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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웹진도요가 선정한 소설>매달리다_성석제
  • 단편소설

     

                                     매달리다

     

                                                                       성석제

     

    한 남자가 매달려 있다. 바다와 합류하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 둥치 굵은 왕벚나무에. 그의 몸은 밧줄로 묶여 있고 밧줄은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다. 다리가 허공에 떠 있는 남자의 몸은 중력에 의해 지구 중심으로 줄기차게, 팽팽하게 끌어당겨지고 있다.

    남자는 목을 매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묶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강변에 십여 년 전 군청에서 만들어놓은 체육공원이 있지만 북풍에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라 그런지 나무에 매달린 남자를 보고 놀라 자빠지거나 끌어내리려 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무에 매달렸다. 매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온몸의 관절이 빠지고 뼈마디란 뼈마디가 다 어긋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싶어서. 적어도 그랬을 때의 기억,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뼈가 빠지도록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게 속죄 행위이기라도 한 양, 스스로를 벌하는 것처럼. 그는 벌써 두 시간째, 아무도 없는 강변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물을 제대로 짜지 않고 널어 놓은 빨래처럼 흐느끼고 흐느적거리며 매달려 있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무엇에든 집중해서 매달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가장 일찍 매달렸던 건 바다였다. 바닷가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에게 바다는 매달릴 수밖에 없는 대상이고 피할 수 없는 생존경쟁의 전장이었다. 열네 살에 명태잡이배에 처음 오르면서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에서 가장 높은 어른으로 우러러보게 하겠다. 아니면 바다에 빠져죽는다.

    그때 그를 이끌어주고 격려해줬어야 할 아버지는 죽고 없었다. 아들이 여덟 살이 되던 해 겨울,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선장이었던 아버지는 풍랑이 거센 바다로 명태잡이배를 타고 나갔다가 배가 침몰하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첫 아들에게 오래 살라고 명길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바닷가 마을의 무당이었고 고기잡이를 나가는 날을 택일해주고 뱃일을 하다 죽은 사람을 위해 진혼굿을 해주곤 했다. 남편이 바다에 나갔다 죽은 일은 그녀의 용한 점괘와 용왕신에게서 받은 신통력에 가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동료였던 선주, 선장, 죽거나 실종된 어부의 가족이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배에 태우거나 바다로 데리고 나가면 크나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살다 바다에서 죽은 남자의 아들이자 바다가 아니면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년에게 배를 타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가 엄마 젖을 본능적으로 빨 듯 소년은 고깃배에 다가가 물고기를 받아 내렸고 그물 손질하는 어부들의 잔심부름을 했으며 그 대가로 얻은 작은 물고기를 헐값에 팔기도 했다. 바닷가를 배회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사시사철 눈에 띄었다. 소년은 선주와 선장들을 찾아다니며 무엇이든 다 할 테니 배에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모자의 팽팽한 대결에서 뱃사람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이 승리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배를 타게 된 소년은 미칠 듯한 두근거림과 두려움, 설렘으로 들뜬 것도 잠시, 배가 난바다에 나가기까지 심한 멀미로 내장을 다 쏟아낼 듯이 토악질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뱃사람의 씨가 아니고 어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라고, 걸리적거리기나 한다고 툭하면 머리를 쥐어박히고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그렇게 호된 신입 과정을 거쳐 사나흘 만에 간단한 일은 거들 수 있게 되었다. 주로 식사를 담당하는 화장(火匠)이 소년을 조수로 부렸고 제법 깔끔하게 뒷일을 한다고 칭찬까지 했다.

    소년이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돌연히 낯설고 위엄이 있는 노인처럼 변해 있었고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했다. 자신이 죽을 날을 받아놓았다면서 살아 있는 동안은 절대 배를 타지 않을 조건으로 소년을 집에 받아들였다.

    그뒤 소년은 어머니를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계절이 세 번 바뀌고 난 어느 날 소년이 용왕전 앞 마루에서 박수무당의 북을 치는데 무당이 억센 손길로 북채를 빼앗아 마당으로 던져버렸다.

    너는 북 칠 팔자가 아니다.”

    무당은 바닷가 마을의 선주와 선장을 모두 불러오게 했다. 액운을 막는 부적을 한 장씩 그들에게 나눠주고는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 죽은 연후에 저 어린 것이 바닷가를 헤매다가 굶어죽을까 걱정이네. 대주들이 저 아이를 잘 돌봐준다면 내가 일 년에 네 번씩은 만선을 하도록 용왕님께 축수해두겠소. 저 아이 흉살이 올해로 모두 없어지고 복덕이 돌아오니 앞으로 혼자서 두어 사람 몫을 할 것이오.”

    선주와 선장들이 그 말을 깊이 새기고 지키겠노라고 다짐하고 돌아간 뒤에 무당은 소년에게도 부적을 한 장 써주었다.

    너는 원래 배보다는 땅에 발 디디고 고래등같은 큰 집에 수많은 사람들하고 같이 살 팔자를 타고났어. 그래도 뱃놈 피를 받아서 태어났으니 배를 타야 할 것이고 죽을 고비를 두 번은 넘겨야만 남보다 길게 살 수 있을 거다. 이 부적은 내 명을 담았으니 비닐에 잘 싸가지고 속옷에 꿰매가지고 다니거라. 안 그러면 너도 네 애비처럼 수중고혼이 되고 말 틴께. 나는 이만 먼저 간다. 너 혼자 남아서 잘 살아보거라.”

    무당은 남의 말 하듯 하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숨을 거두었다. 넋이 나간 소년을 대신해 동네 사람들이 장례 절차를 차질 없이 마무리했다. 출상 뒤 보름쯤 지나 명태 떼가 몰려드는 음력 섣달 초순이 되었을 때 용왕전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소년을 배씨 성 선장이 데리러 왔다.

    출항이다. 배에 타라.”

    여섯 번째 출항에서 소년은 당당히 어른 한 사람 몫의 임금을 인정받았다. 인정이야 어떻든 상황은 좋지 않게 돌아갔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고 2톤짜리 명태잡이배는 자꾸 북방어로한계선이 있는 북쪽으로 밀려갔다. 하지만 선장은 배를 멈추지 못했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주낙으로 잡히는 명태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뱃사람으로 잔뼈가 굵은 네 명의 어부들은 똑같은 생각에 매달려 있었다. 잡은 고기로 만선이 되면 기름값과 고기잡이에 소용되는 도구들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고 남은 수익의 절반을 무조건 선주가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을 선장과 선원들이 나눠 갖게 되는 것이었다.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든 크든 일단 무저갱 같은 배의 배(船腹)는 채워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계에 목을 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가을에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명태가 모여들면서 명태잡이는 시작되었다. 명태는 겨울이 되면 얕은 바다의 모래, 진흙 바닥에 알을 낳았고 그런 곳이 황금어장이었다. 어부들은 항구에서 수십리 떨어진 어장으로 배를 끌고 나가서 그물을 놓았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그물을 친 곳으로 가서 그물을 걷어올려 그물코에 걸린 명태를 잡았다. 때맞춰 그물을 쳐놓고도 갑자기 풍랑이 일고 비바람이 쳐서 다음날 가지 못하면 다른 배가 와서 그물을 걷어갈 수도 있고 북한에서 내려온 배가 어장 전체의 그물을 쓸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먹고사는 데는 남북이 따로 없었다. 자신의 운을 믿는 선장들은 거친 풍랑과 난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물을 걷으러 난바다에 나갔고 주낙으로 명태를 잡아올려 배의 배를 채웠다. 주낙으로 잡아올린 명태는 생태나 명란 용으로 비싸게 팔려나가니 일석이조였다. 정신없이 주낙을 당기던 선원들은 어둠 속에서 확 터져나오는 불빛에 눈을 가렸다. 북방어로한계선을 넘은 것이었다.

    선원들을 취조하던 북한의 국가보위부원이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일부러 이런 험한 날씨를 골라서 명태를 잡는 척하고 우리 공화국에 침투할 간첩을 실어다준 게 아닌가?”

    그들의 각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배 아래에 숨겨온 북파 간첩의 신상에 관해서 자다가도 일어나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웠다. 목숨이 암기력에 달렸다. 남한의 어촌마다 간첩을 양성하는 아지트가 있다.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으로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북파된 간첩은 북쪽에 성공적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발에 돌덩이를 매단 채 독약이 든 캡슐을 깨물고 바다 아래로 가라앉곤 한다. 그들의 배에 어부를 가장해 승선했던 간첩 역시 그렇게 한 것으로 정해졌다.

    소년은 다행히 심신이 망가질 정도로 혹심한 고문을 받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예언대로 흉살이 없어져버려서인지도 몰랐다. 일상적인 매질과 위협, 세뇌공작에 시달리며 다섯 달 동안 붙들려 있었다. 시키는 대로 일하라면 일하고 자라면 자고 외우라면 외우고 가르치는 것을 배웠다. 그나마 노래에는 약간의 단맛을 품은 찔레 순 같은 자유의 기미가 들어 있어 소년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소년이 북한에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섯 달 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추방이었다.

    너희 배는 간첩선이라 압수한다. 헤엄을 치든가 구명선으로 갈 테면 가라우.”

    선장과 선원들은 북한 정권에 충성을 맹세하고 다시는 북방어로한계선을 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서에 지장을 찍고 나서야 자신들이 타고 온 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선원들은 구명선을 내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노를 저었고 북풍과 해류 덕분으로 북방어로한계선 아래로 남하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보살님이 주고 가신 영험한 부적 덕택이다.”

    남한의 경비정에 올라타고 나서 배 선장은 소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소년은 자신의 때 전 내의 속에 꿰매놓은 부적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적의 영험함에 매달린 건 아니지만 발각되거나 빼앗기지 않은 것은 신기했다.

    귀환한 명태잡이배의 선장과 선원들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서로 가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일단 납북되면 어선과 어부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이북에서 어떤 부역을 하고 왔는지, 세뇌가 되고 포섭되지나 않았는지 의심받았다. 소년은 함께 갔던 선원이 구타를 당해 고깃살(魚肉)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았다. 눈과 코, 입술이 모두 퉁퉁 부어서 그게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린놈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네가 한 말하고 다른 놈들이 한 말하고 한 마디라도 틀리면 총알 밥이 될 줄 알아.”

    소년을 취조한 경찰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소년이 죽음을 떠올릴 만큼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소년은 배운 게 노래밖에 없었다. 반공법을 적용하기에는 연령 미달이었다. 14세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거기서 돌아오지 않거나 죽는 게 나았다. 이렇게 내가 나한테, 식구들한테 짐이 될 줄 알았으면.”

    선장은 그 말을 남기고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감옥으로 갔다. 선원 둘은 고문을 받아 폐인이 됐고 한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써 담당 경찰관이 징계를 받았다. 소년만은 별다른 일이 없이 계속 배를 타면서 성년이 되었다. 몇 년 되지 않아 타고난 고기잡이 솜씨에 강철 같은 체력 덕분에 선주들이 서로 자기 배에 태우고 싶어 하는 당당한 어부로 성장했다.

    이명길은 방위 근무를 마치고 나서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읍내 치과의 간호사로 있던 두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여자의 아버지가 선장이었는데 자신의 뒤를 이을 사윗감으로 그를 일찍부터 점찍어두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듬해 자신을 빼닮은 아들을 낳았다. 이제 열심히, 성실하게 살기만 하면 앞날은 순풍에 돛단 듯 저절로 훤히 열릴 것 같았다.

    그는 이명길이라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철민이 아버지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배에 태워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행복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처럼 커졌다. 자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한꺼번에 아이에게 쏟아 붓듯 일이 없는 날에는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아버지의 강건한 구릿빛 맨몸에 매달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고, 그에게는 아이를 무동 태워 집에서 바다까지 오가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는 아버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내내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아들과 함께 바닷가를 달리고 조개나 해초를 줍고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그에게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뱃일을 하는 천생의 운이 따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준 부적은 바스러져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키를 잡는 배는 거의 다 만선이었다. 최신형 어군탐지기를 탑재한 어선의 수확도 그가 직감에 의지해 가는 바다에서 잡아내는 물고기 포획량에 미치지 못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연근해의 명태는 줄어들었지만 양미리, 도치, 광어, 임연수어 등은 오히려 전보다 많이 잡혔고 값나가는 문어를 잡아올리는 데는 그를 따를 어부가 없었다. 노름판에서 귀신처럼 패가 붙는 노름꾼처럼 그 스스로도 배에만 오르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내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그와 같이 일하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명태를 북어나 황태로 가공하고 명란젓, 창난젓을 만들 때 누구보다 일 잘하는 걸로 소문이 났다. 음식 맛이 좋아서 식당을 차리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사철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번듯한 양옥집을 사서 옮겼다. 두 번째 아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으나 아직 젊은 터라 부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칠 년, 서울에서 18년 동안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죽고 그 뒤를 이어서 군 출신의 인물이 새로운 독재정권을 휘어잡을 때까지 가족의 단란하고 달콤한 행복은 계속되었다.

    어느 여름 밤 사복 경찰들이 그의 집을 덮쳤다. 경찰들은 구둣발로 방으로 들어와 수박을 먹으면서 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아이의 비명과 울음소리에 놀라서 부엌에서 뛰쳐들어온 그의 아내는 배를 걷어차여 쓰러졌다.

    이런 새빨간 종자들은 아예 씨를 싸그리 말려버려야 되는데. 요즘 세상 법이 좋아 내가 참는다.”

    경찰 가운데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말했다. 덩치 큰 경찰은 수박을 들어서 박살냈다. 온 방안에 수박 즙이 붉게 튀고 씨가 사방에 들러붙었다.

    반장님, 이 빨갱이 놈의 새끼가 이래 포시랍게 해놓고 사는 꼬라지 좀 보십시오.”

    그와 함께 납북된 어느 선원이 경찰의 손아귀에서 도망쳐 남해안의 조용한 섬마을 양식장에 가서 십 년 넘게 숨어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해 십여 년 전 북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횡설수설하면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으로 시작하는 북한 노래를 부르다가 함께 술을 마시던 이웃에게 간첩으로 신고를 당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정보기관에 이첩되었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있는 사실, 없는 이야기를 모두 토설했다. 배에서 화장(火匠)을 도맡아 했던 그의 기억에 함께 밥 짓고 청소하는 일을 도왔던 이명길이라는 소년의 이름이 남아 있었던 게 문제였다.

    경찰은 이명길을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짙은색 유리를 끼운 검은색 지프에 태웠다. 안에 있던 정보기관의 기관원이 그가 바깥을 보지 못하게 차의 좌석이 아니라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간첩 새끼들은 사람으로 치면 안 돼. 말을 하는 버러지라고.”

    이명길은 카랑카랑한 쇳소리로 후배를 교육하던 나이 든 기관원의 말을 기억했다. 간첩이라는 엄청난 단어에 그는 무슨 오해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쓸데없이 저항을 하고 변명을 하느니 일단은 그들의 말에 순응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인적이 드문 도시 뒷골목의 가정집 앞에 차는 멈췄고 그는 지하로 가는 계단으로 끌려갔다. 새로 공사를 한 듯 콘크리트 냄새가 나는 지하실에는 간이침대와 욕조,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갈고리가 있었으며 사람 키만 한 길이의 나무판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는 욕조 앞에서 경찰인지 기관원인지 모를 남자들이 눈짓하는 대로 서둘러, 순순히 옷을 벗었다. 입안에 쑤셔박은 헝겊만 빼주면 무슨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을 하려고 했다. 자신이 헝겊을 뱉을 수도 있었으나 그런 행동이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지도 몰라 빼내주기를 기다렸다. 질문을 하면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할 것이었고 그 대답을 들은 그들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를 풀어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헝겊을 빼주지도 않았다. 말없이, 그리고 힘 있게 주먹과 발로 그의 온몸을 때리고 찼다.

    처음에는 맞은 부위에 고통이 느껴지고 계속 맞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닥쳤다. 하지만 땀 냄새와 피 냄새, 침묵 속에 그들의 구타가 계속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사라지고 온몸이 노곤해지며 잠이 왔다. 입속의 헝겊은 그나마 완충재 역할을 해서 그의 이가 빠지지 않게 해주었고, 입안에 가득찬 핏물을 조금이라도 흡수했다. 결국 그는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는 채 이명길이 깨어나자 그들은 고문 방식을 바꾸었다. 고춧가루를 탄 물을 주전자에 담아서 콧구멍으로 들이부었다. 구체적으로 심문을 하지 않는 건 여전했으므로 그는 그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어느 때는 교대를 하고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고 내내 켜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녀 사회자의 우스개에 낄낄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고문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고문을 멈추는 것에 대해 직업적으로 가책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의 입에 새로운 재갈을 물리고 입을 묶어서 아예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이어 그의 손목과 발목을 묶은 뒤 손목을 묶은 끈을 천장에서 내려온 갈고리에 매달았다. 다리가 땅에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의 몸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마련이었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고문의 효과는 커졌다. 고문을 가하는 쪽에서는 힘들일 것도 별로 없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스스로의 몸뚱이가 가진 중력에 의해 뼈가 잡아 늘여지고 관절이 빠지는 지독한 고통을 겪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고 무기력해지게 만들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는 게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처음 깨달았다.

    여기서 너 같은 송사리 몇 놈이 죽어나가든 아무도 몰라. 뒷문이 왜 있는 줄 아나? 조용히 시체를 끌어내려고 만든 거야.”

    그 말에 그는 차라리 자신을 깨끗하게 죽여서 뒷문으로 끌어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는 매달린 채 잠을 잘 수도, 기절을 할 수도 없었고 혀를 깨물어 죽지도 못했고 그 참혹한 고통과 일순간이 영겁처럼 늘어나는 시간을 견뎌낼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살아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은 그들이 목적한 바대로, 정해진 순서를 차근차근 밟아서 과정이 완결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들은 그를 갈고리에서 풀어 내렸다. 그는 최소한의 자유를 얻자 신속하게 혼절했다. 그의 육체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그가 의식을 되찾자 영양가 높은 식사가 나왔고 그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본능의 명령에 따라 밥을 먹었다. 혼자서 피똥을 눌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그를 끌어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 욕조에 물을 담고 거기에 머리를 집어넣어 익사 직전까지 몰고 가거나 얼굴에 창호지를 씌우고 미지근한 물을 천천히 부어서 입과 코에 종이가 달라붙도록 하는 고문을 하기도 했다. 맨 마지막은 손목과 발목을 묶은 뒤 갈고리에 매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어물전에 매달린 고기처럼 묶여 있다가 풀려나 바닥에 널브러지면서 혼절했고 독방에 처박혔으며 의식이 돌아오고 감각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끌려나가 고문을 당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자신이 어디에 왜 있는지 지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처음으로 심문을 받았다. 그건 그들이 써놓은 각본을 그대로 외우는 것이었다.

    저는 간첩입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아버지는 간첩이었습니다. 태생부터 빨갱이고 아는 사람 모두 빨간 물을 들였습니다. 제 아들도 간첩으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가 제대로 외우지 못하거나 그들의 각본에 어긋나는 해명을 하려 하면 어김없이 다시 고문이 시작되었다. 이명길은 점점 무감각한 기계처럼 변해갔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서든 시체로든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인 포스트에 주요 정보를 담은 문건을 넣고 그곳에 있던 지령문을 꺼내 읽고 난 뒤에 소각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서 훈련받았다. 그에게는 권총이나 수류탄, 무전기, 난수표, 독침 같은 물증이 없었으므로 무인 포스트 외에는 증언과 진술만으로 간첩 혐의가 확정되었다. 그의 진실한 태도와 상세한 심문 조서가 완벽하게 간첩임을 입증하고 있다는 경찰과 정보기관의 자체 평가가 내려진 뒤, 마침내 그는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검찰로 송치된 뒤에 그의 아내가 구치소로 면회를 하러 왔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 부모 형제 일가친척과 이웃을 배신하고 나라를 배신할 수가 있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용서 못해! 그 안에서 죽어!”

    그는 턱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 때문에 고통받을 식구들과 고생한 경찰관,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앞으로 감옥 속에서 죄를 참회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평생 식구들을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면회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치고는 가버렸다.

    그는 면회에 따라오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을 떠났을 때의 나이가 된 아들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나는 간첩이다. 나는 자유 대한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공산 간첩이다. 너는 나를 조금도 닮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고 금수만도 못한 빨갱이다.”

    그의 편지는 재판의 증거로 첨부되었다. 한때 그와 고기를 함께 잡으려고 부지런히 그의 집에 드나들던 여러 사람들이 경찰에 잡혀갔고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어부 간첩단 사건가운데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는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죄를 인정하고 참회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선변호인은 그의 진술이 고문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으나 고문의 증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국선변호인이 적극적으로 변호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판부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사형 선고나 받지 않을까 겁이 났다. 형량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두 달 동안 고문과 심문을 받던 기간은 형량에 포함되지 않았다.

    감옥으로 옮겨져 본격적으로 수형생활을 시작하게 되자마자 그의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간첩 남편, 간첩 아버지 때문에 온 식구, 친인척이 연좌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장을 찍어주었다.

    그 뒤로는 누구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편지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삶의 오점, 암세포가 될 것임을 잘 알았다. 그는 침묵을 택했다. 침묵에 매달렸다. 누가 뭐라든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온순한 가축, 초식동물처럼 감옥이라는 체제에 순종했다.

    하지만 고문의 후유증이 날로 심해졌다. 머리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머리의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면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따금 숨을 쉬기가 힘들었고 배를 처음 탔을 때처럼 심하게 구역질이 났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가끔 팔에 전기가 내린 듯이 찌릿해지고 한동안 팔을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감옥에서는 그런 건 병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미친 놈 발광한다는 소리나 들었다. 결국 후유증이 그를 각성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왜 간첩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고문을 받고 간첩임을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희생양이었다. 만만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 그의 인생이 밑거름으로 쓰였던 것이었다. 고문이 그를 감옥에 처박았다.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한 사람들은 국가를 수호했다는 명목으로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고 사나이의 표상,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존경받고 표창까지 받았다. 처음에는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그들에게 굴복한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좌절감이 절망과 함께 다가들었다. 그것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수삼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 세상, 체제에 대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감옥 속에 있는 한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그는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성실하게 수형생활을 이어나갔다. 말수는 더욱 줄어들었고 사적인 대화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12년의 형기를 채운 뒤 그는 느닷없이 석방되었다. 민주화운동의 투사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고 남북관계가 좋아진 덕도 있었지만 모범수라서 형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짐작한 대로 그의 집은 남의 집이 된 지 오래였다. 햇빛이 잘 드는 바닷가의 깨끗한 양옥, 파도가 차르르르 하고 검은 자갈에 쓸려내려가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집인데도 간첩이 살던 집이라 해서 반값에 팔렸고 그의 아내는 친정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친정집 역시 선주였던 장인이 죽고 나서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린 뒤였다.

    그는 일단 자신이 살던 집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작은 항구도시에 정착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거취와 행동범위에 대해 주기적으로 관련 기관에 보고해야 했다. 바다는 여전히 그에게 먹고살 수 있는 터전이 되어주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는 그런대로 살만 했고 겨우 먹고사는 것은 허용했다. 다만 주변 사람들과 조금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을 나타내면 그곳을 떠야 했다. 그러니 변변한 일자리,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간신히 살았다. 오직 사는 데 매달렸다.

    몇 달 뒤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는 자신을 간첩으로 만든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 같이 납북되었던 어부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거나 사망한 상태였다. 그를 끌고 가서 고문했던 경찰들은 그때의 공으로 승진했고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다가 퇴임하고 없었다. 정보기관의 기관원처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과 같이 근무한 사람들,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작은 단서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가족을 찾는 일은 뒤로 밀렸다.

    그들을 만나면 묻고 싶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하는 참회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는 좌절할 때마다 혼자 폭음을 했고 술에 취해 의식을 잃지 않고는 잠들지 못했다. 나중에는 술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가 받은 고문 가운데서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이었던, 천장에서 내려온 갈고리에 사람을 매달아 스스로의 몸무게로 온몸의 뼈가 엇나가게 하는 고문 방식처럼 그는 스스로의 복수심과 실현되지 않는 복수로 인한 좌절감으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두려움이 다시 그에게 열패감과 무력감을 안겼다. 그러다가 그는 우연히 문설주에 매달리게 되었다. 다리가 땅에 닿아서 생각한 효과가 나지 않자 주인집 뒤꼍의 늙은 대추나무를 이용하기로 했다. 의자 위에 올라가 손목을 짧게 자른 밧줄로 묶어 가지에 걸치고는 의자를 걷어차서 허공에 온몸을 내맡겼다. 온몸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 같았다. 관절이 빠질 듯 아파왔고 뼈저린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참다가 밧줄을 끊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웬일인지 달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가족을 찾아나섰다. 아이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서 아이가 십여 차례나 전학을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에 주소를 조회해볼 수도 없어서 아내의 친척, 친구를 찾아가 수소문을 했다. 성과는 없었다.

    가석방 기간이 만료되고 난 뒤에 그는 마침내 자신을 체포하고 고문한 경찰 가운데 가장 지독했던, 양복을 입고 있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댁한테 아무 감정도 없었소.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소. 당신을 언제 체포했는지 수사를 했는지 기억도 할 수 없소.”

    경찰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중풍으로 폐인이 된 중환자였다. 건드리면 곧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앞에서 그는 과거에 철저하게 고문당하고 세뇌 당했을 때의 두려움과 무기력함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진실이고 자신은 미몽 속을 헤매온 것 같았다. 허탈했다. 그는 손발을 벌벌 떨며 턱받이에 침을 흘리는 전직 경찰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흐릿한 눈으로 자신도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무능하고 무방비했다. 그의 앞을 떠나면서 그는 당신을 용서하도록 애써보겠다고 말했다. 그게 두 사람 모두에게 무슨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주인집 대추나무에 백주대낮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귀신을 보았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연고가 전혀 없는 지방으로 이사했다. 당장의 생계가 가장 중요했다. 전과를 가진 그에게 번듯한 일거리가 주어질 리 없었다. 그는 가난했고 자주 아팠고 굶주렸다. 삶을 이어가는 일이 벅차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어디엔가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은밀하고 인적이 없어 마음껏 매달릴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지 수첩에 적고 달달 외웠다. 한동안 거기에 매달렸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아들님. 이 애비는 너에게 인생을 팔아서도 갚을 수 없는 피해를 줬습니다.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제 옛일을 다 잊고 가족 간에 사랑하며 오순도순 살아가자꾸나. 이제부터 우리는 한식구가 되어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 잘 부탁합니다.”

    바닷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의 친구로부터 아내가 다닌다는 식당의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자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을 하기도 전에 왜 또 살아서 나타났느냐. 여러 사람 죽는 꼴을 보려느냐. 당장 약봉지 털어먹고 죽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생각이 있다면,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거나 영영 사라져달라고도 했다. 그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밧줄을 쥐고 산에 올랐다.

    갑자기 그의 아들이 찾아왔다. 군에서 제대를 했다면서 예비군복을 입고 왔다. 아버지는 연습한 말을 다 망각해버렸다. 그냥 앉으라고 했고 배고프냐고 물었고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면을 세 개 끓였으며 달걀을 두 개 넣고 아들 몫으로 라면 두 개와 달걀 두 개가 담긴 그릇을 주었다. 말없이 라면을 먹고 난 뒤 아들은 설거지를 하고 아버지는 청소를 했다. 어두워지고 나서 부자는 허름한 잠자리에 함께 누웠다. 아들은 쉽게 잠이 들었고 그는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부자는 여러 날을 함께 보냈다. 아들은 젊을 때의 이명길처럼 말이 별로 없었고 설거지를 잘 했으며 주변을 반짝반짝하게 청소하고 깔끔하게 정돈했다. 아버지는 할말이 없었고 연장 가방에 있는 밧줄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사흘째 오후에도 밥을 같이 해서 먹고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웃고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갑자기 어릴 때 아들을 무동 태우고 나가던 것을 떠올린 그가 벌떡 일어나서 앞장을 섰고 아들이 뒤를 따라 바다로 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팔뚝을 잡으려다 쇠약해진 어깨를 안았다. 수영을 마치고 나서 아버지는 아들의 몸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 두 사람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 함께 라면을 끓이고 함께 먹고 함께 설거지를 하고 함께 청소를 했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들은 함께 웃었다. 한동안 침묵이 찾아왔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제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고 손을 잡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고 싶었죠.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걸 결코 믿을 수 없었어요. 학교에서 아무리 혼이 나도 반공 포스터를 그린 적이 없어요. 저는 아버지가 감옥에서 영영 나오지 못할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풀려났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고 탈영을 해서라도 달려오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참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 제 의지로 아버지를 찾아왔어요. 제가 그동안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아실 거예요. 외롭고 아팠고 그때마다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웠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바보처럼 감옥에 갇혀 있기만 했죠.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어요. 힘들었던 것을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망해버린 걸 되살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라 불러보고 아버지와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 나니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어요. 원망도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아버지를 더 보고 싶지는 않아요. 아버지하고는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알면 어머니는 돌아가실지도 몰라요. 아버지도 저와 어머니를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하시기를 바라요. 이제 우리 부자는 의절을 하는 겁니다. 저는 당신을 영원히 아버지로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관계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걸 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애비로서 못한 걸 열 배 스무 배로 잘해서 잘못을 갚을 터이니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만나지 않아도 좋고 아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먼저 찾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아들은 완강했다. 영원히 부자의 인연을 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내밀고 지장을 찍게 했다. 그는 결국 각서에 지장을 찍고 말았다. 그게 법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은 채로 한참 동안 서로를 붙들고 서럽게 운 뒤에 헤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영영 헤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오해를 풀고 형편이 좋아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죽으라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들이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마다 그는 낚시 의자를 들고 뒷산에 올랐다. 묵은 갈참나무에 밧줄을 걸었다. 매달려 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복역한 사람들이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아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선고를 받아냈다. 그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몇 년에 걸쳐 법정투쟁이 진행되었고 그들 각자의 행복과 고통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자그마한 집을 장만하고 식구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을 받아낼 수 있게 됐다는 말을 변호사에게서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맨 먼저 자신의 아들을 찾아갔다.

    변호사가 경찰을 통해 알아낸 아내의 식당 주소를 들고 그는 고향에서 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낯선 도시의 버스터미널에 들어섰다. 뜻밖에도 그의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바스러져가는 누런 빛깔의 공책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당신의 훌륭한 아들은 십오 년 전에 벌써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소. 당신한테 받은 각서를 품에 넣고 다리에서 뛰어내렸어. 나를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보면 맘이 바뀔까봐서.”

    공책에는 아들이 단정하게 눌러 쓴 글씨가 박혀 있었다.

    저를 낳고 키워주신 어머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님께. 두 분 모두 고맙고 감사해요.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은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는 더 이상 삶을 이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네요. 두 분을 이 험한 세상에 두고 저 먼저 비겁하게 도망갑니다. 미안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안녕, 안녕히. 불효자 철민이가.”

    아들이 투신했다는 다리 아래로 가서 다시 한번 공책의 내용을 읽고 난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연장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손에 익은 연장과 밧줄, 드라이버, 커터 같은 게 들어 있었다. 그는 밧줄을 꺼내 왼쪽 손목을 묶고 반대편으로는 올가미를 만든 뒤 다리 아래의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 곁의 바위에 올라선 그에게 굵은 산벚나무는 낮고 튼튼한 가지를 내주었다. 그는 나뭇가지에 끈을 던져 올린 뒤에 내려온 끈의 올가미 속에 오른쪽 팔목을 집어넣었다. 한순간 그의 몸이 휘청, 하고 들렸다. 공중에 뜬 채로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부림을 칠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 생. 1994년 짧은 소설을 모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참말로 좋은 날』『지금 행복해』『재미나는 인생』『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등이 있으며 중장편소설로 아름다운 날들,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단 한 번의 연애, 위풍당당, 투명인간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요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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