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홍의 연극 이야기
  • ▶ <김문홍의 연극이야기> 특별대담: 연극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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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대담
    연극과 삶 

      김문홍(극작가, 연극평론가)

        이성규(연출가, 부두연극단 대표)

        정봉석(사회, 연극평론가)

      


    정봉석 : 우선 이성규 선생님께서 이끄는 부두극단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고 또 김문홍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 고희가 되는 뜻 깊은 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분을 모시고 부산연극계의 과거와 오늘 또 그리고 내일의 전망에 대해서 자유롭게 대담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성규 선생님께서는 1984년 부두소극장을 개관해서 지금까지 네 번의 소극장 운영을 해오며 소극장연극운동을 해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소극장연극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소극장 연극은 또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성규 : 젊은 시절에 선배들의 연극을 보러 다녔는데 액자틀 속에 갇혀 소통도 안되고 연극을 보는 입장이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영 어색하였습니다. 특히 관에서 운영하는 극장에 가면 왠지 제도적이고 관료적인 냄새가 나서 그게 싫었습니다.

    그 당시 연극을 공부하면서 미국의 오프브로드웨이의 소극장 연극 운동에 영향을 받았고 유진 오닐의 프로빈스타운 부두극장이 가진 미국연극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서 나도 소극장 연극운동을 해야 되겠다, 나도 연극을 하면 반드시 소극장을 지어서 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부두 쪽으로 해서 많은 곳을 찾아 다녔지만 창고 임대료가 워낙 비싸서 못하고, 우연히 중앙동에 천장이 높은 목조 건물이 나오게 되면서 소극장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소극장을 하게 되면 다른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연극을 자유롭게, 개성적으로 할 수 있고 배우와 스탭을 훈련시킬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소극장연극이 가지는 의미는 UNDER, OFF의 의미입니다. 자본논리에서 벗어난 연극이고 또한 관객하고의 관계성이 특별한 연극입니다. 훔쳐보는 것이 아니고 만나게 하고 충돌하게 하고 직면하게 하는 그런 식의 연극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한 실험을 하는 곳이 소극장인데, 지금 우리나라 소극장연극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21C에 맞는 새로운 소극장 연극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소극장 연극이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예술가와 관객을 위한 사랑방 구실을 해야 될 것 같고 예술가와 관객과의 만남을 입체적으로 인간적으로 새롭게 접근 해야하지 않을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정봉석 : 알겠습니다. 김문홍 선생님께서는 부산연극사, 부산소극장연극사, 부산지역창작희곡사, 부산연극제약사 등을 집필하시고 부산연극지 편집위원, 또 창작희곡교실 등 ‘부산연극의 학예사’ 역할을 계속 해오셨는데, 부산연극의 정체성이랄까, 특징이랄까, 그런 것을 정리해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김문홍 : 부산 연극의 정체성은 ㅡ개인적인 생각이지지만ㅡ 역동성, 즉 다이내믹한 점, 그러니까 서울연극이 가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상업성보단 에너지가 넘치고, 조금은 형식적으로 서툴더라도 힘이 있어 보이는 게 있고, 또 하나는 아무래도 서울지역의 연극과 연극인들보다 부산연극이 좀 순수하다는 점이죠. 마지막 하나는 이건 지역적인 특색일 수 있는데, 연극인들이 단결이 잘 된다는 것...... 이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정봉석 : 김문홍 선생님께서는 80년에 <수직환상>이라는 첫 희곡을 쓰시고 지금까지 33년간 극작을 해오시고 네 권의 창작희곡집을 상제하여 지금까지 30여 편 정도가 공연되었다고 하는데 그중 작가로서 만족하는 작품이 어느 작품인지,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또는 작품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고요

    또 이성규 선생님께서는 주로 세계명작과 또 현실의 문제작이나 화제작 등을 공연하면서 대체로 번역극에 치중한 공연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연출가로서 특별히 애정이 남는 작품이라든지, 또 작품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각각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문홍 : 내가 처음 연극을 접하게 된 건 1960년대 초 고등학교 무렵에 부일 프레스홀에서 본 연극이었죠. 연극을 처음 시작한 건 군대에 갔다 와서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서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면서부터 연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처음에는 배우를 했어요.

    정봉석 : 부산교대 연극부인 ‘한새벌 극예술연구회’를 말하는 것인가요?

    김문홍 : 네, 그렇죠. '한새벌극예술연구회'에서 배우를 했는데 대사도 잘 암기가 안 되고 적성에 안 맞아서...... 여섯, 일곱 작품 정도를 배우로 하다가 중도에 접고, 아무래도 문학적인 소양이 그 당시에 있었으니까 희곡을 써 보자 생각했죠. 처음 쓴 게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이였죠. 서슬 퍼런 그런 시기에 <수직환상>이라는 겁도 없는 작품을 하나 썼습니다. 그때부터 작품을 써왔는데 지금까지 한 30편 정도가 부산의 각 극단에 의해 공연이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작품이 좀 원숙하고 제대로의 방향성을 잡고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60대가 넘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2008년에 전국창작희곡공모에 공모했던 신라 경문왕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뒤집어서 본 <대숲에는 말이 산다>라는 작품을 쓰면서부터 내 희곡의 방향이 전환되기 시작했죠. 그 이후부터는 역사극 쪽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 오고, 역사극이지만 다큐멘터리식의 역사정극이 아니고 역사적인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가공인물들을 창조한, 일종의 팩션이죠. 그걸 통해 동시대의 문제점을 역사극에 투영하는 그런 식으로 작품을 많이 써왔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처녀작이었던 <수직환상>이라는 작품이죠. 이 작품은 작가가 어떤 권력기관에 의해 감금당한 채 획일화된 글쓰기를 강요하는 내용인데, 내 작품은 처음 출발부터가 사회현실의식이 강한 작품이었죠. 결국은 역사극으로 전환하면서부터 좀 더 내 희곡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숲에는 말이 산다> 이후에 쓴 역사극을 보면 ㅡ아직 공연 안 된 것도 있지만ㅡ 허균을 다룬 <훼벽사> 라는 작품, 그리고 조선시대 정조 때 문체반정으로 유명한 문인 이옥를 소재로 한 <방외지사 이옥>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역사 쪽으로 소재를 개척할 생각입니다.

    정봉석 : 주로 역사극을 중점적으로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역사극을 중심으로 극작을 하시는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시다면?

    김문홍 : 과거의 역사를 더듬어 보니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어떤 문제점, 부조리, 병폐 같은 것을 역사극이라는 거울을 비춰 보고, 또 허구적인 가공인물을 만들어서 역사적 실존인물과 부딪히게 함으로 해서, 내가 추구하고자하는 주제를 담으려는 시도이죠. 또 역사적 상상력을 발동하는 창작적 희열도 있고, 그래서 역사극에 많이 매달리는 같습니다.

    정봉석 : 이성규 선생님께서는 주로 번역극을 많이 공연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성규 : 연출로서 저의 관심영역은 삶의 본질에 대한 연극적 탐구입니다. 현실의 복사나 재현 그런 것들은 소설이나 TV드라마로 보면 되니까요. 어떻게 하면 삶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어요. 저의 그런 관심사들이 주로 번역극에 많이 표현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거죠.

    제가 제일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 입니다. 남들이 난해하다고 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저는 그 작품이 너무나 공감되고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어릴때 영도에서 살았는데, 황량한 삶속에서 느꼈던 허무한 느낌에다가 그 당시 우리 코미디언들이 바보광대연기가 <고도를 기다리며>속에 다 있었거든요. 그 후 알게 된 것이 베케트도 분명히 어릿광대들의 연기를 생각하면서 썼다, 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29살 때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여 마산, 진주로 공연을 갔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상황이 마산입니다. 공연장이 영화관이었어요. 난로를 피워놓고 공연을 하는데 관객이 다섯 명 정도 밖에 없었어요. 그 다섯 명 중에도 세 명이 우리고 두 명이 일반관객이예요. 춥고 황량하고 썰렁하고......

     우리 배우들이 그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것이 인간의 상황하고 딱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때 관객 중에 수녀님이 한 분 계셨어요. 수녀님이 그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아가지고 그날 종교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시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죠.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의 연극적 주제가 그 때 탄생된 거죠.

    정봉석 : 선생님의 작품목록을 보면 주로 부조리극 계열의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혹시 평소에 연출가로서 부조리극에 대한 어떤 철학이나 집착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이성규 : 저는 기질적으로 비판적이며 회의주의자입니다. 부조리 연극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거꾸로 뒤집어서 보니까 삶이 참 모순투성이고 우연적이며 허무하다는 느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제 기질과도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부조리극은 결국 인간의 실존의식을 담는 것인데, 저는 인간실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저의 공연작품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통과의례적인 작품이 많아요. 사실은 제가 부조리극 중에서도 통과의례적인 인간의 본질을 다룬 작품들을 고의적으로 골라서 작품을 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연극으로 질문을 하고 성찰을 하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당시 부산 연극이 너무 뻔한 것만을 한다는 그런 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도 부산연극 풍토를 좀 바꾸어 봐야겠다, 해외의 새로운 연극을 소개해야겠다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출발했던 거거든요.

    김문홍 : 저도 거기에 공감합니다. 연극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가장 으뜸으로 꼽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작품을 보긴 봅니다만, 그 중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하는 작품은 사람을 아주 크게 감동시키든가,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든지,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연극이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극장 밖으로 나가서도 그 의식이 관객의 행동으로까지 연결시켜주는 작품을 저는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제가 강하고, 사회를 보는 현실인식의 깊이가 있는 그런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방금 이성규 선생이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규 : 좋은 작품은 역사현실을 다루더라도 그 밑에 인간실존의식이 끼여 있는 작품이어야 깊이가 나오는데 한국작품은 그런 수준까지 안가는 작품들이 많아서 좀 그랬던 것 같고……최인훈 씨의 작품은 그런 수준을 충분히 능가하고 있죠.

    정봉석 : 연극이 예술의 아주 중요한 장르인 만큼 분명히 예술 철학이 있는, 미학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로 김문홍 선생님께서는 역사극이나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관한 그런 내용적인 부분을 극작으로 창작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우리 삶의 어떤 본질을 깨우려고 하시고  이성규 선생님께서는 그런 실존주의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또 외국의 예술적인 완성, 형식적인 실험 이런 부분에 치중해서 공연 연출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의 그런 연극적인 작업들이 아마 부산 연극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보고, 또 부산 연극이 발전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부산의 연극제, 전국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부산연극제를 보면 연극의 본질과 목적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TV드라마 같은 그런 일상적인, 일상의 연극화 혹은 연애 이야기 같은 가벼운 연극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그런 작품을 원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요 근래에 보면 주로 상업적인, 상업주의적인 그런 공연을 많이 하는 극장들이 생겨나고, 또 그런 극장들이 기획해서 주로 가벼운 코미디물이나 또는 그런 상업주의적인 연극을 하는 극단의 작품들을 부산으로 많이 가지고 와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런 어떤 요즘 연극계의 추세에 대해서 두 분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성규 : 소위 말해서 포스트모던사회라고 하니까 가벼운 일상도 다루는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는 하지만 그런 연극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무엇인가 하니, 관객이 연극을 오락의 일종이라고 보는 수준까지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는 거죠.

    대학로연극이 오락연극으로 상업적으로 번창을 하다가 파산 일보직전으로 몰리자 연극인들은 대학로를 탈출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임대료와 공연해도 수익이 안 남고 상업극한테 밀려서 연극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요.

    오락 상업연극은 결국 전체 연극을 죽이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극인들이 각성해야 되죠. 소극장 연극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죠.

    김문홍 : 저는 요즘 연극의 상업적 경향의 책임은 관객 쪽에도 있지만 연극 쪽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추세가 골치 아픈 문제 즉, 생각을 많이 요하는 작품들은 멀리 하는 게 관객들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연극도 거기에 부화뇌동해서 상업적인 경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ㅡ그게 요즘 추세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ㅡ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객부터 반성해야 될 것은 말랑말랑한 연극만 볼 게 아니라, 볼 때 좀 괴롭더라도 ㅡ관극하기에 괴롭고 생각을 요하는 것들이라도ㅡ 이런 작품을 자주 봄으로 해서 자기 성찰도 하고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각도 얻는데, 자꾸 가벼운 것에만 집착하다 보니까 어려운 게 점점 더 멀어지는 겁니다.

    연극하는 사람들도 관객들이 자꾸 가볍고 쉽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니까 거기에 부응해서 그런 것을 만들려 하기보다는, 가끔은 생각하는 연극을 만들어서 관객을 훈련시키는 것도 연극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어렵고 복잡하고 의식이 강한 연극을 만들어도 돈은 안 되는 거고, 또 상업적 연극도 기획사가 엄청난 자본을 투자를 해서 만든 뮤지컬을 빼놓고선 상업적 연극도 결국은 손익계산이 비슷하거든요. 상업적인 연극을 해도 돈이 안 되고, 문제적 화제작이나 실험적 연극도 돈이 안 될 바에야, 연극의 본질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게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이성규 : 일본의 재미있는 예가 있습니다. 일본은 7, 80년대 쯤 실험연극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왕성하게 일어났었는데, 실험적인 연극을 해야 관객이 모이고 그 실험적인 연극에 출연 해야 TV탤런트가 되는 현상이 있었죠. 그러니까 실험적인 연극을 해야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죠. 우리들도 실험극이라고 해서 진정한 실험극도 아니요 완성도 없는 작품을 할 것이 아니라 연극적으로 재미도 있고 신기한 것도 보여주고 하는 창의적인 연극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서 실험극 또는 정극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김문홍 : 그러니까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관객이 가볍고 상업적인 말랑말랑한 연극을 좋아하니까, 거기에 맞춰 만들지 말고 좀 문제적이거나 실험적인 작품이라도 관객의 기호에 맞게 포장을 하면서, 또 거기에 자기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연극적인 정신을 넣어서 관객들이 무거운 메시지라도 즐겁게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방법론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성규 : 관객 서비스 측면에서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하다 보니까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요즘의 관객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외로우니까…… 사실은 축제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같이 어깨 맞대서 같이 보고 웃고, 그리고 마치고 나서는 사진도 같이 찍고 대화도 해보고, 그런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소극장연극이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런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간의 만남을 좀 더 문화적으로 꾸며내고, 좀 더 관객에게 서비스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만나고 서로 교양을 쌓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가? 소극장연극운동은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극이어야 합니다.

    정봉석 : 연극인들은 물론 상업적으로 흥행이 되어야 극단이 연명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예술가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연극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철학적인 인식의 깊이가 선행해야하는. 그런 인문학적인 내공이 쌓여야 거기에서 또 인간적인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그런 연극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두 분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문홍 : 나도 늘 생각해오고 있는 문제입니다. 연극인들을 보면, 공부를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작업하는 데에만 자꾸 얽매이는 것 같아요. 사실 일 년 내내 작업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업을 쉴 때면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깊이를 다지고,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도 예리하게 날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인 내공과 철학적인 인식의 깊이를 탄탄하게 해서 무대 위에  서는 배우와, 그런 바탕 없이 그저 작품에만 몰입하는 배우하고는 연기자체가 다르죠.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깊이와 철학적인 인식의 내공이 강한 배우들은, 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우건 연출이건 공부를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성규 : 어느 잡지에선가 연극계의 원로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연극계에 인문학적 교양이 다 사라져버린 것 같다고 탄식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옛날의 인문학적 소양이 이 시대와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것들에 얽매이기도 해요. 그런 것이 유행이기도 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 사라지는 유행이라는 겁니다.

    고전이 의미가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있기 때문인데...젊은 친구들의 경향을 무조건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우리 같은 중년들쪽에서 고전부흥운동 그런 것들을 일으켜서 좀 젊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봉석 :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 연극계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저도 2,30년 쭉 지켜보면서 느낀 결과, 연출이라든지 연기라든지 무대미술이라든지 이러한 분야에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왔고 지금 하는 공연들을 보면 그런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서울에 비교 해봐도 결코 뒤지지 않은 수준의 공연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기획분야라든지 특히 극작분야가 부산 연극에 상당히 취약한 문제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두 분께서는 창작극 연구회를 설립해서 지금가지 꾸준히 부산의 창작극을 진흥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오시고 있고 특히 김문홍선 생님께서는 극작가로서 여러 가지 창작희곡진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김문홍 희곡상을 올해 제정을 하셨고요. 창작극에 대한 진흥에 힘쓰시는데 부산의 창작극의 수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문홍 : 부산지역의 창작희곡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이성규 선생님과 1995년도에 동래 연당소극장시절에 ‘부산창작극연구회’를 만들어서 그 첫 작품으로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흔주의 <죽이지도 않는 자에 대한 책임>을 토론 과정으로 수정 보완해서 공연했었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30년을 해 왔습니다. 창작극 연구회를 가장 큰 목적은 신인 작가들이 쓴 작품을 우리 연극평론가, 극작가, 연출가, 대학의 연극 전공 교수 등이 대상 작품을 가져다놓고 작가와 동석해서 작품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다시 고치게 하고, 고친 작품을 또 한번의 토론 과정으로 보완하고 해서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물론 완벽한 작품은 공연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을 극단에다 연결시켜주어서 공연하는 게 목적이거든요.

    저도 창작극 연구회의 토론자이긴 합니다만 제 작품 두 편 정도를 창작극연구회 토론 대상작품으로 제출하여 엄정한 의견을 통해 수정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작가들은 작품을 내놓고 자신의 작품이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는 것을 아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아요. 우리 속담에 ‘세 살 먹은 애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참뜻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부분의 창작희곡은 여러 번의 공연을 통해서 작품이 완성 되는데, 대부분의 창작극은, 특히 부산연극제에 출품된 작품들은 한번 공연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즉, 미완성인 채로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이것도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성규 : 1995년에 동래의 연당소극장에서 창작극연구회를 김문홍 선생님과 처음 시작할 때에, 제 개인적인 소망은 뭐였는가 하면, 저한테 맞는 작가 하나 만나는 것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연극의 주제나 내용을 맞추는 작가 하나 만나는 게 꿈이었고, 두 번째는 부산에도 유진 오닐 같은 극작가의 시대가 와야 하겠다, 하는 그런 꿈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부산에서 극작을 해서 유명해진, 극작을 전업으로 하는 자기 세계관을 가진 극작가.

    지금까지 노력해왔지만 아직 성공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요즘 김문홍 선생님께서 희곡상도 만들고, 또 저희 창작극연구회의 노력도 있어왔고, 연극협회에서 창작극진흥을 위해서 부산연극제 창작초연작을 하는 이런 분위기는 형성되어있는데...... 선생님께서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공연 한 번 하고 끝나버리고 사후보완책이 안 나온다는 거죠. 그러니까 서울에서 여석기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기성작가들을 데리고 극작워크숍을 했는데, 거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들을 맹렬히 다그치죠. 신랄할 뿐 아니라 살벌합니다.

    희곡은 공연되어져야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고 시각이 넓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부산에서는 신진작가들은 불러가지고 토론 한 번 해 보면 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 다음엔 안 나오려고 해요.

    이런 경향이 왜 생기는지 잘 모르겠는데 연극작업이란 의견을 나누고 교류하고 소통하고 해서 관객과 마지막에 나누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가 하나 키우는데 그만한 노력은 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협회에서 우리가 ‘이런 것을 했다,'  ‘창작초연작 했다‘ '우리가 전국에서 최고로 먼저 했다' ‘이건 상품가치가 있다’하고 자랑하면서 사후 보완책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 전시적인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요. 지금이라도 끈덕진 작가운동을 ㅡ김문홍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계속하시겠지만ㅡ해야 합니다.

    정봉석 : 창작극진흥뿐 아니라 이 기회에 부산연극협회에 부산연극을 위해서 부산연극협회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하는 문제점이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이성규 : 세월이 한 10년 쯤 넘어가는 것 같은데, 보니까 협회운영을 전시적으로, 행정적으로 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유대도 잘 안 느껴지고 소통도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리더들의 철학이나 소양이 매우 중요해요.

    부산연극은 지금 외화내빈의 상태에 있어요. 문제를 파악해서 허상이 아닌 실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극단은 많은데 배우는 적고, 행사는 많은데 알맹이는 없고…… 연극협회가 나서든 우리가 스스로 나서든 일종의 자각운동이 일어나고 모색하고 연대하는 자리들이 좀 만들어져야 되겠습니다.

    김문홍 : 공감하는 얘깁니다. 부산연극협회가 너무 행사 위주, 지원금 받아서 행사하는 걸 주 업무로 삼고 있는데, 행사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극을 담당하는 집행부측에서 철학을 가지고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즉, 당장 눈앞의 어떤 현상에만 집착하지 말고 부산연극을 좀 더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는 장을 많이 만들고, 거기에 연극인들을 많이 참여시켜서 학구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토론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행정위주로만 연극을 해오다 보니까 계속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죠.

    정봉석 : 이어서 부산 국제연극제 얘기로 넘어가 보기로 하죠. 지난해가 아마 10주년이었죠?

    김문홍 : 그렇죠. 올해가 제11회죠.

    정봉석 : 올해에는 11회로 준비되어가고 있는 것을 아는데 두 분께서는 국제연극제를 설립하는 단계부터 아마 직접 개입하시고 참여하시면서 토대를 만드셨고 그 이후에는 국제연극제가 창립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안에도 여러 방면에서 직접 참여도 하고 활동도 해 오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제연극제가 이루어지는 동안 어떤 한계나 문제점이 있다면,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성규 : 부산연극의 가장 큰 문제점이 어떤 연극제나 단체 이런 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이 연극인 전체를 위해서 공유되는 어떤 단체나 축제가 안되고 폐쇄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산 국제연극제를 입안하는 데 일조를 하고, 예산 따는데도 일조를 했지만 그 조직이 경성대학 위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어진 사항에 대해서 여러 번 조언도 하고 대화를 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인범 회장이 당선되면서 끝장토론을 할 때 제가 국제연극제를 현장에 돌려달라는 과감한 발언을 함으로 해서, 제가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10년만에 현장이 조직을 인수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이 영 석연찮았습니다. 수장을 뽑는 문제나, 국제 연극제의 방향을 모색하는 문제에 부산 연극인들의 대의와 총의를 묻는 절차가 없이 진행되어 또 다시 밀실행정, 폐쇄적인 경향을 노출한 것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이 예술계를 관리 하겠다는 어떤 의도가 있다는 거고 그것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서지 않으면 예술은 죽습니다. 또한 축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수렴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축제는 결국 즐거운 난장이 되어야 하지요. 문화회관과 시민회관 같은 딱딱한 공간 속에서, 전시적으로 행해지는 부산 국제연극제는 크게 발전하지 못 할 것입니다.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는 방향을 다시 모색해야 합니다. 그 10년의 기획은 부산연극인들의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통 크게 오픈해야 합니다. 새 집행위원장의 철학과 소양이 아주 중요한 시점입니다.

    김문홍 : 내가 생각할 때는 국제 연극제가 올해로 11회고, 그동안 10년 동안 했지만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일회적이고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란 말이죠. 국제 연극제할 때 지금가지 세계적인 연출가들이나 국내 연출가들을 불러가지고 워크숍도 하고 10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다음에 세미나도하고 여러 가지 학술행사를 했는데 지금가지 거기에 대한 직접물이 결과물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쯤은 국제연극제백서 같은 기록물이 나와야 할 때인데, 아직은 전혀 기미가 없고 남아있는 건 국제연극제 팸플릿하고 포스터하고 공연 사진밖에 안 남았어요, 이것이 문제란 말이죠. 예산이 거의 6,7억 가까이 되는데 완전히 그 해에 6,7억을 가지고, 그저 써버리고 끝나는 거예요. 지금까지 결과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이것이 문제고,

    또 하나의 문제는 뭐냐 하면, 시민의 돈과 국가 재정에 힘입어 가지고 국제연극제를 하고 있으니까 시민들을 위한 축제도 되고 시민들을 위한 공연 레퍼토리도 선정해야 되겠지만 시민들을 위한 축제가 아니고 연극인들의 위한 축제도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연극인들이 안 보러 오는 이유가 볼만한 작품이 없는 겁니다. 연극인들에게 형식적으로 대단히 실험적이거나 내용적으로 파격적으로 문제적인 그런 작품을 해외에서 한두 개 데려와서 공연함으로 해서 연극인들이 ‘지금까지 공연했던 것이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하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그런 작품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런 작품은 전혀 안 데려오고 그저 웃고 즐기고 그해에 끝나버리는 그런 연극을 하고 있는 게 문제에요.

    정봉석 : 부산국제영화제와 비교하면 부산국제영화제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처음부터 기획이 되고 작품이 선정이 되고 섭외가 되고 그래서 아주 일관성 있는 그런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역사화 되고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부산국제연극제는 새로운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위원회 중심으로 운영이 되다 보니까 일관성이나 계속 이어지는 주제 역사화가 되지 못하는 그런 문제점들이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그에 이어서 부산연극계가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이 평론분야라고 생각됩니다. 김문홍선생님은 부산을 대표하는, 열심히 부산의 연극을 지켜 봐온 평론가로서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성규 선생님은 연출가로서 부산연극의 평론을 그동안 지켜봐 오셨고요. 거기에 대해서 문제점이나 지양점을 생각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시죠.

    김문홍 : 연극평론을 쓰고 있는 사람이 한 예닐곱 명 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연극 배우였던 진선미 양이 연극전문 비평지라고 <봄>이라는 비평지를 만들었는데. 배우가 만들었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좀 부끄러운 일이죠. 사실은 평론 쪽에서 주축을 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배우가 했다는 것은 참 평론가들에게 자괴감을 느끼해 하는 일입니다. 공연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평은 하고 있지만 내가 쓰는 표현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침투가 되고 그들이 내가 쓴 평을 제대로 읽는가부터 회의도 오고…… 그래서 내가 평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게 바로 보는 것인가 독단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서 작품이 있으면 평론가들이 여러 명이 몰려가지고 그 작품을 텍스트를 가져다 놓고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을 해서 어떤 결론점을 도출해야지 그 작품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데 혼자 하니까 독단에 빠질 수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평론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통 보면 연극하는 사람들이 평론하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뭐랄까, 본능적으로 기피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결국은 연극이라는 것이 한번 공연하고 나면 일회적이고 사라져버린단 말이죠.

    가치평가를 하고 역사기록을 하는 것이 평론의 하나의 책무입니다. 평론을 하는 것을 들어보고 읽어 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지적해주면 그것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서 자기발전의 토대로 삼아야 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문제가 되고)  평론이 활성화 되어야 연극이 활성화 되고 극단에서도 자기끼리 하는 공연이 지금 잘된 공연인지 못된 공연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연극인지 누가 아무도 평을 안 해주니까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평론팀들이 모여서 가치평가를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게 안 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려면 가장 시급한 게 평론에 매체가 있어야 하는데 ㅡ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매체가 있어야 하는데ㅡ 매체가 없으니까 평론가들이 써서 자기 블로그에 저장하는 것 밖에 의미가 없는 거죠. 평론 매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평론가들이 다시 모여서 제대로 평론활동을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성규 : 김문홍 선생님은 평론가로서 기본적으로 공연을 자주 보시고 또 극단에 자주 찾아가서 음료수도 사 들고 가고 대화도 해보고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런 평론가이신데……

    부산에서 평론을 하시는 분들을 제가 좀 비판적으로 말해본다면 부산연극에 별 관심도 없고 애정이 없다는 거죠. 하나의 지도 비평이라는 입장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가 바쁘고 재미없으면 안 온다는 거죠. 기분 나면 쓰고 기분 안 나면 안 쓰고…… 이래서는 현장과 평론이 양립될 수 없죠.

    평론을 쓰다 보면 불화가 있을 수 있고, 불화자체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 불화가 있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이 평론가들이 연극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드라마트루거라로도 모셔가지고, 서로 만나고 부딪히며 자주 만나게 하자는 겁니다. 김문홍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독단적일 수가 있기 때문에 한 작품에, 너댓 명이 모여서 토론하는 - 예전에 국제 평단이 있었죠?- 그런 몇 분들이 모여서 우리 연극인들 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거죠. 사람이 친하게 되면 비판을 하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일 것은 안 받아들이고 또 현장입장에서 반론도 할 수 있고……

    정봉석 : 현장 연극인들이 연극평론지를 주도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연극평론에 목말라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산연극 평론가들, 기존의 평론가들이 어떤 협회를 결성한다든지 해서 그런 움직임도 가져야할 것 같고 그런 어떤 조직을 통해서 신인 평론가를 배출하는 것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주제를 약간 바꾸어서 그동안 두 분께서는 30년, 40년? 정도 됩니까.

    이성규 : 저는 30년 정도. 김문홍선생님은 40년……

    정봉석 : 30년, 40년 이상 연극계 일을 하셨는데 아마 다양한 연극인들과의 교류가 있으셨을 것이고 또 후배들을 직접 배출도 하셨을 겁니다. 그런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연극인들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든지 또는 지금 현재의 후배연극인들에게 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

    이성규 : 후배 연극인들을 간혹 만나면 이런 불평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 참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있었기에 그네들도 있는 것이겠지만…… 선배들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후배들한테 무엇을 베풀어 준 것이 있느냐 생각해보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당시 우리가 연극할 때도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냥 독립군으로 했을 뿐인데…… 우리도 선배들에게 받은 것이 없는데……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사실은 김문홍 선생님하고 저하고 작년부터 후배들을 위해서 몇 가지 애써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선배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인지 때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고요.

    후배들 중에서도 저 친구는 좀 도와야 하겠다 하는 그런 후배들이 있었지만 왠지 예술가적인 기질을 가진 후배들은 떠나가고…… 우리도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고 때로는 외로워지기도 하고 이럴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선후배간에 친목도 하고 연극적인 면에서도 많은 대화도 하고 서로 정보도 나누고 하는 그런 모임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연극에 포럼이라도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요.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하고 세미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 좋아지지 않겠어요?

    김문홍 : 후배들이 "우리들한테 선배들이 해준 것이 뭐 있습니까?" 하고 대들면 사실은 할 말이 없죠.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도 선배들로부터 받는 것은 별로 없지만, 선배들로부터 자세라든지 은덕을 입었단 말이에요. 후배들이 나보고 "선배들이 해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라고 하면 물질적으로 도와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부산연극사도 정리하고 평론도 하는 것이 결국은 후배들을 도우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겠지만, 그것으로 해서 명예를 쌓고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연극의 토양을 살찌게 하고 후배들의 연극할 수 있는 환경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섭섭해요.

    또 하나는 연극인들이 가난해서 그런지, ㅡ원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ㅡ 가난하면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가난하지 않고 풍족해야 하는데 5년 전에 허영길 선생님 칠순도 있었고 전성환 선생님 칠순도 있었는데 선배들이 도와준 것은 별로 없지만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부산연극이 있었던 것이니까 그런 분들이 칠순이면 ㅡ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보다ㅡ 가서 얼굴이라도 내밀고 축하한다고 인사를 해주는 게 (좋지만) 너무 정에 인색해서, 그런 것이 없는 것이……

    사람에 관한 연극을 만드는 연극인 자체가 사람에 대한 정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물론 남의 연극을 많이 보는 연극인도 있지만 대체로 자기극단 이외의 연극 말고 다른 극단의 연극은 안 봐요.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볼 가치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좀 봐주고 술자리에서 토론도 하고 진정성있게 충고도 해주고 하면서 서로 교류가 있고 하는데, 현실은 전혀 남의 연극은 안 보는 겁니다.

    안 보니까 결국은 연극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내용적으로 발전하는지에 대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머물러버리는 겁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봉석 : 두 분 선생님들은 최근에 단짝이 되어서,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후배들을 위한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시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공연사연극소를 통해서 부산연극을 정리하시고 부산창작극연구회를 통해서 부산창작극을 진흥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계시고 국제연극제에도 참여하시고. 최근에는 ‘문화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거가거가 소극장 거리 조성을 위해 일 하시기도 하는데 ㅡ이성규 선생님은 거기 대표를 맡고 계시기도 한데ㅡ 향후 두 분 선생님들의 활동계획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성규 ;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뒤돌아보니 아직까지 지하소극장에서…… 아직까지 가난하고…… 그래서 올해는 무조건 지하를 탈출해야겠다, ㅡ지하에 너무 오래 있어서 제 별명이 지하대마왕인데ㅡ건강도 좀 챙기고 사람들하고도 제대로 좀 만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야 되겠다 싶어요.

    저는 이제까지 남한테 후원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낯가리고 고집이 세서…… 이제는 좀 다니면서 후원자도 구하고, 극단 시스템도 정비해서 후배들한테 넘겨주는 작업도 해야겠고……

    그다음에 '문화행동'의 일을 시작하는 것인데……

    대청로 거리가 옛날에 역사문화거리였잖아요? 이것을 살려야 한다, 여기에 공연장을 끼워 넣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우리가 이야기를 꺼냈죠. 그래서 국제신문에 12회에 걸쳐서 캠페인 기사도 나게 만들고…… 그 시점에, 부산시의 도시재정사업 하고 관련이 되었어요.

    마침 그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참 좋아해가지고 이야기가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거리를 연극소극장 거리로 만들 겁니다. 그러다 보면 국제시장이라든지, ㅡ용두산공원이라든지ㅡ 와 맞닿으면서 굉장한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는 큰 프로젝트 사업이라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일단은 출발을 해 볼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갖고 싶었던 극장이 영도에 있는 보세창고거든요. 그래서 이런 일들을 하다가 그쪽(보세창고)을 도시재생사업으로 극장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희망을 가져 보는 거죠. 영도다리가 있는 보세창고에다 하나는 무용전용관 하나는 연극전용관을 만들어서 페인트칠도 멋지게 하고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밝힌다면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겠죠? 30주년을 맞아 보람되는 일을 좀 해보고 싶은 것이 올해의 계획이자 꿈입니다.

    김문홍 : 저도 두세 가지가 있습니다. 올해 김문홍 희곡상이 제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만든 게 아니고 하단에 있는 연극을 하도 좋아하는 ㅡ최우석 치과라고 있습니다ㅡ 최우석 원장이 나에게 제안하기를 "김문홍 선생님도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되었고 연극도 40년 정도 되었으니까 김문홍 선생님을 기념할 만한 희곡상 같은 것을 제정하면 안 되겠습니까"하고 먼저 제의를 해왔어요. 그렇게 해주니까 나야 반가운 일이지요. 그래서 제정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죽고 나서 희곡상을 만드는 것이 보통 추세인데 왜 생전에 만들었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전국규모로 하는 것이 아니고 부산지역의 연극인들만 상대로 해서 ㅡ작가상이 아니라 작품상이란 말입니다.ㅡ 그러니까 그해 1월 1일부터 12월 말까지 공연된 작품 중에 창작극이죠. 창작극 중에 장막극이고 공연되었거나 공연되지 않은 희곡을 잘 쓴 작품을 하나, 공연된 것은 보고 안 된 희곡은 읽고 해서 모아놨다가 연말이 돼서 심사위원회를 조직해서 그 중 제일 나은 작품 하나를 뽑아서, ㅡ최우석원장이 지원을 해주어서ㅡ 창작지원금으로 300만원을 주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올해 받는 사람이 내년에 또 좋은 작품으로 또 받을 수도 있단 말이죠. 이게 작가상이 아니고 작품상이기 때문에. 해서 후배들을 격려도 해주고 이런 것을 함으로 해가지고 창작희곡이 좀 활성화 되지 않을까 해서 내 생각에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봉석 : 작품상이면 작가나 연출같이 개인한테 주는 것이 아니라, 극단에게 주는 겁니까?

    김문홍 : 작가에게. 공연된 것도 괜찮고 공연되지 않은 희곡도 괜찮고 신인이건 기성작가 아무 구분도 없어요. 그다음에 하나가 알고 계시겠지만 소극장 내에다가 이번에 작년에 부산공연사연구회를 설립했잖아요. 제가 소장을 맡고 있지만 세 분도 같이 이번 작업에 참여하셨고.

    이번에 부산의 연극인들, 부산의 극단, 부산의 주요작품, 부산의 공연장, 부산의 연극 학술 희곡 이런 것을 총망라해서 우리가 7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의 책도 냈고 그다음에 문화재단의 문화아카이브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잖아요. 이게 아직은 미진한 것도 많고 수정할 것도 많지만 이 어마어마한 작업들을 우리 세 사람이 했습니다. 참 보람도 있고 이걸 앞으로 쭉 보완함으로 해서 앞으로 몇 년 뒤에 집적이 되면 새로운, 남부럽지 않은 손색이 없는 부산연극사가 또한 탄생이 될 텐데 거기에 밑거름으로 우리가 기초 작업을 했다는 것에 보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도 앞으로 공연사연구소가 센터가 되어서 부산의 모든 공연에 관한 자료를 여기에다 집적을 해서 연구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 두 가지하고 제 개인적으로는 창작집이 희곡집이 4권 나왔는데 이번에 신청을 했는데 다섯 권 째가 나올 건데 ㅡ지원을 받으면 나오겠고ㅡ 희곡은 (앞으로도) 계속 쓰는 거고……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봉석 : 청장년들 못지않게 활발하게 부산연극계에서 활동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런 활동을 하시려면 두 분은 무엇보다 계속 건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연극계에 바라는 점이나 더 첨언하실 말이 있으시다면 하시죠.

    이성규 : 젊은 사람들이 간혹 "선생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 건강하셔야합니다." 하면 '혹시 나 죽길 바라는 거 아니냐? 없어져? 은퇴해?’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아직 좀 더 일을 해 달라는 말이기도 해서 고맙기도 하고…… 그만큼 후배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뜻에서 좀 더 우리가 앞장서야겠지만 힘이 부친다는 거죠. 도와주고 믿어주고 격려도 해달라는 거죠. 우리 두 사람 다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문홍 선생님은 올해 칠순이신데 ㅡ선생님들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서ㅡ 좀 더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문홍 : 나는 지금 꼭 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창작희곡을 계속 쓰고 공연하면서 창작집을 내는 것은 내 개인적인 욕심이고 ㅡ내가 능력이 있는 한은 계속 할 거고ㅡ 내가 올해 칠순이라고 하지만 ㅡ남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ㅡ 나는 아직까지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을 살진 모르겠지만 ㅡ내 운명을 내가 어떻게 예견할 수 없겠지만ㅡ 앞으로 활동해봤자 한 10년 정도가 남은 기간이라고 보거든요. 활동하는 기간이. 10년이니까.

    10년이라는 세월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라 요즘 좀 초조해요. 초조해서 그동안 못했던 것을 이뤄야 되겠다 싶어서 건강관리도 좀 하고 자료도 정리도 많이 합니다.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차피 연극은 내가 볼 땐 태생자체가 가난한 거니까 연극을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연극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생활의 방패는 될 수 있게 벌어야겠지만 연극을 해서 떼돈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됩니다.

    비록 가난한 연극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좀 풍성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정이 넘치고 진정성이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연극을 했으면 하는 게 제일 바람이고.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너무 연극하는데 현장에만 집작하지 말고 우리가 물론 연극협회라든지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야 되겠지만……

    이성규 :  서로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봐 주고 돕고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재밌게 만나야 합니다.

    김문홍 : 토론하는 문화가 활성이 되고 서로 만나고 서로 축하해주고 싸우기도 하고 하면서 정이 오가는 연극.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하는데 연극자체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성규 : 연극협회 회원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고, 원로 선생님들도 회비 안냈다고 잘라버리는 이런 식의 풍토는 바뀌어야 합니다. 정이 너무 없습니다. 싸우더라도 다시 반성하고 만나고 이러면서 어우러져 가야 하는데 쳐버리고 편 가르기하고 줄 세우고 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해요.

    김문홍 :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 10여 년 동안 부산연극협회가 행정 위주로 원리원칙을 많이 따진 것 같아요.  무조건 안 되면 자르고 원리원칙대로 하는 것, 물론 그것도 좋죠. 하지만 너무 그런 쪽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자꾸 정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성규 : 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서로 위로하고 인간적인 정을 가지고 얽히고 이렇게 가야 하는데 그게 연극인인 거죠……

    정봉석 :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까 아직도 아주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화예술비평지 『공감 그리고』, 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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