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
  • ▶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차가운 전쟁과 따뜻한 바람
  • 차가운 전쟁(콜드 워)과 따뜻한 바람

     

    김남석(부경대 교수, 영화평론가)

     

     



    1. 의외로 따뜻했던 부산국제영화제

     

    2012년 10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를 돌아보자. 2012년 가을에 접어들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부산국제영화제도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개막을 알리는 초청장이 날아들었고, 여기저기 붙은 포스터와 깃발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전화도 걸려왔고, 초청장을 구해달라는 청탁도 날아들었다. 혼란스러웠던 작년의 기억을 되살리는 전화였고, 부탁이었지만, 의외로 차분할 수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영화의 전당’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일까. 개막식장도 낯설지 않았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새롭게 단장한 ‘영화의 전당’에서 치러졌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풍치를 잃었지만, 세련된 건물을 얻었다는 상찬을 들었던 영화제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새로운 극장 시스템과 개폐막식 풍경에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막식 표를 구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던 상황이었다. 광활했던 수영만 요트경기장과 영화의 전당을 바꾸었기 때문에 발행한 어쩔 수 없는 사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참담했다.

     

    반면 2012년은 달랐다. 사람들은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극장으로 찾았고,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던 1년 전의 풍경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질적이었던 개막식장의 풍경이 한결 친근해진 것은 이러한 변화 때문일 것이다. 분명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장의 풍경은 2011년과 달리 안정적이었다. 더구나 날씨마저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면서 많은 관객들이 작년보다는 편안하게 개막작을 볼 수 있었다.

     

     

    2. 스크린과의 ‘차가운 전쟁(콜드 워)

     

    내가 2012년 개막식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관객들과 함께 개막작 보기’이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나 영화 관계자들은 개막작을 보지 않는다. 개막식이 끝나고 배우들이 떠나면, 곧바로 배우들에 열광하던 열혈 팬이 빠져나가고, 그 뒤를 이어 평론가와 관계자들이 빠져나간다. 그들은 바쁘다고 말하고, 혹은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1년 만에 찾아온 부산국제영화제이니,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하지만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보지 않는 현상이 당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막작을 관객들과 함께 보게 되면, 몇 가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것은 혼자서, 혹은 미리, 또는 폐쇄된 상영관에서 볼 때는 들지 않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들 중 가장 빈번한 것은 “왜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골랐을까”라는 의문이다.

     

    야외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을 쉽게 인정하게 된다. 밖에서 들리는 함성, 호루라기 소리, 외부의 불빛, 광장을 메운 관객들의 부스럭거림, 가끔씩 밀려오는 바람, 은근히 파고드는 추위. 도시의 불빛과 소음은 극장을 폐쇄된 집중 공간으로 만들지 않고, 시장과 거리의 연장선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하기에 야외에서 영화는 진정한 생명력을 테스트 받을 수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는 살아남고(다시 말해서 진정한 영화의 집중도를 갖춘 영화로 평가받고), 그렇지 못한 영화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외면’은 즉각적이다. 자리를 털고, 가지고 온 짐을 챙기면서, 동시에 “왜 이런 영화를…”로 시작하는 불평과 함께, 입구로 향하는 관객들이 그 표면적 모습이다. 날씨가 추운 날이면, 그 부산한 움직임들은 더욱 빨라진다.

     

    몇 년 전인가, 비가 온 개막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더 빨리 이탈했고, 더 빨리 투덜거렸다. 그 만큼 날씨는 개막식 당일의 풍경과 관련이 깊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따뜻한 날씨에서 치러졌다. 가지고 온 담요가 무색했고, 관객들은 떨지 않고도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끝까지 많은 관객들이 남아 〈콜드 워〉를 관람하는 이례적인 풍경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온전히 영화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무난했을 뿐, 특유의 개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최초의 홍콩 영화 개막작이라는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왜 이런 영화를…”로 시작하는 투덜거림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예년의 개막작과 개막식 풍경과는 달리, 관객들은 인내심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친숙해진 영화의 전당 풍경과, 바람을 막아주는 건물 외벽과, 따뜻했던 날씨에 상당 부분을 빚졌다고 할 수 있다.

     

     

    3. 개막작에 얽힌 복잡한 상념과 간단한 답안들의 모음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엮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번제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 개막작은 누가 선정하지?”

     

    한때 궁금해서 이 문제를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직접 문의한 적이 있다. 대외비로 생각해서인지 정확한 답변을 얻지는 못했으나, 별도의 관련 절차를 통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위원장이 직접 고른다는 말을 들은 것이 전부이니까.

     

    세계의 다른 영화제는 어떠할까. 우리는 흔히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남의 사례를 탐구하곤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굳이 그 답을 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남이 어떻게 하고, 관례가 어떠하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은 예외이겠지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개막작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관객들과 더욱 깊숙하게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측면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선구적이고 모험적이며 창의적이라는 칭찬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사실이다. 상영되는 영화의 편 수나, 초창자의 면면, 다양한 섹션, 신선한 프로그램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개막작을 부산국제영화제의 전부로 아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러한 논리를 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제 나름대로의 개성과 ‘컨셉’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컨셉은 영화제를 만드는 집행부뿐만 아니라, 그곳에 작품을 출품하는 영화인들, 그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 영화제를 뒷받침하는 관련 시설들이 모여서 형성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더구나 영화의 경우, 특정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될 수 없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개막작)를 위한 영화는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그리고 자신들이 선정한 작품을 공식적으로 내거는 것은, 영화제가 해야 할 기본적인 임무이며,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더욱더 중요한 컨셉들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부상’ 혹은 ‘아시아 영화들 사이의 균형’이라는 장점을 지녀왔던 것이 사실이며, 적어도 개막작 선정에서 이러한 점은 비중 있게 제시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인정과 칭찬은 과거의 장점들에 대한 고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질문마저 무마할 수 있는 예외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조건을 인정하고 그동안의 시도를 칭찬한다고 해도, 개막작을 누가 고르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타의 영화제와 차별화된 영화제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좋은 영화를 고르고 이를 많이 이들이 즐기고 인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의 ‘좋은’은 여러 가지의 의미일 것이다. 평론가들에게 ‘좋은’은 도전 정신과 작가 의식일 것이고, 기획자들에게 ‘좋은’은 상업성과 대중성일 것이며, 연기자들에게 ‘좋은’은 자신들의 개성과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들은 개막식장을 일찍 빠져나간다. 그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적어도 개막식장을 지키는 이들은, 일반 관객과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이 보는 영화인데, 그들에게 ‘좋은’ 작품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것이 원칙이지 않을까.

     

    많은 대중들이 원하는 영화는 간단하다. 자신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영화. 그 감동의 폭과 깊이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작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영화를 골라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들이다.

     

    이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개막식장에 모여든다. 자신들 스스로가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자신들을 감동시킬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그 전문가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으면 하는 것이다.

     

     

    4. 범인 찾기와 범인 숨기기, 영화 찾기와 선정자 숨기기

     

    추리영화 혹은 범죄영화의 대명제는 범인 찾기이다. 범인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그 배후자가 될 수도 있다. 감추어진 진실이 될 수도 있고, 복잡하게 얽힌 은원 관계의 시초일 수도 있다. 왜 죽였고, 왜 숨겼는가를 알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법은 필연적으로 제작자 측의 ‘범인 숨기기’ 전략을 낳게 된다. 추리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 하면 단서를 모두 제공하면서도 관객들이 눈앞 범인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드느냐에 총력을 기울인다. 단서는 흩어진 채로 제공되고, 제공된 정보를 조합하는 능력은 관객들의 숙제로 남게 된다.

     

    ‘범인 숨기기’는 추리영화의 일반 문법으로 영화에 적용된다. 사건이 발생한다. 주로 누군가가 죽거나 귀중한 것을 잃거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 범죄 현장이 제시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혹은 해결해야 하는 누군가가 등장한다. 그 사람은 경찰이거나 탐정이지만, 때로는 범죄자이거나 킬러일 수도 있고, 일반인이거나 피해자일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범인 자신일 수도 있다. 이들은 추적자이며 탐색자로, 관객은 이들을 따라 수사의 현장으로 진입한다. 이들은 단서를 쫓아 범인 혹은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범인 혹은 진실을 찾으면, 영화는 종결된다.

     

    〈콜드 워〉는 납치된 홍콩 경찰을 찾기 위해서, 분주하게 단서를 쫓는 홍콩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영화 혹은 추리영화이다. 그들은 홍콩 경찰을 납치한 범인의 정체를 밝히고, 납치한 범인들을 밝히려고 하는 탐색자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결말에서 경찰을 납치했던 범인들이 실은 ‘납치된 경찰’이었다는 이색적인 결론을 내리고자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콜드 워〉는 추리영화이며 범죄영화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징은 필연적으로 범인 찾기라는 관객들의 목표를 자동 설정한다. 영화를 지켜보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범인을 찾아야 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주변의 용의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어느 한 사람 놓쳐서도 안 된다. 반대로 제작자 측은 관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를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떠한 사람도 완전히 무죄이거나 완벽하게 범죄자로 결론 내리지 않도록, 그 수위를 조절하면서, 많은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함부로 내려놓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범인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만이 영화 관람을 함부로 그만두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콜드 워〉도 이러한 서사 법칙을 적용한 영화였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심을 가중시키고, 이러한 의심을 관객들이 확대 재생산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경찰 승진을 둘러싼 부처장 간의 알력이 소개되고, 강력한 용의자가 주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배치된 것도 그 때문이다. 주인공으로 믿고 있던 인물까지 용의선상에 올리는 특단의 조치도 취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설정이고 의도일 뿐, 〈콜드 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콜드 워〉는 일반적인 추리영화의 문법을 활용했지만, 그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 기존 추리영화의 패러다임을 전복할 수 있는 영화적 개성을 선보인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관객들이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의도와 설정이 기존 영화의 일반적 문법 언저리를 맴돈다고 했을 때, 굳이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보아도 괜찮은 건지.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왜 선택되었고, 누구에 의해 선택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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