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창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 며느리 망명기_김원우
  • 며느리 망명기

     

     

                                               김원우

     

    한 국어사전에 따르면 노년기를 초로기와 노쇠기로 나누고, 전자는 45세에서 50세까지로, 후자는 65세에서 75세까지로 각각 못 박고 있다. 한국동란을 기점으로 잡더라도 그새 평균수명이 거의 20년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초로기를 60세에서 65세까지로, 노쇠기를 75세부터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전은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일단 따지지 말고 믿어라고 강변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세우는 책인 만큼 승복하지 않을 수 없긴 하다. 설마 상당한 의학적 근거도 없이 그처럼 갱년기와 노년기의 경계를 나잇살로 딱 부러지게 갈라놓았을 리는 만무할 테니 말이다. 그렇긴 해도 모든 사전은 믿을 수밖에 없는 지식의 기초자료에 불과하지만, 대개의 지식이 한시적으로만 통설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무작정 그 정의나 해설을 신봉했다가는 트레바리나 헛똑똑이로 따돌릴지도 모른다. 요컨대 사전이든 지식이든 참고용으로 반쯤만 믿는 체하며 살아가는 게 덜 복대긴다는 소리다. 물론 나잇살이 말하는 대로 자기 주관을 바로 세우고 세상과 사람을 엄정히 직시해야 낭패를 다소 적게 겪을 테고, 남보다 딱 한 걸음쯤 더 다가서서 샅샅이 훑어봐야 그나마 또렷한 세계상을 지닐 수 있을 것 아닌가. 어차피 누가 사람을, 더불어 세상을 바로 알고 있느냐는 그 줄자의 길이에 따라서 각자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방도가 나서긴 할 테고.

    규정대로 예순다섯 살에 정년퇴직한 명색 접장출신의 장 영감이 최근에 겪은 사례도 예의 그 사전 같은 통설과는 어긋나는 그런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공해란 유행어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나서 어느새 미세먼지가 자욱하더니 그것의 수치를 엉터리 일기예보보다 더 섬겨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알조 아닌가. 장 영감도 어쩔 수 없이 주거지 인근의 야산 자드락길을 꼬박꼬박 산책하던 일과를 미련 많게접고, 아파트 단지의 고샅에 오뚝하니 눌어붙어 있는 한 헬스 클럽을 찾게 된 것은 만부득이한 생활의 일대 변혁이었다. 마누라쟁이가 기관지를 공연히 혹사시키는 매연을 사서 마시지 말고, 실내의 청정공기속에서 한 시간 이상씩 걷기운동을 하라며,‘계산하기도 편하게세 달에 99천원짜리 회원권을 끊어주었으니, 그것을 썩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전대로라면 역시 노쇠기에 막 접어들었지 싶은 김 감사를 만난 곳도 바로 그 헬스클럽에서였다. 헬스클럽이라고 해봤자 지하 1층을 독점하고 있는 여느 대중목욕탕만 해서 회원들의 운동복 수납장이 울을 친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팔며, 그 너머에 운동기구들이 늘려 있고 한쪽 구석에는 샤워 시설을 갖춘 규모였다. 어깨와 가슴팍이 곰처럼 두꺼운 장년의 실장하나가 휴게실을 지키는 관리인이었다. 박 실장은 4층짜리 그 장방형 상가건물의 공동주인 중 여자 쪽 인척으로 헬스클럽을 헐값에 세 얻어 운영하고 있는데, 김 감사 같은 회원들에게 휴게실에서 깡통맥주와 봉지 땅콩과 반건조오징어 따위를 파는 재미도 제법 짭짤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2층의 한쪽 구석에 개설한 여성 전문 요가 강습소의 전담 강사 겸 소장이 박 실장의 부인이고, 그쪽 오후반에 등록한 장 영감 마누라쟁이에게 부부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지하의 남성 전용 헬스클럽회원권을 강매하는 것은 여러모로 그럴듯한 구도였다.

    낯이 익자 김 감사는 자연스럽게 장 영감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해서, 그 흔한 사장이란 지칭어를 남발하지 않는 것만도 오감했다. 눈씨야 그렇거나 말거나 이마가 정수리까지 훤하게 터를 넓혀가고, 뒷머리는 늘 더부룩하니 더펄거리는가 하면 당나귀처럼 밋밋하니 기다란 코가 인중을 덮을 듯이 내리뻗어 있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외양이, 저토록 평범한 얼굴로 무엇을 감사할까 싶어서 참으로 어설프고 덜 짜이는 구색이라는 게 장 영감의 소회였다. 그러나 하루 걸러 한 번씩 헬스클럽에 들리는 장 영감에 비해 김 감사는 강단도 좋게 매일 출근하며, 그것도 주로 오후 다섯 시쯤서부터 한두 시간씩 아주 다부지게 몸을 만든다고 했다. 그토록 착실히 만든 몸으로 휴게실의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주시하면서 캔 맥주를 하나나 두 개씩 반드시 까는일정도 빠뜨리지 않는다니까, 보기에 따라서는 과연 감사라는 생업과도 엔간히 들어맞는 구성이다 싶었다. 장 영감은 은근히 궁금해서 박 실장에게, 어디서 감사를 본다는가요 라고 물어보았더니 지체없이, 한때 감사를 살았다는가봐요, 여의도에 있는 무슨 개발공사라던가, 정부가 물주고 자기가 낙하산 타고 내려갔을 때는 웬 건달 앞잡이 같은 정치인이 사장 자리를 차고 앉아 있었다고, 그 멍청하니 시끄러운 사장이 그렇게나 꼴 보기 싫어서 저 인간보다는 한 살이라도 늦게 죽어야지 하고 맹세하며 살았는데 최근에사 그 소원을 풀었다고, 그 말을 하더니 공연히 흥분해서 깡통을 다섯 개나 까대요 라고 했다.

    하루는 마침 수요일이라서 마누라쟁이가 밤예배를 간답시고 일찌감치 찐 햇감자와 미숫가루와 토마토를 저녁으로 차려 주길래 그 음식 같잖은 건강식을 개밥 먹듯이 후딱 때우고 나서 장 영감은 서둘러 슬리퍼를 끌고 헬스클럽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여름 들머리여서 그때는 아직 해도 덜 떨어진 저녁 여섯 시쯤이었다. 역시나 휴게실에서는 김 감사가 또래의 회원 두어 사람과 함께 캔 맥주를 까고있다가 장 영감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어서 땀부터 빼시고 나서 한잔 하십시다 라고 붙임성 좋게 말을 붙였다.

    장 영감은 좋은 낯으로 어서 많이 드시라는 손짓을 해보이고는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플라스틱 주렴을 걷고 빨려들다시피 체력단련 무풍지대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한동안 러닝머신 위에서 뛰다가 걷다가 하기를 20, 자전거 페달 밟기를 20, 팔다리와 몸통과 무릎을 한껏 흔들고 구부렸다 펴기를 20분 하느라고 낑낑거렸다. 땀이 팔뚝과 가슴팍으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국어사전의 표제어 노쇠기는 아무래도 수정이 불가피하지 싶었다. 그러는 중에도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김 감사 일행의 생중계방송이 속속 귓전을 울려대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술이라도 안 마시면 너무 골치 아파,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니까, 맛없는 술이라도 땡길 때 마시며 살자고 운동하고 몸을 만든다니까, 꼴 보기 싫은 놈들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더니, 그래서 운동 안하고는 못 배긴다더니 그 말은 왜 빠뜨려, 저것 봐 저게 무슨 지랄이야, 새파라니 젊은 놈이 지 애비뻘 동무를 똘마니들처럼 둘러세워 놓고 받아쓰기 시키고 있잖아, 저런 쓰레기 같은 꼴만 안 보면 무슨 걱정, 비싼 술을 왜 마셔, 남아 있는 시간도 많찮은데, 받아쓰기하는 저 불쌍한 것들이야 무슨 죄가 있냐고, 다 처자식 멕여 살리고 안 다치게 하려고 저러는 거지, 저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저게 보기 좋다고? 에라이 똥 같은 놈들, 종북? 친북? 와 친김이라고 하지, 북이야 방위잖아,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아도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저렇게나 처닫아놓고서 우짜겠다는 거야, 한때 흥선대원군을 친이대감이라고 불렀다니까 친김대감이 어때서, 어감도 나쁘지 않구마는 뭐.

    장 영감의 머릿속에는 뭔가가 얼른거렸다. 우리의 세속계란 이처럼, 굳이 김 감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알면 알수록 너무 재미없었다. 연방 하품이 나올 정도로 따분해지는 엉터리 영화가 멀리 있지도 않았다. 그것도 이야기조차 제대로 못 꾸려가는 방화야 말할 잡이도 아니니까 접어둔다 하더라도, 아무리 맑은 정신으로 봐도 장면마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데도 지 잘난 멋에 사는 떼거리 관객이 수백만 명씩이나 꼬여든다는 그런 명화에 가까웠다. 도대체 얼토당토않는 장면을 한사코 좋다고 세뇌시키는가 하면 기어히 우러러보는 대상으로 삼으라니. 그런 물신숭배족을 양산하는 제도와 매체를 남이나 북에서 가려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바닥에서 자란 머리들의 장래였다. 적어도 말이 되는 장면을 만들려면 더러 멀리서나 가까이서, 또 가끔씩은 위에서나 아래서 찍어야 할 텐데도 우리는 당최 그 머리를 못 굴려서 탈이었다. 고집스럽게도 정면에서만 세상과 사람을 쳐다본단 말이야. ‘고집은 결국 달리 생각할 머리가 없다는 말이고, 굴리지도 않는 머리를 그냥 시늉으로 목덜미 위에 얹고 허수아비처럼 건들거리고 있는 꼴이니 두뇌가 나쁜 종족이란 말이지 뭔가. ‘고집이 가당찮다는 말이 돌대가리다의 완곡어법이라면 해학기조차 덧댈 줄 모르는 푼수의 말버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뒤이어 텔레비전 화면에는 고위 관료들이 줄느런히 앉아서 무슨 현안 때문에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그 씩둑꺽둑이 가관이었다. 그중에서도 김 감사의 소견을 간추려내기는 그 어투나 음색을 무시하더라도 아주 쉬웠다.

    쟤들 아주 무서워요. 인간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에 가깝다고 할까. 행시 출신들은 원래 인정사정도 없이 오로지 승진에만 혈안이 되어 옆 눈 가리개한 말처럼 헉헉거리며 앞만 보고 뛰어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똥자루 같은 자만과 가소로운 아망으로 똘똘 뭉쳐진 별종입니다. 서민, 대중, 민초, 자영업자, 쟤들 눈에 그런 거 안 보입니다. 웃기지 말아 하고 속으로 돌아앉아버리고 말아요. 희한하게도 그렇게 머리가 돌아간다니까. 쟤들이 한번 안 된다면 법도 꼼짝 못합니다. 오로지 지들 승진시키는 상관 하나한테만 죽는 시늉을 할까, 나머지는 청와대 주인조차도 잘 모르신다고, 위법일 수 있다고 곱상하게 대듭니다. 같이 일하다 보면 이 인간이 도대체 똑똑한 건지 꼴통인지 분간을 못 하겠어서 내 머리만 쥐어뜯다가 말아버리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시험을 잘 치는 머리가 따로 있다는 거야 잘 알지요. 그래도 그렇지 지 상관 앞에서는 그렇게나 비단 같은 것이 일을 시킬 때 보면 말귀도 못 알아듣는 바위가 되었다가 어느새 남이야 아프거나 말거나 허벅지서껀 아무데나 콕콕 찔러대는 송곳으로 돌변합니다.

    그쪽 세상도 알만했다. 그 많다는 규제를 푼다 만다 한 지가 언제부터인데 아직도 국회의원들의 생떼거리 탓만 둘러대고 있으니 핑계로만 먹고 사는 관료들의 반지빠른 허우대야 누가 모를까. 쉽게 말해서 이 땅의 모든 위정자들은 억지스러운 고집불통으로서 착한 행인들의 길을 막고 서서 그 생계를 훼방 놓는 불량배라는 소리다. 굳이 행시 출신자들만 매도할 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마나 김 감사의 얼굴은 그 모나지 않는 형용만큼이나 수월하니 분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행시 출신은 아닌 공무원으로, 낙하산을 탔다니까 어느 부서의 총무과장 정도로 관계에서 물러난 양반이다. 연금 수령자인 모양이니 술값 따위야 늘 꼬불쳐두고 살아갈 테고 말이다. 그의 세태관도 거의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셈이다. 따라서 신문이 영 일없이 지껄이는 그 상식보다는 한 걸음쯤 앞선 듯 싶지만 몇 번 더 마주치다 보면 이내 그 바닥이 훤히 비치고도 남을 테지.

    그런데 함께 한잔하자던 그날, 장 영감이 휴게실로 나오니 김 감사는커녕 아무도 없이 말간 고요만이 훤한 실내에서 멀뚱거렸다. 샤워로 땀을 씻어내는 그 사이에 몸을 만든술꾼들이 내빼버린 성싶었다. 아무리 빈말이라도 그렇지, 술을 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놓고 양해도 없이 파투를 내다니, 말을 저렇게나 헤프게 하는 작자가 무슨 감사를 제대로 할까. 열시쯤에나 귀가할 마누라쟁이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기에는 딱 좋은 날인데. 아쉬웠다. 역시 공무원 출신은 예전 버릇을 아직도 못 뜯어고치고 서민들의 일상을 제멋대로 헝클어뜨리는 재주가 비상했다. 직업근성이 원래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시시각각 바꿔버린다니까 유독 행시 출신자들만 사람별로 아부도 하고 호통도 치는 이중인격자들일까.

    그럭저럭 3주쯤 지나자 헬스클럽 출입에도 꾀가 나기 시작했으나, 무엇이든 낭비라면 딱 질색인 성격답게 장 영감은, 이제부터는 돈이 아까워서 나간다, 동기부여에 돈만큼 요긴한 게 어딨어, 돈이 끼어들지 않으면 만사가 삐꺽거리고 말지 하는 셈속으로 청정공기속에서 소처럼 느릿느릿 어정거렸다. 그런 구실 찾기도 운동보다는 돈이 만들어준 낙이라면 낙이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자전거 페달이나 슬슬 밟아야지 하며 딱딱한 안장 위에 올라앉았더니 이내 다른 회원들이 저쪽 러닝머신 코너에서 다가와 옆자리를 메웠다. 뜻밖에도, 장 선생님, 아직 정정하십니다 어쩌구 말을 붙인 양반은 역시 김 감사였다. 또 다른 회원은 전철 무임승차권인 소위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으려면 아직 수삼년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전대로라면 초로기나 노쇠기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소속불명의 젊은 오빠였다. 그래도 불특정 다수의 여윳돈을 모아 투자할 데를 찾는다는, ‘펀드 매니저란 말 들어보셨지요, 한때 그거 했어요라던 세칭 제2금융권 출신답게 테두리 없는 두툼한 안경알이 제법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서 일단 신뢰감은 가는 사람이었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는 지 주검조차 장기간이나 저승과 이승에 반반씩 걸쳐놓는 조희팔 같은 멀쩡한 사기꾼이 지천이라니까 근거 많은불안과 불만을 차곡차곡 내면화시키고 있는 장 영감에게는 누구라도 일단 요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세 노인이 나란히 안장 위에 앉아서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아대는 장면이 딴에는 어색하다 싶은지 김 감사가 불쑥, 장 선생님은 약주를 안 좋아하시나 봐요 라고 물었다.

    한때는 발렌타인 17년산 위스키를 맥주잔에다 알 박아돌리는 폭탄주를 열두 잔도 마신 모주꾼이었으나 정년을 이태 앞두고 에 큰 탈이 나서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복강경 대수술을 받은 후부터 술은 삼가고 있다고, 최근에야 겨우 막걸리를 한 통씩 사다 집에서 김치전을 안주로 마신다고 이실직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명인사들은 간경화다, 신장암이다, 뇌졸중이다로 지 병자랑을 지상紙上에다 잘도 떠벌리던데, 그것도 무슨 특종이랍시고 뽑아대는 기자들이나 조명날 게 뻔한 제 탈난 몸까지 팔아대는당사자들이 한 통속으로 꽹꽈리보다 더 시끄러운 수선쟁이 같아서 장 영감은 제 일신에 관해서는 함구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터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한 동네에 사는 노익장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도 감지덕지라는 투로 평소의 소신을 밝히는데 주저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내키면 약주랍시고 막걸리나 한 통 사다 찔끔거리는 게 고작이지요. 한때는 술맛이 그렇게나 좋더니만 좋은 시절 다 지나갔나 봐요. 게다가 혼자서 술을 따를 때마다 술맛이 싹 다 떨어지는 것은 그 막걸리 통이 플라스틱이라서 말이지요, 세상이 달라졌으니 주전자에 퍼 담을 수는 없다 쳐도 병에다 모양내서 팔면 오죽 좋으련만, 지가 공들여 만든 물건을 그렇게나 하치로 굴리니, 머리가 너무 나쁜 거 아닌가 모르지요. 남들은 기껏 포도주를 와인이라며 몇 년씩 묵혔다가 온갖 수선을 다 떨어대는 걸 뻔히 보면서 말이지요. 세상에 지 물건을 삼류로 포장하는 멍청이들은 우리밖에 없을 걸요.”

    양쪽 두 노인들이, 어 이것 봐라, 꽤 깔끔한 통념 비판자에다 상식 파괴자아닌가라는 듯 장 영감을 힐끔 쳐다보면서 자전거 페달의 회전 속도를 늦추었다. 이윽고 푼돈은 안중에도 없을 투자 전문가가 대뜸, 막걸리야 뭐 말 그대로 막술이지요, 이문도 워낙 박하고, 슈퍼에서 요즘 그거 한 통에 얼마 받나요, 천원쯤 아닌가요, 병에다 담았다가 공병을 회수해 본들 세척비도 꽤 들 걸요, 그런 걸 다 감안하다 보니 원가는 엄청 뛰고, 출고가나 판매가를 차츰차츰 끌어올렸다가는 소주나 맥주한테 즉각 치일 거고, 이래저래 승산이 없지요, 전통이든 막걸리든 수요가 안 따라주면 사정없이 도태의 길로 곤두박질칠 수밖에요 라고 했다.

    요즘에는 다들 말도 잘 둘러대고, 그 말마다 앞뒤가 안 맞는 줄도 모르면서 술술 씨부렁거리는 일가견들이 흔하지만, 용기와 포장을 개선해서 술맛이 당기도록 해보라는 주문을 따돌려 놓고 원가와 수요의 득세로 전통주 따위야 죽어도 싸다고 조지는 논조였다. 좀 이상한 억지 아닌가, 소주나 맥주가 막걸리보다 반드시 더 비싸야 한다는 발상도 어느 한쪽만 편드는 불공정 거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소위 국민주대중주는 만들기 나름 아닐까. 아무래도 큰돈만 만졌던 사람들은 말의 갈래잡기에서도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고질이 속속들이 배여 있는 듯했다.

    김 감사가 자전거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페달을 느직히 밟아대며 말했다.

    하기야 막걸리 한 통이란 말도 한참 이상하네, 플라스틱이니 한 팩이라기도 우습고, 병은 아니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주세 많이 거둘라고 소주 일색의 세상을 만든 것도 엔간히 속없는 짓이었지. 우리가 이렇게 민해 빠졌다고, 너무 재미없잖아, 요즘 말로하면 튀는 개성도 안 보이고.”

    주세 때문에 막걸리를 푸대접했다고? 이건 또 무슨 발상인가 하고 장 영감은 자신의 아주 투미한 머리로 찬찬히 따져 보려는데, 남의 큰돈만 노리는 젊은 오빠, 감사님은 술 좀 덜 마셔야 해요, 자식 잃었다 뭐다 해대며 소주를 네 병씩 까면 그 연세에 골병 안 들고 배깁니까, 술 앞에 장사 없습니다, 색 앞에는 비아그라 덕분으로 하룻밤 장사도 생긴답디다만 이라며 화제를 돌려세웠다.

    장 영감은 화들짝 놀라는 시늉으로 페달 밟기를 멈추고, 아니 참척을 보셨다니, 어쩌다가 허, 그 고충을 술로 때우신다고요 라며 말을 줄였다.

    아닙니다, 저 친구가 공연히 흥감을 떨어서 그렇지, 자식이야 아직 멀쩡하고 친손주 새끼 하나를 두 눈 번히 뜨고서도 영영 잃어버린 거 한가지라서 술이 달다 마다 해쌓지요

    , 손주라면 더 큰일이지요. 그 어린 것이 무슨 희귀병을 앓았단……

    하이고, 희귀병이나 돼서 의학이 반쯤 땜질해주는 걱정이었다면 돈이든 정성이든 한껏 쏟아붓는 재미라도 누려봤을 걸, 이건 뭐, 젊은 것들한테 사기를 당한 기분이랄까, 자식이고 뭐고 다 보기 싫고, 만정이 다 떨어져서……

    김 감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펀드 매니저 출신이 벌떡 일어서며, 또 며느리 탈출기를 늘어놓으시려고요 라더니 휴게실 쪽으로 잽싼 걸음을 떼놓았다. 김 감사는 플라스틱 주렴 쪽을 향해, 김 이사, 어디 가, 가지 마, 세무사 이 사장한테 전화해, 술 한 잔 하자고 라고 주워섬겼다. 뒤이어 두 노인은 벽 쪽에다 나지막한 쇠막대기를 둘러놓고서 체력단련 중 잠시잠시 거기다 엉덩이를 걸치고 쉬라는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한 동네에서 등을 붙이고 살아가는 유지들임에 틀림없지만 각자가 어느 구석에서, 다세대주택의 1층이든 아파트촌의 25층이든 부양浮揚가족으로 숨어서 살아가므로 그 나날의 행방이 묘연한 이웃사촌이 옆구리가 닿을 듯 붙어 앉았다.

    장 영감이 이웃사촌의 한 많은 사연을 듣겠답시고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고 상체를 숙이자, 손등으로 이마와 목덜미의 방울땀을 연방 훔쳐내는 김 감사가 눈에 회상을 쓸어들이며 웅얼거렸다.

    그 어린 것을 헐벗겨서…… 이제 겨우 만 네 살인데, 아 며누리년이 지난 정월에 말이지요, 꽤 추웠어요, 영하 7도 운운했으니, 17일 한밤중에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서는, 그쪽에는 한여름이라며 손주새끼를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데불고 시무룩하니 떠나가버리더라고요. 도무지 무슨 말을 붙일 짬도 안 주니, 남도 아니고 서로 같은 말을 쓰는데 말이지요, 속이 이렇게 쓰릴 수도 있는지……

    그쪽이 어느 나랍니까?”

    호주예요, 멜븐으로요, 멜버른은 우리식 발음이고, 그쪽은 꼭 멜븐이라는데 거기는 우리와 기후가 정반대라니까.”

    그러니 조기유학을 시키려고 보냈는가 본데 자부 성미가 엔간하네요, 결단력이 좋은 건지 사람이 독한 건지.”

    허어 참, 조기유학? 걔는 조기교육조차 애를 경망스런 망종으로 만드는 장본이라며 절대로 안 시키겠다고 했어요. 지 자식 세대는 어차피 90살쯤을 능히 살 텐데 일 년이나 삼 년 빨리 영어를 배우고 구구단을 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성급한 우리나라 부모들이 미치광이라고, 아무리 지 자식이라도 능력이나 소질 개발 이전에 여러 사람과 섞여 살 수 있는 인성을 길러줘야 하건만 월권이 심하다고, 경쟁? 지라고, 일류대학? 안 가도 좋은 게 아니라 가지 말라고 하겠다고, 내 자식을 내 멋대로 키우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지가 나쁘다고 생각한 세상과 제도를 따르라고 강요하면 그게 명색 부모로서 할 짓이냐고, 지는 그럴 수는 없다고 차근차근 말하는 그런 애였어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장면인데 지가 무슨 힘이 장사라고 바위에다 머리로 금을 낼 심사니……

    대번에 그림이 그려지는, 꽤 잘 만든 반체제 외화의 캐릭터가 장 영감 안전에 떠올랐다. 시드니 루멧인가 하는 상복도 없는 미국 영화감독의 무슨 영화에도 그런 독종의 여성 캐릭터가 불쌍한 제 삶을 끝까지 잘 감수해서 박수를 친 바 있었다.

    호오, 눈알이 아주 제대로 박힌 자부를 얻으셨구먼 뭐, 그런 복 아무나 못 받습니다. 매일 업어줘야겠네. 손주 장래는 옛말대로 맡아 놓은 당상이네요.”

    김 감사는 잠시 장 영감을 곁눈질하면서, 어째 이토록 세상 물정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그것도 입에 발린 상투적인 말을 씨월거리는 얼치기가 대학 접장 노릇을 했을까, 그 밑에서 배운 학생들도 학력 콤플렉스때문에 제 고집대로 사는 우리집 며느리 이상으로 답답할 것은 뻔할 뻔 자라는 냉소를 노골적으로 끼얹었다.

    허어 참,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장 영감은 즉각, 누가, 내가요 라는 눈빛에 이어 아직도 같잖은 자존심은 살아 있어서, 이 무식한 술꾼이 어따 대고 라는 속을 짐짓 감추는 일방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하기야 우리는 아는 게 너무 뻔해서 신문의 경제면은 단 한 자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대요, 이런 지가 벌써 오래 전부터예요. 경제지표, 경기동향, 거시경제 운운하는 전문가들은 죄다 점쟁이보다 더 지 멋대로 떠드는 거짓말쟁이 아닌가싶고요.”

    세계경제야 거꾸로 돌아가든 말든 걔들은, 우리 며눌애와 손주새끼는 영영 안 돌아와요, 생이별이지요. 참 생이별은 부부간에나 쓰는 말이라니까 생결별이거나 절연이지요.”

    허어, 무슨 생결별까지나, 이민 간 거네요, 공무원 연금 받겠다 자주 내왕하시고 살면 되겠구먼 뭐, 비행기삯이야 어딜 가나 어차피 깨지는 거고.”

    나 참, 아무리 남의 사정이라고 해도 말을 너무 쉽게 하시고, 세상을 혼자서 멋대로 이해하시며 사시나 본데

    그야 그렇다 치고 자제분은 뭣하고 살길래 지 처자식을 이민 보내고실랑……

    말을 다하면 길어지지만 어쨌든 일어서십시다.”

    김 감사는 새삼스럽게 장 영감의 안면을 슬쩍 훔쳐보고 나서,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하지요, 막걸리 한 통이야 제가 살게요, 한 통? 그 말맛 한번 정 떨어지네, 이 동네 술집은 내가 다 아는데 마땅한 데가 한군데도 없으니 참, 동네마다 줄 서는 음식점이 꼭 하나씩은 있다는데 어째 동네복도 지지리 없어서, 팔자가 이렇다니까 해쌓다니 아예 친구로 삼을 듯이 말했다. “저는 전철 무임승차하는 소띱니다, 장 선생은 돼지띠라면서요, 지방대학에서 강의하시며 장기간 주말부부로 사셨다니까 잘 아시겠지만……

    장 영감은, 아니, 어떻게 제 신원을 그렇게 소상히 아냐는 눈을 지어 보이자 김 감사는, 내가 비록 두 살 적고 이렇게 술만 마시고 살아도 당신 꼭지에 올라앉아 있다는 듯이 성큼성큼 휴게실 쪽으로 걸음을 떼놓았다. 곧장 수납장을 활짝 열어놓고 챙겨 입은 김 감사의 복장은 의외로 팥죽색의 통 좁은 반바지에다 흔히 갈맷빛이라는 심록深綠의 티셔츠에 얼금얼금 구멍이 뚫린 지푸라기 색깔의 마직 중절모 차림이었다. 감쪽같이 막 쉰줄에 접어든 무슨 제조업체 사장이 골프채라도 휘두를 지체로 변신해 있었다. 역시 옷만큼은 나이보다 20년 이상 젊게 입어서 노년기의 생체리듬을 단숨에 돌려세워놓을 필요가 만만했다. 세상은 바뀌고 있으며, 그것도 평균수명의 신장이 풍속 일체를 앞질러 따분하다면서 떠밀어내느라고 극성이었다.

    김 감사는 지상으로 나서자, 저 밑에 순대국집으로 가서 2만원짜리 중짜 순대나 한 접시 시키면 어떨까요 라고 했다. 장 영감은, 뭐 좋도록 하자고, 나야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조로 손을 내저었다.

    이제 대학은 누가 나서도 정수淨水할 엄두를 못내는 웅덩이가 되어 있다. 장 영감은 그 속의 한낱 청개구리로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올 고리타분한 소신만 들려주느라고 허둥거렸던 밥벌이꾼이었다. 그래서 말귀가 그나마 어둡지 않았다면 어폐가 있겠으나, 전통시장 속에 숨어 있는 예의 그 순대국집까지 1킬로미터 남짓을 걸어가면서 김 감사가 들려준 가족 비화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김 감사는 슬하에 12녀를 두었는데, 셋 다 시집 장가를 보낸, 혼인 적령기를 무작정 뒤로 물리고 사는 골통이 집집마다 꼭 하나씩은 껴묻어 있는 이런 시절에 복 많은 노인이었다. 게다가 맏자식인 아들놈은 대입수능고사에서 전국 석차가 2백등 안에 든 모범생이었다. 잘 됐다고, 사람이 대접을 받아가며 살려면 모름지기 법대에 가야 한다고, 어느 대학이든지 법대로 가서 재학 중이든 졸업하고든 행시에만 붙으라고, 애비 평생 소원을 니가 풀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아들놈은 법이란 잣대로 사람을 오엑스로 나누는 그런 이분법적 세계에 자기의 일생을 맡기기는 싫다고 막무가내였다. 중학생 때부터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같은 허황한 책만 붙들고 눈만 껌뻑거리는 아들놈이 이상하긴 했다.

    무주공산에서 지 혼자 왕질하겠다는 유비는 거의 팔푼이잖아요, 고우영이도 쪼다 유비라고 얼마나 똑 부러지게 해석했습니까. 또 좆심이 그렇게나 장하다는 서문경이도 그게 과장투성이에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뻥이지요. 그런데 우리 아들놈은 묘한 발상 아니냐고, 우리는 왜 그걸 못 만들었냐고, 뜻글자에는 틀림없이 세상 밖에서 떠도는 뭣을 붙잡아내는 비결이 있지 않겠냐고, 그러니 죽어도 중문과엘 가야겠다고 나자빠지는 거예요. 부자간에도 말이 너무 안 통하니까 나중에는 골치가 아파서 니 꼴리는 대로 하라고, 장차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테니 그때 이 애비를 떠올릴 생각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들자식은 똑같은 시험을 두 번씩 치르는 못난 것은 아니었므로 6년만에 학사와 석사를 따고 나서, 퇴근 때마다 한심한 공무원운운하면서도 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때우더니 박사도 국내에서 마칠 채비였다. 그래서 중국어도 외국어 아니냐, 그러니 대만 사범대나 북경대로 유학 가거라, 거리도 멀잖은데 유학비야 이 애비가 어떻게 보내주마, 거기서 학위를 따 와야 너네 모교 은사나 지도교수도 한 수 꿀릴 테고, 취업에도 가산점이 붙을 것 아니냐고 간섭했더니, 그렇잖다고, 지는 소심한데다가 앞으로 공부할 것이 정해져 있어서 그쪽 선생들이 이래라 저래라 코치하면 헷갈려서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막무가내였다. 과연 국내 박사도 3년 반만에 따내자 여러 선생들이 앞다투어 추천해서 대전으로, 춘천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며 주로 사학과의 한문강독을 몇 학기씩이나 맡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중문과나 한문교육학과의 교수 요원 채용에는, 그 대학이 서울에 있든 지방 소재이든 꼬박꼬박 지원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지기를 벌써 수삼년째라고 했다. 이제 그 아들놈은 마흔 살이고, 최근에는 모 대학 연구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그 직책이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라서 박봉이지만, 부모한테 절대로 손을 벌리지는 않는다고 자랑했다.

    자제가 세부전공이 뭐랍니까?”

    석사는 당송팔대가 중 누구의 칠언율신지 뭔지를 전공했다는 것 같고, 박사는 백화문학으로는 기중 어렵다는 홍루몽을 연구했다나 봐요. 지 말로는 중국문학은 뭐든 공부해가며 가르칠 수 있다고 장담이사 하지요. 지 자랑이 아니라 요즘 대학에서 그 정도야 뻥칠 것도 없이 해낼 테지요.”

    교수 임용은 전적으로 운입니다. 학위야 어디서 땄던 다 고만고만하고, 오히려 실력이 너무 출중하면 그것도 탈이지요. 주로 인간성을 많이 보는데 겉으로야 그걸 어떻게 압니까. 총장이 공자도 아닌데. 다 매끄럽고 허허거리고 모자라지 않으면 또라이들이고 뭐 그렇지요.”

    지도 그런 줄은 잘 알대요. 아직 운이 안 풀린다고.”

    플라스틱으로 엮은 돗자리를 깔고 책상다리로 앉는 순대국밥집은 빈 좌석이 반 이상이었다. 먹음직한 순대와 돼지머리고기가 반반씩 섞인 안주 접시를 놓고 두 노인은 건너편의 막걸리 양재기와 소주잔에 각각 술을 따랐다. 김 감사의 구변은 술집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젊은 김 박사는 어느 해 늦가을에 지방의 모 대학에서 한문소설을 특강해 달라기에 득달같이 달려갔다. 두어 시간 떠들고 나서 뒷풀이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았는, 흡사 호젓한 산길에 저절로 피어난 들국화 같은 한 노처녀를 만났다. 나이가 동갑이라서 인연이 묘하다 싶었고, 얼굴이 빨개서 아주 촌스러운가 하면 순박해 보이기도 했다. 치마도 인디오처럼 헐렁한데다 상의는 얼룩덜룩하니 뜨개질한 스웨터 차림이었다. 고교 출신이라서 그랬지 않을까 싶은데 평소에, 어디든 4년제 대학만 나온 처녀면 나는 오케이다 라던 지 엄마의 며느리 자격론이 하필 그때 떠올랐던 것도 의미심장했다. 김 박사 아비는 며느리감을 보자마자, 도대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여자가 무슨 말이냐, 그게 머리도 모자라고 재주 하나도 없이 무능하다는 소리 아니냐, 여우는 못 될 망정 곰은 면해야지, 나중에 후회할 거면 지금 막설해라고 다조졌다. 아들놈은 즉각, 제가 언제 군말했습니까, 두고 보세요, 인간성이 착한데 어떡해요, 사람이 달라요, 저는 말만 앞서고 발랑 까진 애들은 싫거든요, 라며 결혼을 서둘렀다. 말뚝 박은 1층은 주차장으로 쓰고 그 위에다 5층을 포개 놓은 다세대주택의 꼭대기 4가구 중 15평 한칸 집을 12천만원에 분양 받아 살림을 차려주었더니 딱 11개월만에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낳았다. 올바른 인간들은 무슨 일이든 정해진 시간을 지킬 줄 알아서 주위 사람들의 군걱정을 사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제 할 일을 제때 해치우는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우열은 저절로 갈라졌다. 그런 자식과 숨을 고르며 사는 며느리의 빨간 얼굴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 없었다.

    그런데 장가들고부터 아들자식의 그 착한 심성이 좀 달라졌다 싶더니 지 새끼를 보자 완연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손주가 보고 싶어 마누라쟁이를 대동하고 아들네가 아니라 며느리집에 가 보면 자연식을 한다고 그러는지 우유, 계란, 치즈, 고구마, 양파, 당근, 푸성귀 같은 것만 여기저기 보일까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었다. 냉동고 속에는 비닐로 낱개 포장한 콩 박은 맞춤떡만 소복했다. 마누라쟁이가 불쌍하다고 옆구리를 찔러대서 김 감사는 준비해간 봉투를 며느리에게 건넸더니, 한번 받기 시작하면 자꾸 바라게 돼서 안 된다며 극구 사양했다. 아들놈도 이번만 받아라고 해야 할 텐데 시부저기 자리를 피해버렸다. 도대체 뒤탈이 안 날 공돈을 그렇게 곡진히 사양하는 인간을 김 감사는 그때 처음 목격한 꼴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명절이나 생일 때 시집간 딸네들 내외서껀 일가친지들이 다 모여서 진수성찬을 먹고 나면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턱을 떨어뜨리게 마련인데, 아들놈 내외는 시무룩해 하면서 후딱 일어설 낌새로 몸부림을 쳤다. 손주가 걸음을 떼놓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아들 내외가 왜 그토록 텔레비전과 원수를 졌는지 밝혀졌다. 아들 내외를 암호 같은 애들이라고 단정한 마누라쟁이의 전언에 따르면 소위 먹방이라는 것, 회식자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쿡쿡 찔러대며 맛있다 해대는 그 천박한 장면이 너무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입은 시궁창보다 더 더럽지 않냐고, 식욕을 아무데서나 과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인데 그것을 삼갈 줄 모르니 얼마나 상스럽냐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파랗게 성깔을 부리더라고 했다. 요즘처럼 먹거리 지천인 세상에서 음식 앞에서 경건했다가는 고상떤다고 욕 먹겠으나 적어도 다소곳이 제 먹성을 남 앞에서 감출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더불어 어린애들이나 미성년자인 자기 자식들과 함께 나뒹구는 그런 오락 프로만큼은 도대체 누구를 즐겁게 하느라고그러는지, 그게 무엇을 파는 건지나 아는 소행인가고 따지는 데는 막상 선뜻 대꾸할 말이 안 나서더라고 했다.

    자제가 똑똑한 건지 며느리가 독한 건지 둘 다 소위 의식 있는 내외인 건 분명하네요. 하기사 우리나라가 참 덜 떨어지고 점점 더 유치찬란한 백성이 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남의 말은 죽어라고 안 듣고 지 잘났다고 악만 바락바락 지르는 꼬라지가 정말 가관이다 마다…… 자부가 지 자식을 여기서는 못 키우겠다고 보따리를 싸들고 이민을 간 모양인데 쉽잖은 결단을 잘 내렸네요.”

    호주는 어린 학생들 점심을 집에서 도시락으로 사오게 하고, 사먹지 못하도록 규제하나 봅디다. 걔는 이제 이 땅과는 영 작별했어요. 안 올 거예요, 이 나라가 너무 보기 싫어서 망명한 거지요.”

    광복되면 돌아오지 않을까 모르지요 뭐, 운동 열심히 해서 그때까지 살아남아야지, 별 수 없잖습니까.”

    광복? 없어진 나라가 어떻게 다시 살아납니까. 남의 나라한테 빼앗겼으면 천우신조로 되찾을 수나 있지요. 아들놈도 몇 년 더 버티다가 이 애비하고도 절연하고 망명길에 오를 게 뻔해요. 지 힘으로 안 되는 나라에서 더 있어 봐야 뭐하냐 이거지요. 그놈은 그래도 머리가 있으니 호주에선들 밥이야 먹고 살겠지요. 그걸 미리 생각하면 정말 서글퍼서 억장이 다 무너져요.”

    그날 밤 열시쯤 귀가한 장 영감이 마누라쟁이에게 술김을 빌어, 당신은 왜 내 신원을 여기저기다 외고 다녀 라고 따졌더니, 잠시나마 생사람 잡는 소리 작작하라며 시치미를 떼더니 손주를 호주 유학 보낸 노인네 운운 했더니 대뜸 알아듣고 말했다.

    그 마나님은 호주댁 며느리 생겼다고, 우리집 손주 새끼는 이제부터 서울 시민이 아니라 세계시민 됐다고 좋아하던데 그 댁 바깥양반은 왜 원통하다고 가슴을 쥐어뜯어, 별꼴이네.”

    장 영감은 문득, 이건 또 무슨 조홧속인가라는 상념을 되작이며, 김 감사의 그 호들갑을 어디서부터 오독하기 시작했나 하고 아둔한 머리를 굴려갔다.

     

    -

     

    김원우

    1947년 경남 김해 출생, 1977년 월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소설집 무기질 청년,세 자매 이야기,아득한 나날』『벌거벗은 마음, 객수산록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짐승의 시간,일인극 가족,돌풍 전후,부부의 초상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