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
  • ▶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거리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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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온도



    김남석(부경대 교수, 영화평론가)



    1. 거리(disance)


    거리(distance)는 생물의 생태에 절대적인 조건이다. 동물과 식물은 생존을 위해 타 개체와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이러한 습성은 생각보다 생물의 생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비록 이 거리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만, 궁극적으로 일정한 패턴을 보이게 마련이다. 맹수들은 사냥터를 유지하기 위해서―말 그대로 사냥터를 독점하고 활용하기 위해서―자신의 영역을 결정하고, 그 영역을 표시하고 타 개체로부터 방어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산의 나무도 지나치게 밀집되면 서로의 생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식목 시점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존의 거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가령 공원에 벤치를 가설한다고 하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 그 간격을 마냥 넓게만 가설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벤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면, 그 벤치가 있는 공원은 황량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가깝게 가설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벤치에 나누는 이야기가 옆 벤치에 전달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벤치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제한될 것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 사람들은 이 적정한 거리를 찾기 위해서 무척 노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거리감은 각종 사회 시설과 문화 관습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가급적이면 다른 손님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만일 음식점이 만원이고, 혼자 식사를 하는 손님이 있는 테이블만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자. 새로 들어온 손님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사람은 실례한다고 말하고 그 손님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자리이므로, 그렇게 해서라도 식사를 하겠다는 의도가 강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식당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낯선 상대와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에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거리의 문제는 생각 외로 각종 사회 시스템을 건설할 때 중대한 화두를 이룬다. 회사에서 업무부서 혹은 회사원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가? 공공시설과 공공도로의 거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지하철 의자는 몇 개로 어떻게 놓아야 하고, 버스의 의자 폭과 간격은 얼마가 적당한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주장한 개체 간의 거리감은 이러한 거리감에 대한 총체적인 시야를 확대해 줄 것이다. 에드워드 홀은 본래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롯한 원시 부족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의 사회 문화 시스템을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성과들을 발견했고, 이를 요약 정리하여 안정된 체계의 문화 이론을 정립했다. 그 중에 대인거리(distances in man) 이론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사회적 적용 실태를 함께 논한 이론이다.


    홀에 따르면 인간의 대인거리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네 가지 거리는 가까운 거리부터 차례로 ‘친밀거리’, ‘개인기본거리’, ‘사회교제거리’, ‘공적거리’로 규정된다. 친밀거리(intimate distance)는 밀집거리(0~45cm)라고도 하는데, 대화보다는 몸의 접촉을 중시하는 거리이다. 두 개체 간의 신체적 거리는 닿아 있는 경우가 많으며, 연인이나 가족 등 친밀한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만 가능한 거리감이다.


    개인기본거리(personal distance)는 45~120cm 정도의 거리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거리에서 중시되는 것은 개인 간의 친밀도이다. 비록 친밀거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을 때 취하는 거리감으로, 주로 친구 간의 대화나 가까운 사람 사이의 식사 대접 등에서 나타나는 간격이다.


    사회교제거리(social distance)는 120~360cm 정도의 거리를 의미하며, 공적인 사무나 대화에 요구되는 거리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거리감은 두 사람 사이에 다른 1~2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하는데, 이 간격은 그렇게 멀지도 않으면서도 마냥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거리감에 해당한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혹은 동료 간의 거리감은 이 사회교제거리를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적 거리(public distance)는 공중 거리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360cm 이상의 거리감을 의미한다. 청중과 연사의 거리, 혹은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이 거리에 속하며, 비교적 멀리 떨어진 거리로 요약할 수 있다. 서로 모르는 두 상대는 공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거리감은 사회생활 혹은 가정생활에서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신입 사원으로 직장에 들어와서는 ‘공적 거리’를 유지하게 되다가, 시간이 지나 조직에 적응하고 친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다른 구성원들과 가까워지면 이서 이 거리는 점차 사회교제거로로 좁혀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기본거리를 이내로 접근할 수 있는 사적 친밀감을 지닌 관계로 나아가기도 한다.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이 개인기본거리는 신체적인 접촉이 가능하고 상대에 대한 내밀한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친밀거리로 전진하기도 한다.



    2. 거리 조절에 실패하는 동물들


    동물들은 거리 조절에 실패할 경우 중대한 위기를 겪게 된다. 한 무리의 사자 영역에 다른 사자가 침범했을 경우, 두 사자는 중대한 격전을 치룰 수밖에 없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떠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와 가족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만일 두 사자의 성별이 다르다면 연인 관계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두 사자 중 하나는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두 숫사자 사이의 거리는 공적 거리 이상이어야 하고, 만일 암수 사자의 거리라고 한다면 친밀거리나 개인기본거리 유지도 가능할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사자는 자식일지라도 일정 거리 이상으로 유지하려는 속성이 강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공적 거리 이상으로 밀어내곤 한다.


    이러한 속성은 비단 동물에게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영화 〈연애의 온도〉는 이러한 거리감이 서사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사내 연애를 다루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내 연애는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거리감의 넓힘과 좁힘으로 설명되며, 이 거리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폭도 결정된다.


    영화상 현재에서, 동희(이민기 분)와 영(김민희 분)은 3년 넘게 남몰래 사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상태이다. 영화는 과감하게 두 사람의 전사(前事, pre-history)를 제거하고 헤어진 시점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작 방식은 생각 외로 과감한 설정일 수 있고, 보는 이에게 이전의 문제를 추론할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자극일 수 있다.


    서사의 전개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헤어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는다. 감정싸움이 격화되면서 밝히지 말아야 하는 비밀까지 밝히게 되고,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동료들 앞에서 싸우기도 한다. 감정싸움의 장면들은 의외로 솔직하고 대담하게 구성되었다. 솔직 대담한 구성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결국 연인들의 싸움이란 감정적 거리감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사건임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회사 동료로서 동희와 영은 사회교제거리 이내로 접근하면 불편한 사이이다. 아니 적어도 그들은 3년 이전에는 사회교제거리 밖에 놓여있던 ‘그냥 동료’였다. 그들이 근무하는 은행의 좌석 배치를 보면 동희와 영은 같은 대리급 사원으로 적어도 3~4미터 정도 떨어진 채, 공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연관된 업무 관계로 인해 그들은 협조와 대화가 필요하고, 그로 인해 사회교제거리 정도로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헤어지고 난 이후의 풍경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공적 거리로 돌아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른바 공적 거리→사회교제거리→개인기본거리로 접근했고, 서로에 대한 육체에 익숙해지면서 친밀거리로 접어들었을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 사이의 친밀거리는 헤어지고 난 이후 다시 섹스를 하면서 화면상에 공개되는데, 비록 서사의 전사로만 친밀거리가 설정되고, 이러한 설정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두 사람이 3년의 비밀스러운 연애 기간 동안 이 거리를 유지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직장 동료와 상사들은 동희와 영이 비밀스러운 사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잤느냐’는 사실에 호기심을 집중한다. 이러한 뒷담화는 실제 현실에서도 자연스럽게 포착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그들의 연애(의 거리)가 어디까지였는가를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개인기본거리에서 끝났느냐, 아니면 친밀거리까지 접근했느냐.


    거꾸로 말하면, 동희와 영의 감정 다툼과 자존심을 잊은 싸움은 친밀거리까지 진행되었던 그들의 감정을, 다시 사회교제거리나 공적 거리로 넓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이격 거리가 멀어지면서,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가령 동희는 영의 개인교제거리로 다른 사람(민차장)이 침범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영 역시 동희의 개인교제거리 내로 새 애인 ‘효선’이 다가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상대를 밀어내고 비워둔 친밀거리 내에, 다른 누군가를 정위시켜야 하는 상황을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이 강박관념은 상대에 대한 거리 조절에 대한 불순한 저항감으로 나타났다. 감정적으로는 친밀거리 내에 위치하지만, 그들의 몸은 공적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낀 것이다. 거꾸로 여길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는 공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옳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몸은 친밀거리를 기억하면서, 내면의 불일치가 생겨나고 이것이 외부로 불거지게 된다. 그들 내부의 문제가 불거지는 셈이다.


    그 어떤 것이 진실이든, 공통된 문제는 몸과 마음의 거리 두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개의 문제는 기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거리두기가 서로 어긋났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이다. 이 어긋남은 거리의 불협화음을 빚었고, 대인 관계의 불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불화는 〈연애의 온도〉를 추동하는 힘으로 설정되었다.



    3. 거리를 좁히려는 운동성


    영이 민차장과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은 동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동희는 자신과 영의 거리가 공적 거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영에 대한 사적 감정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먼저 주위 사람들을 닦달해서 영의 사생활을 캐냈고, 민차장을 찾아가서 폭력을 휘두르며 영의 보호자 행세를 했으며, 마지막에는 영을 찾아가 그녀의 행동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영에 대한 소유권 내지는 독점권을 주장하는 소치와 다르지 않는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영 역시 응당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재미있는 관찰을 가능하게 한다. 자기 책상을 고수한 채 양 업무 사이를 오고가는 중간자를 나무라던 사이나 택배로 서로에게 물건을 전달하는 사이에서, 어떠한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접근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이 상황을 거리이론으로 정리하면 개인기본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리감은 감정의 문제만큼 몸의 거리도 접근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러한 거리감을 더욱 좁히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숙소를 나와 각자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서로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들이 약속하는 지점은 ‘헤어진 지점’이다. 헤어진 지점? 그 지점은 어디인가. 물론 그들이 말한 일차적인 의미에서 헤어진 지점은 말다툼을 하고 각자의 갈 길로 간 숙소 앞 지점을 뜻한다. 하지만 동시에 ‘헤어진 지점’은 그곳 말고도 여러 군데일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 적나라하게 싸운 지점일 수도 있고, 영화에서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두 연인이 대판 싸우고 헤어진 자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오래 전부터 둘 사이에 존재했던 불일치의 지점일 수도 있다.


    ‘헤어진 지점’은 두루뭉술하지만 상당히 다의적인 의미를 누적하고 있는 대사였다. 이러한 대사를 부여받은 두 사람은 그 지점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 헤어진 지점을 통해, 거리 조절에 실패한 혹은 먼 거리감으로 사라져버린 어떤 시작점도 찾으려 한다. 흥미롭게도 이 지점은 서로 인접했지만, 완전히 다른 환경을 지닌 두 길로 표현된다. 헤어진 지점에 도착한 남자는 차도에 있었고, 반대로 여자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가던 두 사람은 비록 만날 수 있었지만, 여자는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에 있었고, 남자는 그 길 위로 엇갈려 지나가는 차도 위에 있었다. 서로를 볼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은 없는 상태였다. 이때 남자는 과감하게 비탈길을 내려가(그야말로 구르다시피해서), 만날 수 없는 두 길을 하나로 합쳐놓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자, 여자는 묻는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다시 만난 연인이 다시 헤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사실을. 남자는 대답한다. 그래도 그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그들이 말한 길과 연애는 모두 거리로 환산될 수 있는 개념이다. 공적 거리에서 개인기본거리로 좁혀든 그들의 거리는, 다시 친밀거리로 좁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친밀거리는 섹스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섹스는 그들의 첫 섹스만큼 가슴 떨리는 일로 묘사된다. 그들은 아마도 다시 친밀거리로 접어드는 그들의 모습에 흥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에게 친밀거리가 필요한 이유는 친밀거리 그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그 바깥 거리에서 그 안의 거리(친밀거리 내)로 접어드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동희와 영이 헤어지는 이유는, 아니 이 세상의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다시 거리를 넓혔다가 좁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 때문이 아닐까.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은 운동성으로 가시화된다. 동희는 영을 다시 만나기로 결정한 순간(전화를 끊고 난 이후) 점차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걷는 듯 귀가에 임하지만, 점차 걸음이 빨라지고, 나중에는 뛰기까지 한다. 그는 멀리서 터널을 통과하는데, 이때 닥쳐온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점차 빨라지는 개체의 이동 속도는 내연기관처럼 내부의 온도를 상승시키게 마련이다.


    장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걷고 있는 흙길은 먼지가 날리는 길이고, 가로등도 완벽하지 않는 외진 길이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움 없이 귀가길에 올랐고, 그녀 역시 점점 걸음을 빨리 하기에 이른다. 그녀 역시 동희와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으로 인해 내부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은 이동에 의해 가능하고(그것인 신체이든 감정이든 간에), 이러한 이동은 운동성을 가속화시켜, 결국에는 내부의 온도를 점화 상승시킨다. 내부의 온도가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은 섹스의 정점과도 상통한다고 하겠다. 남녀는 3미터 이상의 거리로 지나야 했지만, 그 거리감이 1미터를 지나고 50센티미터를 지나면서 궁극에는 합일되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 섹스로 가능한 지점이었다.



    4. 상승한 온도는 반드시 내려간다


    거리감이 제로에 이른 후에 두 남녀는 제로의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 번 결별은 제로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고, 상대에 대한 꾸준한 노력만이 제로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첩경이라는 믿음을 전파했다. 상대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노력. 하지만 이 노력은 의외로 또다른 부작용을 가져온다.


    동희는 장영을 사랑하고 또 다시 찾아온 제로의 거리감에 만족하지만, 자장면을 먹다가 장영이 한 말에는 흠찟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혼하자’. 동희의 놀람은 장영에게도 놀람이 아닐 수 없다. 여자의 제안에 남자가 머뭇거린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이 그렇게까지 해서 남자와의 거리를 제로로 유지하려 한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개인기본거리를 다소 넘어서는 거리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자장면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한 사람이 들어갈 만큼의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는 ‘결혼하자’는 말에 의해 더욱 확대되는 인상을 전하고 있다. 그들은 제로의 거리감을 유지하고자 ‘결혼’이라는 화두를 꺼내 대화하고 있지만, 그들의 간격인 이미 개인기본거리로 물러난 상태이고, 어쩌면 그 이상의 거리로 물러날 가능성도 증대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장면에서 연인은 서로를 쳐다보기보다는 한 방향을 보고 있다(흔히 부부나 오래된 연인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때 취하는 거리이자 방향감이다). 다른 어떤 설명보다 이러한 자세와 위치는 두 사람 사이에 내재하는 일정한 거리감을 잘 보여준다. 이 거리감에 ‘결혼’의 문제가 접근하면서, 오히려 증폭되는 인상을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친밀거리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 했다. 여자의 제안에 남자는 ‘결혼하자’고 흔쾌하게 대답했고, 여자는 기쁜 듯이 이 대답을 몇 번 확인한다. 아마 그들은 그 순간에 진실을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자극으로서의 결혼이 필요했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상대에 대한 의무와 신뢰가 이러한 발언의 진실성을 높였을 것이다. 나는 이 발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된 연인이 취할 수 있는 거리 좁히기의 전형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혼과 결혼 약속은 현실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잠재해 있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후 남자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일이 늘어난다. 비록 영화는 그 짜증의 원인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좁혀진 거리감으로 인해 생겨난 무의식적 압박이라고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자 역시 이러한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두 사이의 거리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상황을 부인하며 최선을 다해 친밀거리를 유지하는 일뿐이다. 그들은 전화를 걸어 성의껏 상대의 행방을 탐문하기도 하고, 상대가 응낙하지도 않은 약속을 잡아놓고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하며, 남자의 마음을 열고 스스로 털어놓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모든 대처법이 무산되고, 그녀의 시선도 점차 무심해진다.


    무심한 시선은 거리감으로 변화되어 영화 곳곳으로 침입한다. 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여자의 전화를 피하고, 여자가 아닌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려 한다. 그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여자와의 거리 이격이 필요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권태이고 싫증이겠지만, 홀의 견해대로 하면 지나치게 밀착된 거리감으로 인한 생존 본능일 수도 있다. 남자는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을 가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실천하고자 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남자들의 외향적 행동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남자들 특히 남편들은 주말에 테니스를 치거나 낚시를 떠나면서 가정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퇴근 시간을 어기면서 일을 하거나, 정시에 퇴근하고도 밤늦게까지 술자리에 투신하기도 한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경우들은 거리 확보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 역시 이러한 거리두기가 친밀거리를 훼손하는 계약 위반임을 알게 되고, 무리한 약속을 감행하면서까지 멀어진 거리를 다시 좁히기로 한다. 느닷없는 월차 내기, 비 오는 날 놀이동산 가기, 실수를 만회할 요량으로 더욱 거칠어지는 행동하기 등이 그것이다.


    동희와 영이 비오는 날 찾게 된 놀이동산은,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연인들에게 최악의 데이트를 선사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놀이동산을 찾은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정성껏 싼 김밥과 음식은 자책감에 사로잡힌 남자는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여자는 이러한 남자를 보면서도 화를 내지 못하고, 남자 역시 자신의 대책 없는 행동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거리감 조절과 이를 둘러싼 감정이 폭발하면서, 남녀는 놀이공원에서 다시 한 번 자존심을 건 싸움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싸움이 이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놀이동산에서 다투었고, 그 다툼이 헤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장소에 다시 갔고, 똑같은 싸움을 통해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시 싸울 때까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거의 싸움과 한 가지 달라진 점도 있긴 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예전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롤러코스터를 탑승했고, 이로 인해 마치 비 개인 후의 맑은 날씨처럼 잠시 동안은 자신들의 실패(1차 결별)를 만회하는 듯 했다는 점이다. 서광의 전조처럼 그들 앞에서 그친 비와 쏟아지는 햇살은 그들이 재회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별은 예정대로 다가왔고, 서광처럼 찾아온 날은 그들의 두 번째 이별의 징표가 되고 만다.


    첫 번째 결별과 달리, 그들은 담담하게 헤어진다. 영화는 그들의 두 번째 이별(공식적으로만 하면) 이후에 어떠한 이별의 과정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회식 장소에서 다시 자존심을 걸고 싸웠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생긴 애인으로 인해 한바탕 소동을 겪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절차를 생략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다툼과 소동 역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뻔한 일들이라고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어차피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달라질 것도 아니라는 냉소적인 태도도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남녀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그 완전한 끝은 몸과 마음의 거리가 모두 멀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헤어지는 장면이 담담할 수 있다는 것(장영은 집에 들어와 토크쇼를 보면서 웃기까지 한다), 몸과 마음의 거리가 불일치를 형성하지 않으면서, 두 요소 모두 상대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모든 연애는 이러한 담담함으로 인해 끝날 수 있다. 담담함이 생겨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별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멀어진 거리는 가까워지려는 욕망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연애의 온도〉의 마지막(에필로그)은 솔직하게 말해 군더더기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이 마지막을 볼 때는 차라리 없었으면 할 정도였다. 서로 다른 직장에서 평온할 정도로 담담한 일상을 보내던 두 연인이 영화 시사회를 계기로 다시 만날 기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부차적인 설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사회장에서 만난 두 연인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만남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카메라는 영화 관람을 포기하고 길거리로 데이트를 떠나는 연인을 뒤따르면서 영화를 종결시킨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추적이 반드시 행복한 결말만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다시 만난다고 해도 반드시 두 번의 이별과는 다른 결말을 보장받는다고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만났고, 또 가까워지기로 결정했다. 왜 그럴까.


    1차로 헤어진 후 장영이 했던 말을 상기하자.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는 말. 물론 이 말의 끝에는 다시 만나다 해도 다시 헤어지지 않을 확률은 낮다는 단서가 붙긴 한다. 그렇다면 두 번 헤어졌다고 해도, 다시 만날 확률은 여전히 높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헤어진 이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만나지 못할 이유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리감을 적용해 본다면, 멀어진 거리는 그 만큼의 운동성을 불러올 수 있고, 그 운동성은 상대를 향한 온도를 높일 수밖에 있다. 따라서 문제는 그 거리가 아닐까.


    일상의 연애와 결혼에서 이 거리감은 중요하다. 거리감을 제로 상태로 유지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라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거리감은 생존의 필수적 조건이다. 이 거리감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에만 매몰되어서는 생존의 기본 토대를 유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거리감은 상대적인 것이다. 즉 거리의 상대성은 멀리 놓여 있어야지, 가까운 것의 거리감을 인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말과 그 뜻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멀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결론으로 모아질 수도 있다.


    동희와 장영에게 필요했던 것은 멀어지는 연습이었고, 어쩌면 멀어졌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용기였던 것은 아닐까. 연인들은 가끔 일탈을 꿈꾼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에서 벗어나기를 또한 기대한다. 여행을 가고 낯선 이를 만나고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탈은 결국은 자신의 일상과 중요한 타인에게 돌아오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듯이, 거리감 역시 가까워지기 위한 이탈일 수 있다. 거리는 온도를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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