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석의 영화 이야기
  • ▶ 야구영화의 새로운 지평과 그 시작
  • 야구영화의 새로운 지평과 그 시작

     






    김남석(부경대 교수, 영화평론가)


     

     

     

    1. 기회와 승리의 야구영화

     

    ‘야구영화’라는 제명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엄연히 ‘야구’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고, 또 존재해왔다. 〈내츄럴〉(The Natural, 배리 레빈슨 감독, 1984), 〈메이저리그〉(Major League, 데이비드 S. 워드 감독, 1989),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필 알덴 로빈슨, 1989), 〈루키〉(The Rookie, 존 리 핸콕, 2002) 등이 그러하고, 우리나라 영화로는 〈YMCA 야구단〉(김현석 감독, 2002),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 감독, 2004), 〈글러브〉(강우석, 2011), 〈퍼팩트 게임〉(박희곤 감독, 2011) 등이 그러하다. 사실 야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야구의 인기를 그 원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구상의 영화를 대부분 만들고 있는 미국(할리우드)은 소외 말하는 야구의 본향이면서 최대 수요처이다. 한국이나 일본 역시 야구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인 국가이다. 비록 축구처럼 전세계적인 관심을 갖는 종목은 아닐지라도, 야구는 영화와 관련 있는 국가들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다음으로, 야구가 지닌 드라마틱한 성격 때문이다. 야구는 축구처럼 정해진 시간이 다하면 끝나는 운동이 아니다. 원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경기 시간이 지속될 수 있지만(한 회에 3명의 공격자가 아웃되지 않은 한 야구 경기는 계속될 수 있다), 동시에 경기 중간에 끊임없는 휴지(pause)가 일어나는 운동이기도 하다(대체로 심판이 판정을 내릴 때마다 작은 휴지들이 따라 붙곤 한다). 투수가 투구를 할 때마다 잠시간의 정회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주자가 없는 이러한 정회는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판이 공을 바꾸기도 하고, 타자가 ‘타임’을 외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야구는 심리적인 요소가 깊게 개입하는 스포츠라고 이해되기 일쑤이다. 야구를 ‘피지컬 스포츠’보다는 ‘맨틀 스포츠’로 분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야구는 한 점씩 득점하는 운동이 아니다. 야구는 한 번에 4점까지 득점할 수 있으며, 이러한 득점 기회를 살리기만 하면 한 회에 몇 십 점도 득점할 수 있다. 1회부터 8회까지 많은 것을 잃고도, 9회에서 대량 득점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스포츠인 셈이다. 복권처럼 소위 말하는 ‘대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경기이며,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공격권을 세 번(세 타자) 연달아 부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이 공수교체로 일어나는 스포츠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야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11점을 뒤지고 있어도 결국에는 타이스코어를 이룰 수 있고, 패색이 짙던 9회말 투아웃에서도 다량의 점수를 선취해 상대를 이길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야구는 사행적인 측면이 다분한 것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와 능력 발휘의 장으로 상찬되기도 한다.

     

    야구의 이러한 개성과 매력은 영화의 구조와 잘 부합된다고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인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한 선수가, 드라마틱한 역전을 일구어내며,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되는 줄거리는, 이러한 야구 영화가 흔히 취하는 서사였다. 9회말 짜릿한 역전 홈런이나 역전 위기를 무마시키는 통쾌한 수비(투구) 등은 우리가 야구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한 전형이었다. 한 때 이러한 호쾌함이 우리를 야구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2. 패배와 비애를 담은 야구영화

     

    하지만 야구영화도 식상함이나 상투성을 물리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추어졌던 실력과 스타성을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기회만이 야구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었고, 패배의 본질과 그 안에 숨겨진 삶의 의미를 묻으려 하는 용감한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령 〈루키〉나 〈슈퍼스타 감사용〉 등이 그러하다.

     

    〈루키〉는 일반적인 야구영화의 문법을 거스르는 영화였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성공한 야구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짐 모리스라는 실제 야구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야구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짐 모리스가 기념비적인 인생을 살았고, 그에 못지 않은 야구 화제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외형상 다른 영화들과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짐 모리스는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불세출의 투수도 아니었고, 신기록에 신기록을 이어가던 올스타 감 타자도 아니었다. 그는 어릴 적 어깨부상으로 야구선수를 포기해야 했던 무명의 야구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장이 야구계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는 성적보다는, 특이성 때문이었다.

     

    극중 현재에서 그의 직업은 화학교사이다. 동시에 그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어둠이 내린 운동장에 가서, 자동차 전조등을 켜고 투구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학생들도, 가족들도 그의 이러한 취미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그의 공이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고(되찾게 되었고), 그의 꿈이 과거의 기억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점도 함께 알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팀의 승리를 독려하는 그에게, 학생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제의를 건낸다. 자신들(학생들)이 경기에서 이기면, 감독(짐 모리스)도 선수 선발 캠프에 참여하여, 오래된 꿈을 도전하자는 제의였다. 짐 모리스는 무심결에 응낙하고, 끝내 학생들이 승리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하는 처지에 처한다.

     

    짐 모리스는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고(한 때 박찬호의 홈구장이었던 ‘앨링턴 볼 파크 구장’에서 데뷔했다), 세인들의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늦은 나이(35세)에 데뷔했기 때문에 남다른 관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짐 모리스의 보직은 불펜 대기였고, 처음에는 패전 처리였으며, 메이저리그 입성 기간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영광과 주목의 자리에 있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어야 했던―그것도 잠시―선수였다.

     

    영화에서 그의 데뷔 무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텍사스 구장. 짐 모리스는 지고 있는 자신의 팀의 패전 처리로 마운드에 오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 장면을 특별하게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마운드로 오르는 그의 발걸음 하나, 그가 던지게 되는 공 하나, 그리고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 몰려든 마을 사람들의 환호 한 마디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호하고 그들은 자랑스러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 나이 많은 ‘루키’였기 때문이다(실제로 짐 모리스의 데뷔 장면은 텍사스의 홈구장에 영화 팀이 직접 들어가 찍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극적 아이러니’를 지향했다. 짐 모리스는 야구 선수라는 어릴 적 꿈을 이루었지만, 그 실현은 사실 초라한 것이었다. 그는 영광된 자리에 오른 슈퍼스타가 아니라 궃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낮은 위치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데뷔나 영화의 결말은 화려한 성공은 아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인생의 승리라는 정 반대 요소도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아니 초라한 데뷔가 아름다운 시작일 수도 있다는 역전적인 사실을 보여줄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즉 초라한 야구에서의 데뷔는 어쩌면 화려할 수도 있는 인생에서의 성공과 맞서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형식은 한국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슈퍼스타 감사용〉. 어릴 적 보았던 프로야구에서 감사용은 패전의 상징이었다. 그가 나오는 경기는 대부분 소속팀이 지고 있거나, 결국에는 지고 마는 경기였다. 그와 그의 팀은 패배의 상징이었다. 사실 이러한 일방적인 패배는 야구 역사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사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프로야구 원년에는 본래 야구라면 그러한 일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일상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패전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감사용이 있었다. 실제로 그의 투구 내용은 직업 야구선수의 투구라고 평가할 수는 없었다. 그의 공은 아마추어를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그런 그가 프로야구선수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상황의 논리 때문이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시나리오가 몹시 궁금했다. 어떻게 감사용을 다룰 것인지? 그의 명예로운 기록인 ‘단 1승’을 거두는 경기를 마지막으로 할 것인지(통산 기록 1승 15패 1세이브), 아니면 유일한 세이브 기록인 1세이브 경기를 감동적인 결말로 삼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가 몸담고 있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약진(원년 최하위에서 이듬해 3위로)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 하지만 당초 예상을 깨고 이 영화의 마지막 경기이자 하이라이트는 박철순과의 맞대결 경기가 되었다.

     

    사실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말한다면, 이 경기는 감사용이 거둔 패배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경우일 수도 있다. 작품에서 이 경기의 감사용은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꽤 높았는데, 잘 했으면 ‘22연승’의 주인공인 박철순을 ‘19연승’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감사용과 박철순이 맞대결한 실제 경기는 16연승을 거둔 경기로 영화에서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 20연승 경기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아쉬운 경기 중 하나였던 경기가 바로 원년 우승팀 OB와의 맞대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실제로 감사용의 소속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원년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16전 전패를 기록했다).

     

    영화 속 야구 경기에 입각해서 감사용을 바라본다면, 그는 패배밖에 모르는 선수였다. 하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을 주인공을 했고, 그의 인생을 모델로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그가 영광스럽게 패배했던 경기를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채용했다. 이러한 설정 역시 아이러니에 속한다. 그는 경기에 패배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고, 그가 승리 앞에서 좌절하면서 진실된 승리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박철순과의 경기에 지면서 승리의 가치를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경기에서는 졌지만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고, 사랑까지 얻으면서 인생의 승리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구에는 졌지만, 인생에서는 승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결말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결말은 야구영화의 일차 진화에 해당한다. 관중의 환호와 함께 야구에서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물론 그러한 야구경기는 이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해왔고, 지금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대역전 드라마나 경이적인 승리의 기록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야구에서의 일이고, 그것도 드문 일이고,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관중들은 현실에서 드문 일이 야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야구장을 즐겨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러한 소재를 야구영화의 결말로 차용한 영화는 그러한 관중의 심리를 충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3.

     

    〈머니볼〉은 이러한 아이러니 결말을 가진 야구 영화 다음에 존재하는 새로운 야구영화로 판단된다(개인적으로 이차 진화라고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머니볼〉은 야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야구의 규칙을 몰라도 거의 지장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 말은 야구에 대한 구체적인 상식이나 세부 정보 없이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머니볼〉이 야구영화이면서 동시에 야구영화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단장이다. 그는 선수 출신 단장으로, 선수에서 스카우터로 다시 스카우터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구단은 메이저리그 최약체 구단으로 평가받았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가장 가난한 구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은 오클랜드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일보직전에서 패배하면서 시즌을 종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영화 속 빌리 단장의 말로 하면,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시즌을 끝내지 못했다). 아쉬운 패배로 우승을 거두지 못한 것도 아픔이었지만, 그 뒤에 더욱 처참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고한다는 점에서 아픔이기도 하다. 팀의 승리를 지키고 그나마 성적을 유지해주었던 주요 핵심 선수들이 타 팀이 제시하는 연봉에 이끌려 오클랜드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리가 아닌 돈을 선택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선택한 돈이 곧 그들의 가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큰돈을 풀어 선수를 사고, 사들인 선수들로 승리를 사며, 그 승리로 관중을 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빌리 빈은 그럴 수 없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빌리 빈은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싶었다. 아니 빌리 빈의 구단은 그러한 악순환에 동참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타개책을 모색해야 했다.

     

    빌리 빈의 선택은 과학적인 선수 채용과 선발이었다. 빌리 빈은 ‘피터 브랜드’라는 경영 참모를 등용하고 피터의 의견대로 선수들을 채용하기 시작한다. 피터 브랜드는 수학적인 데이터와 선수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팀에 필요한 선수를 선택하여 기용해야 한다는 확신을 지닌 스카우터였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야구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는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스카우터로 활약하던 이들과 갈등과 반목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는 팀의 감독과도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빌리 빈은 끝까지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자기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성공의 가시적 표현이 게임에서의 승리이다. 하지만 〈머니볼〉은 다른 야구영화처럼 그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지 않는다. 과장해서 감동을 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클랜드가 당초 예상을 깨고 선전을 하고 있다는 점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연승 신기록 20연승을 세우고 있다는 점으로 ‘겸손하게’ 표현될 따름이다. 그래서 〈머니볼〉은 반드시 야구영화일 필요가 없었다. 빌리 빈이 소속된 구단은 야구구단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러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축구구단일 수도 있고 또 그러해도 무방하다. 물론 미식축구구단이거나 아이스하키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야구(구단)만의 특징이 아니라, 삶의 보편적 원리로서의 돈과 운영의 철학에 대해 문제 삼기 때문이다. 축구구단도 그러한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미식축구구단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야구영화지만 야구가 아닌, 삶과 경영이라는 일반적 원리에 더욱 충실하고자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야구영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오히려 야구 대신 삶의 영화라고 불리는 편이 옳을 것이다.

     

     

    4.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내츄럴〉은 야구영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가 아닌가 싶다. 앞에서의 분류처럼 이 영화는 1단계 야구영화에 해당한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선수가 있고, 그 선수는 기적처럼 돌아와 팀에 ‘믿기지 않는 승리’를 돌려준다. 그리고 야구의 승리를 삶의 승리, 인생의 승리로 이어간다. 이러한 스토리는 영웅의 서사이고, 동시에 영광의 서사이다.

     

    지금 다시 지켜본다고 해도, ‘그 날’의 승리는 감격스럽고 장쾌한 인상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이러한 승리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낯설게 보일 때도 있다. 일상에서 겪는 고통과 수모, 실패와 좌절, 불이익과 상실감과 큰 격차를 보일 때도 있다. 물론 일상의 경험이나 감정을 채워주고 보완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은 일상의 경험이나 감정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멀리 있는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야구영화의 진화는 어찌 보면, 영광의 순간보다는 일상의 느낌을, 영웅의 서사보다는 현실의 법칙을 더 잘 그리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진화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야구영화를 들여다본다면 〈머니볼〉은 너무나 평범해서 좀처럼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러한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이에게 〈머니볼〉은 야구영화의 진화 끝에 탄생한 신 장르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영광이 아닌 삶의 원리를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별한 누군가의 인생보다는 일상의 어떤 이들의 모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후 야구영화의 새로운 지평은 야구가 아닌 일상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되곤 한다. 〈머니볼〉은 그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그 점이 새롭다면 정말 새로운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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