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이윤택 연기론_영혼과 물질
  • ▶ 5장. 리얼
  • 이윤택연기론 
                         영혼과 물질 







    이윤택(연출가)






     5장. 리얼 real 

     

     

    한국 근대연극의 규범은 리얼리즘이었고,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극미학에 대한 관습적 기준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나 또한 ‘연극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이란 입장이므로 리얼리티reality를 가장 귀중한 연극의 덕목이라고 믿고 있다. 배우가 지녀야 할 의식의 최종단계 또한 리얼real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얼리즘을 초시대적인 연극의 보편적 덕목으로 보는 것과 일정한 시대의 문예사조로 볼 때와는 가치 기준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리얼, 혹은 리얼리티란 개념은 예술사적으로 초시대적인 보편성을 지닌다.

    이때 리얼real 이란 용어는 모든 연극에 적용될 수 있는 삶의식이다.

     

     그러나 리얼리즘, 혹은 사실주의란 개념으로 연극이 일정한 시대의 문예사조로 제한될 때는 연극의 보편적 규범으로 성립될 수 없다. 일정한 시대의 연극적 규범은 당대의 독자적 폐쇄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이 독자적 폐쇄성의 시각으로 리얼리즘을 내세우는 논리는 배타적 상대주의의 함정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한국 근대연극의 리얼리즘 논의가 배타적 상대주의의 함정에 떨어지면서 독단적 폐단을 자초한 바 없지 않다.

     이러한 독단론은 리얼리즘적이건 반 리얼리즘적이건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리얼리즘 옹호론자들이 문화의 기득권을 지닐 경우 반 리얼리즘적 성향의 연극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부당하게 문화적 소외를 당한다.

     그러나 리얼리즘에 대해 스스로 폐쇄적인 독단성을 지닐 때, 바로 그 폐쇄적 독단성이 치명적인 하자가 되어 관객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한국 근대연극 양식이 전시대적 문화양식으로 치부되면서 급격하게 퇴조해 버린 것도 이러한 폐쇄적 독단성이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란 개념은 본래적으로 한 시대의 문예사조로 제한될 성격이 아니고, 시대와 함께 생성과 변화의 흐름을 타는 일종의 ‘인식론’ 이다. 바꾸어 말하면, 리얼리티란 에술 생산자의 규범이라기 보다 수용자(독자, 혹은 관객)의 인식에서 자극과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는 형이상학이다.

     리얼리즘이란 문예사조 이전에도 리얼한 의식과 양식의 리얼리티가 존재했었고, 한 시대에 특정적으로 문화의 중심 사조로 떠올랐을 뿐이다. 물론, 리얼리즘 그 이후에도 리얼, 혹은 리얼리티란 개념은 현대 예술의 본질적인 미덕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그 동안의 리얼리즘 논의에 대한 통시적 이해를 거치면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5-1. 리얼리즘  

     

    연극이 일상적인 삶과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리얼리즘 문예사조의 흐름은 전개되었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미적 규범은 작가의 주관성과 사물의 객관성의 조화로운 합일이었다. 수정 맑시스트 블론스키는 “ 관념이 형식을 낳는다.”고 단언한 바 있다. 작가의 주관적 관점이 곧 형식이란 객관적 실체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이 한 시대의 독자적인 문예미학으로 대두된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은 산업화

    시대와 관련을 지닌다. 비스마르크 정부가 ‘피와 강철’을 내세우며 전쟁을 통한 독일 통일 과 산업화 사회를 열어나가면서 도시 노동자가 등장했다. 여기서 옛 것 과 새것, 낙관과 비관,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서 대전환기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 전환기에 마르크스 앵겔스의 유물론적 사관은 헤겔의 절대 정신을 부정하면서 현실적 객관성을 중시하는 정신적 문화적 배경을 이룬다.

     포이어 바하는 경험적 현실과 인간의 인식 능력 중심의 세계관을 펼치면서 종교마저도 신비주의적 베일을 걷어낸 인류학으로 간주했다.

     다윈의 저술 「종의 기원 」 또한 인간 존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 시대를 열어가는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그리하여 대중사회 통속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정신사적 배경은 현실의 긍정적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문예학으로 정착된다.  수사학적 문체를 거부하고, 단순하고 구체적인 문체로 글쓰기의 관습이 바뀐다. 상징적이거나 알레고리적 표현이 제거된다.  과장되거나 파토스인 감정 과잉의 표현은 절제의 미덕을 요구받게 된다. 대신 짧고 건조한 일상체, 현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표현을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5-1-1. 시적 리얼리즘

     

    오토 루드비히는 상상계/상징계/현실계로 인간의 정신영역을 구분하면서, 사물 속에 있는 객관적 진실과 우리의 정신이 내세우는 법칙 중간에 현실계real가 존재한다고 했다.

    현실계real란 우리가 현실로부터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법칙을 통하여 재탄생된 세계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 현실의 모방)와 포이에시스(poiesis; 상상력에 기초를 둔 자유로운 창조능력)의 합일이란 리얼리즘의 고전적 미학이 탄생한다.  

     독일의 문예학은 포이에시스를 강조하므로서 이전의 고전적 낭만적 전통을 이어 받는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밞음과 어둠을 포괄하는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을 예술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영원히 인간적인 것’을 리얼리즘 예술의 미덕으로 세운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초기 리얼리즘 문예학의 흐름을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독일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슈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의 액자 소설  

     

     

     

    「백마의 기사」를 손꼽을 수 있다.

     

    슈토름은 50여편의 단편과 시를 통해 독일의 자연과 토속적인 전설 속에 인간의 의식을 주체적으로 개입시킨다. 기독교의 이상주의적인 내세를 거부하고, 현세의 모든 존재는 시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적 비관주의의 경향을 지닌다. 조용한 공포, 고독하게 사라져 간다는 예감, 예외없이 잊혀진다는 불안감 등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론에 닿는다.

     「백마의 기사」는 1인칭 부인물 시점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액자 소설 형식이다. 소설을 써 나가는 1인칭 ‘나’를 통해 소설 속의 주인물 ‘그’의 세계를 추적해 가는 것이다. 여기서 회상의 기법 (영화의 플래시 백)이 소설 속의 소설이란 구조를 지니게 된다. 「백마의 기사」가 소설이면서도 드라마의 구조를 지니고, 동서독 양측에서 모두 영화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도 슈토름 특유의 액자소설 형식 때문이다. 한국의 작가 이청준은 1970년대「소문의 벽」「쓰여지지 않은 자서전」등 일련의 액자소설 형식을 발표한 바 있다.

     

    「백마의 기사」는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제방 감독관의 선택과 결행을 다룬 독일 소설문학의 위대한 유산이다. 북독일 춥고 거친 해안가에 젊은 제방 감독관이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도착한다. 매년 파도에 제방이 무너지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제방 감독관은 제방 쌓기를 제안하지만, 시골 민중들의 개인주의와 몰이해에 부딪친다. 심지어 시골에 존재하는 전통의식까지도 미신으로 작용하면서 제방을 쌓아가는데 장애요인이 된다. 그러나 제방 감독관의 초인적인 의지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제방쌓기는 계속된다. 인간의 의지로 쌓은 제방과 대자연의 위력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날, 제방 감독관은 부인과 어린 자식이 있는 집을 떠나 바닷가 제방으로 말을 달려 나간다.

     제방 감독관과 마을 민중들의 필사적인 공동의지로 파도를 막아 내는데 성공하지만, 그 사이 아내와 어린 자식이 살고 있는 집은 파도에 휩쓸려 나가 버린다. 백마의 기사(옛 제방감독관은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한다)는 어느날 아내와 어린 딸이 사라진 바닷가를 향해 백마를 타고 사라진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해안에 파도가 밀려 오면 어둔 밤 바다에 저벅거리는 말발굽소리를 듣고 백마를 탄 기사가 파도를 거로질러 가는 환영을 본다.

     이 스토리를 써 나가는 1인칭 부인물 시점인 ‘나’는 여관 창을 통해 지금 여기서 여전히 눈부시게 존재하고 있는 제방을 바라 보고 있다. 백년이 지나도 끔쩍 않을 제방, 인간 불굴의 의지 제방을......

     

      여기서 인간의 공동선을 향한 의지(제방 감독관의 주체적인 삶의 선택과 결행)와 객관적 표상(제방)의 합일이란 리얼리즘의 고전적 명제는 완성된다. 제방이란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구체성이 완성되지만, 그 객관적 상관물(subject matter:주제재)은 인간의 주체적 영혼과 의지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이 시적 리얼리즘적 인식이다.

     

     그러나 19세기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다룬 이런 시적 리얼리즘적 경향은 당대 사회적 분위기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19세기 산업화 시대는 좀 더 현실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요구했다.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시대에 비극은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 국가주의적 경찰국가 시대에 비관적인 세계관은 억압 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희곡문학 또한 발전하지 못했다. 희극적 반어법도 불온한 문법으로 치부당했다.

     

     

     독일 리얼리즘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울 수 있는 헵벨Hebbel은 「마리아 막달레네」 「유디트 Judith」등 일련의 희곡을 통해 시민적 리얼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간다.  개인이 전체에서 벗어나 자기실현을 추구하려 할때 죄는 야기된다는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이 역시 시적 리얼리즘의 경향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나는 체홉의 일련의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적인 희비극 또한 시적 리얼리즘적 경향으로 파악한다. 심리적 리얼리즘이라고도 불리우는 체홉의 희곡은 「벚나무 동산」 이란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변화를 앞둔 러시아 사회를 드러낸다. 체홉의 첫 희곡 「갈매기」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까지 차용하면서 낭만적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는다. 그러면서도 여주인공 니나의 영혼을 갈매기란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내면서 시적 리얼리즘의 고전적 미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 리얼리즘 연출가 홍해성과 이해랑의 연출 메모와 에세이를 읽어 나가다 보면, 의외의 표현과 만나게 된다. 연기의 궁극적 목표가 “시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란 편의적 용어로 사용되었던 한국 근대연극의 궁극적 정신사가 시적 리얼리즘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1-2 자연주의

     

     한국연극사에서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용어는 문예학의 개념에서 편의적인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표현을 주로 다루는 작품은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이다.

     

     인간이 지닌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도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존재 내의 것으로 규정하고,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인 것을 배제시키는 객관적 상관물로 규정짓는 것이 자연주의

    문예미학이다.

    미적 이데아에 가치를 두는 이상주의와 완전 대치되는 현실주의(사실주의가 아니다. 예술에 사실적은 것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학인 셈이다.

     

    에밀 졸라(1840-1902)는 “예술작품은 ‘자연의 조각’-인간을 포한한 자연현상의 인과적 연관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객관주의를 내세운다.

    자연주의 선언을 통해 환경과 유전이 지배하는  과학적 예술론, 지역적 음색의 참다움, 자기 관찰의 흙냄새, 표현의 생기찬 대상성 등을 예술 창작 의식과 방법론으로 내세운다.

     

     독일의 작가 하우프트만은  1889년 「해뜨기 전」을 베를인 자유극단에서 막 올리면서 독일 자연주의 연극의 장을 연다. 이는 파리의 자유극장을 모델로 한 독일 자유극단의 연극 시발점이 된다.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1893)은 본격적인 자연주의 드라마로서 주인공이 별도로 없고 지역 방언을 무대언어로 사용한다. 하우프트만은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자연주의 연극은 입센, 하우프트만의 희곡을 오토 브람의 연출 혹은 제작으로 베를린 자유극장의 연극 공연을 주도하고, 러시아의 위대한 자연주의 작가 도스토엡스키와 톨스토이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가 “내 소설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고 언급한 고골의 소설은 자연주의 작가들의 객관적이고 디테일한 일상 묘사와 이에 저항하는 통쾌한 희극적 반어법을 창조해 내면서 러시아 자연주의 작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하급 필경사 공무원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외투를 사 입었는데, 처음 외투를 입고 상전의 파티에 가던 중 공원에서 주먹을 만나 외투를 강탈 당한다. 그는 주먹이 자신의 외투를  빼앗아 갔다고 하소연하지만 누구도 들어 주지 않는다. 그는 실의에 빠져 죽고, 그 이후 공원에서는 엄청나게 큰 주먹을 들이대는 유령이 출몰한다. 잘 차려 입은 외투에 큰 주먹을 들이대고 “벗어!” 낮게 소리치는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울분을 일시에 터뜨리는 해방감을 맛 본다. 고골의 영혼과 작가의식이 창조해 낸 큰 주먹,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 창조해 낸 위대한 객관적 상관물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주의 문예미학은  20세기 일련의 위대한 소설을 탄생시켰고, 체홉 같은 시적 리얼리즘 경향의 내면적 심리적 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바냐 아저씨」는 체홉의 일련의 다른 희곡 작품과 달리 생동감 있고 삶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지닌 러시아 민중의 표상을 제시하면서 자연주의 드라마의 미덕을 보여준다. 물론, 체홉의 그 긴 독백투의 요설은 여전하지만......

     

     자연주의 연극은 독백은 가능한 피하고, 주된 사건은 막이 오르기 전 일어난 것으로 하고, 무대상에서는 그 결과 발생하는 파국만을 보여주는 구성을 즐겨 사용한다.

     자연주의자들은 실제 삶을 반영한다는 환상을 심어 주려 한다. 그 효과를 달성하기 위하여

    진귀한 면들보다 평균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선택한다.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산층이거나 (아주 드물게)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 예외적인 재능이 없고, 일상 경험들을 두루 거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약간의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밝아질 수도 있지만, 좀 지루하고 자주 불행하다. 그렇지만, 이들도 특별한 상황(극적 상황)에서는 영웅적 행동에 가까운 것을 보여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연극은 관객에게 실제 경험의 환상을 주도록 재현되거나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은 무대를 일상 현실의 반영으로 해석하고 자연화 시킨다.

     

    그들은 연극을 ‘실생활을 향해 쳐든 거울a mirror held up real life’ 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세익스피어의 「햄릿 」3막 2장 24행의  a mirror held up to nature를 인용한 것이다. 자연(nature)이 실제 삶(real life)으로 구체화 되었다.

     

     자연주의 문학은 사소한 사건이든 비상한 사건이든  외견상으로는 자세하게 사무적으로 비선택적으로 묘사한다. 보통 사람들을 너무도 풍부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여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고, 말하고 행동했다고 믿게 하려 한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너무 빤하게 꽉 짜인 희극적, 아니러닉한, 비극적 패턴으로 만들지 않는다.

    경험의 우연한 질서의 반영인 듯 보이도록 해야 한다.

    실제 삶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며 사회적 명제에 따라 창작되어야 한다.        

    강한 충동이 사회적 압력에 희생되는 인물로 표현되고, 의학적인 솔직성, 객관적 과학적 태도, 정교한 증거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5-1-3 삶의 조직화-사회적 리얼리즘

     

    리얼리즘 문예미학이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는 것은 마르크시스트들의 사회적 의지와 만나게 되면서 이다. 수정 마르크시스들은 자연 상태의 예술을 좀 더 삶의 주체적 인식의 조직화로  드러내려는 경향으로 리얼리즘 논의를 발전시켜 나간다.  

     

    볼론스키는 「삶의 인식으로서의 예술과 현대」(1924)에서  사회적 리얼리즘의 이론적 원리를 내세운다.

     

    예술은 우선 삶의  인식이다.

    예술은 공상이나 감정이나 기분대로의 놀이가 아니다.

    에술은 시인의 주관적 감각이나 경험만의 표현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독자 및 관객에게 ‘선한 감정’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는다.

    예술은 과학과 같이 삶을 인식한다.

    예술과 과학은 같은 대상, 즉 삶, 현실을 갖는다.

    다만 과학은 분석하나 예술은 종합한다.

    과학은 추상적이나 예술은 구상적이다.

    과학은 인간의 두뇌에 호소하나 예술은 그 감정에 호소한다.

    과학은 개념의 도움으로 삶을 인식하나

    예술은 형상의 도움으로 살아 있는 감정적 직관의 형식 속에 삶을 인식한다.

     

    역시 수정 마르크시스트 벨린스키는 예술론에서 리얼리즘 이론을 강화한다.

     

    예술가는 모든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본다.

    인식적 가치가 없는 것, 우연적인 것, 흥미 없는 것 등은 지나쳐야 된다.

    예술 속의 현실이 일상 속의 현실 보다 한층 더 현실을 닯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술가는 그를 둘러싼 현실이 마땅찮을지라도 그대로를 그리지 않고 그러해야 할 모습을 그린다. 이상적인 내일의 프리즘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그리는 것은 결코 삶의 인식으로서의

    예술의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레레비치는 「마르크스 문예비평의 원리에 대하여」 (1925)에서

    볼론스키의 리얼리즘론을 부르조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예술은 삶의 조직화라고 말 한다.

     

    에술이 바람직한 사회 구현을 위한 삶의 조직화란 리얼리즘론은 구 쏘련을 위시한 동구권

    공산국가와 제3세계, 그리고 북한의 문예미학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게열의 의식과 양식 실험은 식민지 시대 이후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 문학

    과 연극에서도 다양하게 시도되었지만, 남북 분단 이후 북으로 이전되어 버린 문예이론과 미학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여기에 대한 새삼 스런 관심과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5-2. 리얼리즘의 극복과 다양한 전개

     

    5-2-1 세기말의 전위  

           ;1890-1920 양식 다원주의 시대

     

     

    부르크하르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 일련의 서구 세기말적 사상가와 상상력주의자들은 세계는 결코 리얼하지 않고, 오히려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세계는 근본적으로 혼돈과 야만의 연속이고, 삶의 본질의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삶에 대한 관습적 의지 때문이고, 그래서 삶에 대한 관습적 의지를 극복하고 순수한 관조의 세계nirwana로 침잠했을 때 예술은 탄생한다고 보았다.  

     

    바그너Wagner는 음악과 언어를 종합한 음악극 양식을 통해 삶에 대한 전체적 양식을 탐색하려 했다. 그는 전통 오페라의 양식을 해체하고 신화와 전설을 재구성하여 <로헨그린><트리스탄과 이졸데><니벨룽겐의 반지> 등을 창조해 내었다. 그는 종합된 예술양식을 통해 분열된 세계와 파편화 되어 버린 개인들에게 공동체의 의식과 열망을 불어 넣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식과 양식 속에는  죽음에 대한 낭만적 동경, 관능과 생에 대한 정열적 도취, 니르바나에 대한 기대, ‘전부 아니면 무’ 식의 염세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니체가 로고스 중심의 예술에 파토스적인 열정과 어둠과 광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현대 예술양식의 다원주의의 길을 열었다. 우리는 이를 통털어 ‘현대’를 향한 ‘전위적’인 실험 예술의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인상주의 신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19세기 리얼리즘에 대한 안티 테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문학은 다시 천박한 현실주의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이상주의의 시기를 맞이한다.  

    ‘귀족주의적 고립’과 ‘보헤미안적 실존’과 기교가 예술가의 특권처럼 제시되었다.  

     이러한 현대를 향한 전위의 사상과 예술이  쇼펜하우어-니체-바그너로 이어진 셈이다.  

     

     

    5-2-2 니체의 초인주의

     

    니체는 초인의 존재를 창안해 내면서 예술의 디오니소스적인 자유정신을 제시했다.  

    니체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정당성을 미적 특질에서 발견해 낸다.

    예술은 삶을 심미화하는 것이다.  

    예술은 삶의 형이상학적 운동성이며 이는 삶의 본질적 존재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러한 그의 인간과 예술에 대한 사유와 직관을 종합적으로 드러낸다.

    초인 짜라투스트라는 누구인가? 그는 무엇보다 사상가이며 시인이며 대중 연설가인 배우였다. 그는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서구 고대 배우의 존재였던 바테스의 현신이었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의 무대는 세계였고, 그의 연기는 삶의 사유와 직관을 설파하는 예지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짜라투스트라는 동양의 고대 샤먼의 존재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5-2-3. 데카당!  

     

     체홉의 「갈매기」에서 러시아의 여배우 아르까지나는 새로운 형식을 주장하는 아들 뜨레플레프에게 “데카당!” 이라고 소리 친다.

     그 점에서 러시아의 극작가 체홉은 상당히 흥미로운 존재다. 그의 작가적 정서는 시적 리얼리즘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의 현실적 입장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자연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젊은 남녀 주인공들을 통해서는 데카당한 세기말적 분위기와 유머를 내밷게 하므로서 상징주의적 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세기말의 서로 다른 취향들이 뒤섞인 혼잡양식은 하우프트만, 입센, 메테를링크, 스트린드 베르히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은 철저하게 자연주의적인 극 구조를 바탕으로 하지만, 등장인물들과 언어에서 반자연주의적인 성향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뒤이은 그의 대표작  <한넬레의 승천>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 상징주의적 희곡으로 평가된다. 하우프트만 스스로가 리얼리즘의 영역을 탈피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베데킨트는 <사춘기> <지령:룰루비극><판도라의 상자>등 일련의 희곡을 통해 19세기말

    ‘억압되고 은폐된 영혼의 새로운 드러냄’이런 평가를 받는다.  

    호프만슈탈은 <엘렉트라><외디푸스왕과 스핑크스>를 통해 탐미적인 정열과 무의식적 충동의 운명극을 창조해 낸다. 호프만슈탈과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는 음악과 문학의 종합을 추구한 새로운 음악극으로 잘즈부르크 축제극의 원형을 이룬다. 이 작품 연출을 맡은 막스 라인하르트는 원래 리얼리즘 연극의 배우였고 연출가였다. 리얼리즘 연극 연출가가 스스로 리얼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서 야외극, 음악극 연출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간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막스 라인하르트는 그후 나찌 치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는다.

     리얼리즘 연극 연출가의 미래가 어디로 닿아 있는가를  암시해  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독일 리얼리즘 연극을 대표하는 막스 라인하르트의 이름은 미국 뮤지컬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한다. 바로 나찌를 피해 알프스 산을 넘는 대령 가족의 이웃으로 등장하는 막스 아저씨, 그 사람이 바로 막스 라인하르트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미국 뮤지컬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은 막스 라인하르트의 미망인이  뉴욕의 젊은 뮤지컬 작가 지망생에게 들려준 실화가 스토리 텔링의 밑그림이 되어 주었다. 유럽의 리얼리즘 연출가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에 막스 아저씨로 등장하는 아이러니를 본다.  

     

    5-2-4. 스타니슬랍스키의 심리와 행동

     

     

     스타니슬랍스키도 초기의 극장 형식과 외면적 현실의 환각에 주력했으나 체홉의 작품을 통해 내적 진실에 눈뜨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무대 형식을 제거시켜 나가면서 정제된 리얼리즘, 곧 심리적 리얼리즘이란 세련된 극양식을 추구해 나갔다.

    「갈매기」초연 당시, 스타니슬랍스키가 정교하게 준비한 사실적인 무대장치에 대해 체홉이 “저 무대는 전혀 리얼하지 않다.” 고 화를 낸 일화는 유명하다. 리얼은 삶의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 속에 있다는 체홉의 작가의식은 스타니슬랍스키에게 귀중한 연극적 지침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우선 배우의 신체와 소리가 고도의 훈련을 통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전제아래, 배역을 맡으면 배역과 관련된 현실과 환경을 관찰하고, 배경을 맡은 매 순간 행동의 내적 동기를 찾아내고, 상상력과 정서기억에 의해 내면화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내면화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극 전체를 관통하는 배우의 입장이 되어 극적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심리적 동기인 내면화는 한국 리얼리즘 연극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였다. 그래서 이해랑 선생의 내면연기란 표현이 회자된 것이다. 내면연기란 말은 한국 리얼리즘 연기의 지침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내면연기란 용어는 그 자체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연기는 기본적으로 ‘연기;보여주는 기술’이다.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보여준다는 것인가? 심리적 동기에 매달려 끙끙대는 배우의 모습은 오히려 지나치게 냉랭하고 딱딱한 이성의 억압을 받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 동기에 매달려 울부짖는 감상적 연기로 떨어질 위험성 또한 있는 것이다. 한국 리얼리즘 연극에 있어서 배우가 안고 있었던 고민과 오류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도 이 점을 의식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 미국 체제시절인 말년으로 갈수록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은 행동으로 나아간다. 연기적 행동과 일상적 행위가 서로  다른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리되지만, 겉으로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 연기적 상태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연기적 상태와 일상적 상태의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적 동기는 분명 다르다. 일상적 행위는 내적 동기가 무의식적이거나 없지만, 연기적 행위는 분명한 내적 동기가 있어야 그에 상응하는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디다. 이는 바로 수정 마르크시스트 블론스키의 ‘관념이 형식을 낳는다’는 리얼리즘 인식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후기 스타니슬럽스키의 리얼리즘 연기에 대한 탐구는 미국에서 아메리카 시네마 액팅(영화 연기)의 기본이 되어 주었다.

     

     

    5-2-5. 상징주의의 개입

     그러나 삶의 궁극적 진실은 직접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되기 보다, 전설 신화 등의 정서적

    분위기와 상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환기시킨다는 상징주의적 입장 또한 후기 리얼리즘 경향에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의 연극이론가 아피아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예술적 통일성을 강조했으며, 무대를 입체화 시키고 특히 조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명의 시간성에 주목하여 조명을 음악을 시각화한 것으로 이해하고 정적인 무대장치에 시간성을 부여했다.

     그는 배우의 연기술에도 주목하여 상형적 연기술을 창안했다. 음악학도들에게 음악의 리듬을 신체의 감각을 통해서 체험하는 훈련을 달크로즈(1865-1960)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순수 절대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실적 연기가 아니라 추상적 연기표현의 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상징주의적 경향은 그리이크의 극단적 연기 양식을 거쳐 스타니슬랍스키로부터 독립해 나간 메이어홀드에 이르러 구성주의적 생체 역학 연기 메소드로 이어진다.

    이때 배우는 리얼한 존재인 동시에 상징적인 존재인 것이다.        

     

    5-2-6. 삶의 부조리에 대한 인식

     

     인간 조건은 본질적으로, 근원적으로 부조리하며, 인간의 진실은 부조리한 삶의 형식 속에서만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프카의 」「심판」「변신」, 그리고 장폴 싸르트르와 카뮈의 실존주의가 리얼리즘 그 이후의 예술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카뮈의 「이방인」은 돌연히 환상의 빛을 박탈당한 우주에서, 인간은 이방인임을 느낀다. 인간의 유배는 구조할 수 없는 던져진 존재다. 여기서 던져진 상황과 개인이 겪는  괴리는 그 자체 부조리한 한계 상황이다.

     그러나 카뮈와 싸르트르의 희곡 구조와 문체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쓰여졌다.  

    유진 이오네스코는 (카프카에 대한 논문에서)“ 종교적, 형이상학적, 초월적 근원에서 끊긴 인간은 길을 잃었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며, 무용하다.“고 확인한다. 그러면서 이오네스코의 극적 언어 자체가 의미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꿈과 현실, 로고스와 파토스 사이가 뒤섞여 버리는 언어의 부조리극을 탄생 시킨다.

    카뮈와 싸르트르가 조리 정연하게 부조리 상황을 표횬했다면, 이오네스코는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한 언어로 표현한 셈이다.

    여기서 진정한 부조리극은 탄생한다.

    유진 이오네스코는 반연극 선언에서 이렇게 말 한다.

     

    “나는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제시할 뿐이다.”

     

    샤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비합리적이며 기과하고 희극적인 인물을 등장시킨다. 전통적 드라마는 희화화된 패러디로 사용되고, 대화는 핵심이 없지만 재미있고, 익살스럽지만 형이상학적 소외감과 고뇌를 드러낸다. 주인공은 비영웅적이고 불안정한 역설적 존재로 드러난다.

    베케트의 부조리극은 언어 이전 실존하는 인간 자체의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준다.

     

    쟝주네의 희곡은 기상천외하거나 악마 같은 블랙 유머를 쏟아낸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비극적 세계 속에서 오히려 “비극적 소극” 의 역할을 끝까지 해 낸다. 그 소극 속의 사건들은  희극적이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리얼하다. 장주네 연극의 비현실적 리얼함이 주는 의미는 결국 연극 그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 기괴망칙한 리얼함이 바로 연극의 본질에 당도한다는 깨달음. 여기서 메타 연극: Metatheater이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라는 생각은 피란델로 베케트 주네 등에서 반연극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세계는 무대다. 인생은 꿈이다’ 는 르네상스적 명제를 사회 윤리적 명제로 끌어 올리고,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오네스코 베케트 주네 피란델로 등에서 드러나는 부조리극은 삶의 부조리에서 나아가 연극의 본질이 부조리한 삶의 양식이란 것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5-3. 연기에 있어서 리얼이란

     

    결국 연기에 있어서의 리얼이란 배우가 인식된 행위로서의 연기를 하면서 내적으로 발생하는 삶에 대한 새삼스런 확인이다.

    인식되지 않은 느낌은 감정일 뿐이며

    인식되지 않은 행동은 무의미한 놀이 충동 짓거리 일 뿐이다.

     

    여기서 ‘인식’이란 먼저 나에 대한 인식이다.

    현실 속에 던져진 나가 아니라 던져진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나-나의 내면이 나의 입장으로 성립될 수 있을 때 나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진다.

     

    나 자신의 입장이 되어 연기하라

     

    이 말은 나 자신의 입장이란 관념이 연기란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화 되지 않은 관념은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한다.

    리얼리티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식이 구체적 연기로 형상화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리얼리즘적 인식이 당도하는 현실계다.

     연기자의 존재는 먼저 상상계; 즉 상상하는 존재이며,

     상징계;상상된 것을 구체적인 표현으로 형상화 하는 존재,

    그리고 이 상상과 상징의 과정이 현실인식, 즉 현실계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나에 대한 인식은 나아가 나와 너, 나와 무대, 나와 관객을 포함한 극장, 나와 현실의 관계로 확장되면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결론적으로,

    리얼은 인간 의식 속에 내재된 관념이며

    리얼리티는 구체적 행위로 표현된 형식이다.  

    관념의 형식이 곧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것이다.

    관념이 없으면 형식도 없는 현실 그 자체일 뿐이고,

    관념이 없는 현실성은 결국 구체적 리얼리티를 표현하지도 못 한다.

    리얼리티란 것이 현실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이 독자적 형식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관념idea은 실재reality와 대조된다.

    칸트는 “실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인간정신의 구조(관념)에 의해 결정된다.” 고 보았다.

    순수한 관념론에 의하면 실재는 정신적이다.

    버클리에 의하면,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물질은 정신 속에 있는 관념들의 형태이며 정신 활동의 표현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배우의 리얼한 의식과 연기양식이 삶의 실재성(리얼리티) 으로 종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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