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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문홍의 연극 이야기>제5회 창작단막극제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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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경계해야 할 매너리즘에의 안주
     
                                                -제5회 창작단막극제 총평
     


                                                                                 연극평론가 김 문 홍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 필요
     
    예술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매너리즘이다. 틀에 박힌 태도나 방식을 매너리즘이라고 부른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튀어선 좀 곤란하지 않을까, 남들 다 그런데 이만하면 그래도 그중 나은 거야......라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나 방식이 바로 매너리즘인 것이다.
    창작단막극제 형식의 ‘나는 연출이다’ 페스티벌이 출범한 지가 벌써 다섯 해에 이른다. 처음 한 두 해는 단막극제에 대한 연극인들의 기대나 관객들의 열기에 비례해 참가 작품들의 면모가 아주 의욕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식, 그리고 연극적 방법론이 독창적이고 실험적이었다. 그래서 연극인들에게는 순수 연극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고, 관객들에게는 연극예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들로 연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 주었다.
    처음의 의도는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들에게 창작의 재량권을 주자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관객의 연극적 취향이나 선호도에 밀려 연출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극미학과 세상에 대한 날선 목소리를 작품에 담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작품 생산에 투입된 제작비를 어느 정도 회수하기 위해서는 관객의 연극적 취향이나 선호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작품들이 상업적 대중극의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창작단막극제라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나마 그런 현실적 제약들을 벗어나 새로운 소재나 파격적인 주제의식, 그리고 실험적 미학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시각을 마련해 주고자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창작단막극제가 매너리즘의 늪에서 허우적이기 시작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연출가들의 안일한 현실 안주, 창작단막극제에 대한 정체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거나 처음의 의도를 잊어버린 주최 측의 안일한 행사 운영, 참여하는 연출가들의 면모가 새롭지 않고 그저 그런 인물들의 라인업으로 진열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행사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사후 평가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단막극제는 이제는 그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미래적 전망에 대한 비전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실험, 풍자적 은유, 현실응시의 다양한 스펙트럼
     
    2015년도 제5회 창작단막극제의 라인업은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었다. 여성 연출가들의 약진, 인접예술인 무용 안무가의 참여, 일본 연출자의 영입 등의 외적인 다양성이 우선 눈에 띄었다. 그리고 참여 작품들의 소재와 현실인식으로서의 주제의식도 다양한 개성만큼 다채로웠다. 오브제에 대한 실험으로서의「할 말 있어요」, 원작소설의 뒤집기를 통한 예리한 현실비판을 시도한「캉디드」굿의 접목을 통한 표현방법의 확대를 시도한「해원」, 창작단막극제에 대한 풍자적 은유로서의「청춘나비 즉흥극」, 무용극을 통한 현실응시로서의「어느 날 저녁...」, 젊음에 대한 자아적 성찰의 내면일기 형식인「때 이른 매장」등 그 소재와 연극적 방법론도 그 개성의 편차만큼 다양한 빛깔을 보여 주었다.
    가장 대중적 코드로 관객과의 소통에서 성공한 작품은 극단 더블 스테이지의「해원」과 프로젝트팀 RESET의「청춘나비 즉흥극」등 두 편이었다. 이 두 작품은 대중적 코드로서의 재미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 풍자로서의 은유와 표현 방법의 확대라는 연극적 확장성에 있어서도 의의가 컸다. 즉, 연극적 에너지와 대중적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단 더블 스테이지의「해원」(김지숙 작, 김동민 연출)은 굿과 연극의 접목을 시도하여 연극의 공간과 표현 방법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욕을 높이 사고 싶다. 이 작품은 병원 측의 실수로 한 생명을 희생시킨 의료사고에 인본주의적 책임의식을 녹여내고 있다. 의사가 피해자인 여성의 집에서 벌이는 한판 해원 굿을 통해, 생명에 대한 존엄과 의료사고의 윤리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억울하게 죽은 한 생명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을 통해 우리사회의 무감각한 윤리의식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의사가 굿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행위의 필연적인 심리적 동기가 미약하여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흠이 있다. 그리고 시종일관 굿 행위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연극적 행위는 뒤편으로 밀려나 버려, 관객에게 굿과 연극 중에서 어느 것을 보여주려는지 그 의도가 불명확한 것도 하나의 흠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연극적 표현을 확장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굿의 완벽한 형식을 보여준 그 모험적 시도는 아주 바람직하다.
    프로젝트팀 RESET의「청춘나비 즉흥극」(송근욱 작, 연출)은 창작단막극제의 허실에 대한 풍자적 고발을 통해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세 명의 남자배우가 느닷없이 연출자 송근욱의 작업장에 들이닥쳐 청춘단막극제 작품의 연출에 고심하고 있는 그에게 역설적 논리 제기와 황당한 행동을 통해 ‘지금 이곳’의 연극 작업에 대해 강하고 아픈 카운터펀치 공격을 퍼붓고 있다. 선배 배우들은 연극의 예술성과 실험성에 대해 기발하고 황당한 방법론을 제시하여 연극인들의 허위의식을 짓뭉개고 까발리기 시작한다. 그들 선배 배우들은 모두들 팬티만 걸친 채 등장하는데, 그들은 사실상 그들 자신의 옷차림과 난장에 가까운 논리 제기의 위선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이 정작 자신이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연극의 예술성에 대해 신랄하게 질타하고 있다. 예술성은 그저 적당하게 알 듯 모를 듯 안개를 피우거나,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적절하게 얼버무리면 된다고 역설적인 논리를 제기한다. 결국 이 작품은 연극이란 무엇이며, 이 시대의 연극은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연극인들에게 되묻고 있다. 이 작품은 표층적인 의미에서는 청춘나비 아트홀의 ‘창작단막극제’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심층적인 의미에서는 연극인의 허위의식을 상징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할 말 있어요」(양효윤 작, 연출)는 규정 공연시간인 20분에 훨씬 못 미치는 7분 동안 대사 한 마디도 없이 오브제를 통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무대 위에 벤치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에 권총, 커피잔, 지팡이, 모자, 상하의 옷 한 벌, 케이크 한 조각, 신발 등이 놓여 있다. 웬 여자 하나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관객석을 향해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잠시 뒤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벤치 위에 놓인 물건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 이 극의 전부이다. 벤치 위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은 모두 다 일상생활 속에서 범상치 않은 존재 이유를 지닌 물건들이다. 이 연극은 이러한 오브제들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연극적 상상력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다. 즉, 무대 위의 오브제들은 하찮은 것 하나라도 모두 그것들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이, 그것들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연극적 상상력도 그것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 극단 M.M.S.T의「캉디드」(모모세 도모히데 작, 연출)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소설인「캉디드」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얼마전의 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탐구하고 있다. 자막을 가득 채우는 지식인들의 장황한 요설을 통해 실천윤리를 도외시한 지식인들의 발언에 대한 허위의식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제의식과 현실인식의 밑그림이 연출자의 내부에서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지, 그러한 현실인식이 어떤 구체성을 띄고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어 관객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실패하고 있다.
    극단 VON의「때 이른 매장」(변규림 작, 연출)은 대사 한 마디 없이 배우들의 움직임과 마임만으로 표현되고 있는 일종의 무용극적 형식이다. 이 작품은 이제 곧 20대와 결별하고 30대를 맞이해야 하는 한 사내의 자의식적인 내면일기를 한 사내의 분신과의 고통스런 유희를 다루고 있다. 20대를 떠나 보내고 30대를 맞이해야 하지만 사내는 아직도 뭔가 미심쩍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현실은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그 현실과 결별하고 새로운 불안하고 미심쩍은 세대와 맞닥뜨려야 한다. 이 작품은 아프고 불안하고 미심쩍은 청춘의 내면일기를 하나의 무용극으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예술공동체 마르의「어느 날 저녁, 쌀을 씻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그리움에도 등이 있을까 생각한다. 아! 이 손 갈 데 없는 가려움이라니」(구현철, 강희정 공동 구성, 강희정 연출)라는 작품 역시 대사 한 마디 없이 출연자의 몸과 동작, 그리고 표정이 하나의 언어인 무용극이다. 환자복을 입은 누나는 세월호로 남동생을 잃은 상실감과 적막감에 육신과 영혼이 붕괴된 상태이다. 그녀의 일상은 늘 그렇게 진공상태의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헤어날 길이 없다. 그녀의 유일한 평안은 돌아오지 않는 남동생과의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사는 일이다. 그녀는 고통스럽지만 평안한 판타지의 공간 속에서 동생과 부딪치고 장난치고 티격태격하고 화해하며 고통과 불안의 상실감을 잠재운다. 무용 안무가인 강희정은 무용 속에 연극적 프레임이 많이 등장하는 무용극을 늘 시도해 온 중견 안무가이다. 그녀는 참가한 연출자 중에서는 가장 연륜이 높지만, 무대 위에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젊고 새롭고 파격적이다.
     
    단막극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철저한 사후 평가
     
    앞으로의 창작단막극제 ‘나는 연출이다’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우선 참가 연출자의 선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존 연출가 중심보다는 이제 새롭게 연출로 입문하려고 시도하는 젊은 연출가를 영입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연극인들 중에서도 배우나 작가, 그리고 스탭들이 연출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을 연출로 영입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단막극에 대한 특성을 충분하게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단막극은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의 암전도 없어야 하고, 현실과 인간에 대한 예리하고 날선 현실인식으로서의 주제의식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 단막극의 특성이다. 사전에 이들에 대한 단막극의 특성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막극제가 끝나면 철저한 자기 반성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극 평론가 그룹이 반드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사전 청탁이 잇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연극평론가 그릅, 참여한 연출가와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객관적인 평가를 비롯한 신랄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녹취하고 기록하여 대본과 함께 수록한 책자를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평가와 토론집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부산연극은 그만큼 깊어지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창작단막극제는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가 연출가들의 장인작인 연극정신이 살아 번득여야 할 것이고,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철저하고 객관적인 사후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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