을 오므린다.

    아니, 약 발라 줄라 그러지. 다친 덴 물 대지 마요.”

     

    장아찌에 밑반찬이 주종이나 된장찌개가 푸짐하고, 계란 프라이와 손바닥만 한 부추전도 상에 올라와 있다. 귀퉁이에 놓여 있는 오천 원은 거스름돈일 테니 할머니가 책정한 밥값은 오천 원이다. 이건 약간의 할인이다. 나는 한 공기 뚝딱 비우고 또 한 공기 청하면서 소주도 더한다. 할머니가 갖다 주는 소주에는 잔소리가 덧붙어 온다.

    반만 마셔. 머리통 깨놓고 뭐 잘했다고 술?”

    멧돼지가 전력으로 질주하면 시속 40km까지 낼 수 있다지만, 날렵하다는 말은 어느 사이트에도 없다. 하지만 나를 쫓던 짐승은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특히 새까맣고 기름을 바른 듯 반드르르하던 그것의 털색이 멧돼지와 다르다. 휴대전화에 뜨는 멧돼지 사진들은 털이 짙은 갈색이든지 회색이고 부스스하다. 검색창을 다시 띄워 이 지역의 야생동물을 검색하다 나는 어이가 없다. 크기가 멧돼지 이상이면서 날쌘 동물이라면 일제강점기에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아무르 표범이다. 게다가 이 또한 전형적인 표범 무늬로 내가 본 것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노을이 탄다. 지는 해가 산 너머에 질러버린 불길이 낮게 깔린 구름을 활활 태운다. 나는 소주를 붓는다. 유리문 밖에서는 할머니가 나물 말리는 채반들을 처마 밑으로 옮겨 놓느라고 오락가락한다. 심한 안짱다리로 배를 내밀고 어깨는 뒤로 잔뜩 젖힌 채 걷는다. 본인은 틀림없이 자식을 여덟이나 내리 낳은 탓이라 할 것이다. 양 뺨의 검버섯마저 그 탓이고, 나를 비롯해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미루는 건 너무 이기적인 탓이듯이.

    자식은커녕 세상에 뭐든 손톱만큼이라도 남길 생각이 없는 한 사내가 유리문에 흐릿하게 비친다. 사내의 가슴이 노을에 잘려 있다. 상하로 절단되어 새빨갛게 탄다. 나는 소주를 붓는다.

    내 뒤통수를 소독약으로 닦아내고 연고를 발라줬다고 해서, 소독약이 쓰리지도 않건만 후우 숨을 불어줬다고 해서, 나뭇가지에 심하게 긁혀 흡사 짐승의 발톱에 할퀴인 꼴인 목도 치료해줬다고 해서, 이럴 수는 없다. 할머니에게 이런 간섭까지 나는 허락한 적 없다. 한 번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눈에 걸리는 족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미주알고주알, 꼭 필요한 것을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때에 꼭 막는다.

    나는 직접 일어나 냉장고로 간다. 새 소주병을 꺼내 보란 듯이 바닥을 팔꿈치로 치고 마개를 비튼다. 할머니의 얼굴이 TV로 팩 돌아간다.

    알아서 하긴 개뿔!”

    금세 나를 향해 원위치이다. 그리고 입이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힌다. 모처럼의 손님 앞에서 옛 추억과 현안을 현란하게 엮어낸다. 물론 대개 자식들 얘기다. 머리통 깨진 손님이 술 더 못 먹게끔 막으려던 경각심은 온데간데없다.

    노을은 암회색 구름에 빠르게 진압되고 있다. 짓눌릴수록 열기는 응축된다. 사내의 가슴을 가로지른 열선에 과부하가 걸린다. 나는 소주를 붓는다.

    문을 밀자 찬바람과 함께 풀벌레 소리가 밀려든다. 형광등 불빛 아래 풀들이 손을 번쩍 치켜 올려 다양한 쇠방울을 흔들고, 불빛 너머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열렬하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과 산이 암흑으로 일체가 되어 시각은 소용이 없다. 천지가 쇠방울 소리로 들끓는다. 산촌의 밤은 폐가 시리도록 청량하며, 계절을 앞당겨 상당히 쌀쌀하다.

    내가 휘정대는지 저 봐, 저 봐하며 따라오는 할머니에게 팔을 내젓는다. 어둠에 지워져 버린 산이 거기 과연 아직도 있긴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데, 휘휘 흔드는 불빛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구조를 요청하는 어떤 신호도 없다. 여자에게 비상용 헤드랜턴이 없으므로 무슨 일을 당한들 구조를 요청할 수가 없다. 내 심장에 자리 잡고 지속적으로 먹어 들어가는 불씨가 소주 두 병으로 꺼질 리도 없다.

     

    지갑은? 어젯밤 술김에도 문고리의 잠금 꼭지를 눌러 놓았건만, 방금 누군가 방에서 나갔다. 얼마나 머물렀는지 모른다. 비상 열쇠를 가진 주인집 식구일 것이다. 내가 잠든 후에 귀가한 할머니의 아들일까?

    빗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 누워 있다. 엊저녁 노을이 짙더니 비가 온다. 조립식 건물의 얄팍한 지붕이 굵직한 빗줄기에 흠씬 두드려 맞고 있다. 벽에 걸린 재킷 속에 있어야 할 지갑으로 내 신경은 꽂히는데, 따끈한 방바닥에 고무처럼 눌어붙은 전신의 근육이 무시한다.

    들릴 듯 말 듯, 잡음도 끈질기다. 방에서 나간 누군가가 가버리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잊을 만하면 꿈적대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아무리 모른 척 하려고 해도 사라져 주지를 않는다. 무엇을 바라는가. 어둠에 묻혀 검은 누군가가 빗속에서 이 방문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장면이 그려진다.

    나는 팔꿈치로 몸을 질질 끌면서 기어가 문을 열어젖힌다. 문이 외벽에 세게 부딪친다. 건물 옆구리에 주황색 불빛이 둥그렇게 번져 있다.

    일일구 부를라 그랬어! 밤새 게우고 헛소리 하고…….”

    불빛에서 할머니가 일어선다. 덧입은 스웨터에 고루 얹힌 빗방울이 불빛에 비늘처럼 반짝인다.

    헛소리를 뭐라고요?”

    알아먹을 수 있으면 헛소리인가? 안되겠다 싶어 내가 어찌나 불을 땠는지, 오늘 온종일 뜨끈할 거야.”

    나로서는 조립식 건물의 옆구리에 있는 줄도 몰랐던 아궁이에서 불길이 넘친다.

    전 가야죠.”

    나는 일어나 재킷을 챙긴다. 비 때문에 컴컴하지만 날은 샜을 시각이다.

    문턱을 채 넘지 못하고 나는 고꾸라져 또 토한다. 아궁이의 불빛 말고는 암흑으로 꽉 차 있다. 길도 없고 동서남북도 없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도 암흑, 아래서 넘실대는 것도 암흑이다. 비는 먹물이다. 산은 녹아서 차디찬 곤죽이 되어 버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할 거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이틀째 줄기차게 내린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들이 휴대전화에 쌓인다. 배터리가 다 된 전화기는 기어이 깜박이다 꺼져 버린다. 이제 그만, 이 집의 충전기들은 내 전화기와 맞지 않는다. 그닥 아쉽지도 않다.

    아드님 아직 안 왔어요? 며느님하고.”

    며칠 걸려.”

    더 이상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금방 돌아올 것처럼 거짓말 하지 않는다. 나 같은 약골에게는 경계 해제다.

    그런데 혹시, 할머니가 내게 솔직한 것은 할머니도 나로부터 어떤 솔직한 말을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잠들면 한다면 헛소리는 정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꽥꽥일까?

    걔네들이 안 해본 게 없어.”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불임인 막내아들 내외가 10년 넘게 시도해왔다는 시술, 처방, 비법을 읊는다. 이번에 도시 큰 병원으로 정자 채취를 하러 갔다면 불임이 아들 탓일 수도 있건만, 할머니의 비난은 결혼 초에 잠시 직장 생활을 고집했다는 며느리 쪽으로 약간 치우친다. 딸들의 경우 잘못한 쪽이 늘 사위인 것처럼.

    손자손녀가 열 몇은 될 텐데도 한 아들에게 후손 없음이 애통하여, 할머니의 턱과 얇은 입술이 떨린다. 콧물이 흐르고 눈물은 주름을 타고 번진다. 비는 내린다. 있는 것 없는 것 닥닥 긁어, 남의 부스러기까지 잽싸게 끌어다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고 말라비틀어진 어미가 운다. 종족의 보존 의지에 꿰뚫린 왜소한 일 개체, 본능의 화신이 운다. 하늘도 주구장창 운다. 나흘째 밤이 깊어간다.

    조립식 원룸은 비에 잠기고, 나는 빗소리에 잠긴다. 빗줄기가 얄팍한 지붕을 타악기 삼아 장기 공연 중이다. 연주는 한순간도 끊임이 없으나 반복됨도 없다. 한없이 다채롭다.

    할머니가 죽 끓여 들여놔 주지, 땔감을 아끼지 않고 불도 팍팍 때 주지,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할머니는 아궁이 불길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의 효과를 자랑하던 나머지, 첫날 내게 권했던 전기장판의 무시무시한 전자파를 고발하고 말았다. 환자의 병이 술병 아닌 제대로 된 병이라고 진단을 확정한 바 있다. 환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현금이 모자라다니 마뜩찮지만 신용카드도 오케이, 일일구 타령만 빼면 할머니는 완벽하다.

    할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들 내외가 되도록 늦게 돌아오기를 내심 바란다. 낯선 이들이 끼어들면 아무래도 어색해질 것 같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이라도 할머니를 독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생각하기가 싫다. 어디로 갈지 등등.

     

    왔구나.

    많이 젖었네. 미안해, 이 비에 산속에서 얼마나 떨었겠니. 배고프고 힘들었겠니.

    용케 찾아와서 다행이야.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 얼마나 걸리든, 언제까지든.

    내가 얘기했지. 너한테서는 송편 냄새가 난다고. 떡을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송편은 잘 먹잖아. 생 솔잎 말고 김에 충분히 쪄진 솔잎에서 나는 부드러운 향기 말이야. 너의 체취가 그래. 본인은 몰라. 겨드랑이에서 제일 짙어. 지금도 방에 은은히 감돌아.

    너는 잘못한 거 없어. 난 괜찮아. 알잖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한테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걸. 언제나 너는 내게 줄 상처를 자신에게로 되돌려, 그것도 몇 배로 부풀려서 받고야 마니까.

     

    등 뒤에서 여자가 운다. 머리카락의 빗물로 적신 베개를 눈물로 또 적신다. 나는 베개로 전해오는 눈물의 미지근한 온기에 뺨을 맡긴다. 내가 돌아보면 여자는 억지로 울음을 삼킬 것이다. 늘 그렇듯이 여자는 소리죽여 혼자 운다.

    안 그래도 되는데. 행여 내가 욕먹을까봐 남들 앞에서 웃음 지으면서 속으로 우는 것도 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자기가 어째야 하는지, 꿈속에서마저 운다는 걸 아는데.

     

    하다하다 지쳐서, 나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떠나려고 했던 거니? 그래, 네가 그렇다고 할 리가 없지.

    떠나놓고는 차마 나를 혼자 두고 가버릴 수가 없어서, 내 곁을 내내 맴돌았던 거니? 그래, 네가 그렇다고 할 리가 없지.

    있잖아, 그런 너 말고, 나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너 말고, 넌 어떤 사람이니?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너. 난 이제 알고 싶어. 이제야 비로소, 너무 늦게. 넌 누구니?

     

    대답 대신 여자가 불규칙하게 뱉어내는 뜨거운 입김에 내 목덜미가 뜨끈하다. 여자는 목소리와 울음소리 둘 다 억누르느라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몸이 격하게 떨려 나까지 떨린다.

    내가 웬만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기만 하다면 자기도 자신을 찾았을 거라고 여자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끝내 내게 솔직하지 않고,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제껏 나를 위해 살아온 자기 삶이 통째로 무의미하다는 걸 인정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도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을 때마다 여자는 다짜고짜 나를 믿는다고 맹세하곤 했다. 신도 아닌 나를 무조건 믿는다고!

     

    그래, 그만할게. 더 이상 너를 괴롭히지 않을게. 그거 알아? 나도 네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어. 네가 나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두려워했듯이. 우리 사랑하지 말자. 너를 사랑하는 나, 나를 사랑하는 너, 그런 거 그만하자. 서로 참 힘들었잖아. 그러니까 그만하자.

    그냥 함께 있자. 이렇게 둘이 꼭 붙어 있자. 네가 밥을 먹으면 내 배가 부르고, 네가 놀라면 내 심장이 뛰고, 네가 졸리면 내가 잠이 들도록. 서로 사랑할 필요조차 없도록.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다시는 서로 찾을 일 없게끔 둘이 칭칭 감겨 있자. 증식의 반대 방향으로 소급하여 너와 내가 도로 하나가 될 때까지. 또 하나 된 우리의 최초의 세포가 깜빡 존재 이전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그때까지만.

     

    나는 여자에게로 돌아눕는다. 바로 일어난다.

    숙박료로 선불한 금액이 남았어도 지갑에 남은 지폐를 털어 베개 옆에 놓는다. 소리 안 나게 문을 열고 나와 닫는다. 밤새 나를 간호하다 웅크려 잠이 들어버린 할머니는 깨지 못한다.

     

    재킷에 붙은 모자를 머리에 덮어쓰고 빗속을 걷는다.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아온다. 일주일 만인가, 바깥 공기가 달다. 일주일이나 누워있었으니 몸은 조금 무겁다. 허리띠를 훨씬 조여야 했으나 딴 데 군살이 붙어버린 게다. 흙길에 얽히고설킨 맑은 도랑들을 피하지 못하고 자꾸 디딘다.

    산안개가 셀 수 없이 피어올라 산봉우리의 흰 구름과 합쳐진다. 구름을 떠받치는 것도 같고, 악착스레 붙드는 것 같기도 하다. 길은 봉우리를 왼쪽으로 크게 감돈다. 깎아지른 벼랑에 갈지자형으로 설치된 나무계단은 지름길일 테다. 벼랑을 거칠게 꿰매 놓은 것처럼 보인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 놓아야 하나 싶다. 줄에 매달려 공사했을 인부들의 담력만큼은 부럽다.

    뒤를 돌아본다. 길가의 나무들이 나뭇잎을 까딱거리며 빗물을 떨군다. 풀잎도 끄트머리 구부려 제 몸에 고인 빗물을 쏟고 다시 받기 시작한다. 이쪽도 길, 하산하는 길이다. 한 시간쯤 걸어 내려가면 버젓한 음식점이 나오고 버스도 다닐 것이다.

    텅 빈 길에 대고 무심결에 손을 흔든다.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게 섭섭해서 민박집 할머니가 길까지 나오리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헛웃음 치며 손을 내린다. 봉우리 쪽으로 내처 걷는다.

    첨벙 웅덩이에 발을 빠뜨리고 폴짝 뛰다 비틀댄다. 나무둥치를 짚은 김에 손에 힘주어 몸을 앞으로 민다. 일주일 안 썼다고 다리가 맥없이 흐느적거린다. 질척이는 길 또한 점막처럼 벗겨지며 발을 미끄러뜨린다. 뒤를 돌아본다.

    마음을 바꾸어 벼랑의 나무 계단을 디딘다. 사선으로 엇갈린 계단참에서 돌아서기를 거듭하면서 단숨에 계단을 반 너머 올라간다. 저 아래 빗줄기에 납작하게 눌린 할머니의 민박집이 보인다. 집과 벼랑 사이를 나는 여러 차례 훑어본다. 난간 너머로 고개 내밀어 지나온 계단도 살핀다. 가쁜 숨을 겨우 돌리지만 기분은 개운해지지 않는다.

    계단 꼭대기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려다보고 벼랑 위로 올라선다. 몇 걸음 걷다 멈춘다. 길가 저 안쪽에 버려진 헤드랜턴이 비를 맞고 있다. 풀숲으로 들어가 등산화 끝으로 뒤집어 본다. 엎어져 있던 렌즈 안쪽에 희미한 핏자국이 남아 있다.

    3개의 행정구역에 걸친 넓디넓은 국립공원에서 가장 오고 싶지 않은 곳에 나는 와 있다. 그런데 그 장소는 민박집에서 이렇게 가까울 리가 없다. 몇 개의 봉우리 너머에 있어야만 한다. 방향감각이 상실된다. 땅의 네 귀퉁이가 들려서 맞물린다.

    수풀이 갈라진다. 미행자가 자신을 드러낸다. 송아지만 한 검정개다. 연분홍으로 살짝 벌어진 입 말고는 온통 꺼멓다. 입 위에 찍힌 두 점의 빛이 색깔로는 털과 구분되지 않는 까만 눈이다.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한 쌍의 번개 마크가 그려진다.

    일주일 전에 내 등 뒤에서 휙 휙 날아다니던 그 사나운 기세가 아니다. 개는 집을 나가 싸돌아다니다가 해가 져서 돌아오듯 터덜터덜 다가온다. 내게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젖혀지고 빗방울은 눈에 떨어져 눈꺼풀이 좁혀진다. 두 점의 빛이 비통하게 오므라든다.

    개는 멈춰 선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개는 더 이상 나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고, 나를 위협하여 쫓아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쪽 눈은 거의 감고 다른 쪽 눈은 가늘게 간신히 뜬 채 개는 기다린다. 검고 긴 털이 비에 흠뻑 젖어 생미역을 덮어쓴 꼴이다. 등줄기에 난 가르마만은 푸르도록 희다.

    이제는 잡을 수 있다. 보내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손만 뻗으면.

    나는 뒤를 돌아본다. 모자 끄트머리에 고여 있던 빗물이 눈앞으로 주렴처럼 떨어진다. 벼랑 끝에 걸쳐진 회색 하늘이 비에 녹아내리고 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한 팔로 감싸고 와들와들 떤다.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할 거야!”

    아버지는 남은 손에 쥐고 얼굴에 문지르던 어머니의 손을 내 손으로 넘긴다. 미지근하다.

    남자 간호조무사 두 명이 어머니의 침대를 앞뒤에서 밀고 당기며 문으로 향한다. 이모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잡으려는 시늉을 한다. 침대가 문을 다 나가도록 아버지는 의자에 앉은 채로 쳐다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쫓아간다.

    처형은 짐 좀 챙겨주세요.”

    문간에서 이모를 만류한다. 나는 아버지를 뒤따른다.

    두 대씩 마주선 네 대의 엘리베이터를 지나간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병실에서 내다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복도 끝에서 왼쪽으로 꺾여 깊숙이 또 하나의 엘리베이터가 숨어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어머니의 침대를 그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아버지와 나는 타지 못한다.

    복도를 되돌아온다. 아버지는 울어서 불그레해진 얼굴로 화난 듯이 간호데스크에 뭔가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무례했을까 봐 굽신 하며 물러선다.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을 쳐다보며 나란히 서 있다. 한 간호사가 아버지를 불러 서류에다 볼펜으로 그어가면서 길게 설명한다.

    하아…… 난 원무과에 갔다 와야 하니까 넌 이모랑 있어.”

    아버지는 건네받은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말한다. 얼굴을 들고는 머릿속에 떠도는 너무나 많은 할 일들 속에서 방금 스쳐간 하나를 찾느라고 눈길이 공중을 훑는다.

    네 담임선생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더라? 학교에는 알려야지.”

    이번에는 당혹감에 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제가 전화할 게요.”

    학교에 전화할 필요 없지만 나는 답한다.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도르르 굴러 내린다.

    그럴래?”

    아버지는 고개 돌리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아이고, 그래!”

    어머니의 핸드백을 든 이모가 어느새 옆에 와 있다 내 팔을 잡아 흔들며 울부짖는다.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아버지는 이모가 잦아들자 나를 창 쪽으로 끈다.

    네 엄마가 가고 싶어서 갔겠니? 엄마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최선을 다했어.”

    여러 번이나 말해놓고 처음 고백한 것처럼 머쓱하게 아버지는 돌아선다.

    창밖에서 도시가 잠을 깬다. 소음과 함께 매연이 부풀어 오른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려고 일주일째 보는 아침 풍경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예상보다 너무 빠른데다 급작스럽게 정신을 잃지만 않았다면, 아버지에게 나의 자퇴를 귀띔했을 것이다. 내가 방에서 나오지 않은지가 반년이 아니라 2년이 다 돼간다는 사실도, 1년 정도로 줄여서 얘기해줬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장 자신에게 닥칠 일조차 몰랐다. 그러면서 아들의 먼 장래를 위해 그토록 안달복달했다.

    일곱 번째 최후의 날이 밝아 온다. 언젠가부터 내게는 날마다 최후의 날이었다. 내 방의 창문 밖 전체가 사고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최후의 날을 늘리려고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고, 숫자는 이것으로 끝났다. 최후마저 없는 혼란 속으로 나는 추락했다.

    매캐한 냄새를 맡는다. 찢어지는 비명 소리를 듣는다.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이미 끝난 문명의 잔해에서 나는 발생한다.

     

    , , , 배낭 옆구리에 꽂힌 두 개의 등산지팡이가 서로 부딪친다. 헐렁한 배낭은 아래위로, 어깨에 닿은 머리는 좌우로 출렁인다. 발바닥의 진동이 머리끝까지 전달된다. 여자는 걸어 들어간다. 자신이 나왔던 땅의 자궁 속으로.

     

     

     

     

     

     

     

     

     

     

    오수연 1964년 서울 생.  1994현대문학장편공모 등단작품집 빈집연작소설 황금지붕장편 돌의 말.  한국일보문학상거창평화인권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신동엽창작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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