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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얼굴을 잃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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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잃은 사람들



                                                                   김남석(부경대교수, 영화평론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모든 얼굴들을 영화 얼굴의 다른 가치들로부터 구별해주는 것은

    바로 ‘익명성’과 ‘본질적 인간성’의 혼합이다. 얼굴의 다른 가치들,

    즉 노출성과 노출, 웃음과 욕망, 눈물과 불안,

    그리고 특히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죽음을 위한 존재’ 등과 같은 가치들은

    단지 얼굴성의 그물망 안에 포함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자크 오몽, 『영화 속의 얼굴』 중에서

     

     

    1. 죽음 앞에서 침묵하는 사람들

     

    제주도 4.3의 피해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족을 잃고 친지를 잃었지만, 그들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거나 소식을 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슬〉에서도 이러한 정황은 반복된다. ‘순덕’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도 ‘만철’은 마을 사람들에게 순덕이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시신에서 구워진 감자(지슬)를 마을 사람들에게 먹이면서도, ‘무동’은 그 감자가 어머니가 죽으면서 자신의 몸으로 구워낸 감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애인과 어머니와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은 잠시 동안만 멍하니 있는 것이 허용될 뿐, 곧 다시 움직여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어디론가 삶을 찾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안전하게 생존하고 다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따라서 살아남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를 살아있다고 말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떠안게 된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을 생략해야 하고,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가 되지 않도록 방비해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사실(다른 이의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은 두 배가 되지만, 그로 인해 책임도 두 배가 되어야 한다.

    무동은 이러한 연기를 두건을 둘러싼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의 모습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1) 폐허가 된 집을 거닐며 어머니를 찾는 무동

    1-2)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무동

    1-3) 어머니 품에서 익은 감자(무동의 시선)

     

    2) 동굴로 돌아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앉는 무동

    3) 아내를 두고 동굴을 혼자 떠나야 하는 무동

     

     

    화면 1~3)은 무동이라는 제주도민의 얼굴을 포착하고 있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집으로 찾아온(동굴에서 내려온) 무동은 폐허가 된 집을 거닐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 화면 1-1)에서 카메라는 무동의 얼굴을 포착하지 않고, 갈 곳 몰라 헤매는 시선을 통해 그의 심리를 짐작하도록 만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관객들은 무동의 표정을 추론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심정을 모를 리 없다. 겪어보지 않았을지라도, 무동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동의 탐색이 얼굴이 가려진 채로 이루어지면서 이 장면에서 비극성은 심화될 수 있었다.

    화면 1-2)는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 오열에 잠기는 무동의 옆모습이다. 화면 1-1)과는 달리, 무동의 옆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고 있다. 그의 옆모습은 고정된 시선과 함께,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무동은 이제 시선을 한 곳으로 향하면서, 자신의 삶에 불어 닥친 비극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무동을 연기한 배우는 이 지점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회환을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화면 1-3)이 가려진 얼굴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무동의 시선(카메라의 시선으로 전환)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품에서 굴러 떨어진 ‘지슬’(감자)이었다. 감자는 어머니의 ‘마지막 배려’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살아남은 자들’이 악착같이 챙겨야 했던 ‘남은 삶’이기도 했다.

    화면 2)은 어머니의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동굴로 돌아와야 했던 무동이, 어머니와 함께 구워졌던 감자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이다. 무동은 자신의 어머니가 챙겼던 감자를, 말없이 굶주린 이웃들에게 분배한다. 감자에 얽힌 사연을 알 길 없는 사람들은 제각각 감자를 들고 먹기 바쁘다. 이때 카메라는 사람들을 우회하여 카메라 앞에 앉는 무동을 전경으로 촬영한다(무동의 뒤로 사람들의 잔영이 얼핏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무동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긴 침묵에 빠져 있다. 그 상태에서 관객들은 그의 마음속에 맴도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지켜보아야 할지 모른다.

    화면 3)는 천신만고 끝에 동굴을 탈출하지만 임산부 아내를 두고 나와야 하는 무동의 기막힌 표정이다. 그는 마침내 모자(두건)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지만, 노출된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고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 실눈을 뜬 그의 모습 앞으로 퍼져나가는 입김은, 어쩌면 내면의 울화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극도로 절망한 상태이다. 주목되는 것은 그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그의 분노 역시 비교적 분명하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운이 아닌 직접적인 노출이라는 점에서 화면 3)의 충격은 앞의 화면 1~2)에 비해 덜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2. 드러난 얼굴, 노출된 분노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신병’이다. 토벌대의 신병은 마당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이전까지는 ‘총을 들고 있거나’, ‘간부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 고작인 군인에 불과했다. 다른 군인처럼 ‘폭도’를 뒤쫓거나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지도 않았고, 가혹 행위를 당하지도 않았다. 신병은 ‘꿔다 놓은 보릿대’처럼 늘 그렇게 한 자리에 있던 물품 같은 존재였다.

    그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신병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늘 철모로 반쯤 가린 얼굴과, 눈빛이 드러나지 않는 외관으로 인해 ‘열외의 인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동굴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마음속의 분노를 드러낸다. 그리고 상관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4) 얼굴을 드는 신병

    5) 상대를 증오의 눈으로 쳐다보는 남자

    6) 부모 세대의 죽음 이후에 태어난 아기

     

     

    화면 4)에는 동굴 가득 퍼지는 연기(제주도민들이 군인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 고추를 태운 연기) 사이로 두 눈이 드러난다. 의외로 신병의 얼굴은 험악한 인상이며, 연기 사이로 빛나는 두 눈은 야수의 그것처럼 강렬한 기운으로 번들거리고 있다.

    화면 5)은 순덕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남자가 단짝이었던 후배마저 쏘아야 하는 처지에 빠진 장면이다. 우연히 구한 총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는 눈빛 역시, 애인을 죽이고 후배를 타락시킨 군인(외부인)에 대한 증오와 경계로 가득하다. 이 남자의 눈빛과 표정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자신들이 죽음의 위험에 처하면서도, 상대를 증오하지 않았던 제주도민 치고는 상당히 도전적인 표정이 아닐 수 없다.

    화면 6)은 미래에 대한 영감과 기대를 보여주는 화면이다. 무동의 아내는 아이를 낳은 후에 죽고, 아이는 어른들이 모두 죽은 세상을 이어받는다. 다행인 것은 아이의 표정이 무척 밟고, 밝은 햇살이 아이의 곁을 지킨다는 점이다. 탄압과 살육의 섬 제주도에서 이 아이는 또 다른 세대로 성장할 것이고, 결국에는 이때의 ‘삼촌들’처럼 이 섬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그 가녀린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은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다.

     

     

    3. 도래하는 의미, 얼굴

     

    자크 오몽은 얼굴을 ‘도래하는 의미’라고 했다. 영화관의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배우의 얼굴()을 보고, 그 표정으로부터 상황과 의미를 파악하곤 한다. 〈지슬〉에서는 이러한 배우의 눈을 일부러 가로막음으로써, 관객들에게 상상의 해석을 종용하곤 했다. 두건을 드리워 얼굴을 가리기도 했고, 철모를 눌러써서 그 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도 했다. 인물들의 촬영 각도도 정면 각도를 상당 부분 제약했고, 중심 인물을 ‘클로즈―업’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룹처럼 보이도록 몹신의 비중을 높혔다. 그래서 인물들의 형상은 다소 모호하거나, 여러 인상들과 결합된 중층적 인상으로 보이도록 유도되었다.

    화면은 아주 멀리서 그림 같은 풍경을 선택하고, 배우의 얼굴보다는 얼굴 바깥의 분위기와 풍경 그리고 제주의 환경을 포착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것은 좁게는 거리감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고, 넓게는 역사적 환경 속의 인간을 제시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지슬〉은 연기의 측면에서, 인물의 표정 못지않게 그 이면 깔려 있는 배경으로서의 역사와 자연을 요구했던 작품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지슬〉의 배우들은 개인 연기가 아니라, 집단과 자연 그리고 역사가 어우러진 통합적 표정의 연기를 펼쳐야 했다(이러한 연기의 중심 이동이 애초부터 면밀하게 설계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제주도민으로서의 배우들은 이러한 사실을 태생적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인간 1

    자연 속의 인간 2

    자연 속의 인간 3

    자연 속의 인간 4

     

    위의 화면은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포착하고 있다. 그들은 말 잔등처럼 구부러진 산등성이 위로 뛰어올라가고 있고, 그들의 동선을 따라 시간이 흘러 사위는 어두워진다.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 가까이 접근하여 그들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위험과 초조를 잡아내기보다는, 지그시 거리를 유지하고 대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점(카메라 테크닉이 아니라)은 그들은 제주도 사람들답게 그들 스스로 이러한 제주도의 자연과 어울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터전을 잘 알고 있었고, 그 터전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기는 이러한 점에서 이중적이다. 그들은 내면의 슬픔을 간직한 존재로 연기를 해야 했지만, 그들의 거처는 이러한 슬픔을 포옹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공간이었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이중성이 더 큰 모순으로 느껴져, 안온한 공간마저 불온함으로 물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지만, 이러한 연기와 카메라의 일체감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이색적인 충격을 주는 것 역시 막을 수 없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작품 후반부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고개를 들고’,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연기는, 그룹 초상화 혹은 집단 초상화로 고착되던 제주 민초들의 모습에서 ‘각성’과 ‘개안’의 이미지를 추가한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누구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인물들이 이러한 ‘개안’과 ‘응시’의 표정을 드러내는 순간을 맞이하곤 했다(위의 화면 4~5)는 그중 일부에 해당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응시의 순간은 대부분 죽음과 조우한 순간이었거나, 죽음을 각오한 순간이어야 했다.

    자크 오몽은 영화가 ‘얼굴과의 관계를 통제하면서부터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얼굴의 역사가 얼굴 표현성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얼굴 표현을 이용한 자유로운 감정 기록의 역사’라고 의미 부연한 바 있다.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은 이러한 얼굴 표현을 이용한 제주도민의 역사, 즉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내면의 감정을 감추어야 했던 숨죽인 이들의 역사를 감정의 기록으로 표출한 언어이다.

    제주도 4.3은 제주도민에게 많은 것들을 억제시켰다. 그중에서도 비극적인 것은 새로운 얼굴을 대하는 감정의 억제이다. 그들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설령 호오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특히 외지인들에게 이러한 상반된 것 사이의 분명한 선택을 드러내는 일은, 자신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믿어졌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믿음과 경계는 영화 내에 조심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4. 경직된 표정의 역사

     

    제주도의 역사는 경직된 역사였고, 그래서 제주도민의 얼굴은 경직된 감정의 기록이어야 했다. 〈지슬〉의 배우들은 이러한 경직된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일반적으로 경직된 얼굴은 영화 내에서는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해악으로 평가받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경직성이 영화의 언어로 작용하는 울림을 중시했고, 그것은 작품의 내용과 부합하였다.

    비록 배우들은 전문적인 연기력이 떨어졌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를 통한 편안한 연기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사연을 자신만의 무표정과 경직성으로 들려주는 발상의 전환을 이룩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단체 사진 같은 포즈와, 무표정한 얼굴의 도열을 들 수 있다.

     

     

    7) 동굴로 피난 가는 마을 사람들

    8) 동굴로 숨어 든 마을 사람들

    9) 동굴 바깥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

     

    화면 7~9)는 마을 사람들의 단체 모습이다. 화면 7)은 토벌을 피해 동굴로 피나가는 도정에서의 마을 사람들이고, 화면 8은 동굴에 도착하여 낮게 웅크린 마을 사람들이며, 화면 9)는 동굴 생활이 답답하며 밤에 몰래 바깥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종의 그룹이자 단체이고, 확대된 가족들이자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인상으로 이해되고, 하나의 이미지로 죽어간다. 감독은 그들이 죽은 자리 옆에 ‘소지’를 행함으로써, 일종의 합동 분향을 시행하기도 한다. 그때는 피해자로 죽어야 했던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해자고 역시 고통 받아야 했던 군인(토벌대)도 마찬가지이다.

    오몽은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인상이 하나의 초상화 혹은 행실도로 남기 위해서는 집단 전체가 한 사람으로 ‘봉합된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봉합된 얼굴이라는 전체를 대변하는 총체적 인상, 혹은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특정 표정일 것이다. 화면 4~6)은 차례로 반성, 증오, 희망 등의 메시지를 풍기는 봉합된 인상일 것이고, 오멸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인상은 화면 6)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채로운 인상이 하나의 ‘봉합된 얼굴’이라는 난해한 은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단의 이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하겠다.

    오멸이 보여주는 집단은 느리고, 무디고, 명민하지 않으며, 그래서 어리석게 느껴지고, 결국에는 안타깝게 포착되는 경직된 초상들이다. 그러한 그들의 인상은 화면 7)처럼 멍하고 순한 표정이거나, 화면 8)처럼 자유분방하고 태평한 표정일 수도 있다. 화면 7)과 화면 8)의 상황은 급박하고 긴장감이 넘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고 또 느긋하다. 오늘 못 찾으면 내일 찾으면 되고, 내일 모레면 집에 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화면은 역으로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화면 7~9)는 낮게 가라앉은 집단과, 그 집단을 위협하듯 둘러싸고 있는 무언가로 구분되고 있다. 집단은 아틀라스의 하늘처럼 무거운 무엇인가를 짊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화면 7)에서는 나무와 숲이, 화면 8)에서는 돌과 천정이, 화면 9)에서는 깜깜한 어둠과 다가오는 공포가 그들을 엄습할 듯이 포위하고 있다.

    이러한 카메라 구도는 그 안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경직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거나 생각 없는 사람처럼 시선을 풀어놓고 있는 그들의 자세와 대비된다. 위험은 다가오는데,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것은 묘한 아이러니이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위태롭지만, 정작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태평하다는. 그렇기 때문에 제주의 4.3은 제주도민의 기억 속에 경직과 인내로 고여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마지막 자세가 그러했기 때문에.

    〈지슬〉의 연기 팀이 주목받는 이유는 개별적인 연기 역량이나 특출한 능력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저 자세로 낮게 포복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험난한 토벌에 인간적인 믿음으로 대응하는 무던한 심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난을 많이 당한 이들(제주의 탄압과 민란의 역사를 감안하면)만이 자연스럽게 전수받을 수 있는 표정을 그들은 알고 있었고, 더도 덜도 아닌 경직된 표정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주목되는 점은 그들의 내면에 지금쯤은 불같은 분노가 퍼져나갔을까 하는 점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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