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完)이윤택 연기론_영혼과 물질
  • ▶ 1장. 배우의 존재
  • 이윤택의 연기론_1

    영혼과 물질



    이윤택(연출가, 영산대 교수)
     


    1장. 배우의 존재

    1-1. 배우의 형이상학

    오늘의 연기 교육과 연기훈련 과정이 연기에 대한 본질적인 것을 다루지 않고, 실제 연기에 적용되지도 못하는 막연한 강의와 테크닉 훈련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음을 본다.
    연기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예민한 정서 작용이며 고도로 심화된 표현양식이다. 연기는 단순한 성격 표현이나 스토리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새삼스런 인식이며 긴장이다.

    배우는 일상적 삶의 습관을 뛰어 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다.

    아무리 폭넓고 깊은 인간의 정신영역을 다룬 희곡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배우의 형이상학적 영역 내에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매력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공간 연출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결국 배우를 통해 삶의 실제성과 상징적 존재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연극의 구체적 표현은 배우에 이르러 완성된다. 배우에 의해 연극의 주제의식, 감동, 극적 재미도 결정된다.

     

    1-1-1. 나는 지금 여기 배우로 존재한다

    ‘배우가 무대에 있다’는 개념은 일상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배우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일상적 인간과 배우에 대한 분명한 차별성이다. 한자(漢子)에 의하면 배우(俳優)는 ‘인간이 아닌’(배: 人, 非)이란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배우는 일상적인 인간이 아니다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보편적이고 일상적이 아닌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여기서 우리는 '놀이하는 인간: a player' 이란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이고, 이는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Man of the player)와 직결된다. 즉, 배우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과 구별되고, 호모 파베르(Homo faber: 연장을 가지고 공작하는 인간, 일하는 인간) 과도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놀이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논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생각과 일 외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상상력의 세계일 것이다.

    ‘인간은 상상한다’, ‘인간은 꿈꾼다’는 의미야 말로 생각과 일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놀이성을 제공한다. 이 삶의 놀이성이 배우의 존재를 규정짓는 단서가 된다. 요한 호이징하가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라고 규정지었을 때, 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적 존재가 바로 배우인 셈이다.

    배우가 놀이하는 무대는 어떤 공간인가? 서구연극의 발원지를 디오니소스 축제로

    본다면, 바로 축제의 공간이다. 일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 놀이하는 시간과 공간이 무대였고, 이 축제의 공간은 곧 축제의 목적-신에 대한 경배의 의미가 중첩되면서 제의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놀이와 제의의 공간은 일상적 공간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은 그 규모와 미적 건축미에서 독자적인 공간 양식미를 드러내고, 한국 고대 축제의 장소였던 소도(蘇塗;sodo)는 일상적 삶의 규범 밖에 존재하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연극은 일상인들이 현실 속에서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여흥으로 노는 행위와 구별되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놀이이며 제의다. 배우는 바로 그 일상과 구별되는 무대 공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이다.


    나는 지금 여기 무대에 선 배우로 존재한다
    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현실적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낸 존재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시간과 공간은 어떤 곳인가? 무엇인가 현실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일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합리적인 목적과 주어지는 계획에 따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적응시키는 시간과 공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학습과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성장은 곧 삶에의 적응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외부적 삶의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 하면서 내밀한 자신만의 심연(深淵: 상상력의 저수지)을 마음 속에 키우기 시작한다. 이 심연은 외부로부터 억압받은 저항적 느낌이 축적되기도 하고,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이상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단순 반복되는 일상적 삶의 질서를 이탈하고픈 충동이기도 하고,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고픈 장난질과 환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규정지어진 자아가 아닌, 자신이 꿈꾸는 자아의 모습이다. 제한된 삶의 공간과 유한한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벗어나고픈 욕망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한된 삶의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을 자유롭게 변화시켜 좀 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삶의 체험을 누리고 싶은 희망이기도 하다. 이 모든 내적 요구는 외부적 삶으로부터 억압받은 채 인간 의식의 수면 밑으로 잠복해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국가론의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시인은 이런 모든 불온한 욕구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내적 욕구는 불온하다.
    질서 교란적이고, 제도로부터 이탈하고픈 자유에의 열정, 합리성을 무너뜨리는 해프닝, 어처구니 없는 웃음과 비명을 터뜨리게 하는 장난질, 소리 내어 울고 싶은 해방감,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고 싶은 환상 등 인간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거의 모든 내적 욕구는 불온하다.

    무대는 현실로부터 분리된 공간으로 이 모든 내적 요구를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인간이 현실 속에서 생각하고 일하는 시간을 멈추고 휴식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자주 ‘한 숨 돌린다’‘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한 숨 돌리는 시간’은 현실적 생각과 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 시간이다. 인간 스스로 생각과 일로부터 자신을 비워 버릴 때, 즉 한숨 돌리면서 인간은 비로소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자신의 존재와 대면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내가 하고픈 것은 무엇인가? 등 현실과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무심하게 살았던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면서 억눌려 있었던 내적 요구들이 다양한 느낌과 이미지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한숨 돌린 숨’은 급기야 자신의 내밀한 느낌과 섞이면서 , 무심하게 들락거리던 날숨과 들숨 사이에 다른 숨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자신을 응시하는 숨,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잡는 숨 쉬기로 바뀌는 시간이 온다.
    이때부터 인간은 외부적 현실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고, 자신의 의식과 몸 속에 숨을 머물게 하면서 자신과 세계를 주체적으로 느끼고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때 나는 비로소 삶의 주체이며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는 객체로 존재한다
     

     

    1-2. 배우 교육, 혹은 훈련

     

    1-2-1. 인문학적 책 읽기

    극작가의 대본을 구체적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배우가 처음 만나는 작업은 대본, 즉 활자매체로 구성된 문학이다. 활자로 구성된 문학을 구체적 행위와 공간미학으로 표현해야 하는 배우에게 필수적인 첫 관문은 책 읽기, 즉 해석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연극은 상식적인 삶을 다루지 않는다. 일상의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던지 일상 저 너머의 세계를 꿈꾸던지 현실에 대한 나름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극문학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압축 생략 비약된 함축적 삶의 의미를 다룬다. 이 극작가의 고도화된 언어에 직면하게 되는 배우들은 상당한 수준의 해석력을 요구 받기 마련이다. 결국 배우가 해야 할 첫 작업이 대단히 섬세한 책 읽기의 과정이다.

    이런 대본 해석의 과정은 연출가나 드라마 트루기, 혹은 기존의 책을 통해서 얻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남이 해석하고 들려주는 말은 배우 자신의 입장과 느낌으로 와 닿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이해한 대본은 결국 피상적인 연기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배우는 누구 보다 먼저 자신이 연기해야 할 대본을 자신의 입장에서 읽어 내어야 한다. 이게 준비된 배우의 모습이다.

    연극배우들이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 점에서 배우의 재교육은 책 읽기의 습관을 회복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먼저 대본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책 읽기가 필요할 것이다. 대본 뿐만 아니라, 대본 해석의 근거가 되는 신화학 종교학 미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언어학......이 모든 인문학적 책읽기가 배우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대한 분야를 어떻게 읽어내란 말인가......먼저 주어진 대본과 관련된 책읽기부터 시작하는게 좋을 것이다. 만일 장주네의 <하녀들>이 연기해야 할 대본으로 주어졌다면, 장주네가 쓴 작품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장주네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장주네가 부조리 극작가라면 부조리극에 대한 책을 읽고, 누군가 장주네를 프로이드와 융의 정신분석학을 대입시켰다면, 프로이트와 융의 책을 읽고, 프로이트와 융의 차별성까지 읽어 버릴 일이다. 그리하여 장주네에 관한 한 나는 그의 속내까지 다 씹어 먹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장주네는 배우의 의식 속에 들어오게 되고, 자신이 연기해야 할 역할이 이미 자신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1-2-2. 상상력과 삶의 활기가 밑천

    기존 배우들이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그에게는 먼저 휴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습관적 연기에 대한 회의, 연극 자체에 대한 불신과 혼돈은 주기적으로 배우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고비이다. 이때 가장 좋은 재충전의 과정은 여행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연극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면 연극에 대한 객관적 거리가 생긴다. 그러면서 연극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게 되면서 연극이 새삼스런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배우에게는 이런 거리두기를 통한 휴식과 상상력의 재충전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배우들이 지치고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작업에 염증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반복에서 기인한다. 특히 근래 배우들에게 너무 많은 세속적 기회가 주어지고, 작업 방식 자체도 프리랜서를 중심으로 오디션과 출연 계약에 의존하기 때문에 작업자 간의 일체감과 공동체로서의 정서적 연대감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연극 노동자가 되어 간다는 생각, 그것도 불안한 비정규직 존재라는 것이 배우들의 정서를 각박하게 만들고 점차 세속적인 인간으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배우란 존재는 본래적으로 일상적인 인간은 아니다. 배우는 풍부한 상상력이 밑천이며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잘 노는 인간이다.

    배우들의 교육은 이런 상상력과 놀이에 대한 정서적 체험 과정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현장 작업에서 벗어난 배우끼리 만나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정서적 연대감을 갖도록 해 주는 환경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서로의 무대 체험담을 들려 주기도 하고 흥미로웠던 에피소드 보따리가 펼쳐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이 꿈 꾸었던 연극의 세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배우들에게 가장 심각한 장애는 상상력의 빈곤이다. 대사를 별스런 생각이나 감정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배우에게서 관객은 정서적 교감을 느낄 수가 없다.

    배우는 자신과 타인, 인간과 자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직관과 영감의 영역에서 노니는 인간이다.
    여기서 상상력은 배우에게 더 없이 귀중한 삶의 생기가 될 것이다. 현장 작업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상상하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농담 잡담 궤변 역설 독설 취중 해프닝도 실제적인 상상력 놀이가 될 수 있다.

    만일 기존 배우들에게 재교육 과정이 주어진다면, 자기들 스스로 해프닝을 연출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여기서 재교육 프로그래머는 해프닝의 목표와 규칙만 정해 주면 된다.
    “오늘 저녁 여러분은 동키호테 역을 맡게 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임무는 풍차와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무기는 보시다시피 술 한병과 순대 한 접시입니다.”
    그리고 그들끼리 자유롭게 판을 벌일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의 재교육은 먼저 그들끼리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1-2-3. 인식되지 않은 것은 형식을 갖지 못 한다.

    나는 실제 연기에 관한 한, 당사자인 배우 외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우란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 훈련되어 지지 않는다. 타자로부터 주어지는 그 어떤 훈련과정도 실제 연기에 관한 한 참조 사항일 뿐, 연기는 배우 개인의 정신과 몸에 의해 자율적으로 표현되는 독자적 영역이다.

    연기 또한 배우 개인의 서로 다른 다양한 연기 스타일에 의해 표현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똑 같이 적용되는 연기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자기만의 연기에 대한 입장과 방법론을 가지는 것이고, 객관적 기준은 결국 관객에 의해 판명될 뿐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연기이다’ 라는 명제는 위험한 발상이다. 어떻게 연기하건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결국 관객에 의해 연기의 보편성을 확인 받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연기 재교육 과정에서의 연기 실습은 교육 대상자 1인과 참관자 다수의 관계에서 진행되는 혹독한 자아비판 과정이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원칙은 “ 인식되지 않은 것은 형식을 갖지 못 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 선 배우는 근본적으로 관객의 눈에 객관적 상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배우의 모든 움직임은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나름의 내적 동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직관이건 감각지각이건 인식이건 파토스적 충동이건 간에 내적 동기가 없는 연기는 관객을 혼란시키고 극의 진행을 교란시킨다. 연기에 있어서의 자기 확신과 내적 질서는 배우가 지녀야 할 순결한 의무이다. 스토리 텔링에 의존하지 않는 부조리극이나 포스트 모던한 연극일수록 배우의 자기 확신과 내적 동기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막연한 연기의 함정에 떨어지고, 난해성을 위한 난해함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의식하는 연기는 순간적인 흥미를 유발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 의미 없는 해프닝이며 내용이 없는 즉흥 연기다.

    배우 스스로 분명한 연기적 목표점도 없이 제 기분대로 하는 연기는 극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연극적 목표를 모호하게 해 버린다.

    나의 연기 훈련과정은 배우들의 실제 연기 과정을 지켜 보면서 ‘왜 그렇게 연기하지?’ 란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배우들이 지니고 있는 결핍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과정이다. 넘치는 감정을 절제하게 하는 것, 냉랭한 가슴을 열고 감성의 분화구를 터뜨리게 하는 것,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말을 자신의 인식으로 찍게 하는 것, 쓸모없는 움직임을 자제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몸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것, 멀리 전달할 수 있는 발성의 원리를 제시해 주는 것, 배우 자신과 상대방 배우 사이의 숨을 소통시키는 것, 무대 공간을 인식하게 하는 것,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역할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무대에 선 자신과 극장 밖 현실과의 관계를 인식하게 하는 것, 배우 자신과 불가시의 공간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느끼게 하는 것, 연기 하는 자신과 자신의 내부에 드리워지는 심연의 그림자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런 식으로 연기 실습 과정은 배우에 따라 각자 다르게 적용되면서 혹독한 자아분석과 비판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시쳇말로 ‘털 뽑히는 날’이다.

     

    1-2-4. 연기 방법론에 대한 이해와 습득
    일반적으로 연기 훈련 내지 연기 교육이라고 불리워지는 과정들은 대부분 연기 방법론에 관한 것들이기 일쑤다. 그러나 연기 방법론에 의존하는 연기 교육은 위험하다. 아무리 좋은 연기 방법론도 배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지 못 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연기를 자연발생적인 배우의 개인의 끼와 재능에게만 맡기는 것 또한 대책 없는 생각이다. 연기도 분명한 예술행위라면, 나름의 미학적 규범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있다.

    연기 방법론은 먼저 다양한 연극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본적 연기 방법론이 있을 수 있고, 연극사적 과정에서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을 지닌 연기양식적 방법론이 있을 수 있고, 문화 공동체로서의 민족적 특성을 지닌 연기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서로 다른 갈래의 연기 방법론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혼용되거나 종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1-2-4-1 기본적 연기 방법론의 과정

    가. 발성법 울림이 크고 분명한 발성을 위한 훈련 과정. 원래 야외극장이나 오페라극장 대극장 공연을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수용되면서 다양한 훈련 방법론을 낳았다. 어떤 방법론이건 결국 무대 발성에서 그 성과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배우의 개인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발음법 모국어의 구성 원리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권의 독자적 화술체계에 의해 화술 원칙이 세워진다. 말의 리듬과 전달력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러나 배우의 언어 지각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몸의 움직임 주로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이 훈련의 주된 목표가 된다. 발레 기초 현대무용 전통무용 무예 탈춤 등이 신체훈련 과정으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연극외 다른 쟝르의 방법론에 의존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 하다. 배우들이 배워야 할 것은 몸의 운용 원리와 자기 나름의 수용이다. 특정 장르의 형식을 차용하는 것은 배우의 내적 동기와 만나지 못할 때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1-2-4-2 연기양식적 방법론

    연극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나름의 독특한 연기 방법론이 존재라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극을 연기할 때와 체홉극을 연기할 때 배우의 입장과 연기 표현 방식은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야외극장에서 공연되었던 희랍극의 발성과 시적 운율을 기본으로 한 화술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상적인 화법으로 희랍극의 긴 독백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희랍극 텍스트를 오늘의 일상극 구조로 바꾸었을 때는 오히려 일상화법이 더욱 적절한 연기양식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공연 텍스트를 선택했을 때, 원작 대로 공연할 경우에는 원작의 문화적 배경과 그에 따른 연기 방법론을 고려해야 한다. 아니면 동시대 지금 이곳의 대본으로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배우들은 다양한 연기방법론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고, 연기 교육 과정에 연기양식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와 훈련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1-2-5 한편의 연극은 그에 적절한 하나의 연기방법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모든 작품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연기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극 체홉극 희랍극의 연기 방법론이 다르듯이 각 극단이 독자적으로 공유하는 연기 방법론도 서로 다른 연기 방법론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야 극단이 더욱 분명한 독자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백개의 극단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백개의 연기 방법론 또한 존재한다. 장르 매체간의 독자적 연기방법론도 존재한다. 연극, 뮤지컬, 영화,TV 드라마 각 매체간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원리는 하나다.
    어떤 방법론과 과정을 거쳐 표현된다 하더라도 연기는 감동,진지함, 재미 등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심판 받기 마련이다.

    결국 하나의 대본 텍스트가 주어졌을 때, 작업에 참여하는 배우와 연출가가 텍스트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표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연기 방법론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다.

    연기란 연극의 역사성과 문화적 배경을 통해 걸러진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양식만 존재할 뿐, 결국 주어진 텍스트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와 연출가가 같이 창조해 나가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생성과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연기교육, 혹은 훈련 과정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은 “연기란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창조적 의식과 표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새삼스런 경건함, 타인과 세계에 대한 관심과 믿음, 그리고 배우로서의 자기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자긍심 같은 것들이 좋은 연기를 낳는다. (연기예술학회 창립 세미나 발제 원고/2009)
     

    이윤택 연기론 <영혼과 물질>은 7월 말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여 도요웹진 에서는 총 3부 중 1부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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